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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522화 (521/1,615)

00522  암천향(暗天鄕)  =========================================================================

태산에 버티고 있는 적은 팔부중(八部衆) 긴나라!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천제가 내려오기 전에 놈을 해치움과 동시에 창힐이 어떤 계략을 꾸미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태산에 누가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라 피해를 각오하면서까지 쳐야하는지를 몰라서 놔두었지만, 적이 긴나라라면 얘기가 다르다. 놈을 해치우는 게 전욱의 명령도 달성할 수 있는 일석이조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팔부중을 이길 수 있을지... 일 것이오."

망량은 모두가 모인 회의자리에서 침착하게 말했다.

"팔부중의 격은 배화교의 마왕에 떨어지지 않소. 고대에 천축의 신으로 모셔지며 일개국을 멸망시키기까지 했던 존재요. 동급이거나 그 이상이라 봐야 할 거요."

"하지만 긴나라의 전투력은 밑에서 두 번째. 팔부중 중에서는 비교적 하위권이라 했잖소."

"그 하위권이 마왕보다 더 강할수도 있는 거요."

"......"

망량의 말대로였다. 뇌음사의 서책에서는 긴나라를 약체라고 표현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신격의 관점이다. 일반 필멸자가 봤을 때 긴나라의 힘이 얼마나 강대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미호가 팔짱을 꼈다.

"또다시 선택의 순간이 왔군. 백웅, 칠 테냐 아니면 좌시할테냐?"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좌시할 리가 없잖아. 창힐의 화신이 태산을 점거한 건 분명히 음모가 있어서야. 지금까지는 놔뒀지만 정체를 알게 된 이상 칠 수밖에 없어. 저놈을 놔뒀다가는 분명히 우리가 큰 피해를 입는다."

"크크. 이제 머리가 좀 돌아가는군."

낄낄대는 제갈사 옆에 있던 검마가 말했다.

"백웅. 태산을 치는 건 동의하네. 우리 중 몇몇이 죽는다 하더라도 반드시 쳐야겠지. 허나 좀 걸리는 게..."

"무엇입니까?"

"그냥 놈을 반전의 권능으로 없앨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군요."

마왕에 버금가는 귀찮은 강적을 쓰러뜨리는 것보다는 반전의 권능을 써서 속편하게 죽여버릴 수도 있다. 아무리 창힐의 화신이라 해도 밀림의 지배자에 당해내지는 못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갈사가 말했다.

"그렇지 않아. 그 방법은 쓰면 안돼."

"왜?"

"밀림의 지배자는 영혼을 아예 삼켜버려서 자신의 소유로 만들지. 그 말은 전욱이 원하는대로 창힐의 정보를 알아낼 기회를 상실한다는 뜻이다. 또한 행적이 명확해진 지금이 아니면 그 간교한 긴나라의 실체를 대면할 기회가 과연 앞으로의 전생에서 쉽게 찾아올까?"

"......!!"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쓰러뜨리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정보를 얻을 수 있어. 놈의 모습, 생각, 말투 등등 모든 것을 알아내야 해."

망량이 한숨을 쉬었다.

"천계와 창힐의 관계를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군요. 만일 창힐이 천계의 적이라는 게 확실하다면 억지로라도 천계에 상신해서 미후왕을 움직여 볼텐데..."

"창힐이 천계의 고위층에 은신해있을 가능성도 높지. 그렇게 되면 천계도 우리 적이 되는 거다."

어쨌든 간에 결론이 하나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진소청이 말했다.

"갑시다. 기왕 해치울 거라면 최선을 다합시다."

그 말이 맞다.

우리는 마왕을 쓰러뜨릴 때처럼 준비를 한 후 곧장 태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태산의 천제단으로 곧장 향하는 게 아니라 태산의 초입에서 어떤 결계가 있는지를 신중히 살폈다. 천우진이 말했다.

"내가 그동안 천리안으로 태산을 살폈는데 뭔가가 나온 기색은 없었다."

"놈이 어떤 함정을 쳤는지 알 수 있겠어?"

"반황주를 쓰면 가능하다. 이 곳은 가까우니까 충분히 반황주의 효과를 볼 수 있겠지."

우웅

천우진이 보패 반황주를 발동하자 반황주의 구슬에서 새하얀 빛이 안개처럼 새어나왔다. 그 빛은 이윽고 물방울처럼 덩어리지더니 수천 개로 흩어졌고, 태산 곳곳을 향해 날아갔다.

끼이이익 -

한참 후 비명같은 게 들려왔다. 그것은 마물(魔物)이 우짖는 소리같았으며 명백한 마력이 느껴졌다. 우리는 '함정'이란 게 발동했다는 걸 직감했고 천우진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지?"

"... 술수에 감지되지 않도록 마물을 은신시켰군. 숫자는 대략 수백이다."

"강한 마물들인가?"

"그런 거 같군. 지금 반황주의 술수로 공격중인데도 별로 숫자가 줄지 않아."

천우진은 그렇게 말하며 반황주를 약간 어깨 위로 들었다.

"반황주여, 그 힘을 보여라!!"

퍼버벙!

오색광선이 폭포수처럼 흩날렸다. 진언이 외쳐지자 태산 여기저기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게 보였고, 마물들의 시체조각이 허공에 튀어나가는 게 보였다. 망량은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그 광경을 보며 말했다.

"과연 봉신대전에서 활약한 상고시대 보패군. 이만한 광범위에 광탄 공격이라니..."

슈슈슈슝

이윽고 천우진의 반황주가 격렬한 빛을 뿜어내더니 사방에 흩어진 광탄을 수렴했다. 그러자 천우진은 인상을 찌푸렸다.

"누가 반황주의 술수를 무효화시키고 이쪽으로 되돌려 보냈소... 태산에 펼쳐진 마물의 포위진은 건재하오."

망량은 깜짝 놀랐다.

"사제, 그게 가능한가? 그건 상위보패란 말일세. 술법이 아니야. 보패의 공격능력을 어떻게 무효화시키는가?"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아무래도 안쪽에 있는 놈은 마왕급이 확실한 모양이군."

좌중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천우진이 선공으로 간을 봤는데 역시 안에 있는 긴나라의 힘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잠시 후 갑자기 태산을 가득 울리는 거대한 외침이 들려왔다.

[ 기다리고 있었다. 너희는 결국 자신의 힘을 과신하여 태산을 찾아왔구나.]

나는 마주 사자후로 외쳤다.

"긴나라! 뭐 그리 숨기는 게 많지? 떳떳하게 모습을 드러내라."

[ 너는 우리 계획에 방해다. 그리고 칠요를 모은다는 점이 위험하기 짝이 없구나.]

긴나라는 왠지 분노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 오라! 너희에게 팔부중의 힘을 보여주마.]

"못 갈 줄 알고?"

우리는 준비한 채 태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천제단 앞까지 갈 수도 있지만 당연히 함정이 쳐져있을 게 뻔한지라 바깥에서부터 함정을 제거하며 천천히 가기로 한 것이다. 산을 오르던 중 망량이 멈칫했다.

"... 큰일났군. 사문(死門)에 들어와 버렸소."

"응?"

"후우, 이런 말도 안 되는..."

망량은 암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이건... 팔진도(八陣圖)요."

"......!!"

"백웅. 권능으로 탈출합시다. 이건 안에서 해제할 수 없소."

"알았소."

파앗!

나는 곧장 동료들과 함께 태산 바깥으로 도망쳤다. 검마가 이해가 안된다는 듯 말했다.

"왜 도망치지? 힘으로 깨면 안되는가?"

"안 됩니다."

"주작의 진법 정도는 천우진 혼자서도 길을 터놓거나 파괴할 수 있었어. 지금의 아군 전력은 그 때의 전력보다 몇 배나 강한데 저건 그게 안 된다는 말인가."

망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술자는 반신(半神)이나 다름없는 존재일 겁니다. 그런 존재가 완벽한 팔진도를 펼쳤다면 그 위력은 수십 배... 방금 전 백웅의 권능이 없었다면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전멸했을 겁니다."

제갈사의 표정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 그리고 완벽한 팔진도라는 점이 문제지. 빌어먹을... 이 세상에 완벽한 팔진도를 펼칠 수 있는 건 오직 한 명 뿐이다."

"제갈유룡!"

"뭐가 어떻게 된 거냐? 그 놈이 설마 창힐의 화신인 팔부중 긴나라였단 건가?"

제갈사조차도 혼란스러워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제갈유룡은 미후왕에게 당해서 모든 세력과 거점을 잃고 어딘가에서 요양중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 제갈유룡이 난데없이 긴나라가 있는 태산에 출몰해서 긴나라임을 자처한다는 건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일인 것이다. 애초에 제갈유룡이 긴나라였고 반신급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면 미후왕에게 그렇게까지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리가 없다.

쿠오오오!

그 때 진 내부에서 마물 몇 마리가 달려나와서 우리를 공격했다. 진소청과 검마가 그 마물들을 가볍게 썰어버렸지만 이 곳도 안전한 장소가 아닌 듯 했다. 제갈사는 망량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현아. 네가 볼 땐 어떠냐? 천제단으로 바로 이동해서 생문을 찾을 수 있겠나?"

"... 불가능, 합니다. 들어가서야 팔진도인걸 알 수 있을 정도로 교묘한데다 진법의 흐름이 쉴새없이 바뀝니다. 저건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진법이 아닙니다."

"네가 진법을 해제할 수 없으면 나도 못 한다. 네가 못하면 대륙의 그 어떤 진법대가도 할 수 없을 거다. 천우진 너는 보패 반황주의 힘으로 어떻게 안되겠냐?"

천우진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환신이라고 하면 뭐든 할 수 있는 줄 아나? 나도 진법조예는 사형만 못하다. 그리고 힘으로 깰 수 있는 거라면 아까 했을 거다."

"빌어먹을."

짜증을 내던 제갈사가 내게 말했다.

"백웅! 화룡진인의 화력을 빌리자. 그 수밖에 없다."

"팔진도를 깬다고 힘을 다 쓰면 창힐과 싸울 힘이 부족할텐데."

"그건 우리가 어떻게든 해 보마."

"알았어."

우웅

화룡진인과 장삼봉이 내 몸에 강림했다. 그리고 화요의 힘인 화요천염을 극대로 끌어내어서 태산을 향해 발사했다.

콰과광

거대한 화염이 용처럼 또아리틀며 태산 전체를 불태우는 듯 했다. 하지만 그것은 겉모습일 뿐,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결계가 쳐져 있는 것처럼 화요천염의 형상은 산 주변을 맴돌 뿐 쉽사리 뚫지 못했다. 나는 초조해져서 화룡진인에게 말했다.

[ 못 뚫는 겁니까?]

[ 그렇지 않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뚫을 거다. 아무리 강한 진법이라지만 화요천염을 감당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화룡진인은 결계 내부를 노려보았다.

[ 저 안에 있는 놈, 강하구나. 적어도 마왕급이다. 그리고 왠지 어디선가 마주친 거 같은 기운이...]

[ 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 착각일 것 같구나. 응룡이면 몰라도 화신인 내가 팔부중을 만난 적이 있을 리 없지.]

쿠구구구...

화룡진인의 말대로 화요천염은 약간 느리지만 착실하게 팔진도를 바깥에서부터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무형의 결계가 무너지면서 곳곳에서 마물들이 불타죽기 시작했고, 마가 녹아서 흥건해진 흑수(黑水)가 대지를 저주로 물들였다. 그리고 화요천염이 완전히 결계의 일각을 뚫는 순간이었다.

꽈앙!

하나의 인형(人形)이 나타나서 화요천염의 용머리를 때렸다. 그 공격에 엄청난 힘을 담은 듯 용머리가 비틀거리는 기색이었다.

[ 저 놈이다. 가자!]

그러자 화룡진인은 화요천염의 힘을 수습하며 바로 천제단 근처로 이동했다. 나는 화룡진인을 도와서 동료들을 함께 권능으로 이동시켰다.

[ 왔구나, 사도와 끄나풀들이여...]

천제단의 앞에는 긴나라로 보이는 인물이 서 있었다. 그는 내가 예전에 마주친 적이 있었던 주작 제갈유룡의 모습과 동일했다. 하지만 변신술일 가능성도 있었기에 우리 모두는 긴장해서 그 자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제갈유룡의 모습을 하고 있는 긴나라가 영언으로 말했다.

[ 자신의 힘을 과신한 자들이여. 이 곳이 너희의 무덤이다.]

나는 긴나라에게 외쳤다.

"넌 주작 제갈유룡이냐?"

[ 아, 이 몸의 주인을 말하는 건가...]

긴나라는 히쭉 웃더니 말했다.

[ 그래. 내게는 행운이었지. 이 자의 팔괘술과 내 힘은 아주 궁합이 좋으니까... 지금부터 그 위력을 보여주마.]

우웅

긴나라의 말이 끝나는 순간 다시 주변에 팔진도가 펼쳐지며 아군이 전원 분리되어 버렸다. 내게 강림한 화룡진인은 긴나라를 공격해 들어갔다.

화악

화룡진인이 뻗어낸 화요가 자비없이 긴나라의 목을 베었지만 환영이었는지 가볍게 흩어져 버렸다. 화룡진인이 재차 적의 기색을 찾자 장삼봉이 말했다.

[ 뭔가 낌새가 이상하군...]

잠시 후 자욱한 안개가 끼더니 광소가 들려왔다.

[ 흐하하. 오늘에서야 내가 동료의 복수를 하게 되었구나 화룡진인!]

화룡진인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 너는 나를 아느냐? 나는 너를 모르는데.]

[ 잘 알지... 네 제자를...]

안개와 어둠이 갈수록 격렬하게 변해갔다. 화룡진인은 화요천염을 발해서 안개를 물리쳤으나, 어느 새 안개는 걷잡을 수 없이 강해졌다.

[ 하압!]

화요천염이 재차 크게 솟아올라서 안개와 정면으로 대치했다. 안개의 맞은편에는 긴나라가 서 있었는데, 그는 팔짱을 끼며 유들유들하게 말했다.

[ 후후... 역시 대라신선이 칠요를 들고 있으니 귀찮군.]

[ 네놈, 각오해라.]

[ 동료들도 그대처럼 강하면 좋았을 텐데.]

설마?!

하지만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 자. 가져가라.]

동료들의 시체가 하나 둘씩 내 쪽으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미호를 제외한 모두가 죽은 듯 했다.

또한 하나같이 창백한 얼굴로 잠들듯이 죽어 있었다.

"으... 아아아아!!"

나는 머릿속이 마구 헝클어지는 걸 느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가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화룡진인과 장삼봉이 당황하며 말했다.

[ 연자여!]

[ 진정하게! 이건 환상일세.]

환상?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시체는 온데간데 없고 한줄기 수도가 섬광처럼 날아오고 있었다.

푸콱

"으아악..."

긴나라의 수도(手刀)가 내 명치를 뚫은 후였다. 내 정신이 흐트러지며 대라신선과의 연계가 풀린건 아주 잠깐이었지만, 긴나라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어 내게 치명상을 준 것이다.

[ 이 놈!]

화룡진인이 화요의 기운을 불러내서 긴나라를 공격했지만 긴나라는 안개처럼 변해서 삼 장 밖에서 나타났다. 그는 자신의 손에 묻은 내 피를 할짝이며 말했다.

[ 하하. 다음은 뭘 보고 싶나? 부모시체?]

"으윽..."

나는 어마어마한 고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 정도면 즉사급 상처였기에 나는 숨을 한 번 쉴때마다 전신의 땀구멍이 폭발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애써 정신을 차리며 권능으로 몸을 회복했다.

하지만 내가 몸을 회복했는데도 긴나라는 전혀 긴장하는 기색이 없었다. 도리어 여유롭게 말하는 것이었다.

[ 아주 좋아. 사도끼리의 전투가 뭔지 내가 한 수 가르쳐 주마.]

나는 열받아서 외쳤다.

"개소리 마!!"

[ 응?]

"네놈은 절대 가만 두지 않는다."

감히 나한테 동료 시체를 보여줘?

쉬익!

내가 천제단 위에 나타나자 긴나라는 멀뚱히 나를 쳐다보다가, 이내 화요를 들어서 천제단을 겨누자 뭘 하려는지 깨달은 듯 경악했다.

[ 미, 미친 놈! 제정신이냐!]

"다 죽자!!"

어차피 이대로는 진다.

그렇다면 무리수를 둬서라도 저 놈에게 엿을 먹인다!

내 검이 천제단을 부수려 하는 순간이었다.

덜컹!

[ 오오오오오.]

[ 설마 당신이...]

내 몸이 멈춰섰다.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대라신선들이 깜짝 놀라서 내 몸을 억제했기 때문이었으며, 나는 그 방해가 거슬려서 절연의 언령을 써서 쫓아보내려 했다. 하지만 그 언령조차 막혀버리고 내 몸에 거대한 무언가가 깃들기 시작했다.

거대한 존재는 나직이 말했다.

[ 장삼봉. 화룡진인. 너희는 천계로 돌아가라.]

스으으

그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장삼봉과 화룡진인의 영이 내게서 떠나가는 게 느껴졌다. 나는 두 존재를 명령 하나로 움직일 수 있는 게 누구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본의와 상관없이 말에 깃들어있는 엄청난 힘이 대라신선을 퇴치해버린 셈이다.

거대한 존재가 말했다.

[ 백웅 너는 애물단지구나. 원하는대로 움직여주긴 하지만 결국 본좌를 움직이게 하는가.]

"......"

나는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내 몸에 강림한 거대한 힘에 찌부라지는 듯 했다.

그리고 내 앞에 서 있던 긴나라는 당혹해했다.

[ 비, 빌어먹을... 말도 안 돼. 어째서 네놈이... 인과율이 허용할 리 없을 터...]

[ 왜 안 되지? 이 자는 바로 나의 사도.]

[ 종언! 종언이다. 너희가 계시가 이루어지기 전에 현세에 강림하려 할 리 없다! 이런, 이런 걸 지배자들의 계약에서 허용할 수는...]

긴나라가 당혹하는 모습을 즐기듯, 거대한 존재는 그를 응시했다.

그리고 냉막하게 말했다.

[ 건방진 놈. 벌레 주제에 지배자의 뜻을 논하지 말라.]

손을 뻗는다.

후우우웅

동시에 한도 끝도 없는 원야(元夜)의 어둠이 긴나라가 펼쳐낸 팔괘진과 안개를 한꺼번에 휩쓸었다. 긴나라는 발악하듯이 안개를 펼쳐내서 자신을 보호하는 막을 만들어냈지만, 거대한 존재는 비웃음을 짓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기다란 암창(暗槍)이 소환되었다. 그 암창은 부드럽게 허공을 날아서 긴나라의 목을 일직선으로 꿰뚫었다.

콰직

이상한 일이다. 그 암창이 발사되는 건 보였지만 꽂히는 순간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시간 자체가 삭제된 듯 했다.

[ 흐아아악.]

긴나라의 비명이 울려퍼졌다. 목이 꿰뚫린 채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긴나라는 척 보기에도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는 듯 했다. 어찌된 일인지 긴나라는 암창에 꽂힌 순간 안개화를 전혀 할 수 없었다.

거대한 존재는 그 모습을 잠시 감상하는 듯 하다가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푸콱!

[ 으거어어...]

끔찍하게도 긴나라의 아래쪽에서부터 정수리까지 꿰뚫린 형상이 되며 꼬치를 연상하게끔 했다. 더 무서운 점은 이미 죽었어야 할 긴나라지만 '거대한 존재'가 즐기듯 말했다.

[ 창힐의 화신. 넌 저승에 갈 수 없다. 네 죽음을 금지하노라.]

두 줄기의 암창만으로 긴나라를 제압해버린 '거대한 존재'는 즐거운 표정으로 긴나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 자아... 어서 창힐을 불러라. 더 이상 지옥의 고통을 겪고싶지 않다면.]

[ 크으아아아...!! 삼황오제...!!]

[ 편하게 보내주겠다.]

긴나라의 절규가 태산에 울려퍼지는 가운데 '거대한 존재'가 조용히 선언했다.

[ 나, 전욱이 약속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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