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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521화 (520/1,615)

00521  암천향(暗天鄕)  =========================================================================

연속해서 진소청과 검마와 대련을 하자 확실히 칠대절학과 팔선신공의 응용력이 한층 높아지는게 느껴졌다.

' 혼자서 수련하면 쌓을 수 없는 경험치야.'

나 혼자 수련한다면 하나하나의 절학의 숙련도는 깊어질지 몰라도 절학의 연계를 성취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진소청과 검마는 나와 같이 절학을 익힌 자들이었기에 그들과의 대련경험 자체가 큰 기연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칠 주야 내내 훈련을 반복하자 어느 순간 내 움직임이 크게 좋아짐을 느꼈다. 그 사실을 진소청도 알았는지 잠시 창을 거두며 말했다.

"백웅. 지금의 우리 셋이 힘을 합치면 백련교주를 상대로 버티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 거요. 당신은 그 정도로 뛰어난 무공을 성취했소."

"백련교주를?"

"그가 심천무량을 꺼내기 전이라면 말이지..."

약간 말꼬리를 흐리던 진소청이 말했다.

"백웅. 무술훈련은 여기까지요. 슬슬 선택할 때가 되지 않았소? 반전의 권능을 쓸지 말지를."

"......"

"내 생각도 같다."

저만치에서 훈련을 지켜보고 있던 제갈사가 그렇게 말하며 장내로 걸어왔다. 제갈사는 나를 날카로운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남은 강적들은 죄다 신급이야. 그래서 반전의 권능으로 없앨 수는 없다! 그러면 누군가를 살리는 식으로 응용할 수밖에."

"음..."

"지금까지는 큰 변동사항이 없어서 그냥 놔두었지만, 이제 아군을 부활시킬 차례다."

제갈사의 말대로다. 누군가를 살려서 이득을 봐야만 하는 시점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천제까지 고작해야 보름 남짓 남았기 때문에, 더 이상 시간을 지체했다가는 아무것도 못할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그의 말에 대꾸했다.

"제천대성을 반전의 권능으로 없앨수도 있지 않을까?"

"아마 가능하겠지. 그런데 제천대성을 반전의 권능으로 죽인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아냐? [옛 지배자]가 천계와 삼황오제에게 선전포고한다는 뜻이다. 제천대성같은 강력한 전력을 잃고도 천계가 가만 있을 리 없어. 그 때가 되면 모든 계책이 무의미한 혼돈이 펼쳐질 것이다."

"......"

"넌 정말로 이번 생의 최종 적수가 그 원숭이가 될거라 생각하냐?"

"무슨 뜻이야?"

"이미 상황이 그런 수위를 넘었어. 이 생의 마지막에 제천대성조차 감당할 수 없는 '뭔가'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거다."

"으음. 하지만..."

"몇 가지 계책이 있다. 일단 네 생각을 듣고 싶군."

어느 새 제갈사 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들이 다 지근거리까지 와 있었다. 나는 한참동안 생각하다가 말했다.

"아냐... 살리지 않겠어!"

"뭐?"

"왠지 그런 느낌이 들어. 뭔가... 지금 동료를 늘리는 게 패착인 것 같은..."

"또 그놈의 직감인가."

제갈사는 약간 투덜거리다가 말했다.

"알았다. 그러면 조용히 이대로 천제가 내려오는 날을 기다린다. 이걸로 됐냐?"

"그래. 그놈의 천제가 뭔지 한번 보고 싶다고."

여태껏 천제의 위협은 많이 겪었지만 실제로 어떤 건지 느껴보지는 못했다. 그래서 기왕 일이 이렇게 된 김에 한 번 그게 뭔지 알아볼 생각이었다. 제갈사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따라와라. 그렇게 의견을 정했다면 네게 보여줄 게 있으니까."

나는 제갈사를 따라갔다. 그리고 제갈사의 연구시설의 내밀한 안쪽에서 시꺼멓게 일렁이고 있는 뭔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수정석비."

"가동중이야. 저걸로 많은 걸 연구했지."

그렇게 중얼거린 제갈사가 수정석비 앞으로 가더니 안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주문을 외웠다.

우우웅

수정석비에서 갑자기 일렁이는 액체가 튀어나오더니 허공에서 꿈틀거렸고, 그건 이내 은은하게 빛나는 금으로 변했다. 나는 그 모습에 깜짝 놀라서 외쳤다.

"뭐야? 진짜 금이야?"

"그래. 이게 바로 연금술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진정한 사용법이지. 수정석비는 금을 만들어낼 수 있어. 그것도 등가교환조차 적용되지 않는 편리한 성능이다. 수정석비에 잠든 트리스메기스토스의 연금술식은 인간세상의 물리(物理)를 뛰어넘지. 한 줌의 물으로 수백 관의 금괴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

"물론 마도의 세계에서 금 따위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야. 연금술사들은 인간세계의 부귀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게 있으니, 바로 신위(神位)에 도달하는 것. 수정석비와 연금술을 연구해서 뛰어난 매질을 만들어내어서 더 좋은 제물을 양산하는 게 목표다. 그 제물을 [옛 지배자]에게 바치면 더 강력한 마법의 힘을 하사할 테니까."

"그렇군..."

나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지금껏 나도 천계나 선지자, 삼황오제에게 좋은 공물을 바칠수록 좋은 가호나 보물을 얻지 않았는가? 마도사들에게 있어서는 그 상대가 [옛 지배자]일 뿐이었다. 나는 제갈사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여긴 왜 데려온 거야."

"......"

제갈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백웅. 여기서 생산한 초상기인을 제물로 바쳐서 [옛 지배자]와 거래하자."

"뭐?!"

"신과의 거래로 얻어내는 건 바로 창힐의 화신이 있는 위치. 그 위치를 전욱에게 보고하게 되면 전욱이 그 공적을 인정해서 천제를 멈춰줄지도 모른다. 현 시점에서는 이게 최선의 계책이라 생각한다."

"하필 왜 [옛 지배자]야? 선지자한테 부탁해도..."

제갈사는 짜증을 내었다.

"넌 그렇게 호구잡히고도 그놈한테 물어볼 생각이 나냐? 그 놈은 우리가 가진 걸 다 털어먹으려 할거다. [옛 지배자]가 차라리 가능성 있지."

나는 망설였다.

"하지만 나는 지금 전욱의 사도야. [옛 지배자]와 거래하는 걸 전욱이 좋게 보지 않을 게 뻔한데."

"당연히 좋게 보지 않겠지. 하지만, 어쨌든 수단이 안좋을지라도 네가 임무를 달성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기로 전욱은 명분보다는 실리를 더욱 중요시하는 군주같은데."

"......"

"망량이 있는 앞에서 이 얘기를 꺼내면 극렬반대할 게 뻔하니 여기로 데려온 거다. 네 생각은 어떠냐?"

나는 과거 마주쳤던 전욱의 모습을 생각해냈다.

[ 내가 사도인 네게 명한 것은 십 년 내로 창힐을 내게 데려오라는 거였다. 장소를 말해줬으니 본좌에게 직접 놈들을 때려잡으러 가라는 것이냐?]

[ 그래서 어쩌라고?]

[ 내 자손의 일에 일일이 관여할 생각은 없다. 하물며 서방의 일이 되었다면 더 관여하기 싫다. 다만 임무에 방해된다면 네가 팽조를 베어버려도 좋다.]

[ 좀 더 유능한 모습을 보이도록 해라.]

나는 창힐이 암천향의 달에 있다는 정보를 고했다가 잔뜩 핀잔만 먹고 물러난 일이 있었다. 그 때는 그저 얼굴이 붉어졌을 뿐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군주로서 전욱의 성향을 보여주는 말이었다. 확실히 제갈사의 말대로 전욱은 부하가 시킨 일에서 제대로 결과를 가져오기를 원하는 군주였고, 그걸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은 상관하지 않는 듯 했다. 팽조를 베어버려도 된다고 언급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 일리 있어.'

효율적인 계책이다. 하지만 나는 한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 그 놈이 아무것도 모르면 어떻게 하지? 제물만 먹고 가 버리면."

"뭐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손놓고 천제까지 무술수련이나 하는것보다는 낫잖아? 이대로 진행되다가 급사하면, 너는 창힐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다시 조사해야 돼."

"윽..."

"어쩔 거냐?"

나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하겠어."

"좋아. 지금 부를 존재는 [옛 대륙]을 물의 권능으로 멸망시켰다는 존재다. 겉보기와 달리 강력한 [옛 지배자]니까 조심해."

"윽... 왜 그렇게 위험한 놈을..."

"위험한 만큼 강력하니까! 우리가 원하는 정보를 줄 가능성이 높다."

"... 알았어."

우우우웅

이윽고 나는 초상기인과 제물을 제단에 놓고, 제갈사가 마법을 써서 [옛 지배자]에게 인신공양의 의식을 진행하는 걸 뒤에서 지켜보았다. 제갈사는 이윽고 거대한 어둠의 언어를 토해내었다.

쩌엉

갑자기 허공에 불길한 어둠이 일렁이는 게 느껴졌다. 불길한 어둠 너머에서 거대한 물도마뱀의 형상이 나타나는 듯 했다. 제갈사는 마도사의 언어로 무어라고 중얼거리며 무릎을 꿇었는데, 허공에서 물도마뱀은 나를 힐끗 주시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물도마뱀의 입이 열렸다.

[ 이리로 오라.]

시간이 멈춘다.

나는 찰랑거리는 호수가 지평선까지 펼쳐진, 새하얀 대지에 서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내 맞은 편에는 물도마뱀이 가만히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 공간은 심적권청이 아니라 신의 권능으로 시공간을 멈추어서 만들어낸 또다른 이계(異界)로 보였다.

물도마뱀의 근처에는 한때 내가 본 적이 있었던 뱀인간들이 수백 마리나 도열해 있었다. 마치 주군을 모시는 듯한 형상이었다.

그 존재가 서서히 말했다.

[ 이 세상의 파멸이 다가오고 있다. 예상된 것보다 더욱 빨리. 너는 그 파멸의 종자이니, 나 또한 다른 자들과 마찬가지로 너를 흥미롭게 생각한다.]

"무슨 말입니까? 다른 자들이라니?"

[ 내 본체를 눈앞에 두고도 정신을 유지하다니... 삼황오제의 사도라는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군, 큭큭.]

물도마뱀은 흥미로운 듯 웃었다. 역시 상대는 내가 사도라는 걸 알고 있는 듯 했다.

그 존재가 말했다.

[ 마도사 따위가 내게 제시한 공물은 별로 흥미롭지 않다. 그래서 죽여버릴까 하다가 네가 있길래 생각이 바뀌었다. 네가 나와 거래를 한다면 원하는 걸 줄 수 있다.]

"거래라고요?"

물도마뱀이 혀를 잠시 낼름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 칠요를 내게 바쳐라.]

"......!!"

[ 그러면 네게 내 사도의 권능을 줌과 동시에 창힐의 화신이 있는 곳을 다 가르쳐주겠다. 그리고 너는 사인(蛇人)의 왕이 되리라.]

역시 이 놈도 칠요를 노리고 있다!

이미 의식을 시작하기 전에 제갈사가 경고했던 바이기에, 나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나는 삼황오제의 사도로서 칠요를 지키겠습니다."

어쩔 수 없다.

이 자리에서 [옛 지배자]에게 죽고 재시작하는 한이 있어도 거절해야 한다.

이 놈에게 칠요가 넘어가면 그 즉시 삼황오제와 천계 전체가 내 적이 되어버리고 만다. 만일 내가 전생한 후에도 세계가 지속되는 거라면, 내 동료들은 모두 천계에서 영겁의 고문을 당하게 될 게 뻔했다.

나는 놈이 나를 즉시 죽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은근한 목소리로 계속 꾀었다.

[ 욕심많은 놈이군... 그러면 이건 어떠냐? 위의 조건에 불로불사(不老不死)와 천상의 미모, 영을 흡수하는 능력, 물을 조종하는 능력을 주마.]

솔깃했다. 방금 저 물도마뱀이 제안한 조건을 다 받아들일 경우 나는 말 그대로 이 세상의 황제를 넘어선 존재가 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그건 그만큼 칠요가 귀중한 물건이라는 뜻이었기에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냥 죽이십쇼. 절대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 최강의 정력을 주마.]

"...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물도마뱀이 약간 노한 듯 말했다.

[ 감히... 가면을 쓴 자의 권속 따위가 내 제안을 거부한다고!]

가면을 쓴 자?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침착하게 대꾸했다.

"백련교에 출현한 [영겁의 태아]도 칠요를 원했지요."

[ ......]

"당신들에게 칠요가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리죽으나 저리죽으나 죽는게 확정이라면 나는 내 의지를 지키다 죽겠습니다."

[ 흐음...]

물도마뱀은 뜻밖에 냉정해져서 뭔가 생각하는 기색이었다. 그는 한참 후 말했다.

[ 재밌는 놈이군. 정말 죽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내게 거슬렀다라... 인간 따위가 그런 정신적 역량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그리고 마음도 읽을 수 없다니...]

그러더니 자신의 꼬리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 전욱의 명성을 등에 업고 나를 희롱한 게 아니니 봐 주겠다. 하지만 너는 결코 원하는 정보를 손에 넣지 못할 것이다.]

"저주를 내리는 겁니까? 죽일 거면 빨리 죽이십시오."

[ 사실이다. 왜냐하면 창힐은...]

뭔가 말하려던 [옛 지배자]는 시뻘건 안광을 빛냈다.

[ 우선 원하는대로 공물을 받아 공물만큼의 대가를 주겠노라.]

"고맙습니다."

[ 사도여. 잘 알아두어라.]

음산한 언령이 [옛 지배자]의 무시무시한 마력과 함께 퍼져나오는 게 느껴졌다. 세계 전체가 물에 뒤덮이는 듯 했다.

[ 네 주인은 우리에 필적하는 강대한 권능을 지니고 있으나 결코 계시의 주역이 될 수 없는 존재들. 그 분의 계시가 이뤄진 후에는 결코 네 주군이 너를 보호해줄 수 없음이다. 종언(終焉) 이후, 너는 오늘 내 제안을 거부한 걸 후회하게 되리라.]

파앗!

나는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왔다. 그리고 꿇어앉아있던 제갈사가 기쁜 듯 말하는 게 들렸다.

"창힐의 화신 중 한 놈의 정보를 알아냈다!"

"응?"

"초상기인을 다 먹어치우긴 했지만."

나는 힐끔 제단 위를 바라보았다. 그 말대로 초상기인은 핏조각으로 변해서 참혹하게 잡아먹혀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오래 쳐다보기 부담스러워서 고개를 돌렸다.

"어떤 놈들이지?"

"긴나라(緊那羅). 놈은 태산에 있다."

"정말이냐?! 그럼..."

제갈사가 천정을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이 명확해졌단 뜻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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