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17 암천향(暗天鄕) =========================================================================
태산에 뜻밖의 적이 숨어있다는 정보!
나는 그 이야기를 듣자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했다.
' 음... 치러 나가기도 그렇고, 가만 놔두기도 껄끄럽군...'
천제단 중 나머지 4곳이 멀쩡하다고 하더라도 한 곳이라도 점거당하면 골치아프다. 천제단은 실질적으로 하늘과 땅의 연결통로라고 할 수 있었고 술수를 잘 부리면 천계의 정보를 염탐할 수도 있는 중요한 장소였다. 천제단을 점거한 괴인이 천제강림이 일어날 때 어떤 변수가 되어서 우리에게 해를 입힐지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환신 천우진의 천리안으로도 간파할 수 없는 강력한 함정을 팔 수 있는 강대한 술법사가 분명했다. 그런 상대가 펼쳐놓은 함정으로 제발로 기어들어가서 싸울 수는 없다. 자칫하다가는 이쪽의 전력이 많든 적든간에 전멸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기관진식이나 함정으로 자기자신의 진지를 구축한 술법사는 굉장한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멀리서 천제단을 통째로 날리는 것도 불가하다. 천제단이 부숴지면 전욱이 만든 경계가 부숴져서 즉시 천계가 강림하기 때문이다. 그 자체가 재앙을 초래한다.
내 생각을 읽었다는 듯 망량이 말했다.
"지금 최선의 상황은 미후왕이 태산을 다시 쳐 주는 것이오."
"그게 맘대로 되겠소?"
"천제단을 괴인이 점거하고 있다고, 천계에 상소를 올리면 어떻게든 될지도 모르겠지만..."
망량이 말꼬리를 흐리자 천우진이 말했다.
"그건 안 되오, 사형. 왜인지는 알고 있잖소."
"답답하군..."
"천계는 우리를 이미 삼황오제의 사도 편에 섰다고 인식하고 있소. 지금까지와는 달리 우리 얘기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으려 할 것이오."
천우진의 말이 맞았다. 지금까지 망량과 천우진이 망량선사의 제자라는 특수성 때문에 천계에서 쉽게 의견을 받아들여줬지만, 천계는 삼황오제를 잠재적인 경계대상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망량과 천우진 모두가 내 편에 서기로 한 이상 천계는 우리 말을 순순히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제갈사가 말했다.
"현 시점에서 이이제이가 통할 정도로 무른 적수는 없다고 봐도 좋다. 하나같이 강적이다. 최선책은 그냥 위험을 인지하고 가만히 힘을 비축하는 것 뿐이야. 태산에 있는 놈은 일단 정기적으로 천우진이 천리안을 이용해서 출입을 감시하는 걸로 하지."
"역시 그런가."
"이번에는 백련교의 동정을 살피고 싶으니 남은 초상기인을 사용하자."
파앗
제갈사는 남은 3체의 초상기인을 한개의 조로 만들어서 신강 일대로 보냈다. 물론 위험하기 때문에 백련교 근처에 바로 보내지 않고 외곽에서부터 정보를 수집하게끔 만들었다. 초상기인들에게 정보수집에 필요한 요령을 가르쳤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결과, 뜻밖의 정보가 우리에게 도착했다.
[ 신강무림에 떠도는 소문을 종합해본 결과, 새로운 백련교주가 취임했으며 교(敎)의 명칭을 바꾼다고 합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순어구로 반문했다.
[ 정말인가? 백련교가 멸망하지 않았고?]
[ 네. 백련교와 교역하는 마을들도 멀쩡하고 신강성주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습니다. 신강 사람들은 다들 백련교에 무슨 사건이 생겼다고 생각하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 ... 백련교주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아봤나?]
[ 그건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대교주와 달리 가면을 쓰지 않았으며 젊은 청년모습이라고 합니다.]
젊은 청년모습.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소교주가 떠올랐다.
' 소교주 독고설의 모습으로 화(化)한 모양이군.'
그때 봤던 쭈글쭈글하고 끔찍한 모습 대신에 인간의 형태로 변신한 게 틀림없었다. 나는 복잡한 심경을 억누르며 계속 질문했다.
[ 교의 명칭을 바꾼다고 했나? 어떤 이름으로 바꾼다는 거지?]
이어진 대답에 나는 경악했다.
[ 나인교(螺湮敎)라고 합니다.]
[ ......!!]
이게 무슨 소리인가?
여기서 나인교가 왜 튀어나오는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였지만 초상기인은 그저 명령에 복종하는 인형이므로 사심을 갖고 내게 정보를 왜곡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머리를 흔들며 순어구로 명령을 보냈다.
[ ... 알았어. 일단 더 탐색해.]
[ 알겠습니다.]
나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동료들에게 방금 초상기인에게서 얻은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러자 제갈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나인교라... 악취미군."
"제갈사. 어떻게 된 일이야?"
"어떻게 된 일이고 자시고 [옛 지배자]의 화신이 백련교주가 아니라 나인교주가 되기를 원하는 모양이군."
"그러니까 왜 하필 나인교일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째서 흉신의 사도가 후일 세우게 될 사신교단의 이름이 벌써부터 언급되는 걸까? 그것도 [옛 지배자]가 의도해서 지은 이름이므로 굉장한 의미가 존재하는게 틀림없었다. 좌중이 침묵으로 물든 사이에 옆에 있던 진소청이 천천히 말을 꺼냈다.
"우리는 뭔가 [옛 지배자]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소."
좌중의 이목이 진소청에게 쏠렸다. 진소청은 여태껏 회의에 참가해도 거의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잠자코 듣기만 했으며, 회의가 끝나면 열심히 무공만 수련하곤 했기에 존재감이 적었다. 그런 진소청이 먼저 의견을 내놓는 건 특이한 일이었다.
나는 진소청에게 반문했다.
"오해라니 무슨 뜻이오?"
"일전에 백련교에 강림한 소교주의 화신이 흉신(凶神)을 경쟁자로 여기는 듯한 언급을 했소. 그래서 우리는 그들 사이에 큰 대립관계가 있다고 여기고 있지 않았소?"
"그렇소. 그 존재는 흉신을 적수로 여기는 게 명확히 여겨졌소. 그래서 지금 그 자가 흉신의 교단인 나인교로 이름을 바꾸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고."
진소청은 팔짱을 꼈다.
"하지만... 그게 선의의 경쟁이라면."
"......"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전까지는 서로 협력하는 관계라면? 그래서 백련교 전체를 흉신의 진출을 위한 발판으로 줄 생각으로 나인교라고 이름을 바꾼 걸수도 있소."
나는 진소청의 발상에 당황했다.
"마, 말이 되오? 그 괴물들끼리 협력이라니... 왜 그렇게 생각하시오?"
"딱히 논리는 없고, 그냥 내 감이오. 예전에 백우선으로 가상미래를 봤을 때 느꼈던 감으로 추정해봤소."
대화를 듣고 있던 환신 천우진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옛 지배자]와 선의의 경쟁이라... 세상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군."
나는 천우진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지금의 말만큼은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의 모든 극악(極惡)을 뭉쳐놓은듯한 [옛 지배자]끼리 무려 '선의의 경쟁'을 한다니! [옛 지배자] 하나하나가 세상에 당해낼 자 없는 절대적 초월자인데 뭣하러 그렇게 보기좋은 짓을 한단 말인가?
하지만 뜻밖에도 이 중에서 마도에 가장 정통한 제갈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제갈사는 턱을 괴고 한참동안 뭔가를 생각하다가 힘겹게 말했다.
"... 그럴지도."
"제갈사."
"지금은 정보를 더 모으자."
우리는 그로부터 5일간 초상기인을 통해 계속해서 정보를 수집했다. 그리고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게 되었다.
풍신류의 고수들이 가장 바깥으로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수신류는 아예 보이지 않는다.
현재 미친듯이 전 대륙의 서책을 긁어모으는 중이다.
총 세 가지 정보였다.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아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련교의 재산인 금은(金銀)과 병기를 팔면서까지 서책을 사들이고 있어서 서안의 장사꾼들이 신강까지 가고 있는 중이라... 이건 무슨 짓이지?"
"......"
곰곰히 생각하던 제갈사가 말했다.
"놈은 마도서(魔道書)를 찾고 있는게 아닐까 싶군."
"마도서를?"
"서책을 사서 모은다면 그것밖에 생각할 수 없다. 마도서 중에는 종종 아무렇지도 않게 일반 서적중에 섞여있는 경우가 있으니까."
"그놈은 신적 존재인데 마도서가 왜 필요하지?"
"그걸 알 수 없다. 그정도 되는 [옛 지배자]라면 마도서를 필요로 하는게 아니라 본인이 심심풀이로 마도서를 써내는 수준이야. 신이란 마법의 종주(宗主)이므로 그런 놈들에게는 장난감에 불과하거늘..."
망량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숙부. 놈이 찾는 마도서가 종언(終焉)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럴 리가."
제갈사는 단칼에 부정하며 말을 이었다.
"종언이란 성좌가 제자리를 찾는 오백여년 후의 파멸을 일컫는건데, 내가 가진 무명제사서에도 종언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종언이 찾아오기 전에 생기는 현상은 경고하고 있어도 그 과정이나 결과는 없어. 왜냐하면 그건 말 그대로 신만이 아는 비밀이니까 마도서에 적을 리가 없지."
"무명제사서에도 없으니 일반 하급 마도서에는 있을 리가 없다는 겁니까?"
"그래. 또한 무명제사서보다 뛰어난 상급 마도서가 있다 한들, 중원의 일개서적 틈바구니에 있을 리가 없다. 그런 마도서들은 무시무시한 마력을 품고 있기에 이미 주인된 자가 거대한 재액(災厄)으로 변모했을 게 뻔하니까."
검마가 듣고 있던 중 말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백련교 측에서 서적을 대량구매하는 게 좋지 않다는 거군. 그 괴물이 필요한 걸 찾게 되면 세상의 파멸이 좀 더 일찍 찾아오게 된다는 말 아닌가?"
"그렇겠지."
"그럼 내가 무림세력을 움직여서 책이 흘러들어가는 걸 늦춰 보겠다. 적어도 천제가 내려올 때까지는."
시선이 검마에게 쏠렸다. 검마는 자신있게 말했다.
"마도팔문은 중원 각지의 상권과 크게 연결되어 있지. 또한 혈영곡이 발호했을 때도 그들 모두가 도망치거나 숨기만 했기 때문에 정천맹과 달리 크게 피해입지도 않았어. 내가 마도팔문의 맹주로서 상권을 틀어막으면 신강에 장사꾼이 가는 걸 차단할 수 있다."
즉 뒷세계 사파의 힘을 이용해서 상인들을 억제하겠다는 말이었다. 확실히 효율적인 방안이겠지만 나는 걱정스러웠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위험하겠지. 수신류의 장로나 수신대가 찾아오면 난 죽은 목숨이겠지만..."
검마가 씨익 웃었다.
"내 목숨을 써서라도 신의 계획을 막는 거라면 영광 아닌가?"
"......"
"그것도 천제까지라면 한 달만 막으면 되니."
또 동료가 희생하려 하는 모습을 보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미 검마는 쌍검류를 익힌다고 이번 생에서 별로 이득을 보지 못했는데도 날 위해 움직여주려 하는 것이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제갈사가 말했다.
"그냥 의기로 움직여선 안 되지. 기왕 할거면 확실하게 계획을 짜고 움직이자."
"알았네, 제갈사."
"한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제갈사는 물끄러미 검마와 진소청을 한번씩 쳐다보다가 말했다.
"둘이 합공하면 호법사자를 잡을 수 있겠나?"
"흠..."
"조금 애먹을 것 같소."
둘의 반응이 조금 달랐다. 제갈사는 그 반응에서 뭔가 눈치챈 듯 말을 이었다.
"좋아. 그럼 이번 계획은 백웅이 언제 시작할지 정하는 게 낫겠군. 백웅이 허락을 하면 두 사람이 바깥에 나가서 백련교의 계획을 방해하는 거다."
"왜?"
"네가 지금부터 며칠간 저 둘과 계속 대련하면서 수준을 측정해봐라. 그럼 지금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거다."
"알았어."
나는 일단 제갈사가 시키는대로 했다.
지금까지는 칠대절학을 전수한 후 그들에게 개인시간을 줬고, 장삼봉이 강림해서 틈틈히 대련을 하는 식이었다. 다만 대련을 너무 자주 하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의외로 제대로 싸워본 건 별로 되지 않았다.
' 제갈사의 말은 장삼봉 진인을 강림시켜서 본격적으로 수준을 측정하라는 말이겠지.'
앞의 두 사람은 이미 그 뜻을 알아들은 듯, 임전태세를 갖추고 내게 살기를 보내고 있었다. 내가 장삼봉 진인을 강림시키는 순간 대련이 시작될 것이다. 나는 궁금해져서 검마와 진소청에게 물었다.
"그간 얼마나 강해지신 건지..."
"후후. 자네가 전해준 게 무림사상 공전절후할 절세기연이었다고만 말해 두지."
"마찬가지요. 실망하진 않을 거요."
나도 한 번 지켜보고싶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외쳤다.
[ 장삼봉 진인! 오시오!]
파앗
장삼봉 진인이 내게 빙의하는 순간이었다.
"하압!"
"받아라."
두 사람의 의념절기가 동시에 날아들면서 대번에 필살의 공격이 느껴졌다. 일전에 겨룰 때와는 천지차이로, 예전보다 두 배는 빨라진 듯한 느낌이었다.
콰과광
[ 호오오...]
장삼봉 진인이 태극면장을 응용해서 허공에 64개의 태극을 소환하며 힘을 흘려냈지만, 진소청은 태극을 자신의 찰(刹)으로 꿰뚫으면서 연속으로 창극으로 내 상단을 위협해 왔다. 장삼봉 진인은 태극을 유려하게 움직이며 진소청의 몸을 감쌌지만 다음순간 진소청은 이형환위로 그의 공격범위를 피해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장삼봉 진인에게 생긴 아주 잠깐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검마의 이기어검이 날아들었다. 그것도 진(眞) 어검(御劍)의 경지에 도달했는지 미세한 절세검기가 흩날리며 장삼봉의 태극면장을 연속으로 베어버리고 있었다.
타다당!
장삼봉 진인이 서서히 제운종의 극의를 발휘하며 유려한 춤사위처럼 신명나게 구궁천라십단금을 펼쳐냈다. 이는 한 겹을 벗을수록 두 배씩 강해지는 무지막지한 의념절기로, 십단금의 오단금에만 도달해도 무림에서 막을 자가 몇 되지 않는 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원래 두 사람은 구궁천라십단금을 맞이하면 당황해하며 피하기 일쑤였다.
굴공참(屈空斬)
검마는 갑자기 굴공참을 전개했는데, 그 굴공참은 구궁천라십단금의 흐름을 하나도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받아넘기는 기세였다. 나도 굴공참을 저렇게 완벽하게 시전할 수 있다고는 장담할 수가 없었다.
천뢰무극(天雷無極) 공진뢰(空振雷)
진소청은 자신의 몸을 축으로 잡고 천뢰무극창의 초식을 한 호흡에 펼쳐냈는데, 그 순간 진소청의 창이 뇌기를 뿜어내며 공명했다. 공명하는 창은 십단금의 결을 흩어버리며 진소청 스스로를 보호했고, 도리어 장삼봉의 방어에 헛점을 만들어내었다.
꽈과광
강기가 부딪혀서 폭음이 휘날렸고 더한 충격파가 지상에 내려꽂혔다. 연습수련장 전체가 초토화되고 협곡이 무너지려 했지만 장삼봉 진인이 자신의 절기로 붕괴를 막아버렸다. 장삼봉 진인은 허공에 뜬 상태로 감탄했다.
[ 훌륭하오...]
그는 두 사람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 그 짧은 시간에 합격진을 만들어내어 오의로 승화시키다니... 그것도 무영탈혼검법과 뇌신류 무예의 정수(精髓)가 스며들어 있다니. 거기에 칠대절학의 진무칠절경, 팔선신공 구십구합리귀로 입체적인 대응을 더하여 실로 천하제일의 합격진이 되었소.]
그러자 검마는 쓴웃음을 지었다.
"현 강호의 그 어떤 고수도 일견에 합격진의 묘의를 알아보진 못할 것일진대... 과연 투선이구려."
[ 그대들은 정녕 무(武)의 축복을 받은 천재아(天才兒)들이오. 내 시대에 그대들같은 무인이 있었다면 나는 천하제일이 되기 힘들었을 것이오...]
투선 장삼봉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찬사로 보였다.
그는 말했다.
[ 허나 아직은 멀었소. 그대들에게 천외천을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소.]
쿠콰콰쾅
그 날의 대련은 한 시진이 넘어서야 끝났다. 다들 파김치가 되었지만 진소청과 검마의 눈에는 아직도 투지가 불타고 있었다. 갈수록 장삼봉이 유리해지며 공세가 가열되었지만 그들은 몰리면 몰리는대로 수비초식으로 버텨낸 것이다. 장삼봉은 흡족한 듯 말했다.
[ 머지않아 초식을 잊어버릴 수 있기를...]
파앗
장삼봉은 소환을 해제했다. 그리고 나는 장삼봉이 절대지경의 절학을 마구잡이로 쓰면서 내 내공을 다 써버렸기에 파김치가 되어서 주저앉으며 헥헥거렸다. 어쨌든 장삼봉이 쓴 체력과 기력의 손실은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합격진은 도대체 언제 연마하신 겁니까? 지난번엔 없었는데..."
"별건 아니고, 진소청과 함께 칠대절학과 팔선신공을 토론하다보니 그와 무학의 이해가 일치하는 점이 있더군. 그때의 직감을 놓치지 않고 수련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괜찮은 합격진이 떠올랐네. 그래서 합격진을 수련하다보니 성취가 더 빨라졌어."
"......"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있었지만 실로 엄청난 일이었다. 보통은 초식을 익숙하게 만들기만도 바쁜데, 한 달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에 모두 응용단계로 익혀버리고 깨달음을 공유해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둘 다 엄청난 무의 천재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제갈사의 말이 이해가 갔다.
"... 오늘은 쉬고 내일 당장 움직이면 되겠습니다."
제갈사는 이 두 사람이 힘을 합치면 이미 호법사자조차 쓰러뜨릴 수 있는 수준이란 걸 억양에서 알아챈 것이다. 다만 두 사람의 향상심 때문에 겸손을 보인 것 뿐이라는 것도 제갈사는 알았으리라.
이 정도라면 미후왕이 직접 오지 않는 한 그들이 죽을 일은 없었다. 위험에 처하더라도 아군이 구원하러 올 때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으리라.
다음 날 신강에 가 있던 초상기인을 복귀시키고, 진소청과 검마가 2인1조가 되어서 나인교의 계획을 방해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마는 자신이 무영련(無影聯)의 련주임을 내세우면서 순식간에 정보단체를 움직여서 마도팔문의 문주들을 집결시켰고, 그들에게 신강으로 향하는 상행(商行)을 차단할 것을 지시했다.
나는 마도팔문의 회동을 천우진의 천리안을 통해서 같이 보았다.
흑마(黑魔)가 마도팔문의 문주들이 모인 자리에서 꿍얼거리는 게 보였다.
"젠장... 혈영곡 때문에 피해입은 재산 메꾸기도 벅찬데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해야 하지? 아무리 검마 네가 무영련주라 해도..."
콰광!
"우아아악."
흑마는 검마의 일 초식을 맞고 걸레짝이 되어서 벽에 처박혔다. 아무리 그래도 흑마는 살수출신의 초절정고수인데 검마의 이기어검을 일격도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흑마는 피를 울컥거리며 토해내다가 혼절해 버리고 말았다.
"......"
장내에 있던 마도팔문의 문주들은 검마의 무위를 깨달은듯 순식간에 입을 다물었다.
검마는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모가지가 붙어있고 싶으면 입을 조심하도록. 난 그대들을 다 쳐죽이고 그 세력을 흡수해도 아무 상관없네."
그러자 흑마 옆에 있던 지마(地魔)가 벌벌 떨며 말했다.
"거... 검마. 도대체 언제 그렇게 강해진..."
"말도 안돼..."
"흑마를 일격에... 라고?"
"처... 천하제일마(天下第一魔)."
"......."
떠는 건 천지문의 주인인 지마 뿐만이 아니었다. 옆에 있던 독마(毒魔), 광마(狂魔), 음마(陰魔), 혈마(血魔) 모두가 벌벌 떨었다. 그들은 초절정고수답지 않게 크게 동요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고수인 만큼 자신과 검마의 격차를 더욱 여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검마가 혼자서 그들이 합공해도 가볍게 몰살시킬 정도라는 걸 직감한 게 분명했다.
단 한 명, 투마(鬪魔)만이 팔짱을 낀 채 고심하며 검마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또한 큰 두려움을 느끼는 듯 했지만 뭔가 이유가 있어서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검마가 눈에 이채를 띄며 투마를 쳐다보았다.
"뭐지? 하고싶은 말이라도 있나?"
"무영련주 검마."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주인을 한번 만나보시겠소? 반드시 그대 계획에 도움이 될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