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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514화 (513/1,615)

00514  암천향(暗天鄕)  =========================================================================

자칭 제천대성은 아직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지 않았다. 여전히 인간 '오승은'의 상태로 화안금정만 밝힌 채 내게 말했다.

"자, 화요랑 수요를 그냥 내놓을래 맞고 내놓을래?"

"......"

너무 노골적이다. 하지만 이 정도 겁박은 살면서 숱하게 당해왔으므로 나는 냉정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당장 항변하기보다는 침착하게 대꾸했다.

"그냥 내놓으면 우리를 살려주는 거요?"

내 말에 미호와 무사시가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현 시점에서 칠요는 절대 빼앗겨서는 안되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질문하자 제천대성이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죽일 수가 없지."

"무슨 말이지?"

"넌 삼황오제의 사도잖아. 널 죽이면 전욱이 노발대발해서 천계로 쳐들어올 게 뻔한데 그럴수는 없지.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넌 죽을 일은 없어."

그는 덧붙이며 씨익 웃었다.

"편하게 선택하라고."

언뜻 괜찮은 소리처럼 들린다. 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는 죽이지 않더라도 죽느니만 못한 꼴로 만드는 방법은 아주 많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물며 제천대성 미후왕같은 강대한 투선이 맘먹고 나를 조지려 들면 어떤 꼴을 당하게 될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더욱이 '나만' 죽일 수 없다고 했다. 그 말은 나 말고 다른 자들의 생사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므로, 미호와 무사시는 반드시 제천대성의 손에 죽고 말 것이리라.

' 게다가 저렇게 말을 던지는 건 절대 단순협박이 아니란 거야.'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간에 자신은 할 일을 하겠다는 단호한 태도. 저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작살낼 준비가 되어있다는 뜻이다. 내 경험상 저렇게 아니면 말고 식의 제안을 하는 자는 전부 폭력에 익숙한 무서운 놈들이었다. 나는 다시금 질문했다.

"질문을 잘못 했군. 칠요를 내놓으면 우리를 무사히 보내주고 앞으로도 공격하지 않을 거요?"

"헤엥, 어지간히도 여기서 살아나가고 싶은가 보군? 그리고 내 소문을 들은 모양이군?"

"당신은 정말 유명하니까 말이오."

그러자 제천대성은 껄껄 웃더니 말했다.

"칭찬해도 암것도 안 나와! 맘같아서는 일 때려치우고 놀고싶지만 이게 보통 중요한 일이 아니라서 나도 양보 못 해."

"궁금한 게 있소만."

"거참 궁금한 것도 많네."

"당신에게 칠요를 얌전히 넘겨줄 생각도 있소. 그러니 대답 좀 해 주시오. 대체 천계에서 칠요를 가져가서 뭘 어쩔 생각이오?"

"......"

나는 제갈사가 내게 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제갈사는 수면에 빠지기 전에 내게 제천대성을 설득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단서를 준 것이다.

' 통할까?'

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나 해서 도박을 걸었지만, 제천대성 미후왕의 전투력은 압도적이다. 대화하기 귀찮다면서 다 때려치우고 우리를 공격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있잖냐, 나도 너한테 물어볼 게 있었는데 그거부터 대답해줄 수 있냐?"

곰곰히 생각하던 제천대성은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내 원래 성질이면 처음 너희가 신시에 왔을때 때려죽였을텐데 일부러 이렇게 기다려준 건 말로만 듣던 삼황오제의 사도가 어떤 놈인지 직접 보러 온 거거든."

"......"

진심으로 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보시오."

"해신을 왜 잡은 거지?"

"왜 잡았냐니... 그 놈은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 나쁜 놈이니까."

"헤에."

제천대성은 내 대답에 뭔가 신기해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또다시 질문했다.

"마왕은 왜 쳤는데?"

"놈이 혈영곡을 세우고 강호무림을 학살했고, 또한 낙양의 대결계를 파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소."

"역시 대결계를 알고 있군. 근데 너네가 대결계를 왜 지키려는 거야?"

"무슨...? 대결계가 부숴지면 낙양에 있는 사상최악의 마(魔)가 풀려나잖소."

"그건 망량선사가 말해준 거야?"

"......"

내가 입을 다물자 제천대성은 화안금정을 떠서 나를 지긋이 관찰하기 시작했다.

' 마음을 꿰뚫는듯한 눈빛...'

얼핏 멍청해보이는 눈빛이지만 한없이 강대한 힘이 느껴졌다. 그리고 파사현정의 기운마저 담고 있었다. 제천대성이 말없이 나를 일 각 정도 관찰하다가 말했다.

"그러니까, 넌 지금 [옛 지배자]나 이족과 한판 싸워보겠다는 거였군."

"그렇소."

"크크크크크."

제천대성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는 한동안 킬킬거리다가 말했다.

"이봐. 삼황오제의 사도라고 해도 한계는 있어. 그리고 설령 진짜 삼황오제라도 [옛 지배자]를 감당하는데는 한계가 있어서 칠요를 만든거란 말야. 너는 인간인 주제에 대체 뭘 믿고 이렇게 까부는거야?"

나는 기죽지 않고 대답했다.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것 뿐이오. 그리고 내가 까불다가 혼자 죽는 것도 내 자유잖소?"

"......"

제천대성이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쿠하하하, 푸하하하, 우하하하하힉!!"

갈수록 웃는 소리에 원숭이 특유의 끼끽거리는 듯한 비음이 섞였다. 그는 말 그대로 바닥을 구르며 뒹굴거리며 웃어제꼈다. 빈틈투성이였지만 제천대성의 빈틈은 빈틈이 아닐게 뻔했으므로 공격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렇게 웃어대던 제천대성은 눈가의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크크큭... 재밌어 재밌어! 천 년 내내 지루하기 짝이 없었는데 간만에 웃었구나."

"왜 웃는 거요? 당신은 남의 꿈을 비웃을 정도로 잘났소?"

내가 짜증이 나서 말하자 제천대성이 거만하게 대꾸했다.

"잘나지 않았다면 제천대성이라고 칭할 리 없잖아? 난 잘났어."

"......"

뭐지? 자기과시인가?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미호가 말했다.

"그래 잘나서 좋겠다. 혹시해서 물어보는데 서왕모님의 지시는 아니겠지?"

"왜? 서왕모가 지시했으면 어쩌게?"

"그건..."

미호가 대답하지 못하자 제천대성이 차분하게 말했다.

"여우야 정신 좀 차려. 넌 서왕모의 애완동물같은 게 아니야. 좀 더 중요한 존재라서 버려질 일은 없으니까 그만 방황하고 천계로 돌아가."

"뭐... 애완동물..."

"지금이라면 받아줄 테니까."

미호는 크게 발끈해서 육미를 돋우었다.

우우우우!!

그러자 순간적으로 나는 잠이 확 깨는 기분이 들었다. 미호의 음신지력이 널리 퍼져나오면서 제천대성의 술수를 파해하는 효과를 낸 것이다. 나보다는 무사시가 큰 도움을 받았는지 그는 한결 안정을 찾은 표정이 되었다.

' 엄청난 영기다!'

이전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미호의 힘이 더 강해지면 달기에 비견할 정도가 되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 일행에서 가장 강한 건 미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제천대성은 이 엄청난 기운을 맞이하고도 간지럽지도 않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귀찮은 듯 말했다.

"여우야. 애초에 중죄를 저질렀는데도 겨우 천계추방으로 끝난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냐? 천계가 열린 이래 너만큼 큰 죄를 저지른 죄인은 거의 없어. 본래라면 영멸당하거나, 천계의 감옥에서 꼼짝도 못하고 영겁의 세월동안 벌을 받거나, 사후세계로 넘어가서 [옛 지배자]의 먹이가 되는 게 정상이지. 보통 신선이라면 그렇게 되었을 거야. 넌 그 때 엄청난 특례를 받았던 거다."

스윽...

미호의 기운이 가라앉았다. 미호가 당황한 듯 말했다.

"특례라고?"

"그래. 서왕모가 천계에서 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존재가 바로 너니까."

제천대성이 훗하고 웃었다.

"그 힘도 이유가 있어서 네 손에 들어간 거겠지, 그렇지 않냐?"

"......"

미호는 침묵했다. 나는 그 말이 뭔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졌지만 무슨 뜻인지는 잘 감이 잡히지 않았다. 미호가 조용해지자 제천대성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그래서 백웅 너는 칠요를 다 모아서 [옛 지배자]를 쓰러뜨릴 힘을 얻겠다 그 말이지."

"그렇소."

"응 안 돼."

"......?!"

슈우욱

갑자기 제천대성의 오른손에서 커다란 막대기같은 게 떠올랐다.

' 봉(棒)인가?'

타앗

봉을 잡아채서 내게 겨눈 제천대성이 말했다.

"난 천계에서 어떤 명령을 내리든간에 일이니까 닥치고 하는 편이야. 하지만 그건 내가 천계의 개라는 뜻은 아니지. 나는 내 의지로 천계에 복종하고 있지만 옥황상제나 삼청 따위에게 충성하지는 않는다는 거다."

"당신은 자신의 뜻으로 살아간다고 말하고 싶은 거요?"

"그렇다."

제천대성의 화안금정이 순간 강하게 불타는 기분이 들었다. 그의 눈에서 금광(金光)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난 칠요를 해방시키는 게 절대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도 내 의지이고 판단이다."

"......"

"내가 있는 이상 네가 칠요를 해방할 수는 없을거다. 반드시 막을 테니까."

나는 골치아픈 기분이 들었다.

"왜 해방되면 안된다는 거요? 당신은 [옛 지배자]를 쓰러뜨리고 싶지 않은 거요?"

"하하! 정말 웃기고 있군. 하긴 뭐, [옛 지배자]를 쓰러뜨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 인간이 멸망한 다음에 말이지만."

"......!!"

"삼장(三藏)이 천축에서 내게 그 사실을 알려줬지."

제천대성은 그렇게 중얼거린 후 자신의 봉을 거두었다.

"오늘은 일단 물러가마. 네가 마왕을 없앤 덕에 잠시 유예가 생겼으니까."

"뭐? ... 다음 번에 내게서 칠요를 뺏는 게 쉬울 거라 생각하오?"

나는 뜻밖의 말에 황당해서 제천대성에게 말했다.

하지만 제천대성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보다 두 배는 강해지지 않으면 너네는 내 여의봉(如意棒)과 싸울 자격도 없을걸."

"......"

"마왕을 쓰러뜨렸다길래 좀 긴장하고 있었는데, 기대이하야. 너희 정도는 본체로 안 돌아가고 보패를 안 써도 술법만으로도 해치울 수 있어."

설마 그 정도로 얕보이고 있단 말인가?

이건 숫제 무공을 익힌 일류고수가 삼류 파락호를 보는 수준이었다.

' 말도 안 돼. 그 정도의 격차가 있을 리 없어.'

지금까지 제천대성의 힘은 술법밖에 보지 못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제천대성과 한번 싸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어떤 술법과 무공을 지니고 있는지 알아봐야 다음번에 상대할 대책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 무사시가 앞으로 성큼 나오며 말했다.

"내 검도 당신을 해치울 수 있지."

"무, 무사시!"

"해신과 천계 최강을 비교해보고 싶군."

미쳤냐?!

이 상황에서 천계 최강의 투선에게 시비를 건다는 말인가?

진짜 저 놈은 돌아버린 것인가?

그러자 제천대성이 눈에 이채를 띄었다.

"헤에? 못 믿는 기색이네. 그렇게 벌주(罰酒)를 마시고 싶은 걸까나?"

흠칫!

그 순간이었다.

투선절기(鬪仙絶技)

원왕무(猿王舞)

퍼버버벅

"카앗!"

갑작스럽게 내 몸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고, 옆에 있던 무사시는 칼을 뽑아든 채 다섯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미호 또한 짧은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날아가며 무릎을 꿇고 말았다.

무사시는 땅에 자신의 일본도를 박은 채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중얼거렸다.

"... 천외천(天外天)..."

나는 다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 찰나에 내 위험을 감지한 장삼봉이 빙의하며 자신의 무공을 시전해서 나를 보호해 주었기 때문이다. 제천대성이 신력 뿐만 아니라 마력도 품고 있기 때문에 그가 손쉽게 강림할 수 있는 조건으로 보였다.

' 도대체 무슨 일이...'

무슨 공격을 당한 건지 알 수도 없다. 확실한 것은 엄청난 속도로 공격받았기에 무사시도 가슴에 주먹을 두어 방 맞은 듯 피를 울컥 토했고, 미호도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비틀거리고 있었다.

장삼봉 진인이 침중하게 말했다.

[ 미후왕.]

"아저씨. 나 제천대성이라니까."

제천대성이 투덜거렸지만 장삼봉 진인이 말을 이었다.

[ 이 자리는 물러나 주게. 저 인간은 물론이고, 내 연자는 아직 그대와 겨룰 격이 되지 못하네.]

제천대성은 기분이 나빠졌는지 소리를 카랑카랑 내질렀다.

"뭘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어? 당신인들 내 상대가 되는 줄 아나?"

[ ... 안 되겠지. 그대는 천계 최강의 투선이니.]

나는 내면에서 그 대화를 지켜보다가 깜짝 놀랐다.

설마 장삼봉이 하수임을 자인하다니!

지금껏 장삼봉이 보였던 무공을 생각하면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저 경박해 보이는 놈이 도대체 얼마나 강하다는 말인가? 장삼봉은 서서히 양의검법 태극태을의 세(勢)를 잡으며 말을 이었다.

[ 하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고, 버티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네.]

"흥... 시시해. 대체 왜 그런 무공을 연구한건지 모르겠어. 싸움은 이겨야 제맛 아닌가? 그런 극의(極意)는 무의미하잖아."

[ 자네도 무쌍패의 본질을 알고 있군.]

"저번에 천계에서 나랑 겨뤘잖아. 참고로 난 당신이 가르쳐줘도 안 배울거야. 그런 재미없는 무공."

뭔가 투덜거리던 제천대성이 말했다.

"화룡진인도 뭐 나한테 하고싶은 말이 있는가봐?"

건방지게 건들거리는 말투.

하지만 화룡진인은 화요에서 서서히 환영을 드러내며 그의 말에 대꾸했다.

[ 미후왕. 천 년 만이구나.]

제천대성이 자신의 머리를 벅벅 긁었다.

"제천대성이라니까!!"

[ 사내라면 자신이 한 말은 지키는 게 어떤가? 놔 주기로 했잖나.]

제천대성은 눈을 부릅뜨며 으르릉거렸다. 놈은 약간 화가 난 듯 했다.

"그러고 싶은데 저 인간녀석이 나하고 싸우고 싶어했다니까? 걸어오는 싸움은 다 받아주는 게 내 신조라고."

[ 인간이란 미욱한 존재라서 상위존재의 힘을 못 알아보지. 어리석은 선택도 자주 하고. 너도 그 정도는 알고 있잖느냐?]

무사시가 싸운다면 놈이 죽게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다. 멍청한 죄로 죽으라고 하기에는 절대지경의 고수 무사시가 너무 큰 전력이다. 무사시가 사라지면 앞으로의 전망이 불투명해질 정도였다.

자연히 나도 놈을 보호하려고 제천대성과 싸우다 죽을 가능성이 있었기에 화룡진인이 중재에 나선 것이다.

"헤엥. 천계에서 가장 고결하고 고고하던 화룡진인이 누군가를 감싸는 일도 다 있군. 하긴 당신의 제자는 인간답지 않게 괜찮은 놈이었지."

제천대성은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여동빈이었나? 확실히 쓸만한 놈이었어. 삼백 년만 더 지나면 나도 장담할 수 없는 놈이었지. 조의를 표해."

[ 그 얘기는 됐다. 우리를 보내줄 거냐 말 거냐?]

"... 흐음."

제천대성은 나를 샅샅이 훑어보다가 갑자기 무사시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 칼잡이 녀석이 나한테 한수 배우고 싶은거 같은데 어디 가르쳐 줘 볼까? 가볍게 말이지."

그러자 미야모토 무사시가 필생의 각오를 한 듯 자신의 이천일류 자세를 잡았다.

"무사의 영광이군..."

까가강!!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무사시는 전방으로 일참을 가하는 자세로 멈춰있었고, 뒤늦게 그의 도(刀)가 반토막으로 부러져서 허공을 날았다. 투두둥하는 소리와 함께 무사시는 가슴과 배에 수십 방을 얻어맞은 듯 비틀거렸지만 끝내 쓰러지지는 않았다.

"크흑..."

제천대성은 반대편에 서서 자신의 손을 힐끔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손바닥에 길게 그인 참흔(斬痕)이 남아 있었다. 그는 신기해하며 낄낄거렸다.

"이야. 내게 일격을 먹였다라... 인간치곤 제법이네? 칼 좀 쓰는구만?"

무사시는 그제야 상대의 격을 알아챈 듯 약간 두려움이 섞인 중얼거림을 흘렸다.

"... 괴물..."

"여의봉을 쓸 자격은 있어."

퍼엉 하는 소리와 함께 제천대성이 여의봉을 소환했다.

"......!!"

죽일 생각이다.

나는 그들에 비하면 수준이 현격하게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그런 직감이 들었다. 이번에 제천대성과 격돌하는 순간 무사시는 처참하게 살해당하고 말 것이다. 그 낌새를 알아챈 화룡진인이 버럭 외쳤다.

[ 그만해라!]

"화룡진인, 나한테 명령하지 마. 아무리 응룡의 화신이라 해도 나한테 명령할 권위는 없어."

그는 차갑게 말을 이었다.

"옥황상제 면상에도 한방 먹여준 나다. 나를 멈추려면 삼황오제가 직접 오시지."

부우웅

여의봉이 기이한 소리를 냈다.

콰과과광!!

[ 하아압!!]

다음 순간, 무사시와 나, 미호 셋은 삼재진을 짜서 제천대성의 여의봉을 막아내었다. 제일 전방에서 내게 화룡진인과 장삼봉이 빙의해서 최초의 일격을 막고, 미호가 육미의 영기를 끌어올려서 방어막을 쳤으며, 무사시가 자신의 이천일류로 반격한 것이다.

쿠콰쾅

"크헉!"

"윽..."

[ 으음.]

하지만 셋 다 멀쩡하지 못했다. 어느 새 산 하나만큼의 직경으로 거대해진 여의봉이 우리가 있던 곳을 그대로 내리치자 굉음과 함께 어마어마한 물리력이 내려꽂힌 것이다. 무사시는 내장이 터졌는지 입가에 선혈을 줄줄 흘리며 오공에서 피가 철철 흘렀으며, 미호 또한 각혈했다. 장삼봉은 그나마 나은 듯 했으나 물러나는 건 피할 수가 없었다.

"커헉."

결국 무사시는 더 이상은 정신력으로도 버티지 못하고 기절해서 앞으로 쓰러졌다.

지상에서 손꼽히는 강자 셋이 함께 막았는데도 이 정도라니!

그것도 가볍게 휘두른 여의봉일 뿐인데!

제천대성이 껄껄 웃었다.

"하하, 왜 그래? 난 아직 본체가 되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로 우는 소리 하면 어떡해? 칠십이둔까지 쓰면 울겠다?"

[ 그만 화내게.]

"훗."

따악

제천대성이 손가락을 마주치자 오색빛을 머금은 구름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제천대성은 구름 위에 올라서며 나를 싸늘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백웅 네 녀석이 인간을 위해서 싸우는 건 높게 평가해 주지. 하지만 네 녀석은 사도라 해도 인간에 지나지 않아. 그 정도 힘으로는 신격의 싸움에서는 이야기도 안 된다고."

"크윽."

"일단 넌 재밌는 놈 같으니 지켜보겠어. 하지만 나대다가 칠요를 [옛 지배자]에게 뺏기면 절대 네놈을 가만 두지 않을테다. 그리고 동료 간수 잘 해."

제천대성의 경고였다.

"멋대로 말하지 마!!"

내가 항의하듯 외쳤지만 제천대성은 내 외침을 무시하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가자, 근두운(筋斗雲)."

퓨웅!

그 순간 오색구름 근두운과 함께 제천대성의 모습이 빛줄기가 되어 천공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아마 근두운은 이동용 보패이거나 술법인 모양이었다. 저 정도 기동력이면 천지를 제 집처럼 누빌 수 있으리라.

장삼봉이 한숨을 쉬었다.

[ 다행이군.]

천계 최강의 투선, 제천대성 손오공과의 첫 조우가 끝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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