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13 암천향(暗天鄕) =========================================================================
마왕을 물리친 후 우리는 장령곡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천우진이 산하사직도를 꺼내서 제갈사를 해방했다.
퍼엉
제갈사는 늘어지게 자고 있는 중이었다. 망량이 제갈사를 흔들어서 깨웠고, 제갈사는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음... 마왕을 없앴나 보군. 어떻게?"
그의 첫 마디에는 의혹이 서려 있었다. 그것은 제갈사는 우리가 마왕을 토벌하는게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했었다는 뜻이다. 나는 제갈사에게 준비했던 흑요석을 보여주었고, 제갈사는 그걸 받아들어서 기억을 읽고는 황당해했다.
"너네 미쳤냐? 실패하면 다 끝장인데 승산도 불확실한 상태에서 쳐들어갔어?"
"그 문제는 얘기 끝났어. 어차피 버티고 있는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질거란 보장은 없었잖아."
나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아무튼 마왕은 물리쳤다. 이제 네게 걸린 속박도 사라졌겠지."
"흐음."
제갈사는 고개를 갸웃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아무튼 큰 피해없이 놈을 없앤 건 기적적인 일이야. 그리고 십이율주 저 놈은 한번 붙잡아서 고문하고 족칠 필요가 있겠어."
"엥?"
나는 제갈사가 뜻밖의 말을 하자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난데없이 웬 십이율주 고문이 나온다는 말인가? 그러자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놈이 [옛 대륙]에 대해서 언급했기 때문이지. 너무 수상해."
"수상하기야 하지만..."
"[옛 대륙]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나 빼고 이 중에 없나?"
침묵이 맴돌았다. 무인들은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고 술법사인 망량이나 천우진도 처음 들었다는 표정이었다. 그러자 제갈사가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신비(神秘)에 속하는 마도의 비밀이니 모를 수밖에 없겠지."
"잘난체 하지 말고 좀 말해 줘."
"[옛 대륙]이란 건 지금의 세계가 성립하기 전, 커다란 지각변동이 일어나기 전에 존재했던 고대의 대륙을 의미한다. 그 때의 문명은 지금보다 훨씬 뛰어났고 강력했지."
제갈사는 팔짱을 꼈다.
"하지만 그 문명은 하루아침에 유실되었고, 그게 무려 일만 년 전의 일이다. 이 중화대륙의 역사가 길어봐야 5천년에 불과하다는 걸 생각하면 도저히 인간이 알 수 없는 시대의 일이지. 마도사들 사이에서도 비전 중의 비전으로 전해져내려오는 비밀."
"흐음..."
"그런 걸 놈이 이야기했고, 또한 [옛 대륙]으로 향하는 통로를 언급했다는 건... 도저히 간과할 수가 없어. 나 또한 나름대로 강력한 마도사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옛 대륙]으로 향하는 통로같은 건 들은 적도 없다. 그런건 마도서의 기록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으니까."
"......"
제갈사의 말을 들은 좌중의 동료들이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하긴 제갈사보다 뛰어난 마도사는 온세상을 뒤져도 그리 많지 않을텐데, 그런 제갈사가 심각하게 말할 정도다. 십이율주는 어떤 수단을 썼는지 모르지만 마도사조차도 모르는 신비시대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이다.
천우진이 고민하며 말했다.
"십이율주는 대체 뭐지? 그 자는 신의 일족인가?"
"그걸 모르겠으니까 붙잡아서 고문해버리자 이 말이야."
망량이 의혹어린 얼굴로 질문했다.
"그를 잡을 자신이 있습니까, 숙부?"
제갈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없지. 설령 화룡진인이 직접 싸운다 해도 십이율주라면 그녀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테니까."
"......"
"그냥 백웅한테 말해둔 거다. 지금의 힘으로는 무리지만 다음에 십이율주를 붙잡을 기회나, 그럴만한 힘이 생긴다면... 망설이지 말고 십이율주를 고문해서 모든 정보를 알아내라. 그러면 지금 세상에 흩어져있는 무수한 의문들이 풀리게 될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러면 십이율주한테는 어떻게 찾아가지?"
"다 같이 몰려갈 필요는 없지. 너, 나, 무사시, 그리고 미호. 이렇게 4명이면 될 거다. 망량은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두뇌 역할로 남아야 하고 천우진은 방어를 맡으며 무인들은 촌음을 아껴서 수련하면 돼. 그리고 나한테 무명제사서를 돌려 줘."
"여기."
우우웅
제갈사에게 무명제사서를 돌려주자, 그는 금세 다시 무명제사서의 힘을 흡수해서 주인이 되었다. 재차 강력한 전력이 생겨난 것이다.
파앗
우리는 만 하루동안 휴식하며 상태를 정비한 후, 십이율주가 있는 신시로 찾아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구름다리 앞에서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어이, 안녕하신가!"
그는 평범한 유생 청년으로 보였다. 그 청년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를 보자 반갑다는 듯 손을 마구 흔들었고, 좌중의 시선이 그에게로 모였다.
' 누구지?'
본 적이 없는 자다. 신시의 주민인가?
하지만 복색이 신시 고유의 것이 아니라 중원 유생의 복식이다. 또한 방금 말한 것도 중원의 말이다. 뿐만 아니라 기를 감지해봐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 일반인이라서 무공을 익힌 것 같지도 않았다. 반박귀진이거나 절대지경일 가능성도 생각해 봤지만 애초에 기가 안 느껴지는 상태에서는 판단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강력한 술법사라고 보기에는 영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의혹어린 얼굴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누구요? 지금 나를 부른거요?"
"어~ 그렇소! 하하. 이제야 만나는군."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먼저 내 소개부터 하겠소. 나는 얼마 전에 소설가(小說家)가 되기로 결심한 사양산인(射陽山人) 오승은(吳承恩)이라고 하오. 참고로 지금은 남경에서 살고 있지."
별로 궁금하지 않았지만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음... 그렇구려. 근데 오승은 당신은 이 먼 장백산까지 웬 일이오?"
"당신이 백웅이란 사람이 맞소?"
나는 내 이름이 나오자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 역시 보통 놈이 아냐.'
신시 앞에서 내 이름을 알고 기다리는 놈이 평범한 유생일 리가 없잖은가!
그런 생각은 다른 동료들도 다르지 않은지 오승은을 크게 경계하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아직 섣불리 공격하기에는 감이 좋지 않았으므로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니오만."
"흐음, 이상하군. 내가 듣기로는 분명히 백웅이라 했는데... 혹시 근자에 사주팔자가 좋지 않아서 이름을 바꾼 적이 있소?"
"잘 모르겠고 길을 비키시오. 우리는 당신과 얘기할 일이 없소."
그러자 오승은은 곰곰히 생각하다가 씨익 웃었다.
"나는 기다리고 있겠소. 볼일보고 나오시오."
오승은이 슬며시 구름다리의 입구에서 비켜섰다. 나는 의혹이 어렸으나 왠지 놈을 공격해서 제압하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 내가 왜 이러지?'
이상한 일이다. 저토록 수상한 놈이면 공격해서 제압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공격하려는 마음이 들지 않았고 전투는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런 기색은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인지 내게 눈짓을 했다.
타닷
우리는 구름다리를 건너서 맞은편에 도착했다. 그러자 제갈사가 한숨을 쉬었다.
"큰일났군. 정말로..."
"뭐가 큰일났단 말이냐?"
"일단 십이율주를 만나봐야 알 수 있겠지. 가 보자."
십이율주가 원래 기다리고 있을 신시 중심의 건물에 들어갔는데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혹여나 근처에 하은천이나 삼사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끝까지 들어갔는데도 마찬가지였다.
"없나?"
"......"
이상한 일이다. 율주가 평소에 앉아있던 의자에 당도했는데도 하은천은 보이지 않았다. 삼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일 다경 정도를 더 뒤져보다가 건물을 나가서 다른 신시의 주민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경악했다.
"잠들어 있어?"
그랬다.
신시에는 평상시에 수천 명의 인간들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모조리 자신들의 집이나 길거리에 나자빠져서 수면상태가 되어 있었다. 몸에 이상이나 저주가 없는지 살펴봤지만 그저 잠을 자고 있을 뿐이었고, 흔들거나 뺨을 때리거나 기를 불어넣어서 깨우려 해봐도 전혀 깨어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 분명하다. 보통이라면 기를 불어넣으면 자동으로 혈맥이 반응해서 깨어날 수밖에 없다. 기혈을 조종하는 건 불수의근까지 다룰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혈을 건드려도 깨어날 기색이 없다는 건 이 수면상태가 보통 수면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제갈사가 말했다.
"백웅. 또다시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구나."
"제갈사. 뭔가 지금 상황이 짐작가는 게 있는거냐?"
"... 내 실수다. 이 정도 전력이면 충분할거라고 생각해서 천우진을 남겨놓고 온게 잘못이야."
제갈사는 한탄하다가 말했다.
"이 신시에서는 비등을 사용할 수 없다. 백웅 네 권능으로 우리를 모두 옮겨서 이 곳에서 탈출하자. 지금은 그 수밖에 없어."
"아니 잠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설명은 해 줘야지."
제갈사는 나를 휙 돌아보며 씹어뱉듯 말했다.
"우리가 들어온 곳을 막고 있던 그 오승은이란 놈... 그 놈의 짓이 분명하다."
"......?"
"그리고 신시를 혼자서 침묵에 빠뜨릴만한 존재는 한정되어 있지. 지금과 비슷한 풍경을 너는 한 번 본 적이 있다."
내 말에 수수께끼처럼 들리는 답변을 내놓은 제갈사가 재촉했다.
"빨리! 내 예감이 틀렸으면 좋겠으니 어서 여기에서 벗어나자."
"그래. 장령곡으로..."
그러자 제갈사가 급히 외쳤다.
"아니! 장령곡으로 가면 안 된다. 장령곡이 아니라 망량선사의 마을로 가라."
"어? 거긴 왜?"
"빨리. 놈이 변덕을 부리기 전에 가..."
털썩
그 순간 제갈사가 어질어질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 자리에 꿇어앉았다. 그리고 미호는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표정을 지었고, 무사시는 눈을 부릅뜨며 정신을 크게 집중하는 기색이었다.
"윽..."
나도 엄청난 수면욕이 덮쳐오는 느낌에 몸을 가누지 못했다. 하지만 이윽고 내 몸에 화요의 영기가 끓어오르며 화룡진인이 나를 대신해서 술수를 쫓아내 주었고, 나는 빠르게 정상상태를 되찾았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지?
그리고 머나먼 곳에서 웅웅거리는 천리전성(千里傳聲)의 술법이 내 귀로 날아들어왔다.
[ 자, 신시의 내부를 확인해서 이제 속이 시원하신가? 이미 도청의 술수를 걸어두어서 너희의 기척은 모두 알고 있었다. 섣불리 도망치려 하지 말고 얌전히 입구로 나오는 게 좋을 거야.]
"......"
[ 도망치려고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틀림없다.
이 목소리는 아까 그 사양산인 오승은이다.
[ 그 곳에 가만히 있어도 상관은 없어. 어차피 너희는 지금 졸려 죽겠지? 내 술법에 천년만년 저항할 수 있다면 그러기를 권하지.]
그럴 수는 없다.
지금도 화룡진인의 힘으로 겨우 졸음기를 버틸 정도로 강력한 술법이다. 이 자리에 있는 제갈사, 미호, 무사시 셋도 지상에서 손꼽히는 강자인데도 단번에 전투능력을 반쯤 상실할 정도였다. 이대로 버티면 모두가 쓰러져 버릴 것이리라.
제갈사가 갑자기 품에서 단검을 꺼내서 자신의 팔을 찔렀다.
푸콱!
"크... 흐흐... 조금 정신이 드는군."
핏줄기가 비산하며 터져나왔다. 상당한 중상이라고까지 볼 수 있는 상처였다. 제갈사는 수면욕을 이기기 위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제갈사."
"백웅... 방금 전 우리가 입구에서 놈을 마주치고도 싸우지 않고 들어온 건 다른 이유가 아니다. 너나 무사시는 본능적으로 놈이 압도적인 초강자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고... 미호도 마찬가지... 그리고 나는 놈의 정체를 대충 짐작했기 때문에 아무 말도 못하고 들어온 거다."
"무슨 소리야?"
"불행 중 다행으로 놈은 너와 대화를 하고싶어하는 것 같다... 권능을 잘 사용하면 이건 기회가 될 수도 있어..."
제갈사는 더 이상 수면을 이기지 못하고 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피가 철철 흘러넘치는데도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오승은의 술법이 강력하다는 뜻이었다.
"... 잘 들어... 놈의 정체는....... 그리고 왜 장령곡으로 가면 안되냐면..."
나는 제갈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갈수록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필 그 놈이 지금 우리에게 시비를 걸 줄이야!
하지만 제갈사의 말대로라면 지금의 상황은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제갈사가 희미한 눈으로 날 쳐다보며 말했다.
"잘 생각하고 판단해라... 이건 위기이고 기회다... 놈에게서 최대한 정보를..."
풀썩
제갈사는 결국 잠들고 말았다. 나는 옆을 둘러봤는데, 무사시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무사시. 괜찮소?"
"엄청난 술법이군. 일체유심조의 태세로 버티고 있는데도 힘겹다. 이건 원래 의념 없이 정신력만으로는 버틸 수 있는 술수가 아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 하지만 네가 그 자와 싸우겠다면 한 칼 정도는 보태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옆에 있던 미호가 자신의 관자놀이를 누르며 말했다.
"백웅. 머리가 아프구나."
"미호, 넌 졸리지 않아?"
"졸리지 않고 머리가 너무 아프구나. 놈의 술법이 내게 반감되어서 고통이 느껴지는게 아닐까 싶구나."
미호의 요괴로서의 격이 크게 높아진데다가 달기를 따라잡아가는 수준이었기에, 인간과는 달리 술법의 위력이 반감되는 모양이었다. 미호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다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백웅. 싸우는 건 가능하면 피했으면 좋겠구나. 제갈사의 말대로 놈의 정체가 그놈이라면 지금 상태로는 절대 못 이긴다."
"알고 있어. 하는 데까지 해볼거야."
"만일 싸우게 된다면 최대한 너를 지켜주마."
미호의 말에 나는 가슴이 저리는 걸 느꼈다.
' 그 전생의 기억들을 봤을텐데도.'
나와 함께 죽은 기억이 있을텐데도 아직도 나를 진심으로 지켜주고자 하는 것인가? 나는 미호에게 너무 고맙고 미안했다. 앞으로의 전생에서도 도저히 미호의 죽음을 맞이해서 냉정해질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 나도 너희를 지키겠어."
파앗
나는 제갈사를 목갑에 넣은 후 동료들과 함께 구름다리 입구로 갔다. 그러자 입구 근처의 바위에 사양산인 오승은이 앉아있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오승은이 반가운 듯 내게 손을 흔들었다.
"여어 백웅! 나왔군."
"수면술법을 풀어주시오."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 몸이 자유로워지면 너희가 편하게 도망칠테니까."
그렇게 대꾸한 오승은이 싱긋 웃었다.
"그나저나 여우도 오랜만이네. 사바세계의 공기는 어땠어?"
그러자 미호는 짜증내듯 말했다.
"네놈은 여태 천계의 좋은 공기를 마시고 살았지 않느냐? 뭐가 그리 궁금하느냐?"
"신경질내지 마. 어쨌든 천계에서는 친하게 지낸 사이잖아."
"하도 둔갑술이 교묘해서 네놈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했구나."
미호가 분한 듯 말하자 오승은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 이래봬도 중원의 모든 요괴를 통솔하던 왕이었으니까."
나는 오승은으로 변해있는 그 존재에게 말했다.
"십이율주는 어떻게 한 거요?"
"으~음. 미리 와서 때려잡고 월요와 목요를 회수하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먼저 알아채고 삼사와 함께 도망쳤더라고. 참 눈치는 빠른 놈이라니까."
그는 아쉬운 듯 말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뭐 괜찮아. 여기서 화요와 수요를 회수하면 되니까."
"......"
역시 그렇다.
상대방의 정체는 의심할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혹시 몰랐기에 나는 그의 이름을 확인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신은... 미후왕(美?王)이 아니오?"
그러자 그는 빙긋 웃었다.
"그 이름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 수천 년 동안 들어와서 질려."
"그럼 투전승불(?戰勝佛)?"
"그것도 빌어먹을 삼장 놈이 붙인 거라서 싫거든."
퉁명스럽게 말한 그의 눈이 서서히 새빨간 눈에 노란 눈동자로 변했다.
저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화안금정(火眼金睛)이다.
"제천대성(齊天大聖) 이라고 불러줘."
그렇다.
최강의 투선(鬪仙), 지상의 요괴왕이었으며, 현재는 천계의 최강전력으로 취급받는 대라신선 - 미후왕 제천대성 손오공이 바로 내 눈 앞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둔갑해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