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11 암천향(暗天鄕) =========================================================================
미호의 힘이 강해진 후 망량이 내게 말했다.
"백웅. 지금 당신은 어쩌고 싶소?"
"갑자기 무슨 질문이오?"
"당신이 전생한 후, 우리는 여태껏 신들의 계획에 끌려다니기만 했소. 그리고 내 생각에 앞으로도 우리가 주도적으로 나설 국면은 아마... 없으리라 생각되오."
"......!!"
"힘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지."
망량의 눈빛이 약간 어두워졌다.
"그래서 이제는 섣불리 움직이기보다 선택을 해야할 때라고 생각하오."
"선택... 이라고?"
"그렇소. 창힐, 마왕, 백련교, 천제 넷 중에서 아무것도 막지 못한다면... 차라리 막지 않는다는 선택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오."
이게 무슨 말인가?
내가 아는 망량의 모습이 아니었기에 당황했다. 망량만큼은 끝까지 인간을 보호하자고 주장할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놀라는 사이에 옆에 서 있던 검마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천제가 내려오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백웅이 목격할 수 있게 놔두자는 거군."
망량이 검마를 돌아보았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천제가 시작되면 천계측이 얼마나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지, 그리고 지상계 정화를 어떻게 진행하는지도 알아야 되니까 말이지. 그것 또한 굉장히 중요한 정보니까 있을 수 있는 선택이라고 보네."
"네. 또한 백웅은 삼황오제의 사도이니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모든 사건이 종결된 후에도 백웅이 생존하리라 믿고, 그 때까지 최대한 백웅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는 거죠."
나는 두 사람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 확실히... 그것도 선택이긴 해.'
하지만 그렇게 되면 지상계의 피해가 어느정도 될지는 예상조차 할 수 없다. 마왕은 물론이고 창힐의 화신, [옛 지배자]의 화신, 천계까지 날뛰게 될텐데 어떤 혼란이 빚어질 것인가? 그 틈바구니에서 살아남는 것조차 도박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나는 또 하나의 문제때문에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이 자리에서 나 빼고는 다 죽을텐데."
"그럴테지."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반대했다.
"있을 수 없는 선택이오. 난 끝까지 발버둥치겠소."
망량이 묘한 눈빛을 띄었다.
"백웅. 그 마음이 정녕 진심이라고 장담할 수 있소?"
"......?"
"제갈사의 말대로 그게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는다면 어찌할 생각이오? 당신의 용기를 보는 우리는 희망을 얻겠지만 당신의 여정은 몇 배나 늘어날 거요. 무의미한 개죽음에 불과할 수도 있고."
"각오했던 바요."
"대의따위는 모르겠고, 그저 우리가 죽는 걸 보는 게 싫은거 아니오? 그 발버둥이 자기만족일 뿐이라 생각지는 않는 거요?"
망량이 이런 식으로 나를 몰아붙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마치 제갈사같은 태도였다.
나는 망량의 말에 신중하게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대답했다.
"아니오! 버리는데 익숙해지면 결국 누구나 할 수 있는 선택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오."
"호오. 그건 무슨 의미요?"
나는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나는 여태껏 백여년 이상 인간이 이기적이고 잔인하고 혹독하다는걸 쉴새없이 보아왔소. 그리고 자기 외의 인간에게 얼마나 냉혹해질 수 있는지도 알고 있지."
"그래서?"
"그래서 나는 세인들이 비정하고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라고 하는 선택이, 사실은 손쉬운 길을 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오."
순간 망량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
"버리는 걸 누가 못 하겠소? 인간은 결국 나중에는 자기자신만 소중한 거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선택이야말로 정답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오."
"소중한 건 주변 사람이란 말이오? 그렇다면 애초에 은거하면 될 텐데."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오. 바로 내 의지가 가장 중요하오."
"흐음."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 여기에 있소."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천우진이 탄식했다.
"실로 오만하군!"
사람들의 시선이 천우진에게 향했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실로 전생자가 가질 수 있는 오만의 극치야. 네 녀석은 그냥 멍청이가 아니라 오만한 멍청이였군. 네 그릇을 도저히 판단할 수가 없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네 녀석은 지금 필멸자의 생애가 얼마나 유한하고 어리석은지를 논한거나 다름없다. 또한 인간의 관점을 벗어났어."
검마 또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백웅. 자네가 방금 말한 건 얼핏 대협(大俠)의 사고방식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네. 그 어떤 인의협과도 다르지. 자네는 인간이 가지는 자기(自己)와 자아(自我), 이기심을 부정했네. 너무 높은 곳에서 인간을 관조하는 듯 해."
"......"
그는 훗하고 웃었다.
"허나, 나는 그리 나쁘게 느껴지지는 않는군..."
망량이 한걸음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 잘 들었소."
"망량. 대체 내게 이런 질문을 한 이유가 뭐요?"
나는 약간 성이 나서 말을 이었다.
"진심이 아닌 것 같은데."
"시험해봐서 미안하오. 단지 나는 지금껏 흑요석의 기억만으로 당신이라는 인간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당신이 실제로는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 듣고 싶었던 거요. 그래야 더 이상은 계책이 실패하지 않을테니까."
"......?"
"그리고 이제 알게 되었소. 지금까지 우리는 당신을 잘못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에게
휘둘리고 있었던 거라는 사실을."
담담하게 말을 이은 망량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백웅!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아무나 붙잡아서 싸웁시다. 이게 바로 현 시점에서 당신에게 가장 잘 맞는 계책이오!"
"......?!"
뜬금없는 소리에 나는 당황했다. 하지만 주변에 있던 동료들은 다 망량의 말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기색이었다. 망량의 태도전환이 너무 갑작스러운데도 나만 이해 못한 듯 했다.
망량이 말했다.
"우리는 당신이 최대한 전생횟수를 줄이려 노력하는 걸 잘못 이해하고 있었소. 그저 성향이고 자기만족일 뿐이라 생각했지. 하지만 그것 자체가 최선을 다하는 노력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오. 우리는 끝까지 버티는 게 아니라 싸워서 이 난국을 타개하는 게 정답이 될 것이오."
"자, 잠깐.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소리요?"
"일단 제일 만만한 놈부터 패러 가는 거요. 화룡진인이 회복되는대로 다같이 힘을 합쳐서 마왕부터 죽이고 생각합시다."
"제갈사가 마왕은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고..."
망량은 훗하고 웃었다.
"그건 미호 님이 힘을 받기 전의 이야기. 원래도 승산이 없는 건 아니었고 지금은 충분히 이길거라 생각하오. 단지 위험도가 크기 때문에, 마왕을 치는 게 나을지 아닐지를 가늠할 수 없었소."
"음..."
"하지만 백웅 당신의 관점이 그렇다면 이대로 버텨봐야 답이 나오지 않소. 상황은 갈수록 악화될테고, 당신 혼자만 살아남아봤자 결국 아무것도 못 할 거요. 힘이 있을 때 최대한 발악하면서 싸우는 게 나은 것이오."
망량이 단호하게 말했다.
"만일 마왕에게 져서 토벌이 실패해도 우리는 원망하지 않소. 왜냐하면 백웅 당신이 다음 생에 반드시 복수해 줄 거라고 믿으니까!"
"......!!"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당신은 결코 정한 뜻을 잃지 않으리라고 나는 지금 확신했소."
나는 그제서야 망량의 말 뜻을 알 수 있었다.
망량이 처음에 했던 상황분석은 아마 사실일 것이다. 마왕을 쓰러뜨려봤자 놈보다 강한 적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기에 무의미할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나만 살려서 끝까지 상황을 관조하는게 정답일수도 있다. 하지만 망량은 나와 대화를 한 후, 내가 일단 마왕을 쓰러뜨려서 얻는 이득이 위험을 감수할 정도로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검마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 생각일세. 여태껏 아무것도 못하고 농락당하는 기분이 들어서 찝찝했는데 잘 됐군."
"망량 말대로 정말 다 개죽음할 수도 있습니다."
"하면 어떤가? 이대로 버티고 있는다고 해서 개죽음을 안 할 거란 보장은 없지."
"......"
"그리고 마왕을 토벌하면 창힐은 알아서 흔적을 보일 걸세. 놈은 그걸 노렸으니, 우리가 그 흔적을 쫓을 준비만 되어있으면 돼."
진소청이 말했다.
"백웅 당신이 대장이오. 대장이 대장의 목을 딸 수 있다면 이미 전쟁은 끝난 거지."
"... 알았소."
미호가 깔깔거리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걱정 마라! 반드시 이길테니까."
"알았다니까."
나는 약간 신경질을 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나를 약간 애취급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런데 그 기분이 신경질나면서도 그리 싫지는 않았다. 이 순간 동료들과의 관계가 약간 변한 기분도 들었다.
' 좋아, 해 볼까!'
뜻이 정해졌다면 거칠 게 없다.
나는 한씨세가에서 요양하는 한백령에게 화신지혼을 다시 한 번 펼쳐줄 것을 부탁했다. 한백령은 이번에도 내 부탁을 수락했고, 화룡진인의 힘이 한결 회복된 걸 느꼈다. 화룡진인이 완전히 회복된 것은 그로부터 사흘 후였다.
망량이 말했다.
"백웅. 사흘만 더 기다려 주시오. 사제가 이 반황주의 사용법을 익힐 시간이 필요하오."
"알았소."
망량은 오화칠금선을 가지고 있기에 천우진에게 보패를 주려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도 십이율주에게 도움을 요청한 후 나름대로 수련을 하며 시간을 보내자 사흘은 금세 지나갔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우리는 즉시 마왕이 있다는 혈영곡으로 향했다.
파앗!
"... 음습하군."
진소청이 침음성을 냈다. 그의 말대로 혈영곡 인근지방인 장래까지 왔는데 무려 오십 리나 떨어져 있는데도 땅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고 귀기가 천지사방에 뻗쳐 있었다. 근처에 농민이나 사냥꾼이 있는지를 찾아봤지만 인기척이 하나도 없어서, 이미 혈영곡이 이 일대를 장악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망량이 말했다.
"혈영곡은 이미 정천맹을 붕괴시켰소. 구파일방 중 셋이 멸문했고 둘이 공격받아서 반파당했고, 대부분이 큰 피해를 입었소. 그나마 멀쩡한 건 무당파와 소림사 정도요. 머지않아 마도팔문도 그들에게 당할 거라 생각하오."
"으음."
"헌데 역시 들리는 소문대로 무림인이 아닌 민간인도 다 죽이는 모양이군."
망량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바싹 마른 시체가 있었다. 그런 시체는 한둘이 아니었고 여기저기에 마치 걸레처럼 널려 있었다. 천우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사법의 대가라 하더니, 생명체를 죽여서 자신에게 복종하는 시체로 사역하나 보군."
"시체와 일일이 싸우면 한도가 없네, 사제."
"알고 있소."
사사삿
잠시 후 천우진의 환무가 펼쳐졌다. 환무는 가공할 기세로 퍼져나가더니 즉시 일대를 안개로 뒤덮었다. 신기한 것은 그 안개 속에서도 우리는 시야가 멀쩡히 트여서 돌아다닐 수 있다는 점이었다.
우우우우
여기저기서 걸레짝같은 시체들이 비척대며 걸어다니는 게 보였다. 여기저기에 정파의 무복(武服)을 입은 시체가 보이길래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자 검마가 말했다.
"정천맹에서 토벌대를 보냈나 보군. 저들은 정천맹의 무력단체일세."
"저들은 꽤 강했던 거 같은데..."
일류고수나 절정고수가 다수 섞여 있어서 나도 과거에 피했던 걸로 기억한다.
"무의미하지. 나같으면 혈영곡과 충돌을 피하고 숨었을텐데... 자기들이 뭐라도 된줄 알았나보군."
검마는 비웃는 듯한 기색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검마는 이미 자신의 세력인 무영문과 가솔들을 모두 장령곡에 대피시킨 상태였다. 이번 혈풍을 피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끼긱
퍼억!
갑자기 시체 하나가 움찔하더니 무당파의 제운종 경공을 발휘해서 뭔가를 공격했다. 시체의 칼끝에는 조그마한 쥐가 꽂혀 있었다. 주변에 움직이는 걸 자동으로 공격하게끔 되어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 무당파 시체의 움직임을 보고 경탄했다.
"생전과 다를바 없어 보이는군요."
지금 우리는 천우진의 환무에 보호받고 있어서 시체가 인식할 수 없었다. 검마가 씁쓸하게 말했다.
"그렇군. 제운종 경공에 무당의 구궁영 검법도 온전히 쓸 수 있어. 아무래도 이 사법은 꽤 골치아파 보이는군..."
자신을 토벌하러 온 자들을 고스란히 전력으로 쓸 수 있다는 건 사기적인 술법이었다. 그것도 수십 리나 되는 범위에 사령술을 펼칠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이 근처에는 수십 수백명이나 되는 고수들이 깔려 있어서 환무가 없었다면 이미 대격전을 벌였으리라.
우리가 한참을 걷고 있자 천우진이 말했다.
"제갈사 놈의 말에 따르면 혈마인인가 하는 놈들에게는 내 환무가 안 통할 거요. 그 놈들은 직접 쓰러뜨릴 수밖에 없소."
"자폭하면 위험하다던데..."
쿠구궁
이윽고 혈영곡으로 추측되는 계곡과, 계곡 중심에 있는 거대한 전각이 멀리서 보였다. 그리고 전각 근처에 서 있는 시꺼먼 점이 몇 개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피부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눈의 흰자위가 까뒤집혀 있었다.
' 저게 혈마인!'
혈마인의 숫자는 총 30명으로 보였다. 혈마인들은 우리를 아직 인식하지 못한 건지 우두커니 서 있었지만, 아무래도 가까이 다가가면 인식하고 공격할 듯 했다.
그러자 미호가 자신의 몸 주위에 요력으로 만들어진 광구를 띄웠다.
"내게 맡겨라!"
위이잉
"하앗!"
콰과과광!!
광구에서 뻗어나온 은빛이 갑작스럽게 수십 장 크기로 확대되더니 전각의 앞을 지키고 있던 혈마인들을 한방에 날려 버렸다. 더군다나 전각마저도 미호가 날린 공격 한 방에 반토막 나 버리더니 크게 붕괴했다.
쿠구구궁
그게 끝이 아니었다. 미호는 마치 장난이라도 하듯 손을 두세 번 더 휘둘렀는데, 아까보다 더 커다란 은빛 기운이 전방으로 날아갔다. 이윽고 전각 주변은 수십만 관의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거대한 폭풍이 근처에 휘날렸다.
콰과광
휘오오오
' 굉장한 위력이다!'
내가 모든 내공을 모아서 날린다면 일격 정도는 흉내낼 수 있겠지만, 미호는 방금 별반 힘을 쓰지도 않고 지형을 변화시킬만한 공격을 날린 것이다! 나는 미호의 절륜한 요력에 경악해서 말했다.
"미, 미호."
"이 정도쯤이야."
으스대듯 말한 미호의 옆에 서 있던 미야모토 무사시가 인상을 찌푸렸다.
"... 혈마인인지 뭔지가 오는군."
진소청과 검마가 그 말이 들리자마자 앞으로 뛰쳐나갔다.
까강!
동시에 그들의 병기가 허공을 훨훨 날아온 혈마인들의 공격과 맞부딪혔다. 강렬한 강기가 투사되고 부딪히고 일그러지는 전장이 벌어진 것이다. 혈마인은 미호의 공격에도 꽤 많이 살아남은 듯 십여 마리 이상이 단숨에 우리 쪽으로 날아와서 공격하기 시작했다. 미야모토 무사시 또한 순식간에 두 마리를 베어죽였다.
그러자 진소청이 자신의 창을 휘두르며 말했다.
"단숨에 처치합시다."
콰과광
콰쾅
진소청과 검마는 등을 맞대고 싸우기 시작했다. 그것은 틀림없이 칠대절학이나 팔선신공을 이용한 절학이었기에, 혈마인들의 무공이 높아보이는데도 그들에게 전혀 접근할 수가 없었다.
슈칵!
진소청이 창으로 두 놈의 목을 베었는데도 놈들은 자신의 목을 붙잡아서 되려 붙이는 기색이었다. 저 놈들도 불사신인 것이다.
' 폭발하는 순간을 잘 봐야 해.'
퍼버벙
아니나 다를까 제갈사가 경고한 대로 혈마인 중 세 마리가 절정무공을 선보이며 싸우던 중
목젖이 잘리자 갑작스럽게 폭발했다. 그 혈편이 비산하는 속도는 대단히 빨라서 아무리 고수라고 해도 자칫하면 맞을 게 분명했다.
"알고 있다면 이 정도야!"
하지만 진소청과 검마는 짧은 기간이지만 계속 절세신공을 수련한데다 장삼봉 진인과도 대련했으므로 실력이 엄청나게 높아져 있었다. 그들은 미리 제갈사에게 들어서 경계하고 있었기에 손쉽게 그 폭발을 피해냈다. 그리고 남은 혈마인들도 나, 무사시, 미호가 덤벼들어서 해치우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혈마인을 피해없이 처리한 후 전각으로 향했다.
타닷
그리고 전각이 있던 자리에는 한 명의 여인이 서 있었다.
"벽지상!!"
나는 크게 그녀의 이름을 외쳐 불렀다. 그러자 그녀는 서서히 이쪽을 바라보았는데, 확실히 내가 전생 중에 몇 번이나 마주쳤던 벽지상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 모습 어디에도 대라신선을 초월한 마왕의 면모는 보이지 않았다.
마왕 벽지상은 천천히 말했다.
"누가 왔나 했더니 삼황오제의 사도였나."
특이하게도 놈은 인간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 나를 알고 있군.'
아무래도 내가 삼황오제의 사도라는 사실은 신적 존재들 사이에서 유명한 모양이었다. 벽지상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말했다.
"왜 날 공격하지? 삼황오제는 지금 나를 공격할 필요가 없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