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08 암천향(暗天鄕) =========================================================================
봉래산!
그것은 전설의 도가 삼대영산(三大靈山) 중 하나이며 영주산이나 방장산과 함께 환상의 존재로 알려져 있었다. 세간에는 봉래산이라는 이름이 붙은 지명이 많았으나, 지선 망량의 지식에 따르면 진실된 봉래산은 인간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고 했다. 망량이 침착하게 설명했다.
"백웅. 알다시피 이승(二繩)이란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고대왕토사상에서 출발한 개념이오. 세로축인 자오(子午)와 가로축인 묘유(卯酉)를 이승이라 하는 걸 알고 있을 것이오."
"알고 있소."
망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사유는 천원사방(天原四方)을 고정하는 줄으로써, 천반이나 식반(拭盤)의 모형에서 사방을 상징하지. 그러므로 이승과 사유가 진(辰)에 모인다는 것은, 동방을 상징하는 진(辰)의 기운이 가장 강한 장소를 의미하오."
숨도 쉬지 않고 설명한 망량이 단호하게 말했다.
"또한 식반의 중앙에 천계가 있으며, 천계의 동쪽에 있는 게 삼대영산 중 하나인 봉래산. 오거천문의 입구가 있는 장소는 그 곳 외에는 생각할 수 없소."
"흠... 하지만 봉래산은 물질계에 있는 장소가 아니잖소. 그 곳은 금오도와 마찬가지로 이계(異界)요. 틀림없이 결계로 수호되고 있을 거요."
나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기에 비등으로도 권능으로도 갈 수가 없소. 비등은 봉인된 차원의 경계를 넘을 수가 없고, 내가 봉래산에 가본적이 없으니 권능도 쓸 수가 없소."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천우진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갈 방법은 있다. 충분히."
"어떤?"
천우진은 힐끔 제갈사를 쳐다보았다.
"제갈사 너도 대충 짐작했겠지. 이제..."
제갈사가 천우진의 말에 언짢은 듯 대꾸했다.
"말 안 해도 안다. 무명제사서를 포기하지."
"잘 생각했다."
우드득 우드득
"크으으..."
제갈사의 심장 부근의 살점이 크게 튀어나왔다. 제갈사는 고통스러운 듯 전신에 혈관이 삐죽이 튀어나왔는데, 이윽고 가슴 살이 찢어질듯이 책 모양으로 튀어나왔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헉!"
뭐야?! 설마!
아니나 다를까,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가슴살을 뚫고 무명제사서 모양을 한 어둠의 기운이 튀어나왔다. 제갈사는 순식간에 가슴이 터진 셈이었기에 엄청난 출혈과 함께 비틀거리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장기도 크게 흘러나왔다. 보통 사람이라면 저 부상을 입으면 일 각도 되지 않아서 죽으리라.
' 안 돼!'
나는 재빨리 제갈사에게 손을 뻗으며 권능을 사용했다.
[ 시간이여, 제갈사의 몸을 과거로 되돌려라!]
우우웅
그러자 제갈사의 치명상이 마치 시간이 되돌아가듯 원래대로 복구되었다. 치료가 아니라 시간을 복구한 것이기에 제갈사는 금세 고통도 잊은 표정이었다. 제갈사는 무명제사서의 기운을 집어들며 내게 내밀었다.
"자."
고오오오
어둠의 기운은 잠시 후 무명제사서의 서책 형태로 구현화되며 땅에 떨어졌다. 영체화되어서 제갈사에게 흡수되었던 무명제사서가 빠져나온 것이다.
"미, 미친 놈아. 그런 식으로 몸에서 꺼내는 거라면 말이라도 해야할 거 아냐! 내가 권능이 있는게 아니었으면 이 자리에 천하오대의원이 다 있었어도 넌 죽었을 거라고!"
내가 당황하고 놀라서 버럭 소리를 지르자 제갈사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잔말말고 받아. 난 산하사직도에서 한숨 자고 올테니까."
"......"
"그리고 충고하자면, 혈영곡에 있는 혈마인(血魔人)이라는 놈들은 절대 정면으로 상대하지 마라. 정면으로 상대하면 다 죽을 테니까 되도록 충돌을 피해."
"뭐? 그렇게 강하냐?"
"마왕의 사법(邪法)으로 원래 인간일 때보다 훨씬 강화된 놈들이고 자폭도 한다. 섣불리 싸우면 진소청이든 검마든 다 혈편을 맞고 뒈지겠지. 혈편의 저주는 웬만한 영물로는 해주도 할 수 없으니 맞은 부분이 썩어 문드러진다."
"......"
"마왕의 군세는 장난이 아냐. 되도록 피해라."
슈르륵
제갈사는 그 말을 끝으로 산하사직도에 들어갔다. 산하사직도에 제갈사를 재봉인한 천우진이 한숨을 쉬었다.
"한숨 돌렸군. 이 상태라면 마력이 낮아서 10년이든 20년이든 봉인 가능해."
"이게 옳은 방법일까?"
"그런거 걱정할 시간에 빨리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지."
냉막하게 대꾸한 천우진이 말을 이었다.
"봉래도에 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서복(徐福)의 자취를 찾는 거지."
"서복?"
"고대 진시황이 불로초(不老草)를 찾아서 동남동녀를 태운 배를 동쪽으로 보낸 적이 있었다. 목표는 삼신산 중 하나라도 찾아내어서 선인에게서 불로불사의 비밀을 알아내려는 거였지. 그 계획을 담당했던 자가 바로 서복이란 자다."
그런 놈이 있었구나.
내가 서복의 정보를 머릿속에 기억하는 동안에 망량이 말했다.
"백웅. 서복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우리는 이미 진시황의 전모를 알고 있소. 진시황은 서복을 기다리지 못하고 결국 봉선의식을 통해 마(魔)를 받아들여 암천향으로 간 것이오. 즉 서복은 진나라로 복귀하지 않았소."
"서복이 삼신산과 불로초를 찾은 건가?"
"그건 알 수 없지만, 서복은 인간이었고 갔던 방향도 산동이라고 알려져있소. 그렇다면 서복을 찾을 술법은 정해져 있지."
나는 망량의 말을 듣자 퍼뜩 생각이 나서 외쳤다.
"천신경의 술법!"
"그렇소. 삼신산의 입구가 물질계와 겹쳐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니 그리 어렵진 않을거라 생각하오."
천신경의 술수를 이용해서 영혼을 불러내서 그 행적을 좇으면 반드시 서복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백웅. 이제 횟수가 얼마 남지 않았을 거요."
"그렇소."
"잘 사용해야 하오."
원래는 잘 사용하지 않았던 술법이었지만 이번 생에서는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지혜를 얻느라고 많이 사용했다. 무려 6번이나 사용했으며 이제 4번이면 끝이다. 천신경의 술수는 강력한 대신에 10번을 다 사용하면 다시 충전할 방법이 없었고, 유용한 술수였기에 아껴쓸 필요가 있었다.
파앗
나는 우선 산동 끝자락으로 갔다. 그리고 바다 근처에 있던 강한 영을 탐색하다가 덩치 크고 강해보이는 영을 불렀다. 거검을 차고있는데다 강직한 인상이었고, 게다가 꽤나 옛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 나의 이름은 자로중유(子路仲由). 그대는 어쩐 일로 나를 불렀는가?]
"자로? 설마 당신은 공자(孔子)의 제자입니까?"
[ 그렇다.]
자로!
그는 생전에 공자의 제자로 유명했으며 뛰어난 용맹을 떨쳤던 인물이었다. 말년이 그리 좋지는 않았으나 생전에 스스로 의리과 용기를 지키며 자기자신에게 엄격했다 하여 자로를 존경하는 유학자도 많았다. 굉장히 유명한 영혼이었기에 나는 내심 경외심을 느끼며 자로에게 물었다.
"저는 이 산동바다 근처에 혹시 삼신산이나 서복이 있지 않은가 찾고 있는 중입니다. 혹시 보거나 들은 게 있으십니까?"
자로는 서복보다 훨씬 고대의 사람이다. 만일 이 근처에서 붙박이처럼 존재하고 있었다면 수백 년동안 보고들은 게 있을 것이다. 내가 기대하는 기색으로 자로를 쳐다보자, 자로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 그런 건 동해용왕인 광덕왕(廣德王) 오광(敖廣)에게 묻는게 맞을 것이다. 나는 그런 일을 잘 모른다.]
"윽..."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 누군 그걸 몰라서 천신경을 쓴 줄 알아?'
사해용왕(四海龍王)!
그들은 고대부터 중화 사해를 지배하고 있다는 신령스러운 존재였으며 용족이었다. 그들 또한 천계의 대라신선으로 분류되었으며 용인 만큼 강력한 신통력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천우진의 말에 따르면 사해용왕은 해신의 힘이 강해진 이후로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었고, 자신의 행적을 숨기며 살아가고 있다고 하기에 되려 서복보다 찾기 어려울거라고 했다. 게다가 사해용왕쯤 되면 천신경의 술수를 거부할 수도 있을게 뻔하고, 괜히 천계에 정보를 주는 행위이기에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인간의 영혼을 불러서 제물과 힘을 아끼려 한 것인데 자로가 모른다고 대뜸 말해버린 것이다.
"대충 넘기지 말아 주십시오. 이 근처에 있는 영험한 장소라든지 차원의 입구같은 걸..."
[ 으음... 난 그런거 모르는데.]
난감한 듯 말하던 자로가 퍼뜩 생각난듯 말했다.
[ 그래. 천보평균대장군(天補平均大將軍)인가 뭔가가 이 주변 일에 관심이 많았던거 같다. 그 놈한테 물어봐라.]
"그게 누굽니까."
[ 나도 잘 모른다. 근데 그 놈은 영혼의 상태에서 역사를 아주 관심있게 보는걸로 유명하다.]
"불러와 주십시오."
[ 알았다.]
파앗
이윽고 자로가 어떤 영을 불러오고 나서 가 버렸다. 나는 새로 등장한 영혼이 왠지 영기가 약하고 별볼일 없어보였지만, 흰 두건을 쓰고 왠지 기백은 있어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굽니까?"
[ 나는 천보평균대장군(天補平均大將軍)이다.]
"그런 거 말고 생전의 이름 말입니다."
[ ... 왕선지(王仙芝)다.]
"그랬구만."
나는 그제야 상대방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 당나라 황소(黃巢)의 난 초기에 활동하던 반역도당의 수괴군.'
인물이라면 인물이지만 이런 자도 천신경의 술수에 불려온다는 말일까? 아무리 잘 봐줘도
도적수괴이고 소금밀매업자의 대장에 불과한데? 아무튼 나는 궁금한 점을 그에게 질문했다. 그러자 왕선지가 알겠다는 듯 말했다.
[ 나는 그런거 잘 모르지만 신라(新羅)에 있는 자가 그걸 알 것이다.]
"누구?"
[ 고운(孤雲)이라는 놈이었다. 그 놈은 생전부터 선술을 익혀서 아주 뛰어난 도력을 지니고 있었으니, 봉래도나 서복의 위치도 잘 알 거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놈이 이 산동 근처에서 봉래도에 대해서 캐묻고 조사하는것도 내가 직접 봤었다.]
"고운을 불러와 주십시오."
[ 그 놈은 동방의 나라에 있지. 남쪽 지방에 있다 들었으니 찾아보는게 어떤가.]
신라.
동방의 나라.
'흠... 고려 이전에 세워졌던 나라를 말하는거군.'
나는 고려에 있는 동안 고려의 역사도 조금 배웠으므로 신라의 존재 정도는 알고 있다. 대충 짐작한 후 왕선지를 돌려보냈다.
"알았소 돌아가시오."
나는 정보를 수집한 후 장령곡으로 돌아가서 말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미호가 말했다.
"고운이라 한다면 최치원(崔致遠)을 말하는 게로구나."
"미호. 알아?"
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는 신라에서도 손꼽히던 대주술사이자 도사이자 유학자였다. 반도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존재다. 사후에 등선하거나 신이 되었다 전해졌는데 그냥 지상에 남았나 보구나."
"술력이 뛰어난데도 천계에 오르지 않고 지상에 남는 경우가 있어?"
"그런 경우도 왕왕 있다. 생전에 다하지 못한 일에 미련이 많으면..."
거의 다 찾아온 느낌이다. 나는 턱을 괴며 중얼거렸다.
"흐음. 남쪽 지방이랬는데 어디쯤일까."
"짚이는 게 있다. 나와 함께 가보지 않겠느냐?"
"알았어."
반도나 동영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미호는 고운 최치원의 행적에 대해 짚이는게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미호와 함께 고려로 이동했고, 거기에서도 남쪽지방으로 이동했다. 물론 그 곳은 내가 반도에서 동영으로 넘어갈 때 들렀던 최남단 지방이었다. 미호가 어떤 한적한 해안쪽으로 와서 말했다.
"해운대(海雲臺). 본녀가 알고 있는 최치원의 마지막 행적은 이쯤이다."
"정자가 있군."
"여기서 천신경의 술수를 쓰면 아마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만..."
파아앗!!
나는 미호의 말대로 천신경의 술수를 시전했다. 그리고 근처에 있던 강한 영혼을 찾던 중, 고운 최치원을 찾아서 눈 앞에 불러내었다. 그러자 청수하고 잘생긴 외모의 장년인 문사(文士)가 정갈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무슨 일로 나를 불렀소?]
"당신이 고운 최치원이오?"
[그렇소.]
확실히 강한 힘을 가진 영혼이다. 생전에 강한 술력을 지녔다는 게 틀린 말이 아닌 듯 굉장한 잠재력이 보였다. 생전에 지선(地仙)에 맞먹는 술수를 익혔으리라.
'이 정도면 등선 안 한 게 이상한데...'
나는 고운 최치원에게 질문했다.
"봉래산으로 가는 입구를 찾고 있소. 덤으로 그걸 위해 서복이 불로초를 찾은 장소도 알고 싶소."
[......]
"왕선지에게 듣기를 당신이 생전에 그 행적을 관심있게 연구했다고 들었소만."
그러자 최치원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허어... 당신도 덧없는 환상에 시간을 투자하고 말았군.]
"무슨 소리요?"
[나는 전설의 삼신산(三神山)을 찾아서 말년에 내 술법과 지혜를 동원했소. 그리고 서복의 발자취도 찾아냈고 불로초에 대해서도 알아냈지. 허나 그 모든 건 환상에 불과했소...]
"봉래산이 없다는 말이오?"
최치원이 고개를 저었다.
[불로초와 봉래산은 존재하오. 하지만 그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매우 다르오.]
"어떻게 다르지?"
이어진 최치원의 말에 나는 경악했다.
[불로초란 이족(異族)으로 몸이 변화하는 괴초(怪草). 그리고 봉래산은 예전에 해신과 마(魔)에게 침략당해서 모든 선인이 해신의 노예가 되었으며 지금은 사악한 존재들이 창궐하는 지옥이 된지 오래요.]
"......!!"
[서복은 그걸 알고 진시황에게 되돌아가서 불로불사의 진실을 고했으며, 진시황은 본격적으로 마와 결탁하여 봉선의식으로 신이 되기를 꿈꾼 것이었소.]
충격적인 말이다.
설마 진시황이 봉선의식을 치른 배경이 이런 곳에서 이어졌단 말인가?
하지만 놀라고만 있을 일이 아니었기에 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 나는 어쨌든 당장 봉래도로 찾아가야 하오. 그 입구의 위치를 알려 주시오."
[알았소. 알려 드리리다.]
최치원이 내게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허나 조심하시오. 그 곳은 현세의 지옥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