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07 암천향(暗天鄕) =========================================================================
나는 권능을 사용했다고 말함과 동시에 내가 천제단에서 어떤 죽음을 겪었는지를 상세히 이야기했다. 팔짱을 끼고 이야기를 듣던 천우진이 말했다.
"말만 들어서는 잘 모르겠군. 흑요석으로 공유해 줘."
"아, 잠깐만..."
나는 팔뚝만한 흑요석을 꺼내서 땅에 박았다. 그리고 그 흑요석에 정신을 집중했다.
"여기에 손을 대."
그리고 흑요석에 다같이 손을 뻗었다. 이 방식은 한 명 한 명 귀찮게 만질 필요가 없이 한꺼번에 기억을 전송할 수 있는 술수였다.
위잉!
이윽고 내가 겪었던 일이 그들에게 전송되자, 동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미호가 놀라는 기색이었다.
"백웅. 이건 봉선의식의 공식이 깨진 게 아니냐?"
"음..."
"지금껏 수요를 바치면 전욱, 월요를 바치면 여와라는 식으로 해당 칠요의 제작자가 소환되었다. 하지만 이번 죽음에서는 정체불명의 강대한 신격이 너를 뜬금없이 공격했구나. 이건 매개체와 소환의 근본적인 인과관계를 무시한 일이다."
"맞아.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는데..."
옆에서 곰곰히 생각하던 진소청이 말했다.
"백웅. 당신을 소환한 그 존재가 삼황오제일 가능성은 없소?"
"삼황오제라고 해도..."
나는 진소청의 의문에 난처한 기분이 들었다.
"여태껏 내가 직접 대면한 삼황오제는 세 명. 나머지 다섯 신격은 직접 대한 적이 없소. 그래서 설혹 그들의 본체라 할지라도 그들 중 누구인지는 모르겠소. 게다가 만일 삼황오제라 한다면 난데없이 왜 끼어들어서 전욱의 사도인 나를 죽인 건지 짐작도 가지 않는군."
"흐음..."
좌중이 침묵에 잠겨 있다가 옆에 앉아있던 망량이 말했다.
"짐작가는 건 있소."
"나도."
천우진도 말했다. 술법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두 사람은 짐작가는 부분이 있는 모양이었다. 망량이 앞으로 몸을 숙이며 두 손으로 턱을 괴었다.
"... 태호복희(太? 伏羲)."
"뭣?!"
나는 깜짝 놀라서 외쳤다.
"그는 삼황오제 중 삼황 아니오!"
"그렇소. 또한 여와와 함께 인간의 창조주로 불리는 존재지."
"그런 존재가 뭐하러 나같은걸..."
망량이 무겁게 말했다.
"허나 지금까지 백웅 당신의 전생행적에 미뤄 생각해 보면 그 존재일 가능성이 가장 크오. 이유는 두 가지가 있소. 첫번째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신격, 두 번째는 천우진의 술수가 발동하지 않았다는 점..."
나는 망량의 말 중 첫번째를 기억해냈다.
' 그러고보니 선지자가 그런 말을 했었지.'
예전 일이지만 머지 않은 일인지라 잘 기억났다. 분명히 19번째 전생에서 있었던 일이다.
[ 그러면 삼황은 노리고 소환할 수 없는 건가? 여와낭랑, 태호복희, 염제신농 어느 쪽이든...]
[ 칠요가 있으면 확정해서 소환할 수 있겠지... 뭐 그게 의미가 있을까마는... 특히 현재의 복희는 인격체와 대화가 통할지도 의문이지... 또한 지금의 여와는 지상세계에 많이 화가 나있을테니 소환될 경우 우리 모두 죽을지도 모른다.]
그 때 선지자는 복희의 상태에 대해서 언급했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신격이며 삼황오제라는 점에 비춰보면 확실히 태호복희일 가능성이 높으리라. 하지만 두 번째 이유가 뭔지 잘 몰라서 망량에게 질문했다.
"천우진의 술수가 발동하지 않은 게 무슨 뜻이오?"
"생각해 보시오. 복희는 인간에게 팔괘와 술법을 내려준 존재. 그 앞에서 필멸자의 술법이 통하지 않는 건 당연하지 않겠소? 심지어 칠요 선천팔괘도는 술법뿐만 아니라 모든 이능을 차단한다고 알고 있소."
"아!"
"천우진같은 극고의 술사가 아무런 술법도 못 쓸 정도라면 그 존재는 술법의 기원에 이르러 있는 것. 그렇게 보면 태호 복희일 가능성이 매우 높소."
나는 그제서야 납득할 수 있었다.
확실히 술법의 창조자에게 술법따위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신격이 힘으로 술법을 무시한다면 태호복희의 경우는 자신의 신격이 관장하는 영역 자체가 술법인지라 근본부터 무효화되는 원리가 분명했다.
"그런데 삼황 복희가 대체 왜...?"
"......"
망량은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젠 도박을 할 수밖에 없겠구려."
"어떤 도박 말이오?"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겠소."
망량이 힐끔 천우진을 보더니 말했다.
"사제. 제갈사 숙부를 풀어 주게."
"괜찮겠소?"
천우진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형. 내가 말은 열흘이라고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산하사직도에 가둔 채 내 술력으로 봉인하고 있을 경우였소. 당장 며칠 전부터 마기(魔氣)가 끓어올라서 폭주하기 직전이었지. 지금 꺼내놓으면 어쩌면 강대한 마인(魔人)으로 변할지도 몰라."
"상관없네. 그 경우에는..."
망량이 대책을 말했다. 그러자 천우진이 침음성을 흘렸다.
"... 본인이 동의할지가 문제군. 더 문제는 꺼내진 제갈사가 폭주할 경우 이 자리의 인원이 감당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해.."
나는 믿기지 않아서 천우진에게 말했다.
"제갈사가 그렇게 강해졌다는 거냐?"
"마왕이 자신의 제일심복으로 여기고 마력과 각인을 몰아주는데다가 무명제사서의 주인이기까지 하지. 현재 이 세상에서 동서양을 통틀어 인간마도사 중에서 제갈사보다 강한 놈은 없을 거다."
"......!!"
"젠장... 좀 더 신중해야 하는데. 잘못하면 여기 있는 사람 다 죽을테니."
천우진이 못미더운 눈으로 일행을 둘러보았다. 그 시선에는 진소청, 검마, 미호 등이 한번씩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장령곡에서 수련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크게 강해졌다고 보기에는 힘든 상태였다.
나는 결연하게 말했다.
"내가 책임질테니 풀어줘! 만일의 경우에는 내가 시간을 되돌리는 권능을 쓰겠어."
"제길... 이 멍청아. 사도의 권능이란 게 뭔지 이해 못 했냐?"
"아는데 왜?"
"알면 그런 소리가 나와? 시간의 [큰 굴레]와 [작은 굴레]의 차이를 알고 지껄이는 거 맞지?"
천우진이 볼멘소리를 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시간의 성질은 배웠으니까."
원래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사실이지만 지금의 나는 알고 있다.
우주의 시간은 [큰 굴레]와 [작은 굴레]로 이루어져 있다.
전욱의 심복, 열이 말했던 이야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가 오거천문의 수련에 들어갔을 때 열이 추가로 설명했었다.
[ 절대시간. 모든 것이 섞인 혼돈, 그것을 흔히 [큰 굴레]라고 부릅니다. 인과율의 가장 큰 구성요소이며 이 굴레는 이 우주에서 단 하나의 위대한 존재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큰 굴레]는 대우주가 흐르는 과정이니 그 어떤 신도 건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설혹 드높은 외신(外神)이라 할지라도 [큰 굴레]는 바꿀 수 없습니다. 정해진 종언(終焉)이 찾아올 때까지.]
[ 큰 굴레가 있다면 작은 굴레도 있습니까?]
[ 물론입니다. 지금부터 당신이 공부하게 될 시간의 권능으로 바로 [작은 굴레]를 조종하는 겁니다. 이 [작은 굴레]는 웬만한 신격이라면 다 움직일 수가 있습니다. 천계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리게 한다던가, 육체의 세월을 되돌린다던가, 삼황오제의 의지로 문명의 시간을 멈춘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지요.]
[ ......?]
나는 그 때 이해가 안 갔었다.
[ 네? 그럼 신이라면 시간을 멈출 수도 있고, 되돌릴 수 있다는 거 아닙니까? 왜 굳이 큰 굴레와 작은굴레를 구분하는 거죠?]
[ 이런... 아직도 이해를 못 했군요.]
열이 말했었다.
[ 작은 굴레를 움직여서 시간을 조종한 기록은 모든 신격이 느끼고 알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편집기록이 반드시 남는다는 말입니다. 또한 그 기록이 쌓이면 쌓일수록 인과율에 의해 역풍을 맞을 확률도 높아지는 겁니다. 다른 신격의 눈치도 엄청 보이고요.]
[ ......!!]
[ 그렇기 때문에 [작은 굴레]를 이용한 시간공격은 절대 신격에게 통하지 않습니다. 신과의 전투에서 당신이 [작은 굴레]를 움직이는 건 자살행위가 된다는 말이지요. 뭐... 뒤늦게 권능을 사용해서 죽음만을 회피하는 건 가능하겠지만.]
[ 그, 그렇군.]
그렇다.
강한 힘을 지닌 사도나 신격이라면 [작은 굴레]를 움직여서 시간을 편할대로 조종할 수 있지만, 그 편집기록은 모두가 알 수 있으며 심지어 열람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수련의 기억을 회상하며 말했다.
"내가 가진 사도의 권능은 [작은 굴레]를 움직이는 능력이니까, 내가 죽음을 회피했던 건 삼황오제는 물론 [옛 지배자]도 다 알고 있겠지."
"그래. 만일 제갈사를 제압하려다가 실패해서 3번째 권능을 쓰게 되면 답이 없단 말이다. 신격들에게 온갖 시선과 관심을 다 받게 될 거고 덤으로 미래도 없어질텐데 그렇게 가볍게 얘기할 문제가 아냐!"
천우진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 걱정 마. 그 때는 내가 제갈사를 죽이겠어."
그러자 천우진의 눈빛이 달라졌다.
"마음을 굳힌 거냐?"
"제갈사의 목숨만이 목숨은 아니야. 녀석이 죽고싶어하는 것과는 관계없어. 머뭇거리다가 너희들 모두를 죽게 하느니 각오를 하겠다."
"좋아, 그렇다면야."
파앗
모두가 전투준비를 한 상태에서 천우진이 산하사직도를 열어서 제갈사를 해방했다.
쿠우우우...
제갈사의 상태는 확실히 이상해 보였다. 그의 눈은 반백반흑으로 물들어 있었고 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눌러잡고 있었다. 그리고 정체불명의 기괴한 신음소리를 내며 기괴한 자세로 몸을 뒤틀고 있었다.
하지만 잠시 후 그는 자신의 얼굴에서 손을 치우며 나를 바라보았다.
"백웅."
"제갈사."
"마음은 정했냐?"
나는 제갈사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후... 마왕이 날 부르는군. 내가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건 길어도 반 시진이다. 그 안에 상황을 설명해주고 결판을 내라."
"이거 받아."
나는 제갈사에게 휙하고 흑요석을 던져주었다. 흑요석으로 기억을 빠르게 읽은 제갈사가 히죽 웃었다.
"흐흐. 그랬군."
"제갈사. 부탁이 있다."
"뭐냐?"
나는 간절한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무명제사서를 포기해 줘."
"흥, 결단을 내린 줄 알았더니 어중간하게 타협하려는군."
"네가 무명제사서를 포기한다면 마력이 크게 낮아질테고 그렇게 되면 부담이 없어져. 그리고..."
"마왕 벽지상을 이용해서 [영겁의 태아]와 싸움을 붙일 수 있게 된다 이 말이군. 반전의 권능을 마왕에게 써서 없애 버리는 것보다 효율적인 일석이조의 계책이야."
"... 그래."
제갈사가 갑자기 낄낄댔다.
"푸하하! 현아. 너무 좋을대로만 생각하는거 아니냐? 너무 무른 계책이잖냐!"
제갈사의 힐난을 들은 망량이 침착하게 말했다.
"숙부. 해보지도 않고 포기할 순 없소.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이오."
"안 돼. 절대 안 될 거야. 해보고 포기하면 엿만 먹을텐데 아예 시도도 안하는게 낫지."
"......"
"내가 파악한 '마왕'이란 존재는 영지주의의 수장이며 교활한 기회주의자다. 놈은 지금 혈영곡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해서 간만 보고 있을 뿐이야. 대결계를 건드릴지 아닐지도 불확실해. 일찍이 수천 년 전부터 사이비교주이자 대주술사로 군림해온 놈을 상대로 심리전으로 조종해서 일석이조를 누리겠다고? 너무 놈의 지혜를 얕보고 있는 거 아니냐?"
제갈사는 투덜거리듯 말하다가 말을 이었다.
"그냥 마왕은 어떻게든 반전의 권능으로 죽여버리고 전욱한테 징징거려서 [옛 지배자]에 맞서는 게 훨씬 나을 거다."
"전욱한테 징징거린다고?"
"어. 지금 뭐 다른 방법이 있냐? 인간의 힘으로 감당 못할 지점에 왔으니 이젠 신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지."
"하지만 그 계책을 쓰면 창힐의 화신이... 그리고 십이율주와 이미 이이제이의 계책을 쓰기로 약속했어."
"어쩔 수 없지. 우리는 지금 약하니까 놈까지 잡을 욕심을 부리는건 무리야. 어떻게든 눈앞의 위기만 버티는 편이 낫지. 그리고 십이율주 놈한테는 사정상 안되겠다고 말하면 그만이야."
"......"
좌중의 모두는 침묵했다. 이 침묵은 제갈사의 계책이 옳다고 생각한 침묵임과 동시에, 뼈저린 무력감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제야 인연을 거의 다 모았는데 쓸 수 있는 방법이 고작해야 신의 힘에 의존하는 것 뿐이라는 게 절망적인 무력감을 불러왔다. 제갈사가 분위기를 깨듯이 낄낄거렸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제갈사! 그럼 이 방법은 어떠냐?"
"뭔데? 빨리 말해! 오래 못 버티니까."
제갈사가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나는 생각을 정리한 후 말했다.
"지금 당장 가서 마왕을 쳐죽이는 거다."
"......"
제갈사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그게 쉬우면 지금 이렇게 옥신각신할 이유가 있냐? 말해두는데 네 전력이 어느정도 수준인지는 나도 흑요석을 봐서 알아. 하지만 그 정도 힘으로는 현재의 마왕, 영지주의의 수장을 이기는 건 힘들다고. 놈의 힘은 대마도사 100명을 합친 것보다 더 강해! 그러니까 화요를 강화시키든 어쩌든 힘을 더 늘여야 하는 거다."
"나 혼자면 불가능하겠지만, 한 놈 더 있잖아."
"... 미후왕을 끌어들이겠다는 말이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후왕을 최대한 빠른시간 내에 찾아내서 놈과 동맹해서 마왕부터 쓰러뜨리는 거다. 그리고 반전의 권능을 아껴두면 좋지."
"그 계책도 현이가 내놓은 것처럼 우리 좋을대로만 생각하는 거군. 마왕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보장도 없잖아."
"아냐, 있어!"
나는 확신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천계는 투선 미후왕이 최소한 봉인을 할 거라고 생각했어. 그 말은 미후왕의 힘이 그 마왕인지 뭔지에 뒤지지 않는다는 거잖아!"
"흐음..."
"거기에 우리가 숟가락을 얹는거야. 그리고 마왕을 쓰러뜨리면 네게 걸려있는 영혼의 속박도 사라지겠지."
제갈사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뻔해. 그걸론 안 돼. 실패할 거다."
"제길!"
"투선 미후왕이 우리와 손잡을 가능성보다 손을 뿌리칠 가능성이 훨씬 높지. 장삼봉의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잖아? 그리고 손잡는다 해도 투선 미후왕이 약해빠진 우리 뒤통수를 후려갈길 확률도 아주 높다. 너와 천우진 빼고는 현재 투선 미후왕의 일 초도 받아낼 놈이 없다는 점이 너무 아쉽군."
"아니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제갈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럼 뭐? 긍정적으로 바라보다가 실패하면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이라도 하게? 너는 전생을 할 수 있어서 다음 기회를 노릴지 몰라도 다른 놈들은 실패하면 다 죽어. 설마 그걸 모르는 건 아니겠지?"
움찔
내가 흠칫 반응하자 제갈사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뭐, 스스로 머리를 굴린 건 칭찬해 주지. 그리고 막 꼴리는대로 꼴아박지 않고 침착하게 일을 해결하려는 의지도 확인했어. 이제 하나만 더 확인할 수 있다면 네 말대로 무명제사서를 포기해 주마."
"하나? 어떤 건데!"
제갈사가 마음을 바꿔먹었다!
내가 기뻐서 외치자 제갈사가 천천히 말했다.
"설령 이번 생에 다 죽어서 실패한다 할지라도, 이번 생에 수요의 봉선의식때 태호 복희로 추정되는 괴존재가 나타난 이유만큼은 알아야 해. 그리고 현재의 불확실한 상황을 타개할 잠재력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 있어. 그건..."
"그건?"
제갈사는 날카로운 눈으로 말했다.
"바로 네가 지금 당장 삼황오제 전욱을 알현하는 거다."
"......"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제갈사에게 말했다.
"제갈사. 너도 알다시피 일월이 종결되는 오거천문에 도달하지 못하면 전욱의 차원에 가는 건 불가능해. 그리고 난 오거천문에 가는 법을 몰라!"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그렇다.
열은 내게 사도의 권능을 학습시켰지만, 그 외에는 거의 내게 가르쳐주지 않은 것이다.
철저하게 정해진 것만 가르침받았다.
"보통은 그렇지. 하지만 너는 사도다. 그것도 역사상 전무했던 전욱의 인간 사도. 너라면 따로 초대를 받지 않아도 전욱을 찾아가는 게 가능할거야. 기억을 잘 찾아보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 무슨 뜬금없이 전욱을 찾아가라고..."
내가 황당해서 말하자 제갈사가 말했다.
"삼황오제의 일은 불멸자이며 신격인 그들 자신만이 알고 있다. 그리고 봉선의식이 그들과 접촉할 유일한 수단이었는데 그 봉선의식이 폐쇄당한 이상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전욱에게 궁금한 걸 물어볼 수만 있다면 어쩌면 지금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지도."
"으음..."
"지금 당장 해 봐. 전욱을 만나서 봉선의식이 꼬인 이유를 물어보고, 앞으로 [옛 지배자]나 마왕을 상대로 어떻게 해야할지 해결방법을 들어보라고. 그런 걸 사도가 아니면 누가 해?"
"만일 안 된다면? 내가 전욱의 차원에 못 간다면..."
내가 우려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제갈사는 피식 웃었다.
"그땐 앞서 말한대로 내가 가진 무명제사서를 포기하지. 그리고 마왕이 처리될 때까지 얌전히 산하사직도에 봉인되겠어."
한풀 꺾여준 셈이다.
제갈사같은 광인에게서 양보를 받는 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인지라 기뻤다.
"고마워."
나는 제갈사에게 감사를 표하고는 정신을 집중해서 5년간 수련했던 기억을 더듬었다.
' 젠장, 방법이 있어야 할텐데...'
초조하다.
5년간, 나는 일월의 신기를 받아서 영체상태로 말 그대로 촌음도 쉬지 않고 계속 수련했으므로 수련한 기억이 방대했다. 게다가 단순반복수련도 많았기에 그리 기억을 뒤지는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든 꼼수로라도 전욱을 찾아가는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
한참동안 고민하던 나는 기억의 편린 속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 어? 설마."
좌중의 시선이 내게로 모였다. 망량이 기대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백웅! 뭔가 방법이 있는 거요?"
"어... 이게 방법인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반신반의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승(二繩)과 사유(四維)가 진(辰)에서 모이는 장소에 오거천문으로 향하는 길이 있다고... 열이 지나가듯이 말했던 것 같소."
그 말에 술법사들은 저마다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입을 모아서 외쳤다.
"봉래산(蓬萊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