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504화 (503/1,615)

00504  암천향(暗天鄕)  =========================================================================

십이율주가 있는 신시에 찾아가자, 십이율주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마을의 입구에 서 있었다. 구름다리의 앞에 서 있는 십이율주는 삼사를 대동하지 않고 혼자서 서 있었다. 나는 그 점이 의아해서 말했다.

"내가 올 것을 알고 있었습니까? 그리고 삼사는?"

그러자 십이율주가 대꾸했다.

"점을 쳐서 예상했고, 삼사는 해신을 빨리 죽이기 위해서 해신이 쓰러진 그 장소에 봉인을 거는 중이야. 백웅 너는 큰 일을 치러놓고 뒤처리를 나한테만 맡겼잖아. 해신을 봉인하는 일을 조금만 도와줬어도 탐라도의 피해가 크진 않았을텐데."

"......"

"뭐, 아무튼 그게 중요한건 아니고."

십이율주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왜 온 거지?"

아무래도 내가 올 것은 예상했지만 용건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나는 망량의 계책을 머릿속에서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상황이 급박해졌습니다."

그리고 나는 현재 마왕 벽지상이 발호했으며, 천제가 내려올 것이며, 심지어 백련교에서 [옛 지배자]의 화신이 부활했다는 정보를 십이율주 하은천에게 말해주었다. 이야기를 심각한 기색으로 듣고 있던 하은천이 팔짱을 풀며 말했다.

"정말 위급한 상황이군. 나를 아주 잘 찾아왔어."

"도와줄 수 있습니까?"

"그 전에, 너는 어떤 해결책을 생각하고 있지?"

"이이제이를 시도하고 수요를 해방하려 합니다."

간단하게 대답했으나 하은천은 즉시 계책의 본질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흠, 과연 네 쪽에는 뛰어난 책사가 있나보군. 확실히 지금 상황에서 이이제이 외에는 방법이 없어."

"율주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나는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는 힘을 합쳐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고 계시죠?"

"아아, 알고 있어."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십이율의 전력(全力)을 동원하지. 그리고 파천의 가호를 맺는 계약을 즉시 시행하고, 내가 알고 있는 월요(月曜)의 봉인지를 공개하겠다."

물론 나도 월요가 어딨는지는 안다. 하지만 알고있다는 티를 내지 않고 깜짝 놀란 척 말했다.

"월요?!"

"월요는 강화도 마니산에 있지. 월요를 획득해서 해방할 수 있다면 틀림없이 화신이나 사도에 대항할 수 있을 거다."

"칠요에는 보통 수호자가 존재합니다. 월요의 수호자 또한 강력할 텐데 어떻게 쓰러뜨릴 생각입니까?"

그러자 십이율주 하은천이 말했다.

"힘으로!"

"......"

"사실 월요를 꺼낼 생각은 없었지만 지금 패배하면 뒷일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수호자를 어떻게든 없애고 월요를 차지해야만 해."

지금 나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언급할 수가 없다.

만일 수호자를 없애고 나면 - 월요는 '누가' 가지는가?

그도 나도 칠요의 주인이며, 칠요가 한 개인 것보다 두 개인게 훨씬 막강한 위력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걸 생각하면 칠요는 결코 상대방에게 양보할 수 없었다. 내가 월요까지 가지게 된다면 지금 이 모든 상황을 순탄하게 풀어나갈 힘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망량의 말을 이미 듣고 왔기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율주. 거래합시다."

"무슨 거래?"

"월요를 누가 소유할지는 아주 민감한 문제죠. 하지만 저는 월요의 소유권을 율주 당신에게 양보하겠습니다."

"호오..."

"그 대신, 내가 수요를 해방하는 걸 전적으로 도와야만 하고, 향후 신적인 존재와 싸울 일이 생기면 무조건 날 도우십시오. 그리고 또 한 가지."

나는 눈을 빛냈다.

"신과 대적할 방법을 알고 있는대로 나와 공유하십시오."

십이율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걸. 칠요를 해방시켜서 싸울거라고 말했잖아."

"그것만이 아니잖아요."

나는 한층 강한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당신은 어떻게 한건지는 몰라도 천계의 정보를 미리 훔쳐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화요를 갖고있다는 걸 알게 된거 아닙니까? 그리고 해신과의 싸움에서도 힘을 아꼈죠. 또한 해신 휘하에 있는 도시를 봉인하는 계획에 대해서도 내게 뭔가 숨겼습니다."

"......"

"당신은 내게 뒤처리 운운할 처지가 아니죠. 숨겨둔 수가 있으면 뭐든 내놓으란 말입니다. 충분히 납득가는 수를 내놓으시죠."

십이율주가 뒷짐을 졌다.

"만일 내놓지 않겠다면?"

나는 뭘 묻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지금 상황을 해결하는걸 포기하고 몇십 년이고 은거할 겁니다. 그리고 중원의 아비규환은 고려와 십이율에도 덮쳐오겠죠. 그때 율주 자신의 힘만으로 해결할 자신이 있다면 내 말을 무시해도 좋습니다."

"흐음... 인상적인데."

"뭐가 말입니까?"

"배째라고 하니까 진짜 째려 들다니 보기보다 강단이 있어."

중얼거리던 십이율주가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무사시를 슬며시 쳐다보더니 말했다.

"무사시. 월요를 꺼내고 나면 너희가 사는 동영땅에는 더 강한 재액이 닥칠거다. 지금까지 봉인된 월요와 감응해서 목요의 힘으로 동영의 요괴를 억제하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래도 좋냐?"

뭐?

내가 놀라서 무사시를 쳐다보자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츠치미카도 일족이 아오키가하라 수해를 봉인하고 있으면 몇 년은 버티겠지. 그리고 그런걸 나한테 말해봤자다. 난 원월천살법의 정통후계자가 아니니까."

"하지만 인간 중에 정통후계자에 가장 가까운건 사실이지. 내게도 그 지위를 내세웠으면서 불리해지니까 입을 닫아버리는건가? 크크."

"......"

"뭐, 좋아."

무사시가 침묵하자 십이율주가 말했다.

"백웅 이런건 어때? 지금 네게 가장 고민되는걸 해결할 방법을 가르쳐주지."

"가장 고민되는게 뭐라고 생각하시죠?"

"보나마나 [옛 지배자]의 화신이라는 놈이 네게 불쑥 찾아오는 걸 경계하고 있겠지? 신의 화신쯤 되는 놈이 네 존재를 모를 리 없을테고, 아주 크게 주시하고 있을 게 분명해."

"......"

"나는 놈을 쫓아낼 방법을 알고 있다. 그걸 알려주지."

정말이냐?!

나는 반문하고 싶었지만 애써 표정을 관리했다. 십이율주가 나를 기만하거나 탐색하려고 그저 떡밥을 던진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를 냉막한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쫓아낸다는게 무슨 뜻인지 설명해주십시오."

"말 그대로야. 물질계에서 추방시킬 순 없겠지만 놈이 찾아오지는 못하게 할 수 있지. 상당히 까다롭긴 하지만 네 목적대로 시간을 벌어주는 건 가능해."

"어떤 방법입니까?"

"[옛 지배자]에게 존재하는 대극(對極)의 힘을 빌리는 거지. 보통 고대신(古代神)이라고 불러."

그렇게 말한 십이율주가 말을 이었다.

"또 하나. 불사신(不死身)의 소생을 중지하는 방법도 알려주겠다. 마왕이든 [옛 지배자]의 화신이든 불사신 정도는 기본으로 갖고있을 테니까 꼭 필요한 정보다."

"......!!"

"이 두 가지 정보면 충분할거라고 보는데?"

"믿기가 힘들어서요."

"뭐~ 그럴수도 있겠지만~ 우리 둘은 피차 여유가 없어. 그러니까 좀 더 솔직해지기로 한 것 뿐이야. 결정은 네가 하라고."

"기다려 주십시오."

나는 순어구를 통해서 방금 나눈 이야기를 본진에 있는 망량에게 전했다. 그러자 망량이 대답했다.

[ 충분하오. 더 이상 밀어붙이면 십이율주 쪽이 포기할수도 있으니 여기서 타협합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자아, 그러면 파천의 가호부터 받으러 가 볼까?"

파앗!

나는 무사시와 십이율주를 데리고 망량선사의 마을으로 향했다. 그리고 홀로 이동해 천암비서를 장령곡의 비처에 숨기고 나서, 마을 안에 진입해서 여동빈의 사당으로 들어오려 했는데 뭔가 이상했다.

"거기서 뭐 합니까?"

뒤를 돌아보자, 십이율주는 우두커니 서서 마을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무사시도 의아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자 십이율주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난 못 들어가."

"무슨 말입니까? 걸어서 들어오라고요."

"안 돼."

"왜요?"

십이율주가 진심으로 곤란한 말투로 말했다.

"그 마을에 들어가면 망량선사가 날 죽일 거야."

"......"

농담은 아닌 것 같다. 이 상황에서 농담을 할 이유가 없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십이율주에게 질문했다.

"망량선사가 당신을 왜 죽인단 말입니까? 꿈에서는 당신과 계약을 맺을 정도의 사이인데..."

"흐흐... 네게는 망량선사가 귀엽고 앙증맞은 흑묘로 보이지? 내겐 아냐. 난 그를 마주칠 때마다 공포때문에 소름이 돋아."

자조적으로 웃던 십이율주의 말이 이어졌다.

"아무튼 못 들어가. 계약은 밖에서 할테니 넌 현몽을 통해 들어오라고."

"납득이 안 됩니다."

"개인사정이야. 더 캐묻지 말고 어른답게 진행하자."

십이율주의 말에는 약간 간절함이 묻어있을 정도였다. 말 그대로 다른 모든 행동은 되는데 이 마을에 출입하는 것만은 절대 안된다는 말투였다. 저렇게까지 거부하면 어쩔 수가 없었기에 나는 일단 여동빈의 사당까지 걸어갔다.

스르륵

잠시 후 잠이 오면서 꿈의 세계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나 뿐만이 아니라 십이율주, 그리고 무사시까지 오솔길에 나란히 서 있었다. 그리고 오솔길 맞은편에서 조그마한 흑묘가 어슬렁거리며 걸어왔다.

[ 안녕. 계약을 하러 왔군.]

"계약을 하면 정말 파천의 가호를 받을 수 있는 거겠지?"

내가 확인차 질문하자 망량선사가 벽 위로 폴짝 뛰어올라가며 말했다.

[ 거기 칼잡이는 안 돼.]

"뭐?"

파앗!

갑자기 미야모토 무사시의 신형이 뭉개지듯 사라졌다. 순식간에 꿈의 세계에서 추방당한 것이다. 놀라서 내가 그쪽을 쳐다보자 망량선사가 말했다.

[ 저 인간은 원월천살법의 정통계승자도 아니고 [옛 지배자]와 맞서싸울 의지도 없어. 오로지 자기자신의 무욕(武慾)에만 충실한 인간. 그런 놈에게 파천의 가호를 줘봤자 힘을 낭비할 뿐이지.]

"맞서싸울 의지가 없다고? 무사시는 해신의 본체를 직접 공격했는데 무슨 개소리야."

[ 그 때의 놈은 무인으로서 자신의 비기를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에 충만했을 뿐. 신적인 존재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공포를 직면하면 어떻게 대처할지 대비조차 되어있지 않다. 놈은 자격이 없어.]

"......"

[ 악신의 힘에 매료되어서 앞잡이가 될 수도 있겠지.]

나는 어렴풋이 망량선사의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절대지경에 오른 무사시는 자신의 정신력으로 해신의 공포를 이겨내는데는 성공했지만, 신의 본질과 마주쳐도 계속 싸워나갈 정도는 되지 못하는 것이다. 어둠의 공포를 직면하는데 필요한 정신력은 무인의 열망과는 다른 성질이기 때문이다.

나는 망량선사의 말에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 파천의 가호는 신과 맞서싸울 의지가 있는 인간에게만 주겠다는 건가?"

[ 그렇다. 또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자에게만.]

"너무 까다로운 거 아냐? [옛 지배자]나 사도는 엄청난 놈들이라고. 보통 인간은 그런 놈과 맞서싸울 엄두조차 낼 수 없어."

내가 항의하자 망량선사가 말했다.

[ 인간중에 직접 대항하려는 자는 너희같은 극소수 뿐이지. 자아와 욕심에 매몰되지 않고 본질을 추구하려는 자세가 되어 있다면 - 그런 재능있는 인간에게 파천의 가호를 주고 있다.]

"뭐? 그러면 나한테는 당연히 줘야 하는 거 아냐?"

[ 왜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옛 지배자]랑 싸우려고 없는 용기를 쥐어짜내고 있잖아. 대견하지 않냐고."

망량선사는 자신의 발을 핥짝거리며 대꾸했다.

[ 그러라고 한 적 없다. 인간에게는 기대한 적도 없다. 맞서싸우는 것 또한 너희의 선택이니 내가 특혜를 줄 이유는 없지.]

"어?!"

[ 그리고 단언하건대 너처럼 겁대가리 없이 [옛 지배자]의 공포에 굴하지 않고 죽어라고 들이대는 놈은 역사상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멍청함에 경의를 표하긴 하지만 잘 봐줄 이유도 없어.]

"......"

너무나 냉담한 반응이라서 힘이 쭉 빠질 정도다.

이 고양이 놈은 말 그대로 자신의 주관에 따라서, 인간이 맞서싸우든 말든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십이율주가 말했다.

"슬슬 계약을 진행했으면 하는데."

[ 그러지.]

스르르륵

[ 계약에 따라 너희에게 파천의 가호를 부여하노라.]

갑자기 망량선사의 몸뚱이가 확하고 연기처럼 터져나가더니 사방이 자욱한 어둠으로 물들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망량선사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나는 꿈속의 세계라서인지 초감각을 동원해서 주변을 찾아볼 수도 없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고요한 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언뜻 과거 마주쳤던 괴인의 피리소리인가 해서 움찔했지만 전혀 그 소리가 아니라서 안심했다.

' 이건...'

투박하면서도 맑은 소리였다.

구슬픈 것 같으면서도 감정을 고요하게 하는 소리였다.

마치 노래처럼 느껴질 정도다.

여태껏 음공을 겪어본 적은 없었지만, 이 소리를 듣고 있으니 저절로 내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어둠이 걷히는 기분이 들었다. 웃기는 소리지만 어둠 속에서 어둠을 물리치는 기분이었다.

' 왜지?'

또한 이상한 기분이 든다.

이 소리와 운율은 분명히 처음 들어본 것일텐데, 마치 아주 오랫동안, 먼 옛날부터 들었던 것같은 익숙함이 느껴진다. 그리움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분명히 들어본 적 없는 소리다.

원야(元夜)가 나를 채운다.

내면이 강렬하게 도야하기 시작했다. 그 어떤 무예를 성취했을때도 느낀 적이 없었던 각성감이 뇌를 한 올 한 올 일깨우면서 몸을 붕 뜨게 만들었다. 내 시선은 계속해서 넓어졌으며, 이내 좁은 땅을 벗어나서 천공을 향했고, 우주와 천공 사이, 심지어는 우주 바깥까지 번져 나갔다.

그 때 이상한 풍경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 후회 안 하는건가?]

누군가가 말하고 있다.

[ 일순(一巡)이 지나서도 다시 도달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어. 여긴 신조차도 올 수 없는 곳이야.]

누군가가 대답한다.

하지만 뭐라고 했는지 들리지 않았다.

각성감이 멈추었을 때 나는 망량선사의 꿈에서 깨어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뭔가 달라진 건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 몸을 둘러보았지만 내공이 늘어났다던가 술력이 증폭되었다던가 신기가 강해진 것 같지는 않았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진작에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왠지 불쾌한 기색으로 보였다.

"... 가지."

아무래도 자신만 파천의 가호를 받지 못한 게 불만으로 보였다.

마을을 나오자 십이율주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는 내게 손을 흔들었다.

"여어! 이걸로 최소한의 준비가 갖춰졌군."

"이제 정보를 주셔야죠."

"물론이야.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뭐죠?"

십이율주가 몸을 늘어뜨리며 말했다.

"백웅. 넌 신이 되고싶지는 않은건가?"

이건 또 무슨 질문이지?

나는 질문의 의도를 잘 몰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십이율주가 말했다.

"마왕 벽지상이라고 하는 놈도 처음에는 인간 마도사였다가 갈수록 힘을 추구해서 마왕의 경지에 이른 거지. 놈의 최종적인 목적은 [옛 지배자]에 버금가는 막강한 신격이 되는 거다. 그리고 말이지, 사실 마왕 벽지상보다는 너와 내가 그 목표에 더 가까운 상황이야."

"더 가깝다니?"

"칠요의 주인. 파천의 가호. 그리고 삼황오제의 인정과 가호..."

뇌까리던 십이율주가 말했다.

"이번에 [옛 지배자]의 침공에서 지상을 성공적으로 방어한다면, 너와 나는 이 공적으로 삼황오제의 만신전에 올라 신격이 되는 것도 가능할거란 말이지."

"하하, 무슨 농담을..."

나는 웃어넘기려다가 십이율주가 미동도 하지 않는 걸 발견하고 말을 멈췄다.

' ... 진심이군.'

아마 지금 십이율주가 말하는 신격이라는 건 일개 대라신선 수준을 말하는 게 아닐 것이다. 적게 잡아도 천계의 관리자, 혹은 삼황오제 직속에서 활동하는 강력한 사도를 의미하리라. 그건 영겁불멸의 강대한 권세를 휘두르는 불멸자가 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십이율주가 그 자리에 선 채로 다시금 물었다.

"백웅. 신이 되고 싶은가?"

"당신은 어쩌고 싶습니까?"

"내가 먼저 물었잖아."

"......"

"꼭 듣고 싶으니 대답해 줘."

나는 그 질문에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싫은데요."

"왜 싫지? 신격이 되면 필멸자의 모든 희로애락애오욕과 고통이 사라지고 천상천하를 쥐락펴락하는 힘을 갖게 될텐데. 지상의 황제 따위는 한손가락으로 치울 수도 있을거야."

"그게 싫은 겁니다."

나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래봤자 삼황오제의 부하라서 [옛 지배자]를 궁극적으로 쓰러뜨릴 순 없잖아요."

내 대답에 십이율주는 크게 당황한 듯 했다.

"아... 아니 뭐?"

"흉신을 쓰러뜨리고 르 뤼에의 부상을 막을 수도 없고."

"......"

십이율주가 갑자기 광소를 터뜨렸다.

"크크크, 크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왜 웃습니까?"

"하하하하하..."

그는 한참동안 큭큭거리다가 말했다.

"알았어. 내 질문에 대답하기 싫다는 건 잘 알았다."

"......"

이상한 식으로 해석한 모양이다.

그리고 나는 십이율주와 무사시를 데리고 장령곡으로 향했다. 십이율주는 장령곡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자신의 은하구절편을 꺼내더니 오각형에 갇힌 별 모양을 그렸고, 찬연한 별이 허공에 떠오르자 모종의 주문을 외웠다.

파앗!

"이걸로 [옛 지배자]가 이 곳에 들어올 수는 없다."

천우진은 십이율주를 날카로운 눈으로 보며 말했다.

"십이율주. 이건 비전(秘傳)되어 오는 고대신의 결계인가?"

"맞아, 환신 천우진."

십이율주가 은하구절편을 허리춤에 넣으며 대꾸했다.

"이 세상에서 [옛 지배자]에 대적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신격이 바로 고대신이지. 나는 우연히 그들의 힘을 빌리는 결계를 손에 넣었어. 이 결계라면 최소한 1년은 보호해줄 수 있을 거다. [옛 지배자]의 탐지능력도 피할 수 있지."

"어떻게 알게 된 거지? 고대신의 비밀은 [옛 지배자] 이상으로 감춰져 있다고 들었는데..."

"비~밀."

아무렇지도 않고 넘겨버린 십이율주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신성으로 만들어진 불사신을 없애는 법도 알려주지. 없앤다기 보다는 불사능력을 봉인하는 거지만."

이윽고 십이율주는 몇 가지 술법과 주문을 환신 천우진에게 말해주었다. 우리 중에서 가장 높은 술법경지에 이르러 있던 천우진은 굉장히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넌... 뭐냐? 인간인가?"

"왜 그런걸 물어보지?"

"이런 건 결코 인간이 알 수 없는 술법이다. 분명히 이건 신격이 창조한 주문이란 말이다."

천우진이 으르렁거리자 십이율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비~밀."

"......"

십이율주는 뭐가 급한지 주문의 전수가 끝나자마자 내게 말했다.

"자, 그럼 나는 월요를 해방하러 갈 테니 너희는 알아서 진행하고 있으라고~"

파앗

십이율주의 신형이 사라지자 망량이 말했다.

"백웅. 빠르게 움직여야 하오."

"알았소."

"십이율주를 끌어들인 이상 저 자보다 발이 느려선 안 되오. 가능하면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옛 지배자]의 화신때문에 어쩔 수 없었군..."

그는 무섭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지금 바로 한씨세가로 가서 한백령을 찾아보고, 그녀가 없으면 바로 수요를 해방하러 갑시다. 수요 해방이 끝나는대로 마왕을 찾아가서 이이제이(以夷制夷)의 계책을 시행하는 것이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