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500화 (499/1,615)

00500  암천향(暗天鄕)  =========================================================================

나는 뇌음사의 마도서를 정신없이 탐독하기 시작했다. 나는 순어구를 꽉 쥔 채 내가 이해하고 읽은 내용을 그대로 망량에게 전달했고, 망량은 순어구로 내 의지를 전해들으며 마도서의 내용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했다. 마도서는 총 백오십여 장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이 내용을 모두 읽고 옮겨쓰는데 하루동안 꼬박 밤을 새야 했다.

번역이 끝나자 망량이 종이를 모아 책자를 제본하러 갔다. 잠시 후 제본을 끝낸 망량은 책에 제목을 썼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제목을 읽었다.

"창힐지서(倉頡之書)."

"이름 그대로요. 여기에는 창힐의 정보가 잘 적혀 있었소. 백웅 당신은 만일에 죽으면 정보를 전승해야 하니 꼭 다 외우도록 하시오."

뇌정경을 운용하며 읽으면 될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궁금한게 있는데 이 책은 도대체 누가 쓴 거요?"

나는 의문을 토해냈다.

"이 마도서 뿐만이 아니오. 산해경(山海經)은 지은이도 불분명하지만 신화시대의 요괴나 삼황오제에 대한 기록을 모두 담고 있었소. 그 고대에 누가 있어서 인간에게 이런 귀한 정보를 전했는지 신기하구려."

"흐음... 당연한 의문이오. 내 생각을 말해도 되겠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망량이 말했다.

"칠요(七曜)를 인간이 하사받은 순서를 생각해 보시오."

"칠요를 하사받은 순서?"

"수요의 갑골문에 따르면 인간이 '거북이'를 바치며 번제를 지낸 끝에 전욱이 인간에게 수요를 하사했다 되어 있었소. 하지만 칠요라는 건 우리가 알기로 삼황오제와 [옛 지배자]의 조약때문에 만들어진 휴전의 증거. 또한 제작자는 신적 존재인 삼황오제 그 자체. 그렇다면 신이 먼저 만들어놓은 걸 인간이 제물까지 바쳐가며 억지로 받았다는 뜻이오."

"흠..."

"신화시대에는 우리가 잘 모르지만 신과 인간을 잇는 신관(神官)이나 제사장 계급이 따로 존재했을 것이오. 그 자들은 어쨌든간에 인간의 편이었고, 삼황오제가 칠요를 만들었다는 정보를 듣자 그걸 인간의 것으로 만들어서 힘을 강화시키려 했으리라 생각되오."

"그렇겠군."

그 말대로라면 삼황오제가 처음부터 칠요를 인간세력에게 주려 하진 않았다는 말이 된다. 당시 신의 하수인으로 활동하던 신관세력의 요청에 의해 넘겨줬으리라. 중화대륙에 모여있지 않고 세계 각지에 중구난방으로 떨어져 있는 칠요의 분포를 생각하면 납득이 되는 말이었다.

망량이 흡족하게 말했다.

"아무튼 아주 큰 성과요. 여기에는 창힐의 팔대화신이 지닌 술법과 외양, 그리고 성격의 특징, 강함이 모두 수록되어 있었소. 게다가 창힐이 신화시대에 부렸던 술수까지 기록되어 있었을 줄은..."

그렇다.

우리는 뇌음사의 마도서를 해석함으로서 창힐의 팔대화신이 지닌 특징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이다. 팔부중 개개인이 갖고 있는 술법은 물론 그들이 지닌 독특한 능력이 모두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본체인 창힐이 신화시대에 부렸던 술수 중 한 개가 이 마도서에 기록되어 있어서, 뜻밖의 소득이라 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창힐 본인의 약점이나 '최초의 문자'에 대한 건 기록되어 있지 않았으나 그건 다른 방법으로 정보를 입수했으니 다행이었다.

나는 신기해서 말했다.

"귀일여래(歸一如來)의 술(術)이라니... 창힐 이 자는 대체 불교(佛敎)와 무슨 관계요?"

귀일여래의 술수라고 되어있는 술법은 아주 독특했다. 창힐이 자신을 추종하는 인간세력의 수장에게 내린 술법인데, 그 효과는 권인(拳印)을 맺어서 주위의 마(魔)를 흡수하는 술수였다. 여기까지면 특이하지 않겠지만 이 술수는 흡수한 마(魔) 그 자체를 무기로 변화시켜서 휘두를 수 있다는 점에 있었다. 대라신선급 술수는 아니었지만 상당히 강력한 술법이 틀림없었다.

다만 여래라고 불리는 점이 걸렸다. 사실 괴어로는 좀 다른 이름이었지만 망량이 비슷한 느낌의 어휘를 찾다보니 여래라고 번역한 거였다.

그러나 실제로도 여래 외에는 번역할 말이 없었다. 마도서에 묘사된 초월적 존재의 위광이나 모습, 지권인(知拳印) 모두가 우리가 알고 있는 대일여래(大一如來)와 대동소이했기 때문이다.

이건 시대적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창힐이 활동하던 초기가 신화시대의 태동기라고 생각하면, 여래와는 시대가 맞지 않는다. 그 때는 너무 고대라서 불교 자체가 없었으리라. 그런데도 수하분신의 명칭이 팔부중이라고 불리는것도 그렇고 어쩐지 창힐은 불교쪽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였다.

망량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마도서가 뇌음사에 전해진 것과 큰 연관이 있겠지."

"무슨 말이오?"

"뇌음사는 중원에서 알려지기로는 난폭하고 잔인한 서장무림의 거두지만, 종교적 측면에서 보면 서장밀교의 수장이며 중원의 소림사보다 더욱 정통한 법통(法通)을 지니고 있소. 그런 뇌음사가 창힐의 약점이 적힌 마도서까지 전승하고 있을 정도라면, 뇌음사의 원류가 되는 천축쪽은 확실하게 창힐의 세력권이란 소리요."

"... 설마..."

"아직은 억측에 불과하오. 하지만 창힐은 우리 생각보다 더 대단한 존재일 가능성이 있소."

그렇게 중얼거린 망량이 말을 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할까. 이번 일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팔부중 긴나라(緊那羅)는 천인이나 용, 아수라(阿修羅)처럼 강대한 힘을 지닌 놈이 아니오. 간교한 책략에 능숙한 화신이니 놈의 꼬리를 잡으면 무력으로 일망타진하기 쉬울 거요."

"그렇다 해도 웬만한 신선과 싸우는 것만큼 힘들텐데..."

"어쩔 수 없소. 판이 이 정도로 커진 마당에 쉬울 리는 없잖소."

"후우..."

나는 한숨을 쉬었다.

팔부중은 화신간에 힘의 격차가 명확했다. 긴나라의 순수한 무력은 밑에서 두번째로서 최약체에 가까웠으며, 최강의 팔부중은 천인(天人), 용(龍), 아수라 셋 중 하나였다. 마도서의 전승에 따르면 그 세 명의 팔부중은 천축의 일개국가를 하루아침에 멸망시켰다고 할 정도로 강력한 놈들이라서 직접 붙으면 엄청나게 어려울게 분명했다.

우리는 팔부중과 창힐에 대해 알아낸 걸 천우진과 검마에게 알려주었다. 검마는 완전히 기력을 회복한 듯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신중하게 듣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검마가 약간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백웅. 내가 지금 상황에 도움이 되겠는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네 말대로라면 이제부터 대적할 상대는 최소한 대라신선급의 괴물들. 허나 나는 백련교주는 커녕 호법사자도 감당하기 힘드니..."

"......"

"지금의 내 힘으로는 백련교주마저 힘에 부칠 괴물을 상대할 수 없을걸세."

나는 검마가 우울해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적의 수준이 현격하게 높아졌는데도 아직까지 인간수준에서 머물고 있는 자신의 힘에 좌절감을 느낀 것이다.

나는 내심 탄식했다.

' 검마에게 수련할 시간을 줄걸 그랬어...'

그랬다면 순수무력으로 충분한 전력이 되었을 텐데, 괜히 쌍검술 수련때문에 그가 성장할 시간을 뺏어버렸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검마에게 쌍검술을 수련받기에는 시일이 너무 급박했다. 당장 제갈사를 산하사직도에 봉인할 수 있는 시간은 9일이 남았으며 천제는 48일 후에 내려온다. 무술의 전승처럼 복잡한 걸 이루기에는 너무 시일이 촉박했다.

그 때 옆에서 듣고 있던 천우진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야."

"왜?"

"내가 받기로 했던 거대 흑요석을 포기하지. 그걸 다른 놈에게 줘라."

"......!!"

천우진은 팔짱을 낀 채 말을 이었다.

"지금 우리 진형은 마왕이나 신의 사도와 싸우기에는 너무 빈약하다. 적어도 내 수준이 두 명은 더 있어야 이야기가 된다."

"알았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검마를 쳐다보았다.

"그럼 검마 어르신, 칠대절학과 지식을 받아들일 준비를..."

그러자 검마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럴 시간 없네."

"네?"

"과거 경험으로 보면 내가 절대지경의 문턱을 두드리기 위해서는 흑요석의 기억을 얻은 상태로 몇 년 간의 고련이 필요했네. 그리고 그 상태가 되었어도 투선 여동빈을 이대 일로 합공해서 감당하지 못했지."

"......"

"백웅. 답은 하나일세."

검마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진소청을 찾아가게. 그를 설득해서 우리편으로 끌어들이고, 그를 남은 기간동안에 절대고수로 키워내야만 하네. 지금은 그게 최선이야."

"지, 진소청을..."

"그 자의 재능이라면 기대할 수 있네. 현재 자네의 힘이 부족한 국면에 그 긴나라라고 하는 악당을 제압할 수 있는 조력자가 될 걸세."

맞는 소리다. 장삼봉 진인의 가르침을 받으며 한층 원숙해진 지금의 내 무술기억을 진소청에게 전승한다면, 진소청은 오래지 않아 절대지경의 초입에 이를 것이다. 어쩌면 그의 천재성으로 그 이상의 경지를 노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검마의 말에 선뜻 대답하기에는 꺼려졌다.

' 이건... 검마의 자존심을 꺾는 일이야!'

자기 앞에 놓인 절세기연을 포기하고 타인에게 그 기회를 넘긴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한 진소청의 재능이 자신보다 우위라고 인정하는 것 또한 사파의 종사로서 자존심이 다 뭉개지는 일이다. 나는 그런 검마가 어떤 심정으로 말을 했을지 익히 짐작할 수가 있었다.

내가 대답을 하지 못하자 천우진이 쓴소리를 했다.

"어물어물거릴 생각이냐? 네가 그렇게 행동하는게 더 못난 짓이라는 걸 모르겠나? 네가 해야할 일은 어설프게 배려하고 인의협의 눈물을 쏟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승리를 보여주는 거다."

"큭, 말꼬라지 하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서 투덜거렸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검마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내 생각으로는 이왕 이렇게 된거 판을 더욱 크게 벌리는게 좋을 듯 싶네."

"판을 크게 벌리다뇨?"

"지금까지는 세력의 균형때문에 눈치보여서 다 모으지 못했던 자들을 모두 마왕에 대항한다는 명분으로 끌어들이게. 십이율주, 백련교주, 뇌신류는 물론이고 자네의 내자(內子) 또한 말일세."

내자!

그 말에 숨겨진 짖궂은 뜻을 알아들었기에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 험, 미호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왜인가? 그녀는 웬만한 초절정고수보다 뛰어난 기량을 지니고 있네. 선천적인 뛰어난 요력과 매혹술, 술법력을 고려하면 좋은 전력인데. 그녀가 도움이 될 국면도 많을 걸세."

"그건..."

옆에서 듣고 있던 망량이 검마에게 말했다.

"검마 어르신. 백웅은 이미 미호와 함께 죽은 적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한시한때에 죽는 것을 보통 인간은 복이라 하겠지만, 전생자인 백웅에게 있어서는 악몽일 뿐입니다. 그걸 고려해 주십시오."

"흐음!"

"......"

나는 침묵했다.

' ... 미호의 죽음을, 더 보고싶지 않아.'

난 미호의 죽음을 복수하려다가 죽었다.

그리고 미호와 함께 죽음을 선택하기도 했었다.

미호가 나를 위해 죽음을 감수하고 미야모토 무사시에 맞선 적도 있었다.

그 모든 결과는 참혹하게 드러났고, 나는 그 때의 생각만 하면 안타까운 심정때문에 주먹이 절로 쥐어졌다. 미호를 좋아하는 만큼이나 그녀의 죽음을 두 번 다시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죽음으로 얼렁뚱땅 감정의 파열을 넘기긴 했으나 돌이켜보면 악몽이나 다름없는 기억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내가 망량을 비롯한 다른 동료들에게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망량도 검마도 오랫동안 내 전생에 참여해 왔기에 그 감정을 이해해주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듣고 있던 천우진이 비웃었다.

"하하! 무슨 헛소리를 하는거람."

"뭐?!"

"그럼 망량이나 검마나 제갈사의 죽음은 보고싶다는 거냐? 그들과 미호의 차이가 뭐지?"

너무 날카롭게 찔린 것 같다.

"... 그건..."

"미호를 좋아한다 좋아한다 말은 하면서도 그녀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것도 없지 않나? 사실 미호가 서왕모와 큰 관련이 있다는 건 파고들어야 할 부분인데도 네 녀석은 별 되도 않는 이유로 미호와의 만남을 외면해 왔지. 그 때문에 네 전생동안 얻은 성취가 둔해졌다는 건 부정할 수 없을 거다. 그 알량한 사랑놀음 때문에 여유가 있었는데도 천계의 비밀을 거의 파헤치지 못했어."

내가 꿀먹은 벙어리가 되자 천우진이 말했다.

"그 구미호를 좋아한다면 똑같은 전생동료로 대하는게 옳은 태도일 것이다. 내가 볼 때 너는 인간의 삶의 형태에 아직도 집착해서 모순을 보이고 있을 뿐이군."

"인간 삶의 형태에 집착한다고?"

"넌 아직도 네가 정상적인 인간처럼 여인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이어지는 안식의 삶을 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그 대상이 될 수 있는 미호를 무의식중에 과보호하려고 드는 거지."

"윽... 그건 억지야!"

내가 버럭 소리를 치자 망량이 손사래를 치며 끼어들었다.

"자자. 그쯤 하시오. 사제도 너무 확대해석했으니 반성하게."

"쳇."

천우진이 꽁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자 망량이 내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 다만 사제의 말도 틀린건 아니오. 정말로 백웅 당신이 인간의 삶을 누리고 이 전생의 굴레를 빨리 끝내고 싶다면, 미호도 동료로 받아들이는 게 옳소. 이제 우리는 천계와도 교섭할만한 힘이 생겼으니 머뭇거릴 필요가 없소."

"알겠소."

"또한 미호를 끌어들이면 더 이득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소."

나는 망량의 말에 납득할 수 있었다.

' 미호와 함께 가야겠다.'

동료들이 이 정도로 말한다면 나도 더는 망설일 수가 없다. 앞으로의 전생에서는 반드시 미호도 끌어들이고 말겠다. 천계가 방해가 된다면 천계와 싸우는 한이 있어도 그녀를 지키고 말 것이다.

"그럼 움직이겠소."

파앗

나는 먼저 진소청이 있는 청룡무관에 찾아갔다. 그리고 총사범으로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는 진소청을 먼 곳에서 쳐다보았다.

' ... 모르겠군. 성장을 일부러 멈추고 있는 건가?'

지금의 진소청은 그리 강해보이지 않았다. 지금의 내 기준으로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손쉽게 쓰러뜨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밤까지 인적이 드물 때를 기다릴까 했지만 시간이 별로 없었기에 일 리 밖에서 진소청에게 전음을 보냈다.

[ 진소청! 네 부모의 비밀을 알고 싶다면 지금 즉시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함곡관 근처의 소나무 숲으로 오거라.]

나는 그 전음을 날린 후 함곡관 근처의 소나무 숲에서 기다렸다. 이 곳은 예전에 남궁환을 구할 때 와봤던 곳이었다. 대략 반 시진 정도를 기다리고 있자, 내 전음을 들은 진소청이 자신의 창을 갖고 내 앞에 도착했다.

진소청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대는 누구지?"

"진소청. 나는 백웅이라고 한다."

나는 그를 향해 화요를 겨누며 말했다.

"나와 비무(比武)를 하자. 지는 쪽은 이기는 쪽의 부탁을 뭐든 하나 들어줘야 한다."

쿠우우우!!

나는 내 내공을 크게 끌어올렸다. 경세지경에 이른 내 내공은 엄청난 위압감을 뿜어내었고, 진소청도 크게 놀란 듯 주춤거렸다. 그러더니 진소청이 말했다.

"...!! 어찌 그런 내공을."

"어찌 생각해도 좋다. 받아들일 것이냐?"

"왜 이런 괴팍한 짓을 하는 거요?"

"그대의 재능이 탐나서지."

"백웅 당신이 내 부모에 대해서 알고있다는 게 사실인지 알 수가 없소."

나는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대의 부모는 진천휘라고 하는 자다. 날 이길 수 있다면 그에 대해 자세한 걸 모두 알려주지."

"......!!"

"청룡 이광이 알려주지 않은 모든 걸."

진소청은 흠칫 놀랐으나 이내 표정이 가라앉으며 내게 창을 겨누었다.

"좋소. 당신은 그 말을 반드시 지키시오."

"물론이다."

파바밧!

이윽고 진소청과 내 신형이 격돌했다. 나는 웅혼한 내공을 끌어올려서 가볍게 한 칼로 진소청의 측면을 때리듯 공격했고, 진소청은 그것만으로도 비틀거리며 맥을 추지 못했다. 나는 이어서 진소청의 공세를 수월하게 신법으로 회피하며 그의 몸뚱이에 격공장을 날렸다.

꾸웅!

"크윽!"

진소청은 텅 하는 소리와 함께 삼 장을 뒤로 날려가다가 제자리에 착지했다. 나는 검을 늘어뜨리며 말했다.

"왜 그러나? 겨우 이십 초가 지났는데."

"당신은... 뇌신류 고수요?"

"맞다."

나는 검을 옆으로 휘두르며 말을 이었다.

"너와 내 수준은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그래도 더 해볼 생각인가?"

"해 봐야 하지 않겠소."

지금의 진소청의 실력은 결코 강호에서 낮은 게 아니었다. 되려 초절정에서도 상당히 원숙한 경지로서 쌍문사가의 가주들에 비교해도 상위권의 실력일 것이다. 하지만 스무 번을 넘는 전생동안 무수한 기연으로 억지로 능력을 끌어올린 나에 비할바는 되지 못했다. 나는 그래도 덤벼보겠다는 진소청의 모습에 신기함을 느꼈다.

' 나였다면 정체불명의 강적에게 덤볐을까?'

아니, 아니다. 도망칠 생각부터 했을 것이다. 비무에 지면 어찌될줄 알고 덤빈단 말인가. 지금의 실력차가 대충 칼은 걸칠 수 있지만, 내가 전력을 다하면 삼십초 내에 진소청을 회칠 수 있는 차이라는 걸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나는 그런 진소청의 모습에 색다름을 느끼며 계속 칼을 부딪혔다.

"하압!"

"와라!"

까강!

깡!

강기가 여러 번 격돌하며 빛이 튀겼다.

' 쉽게 피해지긴 하는데...'

이상하다.

오십 초를 넘어서 육십 초 째에 접어든 상태에서 아직도 나는 진소청을 갖고놀고 있다. 진소청이 내게 이길 가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초반보다 훨씬 비무의 양상이 그럴듯하게 변해가는 걸 느끼고 있었다.

쐐액

"음...!!"

이윽고 진소청이 란나찰을 고르게 분배하며 창섬을 뻗어왔을 때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까지는 진소청의 공격에 빈틈이 많아서 내가 여유롭게 찌를 수가 있었는데, 지금 진소청이 보인 내전(內轉)과 외전(外轉)에는 빈틈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삼보절기로 쉽사리 회피하긴 했으나 반격하지 못한 것이다.

' 설마...?'

머릿속에 기괴한 가정이 떠올랐으나 말도 되지 않았기에 나는 집어치우고 비무에 몰입했다. 어느 새 나는 내기같은 걸 잊어버리고 간만에 진소청과 어울리듯 비무의 절초를 쏟아내고 있었다.

파파파팟

퓨웅

점점 바람소리가 거세진다. 나는 진소청이 완전히 홀황경으로 접어들어서 무아지경에서 창섬을 쏟아내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의 창끝이 더더욱 날카로워지며, 이윽고 강철의 폭풍이 정면으로 밀려드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일백 초 째!

나는 마침내 진소청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팔의 살가죽이 스쳤다. 피가 약간 솟구쳤으나 그건 신경쓰일 바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정말로 놀라고 말았다.

' 뭐야? 삼보절기에서 일반동작으로 넘어오는 촌음(寸陰)을...'

내 삼보절기는 무한정 펼칠 수 있는 무적이 아니었다. 삼 보의 간격을 점해두고 그 안에서 절대회피를 시전하지만, 이 호흡이 잠시동안 끊기는 빈틈이 있었다. 하지만 그 빈틈은 동격의 고수조차 제대로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는데 방금 진소청이 그 빈틈을 정확하게 찔러온 것이었다.

우연인가?

투쾅!

나는 진소청의 공격이 더더욱 격렬해지며 이윽고 내가 가진 모든 역량을 쏟아낼 정도가 되자, 그제서야 처음에 느꼈던 말도 안 되는 가정이 사실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진소청의 의념이 내 간합을 침범해서 굴공천축검을 헤집어놓고 있었다!

"... 으으윽!!"

콰앙!

나는 지금까지 내공을 제약하고 있던 걸 모두 풀어버리고 최강의 절초로 진소청의 몸을 튕겨서 날려버렸다. 더 이상 봐주다가는 내가 위험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으아악."

진소청은 훨훨 날아가더니 낙법을 취하지 못하고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나는 진소청이 팔십 초 째부터는 의식을 반쯤 잃고 무아지경에서 휘둘렀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진소청을 질린 눈으로 내려다 보았다.

"... 괴물같은 놈...."

그렇다.

진소청은 방금 나와 싸우는 도중에 벽을 깨고 성장한 것이다!

깨어난다면 싸우기 전보다 두 배는 강해지지 않을까? 나는 여태껏 싸우는 와중에 무공이 급성장하는 건 듣도보도 못했기에 아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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