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95 암천향(暗天鄕) =========================================================================
다음으로 제갈사는 어디서 나왔는지 약 200관에 이르는 금괴를 꺼내서 쌓았다. 보통 인간이라면 입이 딱 벌어질지도 모르는 거액이었으나 내게는 재물이 큰 의미가 없어서 큰 감흥은 없었다.
"이건 앞으로 필요할 활동 자금이고."
"그것도 다른 놈들에게서 뜯은 거냐?"
"세상에는 돈 많고 멍청한 놈들이 많으니까!"
별것아닌 것처럼 대꾸한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놈한테서 창힐에 대한 정보를 사 왔다."
"흐음!"
놈이라고 하는 건 노예상인 이족을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 창힐의 정보가 있으면 앞으로 나갈 수 있어.'
내가 제갈사의 말에 정신을 집중하며 들으려 했지만 제갈사는 운만 띄워놓고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난데없이 말을 멈추길래 나는 제갈사에게 물었다.
"왜 그래?"
제갈사가 힐끔 옆에 있던 천우진을 쳐다보더니 내게 말했다.
"확실하게 해 두지 않으면 이 이후의 이야기는 할 수 없어."
"확실하게 라면..."
"그거 말이다, 그거."
제갈사의 의도를 알 것 같다.
' 흑요석!'
흑요석을 보게 해서 내가 전생을 한다는 비밀을 공유하고 지금까지 내가 알아낸 것들을 알게 됨으로서 동료가 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비밀을 공유한다 함은 달리 말하자면 앞으로도 천우진을 우리 편으로 만들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제갈사의 의도를 머릿속으로 해석하고 있을 때 제갈사의 전음이 내게로 들려왔다.
[ 나는 흑요석을 공유하지 않는 걸 추천한다. 네 마음이겠지만 가급적 이 자리에서 천우진을 나가게 했으면 좋겠어.]
예상을 빗나간 첨언에 나는 황당해졌다.
[ 뭐? 흑요석의 술법을 쓰라는 말 아니었어?]
[ 현이가 있으니까 겉으로야 그렇게 말했지. 하지만 천우진은 이미 세계의 비밀을 꽤 알고 있었던 놈이고 새삼스레 네 녀석과 대의를 함께 할만한 요소가 약해. 더욱이 널 매우 싫어하지. 이대로 받아들이면 배신당할 게 뻔해. 아니, 배신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고 등에 칼을 꽂는 게 가능한 놈이야.]
[ ......]
[ 네 선택에 맡기겠다.]
꽤 복잡한 선택이다.
제갈사는 망량을 의식해서 겉으로는 흑요석을 내밀어 동료로 만드는 의식을 암시했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천우진을 동료로 받아들이는 걸 크게 거리끼는 것이다. 물론 제갈사가 지니고 있는 천우진에 대한 나쁜 감정도 작용했겠지만, 제갈사가 보기에는 천우진이 배신할만한 요소가 차고 넘친다고 파악한 듯 했다.
어렵다.
이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였다. 여태껏 제갈사의 제안 중에서 인간의 신뢰와 관련된 것은 틀린 적이 없었다. 그는 인간에게 염세적이며 극히 비판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기에 도리어 인간의 본질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기 때문이다.
"......"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천우진에게 말했다.
"천우진. 잠시 나가줬으면 한다."
"훗... 비밀이야기를 나누고싶은가."
"아니..."
"나가 드리지."
천우진은 냉소를 흘리고는 거침없이 바깥으로 휙 나가버렸다. 내가 뭐라고 말하려 했지만 제갈사는 그 순간 천우진이 나간 공간에 방음결계를 시전해 버렸다. 너무나 즉각적인 행동이었기에 내가 제갈사를 쳐다보자 그가 말했다.
"저 놈도 우리를 동료로 생각하지 않고 있어. 이런 일에 일일이 죄책감 느끼거나 변명하지 마라."
"음..."
망량이 상황을 눈치챈 듯 씁쓸하게 말했다.
"숙부. 천우진은 그런 녀석이 아닙니다. 난 그가 우리를 도와줄 거라 생각합니다."
"확신하냐?"
"네."
제갈사가 고개를 저었다.
"넌 그렇게 보겠지만 난 아니야. 여태껏 자기 잘난 맛에 살아왔던 무균상태의 천재가 그저 네 안위를 걱정해서 우리를 찾아온 것 뿐이지. 천우진은 결코 망량을 배신하지 않겠지만 나나 백웅은 언제든 배신할 수 있다고."
"하지만."
"현이 너는 지금 백웅의 흑요석을 건네받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거냐?"
"알고 있습니다."
"신의 사도나 다를 바 없어. 세계의 비밀과 칠요의 비밀을 홀로 캐낸데다가 지선 망량의 술법지식, 태평요술, 백수십 년에 이르는 무공수련경험과 절세신공과 비학이 모두 담겨 있지. 흑요석의 용량 때문에 그 모든게 온전히 전해지지는 않지만, 그것만으로도 엄청나다는 건 알고 있잖냐."
"......"
"천우진이 그런 기억을 넘겨받고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는 알 수 없어. 백웅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게 아니라면, 정상적이라면 그 기억을 악용해서 자신이 천하의 패권을 잡으려 할 것이다."
제갈사가 너무 단호하게 이야기해서 망량은 잠시 말문을 잊은 것 같았다. 그러나 꺾이지 않고 강한 의지로 말했다.
"전 사제를 믿습니다. 이번 생의 그는 이전과 다르다는 것도 생각을 해야죠. 그를 섣불리 배척하는 건 안 됩니다. 자칫하다가는 모든 기회를 잃을 수 있어요."
망량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흑요석을 전한다는 건 지금처럼 우리가 천우진을 놓고 아웅다웅했던 대화내용까지 고스란히 수록된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의식적으로 빼버릴 수는 있겠지만 천우진은 그런 위화감을 눈치챌 가능성이 높다. 자칫하다가는 이중으로 신뢰를 잃게 되어, 영영 천우진을 동료로 만들 기회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는데, 어쩔래 백웅?"
두 책사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나는 머뭇거리며 망량에게 말했다.
"망량. 내가 천우진을 믿고 못 믿고의 문제가 아니오. 내가 천우진을 내보낸 것은 그를 따돌리려는 게 아니라, 우리 또한 상황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었소. 방금 전까지는 아무런 의견조율도 없었잖소."
망량도 제갈사도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려."
"그리고 이렇게 우리 셋이 의논해서 그를 받아들이는 과정도 꼭 필요한 거 아니겠소? 이런 대화도 없이 내 독단으로 그를 받아들였다면 그것도 안될 일이었을 것이오. 왜냐하면 우린 동료니까."
내 말에 망량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거기까지 생각하다니... 당신은 확실히 예전과는 다른 그릇이 되었소."
제갈사가 헛기침을 했다.
"흐흠. 그래서 어쩔거지?"
"제갈사 네 말대로 천우진을 대책없이 믿을 수도 없어. 우선은 방음결계를 해제하고 다시 그를 불러들여서 진의를 알아보고 싶어. 그리고 내가 그를 판단한 후에 흑요석을 공유하겠어."
제갈사가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 위험한 거 아니냐? 천우진같은 대술법사가 배신을 하면 네 녀석은 두 번 다시 전생하지 못할지도 몰라. 놈이라면 영겁토록 봉인하는 술법도 시전가능해."
"걱정 마."
나는 제갈사의 말에 단호하게 대답했다.
"놈에 대한 신뢰는 망량에 대한 신뢰로 대신하겠어."
망량은 천우진을 전적으로 믿자고 했다. 그렇다면 천우진에 대한 신뢰는 망량이 책임지는 게 당연한 일이다.
이번에 배신당해도 나는 원망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망량이 배신해도 원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신뢰를 담보한다는 의미였다.
파앗
"이리 와 봐."
제갈사가 방음결계를 해제한 후 나는 천우진을 불러왔다. 그리고 넷이 모인 자리에서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천우진. 너도 알겠지만 나는 큰 비밀을 갖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너와 그 비밀을 공유하려 한다."
내 말에 천우진이 냉소했다.
"어쩌라는 거지? 누가 알려달라고 부탁이라도 했나?"
"그렇게 굴지 마라. 망량이 너를 믿고싶다고 말했으니까."
움찔
천우진은 망량이 거론되자 약간 반응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고 이야기를 이끌어나갔다.
"내가 너와 비밀을 공유하려는 이유는 앞으로 망량을 지키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비밀을 공유해야 망량을 안전하게 할 수 있어. 어차피 너도 망량을 지키러 여기에 와 있잖나? 네 목적달성을 쉽게 해 주려는 거다."
"하! 얼마나 큰 비밀이길래 이렇게 엄숙한지 모르겠군."
나는 히죽 웃으며 떡밥을 풀었다.
"정말 큰 비밀이지. 큰 비밀을 품고 있지 않은데도 해신을 쓰러뜨릴 순 없잖아."
"......"
"네 생각을 듣고싶군."
천우진은 깊이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한결 냉정해진 눈으로 망량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형. 지금 저 자가 내게 말해주려는 '비밀'이란 게 사형이 놈을 위해 활동하는 이유와 크게 관련있소?"
망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일세. 백웅이 지닌 힘의 비밀이기도 하지."
"... 영문을 모르겠군. 믿기 싫으면 멋대로 나를 쫓아내도 되잖소? 뭐하러 이렇게 질척대는지 이해가 안 가."
천우진이 툴툴거리자 망량이 말했다.
"사제. 나는 사제를 믿는다네."
"......"
침묵이 한동안 이어졌다. 천우진이 한참 후에 그 정적을 깨며 말했다.
"비밀을 알려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지. 어디 가르쳐 줘 보시오."
"그런 태도면 안 되지."
"뭐라고?"
나는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확신이 필요해. 당신 스스로의 입으로 이 비밀을 알게 되어도 결코 우리를 배반하거나 누설하지 않겠다고 말해 줘."
"말하지 않겠다면?"
"우리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지. 말했던대로 화요를 줄 테니 빚을 정산하고 마을로 돌아가."
내가 무덤덤하게 말하자 천우진이 코웃음쳤다.
"흥, 세게 나오는군... 알았소. 누설하지 않고 배신 안 하겠소. 이제 됐소?"
"이 흑요석을 받아."
휙
천우진은 내가 던진 흑요석을 받아들였다. 그 순간 나는 지체없이 흑요석의 술법을 시전했다.
우우웅
"......!!"
천우진은 기억이 밀려오는 동안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한동안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를 정리하느라 먼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머릿속이 정리되자 나를 쳐다보며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저, 저, 전생자(轉生者)?"
"방금 본 대로야. 나는 전생자고 망량과 제갈사는 그런 나를 돕고 있어."
"말도 안 돼. 그런 건..."
천우진이 침음성을 흘렸다.
"... 하지만 그러면 그 어린 나이에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힘과 보물을 집대성한 게 이해가 되는군."
망량이 말했다.
"사제. 이제 어찌하겠나?"
"뭘 말이오?"
"백웅은 약 스무 번의 죽음을 딛고 [옛 지배자]를 한 놈 쓰러뜨리는 데 성공했어. 우리가 그를 돕는다면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러자 천우진이 대꾸했다.
"말했듯이 내 견해는 달라지지 않았소. 저 망할 마도사 놈과 마찬가지로 헛된 노력에 가깝다 생각하오."
저 망할 마도사?
제갈사를 힐끔 쳐다보았지만 제갈사는 표정이 달라지지 않았다. 천우진의 말이 이어졌다.
"왜냐하면 해신은 [옛 지배자] 중에서도 격이 낮은 존재. 말석(末席)에 존재하는 놈이오. 그놈보다 더 엄청난 신격이 많다는 건 이전에도 얘기했잖소. 해신보다 100배 더 강한 존재가 있을수도 있소. 그것이 진정한 이 세계의 공포이자 절망이오."
"그럼 사제에게 묻지. 자네도 백웅이 1회차나 2회차 전생한 시점의 기억을 봤겠지?"
"봤소."
망량은 격렬하게 외쳤다.
"그 때의 무지렁이 백웅이 해신을 어떻게든 쓰러뜨릴 거라고 누군들 상상할 수 있겠나? 비록 커다란 운이 따라줬지만 운으로라도 해신을 잡을 존재가 현 지상계에 존재하는가? 그 고매한 대라신선들조차도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그 물음에 천우진은 할 말을 잊은 듯 했다.
"음... 그건..."
"전생자의 발전가능성은 감히 우리같은 필멸자가 측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렇게 말한 망량이 천우진에게 다가가서 손을 잡았다.
"사제! 제발 도와 주게. 부탁일세."
"사형."
"나는 예전부터 전생하는 백웅을 돕고 있으나 서서히 힘의 한계를 느끼고 있네. 적은 한없이 강대해져가고 있으나 백웅을 따라가다보면 그 적수의 힘을 따라잡기에는 시간도 여력도 부족해. 내가 이번에 신열을 감수하는 모험을 한 것은 이대로라면 백웅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무력하게 살해당할 것 같았기 때문일세."
"......!!"
"해신을 쓰러뜨렸으니 이제부터 세계의 균형은 크게 뒤틀리고 또 다른 마(魔)가 전면에 부상할 걸세. 계속 적은 인지(人知)를 초월해서 강해질 걸세. 아무렇지도 않게 사도급 적수가 곳곳에 출몰할지도 모르지. 자네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어쩌면 백웅은 창힐을 찾기도 전에 돌연사할지도 몰라."
천우진은 멍하니 있다가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자,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망량이 천우진의 손을 놓자 그는 진정으로 고뇌하는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말했다.
"정말로 네 녀석은 르 뤼에가 부상하는 종말의 때를 막을 자신이 있냐?"
"자신같은 건 없어. 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나는 말을 이었다.
"할 수 있는데까지 해보겠어. 설령 막지 못한다 해도 하다보면 최대한 재앙을 막을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흐음. 추가 조건이 있다."
"뭐? 어떤..."
"대가 없이 돕긴 싫다. 태평요술을 비롯한 모든 술법지식을 내게 흑요석으로 넘겨. 그렇게 하면 최선을 다해 도와주지."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술법의 용량 또한 커지므로 사람의 키를 몇 배나 뛰어넘는 거대흑요석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 정도의 거대 흑요석은 희귀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번에 천우진한테 써 버리면 다른 사람들이 그 수혜를 입기 힘들어진다. 사실 이건 망량이나 제갈사, 검마, 혹은 진소청을 급성장시키기 위해서 아껴두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천우진이 귀찮은 티가 역력한 표정을 지었다.
"거대 흑요석이 필요하다면 더 찾으면 될 거 아니냐? 빌어먹을, 몇 마디 했는데도 이렇게 멍청해빠졌다니 속이 터지는군."
"윽."
"사형은 정말 보살이군. 이런 놈 옆에서 계속 일했다니... 암(癌)은 안 걸렸나."
그렇게 중얼거린 천우진이 말했다.
"아무튼 도와주겠단 소리다."
"고마워!"
나는 천우진이 동료로 확실히 들어왔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긴가민가 했지만 망량이 적극적으로 나서준 덕에 천우진이 여러가지로 납득한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망량이 없었다면 결코 천우진을 영입할 수 없었으므로 나는 새삼 망량의 존재에 감사했다.
' 설마 신열을 얻어서 아파지는 것도 망량의 계산...?'
그 계기에 혹시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망량이 거기까지 계산했다면 그는 사람의 심리를 다루는데 천재적인 자질이 있는 것이다. 물론 망량이 그걸 자기 입으로 이야기해줄 리는 없었기에 나는 알아서 추측하는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정리되자 제갈사가 그제야 창힐의 정보를 꺼냈다.
"노예상 놈한테서 들은 창힐의 정보는 좀 이색적인 거였어."
"어떤 건데?"
"창힐은 이 세상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고, 감시를 위해서 많은 화신(化神)을 지상계에 보낸다고 하더군. 여기까진 우리도 얻은 정보였다."
제갈사가 자신의 턱을 괴며 말을 이었다.
"문제는 그 화신의 숫자는 총 여덟 명."
"여덟 명이라고?!"
나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화신이란 걸 보통 그렇게 많이 만들 수 있는건가?!"
화신!
화신이란 강력한 대라신선이나 사도급 이상의 존재들이 지상계에 직접 현신하기 꺼려질 때 자신을 대행하는 존재를 임의로 창조하는 것이었다. 화신의 위력은 본체보다는 약한 게 보통이었지만 그래도 신적 존재의 의지를 대리하는 것이기에 보통 인간이 대적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신적 존재라 해도 화신을 만들 때는 상당한 힘을 소모한다고 알고 있었다.
제갈사가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창힐은 우리 생각보다 더 특별한 존재일 가능성이 커."
"으음."
"더 문제는 그 화신들이 최근에 활동한 게 아니라 아주 오래 전, 어쩌면 중화의 역사 초기부터 활동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제갈사의 말이 이어졌다.
"놈들의 명칭이나 정체도 들으려 했는데 노예상인 놈이 바가지를 씌우려 하길래 듣지 못했어. 터무니없는 대가를 요구해서 어쩔 수 없이 물러나왔지."
"즉... 창힐의 화신이 여덟 명임을 알게 된 게 수확이다?"
"물론 그것만은 아니야. 놈의 화신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천축(天竺)이나 뇌음사(雷音寺)를 찾아가 보라고 하더군."
천축은 서쪽에 있는 거대한 대륙이며 뇌음사는 천축과 중원의 경계에 있는 라마승들의 절이었다. 뇌음사 또한 무림세력으로 분류되었는데 그 이유는 뇌음사의 라마들도 무공을 높은 경지로 익혔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천축... 뇌음사라... 영 알 수가 없군. 중원대륙을 관찰한다면서 왜 서방과 관련이 있지?"
창힐의 의도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때 옆에서 듣고 있던 망량이 상황을 정리했다.
"이제부터 다각적으로 움직입시다. 암천향을 정면으로 통과해서 달까지 가서 창힐을 찾는 건 최후의 방법이니, 어떻게든 화신을 추적해서 붙잡은 후 그 자의 진의를 듣는 수밖에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