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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494화 (493/1,615)

00494  암천향(暗天鄕)  =========================================================================

나는 천우진과 함께 망량을 데리고 장령곡으로 돌아왔다. 천우진은 내가 쓰는 사도의 권능 덕에 즉시 오게 되자 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건...?"

나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그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능력인지 알고 있나?"

"잘은 모르겠지만 신의 힘이군."

그렇게 중얼거리던 천우진이 말했다.

"그리고 축지법과는 완전히 다르군."

천우진은 망량을 눕히고 주문을 외며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까 구천현녀의 힘을 빌린 비술로 망량의 상세를 진정시킨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했고, 천우진이 직접 나서서 신열을 가라앉히기로 한 것이다.

우우웅

천우진의 주문이 이어질수록 망량의 안색에 붉은기가 돌았다. 과도한 신력때문에 억압되어 있던 생명력이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명백히 호전되고 있는 중이라 내가 옆에서 지켜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자 천우진이 말했다.

"다행히 사형의 목숨을 살렸으나 신열의 부작용으로 사형의 명이 15년 짧아졌다."

말투가 달라졌다.

"......"

"너는 사형의 인생 15년을 책임질 수 있나?"

아까까지 욕지기와 반말을 하던 천우진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침착해 보였으나 그 내면에는 분노와 살기가 억눌려 있었다. 나는 아직도 놈이 위험한 상태라는 걸 깨닫고, 이 질문에 최대한 신중하게 대답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 잘못 대답하면 안돼.'

천우진은 내 동료가 되기로 한 게 아니다. 망량이 모든 걸 버리고 나를 따르고 있기 때문에 의혹과 의심을 품고 망량을 보호하기 위해 곁으로 온 것이다. 나는 생각을 하다가 그의 말에 대답했다.

"책임질 수 있다."

"말은 잘 하는군. 사형이 잃어버린 수명을 어찌 돌려줄 생각인가?"

"15년 내에 천계에 바칠 공양물을 찾아내면 그의 수명을 늘릴 수 있겠지. 반드시 돌려줄 거다."

"후우."

천우진이 한숨을 쉬었다.

"사형의 상태를 안정시켜야 하니 나가."

"알았어."

나는 계속 말을 붙이면 안된다는 걸 눈치로 깨달았다. 말을 거는 것만으로도 화를 내는 극도의 짜증과 불만 상태로 보였다. 무슨 말을 하든간에 부정적인 반응이 나올 게 뻔하다. 그래서 재빨리 빠져나와서 장령곡의 시비를 찾아갔다.

"아직도 곡주께선 돌아오지 않으셨나?"

"네."

"행선지를 밝히진 않았고?"

시비가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보름 후에 돌아온다고만 말씀하고 나가셨습니다."

"다급하게 나갔나?"

"... 네. 상당히 급해 보이셨습니다."

뭐지?

제갈사가 보름 동안에 뭘 한다는 거지?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비에게 좀 더 자세히 질문했다.

"내게도 아무런 말을 남기지 않았단 말인가?"

"남기셨습니다."

"어떤 말을?"

"수련을 열심히 하라고..."

"......"

뻔한 이야기같다. 하지만 나는 제갈사가 사라진 이 상황이 상당히 중대한 사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제갈사는 흑요석을 통해 지금까지의 전생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상태였으므로 어지간히 중대한 일은 모두 나와 의논하게 되어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보름씩이나 용건도 남기지 않고 자리를 비우는 건 이상했다.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나 혼자서 술법과 권능을 동원해서 제갈사를 찾고싶었다. 하지만 나는 냉정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 급하게 굴다가 일을 다 망치면 안 돼!'

정말로 제갈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라면 나 혼자서 허둥대서는 더더욱 안 된다. 나는 지금 내가 해야할 일은 하루속히 망량을 신열에서 회복시키고, 망량의 조언을 듣고 계획을 세우는 거라는 걸 깨달았다.

' 음... 하지만 손놓고만 있을 수도 없어. 적어도 제갈사의 행적 정도는 간략하게 알아 보자.'

그래야 망량과 이야기할 때 이야기가 빨리 진행될 것이다.

나는 손을 들어서 천신경의 술수를 발동했다. 그리고 근처에 있던 강한 영을 찾아서 그에게 물었다.

[ 나는 철권성존(鐵拳聖尊) 무악. 내게 무슨 용건인가?]

무림인인가?

잘은 모르겠지만 별호를 보아하니 무림인 출신의 영령같았다. 천신경의 술수로 불려올 정도의 영은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의 영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철권성존 또한 생전에서는 무림에서 한가락 하는 고수였으리라. 나는 철권성존 무악에게 물었다.

"이 진랑곡의 주인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의 행적이나 사라진 방향을 추적하고 싶다."

그러자 철권성존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 미안하지만 그건 내 능력 밖의 일이다. 난 싸우는 것밖에 못한다.]

"천신경의 술수로 불려나왔으면 하나의 소원을 들어줘야하는 거 아니었나?"

[ 흠... 시도할 순 있겠으나 그런 추적술은 내가 생전에 익히지 않았다.]

철권성존 무악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 그래! 다른 자를 추천해주마.]

"누구 말이냐?"

[ 내 생전에 추적술로 강호일절(江湖一絶)이던 인물이다. 옥뢰추혼(玉雷追魂) 수춘(壽椿)의 추적술이면 찾을 수 있을지도...]

"확실한가?"

[ 내 시대에 옥뢰추혼의 추적술은 강호의 그 어떤 고수도 피할 수 없었다. 그의 추적술은 정말 대단하다.]

"그 영과 감응해 다오. 할 수 있지?"

[ 알겠다.]

철권성존의 영혼이 어딘가로 강하게 집중하는 게 보였다. 약 일 각의 시간이 지난 후, 내 천신경의 술수 범위로 누군가의 영혼이 강하게 날아오는 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다른 지역에 있던 옥뢰추혼 수춘의 영혼이 부름을 받고 원래 자기 구역이 아닌데도 여기까지 온 모양이었다.

[ 뭐지? 왜 날 부른건가?]

이윽고 옥뢰추혼 수춘의 환영이 내 눈 앞에 나타났다.

[ 난 할 일 다 했으니 간다.]

철권성존이 슬며시 사라졌다. 그리고 내 천신경의 십지(十指) 중 하나의 불꽃이 사라졌다. 어쨌든 부탁을 들어주긴 들어준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옥뢰추혼 수춘에게 말했다.

"옥뢰추혼 수춘이여. 장령곡주를 찾아야 한다. 네 추적술로 찾아다오."

[ 좋다. 그럼 찾아낼 때까지 내게 몸을 맡기겠는가?]

"완전히 맡기는 건 좀 그렇고 적당히 찾을 단서만 찾아줘도 돼."

[ 알았다.]

슈웃!

옥뢰추혼 수춘의 영혼이 내 몸에 빙의했다. 그는 내 몸을 움직일 수 있었지만, 나는 완전히 그에게 내 몸의 통제권을 넘기지 않았다. 그가 헛된 짓을 할까봐 지켜보며 언제든 끼어들 수 있게끔 반만 넘긴 것이다. 수춘도 그 사실을 아는지 내게 말했다.

[ 그 자의 소지품이 필요하다.]

[ 어떤 소지품?]

[ 체취나 혈액 등등 몸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들...]

나는 옥뢰추혼의 요구에 제갈사의 장검을 방에서 꺼냈다. 제갈사는 마도사이기 때문에 장검은 심심해서 사람 죽일때만 쓸 뿐 평소에는 잘 들고다니지 않았다. 장검을 든 옥뢰추혼은 잠시동안 기를 끌어올리더니 비취빛 기운을 장검에 불어넣었다.

위잉

[ 오오.]

나는 감탄했다. 옥뢰추혼과 공유된 시야에 기(氣)로 만들어진 실이 길게 늘어뜨려진 걸 보았기 때문이다. 강호에 온갖 추종술의 대가들이 많다지만 이런 수법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옥뢰추혼 수춘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 이게 내 성명절기인 옥뢰추혼이다. 특수한 기공으로 상대방의 기를 탐지해낼 수 있지.]

[ 뭐? 별호가 옥뢰추혼이라면서.]

[ 내겐 특수한 사정이 있어서 강호에서 정식명호를 쓸 수 없었다. 그래서 성명절기를 그대로 명호로 삼았지.]

[ ......?]

이상한 놈이다.

특수한 사정이라니 뭔 소리일까?

파밧

[ 네 말대로면 시일이 얼마 되지 않았으니 지금부터 추적하면 육백 리까지는 따라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윽고 옥뢰추혼이 내 몸을 움직여서 유연하고 빠른 신법으로 움직이는 걸 보자 깜짝 놀랐다.

[ 야 잠깐! 옥뢰추혼!]

[ 왜 그러지?]

옥뢰추혼이 뛰다말고 멈춰서자 나는 황당해서 외쳤다.

[ 너 방금 쓴 거 뇌영보(雷影步) 천주살(天柱殺)이잖아!!]

그랬다.

옥뢰추혼이 거미줄같은 장령곡의 지형을 돌파하며 사용한 보법은 뇌신류의 실전무예 중 하나로, 강력한 위력을 품은 뇌영보 천주살이었다! 뇌영보 천주살은 보법오의로서 웬만한 무림의 보법을 능가하는 뛰어난 무공이었다. 내가 어떻게 아냐면 당연히 전생하면서 이광 밑에서 죽어라 배웠던 무공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러자 되려 옥뢰추혼이 당황해했다.

[ 음... 너도 뇌신류? 아니 사대무류 출신이냐?]

[ 뇌신류다.]

[ 내 후대사람이군.]

우리 둘은 서로의 사승관계를 따지지 않았다. 나도 뇌신류에 별로 소속감이 없을뿐더러 옥뢰추혼 또한 자신이 죽은지 수백 년이나 지났다는 걸 알고 있으므로 사승을 따지는게 무의미하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놀라서 묻자 옥뢰추혼이 말했다.

[ 놀랄 거 있나? 백련교가 신강에 있다 해도 사대무류의 고수들은 지속적으로 중원무림을 염탐하러 나왔다. 나 또한 뇌신류 호법사자의 직계제자로 그 분의 명을 받고 중원에서 은밀히 활동하던 10대 밀정 중 하나였다.]

[ 밀정 치곤 너무 명성이 높은 것 같은데.]

[ 응?]

[ 천신경의 술법은 생전에 거대한 명성을 지니고 있었거나 영격이 높은 자를 따로 구분하는데, 당신은 전자같군.]

앞서 철권성존은 보나마나 무림에서 알아주는 거대한 세력의 패주였을 것이다. 그런 철권성존이 최고의 추종술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한 옥뢰추혼의 실력과 명성 또한 무림에서 최고의 대가였으리라. 이 정도의 찬란한 명성을 지니고 있다면 이미 밀정이라고 하기엔 그른 것이다.

그러자 옥뢰추혼이 맥빠지는 대답을 했다.

[ 알 게 뭐냐? 내가 중원에서 결혼하고 애 낳고 늙어죽을 때까지 내 정체가 뇌신류라는 건 들키지 않았다. 정보수집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어서 평안했을 뿐이야. 그 땐 중원무림하고 백련교가 사이가 좋았어.]

[ ......]

[ 아무튼 나는 할 일 하러...]

[ 잠깐. 그 옥뢰추혼이라는 절기를 나는 배운 적이 없어. 당신은 어떻게 배웠지?]

내가 물고 늘어지자 옥뢰추혼은 신경질을 냈다.

[ 뇌신류 귀혼일파(鬼魂一派)의 일대제자였다. 됐나?]

[ 옥뢰추혼은 귀혼일파의 무공이라는 거냐?]

[ 빌어먹을. 네놈 무공은 엄청나게 대단해 보이는데 대체 뇌신류에서의 위치가 어떻게 되는 거지? 설마 뇌신류 내부의 계파를 하나도 모르는 거냐?]

[ 궁금해서...]

[ 그런걸 나 따위한테 물어서 뭐하려고.]

옥뢰추혼이 투덜거리다가 말했다.

[ 어이. 하나만 부탁해라. 제갈사라는 자를 추적할지 귀혼일파 무공을 설명해 줄지.]

나는 순간 고민이 되었다. 옥뢰추혼은 뇌신류의 이전시대 고수같았고 특이하게도 뇌신류답지 않게 추종술의 대가였다. 그에게서 귀혼일파에 대해서 좀 더 상세한 설명을 들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덤으로 추종술인 옥뢰추혼을 얻으면 앞으로의 전생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아쉬움을 누르고 말했다.

[ 방해해서 미안. 제갈사를 찾아 줘.]

[ 진작 그럴 것이지.]

옥뢰추혼이 있다는 것만 알아도 좋다. 있다는 것만 알아도 다음번에 또 소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제갈사가 실종된 비상사태의 단서부터 찾는 것이었기에 우선순위를 헷갈리지 않기로 한 것이다.

파바밧

옥뢰추혼은 기사(氣絲)를 따라서 거침없이 움직였다. 그는 기사를 따라 움직이는 도중에 함정이 있는지 살피는 버릇이 있었고, 그 때문에 경공술이 그렇게 빠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옥뢰추혼은 자신이 약속했던 육백 리 중에서 사백 리를 이동한 상태였다.

옥뢰추혼이 말했다.

[ 그 자는 남쪽으로 갔어.]

[ 남쪽이라...]

[ 이쪽 방향으로 쭉 갔다는 게 느껴지는군.]

그는 계속 이동했다. 그리고 약속했던 육백 리를 더 움직이고도 모자라서 백오십 리 정도를 더 이동했는데, 거기에서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이상하군. 기사가 끊어졌어.]

[ 이상한 일인가?]

[ 기사의 흔적을 떼냈다는 건 유령처럼 사라졌다는 뜻이야. 그런 건 있을 수 없는데...]

[ 짐작가는 거 없나?]

[ 모르겠군. 내 능력으론 여기까지야.]

[ 알았어. 가 봐.]

나는 옥뢰추혼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주변 지형을 둘러보았다.

"여긴..."

돌려보낸 데는 이유가 있다. 이 일대가 낯익었다.

"분명 거기군."

과거 내가 백련교 밑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나는 그 때 노예시장에 위장잠입을 하기 위해서 어딘가로 인도되었었다. 그리고 노예시장에 참가한 후 여러가지 일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 이 장소는 바로 노예시장이 열렸던 곳!

풍신류와 황궁이 관련된 중원 최대규모의 노예시장이 바로 이 근처에서 열린 것이다.

' 그렇다면 흔적이 유령처럼 사라진 이유는 이 근처에서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차원을 열고닫았다는 소리군.'

그 때 노예시장은 다른 무림세력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서 이족 마도사의 힘을 빌려서 혈계(血界)와 이어지는 장소에서 열렸다. 누군가가 물질계에 결계를 쳐서 혈계의 직통로를 만들었던 원리였다.

제갈사는 이 장소에서 차원을 열어서 혈계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

나는 이 자리에서 차원을 넘나들수 싶었으나 그 정도의 술법재간이나 마법이 없었다. 게다가 차원을 돌파할 수 있는 사불상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사도의 권능을 사용해 봤지만 이런 경우는 권능이 통하지 않는 듯 했다.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에 나는 우선 장령곡으로 복귀했다.

무려 칠백여 리 이상을 내 몸으로 이동했기 때문인지 시간이 꽤 흘러 있었다. 망량은 완전히 혈색이 좋아져서 침상에 앉아 있었고 천우진이 맞은편에 있었다. 나는 망량에게 말했다.

"망량. 이제 괜찮소?"

망량은 다소 침울한 표정이었다.

"면목이 없구려.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고 이 꼴이라니..."

"누구나 실수할 수 있소. 다음번에는 신열을 제어할 방법을 마련하면 되잖소."

"... 고맙소."

그리고 나는 망량과 천우진에게 현재 제갈사가 사라진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망량이 말했다.

"백웅 당신의 추측대로 제갈사 숙부가 옛 혈계와의 통로를 통과했다면 이유는 하나요."

"어떤 이유요?"

"그 [노예상인]을 만나려고 하는 것이라 생각하오."

"그렇겠지."

노예상인!

풍신류와 황궁의 은밀한 조력자이자,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족(異族)은 노예상인으로서 인간을 매매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는 초고대에 인간을 창조했다 하는 [옛 존재]라는 종족으로서 마도에도 능통했다. 나는 과거에 제갈사의 지인인척 하면서 노예상인과 거래해서 마수소환의 팔찌를 얻은 적이 있었다.

망량이 말했다.

"제갈사 숙부라면 괜찮을 것이오. 그쪽은 그의 전공이니 되려 우리가 어설프게 끼어드는 게 안좋을 수도 있소. 그리고 정말로 위험하다고 생각했다면 당신에게 자신의 행선지를 밝히고 도움을 요청했을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음 그런가..."

"며칠 기다려 봅시다."

나는 망량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괜히 혈계의 문을 열 수 있는 존재에게 경계심을 주면 안쪽에 가 있는 제갈사가 되려 위험해질 수도 있다. 나는 망량과 며칠 더 살펴보다 움직이기로 합의하고 각자의 수련을 거듭했다.

그리고 망량의 말대로 제갈사는 그로부터 사흘이 지나서 장령곡에 불현듯 나타났다.

"크크. 내 걱정 많이 했나?"

제갈사는 내가 그를 찾아헤맨 이야기를 하자 낄낄거렸다. 나는 불편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망량에게 갑자기 큰 일이 생긴 상황이었어. 동료의 안위를 걱정하는 건 당연하잖아."

"그래서 어쩌다보니 저 천우진이 장령곡에 와 있다라..."

제갈사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천우진을 쳐다보았고, 천우진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들은 서로가 불편한 관계로 보였다. 제갈사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무튼 [노예상인]한테서 몇 가지를 구매해 왔다."

스윽

제갈사가 내게 마수소환의 팔찌를 줬다. 나는 엉겁결에 그 팔찌를 받으며 말했다.

"이건..."

"익숙하지? 사용법은 이미 알고 있을거다."

"이봐. 초상기인을 만드는데 장령곡의 재산을 다 쓴 거 아니었어? 이건 또 어떤 대가를 치른 거야!"

제갈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

"설마 자신의 수명을...!!"

내가 놀라서 외치자 제갈사가 마치 병신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너 왜 그래? 돌았냐?"

"어... 아니..."

"개소리 작작 좀."

제갈사의 일침에 나는 갑자기 민망해져서 머리를 긁었다.

"......"

제갈사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내가 장령곡의 재산이 다 떨어진다고 해서 그거 못 살 이유가 있나? 장령곡의 재산은 내가 가진 것 중 일부에 불과하다."

"돈하고 보물이 어디서 났는데?"

"강호에는 배교교주인 나와 거래한 병신들이 좀 있지. 버러지놈들한테서 조금 뜯어낸 후 그 재물을 지인을 통해서 술법보물로 바꿨다."

"어, 어떻게?"

제갈사는 비직 웃음을 지었다.

"안 가르쳐 줘 병신아. 전생하는 놈한테 내 밑천을 왜 말해주냐?"

"......"

나는 망량을 구하면서 벅차올랐던 마음이 한순간에 식는 걸 느꼈다.

그래 이 놈은 이런 놈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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