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491화 (491/1,615)

00491  암천향(暗天鄕)  =========================================================================

나는 장삼봉이 칠대절학을 비롯한 내 무공을 들여다볼 때까지 차분하게 명상을 하며 기다렸다. 이혼대법을 통해 한번에 2가지 행동을 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이제는 내공도 술력도 출중해졌기에 명상만으로도 상당한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내가 명상을 끝낸 건 그로부터 두 시진이 지나서였다. 그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장삼봉이 말했다.

[ 이해가 가지 않는구려, 연자여.]

[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가 반문하자 장삼봉은 당황스러운 듯 말했다.

[ 그대에겐 이미 천둔검(天遁劍)이 있거늘 이토록 돌아올 줄이야... 실로 고행(苦行)... 차라리 그때 여동빈에게 의지했다면...]

[ ......?]

[ 허나... 어쩌면 이 모든 게 운명일지도.]

장삼봉의 말은 무슨 뜻인가?

나는 신경이 쓰여서 명상과 가부좌를 풀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장삼봉이 말했다.

[ 연자여. 수련에 앞서 먼저 말해둘 것은... 무신(武神)이라는 존재에 대해서요.]

나는 그 한 마디에 저절로 집중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무신!

진소청이 어렸을 적 그 존재와 마주쳤으며, 은연중에 여동빈과 백련교주도 그 존재와 마주쳤음을 이야기했었다. 장삼봉은 자연스럽게 내 시야에만 비치는 자신의 환영을 만들었는데 세간에 알려진 장삼봉의 초상과 그다지 다른 건 없었다. 말 그대로 선풍도골로서 이야기책에 나올 법한 신선같은 기풍이었다.

[ 나 또한 등선하기 전에 무신을 마주쳤소.]

[ 정말입니까? 그는 어떤 존재지요?]

[ 아지랑이같은 자였지...]

[ 신적 존재입니까?]

장삼봉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 아마도.]

[ 애매하군요.]

[ 그 존재가 구체적으로 어떤 존재인지는 천계에서도 아는 자가 없소... 신출귀몰하게 시공간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데, 그 존재는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소. 단지 자신의 의지를 상대에게 전달하고 사라질 뿐.]

[ 그래서 아지랑이라고 하신 거군요.]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 혹시 그 무신이라는 자가 진인께 심득을 준 겁니까?]

[ 아니오. 그렇지 않소. 나 뿐만 아니라 그와 마주친 모든 자들이 심득이나 성취를 전해받지는 않았소. 그는 직접 인과율을 건드리지 않소.]

[ 네? 그럼 어떤...]

[ 단지, 의문을 던져주고 갔지.]

장삼봉의 환영이 나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말했다.

[ 연자여. 그대는 무(武)의 극(極)이 무엇이라 생각하오?]

무의 극한?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이게 선문답인가 생각했으나 장삼봉의 의도를 읽을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강렬한 현기가 느껴지는 질문이었기에 나 또한 제대로 대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흠...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질문이긴 해.'

나도 생각해본 적 있다. 나는 내 무술경험을 살려서 생각을 거듭하다가 대답했다.

[ 최강이 되는 거 아닐까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최강이 되면 최고의 무인이 되는 것이리라.

[ 허허.]

[ 트... 틀렸습니까?]

내가 조심스레 물어보자 장삼봉이 대답했다.

[ 연자여, 그럼 다시 묻겠소.]

[ 네.]

[ 연자가 보았던 무공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두려운 무공이 무엇이었소?]

나는 그 질문에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 백련교주와 여동빈의 무공이었습니다.]

[ 그렇겠지. 그들의 무공은 어떤 위력이었소?]

[ 그야 뭐... 일격에 산을 날리고 대지를 부쉈지요.]

[ 연자는 그보다 더 강력한 무공을 상상할 수 있소?]

나는 그 질문에 더욱 깊게 생각했다.

' 그것보다 센 무공?'

그렇다면 그건 이미 무공이 아니다. 백련교주와 여동빈의 결전에서 그들의 싸움은 낙양을 통째로 날릴 뻔 했는데, 그것보다 강한 건 애초에 무공이라 부르기도 힘들다. 그래도 얼추 상상은 가능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 ... 뭐, 상상은 갑니다.]

[ 방금 상상한 것보다 100배 더 강한 무공은?]

정말 상상만 해도 어이없는 위력이다. 그 정도 되면 헛웃음밖에 안 나올 것이다.

[ 음... 무사끼리 칼 좀 부딪히면 중화대륙이 멸망합니까?]

내가 퉁명스럽게 장삼봉 진인의 물음에 대꾸하자 그가 웃더니 말했다.

[ 만일에 인간의 무공이 발전하고 또 발전해서, 일검(一劍)에 세계를 파괴하는 무공이 있다면, 그걸 한치의 의심도 없이 무의 극한이라고 인정할 수 있겠소?]

[ ......]

[ 대우주를 부수는 무공이 있다고 하면?]

흐음...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무공으로 그런 일을 하는 게 가능할까?

아예 생각조차 해본 전대미문의 가능성이었기에 나는 망설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당연하죠. 개나소나 다 죽을텐데 그게 무의 극한 아니겠습니까.]

대우주가 파괴되어도 살 수 있는 건 없을 것이다. 설령 신이라 해도 죽게 되지 않을까? 죽음의 개념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우주가 파괴된다는 건 그런 뜻이리라. 내 대답에 장삼봉은 고개를 저었다.

[ 아니오.]

뜻밖의 부정이었다.

[ 네?]

[ 설령 그 무공으로 백전백승을 거둔다 하더라도 그게 최고라는 증명은 될 수가 없는 것이오. 예를 들어서 그 무공보다 파괴력이 일천배 강력한 무공이 또 등장한다면 그게 무의 극한이 되는 거겠소?]

그런 식이라면 꼬맹이들끼리 내가 더 강하다고 우격다짐하는 것과 다를게 뭐란 말인가?

[ 어... 그게...]

나는 장삼봉의 말에 황당해하면서 생각을 거듭했다.

' 이거 말장난 아냐?'

하지만 말장난이나 하려고 장삼봉이 질문한 것 같진 않았다. 그리고 장삼봉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를 필사적으로 생각해보다가 마침내 깨닫고 말했다.

[ 최강이라고 해서 최고란 건 아니란 말이군요.]

장삼봉이 웃었다.

[ 그렇소. 결국 이런 비교는 숫자놀음이며 상상하는 한도 내의 이야기일 뿐. 무의 극한이란 건 결코 답을 낼 수 없는 문제요. 위에는 또다시 위가 있기 때문이오.]

[ 제가 보기에는 절대지경이나 투선급 강자만 해도 충분히 극한으로 보입니다만...]

일리있는 소리였지만 나는 약간 볼멘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솔직히 말해서 절대지경에서 제멋대로 법칙을 비틀어서 기적적인 힘을 보이는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다. 그런데 그런 절대지경에서도 미칠 수 없는 까마득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 무신이 제시한 건 바로 연자가 느낀 그 감정이오.]

[ 네?]

[ 그는 본디 존재할 수 없는 무의 극한이 존재한다고 우리에게 실감시켜 주었소. 그리고 그 극한에 도달하는 방법 또한 무한이라는 걸 알려줬지. 그렇기에 무신을 만난 존재들은 끝없는 향상심(向上心)으로 무를 추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오.]

[ 저기... 잘 이해가 안 됩니다만...]

그래서 도대체 무신이 뭘 했다는 말인가?

애매모호한 장삼봉의 말에 내가 머리를 긁적이자 장삼봉이 쓴웃음을 지었다.

[ 자아. 이해할 수 있도록 천천히 이야기해 주겠소.]

[ 경청하겠습니다.]

[ 연자는 잘 모르고 있으나, 인간무인이 절대지경에 오른다는 건 신선으로 등선할 자격이 생긴다는 의미요. 그것은 상고시대부터 달라지지 않는 기준이었소. 그 절대지경의 진척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천계에서는 절대지경의 무인을 아주 높이 평가하곤 했소. 그리고 적극적으로 천계에 등선하도록 유도했소.]

[ 유도했다고요?]

[ 절대지경의 힘을 지닌 인간이 지상에 남아있으면 세상에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오. 절대지경 앞에서는 국가의 무력이 무의미하며 십만대군도 멸할 수 있는 권능도 지니게 되기에 세상의 균형이 박살나기 쉬웠소.]

[ ......]

맞는 말이다.

이청운이나 백련교주, 무사시가 고작 십만대군 따위에게 당할 것 같진 않았다. 그들이라면 십만대군을 통째로 전멸시키던가 혹은 지휘관의 목을 신나게 따버릴 것이다. 그리고 제국의 황제가 어떤 호위를 받든간에 같은 절대지경의 고수가 막지 않는다면 절대 암살을 막을수도 없었다.

장삼봉의 말이 이어졌다.

[ 그런 절대지경에 오른 자들이 등선 직전에 느끼는 감정은 대개 극도의 권태감이었소.]

[ 권태감이라...]

[ 자신은 무인으로서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고, 천계에 등선한다 한들 이 이상의 경지에 도달할 리 없다는 생각이 들곤 하지. 오만하다 볼 수도 있겠으나 절대지경이란 그런 것이오.]

[ 으음...]

[ 또한 대라신선 중에서도 극상의 위치에 오른 자들의 어마어마한 힘, [옛 지배자]를 비롯한 세계의 진실을 마주치게 되면 절망을 느끼기도 하오. 천계에 오른 후 더 수련할 의욕을 잃게 되는 법이지. 그들은 오만과 절망을 동시에 느끼며 나태해지곤 했소.]

그럴지도 모른다. 절대지경의 고수들이 강력하긴 하지만 사도나 [옛 지배자]들의 권능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무예를 아무리 수련해봤자 타고난 신적 존재에게는 이길 수 없다는 절망감 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도저히 그들을 무공으로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칠요에 의존하고 있지 않은가?

장삼봉이 희미하게 웃었다.

[ 허나... 무신은 일순간이지만 무의 극한을 보여주었소. 그것만으로도 무의 극한에 도달하기 위해 무한의 세월을 노력할 수 있는 열정이 생겨나는 것이오.]

[ 음...]

내가 낭패스러워하자 장삼봉이 말했다.

[ 지금은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오.]

[ 솔직히 그렇습니다.]

[ 허나 연자가 더욱 강해져서... 무신과 마주칠 날이 온다면 그 때 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을 것이오.]

장삼봉의 손이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것은 마치 힘내라고 하는 응원처럼 느껴졌다. 나는 장삼봉에게 질문했다.

[ 그렇다면 절대지경에 이른 자들은 예외없이 무신을 만났단 말입니까?]

[ 그렇지 않소. 도리어 극소수요.]

[ 왜입니까?]

[ 잘은 모르겠지만 무신은 단순히 무공의 경지가 높다 해서 만나주려 하지 않소. 무언가 그 존재만이 지니고 있는 기준이 있으리라 생각되오.]

[ ......]

그러고보니 어린 시절의 진소청에게도 무신이 나타났다고 했다. 어린 시절의 진소청이 절대지경의 고수였을 리가 없으니, 분명히 무신에게는 상대방을 고르는 또 다른 기준이 있는 것이다.

' 뭐 됐어.'

아직 절대지경에도 도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더 생각해 봤자 의미가 없다. 무신에 관련된 정보를 얻은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나는 장삼봉에게 말했다.

[ 그럼 이제 제게 칠대절학을 지도해 주십시오.]

[ ......]

[ 장 진인?]

내 요청에 장삼봉은 망설이다가 대꾸했다.

[ 연자여. 그대의 용량에 한계가 다가오고 있소.]

[ 무슨 말씀이신지...]

[ 여동빈의 선검(仙劍)으로 강제로 틀어막은 그대의 그릇이 곧 가득차게 될 것이오.]

[ 아...]

[ 칠대절학 뿐만이 아니라 파생된 팔대 가능성 하나하나는 모두 천재들이 벼려낸 절세신공. 그대가 모두 대성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오.]

나는 장삼봉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나는 과거에 검류의 혼란을 통제하기 위해서 여동빈의 천둔검법을 5단계까지 전해받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덕에 초절정의 경지에 이르고 난 후에도 순조롭게 수련을 거듭해서 경지를 상승시킬 수가 있었다. 하지만 장삼봉의 말에 따르면 그때 얻은 통제효과에도 한계가 온 모양이다.

' 또다시 내 무공에 혼란이 찾아온단 말인가?'

내가 불안함 때문에 몸을 떨자 장삼봉이 말했다.

[ 근본적인 해결책은 그대의 영혼에 꽂혀 있는 천둔검을 강화시키는 것. 허나 이건 세상에서 여동빈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그릇을 조금이나마 넓히면서 한계를 유예하는 수밖에 없구려...]

[ 하지만 여동빈은...]

나는 대꾸하다가 말을 멈췄다. 해신의 봉인이 되어 자멸해가고 있는 여동빈을 구출할 방법은 이번 생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발목을 잡힐 줄은 몰랐기에 내가 침음성을 흘리고 있자 장삼봉은 말했다.

[ 연자여. 우선 내 가호를 내려 십 년 정도의 수련치를 유예해 두겠소.]

우우웅

장삼봉의 손이 내 어깨에서 빛을 발하자, 머릿속이 왠지 맑아지며 청량해졌다. 아마도 장삼봉이 축복을 내린 것이리라. 그는 안쓰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 지금부터 칠대절학을 최대한 가르쳐 줄 것이지만 차후 스스로 수련을 통제하기를 바라겠소. 그렇지 않으면 그대의 그릇에 균열이 가면서 정신에 광기가 침투하게 될 것이오. 진정한 주화입마를 피하고 싶다면 내 말을 명심하시오.]

[ ......]

기껏 수련할만한 환경을 만들었는데 또 다시 해결책을 찾아야하는 상황이라니!

나는 내심 욕지기가 나왔지만 여태껏 이보다 더 더러운 경우를 많이 겪었기에 정신을 진정시킬 수가 있었다. 어쨌든 십 년 정도는 무공을 수련해서 더욱 실력을 올릴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 좋습니다. 열심히 수련해서 십 년 내로 절대지경에 이르러서 한계를 이겨내겠습니다!]

나는 해낼 것이다!

해신도 죽인 내가 못할 게 뭐가 있냐!

[ 어... 음... 그게...]

내가 주먹을 불끈쥐며 호기롭게 외치자 장삼봉이 잠시 멍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한참동안 뭔가를 생각한 후, 표정을 관리하며 말했다.

[ 그... 그럴 것이오 연자여!]

반응이 어째 좀 그랬다. 하지만 나는 지금은 크게 생각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지금은 의욕을 갖고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대략 하루 나절 동안에 장삼봉에게 칠대절학의 기초부터 다시 배웠다. 장삼봉은 바로 칠대절학의 파생절학을 가르치지 않고 내게 기본부터 다져줄 생각으로 보였다. 나는 처음에는 기본을 다시 배우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지만 배우는 도중에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 칠대절학의 오의는 육합(六合)이오. 육합이 형성된 결과가 바로 무쌍패요.]

장삼봉은 서서히 손을 들어서 태극(太極)의 기운을 만들어 내었다. 음과 양이 조화롭게 섞인 그 기운이 장삼봉의 환영에 깃들더니, 그는 서서히 태극권의 권형을 취했다. 무당파의 기본권법이자 민간에도 꽤 퍼져 있는 태극권은 그 위력이 별로 강하지 않아서 잘해봤자 이류무공으로 취급되고 있었다.

파밧

태극권의 권로를 취하던 장삼봉이 어느 순간 칠대절학의 초식으로 변화하며 무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초식의 흐름을 신중하게 관찰했는데, 총 이십사식을 펼치는 동안에 그 권로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안정적으로 흘러가며, 종래에는 태극권의 권로로 회귀하는 걸 보자 감탄성을 흘렸다.

"아!"

정말로 부드럽다.

그리고 강하다.

차라리 아름답다고 느낄 정도!

'이것이 바로 무당파에서 이야기하는 유능제강의 진짜 모습인가?'

무당파 고수들이 유능제강의 무공을 사용하는 건 꽤 보았지만, 나는 그들이 쓰는 유(柔)함을 능히 뇌신류의 무공으로 부숴버릴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장삼봉이 펼치는 태극권의 권형에 달려들었다가는 부드러움이 휘말려서 박살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 육합이 특수한 까닭은 바로 변화(變化)의 향상성(向上性)을 의미하기 때문이오.]

[ 향상성이라니요?]

[ 연자는 지지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소?]

[ 술수와 도학을 공부한 적이 있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는 망량 밑에서 3년동안 공부할 때 이미 배웠다. 기문둔갑을 비롯한 도학의 기초를 익히기 위해서는 지지천간과 오행팔괘 등의 기본원리를 다 알아야 하는 것이다. 무지렁이였던 내가 이후에 복잡한 무공구결을 해석할 수 있게 된 것도 그 때의 공부가 도움이 되었다.

[ 지지를 품은 상태는 특수한 성향이 있지. 알고 있소?]

[ 불변(不變)을 말씀하시는건지.]

[ 맞소. 변하지 않소. 그래서 오행보다 쉽게 취급되는 경향이 있고 도사들이 별로 신경쓰지 않지. 직관적이며 변화무쌍한 음양오행이나 커다란 도학의 줄기에 통하는 사상과 달리 육합은 정해진 거라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오.]

[ 음, 그렇습니다.]

[ 대신에 육합은 지지의 균형 속에 천간을 품고 있다오.]

무슨 말을 하고싶은 걸까?

[ 만변(萬變)하기에 불변. 불변하기에 만변. 서로의 꼬리를 무는 듯한 상태.]

[ ......?]

[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이토록 무의미한 게 없지. 음양오행의 변화는 한계가 있으나 무한이기에 불변인 상태.. 이 무슨 역설이오.]

투웅

장삼봉이 가볍게 주먹을 허공에 스친 것 뿐이었지만 갑자기 땅거죽이 뒤집히는 듯한 진동이 일어났다. 나는 그게 태극권의 일 초식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자 장삼봉의 무위에 전율했다.

[ 무술이나 술법에서 자주 육합(六合)을 언급하고 이름에도 끼워넣는 건 육합의 특수성이 세상의 법칙(法則)과 연동되기 때문이오.]

나는 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어 육성으로 질문했다.

"연동된다는 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는 술법공부도 했으나 장삼봉의 설명에 스며들어 있는 현기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도학에 수십 수백년동안 매몰된 자가 아니라면 그의 설명을 알아듣기는 쉽지 않으리라.

[ 그야 '모든 것'이기 때문이오. 아무렇게 연결해도 육합이 되지.]

"너무 어렵습니다. 조금만 쉽게..."

[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흔히 말하는 오행의 변화와 달리 육합은 운(運)의 모든 가능성(可能性)이오. 운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광대한 영역이 육합이라고 할까?]

"음... 알 것 같기도..."

그런 설명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보았던 그 어떤 도학서적에서도 그 부분을 깊게 파고들지는 않았다.

[ 잘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군.]

"네, 그렇습니다."

[ 일단 지금까지 들은 설명을 머릿속으로 정리해 보시오.]

내가 골똘히 생각하자 장삼봉의 설명이 한층 세밀하게 이어졌다.

[ 술법사가 음양오행이나 팔괘는 공부해도 따로 육합을 공부하지 않는 이유를 알고 있소?]

"어... 잘은 모릅니다."

[ 앞서 말했듯 육합은 불변이자 만변. 육합이 상징하는 것은 '이 세상 모든 것'. 육합을 공부한다 함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알아내는 전지(全知)의 경지를 의미하는 것인데, 그런 공부를 인간이 할 수 있을 리는 없소.]

"아하!"

[ 풀 하나, 한줄기 바람, 떠다니는 구름, 그 모든 운행을 육합이라 칭할 수 있소.]

불변이자 만변이라는 건 그런 뜻이었구나!

'모든 것'이기 때문에 거대한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전(全)이며 무(無)였다. 그래서 불변이라고 표현하지만, 작은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끝없이 무한하게 변화하는 이 세상 그 자체였다.

' 우와, 무슨 이런 광대한 관점이...'

내가 육합의 크기에 질릴 것 같은 표정을 짓자 장삼봉이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 그렇기에 육합은 세상의 외적인 영역 뿐만이 아니라 개념적인 영역도 다루게 되오.]

"개념적인 영역이라면?"

[ 크게 보면 운명(運命)이나 신(神), 소명(疏明), 인과(因果)를 포함하게 되지. 기문둔갑에서 잘 설명되지 않는 우연적 요소라고 할 수 있소. 이는 좌도의 관점이 아닌 우도의 관점이니 술법사의 해석은 조금 다르겠지.]

"......"

[ 정리하겠소. '모든 것의 모든 시공간의 상태'. 그것이 바로 육합의 본질.]

스스스

[ 그렇기에 나는 태극을 깨달은 후 육합의 힘을 이용한 무공을 만든 것이오.]

갑자기 장삼봉의 몸이 흘렀다. 그리고 칠대절학 중 6대절학을 연속해서 펼치기 시작했는데, 그 흐름은 열기를 안고 마치 춤처럼 변했다. 장삼봉 진인이 태극과 육합을 끌어안은 채 세상에 의지를 떨쳐내는 모습은 마치 천지가 음양으로 분단되는 순간을 보는 것과 같았다.

우우우!

나는 어느 순간 그의 초식을 볼 수 없었다. 마치 천둔검법처럼, 장삼봉의 움직임 하나하나는 수십만 가지 가능성을 포함한 채 빗방울이나 눈처럼 퍼져 나갔다. 은은한 파장 속에서 육합의 형상이 환영처럼 내 눈동자에 날아와 박혔다.

장삼봉의 춤은 홀황경 속에서 서서히 잦아들었다. 나는 방금 전에 장삼봉 진인이 완벽한 육대절학의 연계를 보여주었음을 알 수 있었다. 저것은 여태껏 칠대절학을 배웠던 그 어떤 인물도 해낼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흐름이었다.

[ 내삼합(內三合) 외삼합(外三合) 심의육합(心意六合). 이것을 알아야 무쌍패를 비로소 쓸 수 있게 되오. 무공을 조합할 때도 이 원리대로 하면 손쉬울 것이오.]

큰 단서를 얻은 기분이다. 무공의 원리가 육합이라는 건 여태껏 누구도 몰랐던 비밀이기 때문이다.

"무쌍패는 도대체 어떤 무공입니까?"

[ ... 내 치기어린 도전이오.]

장삼봉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 무신의 질문에 대해 내 나름대로 해답을 내놓은 것...]

"......?"

나는 어리둥절하며 말했다.

"음... 무쌍패는 안 보여주십니까?"

[ 이미 보여줬소.]

"네?"

[ 연자여... 무쌍패는 물리적인 위력을 지닌 무공이 아니외다. 천하에서 가장 약한 무공이 바로 무쌍패. 그저 육합의 본질을 실천하여 무신의 질문에 해답을 내놓은 결과물일 뿐이오.]

장삼봉의 이어진 말에 나는 당분간 육대절학만 연마하는게 좋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 무쌍패로는 그 어떤 적도 이길 수 없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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