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90 암천향(暗天鄕) =========================================================================
"대체 뭐야? 어떻게 당신이 여기에..."
"이 꿈의 주인은 망량선사다. 꿈의 주인이 초대했으니 당연히 나도 들어올 수 있는 거지."
느긋하게 대꾸한 십이율주가 힐끔 망량선사를 보더니 말했다.
"검은 고양이라... 백웅은 당신을 그렇게 인식하고 있나? 평소에 비하면 지나칠 정도로 귀엽군."
[ 나는 마음에 드는데.]
"달라도 너무 달라."
십이율주는 은연중에 망량선사를 두려워하는 기색이었다. 망량선사가 마치 괴물이라도 되는듯 은은하게 거리를 두고 있었다. 십이율주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뭐, 이번에 같이 해신을 쓰러뜨렸잖아? 게다가 너도 십이율주가 되었으니 이 정도면 동료라고 해도 되지 않겠어? 그래서 말이지 계약을 맺어서 한층 동맹을 강화하고 함께 싸워나갔으면 해서 말이야."
나는 그의 뻔뻔한 말에 기가 막혔다.
"동료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하는 거 아닙니까?"
"왜? 사해가 동도라잖아."
"그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니죠."
나는 날카로운 눈으로 십이율주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당신이 해신토벌전에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나름대로 열심히 싸우는 것 같긴 했지만 나는 십이율주가 비장의 한수를 감추고 끝까지 관망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딱히 이유는 없지만 그 자리에서 싸운 자로서의 현장감이었다. 십이율주는 여전히 믿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낙인찍은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자 십이율주가 유들유들하게 대꾸했다.
"내 생각이지만 너는 나에 대해 궁금한게 많을텐데? 좀 더 친밀한 관계가 되면 내 비밀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지. 나는 계약자에 대해서 그 정도 의리를 베풀 마음은 있어."
"......"
"해신을 없앰으로서 내 계획은 큰 고비를 넘겼다. 적어도 백 년의 시간을 벌었다고. 네가 조금만 더 도와주면 그 이상을 노릴 수 있을 거다."
"우선 그 계약이란게 뭔지부터 설명하시는게."
내가 경계의 기색을 늦추지 않자 십이율주가 입을 열었다.
"별 거 아냐. 계약의 내용은 [서로 최선을 다해 돕는다], 이게 끝이야."
"......? 그걸 굳이 계약으로 해야 합니까?"
"계약의 내용을 실현하는 동안에는 중재자인 망량선사의 가호를 받을 수 있으니까."
"......!!"
나는 놀라서 망량선사를 쳐다보았다. 그는 무심한 듯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담벼락에 앉아 있었다.
' 파천의 가호!'
망량선사가 내리는 축복으로서 그 정체가 알쏭달쏭하지만 인간에게 큰 도움이 되는 가호! 나는 십이율주의 의도를 알아채고는 말했다.
"망량선사의 도움을 얻으려고 나와 계약하려는 건가?"
"결론적으로는 그렇지. 앞으로의 환란에 대처하려면 그게 최선이기도 하고."
"너무 조건이 좋아서 수상한데..."
"그렇게 좋은 조건도 아냐."
십이율주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의 가호는 기껏해야 한두 번 발동할 거다. 그리고 나는 이 계약을 위해서 상당한 출혈을 감수해야하지. 그렇다 해도 망량선사의 가호가 없다면 앞으로 신적 존재들을 감당할 수 없기에 반드시 계약해 두려는 것이다."
나는 망량선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사실이야?"
[ 그렇다.]
망량선사가 자신의 앞발을 핥짝거리며 대꾸했다.
[ 내가 지닌 모든 힘은 낙양에 봉인된 마(魔)를 억제하는데 쓰고 있지. 그래서 원래라면 티끌만한 힘도 내어줄 수 없어. 다만 십이율주는 충분한 자격과 힘을 갖추고 있기에 계약을 허가한다.]
"계약으로 힘을 내주는 건 문제가 없는 건가?"
[ 인과율에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힘의 부족분은 즉시 메워진다. 위대한 존재가 그 계약을 보조해 주니까.]
그런건가.
하지만 나는 예전에 망량선사에게 파천의 가호를 달라고 졸랐다가 거절당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이 차이가 꺼림칙해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물었다.
"거래와 계약은 다르단 말이냐?"
[ 묘하게 날카롭군. 내 앞에 선 그 어떤 인간도 그 차이를 짚어내진 못했는데.]
"......"
나는 흥미로워하는 망량선사의 말에 침묵했다. 괜한 의심을 살까 염려되었다.
"그 질문에 대해서는 내가 대답하지."
십이율주가 끼어들었다.
"거래는 누구든 제안할 수 있지만 계약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서 진행된다. 내가 우연히 계약에 대해서 알아냈기에 망량선사에게 계약을 청할 수 있는 것이고, 망량선사는 거래는 몰라도 계약은 함부로 거부할 수 없어."
"나도 망량선사에게 계약을 청할 수 있습니까?"
십이율주는 난처한 듯 고개를 저었다.
"아마 안 될걸."
"계약에 대해 내게도 가르쳐주고 방법을 전해준다면 응하겠습니다."
"안 돼. 그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냐."
내가 힐끔 망량선사를 쳐다보자 그가 말했다.
[ 사실이다.]
십이율주 쪽이 간절할텐데도 저렇게 대답하는 걸 보면 계약에는 뭔가 숨겨진 비밀이 있는 모양이다. 십이율주는 '안 된다'라기보다는 '못 한다'라는 어조로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말을 듣고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나중에 얘기합시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섣불리 받아들이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자 십이율주가 실망스럽다는 듯 말했다.
"이봐. 내가 수천리 길을 가는데 오래 걸려서 현실에서 너를 찾아가지 않았다 생각해? 삼사의 도움을 받으면 쉬운 일이지만 그게 아니야. 계약은 망량선사의 꿈 속에서만 할 수 있어."
"무슨 뜻이죠?"
"...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는 거지."
십이율주는 뭔가 얼버무리듯 이야기하고는 말을 이었다.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줘. 해신의 힘은 우리 모두가 봤잖아? [옛 지배자] 중에는 놈보다 강한 존재가 발에 채이도록 많아. 그런 놈들을 상대로 신의 가호도 없이 버티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
"......"
"지금까지는 대부분 사태를 관망했지만 해신이 쓰러진 이상 곳곳에서 징후가 나타날 거다. 나로서는 그 위험을 감당해낼 자신이 없으니 망량선사의 힘을 빌려야 해. 그건 너도 마찬가지일테고."
왠지 이번에는 진심이 느껴졌다. 아직도 뭔가 숨기는 느낌은 있지만 적어도 그가 나와 계약을 절실히 맺고싶어하는 건 사실로 보였다.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결단을 내렸다.
"난 아직까지 당신에게 받아야 할 것을 다 받지 못했습니다. 그걸 다 청산한 후에 차분하게 얘기해 보는게 낫겠죠."
창힐과 팽조, 암천향에 관한 정보. 그리고 무사시와 십이율의 조력. 아직 그가 내게 약속했던 대가 중 제대로 받은 건 하나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붕 뜨듯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계약을 추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십이율주는 한숨을 쉬었다.
"제길... 앞으로는 여유가 없을지도 모르는데."
"양보 못 합니다."
"알았어. 그럼 다음에 얘기하자고."
휘리릭
십이율주의 몸이 사라졌다. 망량선사의 꿈에서 나간 것이다.
망량선사가 말했다.
[ 저 자가 의심스러운가?]
"너같으면 의심하지 않겠어? 꿈에서까지 강아지탈을 뒤집어쓰고 나타나는 놈인데."
[ 고양이탈이면 좋았을 텐데.]
"......"
이 자식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내가 어이없어하고 있을 때 망량선사의 말이 이어졌다.
[ 나가 봐라.]
잠에서 깼다. 나는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망량에게 설명했다.
망량은 깜짝 놀랐다.
"꿈에 십이율주가? 그게 환영이라 생각지는 않소?"
"모르겠소. 하지만 망량선사가 일부러 나를 속일 이유는 없으니."
"으음..."
망량이 말했다.
"우선 진행합시다."
나는 망량과 함께 제단을 설치했고, 망량이 의식의 주관자가 되어서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파앗!
잠시 후 망량의 몸에 거대한 영혼이 빙의했고, 나는 눈동자가 사라진 모습을 보자 여태껏 해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대라신선이 왔다는 걸 알아차렸다.
[ 사도여. 무슨 일로 신선을 부르는가?]
이 의식은 형식상으로 수기를 공양할 때와 같다. 이번에 제물로 바친 것은 바로 초상기인 20체중에서 절반인 10체였다. 제갈사의 말로는 초상기인 10체 정도면 어지간한 보패에 못지않은 대가라 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 나는 태허천존이다.]
역시나 맨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태허천존이었다. 나는 망량과 세웠던 계획을 머릿속에 상기시키며 태허천존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서왕모를 불러주십시오."
[ 뭣이? 그럼 처음부터 그녀를 부를 것이지...]
"부탁입니다."
태허천존은 투덜거리며 서왕모에게로 차례를 넘겼다. 나는 서왕모가 모습을 드러내자 또다시 차례를 옮겼다. 이런 방식이 계속되었고, 마침내 정해져있던 차례대로 대라신선 태공망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태공망에게 말했다.
"태공망이여. 저는 재선택권을 원합니다."
[ 진심인가?]
"네."
[ 좋다. 그대의 몸에 있는 대라신선의 기운 중 하나를 지워주겠다. 어떤 걸로 하겠는가?]
"그것은..."
나는 태공망의 말에 대답한 후 그 대라신선을 재차 강림시켰다.
파앗!
망량의 몸에 강림한 대라신선의 환영은 꽤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 그대에게 내 축복을 줌은 어렵지 않은 일이오. 허나 사도에게 과연 내 축복이 필요하겠소?]
"필요합니다. 그것도 절실하게."
[ 흠 그러면 요청을 받아들여...]
대라신선이 말을 잇기도 전에 나는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당신이 가진 무공지식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 ... 무슨 말이오?]
"나는 당신과 인연의 단말(端末)을 잇기를 원합니다."
[ ......]
"제가 바치는 제물의 가치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일 텐데요."
예상치 못한 요구였는지 대라신선은 한동안 망설였다. 그리고는 말했다.
[ 나는 그대가 이런 요구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구려.]
여동빈 때와는 달리 상당히 껄끄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당신도 투선(鬪仙)이지 않습니까? 그 힘이 필요합니다."
[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건 어렵지 않으나 이유를 들어야겠소. 사특한 일에 내 힘을 남용하려 한다면 받아들일 수가 없소.]
"해신이 죽고 그 세력이 멸망의 길로 치달았으니 다른 이족세력이 강해질 것입니다. 그 혼란은 당신이 활동하던 원나라 때보다 더 클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다른 축복보다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강력한 전력이 필요한 겁니다."
[ 잠시 천계의 회의를 하고 오겠소.]
침묵이 길게 이어진 후 대라신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대의 요청을 받아들이도록 하겠소.]
"고맙습니다."
쉬이익
대라신선의 영체가 내 오른손에 빨려들듯이 들어왔다. 실제로는 여동빈 때처럼 그와 나 사이에 인연의 단말이 생겨서, 앞으로는 그가 내게 강림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나는 망량과 세웠던 계획이 반쯤 성공한 걸 느끼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 성공이다.'
하지만 아직 의식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제단에 흐르는 영기가 아직 지워지지 않았음을 깨닫고 조심스레 망량을 불렀다.
"... 괜찮소?"
"허억... 허억..."
망량은 엄청난 두통을 느끼는 듯 전신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더니 말했다.
"아직... 내가 의식을 유지시키고 있소. 새로운 대라신선을 강림시킬 터이니... 내 영력이 다 고갈되기 전에 빠른 시간 내에 결론을..."
"알았소!"
망량의 입에서 천계의 대라신선을 소환하는 주문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태허천존이 망량의 몸에 강림하더니 대놓고 볼멘 목소리로 말했다.
[ 의식의 대가가 남았다지만 과한 욕심을 부리는군.]
"그 말대로입니다. 대가가 남았으니 내 요청을 받아들여 주십시오."
[ 삼황오제의 사도씩이나 되는 자가 우리에게 도대체 뭘 요구하는 거지?]
태허천존이 싸늘하게 말하자 나는 화요를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이 안에 화룡진인이 부상을 입고 잠들어 있습니다."
[ ......]
"화요의 힘으로 그녀를 회복시키고 있지만 해신의 마력이 너무 강력하여 아직도 의식이 없지요. 그녀를 회복시켜 줬으면 합니다."
이게 바로 우리의 노림수였다. 언제 화룡진인의 힘이 필요할지 모르는데다가 화요의 힘을 낭비할 수 없으므로 천계의 도움을 받아서 그녀를 회복시키려는 작전! 내 요청을 들은 태허천존이 팔짱을 꼈다.
[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복잡하다.]
"왜입니까?"
[ 그녀는 응룡의 화신. 그녀에게 우리의 힘을 전하기 위해서는 응룡에게 허락을 얻어야 하는데, 응룡의 본체는 황제(黃帝) 공손헌원이 거하는 만신전에 있다.]
"그게 무슨 문제입니까?"
태허천존의 눈빛이 한 순간, 혼돈으로 번득인 듯 했다.
[ 황제는 자신의 거처인 만신전에 그 어떤 존재도 들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황제와 그 권속에게 접촉하는 건 우리로서는 힘든 일. 곤란하다.]
"......"
[ 황제와 그 권속에게 접촉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그 제안은 못들은 걸로 하고 공양물의 절반을 돌려주마.]
파앗
빛과 함께 태허천존의 모습이 사라졌다. 뜻밖에도 간단해보였던 화룡진인의 회복 요청이 거부당한 것이다. 그리고 원래 모두 사라져야 했을 초상기인 제물 중에서 5체가 덩그러니 남아있는 게 눈에 보였다. 공양물의 절반을 돌려준 것이다.
' 뭐지?'
뭔가 미심쩍다. 망량과 계획을 짰을 때 이런 상황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화룡진인은 천계에서도 서열과 위상이 높은 대라신선이므로 당연히 동료를 돕기 위해 힘을 주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왠지 변명같은 걸 늘어놓으면서 화룡진인을 도우려 하지 않을 줄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뭔가가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의문을 뒤로 접고 재빨리 망량에게로 달려가서 그를 부축했다.
"괜찮소?!"
"헉... 허억..."
망량의 몸은 신열로 인해 불덩어리처럼 되어 있었다. 과거 천우진이 행했던 강신의식과 마찬가지로 여러 명의 대라신선을 연속으로 받아들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망량의 얼굴은 그 때의 천우진보다 더욱 초췌해져 있었고 전신의 피부가 발갛게 달아오르고 있어서 당장 목숨이 위험해보였다.
쿨럭!
망량은 피를 토해냈다. 그는 헐떡이며 말했다.
"각오했던... 바... 그리고 스스로 감내해야 할 일... 걱정 말고... 나를 진랑곡으로... 어서..."
"알았소."
옆에서 보고 있던 천우진이 갑자기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말했다.
"사형. 정말 멍청하고 무모한 일이었소!"
"후... 사제... 걱정해 주는건가..."
"세상의 도사들 모두가 자살행위라 여길만한 행동이었단 말이오. 사형이라면 그렇게 무리하지 않아도 1,2년 내로 등용문에 도전할 수 있었을텐데 왜 그리 무모한 도전을 하는 거요?!"
망량이 쓴웃음을 지었다.
"... 1,2년 후에 나나 백웅이 살아있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지... 나는 하루라도 빨리 강해져야 해."
"......!!"
"사제... 나중에 살아서 다시 보세..."
파앗
나는 망량을 데리고 진랑곡의 대나무숲으로 갔다. 그리고 평평한 돌 위에 그를 눕혔다. 망량은 그 돌 위에 눕자 끓어오르던 신열이 점차 가라앉으면서 방금 전보다 한결 편해보이는 기색이었다.
"이 곳은... 진랑곡의 기(氣)가 가장 응축되어 모이는 영소(靈所)인지라... 여기서 영력을 다스리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오."
"정말 괜찮겠소?"
"후우... 사실 확률은 반반이지만... 하늘에 맡겨야지."
망량은 두통 속에서도 웃음을 지었다.
"한 단계 더 강해지기 위해서는 신열을 이용하는 수밖에..."
그랬다.
이번 계획을 실행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신열이었다. 대라신선의 강신을 여러번 치르면 강력한 힘이 몸에 맴돌아서 인체에 해를 주게 되는데, 그걸 신열이라고 불렀다. 신열이 끓어오르면 보통 인간은 죽게 마련이지만 신열을 버텨내면 술사의 영력이 증폭되어서 한단계 더 강해지게 된다.
망량은 신열을 버텨낸 천우진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내 전생기억에서 본 적이 있었기에 위험을 감수하고 이번 의식을 자신이 주관한 것이다. 하지만 망량의 힘은 천우진보다 훨씬 약했기에 천우진과 달리 신열때문에 죽을 가능성도 높았기에 망량은 이번에 도박을 한 셈이었다.
내가 걱정스럽게 망량을 쳐다보자 그가 말했다.
"당신이 더 이상 여기서 할 일은 없소... 내 걱정 말고 돌아가서... 새로운 대라신선에게 도움을 받기를 바라오."
"알았소."
나는 망량이 회복하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하며 장령곡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제갈사에게 의식을 성공적으로 끝냈음을 알렸다. 제갈사가 말했다.
"태허천존이 화룡진인의 회복을 거부했다고?"
"그래."
"이상하군."
제갈사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천계 입장에서 그렇게 부담스러운 요청이 아니야."
"내 생각도 그래."
"놈들이 황제 공손헌원의 만신전을 거론했다라... 그건 나중에 알아보지. 그것보다도 대라신선과의 단말은 확실히 이어진 건가?"
내가 고개를 끄덕여서 긍정하자 제갈사가 말했다.
"장령곡 뒤편에 너른 장소가 있다. 앞으로 그 곳에서 수련하도록 해."
나는 이야기가 나온 김에 바로 그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단말을 통해 새롭게 관계를 맺은 대라신선을 마음속으로 불렀다.
[ 오시오!]
대라신선의 영혼이 근처까지 다가온 게 느껴졌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 당신에게 내 무술의 기억을 공유하겠소. 이 가능성을 한 번 보시길!]
[ ......?]
대라신선은 어리둥절해하는 기색이었으나 내가 무술의 기억을 강하게 떠올리자 이내 찬탄성을 흘렸다.
[ 아니... 이건 대체...]
[ 당신의 무학으로 파생된 가능성들입니다.]
[ 호오...]
대라신선은 몹시 큰 흥미를 느낀 듯 가능성들을 들여다보는 기색이었다. 한참동안 무학의 원리와 질을 음미하던 그는 말했다.
[ 등선하기 전, 무당산에 내 가르침을 남겼으나 온전하지 못했소. 칠대절학을 창안했으나 굴공검과 천축검을 제외한 대부분이 유실되었다 전해들었는데, 백웅 그대는 어찌하여 내 무공 전반을 심화해서 연구한 것이오?]
[ 당신의 깨달음을 잘 보관하여 전승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도움을 받아서 이 가능성을 익혔습니다.]
[ 으음...]
내가 대충 둘러대자 대라신선이 찬탄성을 흘렸다.
[ 아주 훌륭하군...]
[ 앞으로 내게 칠대절학에 대해서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내 질문에 대라신선이 대답했다.
[ 물론이오. 하지만 파생절기는 또다른 순수한 절세무공이니 내가 자세히 가르쳐줄 수 없음을 양해하시오.]
[ 왜입니까?]
[ 파생절기를 창안한 존재들은 가공할 재능을 지닌 천재들으로 보이니, 그들 또한 절대지경에 이르는 새로운 유파를 창안한 것이오. 나는 그들의 가능성까지 모두 설명해 줄 수는 없소, 연자여.]
[ ... 아무튼 감사드립니다.]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 장삼봉(張三峯).]
무당파의 창시자이자 인간의 몸으로 등선하여 대라신선이자 투선에 오른 존재!
그리고 내게 과거에 축복을 내려서 칠대절학의 지식을 전수했던 장삼봉!
나는 그에게 단말을 연결해서 직접 가르침을 받기로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