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485화 (485/1,615)

00485  암천향(暗天鄕)  =========================================================================

' 갑자기...?!'

[옛 지배자]와 싸운다고 생각하니 나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그 존재들의 무시무시한 강력함을 여러 번 체험해 왔기에, 얼마나 까마득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감정은 단순히 '공포'만은 아니었다.

내게 강신한 화룡진인은 신검을 치켜든 채 외쳤다.

[ 화룡소환!]

처음부터 최강의 능력을 발휘하다니!

그와 동시에 용형(龍形)의 영기가 또아리를 틀더니 이내 거대한 화룡으로 변화했고, 천계의 화룡이 소환되자마자 여동빈이 내 몸을 움직여서 연속으로 손을 내뻗었다.

천둔검법(天遁劍法)

육의성천도(六意聖天圖)

운결(雲決)

기검의 환영 수천 개가 화룡과 함께 거대한 해신의 동체로 쇄도했다. 신령스런 빛을 띈 기검 하나하나는 살아서 움직이는 듯 하며 갑작스럽게 수십 장에 이르는 검강을 쏘아내기 시작했다.

콰과과광

수백 장 크기의 열옥(熱玉)이 시야를 뒤덮는다.

거대한 화염의 폭풍 속에서 전설의 검기가 쉴새없이 날뛰었다.

쿠웅

대라신선급 존재들의 합동공격이 이뤄지자 해신의 몸뚱이는 살짝 뒤로 물러나는 듯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놀라움을 느꼈다. 해신이 어쨌든간에 뒤로 한 걸음을 물러선 것이기 때문이다!

' 과... 과연 화룡진인과 여동빈!'

[ 흐음.]

하지만 내가 크게 놀라워하며 기뻐하는 것과는 달리, 그 순간 여동빈의 감정이 읽혔다. 여동빈은 왠지 모르게 초조해하면서 입맛이 쓴 듯 했다. 나는 여동빈에게 질문했다.

[ 왜 그러십니까? 해신에게 한 방 먹였...]

[ 연자여. 긴장하라.]

[ 네?]

[ 방금 전의 공격은 무의미했다.]

슈우우우...

여동빈의 대꾸가 끝나는 순간, 천공의 열옥이 사그라들며 천하를 뒤덮던 시꺼먼 연기가 천천히 잦아들었다. 그리고 연기 속에서 해신의 몸은 옆구리가 살짝 붉은 빛으로 물들었으나 큰 손상이 없어보였다.

전력을 다한 화룡소환에 천둔검법이 함께 공격했는데도 설마 다치지 않았단 말인가?!

' 바, 방금 공격이면 설령 달기라 해도 무사하지 못할텐데...'

내가 말도 안 되는 해신의 방어력에 경악하자 화룡진인이 그녀답지 않게 긴장하며 말했다.

[ 역시 [옛 지배자] 답게 신급 주술로 방어하고 있군.]

[ 무슨 말입니까?]

[ 사도를 토벌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신적 존재들은 늘 자신을 보호하는 결계를 두르고 있어서 그 결계를 파괴하기 전에는 아무런 손상도 줄 수 없다.]

그렇다면 주술방어를 먼저 뚫어야 한다는 소리인가?

나는 뭔가를 말하고 싶었으나 바로 그 때였다.

우우우우 -

해신이 천천히 기지개를 켜면서 하늘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이쪽을 향해서 가볍게 한쪽 팔을 내리쳤다.

[ 우웃!]

그 순간 한번 팔을 휘두른 것 뿐이었으나 그 순간 화룡진인과 여동빈이 합심해서 최대전력으로 피해야만 했다. 그들은 내 멸혼보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공격범위에서 후퇴했으며 방어따위는 생각지도 못하는 듯 했다. 그리고 해신의 팔이 땅에 내리쳐지는 순간 땅이 갈라지며 거대한 구멍이 생겨났다.

쿠구구궁

동시에 사방천지로 대지의 상흔이 뻗어나갔고, 지평선은 물론 바다까지도 쩍 갈라지면서 천지가 분열되는 듯 했다. 천하가 해신의 주먹 한 방에 찢겨나가는 듯한 충격에 하늘까지 진동으로 떨렸다. 거대한 대지진이 일어나며 바닷물이 요동쳤고, 수십 개의 소용돌이가 해면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 말도 안 돼...!!'

괴물이다!

지금까지 가공할 위력을 지닌 광범위공격은 많이 봐 왔지만 해신의 공격은 말도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 지금껏 마주쳤던 광범위공격의 소유자들은 강한 영기나 술법, 기를 동원해서 '기술'을 써서 파괴력을 행사했으나, 해신은 단순히 자신의 육체능력만으로 물리적인 피해를 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세상을 뒤엎는 위력을 보여주었기에 나는 끔찍한 상상이 들었다.

만일 저 물리적 권능에 신급 주술을 동원해서 싸우기 시작한다면?

나는 순간적으로 몸이 떨리는 걸 느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내 불안함을 감지했는지 여동빈이 내게 말했다.

[ 연자여. 정신을 집중해라. 해신의 주술은 결코 만만한 게 아닐 것이다.]

[ ... 네.]

[ 온다.]

여동빈의 말대로, 해신이 구름에서 천천히 고개를 숙이더니 이쪽을 향해서 거대한 입을 쩍 벌렸다. 그 입은 이족답지 않게 인간과 어인이 반반씩 섞인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입에서 거대한 광선이 발사되자 더 이상 여유롭게 감상할 수가 없었다.

피이이잉

지평선이 쭉 갈라지며 열선(熱線)이 바다를 일직선으로 잘라버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바닷물 전체가 증발하며 무지막지한 섬광이 눈에 들어왔다. 내공으로 눈을 보호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시신경과 함께 뇌까지 타버릴 정도의 빛이었다.

[ 크으으!!]

이번 공격 또한 막는 게 불가능했기에 화룡진인과 여동빈은 내 몸의 잠력을 최대한 끌어올려서 회피했다. 사실 알고도 피하는게 불가능한 엄청난 속도로 섬광이 종횡무진 날뛰었으나 여동빈이 투선의 직감으로 미리 움직였기에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었다. 순식간에 사방천지가 섬광과 폭발에 물들며 무시무시한 열기가 천지간을 증발시키자 아득해졌다.

바다를 말려버리는 공격!

이 곳은 고려 탐라도의 근처였는데 이 공격으로 반경 수백 리의 바다가 말라버리고 그 자리에 시꺼먼 마력이 깔리고 있었다. 바다라는 지형 자체를 무시하는 광범위공격은 처음인지라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해신은 마치 굼뜬 것 같았지만 전혀 굼뜬 게 아니었다. 실제로 여동빈은 엄청난 속도로 그의 주변을 어검비행술로 날아다니며 빈틈을 찾고 있었지만, 여동빈의 월공투안은 해신이 자신의 움직임을 일일이 다 포착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해신의 시선이 종종 날아와 박히는걸 느끼면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여동빈이 이동하는 속도가 음속의 수십 배를 넘는다는 걸 생각하면 가공할만한 지각력이었다.

다시 한 번 힘을 모으고 있던 화룡진인이 재차 화룡을 소환해서 이번에는 수십 마리로 분열시키며 해신을 공격했다.

[ 하앗! ]

콰광

역시나 화룡의 힘이 부딪혔는데도 해신은 그저 간지럽다는 듯 몸을 꿈틀거릴 뿐이었다. 거대한 인간과 어인을 합친 듯한 저 거인은 절대적인 방어력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마음이 급해져서 말했다.

[ 제가 비장의 수를 써서 저 자의 방어를 없애겠습니다.]

[ 아직 때가 아니다.]

[ 네?]

여동빈은 해신이 한두번씩 휘두르는 팔 공격을 피해내면서 힐끔 지상을 보았다.

[ 저 자가 수를 쓰는 걸 보고 사용하는 게 낫겠다.]

나는 여동빈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 곳에는 십이율주와 삼사가 웬 투명한 구를 소환해서 둥둥 떠 있었다. 십이율주는 구에서 뛰쳐나와서 은하구절편을 땅에 던지며 외쳤다.

"하백의 이름으로 명한다! 얼어붙어라!"

쩌저적

은하구절편의 쇄가 땅에 박히는 순간이었다. 불타오르고 있던 대지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얼어붙기 시작하더니 해신의 발까지 냉기가 진입했다. 급기야는 수십 리를 얼려버리고도 모자라서 해신의 무릎까지 얼음절벽이 생겨났다.

' 발을 묶었어?'

"쳇!"

하지만 십이율주는 자신의 공격이 별로였다고 생각한 듯, 황급히 은하구절편을 꺼내서 다시 삼사와 함께 순간이동을 했다. 바로 다음 순간 그가 서 있던 자리에 다시금 해신의 광선포 공격이 쏟아졌으니 그의 판단은 옳았던 것이다.

쿠구구궁...

세상이 멸망할 것만 같다. 해신은 딱히 우리를 노리는 게 아닌데도 얼굴을 움직여서 여기저기로 광선포를 마구 쏘아대고 있었다. 빛이 천공을 메우면서 생명이 모조리 사라지고 있는 중이었다.

이 곳은 상당히 떨어진 곳이라서 해신이 먼 점으로 보였다. 잠시 전투장소를 이탈해서 정비를 하던 중, 공간이 열렸다. 십이율주는 공간전이술법으로 내가 있는 쪽으로 오더니 말했다.

"이대로라면 삼 일 이내에 해신의 손에 고려국과 동영이 멸망할 거야. 칠요공명을 하는 수밖에 없겠군."

여동빈은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말했다.

[ 나는 반대다.]

"왜?"

[ 저 자가 우리를 기습하려 노리는 이상 협력은 불가하다.]

여동빈의 시선은 어떤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스스...

그리고 잠시 후 그 자리에 미야모토 무사시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미야모토 무사시도 여동빈의 힘을 알고 있는 듯 섣불리 공격하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율주. 바로 지금이 널 죽일 기회같은데."

그러자 십이율주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크하하! 신을 죽여야 하는 원월천살법 계승자로서의 의무는 엿바꿔먹었나?"

"......"

"하긴 너는 천재일 뿐 진정한 계승자가 아닐테니."

십이율주가 뭔가 일침을 하자 미야모토 무사시는 흠칫하고 반응했다. 그러더니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멋대로 말하지 마라. 진정한 계승자같은 건 없다."

"정말 그럴까?"

"그래."

미야모토 무사시가 팔짱을 꼈다.

"수해(樹海)의 왕을 쓰러뜨릴 자는 존재할 수 없다."

저 자들은 무슨 말을 하는 걸까?

그러자 미야모토 무사시에게 십이율주가 말했다.

"도움이 안 될 거라면 당장 꺼져. 너부터 죽일 수도 있으니까."

십이율주의 살기는 진짜였다. 절대고수 두 명이 대치하자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한 살기가 팽팽하기 공기를 잡아당겼다. 한참동안 서로를 노려보던 중, 미야모토 무사시가 말했다.

"이번 한 번만 도와주지."

"아이고 고마우셔라."

우리는 서서히 해신이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걸 눈치챘다. 지금까지는 해신이 알면서도 그냥 내버려두고 있었는데 슬슬 마무리를 하려는 게 분명했다. 그 말은 지금까지 해신은 우리와 싸우는 게 아니라 적당히 놀아주는 기분으로 싸웠다는 의미였다.

십이율주가 말했다.

"빈틈은 무사시가 어떻게든 만들테니 칠요공명으로 놈에게 최대한 큰 타격을 줄 수밖에 없어."

[ 저 자는 정신공격이나 주살에 약할 터.]

여동빈이 걱정스럽게 무사시를 쳐다보았다. 그 말대로 해신은 근처에 다가가면 강력한 범위공격을 함과 동시에 근처에 있는 자들에게 강한 주살공격을 뿜어냈다. 일반인은 해신을 쳐다보기만 해도 미칠 게 분명했다.

게다가 무림고수라 해도 저 근처에 있으면 정신이 오염되어서 죽는다. 나는 여동빈과 화룡진인이 그 주살공격을 자동으로 방어해주고 있으며 십이율주는 삼사가 도와주는 것 같았지만 무사시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자 십이율주가 말했다.

"무사시니까 괜찮아. 그러면 가자!"

파앗

순식간에 작전을 세운 우리는 다시금 해신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나는 여동빈에게 빨리 몸을 바꿔달라고 하면서 크게 주문을 외쳤다.

"멸망의 때에 흐르는 성좌(星座)여! 나, 그대의 권능을 빌리노라. 다가올 천 년의 때를 경배하노라"

흉신의 주문!

사도의 방어막을 통째로 거둬버리고 금오십천군까지 돌려보낼 정도의 위력! 원래라면 단 한 번밖에 쓸 수 없으니 신중해야하겠지만, [옛 지배자]와 싸우는 것보다 위중한 위기가 있을 리가 없었다.

흉신의 언령을 시전하자 거대한 촉수가 허공에서 솟아나더니 갑자기 해신의 전신을 크게 움켜잡았다.

우드득

그러자 갑자기 해신이 내 머릿속으로 크게 말을 걸어왔다.

[ 너는 그 분과 어떤 관계인가? 르 뤼에의 상위권속인가?]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일말의 공포도 느끼지 않은 채 내심 놈을 비웃기까지 했다. 왠지 저 놈이 두렵지는 않다. .

그러자 해신이 말했다.

[ 대답하지 않는 너를 잡아먹으리라.]

퍼엉!

"......!!"

놀라운 일이었다. 해신이 몸을 크게 돋우자 지금까지 모든 적에게 큰 타격을 주었던 흉신의 언령이 터져서 사라져 버렸다! 해신의 전신을 칭칭 감고있던 촉수는 펄떡거리며 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여동빈이 말했다.

[ 잘했다, 연자여! 저 자의 방어주술이 상당히 약해졌다.]

효과가 없는 건 아니란 건가?

그렇다고는 해도 사도 달기에게는 대번에 큰 효과를 보았던 대주술이 기껏해야 약화로 끝나자 사도와 [옛 지배자]의 격차가 현저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삼사가 술수를 써서 재차 해신의 방어막을 깎아내는 듯 했고, 해신은 다시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받아라!"

무사시가 크게 하늘 위로 솟구치더니 일 참(一斬)을 해신의 목에 날렸다. 그것은 언뜻 보기에 투명한 월륜(月輪)같았는데, 해신은 그 베기를 마주치자 흠칫하더니 갑자기 두 팔을 들어서 막았다.

촤아악!

그리고 해신의 두 팔은 절반정도 베여나갔으나 덜렁거리며 붙어있게 되었고, 그나마도 부글거리는 거품이 상처에 끓어오르자 금세 회복되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 내심 놀랐다.

' 뭐지 저 베기는?'

[옛 지배자]인 해신은 지금까지 자신의 주술방어를 믿고 아무런 방어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방어력이 약화된 지금이라고 해도 일부러 팔을 들어서 자신의 목이 베이는 걸 막으려 할 줄이야? 무사시의 일참에는 뭔가 대단한 위력이 숨겨져 있는 게 분명했다.

"크윽, 역시 진짜 신에게는 통하지..."

정작 베기를 가한 당사자인 무사시는 그 공격이 실패하자 원통한 표정을 지으며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모든 힘을 다한 듯 몸을 가눌 힘도 없어보였다. 그러자 달려나가던 십이율주가 손을 휘두르며 구름을 소환해서 무사시를 받아내었고, 내게 외쳤다.

"바로 지금!"

[ 알았다!]

위이잉

화룡진인이 강신하면서 화요와 화룡신검의 힘을 크게 일으켰고 십이율주는 땅에 양손을 대면서 초록색 공명을 일으켰다. 신단수의 힘을 빌려오면서 목요의 힘을 크게 돋우는 작업이었다. 마침내 화요와 목요, 두 개의 칠요가 파장을 공유하면서 공명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해신은 흠칫 놀라는 듯 했다.

[ 칠요공명(七曜共鳴)!]

화룡진인이 버럭 외치면서 파장을 더 강하게 뿜어내었다. 이윽고 예전에 내가 미호와 칠요를 공명시켰을 때와 마찬가지로 심대한 위력을 지닌 힘의 파도가 해신의 몸뚱이에 날아갔다. 파도를 맞은 해신은 처음에는 멀쩡해 보였으나 힘이 더해질수록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화룡진인이 내면에서 여동빈에게 외쳤다.

[ 공명만으로는 타격을 줄 수 없어! 다시 한 번 파장의 힘을 받아서 공격한다!]

쿠구구구

화룡진인의 진체가 화룡신검을 타고 현세에 강림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자신의 본체를 위험에 드러내는 한이 있어도 이 일전에서 이기겠다는 화룡진인의 각오였다. 여동빈 또한 스승의 결의를 느꼈는지 화룡신검과 화요를 치켜들고 힘의 파도 속으로 크게 뛰어들었다.

[ 아아아아아!!]

여동빈이 화요를 먼저 휘둘러서 거대한 화염의 칼날로 해신의 허리춤을 베었다. 그러자 씨알도 안 먹혔던 아까와는 달리 해신의 비늘이 잘려나가며 허리가 크게 베여져 나갔다. 여동빈은 허공에서 자세를 다잡으며 곧장 검선지경의 무아(無我)에서 필생의 검기(劍技)를 흩뿌렸다.

퍼벅!

마침내 제대로 된 공격이 성공했다! 화룡진인과 여동빈의 전력을 머금은 일격이 화룡신검과 함께 해신의 명치에 찔러 박힌 것이다. 화룡신검이 연속해서 불꽃을 내뿜으며 해신의 몸뚱이를 태우는 게 주인인 내게 느껴졌다.

[ 크우우우...]

해신이 처음으로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화룡진인은 뭔가를 결심한 듯 말했다.

[ 이대론 부족하군. 역시 내가...]

해신이 갑자기 거대한 화염의 칼날이 된 화룡신검을 붙잡으며 자신의 가슴에서 뽑아내려 했으나, 화룡신검은 한층 더 강한 화염을 내뿜으며 그 손길을 거부했다. 그리고 고통스러워 하는 화룡진인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퍼졌다.

[ 오지 마!!]

그러자 멀리로 물러선 여동빈이 이를 악물었다.

[ 해신의 마력이 너무 강합니다. 스승님은 이대로라면 영멸(永滅) 하십니다!]

영멸이란 영혼조차 사라지는 궁극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 모든 영체나 신령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화룡진인은 자신의 모든 힘을 화룡신검에 옮기며 말했다.

[ 너도 알고 있잖아. 내가 사라지는 대신 이 놈을 봉인하는 게 이득이라는 걸.]

[ ... 천 년 전의 일을 반복하란 말씀이십니까?]

여동빈답지 않은 말투였다. 그는 보기 드물게 슬픔의 감정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러자 화룡진인이 웃었다.

[ 네가 종리권을 따라갈 때도 말했지 않느냐. 떨어져 있어도 우리가 함께 정의를 지키자고!]

[ ......]

여동빈은 뭔가를 각오한 듯 했다. 그리고는 남은 손에 있던 화요를 들어서 재차 해신에게로 돌격했다.

콰과광

해신은 가슴에 거대한 칼날이 꽂힌 상태에서도 아까와 다를 바 없는 공격을 해 왔다. 거대한 태풍과 광선포, 천재지변이 미친듯이 난무하는 현장에서 여동빈은 필생의 무공을 다해서 해신에게 날아갔다. 그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던 십이율주가 놀라서 외쳤다.

"저게 투... 투선(鬪仙)!"

절대지경에 이른 십이율주가 경악할 정도로 여동빈의 지금 무위는 급격히 높아져 있었다. 원래라면 회피가 불가능한 해신의 엄청난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면서 심지어 보이지 않는 무형의 마력까지도 흘려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여동빈에게 머릿속으로 말을 걸 수 없었고, 그건 여동빈이 완벽한 집중상태에서 최고조의 전력을 뿜어내고 있다는 의미였다.

해신이 코 앞까지 온 여동빈에게 다시 입의 광선포를 발사했다. 그 순간 여동빈은 크게 분노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모든 힘을 동원하며 상단세로 적을 베었다.

천둔검법(天遁劍法)

심의육합(心意六合)

무형검(無形劍)

그건 내 눈의 착각이었을까? 무형의 검은 자연스럽게 섬광을 갈라버리며 해신의 코를 베어버렸다. 너무나 뜻밖의 일격이었는지 해신은 자신의 코에서 흑혈이 쏟아지는데도 멍하니 있었다.

푸콱!

섬광을 갈라버린 여동빈은 화요를 들고 자비없이 화룡신검 옆에 화요를 또 박았다. 그러자 화룡신검과 함께 쌍인(雙刃)이 해신의 가슴을 꿰뚫은 광경이 펼쳐졌다. 화요를 [옛 지배자]의 가슴에 박은 여동빈은 숨을 몰아쉬며 내게 말했다.

[ ... 연자여...]

[ 여동빈.]

여동빈의 몸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의 영체는 완전히 내게서 분리되더니 갑자기 화룡신검을 향해 깃들었다.

[ 내가 해신의 봉인(封印)이 되겠다.]

[ ......]

[ 스승님을... 천계로 돌려보내 다오...]

정신을 잃은 화룡진인의 영체가 내게 흡수됨과 동시에 검을 잡은 검선의 환영이 나타났다.

[ ... 사람 몸 얻기 어렵고 도 밝히기도 어려워라(人身難得道難明).]

그는 입가에 피를 흘리며 크게 지쳐 있었다. 그리고 해신의 마력이 검선의 팔뚝에 침투해서 보랏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 사람 마음 따라 도의 뿌리를 찾나니(塑此人心訪道根).]

여동빈은 검을 잡은 손에 힘을 빼지 않았다.

[ 이 몸을 이 생애에 제도하지 못하면(此身不向今生度)...]

퍼벅!

여동빈의 몸뚱이에 여러차례 해신이 쏘아낸 저주가 날아와 박혔으나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의 전신이 넝마가 되어가고 있었으나 여동빈은 절대로 손을 놓지 않았다.

그는 도리어 이를 악물었다.

[ 다시 어느 때를 기다려 이 몸을 제도하리요(再等何時度此身)!]

파아앗

여동빈의 몸이 빛이 되어서 산화한다.

검선의 시(詩)이 울려퍼지며 신의 영육(靈肉)을 파헤쳤다.

해신은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듯 울부짖으며 거대한 몸뚱이를 꿈틀거렸다. 여동빈이 완전히 그의 내부에 파고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멍하니 있을 때 화요가 저절로 뽑혀서 내게로 날아왔다.

나는 화요를 받아들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동빈!!"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는 자기자신을 희생해서 해신을 봉인한 것이다.

영멸(永滅)의 각오!

우오오오

그래서인지 해신은 고통때문에 몸을 뒤틀면서도 우리를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신이라고는 하지만 물질체에 가깝기 때문에 우리에게 받은 타격이 누적되고, 심지어 화룡신검을 매개로 봉인이 쐐기처럼 박혔기 때문이었다.

나는 여동빈이 사라졌다고 하니 갑작스럽게 힘이 빠졌다.

' 여동빈이... 죽었다고...?'

죽어도 죽지 않을 것 같은 절대강자 여동빈.

그가 자기자신을 희생하면서 신을 봉인했다는 말인가?

내가 충격을 받고 있을 때 갑자기 해신에게서 말이 들려왔다.

[ 네놈... 칠요의 주인이여...]

나는 해신을 쳐다보았다. 처음으로 놈의 눈동자가 제대로 보였고, 그 눈빛에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것을 한없이 깔보고 무시하는 오만함이 담겨 있었다. 해신은 나를 향해 말했다.

[ 지금 당장... 이 봉인을 떼어내라... 그렇지 않으면 네 모든 것을 파멸시키리라.]

무시무시한 마력이 옥죄어오면서 내 뇌를 터뜨릴 것 같았다. 마도사들에게서 느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절대적인 권능이 나를 옥죄고 있었다. 지금까지 여동빈과 화룡진인이 이 압박에서 나를 지켜주었기에 몰랐지만, 원래 [옛 지배자]의 앞에 서는 것조차도 허용이 되지 않을 정도로 심대한 격차가 있었다. 나는 이대로라면 호흡곤란으로 먼저 죽을거란 사실을 깨달았다.

"허억... 허억..."

그리고 나는 놈의 말이 빈말이 아니란 걸 알아챘다.

봉인이 박히면서 해신의 힘이 약화된 건 사실이지만, 놈은 아직까지 전투능력이 건재했다. 아까 십이율주가 말한대로 놈이 이대로 날뛰면 삼 일 내에 고려국과 동영이 멸망하고, 나아가서는 중원까지 부숴질지도 몰랐다. 그리고 나는 놈의 손에 붙잡혀서 영겁토록 고문당할 것이다.

십이율주가 외쳤다.

"하압!"

십이율주가 목요의 힘을 날렸는지 나는 일시적으로 해신의 제압에서 풀려났다.

쒸잉

콰앙!!

"으윽! 이런..."

하지만 그 대가로 십이율주 쪽으로 해신이 공격을 집중시키기 시작했고, 십이율주는 정신못차리고 계속 도망치기 시작했다. 십이율주와 삼사는 술법을 써서 해신에게서 도망치고는 있었지만 그 모습 어디에도 승기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지금의 상황을 냉정하게 돌아보고 완전히 승산이 사라졌다는 걸 실감했다. 도망치려고 비등을 꺼내봤지만 해신이 도망을 칠 수 없게 결계를 쳤는지 써지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도망도 못 치니 해신의 손에 잡혀서 사지를 뜯길 것이다.

' 처음부터... 못 이기는 거였어...'

이쪽의 계산은 칠요공명으로 틈을 노리고 대라신선이 최대한의 공격을 때려붓는 것이었다. 하지만 화룡진인은 공격을 하던 중 해신에게 타격을 주기에는 힘이 부족함을 깨닫고, 자기자신을 제물로 봉인함으로서 해신을 물리치려 한 것이다. 여동빈은 그 사실을 깨닫고 스승인 화룡진인 대신에 자기가 소멸하길 택했다.

그러나 두 명의 대라신선이 소멸을 각오하고 싸웠는데도 해신은 아직도 건재했다. 약화되었다 해도 어디까지나 신의 기준에서 약해진 거지, 해신의 힘이 천재지변급이라는 사실에는 전혀 변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제 쓸 수 있는 수단을 모두 동원했으니 해신을 이기는 게 불가능했다.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대로 패배해서 죽어야 하는가?

나는 문득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여동빈도... 화룡진인도... 진심으로 인간을 위해 정의를 실천하려 했는데!'

힘의 격차때문에 항거할 수 없는 악(惡)에게 목숨을 날려야만 한단 말인가? 이대로 죽음을 택하고 마구간에서 다시 시작하기에는 너무나 분했다. 나는 이대로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그에 뒤따라서 놈과 사생결단을 내고 싶은 마음이 크게 치솟아 올랐다.

갈등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해신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그리고 품 속에서 침을 꺼내서 비술(秘術)을 시전했다.

참 오랜만에 써보는 비술이었다.

"대라멸진(大羅滅盡)을 시행한다."

요혈을 모두 해방시키는 순간, 나는 전신에 청량감이 감돌면서 오래간만에 강대한 힘이 내게 맴도는 걸 느꼈다.

' 여동빈, 미안합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신에게 한 방 먹이고 죽겠다.

콰광

첫 대라멸진의 일격이 해신에게 날아들자 놈은 아니나 다를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나는 한층 분노에 휩싸였다.

' 그래, 내가 벌레라 이거지?'

그 벌레의 맛 좀 봐라!

나는 순식간에 사문(四門)까지를 열며 내 몸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 뇌명으로 얻을 수 있는 최대치마저 뛰어넘었다는 걸 알아챘다.

' 오문!'

꽈앙

' 육문!'

꽈앙

나는 육문까지 열리자 용비천과 생사결전을 했을 때보다 잠재력이 두 배 이상 뛰어올랐다는 걸 알아차렸다. 지금의 상태에서 이미 호법사자를 패죽일 수 있는 힘이 내 몸에 충만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예전보다 현저히 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약화된 해신의 몸에 전혀 충격을 주지 못하고 있으니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 ... 팔문!'

단지 찰나라도 좋다.

궁극의 힘을 손에 넣고 말겠다!

최종의 경락이 열리는 순간, 나는 화요를 들고 달려들면서 뇌신검무를 시전했다. 더 강한 검초가 많을텐데도 뇌신검무의 초식을 사용한 것은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뇌신검무를 써서 내 검강이 해신의 면전까지 날아간 순간이었다.

' 어...?'

시간이 멈춘 것 같다.

이건 심적권청의 순간인가?

아니, 그런 게 아니다.

나는 온통 새하얀 공간 속에 들어와서 아주 느릿하게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나는 내가 검술을 펼칠 때 얼마나 많은 헛점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냥 눈에 보였다.

검(劍)에 뇌신(雷神)이 깃든다.

그것이 바로, 제례용 무공인 뇌신검무의 진짜 위력.

일천 년을 전해 온 백련교 사대무류의 진정한 비밀.

[누군가]와 만났다는 증거.

뇌신지혼이 뒷받침해야 할 진정한 검의(劍意).

' 간다...'

뇌신검무의 일식(一式)으로 나는 형용할 수 없는 각성감을 크게 느끼며 다시 한 번 걸음을 앞으로 내딛었다.

해신의 마력을 담은 공격이 내 온 몸을 찢어발기려 날아오지만 나는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는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멍하니 내 주위의 공간을 살폈고, 내가 아주 자유롭다는 사실을 인지(認知)했다.

천지인(天地人)의 방위가 내 손에 있다.

피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나는 아주 부드럽게 삼보절기를 펼치면서 해신의 공격범위를 돌파했다. 여태껏 무영검제에게도 간파당할 정도로 허술하게 펼치던 삼보절기였으나 지금의 나는 그런 헛점을 완전히 없애버릴 수 있었다.

쉬칵!!

뇌신의 검기가 뻗쳐나가며 해신의 목을 크게 갈랐다. 약화될대로 약화된 해신이기에 지금의 나 정도의 공격도 결계로 막지 못하는 것이다. 해신은 이번 공격에서 큰 타격을 느꼈는지 몸을 비틀거리면서 고통스러워했고, 나는 멍하니 최종일격을 가했다.

천둔검법(天遁劍法)

일내지천검(一乃之天劍)

초식이 없는 천둔검법 중에서 가장 적합한 동작이 구십구합리귀(九十九合理歸)와 함께 하나의 검이 되어 해신의 목을 베어 버렸다. 거대한 산만한 모가지가 잘려나가자 재생력때문에 붙으려 했으나, 나는 붙으려는 걸 다시 잘라버리고 말았다.

스겅

쿠구궁

나는 혼탁한 눈으로 목이 베인 해신의 어깨 위에 서서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 이제 죽는건가?'

해신을 없앴지만 나 또한 대라멸진을 극한까지 사용하고 말았다.

대라멸진을 극한까지 썼을 때의 결과는 오직 하나, 죽음.

나는 다가오는 죽음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 복수했으니까 됐어...'

그 때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 권능 발현.]

키릭 키릭

무언가가 되감기는 소리.

나는 그 불쾌한 소리가 나를 끌어당긴다고 생각하면서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의식을 잃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