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78 암천향(暗天鄕) =========================================================================
쓔웅
둔중한 빛이 날아든다.
나는 인식한 순간 내 목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초절의 감각으로 위험한 범위를 벗어났기에 일격에 목이 달아나는 건 피했지만, 숨을 한 번 들이쉬는 순간 내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푸콱
"......!!"
나는 급히 내공으로 목을 지혈하며 상대의 검로(劍路)를 살폈다. 동시에 내 몸 상태를 객관적으로 살필 수 있었다.
죽을 상처였는데 죽지 않았다. 베인 깊이로 보면 단번에 절명해도 이상하지 않으나, 역시 금강불괴가 된 몸 상태 덕에 괜찮은 모양이다. 상대 또한 그걸 인지했는지 잠시 눈에 이채를 띄더니 연속해서 뱀처럼 휘어지는 검로를 발출했다.
따다당
검강이 허공에서 번갯불을 내며 부딪혀갔다. 용중일은 총 세 번의 검로를 사용했는데 상변을 두 번 베고 하단을 한 번 찔러왔다. 단순하다면 단순한 검로였으나, 나는 두 번째 공세를 마주하는 순간 내 영역에 빈틈이 생긴 걸 깨달으며 몸을 굴러서 피해야 했다.
내가 무탄력경공으로 튕기듯 일어서자 이번에는 힘으로 밀어붙이는 강검(鋼劍)이 날아오는 게 보였다. 나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 힘으로 하는 거라면 내가 유리하지!'
내 압도적인 내공의 힘이라면 신승이나 등곽이 아니고서야 열세를 보일 수밖에 없다! 나는 자신있게 용중일의 검로에 맞서싸우려 했으나 그 순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퍼억!
"컥."
나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옆에서 망량이 놀라서 외쳤다.
"백웅!"
옆구리가 베였다. 뒤늦게 피가 치솟아 올랐지만 나는 그마저도 다행으로 느껴졌다.
' 헉... 헉...'
완전히 허를 찔렸다.
원래라면 그저 한 줄기 검상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옆구리가 통째로 뜯겨나가며 상반신의 1할이 소실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공격이었다. 왜냐하면 방금 전에는 뜻밖에도 이기어검이 날아와서 내 몸을 격중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내 감각을 완전히 속이고 날아들어왔으니 용중일의 이기어검 성취는 가공할만 했다.
이대로는 죽는다!
나는 화요를 해방시키며 칠요의 위력을 끌어올렸다. 동시에 전국옥새의 힘까지 끌어올려서 내 몸의 재생력을 향상시켰다. 심상치 않은 힘이 내 몸에서 퍼져나오자 용중일은 검을 상단세로 잡으며 짧게 일 참(一斬)을 날려왔다.
콰과광!!
폭음이 터져나왔으나 나는 용중일이 뒤로 밀려난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여태껏 내 강격을 맞이했던 초고수들이 힘에 밀려서 화경으로 무마했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그는 정면에서 나와 검합을 겨룬 상태였다. 그래도 힘들긴 한지 용중일의 몸이 약간 비틀거렸다.
' 뭐지 방금 그건...'
나는 의혹을 느꼈다.
잠깐이지만 용중일의 검신에 광채가 흐르더니 내 시력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이다! 그리고 그 무형의 칼날이 다시 나타났을 때는 내 강격에 밀리지 않은 채로 온전히 버티고 있었다. 용중일이 심적권청의 순간에 중얼거리는 게 느껴졌다.
[ 내 검형(劍形)이 불완전하군.]
무슨 뜻인지 생각하기도 전에, 나는 무아지경에서 칠대절학과 뇌신검무를 써서 용중일에게 미친듯이 공세를 퍼부었다. 전국옥새의 잠력과 칠요 간장의 힘을 끌어올린 내 검격 하나하나는 설령 호법사자라 해도 정면으로 맞상대하는 게 불가능했기에, 용중일도 방금처럼 정면으로 받지 못하고 그저 피할 수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승세가 이어진다. 아무리 용중일의 검학이 고명해도 칠대절학의 굴공천축검도 그에 못지 않았으며, 내 힘은 활화산처럼 무한하게 솟아오르니 당연한 일이었다.
' 이긴다!'
그리고 내가 용중일의 헛점을 찾아서 그대로 베어내릴 때, 나는 그만 공격을 멈추고 멈칫하고 말았다. 일격만 가하면 그의 숨통을 끊을 수 있는데도 멈춘 이유는 그가 [피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물끄러미 용중일과 눈을 마주쳤다. 그는 뜻밖에도 매우 맑은 눈으로 살기 하나 품지 않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나를 베지 않소?"
나는 화요를 거두며 말했다.
"십 초수군."
그랬다.
용중일은 십 초가 끝났기에 전투가 끝났다 판단하고 멈춘 것! 나 또한 초절정의 검호이므로 그런 그의 의도를 알아챘기에 검을 멈춘 것이다. 이 상황에서 용중일에게 손을 써서 목을 베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용중일이 말했다.
"용의 화신이란 말은 진실이었구려. 당신 목에 난 검상은 벌써 다 회복되었으니... 인간으로써 감히 신적인 존재를 의심하고 공격한 일에 진심으로 사죄하겠소."
그렇게 말한 용중일이 갑자기 검을 들어서 자신의 오른팔을 내리치려 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달려들어서 그의 자해행위를 막았다.
까앙!
"무슨 짓이오?"
"내 사죄를 받지 않으시겠소?"
"그게..."
나는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용중일이 난데없이 나타나서 초수를 겨루고 팔을 잘라 사죄하려는 행위가 너무나 의외였기에 사고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망량이 말해 주었다.
"용의 화신께서는 당신과 적이 될 이유를 찾지 못하셨소. 그래서 쓸데없는 자기위로행위를 막았을 뿐이오. 이걸로 깨달으셨소이까?"
"하하! 그런가..."
용중일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 때 큰 저택의 안쪽에서 부랴부랴 등곽이 뛰어나와서 외쳤다.
"이 무슨 일인가?!"
등곽을 힐끔 바라보던 용중일이 말했다.
"간만입니다, 등 어르신."
"음! 용중일..."
그들은 구면인 듯 싶었다. 등곽은 당혹스러워하며 우리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우선 다툼을 멈추고 모두 안으로 들어오시오. 이야기는 안에서 합시다."
우리는 등곽을 따라서 그의 저택으로 들어갔다. 그는 과연 권위있는 고관대작 답게 엄숭에 못지 않은 커다란 사유지를 지니고 있었다. 이 정도 규모라면 낙양에서도 손꼽히는 부자일게 틀림없었다. 뿐만아니라 내부에도 굉장한 고가로 보이는 백은이나 은, 금 등의 장식물이 널려있었다.
등곽의 접객실을 둘러보던 망량이 비꼬듯 말했다.
"등곽 어르신께서는 제가 듣기로 약한 자와 서민, 강직한 유생을 위해 노력하신다 들었는데 스스로 검소하진 않으시군요."
등곽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약한 자를 위해 일하는 야당(野黨)에 속함을 자처한다 해서 재산이 적으라는 법이 있는가? 맹세컨대 이 재산은 삼국시대의 내 선조 등애(鄧艾) 때부터 이어져내려온 정당한 재산이며 불법적으로 취득한 건 하나도 없네."
"그렇군요."
"명문 제갈가의 귀재답게 사람을 떠보는데 익숙하군, 제갈현... 아니 망량선사인가?"
등곽이 슬며시 이야기하자 망량이 말했다.
"어르신께서 일개 서생에 불과한 저를 알고 계시다니 놀라운 일이군요."
"놀라울 일이랄 것까지 있는가? 망량선사라 하여 진랑곡의 괴인이 아주 뛰어난 점술실력과 예견을 지니고 있어서 많은 고관대작들이 그대의 조언에 큰 도움을 받았다는 소문은 나도 들었지."
등곽은 씩하고 웃었다.
"내가 보기엔 그 모든 게 그저 지혜의 소산일 뿐이지만."
"하하. 앞으론 망량이라 불러주십시오."
"그리 하겠네."
망량은 그저 웃고 넘겼으나 나는 내심 놀라움을 느꼈다. 망량은 여태껏 누구와 얘기하든 크게 밀리는 일 없이 대부분 예민한 구석을 찔러서 약점을 드러나게 했는데, 등곽은 능수능란하게 망량의 말을 되려 돌려준 것이다.
' 노회한 정치가라는 말이 사실이군.'
등곽은 쓱하고 용중일을 쳐다보았다.
"용중일. 황산에 늘 있던 자네가 예까지 오다니 놀랄 일이군. 설마 백련교의 일로 내게 찾아온 것인가?"
나는 등곽의 말에 내심 놀랐다. 저 말은 등곽 또한 용중일이 황산파의 장문인이며 동시에 풍신류의 후계자라는 걸 알고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풍신류라고 직접적 언급은 하지 않았으나 저정도 언급이라면 서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등곽의 말에 용중일은 팔짱을 낀 채 대꾸했다.
"용의 화신이라는 존재가 낙양을 뒤집어엎었다는 소문이 황산까지 들려오더군요. 뿐만 아니라 제 아버님도 그에게 일패도지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와서, 힘을 확인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화룡진인이 용비천을 휘파람으로 날려버린 일 때문인 듯 했다. 등곽은 그 이야기를 듣자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 그것 때문만은 아닌 듯 하네만...?"
"......"
"복수하려 온 건가?"
"그건 아닙니다."
단정적으로 대꾸한 용중일은 창 밖을 보며 딴청을 부렸다. 대화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여튼 좋네. 무인들끼리 무(武)를 부딪히려다 사고가 날 뻔한 모양이군."
등곽은 내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용의 화신께 사과드립니다. 여기의 용 모는 무학에 대한 탐구심과 호기심이 깊어 귀인께 무례를 범하게 되었군요."
등곽이 내게 존대를 하자 어색한 느낌이 들었지만, 망량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는 눈치를 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별 일 아닙니다."
"그래서, 다들 무슨 일로 본가를 방문하셨는지?"
여기부터가 중요하다. 나 대신에 망량이 상반신을 앞으로 내밀며 말을 꺼냈다.
"등 어르신. 실례합니다만 저희는 유림과 화신류가 앞으로 어떻게 황궁과 대명제국의 질서를 예편할지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일에 대해서 당사자의 의견과 전망을 들어보고자 발걸음을 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그렇군..."
침음성을 흘리던 등곽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했다.
"한백령과도 어제까지 이야기를 했지. 내일이면 황제 추대식이 일어날 것이고 동시에 새로운 황궁을 짓는 대공사가 시작될 예정일세. 그걸 위해 각지에 공문을 보내서 뛰어난 목수를 황도로 불러들이는 계획을 짰지. 황궁은 아마 2년이면 기초공사가 끝나고 본래의 위용을 되찾을 걸세."
"그런 표면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뭔가?"
"유림과 유림을 이끄시는 등 어르신이 새로운 정권의 실세가 될 터인데 이 나라를 어떻게 이끄실지에 대해서 묻는 겁니다."
망량의 질문에 등곽은 침묵했다. 그는 턱을 괴며 말했다.
"용의 화신과 그 부하께서는 인간속세의 일에 관심이 많으신가보군."
그가 비아냥거렸지만 망량은 흔들리지 않고 말했다.
"성의있게 말씀해주셔야 할 겁니다. 지금 대명제국을 둘러싼 힘의 축이 어떻게 흐를지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으니까요."
"누가 제갈가 사람 아니랄까봐 더럽게 똑똑하군. 알았네."
한숨을 푹 쉰 등곽이 손깍지를 끼며 말을 이었다.
"우리 유림은... 신(神)의 도움으로 신과 맞서싸우는 단체일세. 아마도 앞으로도 그렇게 되겠지. 적어도 이번처럼 황궁에 사악한 세력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게 될 것일세."
신의 도움으로 신과 맞서싸운다고?
뜻밖의 이야기에 나는 물론 망량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망량이 말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유림이란 유학(儒學)을 공부하는 사림의 집단으로 세속의 견명한 이치를 위해 노력하는 곳이 아닙니까? 왜 신이라는 존재가 그 수장이란 분의 입에서 나오는 거지요?"
"훗. 표면적인 세계밖에 모르는 자들에게는 나도 그렇게 대답했겠지. 하지만 내 눈 앞에는 용의 화신이 있으며, 얼마 전까지 인간을 초월한 힘과 맞섰으며, 이세계의 괴물과도 싸웠지. 이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공맹을 논하는 게 도리어 현실을 무시한 기만일세. 어차피 자네들은 이면의 세계에 발을 담근 주민이 아닌가?"
"흐음."
"많은 유학자들이 간과하는 거지만 유학의 근본은 실사구시(實事求是). 현실을 배제한 형이상학이야말로 우리의 금기일세."
쓴웃음을 지은 등곽이 말했다.
"뭐 방금 말한 대로일세. 우리 유림은 은주시대부터 인간에 반(反)하는 이계의 존재에 맞서싸우는 비밀결사일세. 자네들이 잘 아는 공자(孔子) 어르신때부터 크게 세력을 확장하여 이 중화대륙의 이념을 정도(正道)로 이끌기 위해 노력한 선비와 무인의 집단... 그것이 바로 우리 유림(儒林)일세."
".......!!"
망량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지요."
"그러지. 우리의 시조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공자(孔子)일세. 그 분은 올바른 체계와 정신을 위해 춘추전국시대의 열국을 돌아다니며 가르침을 전파하고 제자를 받아들였으나, 그 모든 게 실상은 유림의 활동의 일부였네. 그 분 이전부터 우리는 인신공양과 사술(邪術)에 반대하며 노력해 왔네. 이후에도 우리는 법가(法家), 묵가(墨家) 등 다양한 제자백가들과 논의하고 때로는 타협하며 종교를 벗어난 세속세계를 만들어 왔네. 무려 수천 년에 이르러서 말이지."
나는 그의 말을 듣다가 궁금해서 질문했다.
"수천 년 동안 중화의 지식인들이 종교를 벗어나려 했던 이유가 뭐요?"
"[옛 지배자]라고 불리는 사악한 신적 존재 때문입니다."
등곽은 차분한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이 세상은 악에 빠져들어 타락하기가 너무 쉬우며, 또한 인간의 본성도 악에 치우쳐 있으니 악신에게 소망하여 힘을 얻으려 하기 쉽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인간을 위해서 [현실]이라고 불리는 껍질을 만들어줘야 했고, 종교란 삿되고 어리석은 미신에 불과하다고 지속적으로 인식시켜야 했지요."
"껍질?"
"신적인 존재에게 기대기 시작하면 인간의 자아는 한도끝도없이 수동적으로 변모하는 법. 종교를 마음껏 믿으며 신앙하게끔 하면 인신공양에 도취된 사악한 제국이 탄생하는 건 순식간이었을 겁니다. 우리 유림은 그걸 막고자 노력했던 겁니다."
그럴듯한 소리다.
' 확실히 봉선의식같은 걸 생각하면 맞는 말이군.'
유림이 여태껏 치열하게 군주의 만행을 막아냈는데도 결국 진시황은 삼황오제의 힘을 빌리는 봉선의식을 시행했다. 권력자들이 신의 힘을 빌리고자 함은 현실적으로 당연한 이치에 가까웠다.
망량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한 가지 설명되지 않는 게 있군요."
"무엇 말인가?"
"무슨 힘으로 이족과 [옛 지배자]에게 대항할 수 있었던 겁니까?"
"......"
"인간의 힘만으로 대항하기에 그 존재들은 너무나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유학에 근간한 세속체계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대항하는 게 불가능하지요. 수천 년동안 유림이 활동해 왔다는데 어떤 힘으로 가능했던 거지요?"
망량의 말이 맞다. 고위이족 한 마리의 힘만 하더라도 일개 인간에게는 신으로 보일 정도로 강력하다. 유학자들이 아무리 사상적으로 옳다고 해도 현실적인 완력으로 대항하고자 하면 뭉개졌으리라. 무림에서 수십 년간 강대한 무예를 갈고닦은 초절정고수조차 이족에게 살해당하는 판국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신의 힘일세."
등곽은 무겁게 말을 이었다.
"아니... 우리 유림의 결성 자체가 그 신의 의지였다고 해야 하겠군. 이건 모순일세. 종교와 신, 심지어는 도가나 불가의 신격조차 배제하는 우리 유림이지만, 그 근본부터가 신의 의지라고 하는 모순일진대..."
"어떤 신을 말하는 겁니까?"
"신이라기보다는... 우리는 그 분을 [위대한 의지]라고 칭하고 있네."
등곽이 말했다.
"상고시대부터 [널리 인간을 위하라]라는 의지를 인간의 잠재의식에 심어놓고, 그런 의지와 재능이 강한 자들에게 자신의 가호를 널리 퍼뜨린 신적 존재가 있었네. 우리가 기치로 따르는 정명(正名)의 개념도 그 존재가 암시하여 공자께서 말씀하신 것."
"무슨 말인지..."
"망량. '북극성이 제자리에 있고 여러 별들이 이를 받든다'(爲政以德、譬如北辰居其所而衆星共之)라는 구절을 알고 있나?"
망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명한 공자의 말이지요. 군주는 자기 위치에서 옳은 재량을 발휘하고, 제후들은 그를 보좌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뜻만이 아닐세."
"네?"
"그 구절은 그 자체로 영적인 권능을 품고 있지."
등곽은 충격적인 말을 했다.
"시중에 있는 유학의 이론과 말씀은 그저 세상을 논하는 세속체계가 아닐세. 거기에는 내가 방금 말한 신적인 존재가 자신의 권능을 불어넣은 일종의 '힘'이 담겨있네. 그 '힘'은 말과 사상에 작용해서, 인간이 본연적으로 지닌 자질을 높여주고 사악한 존재에게 대항하는 항마(降魔)의 힘, 사악한 부름에 거역하는 정명이 되는 것!"
"......!!"
"그렇기에 고명한 유학자는 아무런 무공도 술법도 알지 못한다 해도 사악한 잡귀나 요괴를 자신의 의지로 떨쳐낼 수 있는 것이라네. 도학수련자나 승려에 버금가는 힘이지."
"그렇습니까..."
"우리는 이렇게 선한 신격의 도움을 받아 수천 년간 인간을 지켜온 걸세."
그 말을 듣는 순간 망량은 납처럼 무거운 표정을 했다.
그리고 내게 전음을 보냈다.
[ 백웅. 짐작했소?]
[ 약간은...]
나는 망량이 뭘 짐작했는지 알고 있다.
왜냐하면 등곽의 말을 듣는 순간 아주 유사한 권능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 파천(破天)의 가호!'
망량선사가 인간에게 내려준 힘!
운명조차 거스르고 이족에게 거역하는 거대한 힘이자 대존재는 바로 망량선사일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