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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477화 (477/1,615)

00477  암천향(暗天鄕)  =========================================================================

나는 망량에게 지금 상황을 이야기하고 의논하기로 했다. 팔짱을 끼고 생각하던 망량이 말했다.

"그는 지금쯤 아마 아유타야 왕국에 있을 확률이 높소. 다만 그가 중원에 복귀하고 있을 확률도 상당하니, 확실히 동방무결을 불러오려면 한 사람의 조력이 필요하오."

"백련교주."

"그렇소. 백련교주의 명령이면 동방무결은 두말하지 않고 우리를 돕겠지."

"......"

하지만 그건 정말로 힘든 일이다. 천하의 백련교주를 움직이는 일은 굉장히 큰 중대사였고, 거기에 소모되는 심력과 각종 보물, 교섭의 위험성은 여태껏 심대하게 실감해 왔었다. 내 표정이 굳어지자 망량이 말했다.

"... 최후의 방법으로 해 둡시다. 우선은 움직이시오. 그리고 동방무결을 만났을 경우 그를 데려올 수 있는 계책을 알려 주겠소."

"알았소."

파앗

나는 아유타야 왕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은신술로 몸을 숨기고 왕궁 내를 돌아다니던 중, 강력한 기감을 발견했다.

' 큰 기운이 세 개... 동방무결과 백원쌍마겠군.'

바로 찾았다. 운이 좋다.

내가 즉시 그쪽으로 가서 동방무결을 설득하려고 움직이려 할 때였다. 갑자기 내가 있던 공간이 기묘한 기계장치로 가득한 공간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키리릭 키릭

환술인가?

내가 정신을 집중해서 이 공간을 벗어나려고 할 때, 기계장치의 저편에서 딸깍거리는 막대기 뒤편에서 누군가가 걸어나왔다. 나는 그 자의 모습을 확인하자 인상을 찌푸렸다. 갈색 머리카락에 푸른 눈을 지니고 있는 잘 생긴 색목인 청년이었다.

"생김새로 보아하니 명나라 사람같은데,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까?"

그 자는 유창하게 명나라 언어를 사용하며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그 자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능숙하게 우리 말을 구사하는 일에 그다지 의문을 품지 않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Philippus Aureolus Theophrastus Bombastus von Hohenheim. 알아듣겠습니까?”

나는 저 자의 이름이 신성로마제국에서도 프로이센 공국의 서역인들이 쓰는 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지난번에 천신경으로 요하네스 리히테나워의 영혼을 강령했을 때 간접적으로 그가 지닌 어학지식과 어휘력이 내게 흡수된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 외계의 언어를 듣던 반응에서 벗어나서 대충 알아들을 수는 있었기에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냥 파라켈수스라고 불러도 되겠지?"

필리푸스 아우레올루스 테오플라스투스 봄바스투스 폰 호엔하임. 나는 놈의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있었으며, 놈이 다소 으스대는 말투로 과시하고 있었기에 약간 빈정이 상했다.

"......!!"

파라켈수스는 깜짝 놀랐다. 그는 내가 예전 전생에서 마주쳤던 인물로서, 그 또한 이족과 연관이 있는 마도사였다. 그리고 현재는 아유타야의 제왕인 흑태자 나레쑤언을 도와 부국강병과 발전에 도움을 주고 있는 존재이기도 했다.

그는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역시 내가 생각한대로 대단히 특이한 존재군. 보통 인간이 신의 정수(精髓)를 품고 있을 리 없지."

놈은 내가 전욱의 사도라는 걸 알아본 모양이었다. 나는 냉막한 표정으로 검을 빼들며 말했다.

"날 방해하지 마라. 막아서면 베겠다."

내 힘을 동원하면 이 정도 결계를 베는 건 일도 아니다.

그러자 파라켈수스가 웃는 낯으로 손을 내저었다.

"막다니 그럴 리가. 당신의 목적은 어차피 저 동방의 세 얼간이 아닙니까? 저런 놈들쯤은 아무렇게나 대해도 상관없습니다. 지지든 볶든 관여치 않겠습니다."

"......"

"결계는 지금 곧 풀어드리지요. 그 전에 제안을 들어보시길."

"제안?"

"내가 보기에 당신은 굉장히 특출난 힘을 지니고 있는 것 같군요."

묘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던 파라켈수스가 말을 이었다.

"저와 함께 신의 유산(遺産)을 얻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당신의 도움이 있으면 얻을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

"축융족이 지키고 있지만 그들의 방해를 뚫고 거신족의 힘만 얻을 수 있으면 세계를 지배할 수도 있어요."

신의 유산?

나는 강하게 경계하며 말했다.

"신의 유산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딴 일에 정신 팔 이유가 없어. 이게 마지막 경고니까 잘 들어라."

우우웅

내 검에 검강이 감돌았고, 나는 서서히 뇌명의 호흡도 끌어내었다. 내가 품고 있던 엄청난 내공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반경 삼 장은 뇌력(雷力)으로 가득차는 듯 했다. 나는 눈에서 번갯불을 튀기며 으르렁거렸다.

"안 비키면 벤다!"

파라켈수스는 내 말을 허언으로 생각하는지 유들유들하게 말했다.

"훗, 기껏 기를 머금은 칼으로 내 결계를..."

푸콱!

그 말을 끝으로 파라켈수스의 머리통이 몸통과 분리되고 말았다. 놈의 목은 웃는 낯 그대로 잘려서 하늘로 솟구쳤고, 나는 일순간에 발검(拔劍) 자세를 원래대로 회복했다.

"잘 베잖아?"

발검술을 한 번 쓴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놈은 자신의 결계를 과신하다가 일격에 죽고 만 것이다. 놈과의 거리는 십 장이 훨씬 넘었지만 내 공격범위는 충분히 이십 장도 일순간에 공격할 수 있었다.

파칭

파라켈수스가 쓰러지자 기이한 아공간은 즉시 사라지고 나는 현실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싸늘하게 말했다.

"살아있지?"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으나 나는 다시 한 번 말했다.

"살아있는 거 안다. 다시 한 번 내 눈 앞에 나타나거나 방해하면 그 때는 네놈 본체를 박살내 버리겠다, 파라켈수스."

푸드득 거리는 소리와 함께 뭔가 조그마한 동물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목이 잘린 채 쓰러져있던 파라켈수스의 몸퉁이 희끄무레한 물체로 변해서 땅으로 모래처럼 쏟아지는 게 보였다. 역시 예상대로 내 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낸 게 아니라 가짜분신을 보내왔던 것이다. 제갈사에게 들었던대로 마도사의 행동방식은 교활하기 짝이 없었다.

' 원래라면 저 놈의 목적을 들으면서 정보를 캐내겠지만 그럴 시간이 없어.'

망량의 술법은 무한정 제갈사의 시간을 멈출 수가 없다. 내가 샛길로 빠져서 시간을 낭비하면 결국 제갈사는 손도 못 써보고 죽거나 불구가 될 것이다. 나를 이용해먹으려는 마도사같은 건 즉시 베어버리는 게 답이리라. 또한 이렇게 분신을 해치우며 엄포를 놓았으니 당분간은 날 방해하지 못하리라.

나는 곧장 동방무결 일행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동방무결에게 말했다.

"천상괴의 동방무결. 나는 백웅이라고 하오. 꼭 살려야 할 환자가 있으니 나와 같이 가 주시오."

"중원놈이군. 반로환동한 건가?"

인상을 찌푸리던 동방무결이 고개를 홱하고 돌렸다.

"어찌 나를 찾아왔는지는 몰라도 일 없다. 당장 꺼져라."

"나는 이번 의뢰의 대가로 당신에게 세 가지를 줄 수 있소."

동방무결이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나는 그에게 수요의 유적을 지키고 있던 인면지주의 내단을 보여주며 말했다.

"인면지주의 내단이오. 날 도와주면 우선 이걸 드리겠소."

"음..."

"두 번째로, 지금 치료해야 할 환자는 천하오대의원의 나머지 네 명이 난색을 표하는 중환자요. 그 환자를 치료한다면 당신의 의술이 명실공히 천하제일임을 재입증하는 셈이오."

두 번째 이야기를 듣자 동방무결의 표정이 크게 흔들렸다. 그는 관심없는 척 은근슬쩍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세 번째는 뭐냐?"

"그건..."

나는 백원쌍마를 신경쓰는 척 하다가 그에게 전음을 보냈다.

[ 나는 수신류 무공의 실체와 천령단의 비밀을 알고 있소. 당신이 날 도와준다면 거기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려주겠소.]

"......!!"

동방무결은 경악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믿을 수 없다! 네 말이 사실이란 증거가 어딨느냐?"

"믿지 않아도 좋소. 허나 첫 번째, 인면지주의 내단은 두말할 것 없는 진실. 당신은 어쨌든 이득이 아니오?"

"크흠... 네 녀석은 너무 근본없이 나타나서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좋소. 그러면 이렇게 하는 게 어떻소?"

스윽

나는 동방무결을 향해 검을 세웠다. 그리고 서릿발같은 살기를 일으키며 육합전성을 내뿜었다.

[ 앞의 세 가지를 받지 않고 얻어터지고 끌려가던가!]

"네 이놈! 네놈이 호법사자라도 되나? 어디 맛 좀 봐라!"

동방무결은 기다렸다는 듯 옆에 있던 백원쌍마들과 함께 나를 합공하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초절정고수 셋의 합공이니 나로서는 어떻게든 피하고싶은 상황이었겠지만, 내가 이번에 억지로 무력다짐을 하는데는 이유가 있었다.

전욱의 사도로서 얻은 금강불괴!

그것만 있다면 동방무결과 싸워도 부상없이 안전하게 제압할 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든 것이다. 잠시 후 초수가 부딪히며 섬광이 일어났고, 나는 뇌명을 일으키며 단숨에 내가 쓸 수 있는 전력을 크게 일으켰다.

고고고고

' 전국옥새 해방! 화요여 힘을 내어라!'

갑작스럽게 내가 내뿜는 힘이 10배는 강해지자 거대한 장강을 날리던 동방무결의 얼굴에 당혹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앗..."

"이얍!"

꿍 하는 소리와 함께 달려들던 백원쌍마 두 명이 커다란 힘에 부딪혀서 기절하고 말았다. 내가 단순히 견제용으로 장력을 날린 것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들이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나는 이어서 동방무결의 혈을 제압할 작정으로 보라는 듯이 제압절초를 전개하기 시작했다. 동방무결이 이를 악물었다.

"당하기만 할 줄 아는가!"

퍼벙

"흐아악..."

나는 동방무결의 장력에 정통으로 세 방을 얻어맞자 몸 안의 장기가 모조리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뜻밖의 상황에 당혹스러워졌다.

' 뭐야?! 금강불괴 아니었어? 왜...'

무영검제의 검강에 격중당하고도 피륙의 상처로 끝났기에 동방무결의 공격에도 멀쩡할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저 죽지만 않았을 뿐 장력을 고스란히 얻어맞은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금강불괴의 경지라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쿨룩! 쿨룩!"

나는 갈피가 잡히지 않아서 피를 토하며 서 있었지만 동방무결은 내게 큰 공격을 성공시키고도 얼굴이 경악에 물들어 있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12성 공력이 담긴 삼첩장(三疊掌)을 맞고도 멀쩡하다니... 이... 인간인가..."

어라? 놈이 기가 살아서 날뛸거라는 예상과 달리 놈은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나는 피기침을 토해내며 말했다.

"쿨룩! 내가 쿨, 룩 전력, 을 쿨룩! 다했, 으, 면... 쿨룩쿨룩... 그대는 이미... 쿨룩..."

제대로 말이 안 나온다. 역시 장력을 제대로 맞아서 내장이 터진 기분이었다. 다만 피기침이 많이 나올 뿐이지 전투력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해방화요를 휘두르며 싸우면 10초 안에 동방무결을 회칠 자신이 있었다. 나를 보던 동방무결은 뭔가를 결심한 듯 말했다.

"내가 항복하고 네놈 제안에 따른다면 정말로 그 세 가지 제안대로 해 줄 테냐?"

"물론, 쿨, 룩쿨룩!"

"졌다. 그 살린다는 놈이 누군지 데려가라."

"......"

분명히 이긴 게 틀림없고 계속 싸워도 이길텐데 왜 착잡한 기분이 드는 걸까? 나는 내가 갖고 있는 금강불괴의 성능이 의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아예 공격을 흡수하거나 반사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그저 목숨만 붙여놓는 위력인데, 정말로 전욱은 이런 걸 [사도]의 권능씩이나 되는 거라고 내린 걸까?

내가 속으로 회의감을 느꼈지만 어쨌든 동방무결을 데리고 장령곡에 왔다. 동방무결은 장내에 도착해서 나머지 오대의원을 으스대는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말했다.

"하하! 너희가 제 할 일을 못한다 하니 내가 마무리를 해주러 왔다."

"잘난체 하지말고 거기 앉으시오. 환자를 살리는 일에 어찌 상하고저가 있을 수 있겠소?"

"흥..."

이윽고 동방무결은 화서명에게 설명을 듣고는 자기 나름대로 진맥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동방무결이 천방지축으로 무공만 믿고 날뛰는 모습만 보아왔을 뿐 저 놈이 의술을 시전하는 건 처음 보았으므로 놈의 일거수 일투족에 집중했다. 만일 저 놈이 허튼짓을 해서 제갈사가 죽는다면 저 놈을 결코 용서치 않으리라.

한참 후 동방무결이 말했다.

"과연 화서명 말대로군. 통상적인 수술법으로는 어떻게 하더라도 장애가 남을 것이다. 하지만 천재인 이 몸이 생각한 방법이라면 아무 후유증없이 회복시킬 수 있지."

"어떻게 한다는 소리요?"

"잘 들어라..."

동방무결은 잠시동안 의원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나머지 오대의원에게 자신이 시행할 방법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러자 화서명과 강전길은 신중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놀라워했고 약왕은 그게 뭐 어쨌냐는 표정, 그리고 상관혁은 냉막한 표정을 지었다.

"약왕. 마폐탕은 준비되었겠지?"

"되었소."

"그럼 바로 수술에 들어가지."

그리고 동방무결 주도하에 천하오대의원이 제갈사를 살리기 위한 대수술을 시작했다. 대수술은 장장 세 시진동안 쉬지않고 이어졌고, 나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필요한 걸 계속 공급하러 천하의 의가를 돌아다녀야 했다.

수술이 끝나자 제갈사는 다소 창백한 안색으로 누워있었다. 동방무결은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옷에 손가락을 닦으며 말했다.

"혈액이 부족하니 깨어나는데 시간이 좀 필요할 것이다. 허나 완벽히 치유했다."

"천하오대의원 모두들... 감사하오."

나는 피곤해하는 천하오대의원들에게 큰절을 했다. 그러자 더러는 껄끄러워하면서도 내 감사를 받아주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의성 상관혁이 내게 전음을 보냈다.

[ 말해두지. 내게 걸려있던 이혼대법은 거의 풀렸네. 제갈사가 반쯤 죽어서 영혼이 명계와의 경계에서 멈춰있었기 때문이네.]

뜬금없는 상관혁의 전음에 내가 흠칫 놀라자 그가 말했다.

[ 이번 수술에 나는 최선을 다해서 협조했네. 그러니 제갈사가 다시금 내게 이혼대법을 걸지 않도록 해 주게.]

[ 알았소.]

나는 천하오대의원들을 하나하나 본거지로 돌려보냈고 남은 것은 동방무결 뿐이었다. 나는 동방무결에게 약속했던 대가를 주기로 했기에 수신류 무공과 사대무류, 그리고 천령단의 제약과 원영신에 대해서 내가 아는대로 상세하게 동방무결에게 설명해 주었다.

"......!!"

"아무튼 그런 까닭에 천령단을 얻어봤자 결국 죽은 후까지 고통받는 법. 그리고 수신류의 무공을 익힌다 함은 이종족의 육체로 변이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오."

"믿을 수 없다."

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가 당신 듣기 좋은 소리를 하기 원했던 거요? 그런 거였다면 얼마든지 달콤한 소리를 해줄 생각이었소만, 당신이 수신류의 제자가 되길 원한다면 내 충고를 명심하는 게 좋을 거요."

"으으..."

동방무결은 자신의 이마를 짚고 고뇌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쐐기를 박듯 말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말해준 내용을 결코 발설하지 않기를 바라겠소. 만일 내게 피해가 온다면 당신이 비밀을 누설했다고 간주하고 반드시 죽이러 가겠소. 나는 당신이 백련교주의 보호를 받는다 해도 죽일 자신이 있소."

"... 알았다."

나는 일련의 과정을 끝마치고 동방무결까지 돌려보내자 한숨이 나왔다. 제갈사가 중대한 마도서의 비밀을 말해준 건 다행인데, 그를 되살리는데 너무 진이 빠진 것이다. 내가 앉아서 쉬고 있을 때 망량이 말했다.

"백웅. 제갈사가 깨어나기 전에 해야할 일이 있소."

"뭘 해야 하오?"

"나와 함께 등곽을 만나러 갑시다."

망량이 말을 이었다.

"신비세력 유림의 수장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그리고 그가 향후 어떤 천하를 만들려 하는지 직접 듣고 알아보아야 하오. 그의 성향을 알 수 있다면 앞으로 백웅 당신이 판을 짜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오."

파앗

나는 망량과 함께 등곽을 만나러 낙양으로 향했다. 그리고 등곽이 거처한다는 거대한 저택을 찾아서 방문하려 했다. 그러나 나는 등곽의 저택 앞에서 뜻밖의 인물을 마주치게 되었다.

"그대가 용의 화신이라 불리는 자인가?"

쿠웅

혼자서 등곽의 저택 앞을 가로막듯 나타난 사내는 심유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난데없이 이 자가 여기에 나타날 이유를 알지 못해서 그를 응시했다. 사내는 말을 이었다.

"낙양 내를 자유자재로 출입하는 능력이 있는 듯 하여 그대가 갈만한 곳에 미리 가서 기다리기로 했지. 역시 생각대로 등곽을 보려 하는군."

"난 당신을 모르겠는데 무슨 용건이오?"

거짓말이다. 나는 눈 앞의 검사가 누군지 알고 있다. 그건 망량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가 시치미를 떼자 사내는 내게 포권하며 말했다.

"처음 뵙겠네. 나는 풍신류의 용중일이라 하네. '용의 화신'이 어떤 자인지 만나보려 왔다네."

풍신류의 용중일!

그는 호법사자 용비천의 아들로서 동시에 황산파의 장문인이기도 했다. 나는 계속해서 시치미를 뗐다.

"당신네와 함께한다는 이야기는 한 적 없소. 나는 등곽을 봐야 하니, 문에서 물러나 주시오."

"물론 비켜주지."

용중일의 검이 서서히 뽑혔다.

그리고 그의 검이 나를 향해 겨누어짐과 동시에, 무시무시한 의념의 힘이 바늘처럼 집중되어서 내 미간을 쏘는 게 느껴졌다. 극한까지 압축된 살기가 이미 칼날이 되어 내 살갗을 한땀한땀 저며내고 있는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용의 화신이여. 그 전에 나와 십 초수만 놀아주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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