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476화 (476/1,615)

00476  암천향(暗天鄕)  =========================================================================

천하오대의원은 다음과 같았다.

천상괴의 동방무결.

광명신의 화서명.

하남제일의 강전길.

약왕 황보윤.

의성 상관혁.

나는 그들 모두를 한 번씩 만난 적이 있었으며 특히 광명신의 화서명은 내게 의술을 십여 년 이상 가르쳐준 직계스승이었다. 게다가 최근 상관혁과는 얽힐 일이 많았기에 잊어버릴래야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또한 그들은 백련교의 소교주가 걸린 괴질을 고치러 모였다가 백련교주에게 간접적인 보복을 당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 괴질을 고치는데는 실패했지만 그건 주술저주였기 때문이야. 단순한 병이나 질환을 고친다면 그들 다섯 명이 천하에 못 고칠 병이 없어.'

나는 확신했다. 실제로 화타일문종가의 가주인 화서명의 의술만 하더라도 대단한 달인의 경지에 이르러 있다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다. 다만 화서명만 불러오지 않고 모두를 불러오려는 것은, 만일에 화서명이 제갈사의 상세를 고치지 못했을 때 그제서야 다른 의원을 불러온다고 하면 화서명이 크게 자존심이 상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같이 불러온다면 의원으로서의 경쟁의식 때문에 좀 더 세밀한 진료가 가능할 것이다.

나는 제일 먼저 화서명에게로 향할까 생각했지만 순간 멈칫거렸다. 그 모습을 본 망량이 짐작했다는 듯 말했다.

"화서명은 나중에 하는게 좋을거요."

"흠."

"우선은 강전길부터 시작하는 게 나을거라 생각하오."

"십이율이 걸리는군."

"그렇소. 정철욱을 통해서 화서명을 포섭하는 건 필연적으로 십이율의 귀에도 들어가는 일. 아직 중원의 일도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십이율에 정보를 줄 필요는 없지."

"일단 하나하나 데려오겠소."

파앗

나는 제일먼저 하남제일의 강전길에게 향했다. 강전길은 검마의 보호를 받아 무영문 소속이 되어있었기에 현 시점에서 내가 제일 부담없이 접촉할 수 있는 의원이었다. 나는 강전길에게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흠, 무영련주께서 그렇게 된 거였군... 그리고 내가 치료해야할 자가 뇌를 다쳤다고?"

"환자가 뇌에 큰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는 제갈사의 상태를 설명했다. 그러자 강전길이 난처한 듯 말했다.

"뇌는 내 전문분야가 아닐세. 내 주전공은 외상(外傷)이나 자상 봉합쪽일세. 탕약을 써서 다스릴 순 있겠지만 그 이상은..."

"그걸로도 좋습니다. 다른 분들도 모셔와서 어떻게든 살릴 생각입니다."

"나야 검마문주와의 인연으로 자네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네만, 그정도 부상을 다룰 고명한 의원은 결코 맨입에 움직이지 않을텐데?"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좋네."

나는 강전길이 동의하자 그를 비등으로 옮기려 했다.

그 때였다.

"백웅 님!!"

그쪽을 쳐다보자 서문혜가 급히 뛰어와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다가와서 말했다.

"어찌된 건가요? 아버님께서는?"

나는 그제서야 서문혜에게 검마의 일을 아직 이야기 안했다는 걸 깨달았다. 검마가 안전하다는 걸 전달했어야 하는데 그동안 황궁의 일때문에 정신없이 바빴기에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서문혜에게 검마의 행적과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서문혜는 이야기를 다 듣고는 한숨을 쉬었다.

"아버님께서 무사하시다니 다행이군요."

"걱정시켜서 미안하오."

"아닙니다. 백웅 님께서 아버님을 돕고 있으니 언제나 마음이 든든하군요."

그녀는 빙긋 웃더니 말했다.

"바쁘실테니 무영검제께는 제가 전서구를 보내서 아버님이 무사함을 알리겠습니다."

"고맙소."

"그럼 백웅 님. 저희는 아버님께서 귀환하실 때까지 달리 할 일이 없겠습니까?"

나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무공수련을 열심히 해 주시오."

"네?"

"황궁의 일을 들어서 알겠지만, 앞으로 더 강력한 적이 나타날지도 모르고 천하가 혼세(昏世)에 휩싸일지도 모르오. 나도 검마도 당신을 지켜줄 수 있다는 보장은 없소. 스스로 몸을 지킬만큼 무력을 올려 주시오."

내 말에 서문혜는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은인의 말을 명심하겠습니다."

나는 말이 나온 김에 서문혜에게 목갑에서 흑백련을 꺼내서 한 뿌리 주었다. 서문혜가 놀란 표정으로 받아들자 나는 그녀에게 당부했다.

"이건 절세의 영약이오. 이걸 먹으면 내공이 크게 상승할테니 당신이 수련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오."

"감사합니다!"

"그럼 나는 이만..."

나는 서문혜에게서 물러나서 강전길을 일단 제갈사에게 데리고 갔다. 강전길은 제갈사의 몸을 잠시 살피더니 말했다.

"내출혈으로 보이지만 확실치 않군."

"그럼 뇌를 전문으로 하시는 의원을 혹시 알고 계십니까?"

"... 어려운 질문을 하는군. 의원이 어찌 뇌를 전문으로 연구할 수 있겠는가? 다른 환부와 달리 뇌는 직접 째거나 외과수술을 하는게 극도로 어려운 곳일세. 그런 자는 천하에서 손에 꼽을 정도일게야."

툴툴거리던 강전길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래. 다른 천하오대의원이라면 알 수도 있겠군."

"역시 그렇겠군요."

"설마 그들을 데려올 생각인가?"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허참. 잘 해보게."

강전길은 농담이라도 들은 양 성의없이 대답했다. 그도 그럴것이 천하 오대의원은 천하에 제멋대로 퍼져서 은둔하고 있기에 그들 하나하나를 찾아내는 건 매우 어려울 게 분명했다.

' 하지만 나는 전생하면서 그들의 소재를 다 파악하고 있다고.'

나는 다음으로 화신류 한씨세가로 향했다. 그리고 한진성을 만나서 말했다.

"소가주. 급히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만."

한진성은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이지요. 용의 화신께서 부탁하신다면 뭐든 도와드리라는 가주님의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그러고보니 한백령 가주께선..."

"제게 임시 가주직을 맡기시고 현재 황궁의 사후처리를 하고 계십니다. 본가에는 안 계시지요."

그렇군.

나는 잘됐다고 생각하며 한진성에게 요청했다.

"주치의인 약왕 황보윤님을 좀 데려가려 합니다."

"무슨 일 때문이십니까?"

나는 동료 중 하나가 내출혈이 의심되며 꼭 살려야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전후사정을 들은 한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허가를 내 두겠습니다. 약왕의 신변에 안전을 보장해 주셨으면 합니다."

"물론입니다."

이윽고 나는 한진성의 명령으로 불려온 약왕 황보윤과 함께 장령곡으로 향했다. 장령곡에 도착한 약왕 황보윤은 미리 와있던 강전길을 보자 깜짝 놀랐다.

"아니 강 늙은이 네놈이 왜 여길..."

강전길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황보 놈아. 닥치고 환자나 봐라."

약왕 황보윤은 당황한 듯 했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제갈사를 진맥했다. 제갈사는 현재 질환의 진행이 멈췄을 뿐 몸의 상태는 생기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진맥이 가능했다. 황보윤은 한참 후 말했다.

"음... 정체모를 기운이 몸 안에 있는 건 알겠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군."

"어려우시겠습니까?"

"몸의 균형이 박살나서 어떤 약을 써도 독으로 작용하는 상태일세. 어렵군."

약왕 황보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두 번째 허탕을 친 나는 그들 둘에게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두 분께 실례되는 말씀이지만 나머지 세 명의 천하오대의원을 불러올 생각입니다. 모두 모이면 가능하겠습니까?"

아니나다를까 강전길과 황보윤은 대놓고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의원의 자존심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강전길이 대답했다.

"다 부를 필요 없네! 정 불러올거면 의성이나 화서명 늙은이를 불러오시게!"

"내 생각도 같네."

나는 그들이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고 있었다.

' 천상괴의 동방무결... 정말 어지간히도 미움받고 있나보군.'

지금 저 둘의 신경을 거스르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나는 비등을 써서 낙양에 있는 의성 상관혁에게로 향했다. 상관혁은 자신의 의가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었는데, 나를 보자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상관혁. 나를 따라와 주시오."

"왜? 나는 등곽을 소개해줌으로서 이미 자네에게 빚을 갚았네만."

"일단 따라와 보시오."

나는 상관혁을 반강제로 끌고와서 제갈사 앞에 서게 했다.

"헉!"

그리고 상관혁은 다른 오대의원이 와 있는 걸 보고 놀라더니, 치료해야 할 자가 제갈사라는 걸 알게되자 두 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음... 내게 맡기게! 의술은 인술이니 당연히 치료해야 하지 않겠는가."

전에 없이 듬직한 목소리였다. 나는 상관혁의 진맥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내출혈이라는 저 둘의 진단은 옳네. 정확히는 시상하부에서 내출혈이 일어났고 누두(漏斗)가 망가진게 아닌가 싶군. 또한 갑상연골도 그 기능을 잃은 듯 보이고, 이러저러한 손상이 몸 여기저기에서 느껴지는군."

나는 주변의 이목이 신경쓰여서 그에게 반존대를 했다.

"그걸 진맥만으로도 알 수 있습니까?"

"화서명 님을 제외하면 내가 천하오대의원 중에서 가장 환자를 진맥한 횟수가 많을거라 자부하네. 경험을 통해서 하는 말일세."

그 말에 약왕 황보윤은 별 반응이 없었지만 강전길은 자존심이 크게 상한 표정을 지었다.

"의성. 뭘 자랑하고 앉아있느냐? 네 의술이 가장 뛰어난것도 아닌데."

"허허. 쓸데없이 남을 시기질투하지 마시오. 나는 진맥한대로 말했을 뿐인데 외상전문인 분은 그런걸 모르는 걸까?"

"뭐라고!"

나는 분위기가 안 좋아지자 급히 그들을 말리고 나섰다.

"의성 상관혁. 말이 과하셨소. 자중해 주십시오."

"그러지."

"그래서 치료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물론일세. 나라면 어떻게든..."

그 때였다.

나는 이야기를 하던 도중 문득 하나의 사실이 떠올라서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좀 더 생각을 해 봐야겠군요."

의성 상관혁은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차린 듯 했다.

"내가 이혼대법 때문에 제갈사를 죽이려 한다 생각하는 모양이군."

"......"

그렇다.

지금 의성 상관혁은 제갈사의 이혼대법에 당해있는 상태라서 노예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제갈사가 큰 부상을 입어서 혼절해 있는 지금은 시전자를 없애고 노예상태에서 탈출할 절호의 기회였다. 나는 그런 제반사항이 생각났기에 급히 상관혁의 제안을 거부한 것이다.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미안합니다."

"아닐세. 나라도 자네처럼 생각하겠지. 그럼 나는 물러날테니 다른 좋은 방법을 찾기를 바라겠네."

"치료가 끝날 때까지 잠시 대기해 주십시오."

나는 별 수 없이 상관혁을 목갑에 집어넣었다. 이대로 돌려보내면 그는 십중팔구는 백련교주에게 제갈사의 정보를 흘릴게 분명했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 조언역으로 필요한 자이기에 어쩔 수 없이 목갑에 넣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동방무결과 화서명을 불러오기로 마음을 굳혔다.

' 의원들이 동방무결을 싫어해도 상관없어. 또한 화서명을 불러오는게 십이율의 눈에 띄어도 상관없어.'

지금 제일 중요한 건 제갈사가 회복되는 것이다. 공연히 소소한 불리함을 걱정하다가 제갈사가 죽어버리면 그건 소탐대실(小貪大失) 그 자체인 것이다. 나는 내 생각을 망량에게 이야기하고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앗

나는 고려로 이동해서 권력자인 정철욱에게 접촉했다. 당연히 문지기들이 막았으나, 나는 그들에게 대뜸 이야기했다.

"나는 중원에서 온 화씨일문의 후계자 중 한 명이요. 이렇게 전해드리면 알아들으실 거요."

약간의 실랑이를 거쳐 정철욱 앞에 서게 되자, 그는 옆에 있던 화서명에게 말했다.

"어찌 보이는가? 이 자가 정말로 화씨세가의 인물인가?"

화서명은 난처한 듯 말했다.

"겉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나는 씨익 웃으며 대꾸했다.

"의가로 가고 싶습니다. 그 곳에서 제 의술을 보여드리고, 어떤 용건으로 찾아왔는지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그리고 나는 화서명의 의가에서 내가 수십년간 실전에서 연마해 온 화씨백팔침의 수법과 각종 의료지식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화타오금희도 완벽하게 시전하자 화서명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처... 천재로다! 어찌 그 나이에..."

"이제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겠습니까?"

"말해 보게."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화서명에게 말했다.

"사람 하나를 살려야 합니다. 그 일을 위해서 현재 하남제일의, 약왕, 의성이 한 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뭐... 뭐라고?!"

깜짝 놀라는 화서명에게 나는 제갈사의 상세와 현재상태를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의성의 진단도 이야기 해 주었다. 화서명은 내 이야기를 듣자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의성 상관혁은 자네 말마따나 어느 한 군데에 특화된 의술을 지니지 못했으나 모든 분야에 두루 정통한 초일류 의원일세. 그런 상관혁이 진단을 끝냈다면 굳이 내가 갈 이유는 없을 터인데...?"

"사정이 있습니다. 상관혁은 그 자가 죽으면 이득을 얻는 처지에 있기에 완전히 신뢰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화 의원의 솜씨와 진단이 필요합니다. 그게 객관적일 테니까요."

"허허...!! 그 사정이란 걸 알겠으나 내가 자네를 도와야 할 이유가 뭐지?"

화서명은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자네가 화씨일문의 정통의술을 이어받은 천재라는 건 인정하네만, 나는 지금 남의 일이나 도와줄 정도로 한가하지 않아! 내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면 다시 중원땅으로 갈 이유는..."

쿠웅

나는 다음 순간 화서명에게 목갑에서 꺼낸 금괴덩어리를 쾅하고 내려놓았다. 본래 보유하고 있던 금괴에다가 검마가 무영련을 창설해서 조직의 몸집을 불리면서 추가로 얻어낸 금괴였다. 무려 7층의 형태를 이루며 쌓여있는 금괴를 보자 입을 쩍하고 벌렸다.

"이 금괴와 무영련의 영향력으로 손쉽게 중원의 의가와 혈육을 고려로 옮길 수 있게 해 드리죠. 이 이상의 도움이 필요하신지?"

"허.. 억... 아닐세! 정말로 그리 해 주겠나? 정말인가?!"

"물론입니다. 중원에서 지금 괄시받고 있는 화씨의 혈육들을 무영련의 힘으로 보호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화서명은 내 손을 덥썩 잡았다.

"하겠네! 그 제갈사라는 자를 살리는데 전적으로 협력하지."

"든든하군요."

"허나... 내 의술이 얼마나 도움될지는..."

은근슬쩍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려는 화서명을 보자 나는 피식 웃었다. 화서명 또한 위험한 일에 발담그길 싫어하고 의뭉스러운 성격이었기에 새삼 세월을 격해서 예전생각이 난 것이다.

"아닙니다. 저는 화 의원님이야말로 최고의 적임자라고 확신합니다."

"왜인가?"

"화씨일족의 의술은 화타로부터 전래된 것. 인체와 해부도에 대해 그 어떤 천하오대의원보다 정통한데다가 특히 뇌(腦)에 대해서는 남다른 지식을 갖고있지 않습니까? 뿐만 아니라 마폐탕(麻肺湯) 비전(秘傳)을 제작하실 줄 아는 유일한 분이란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 단순히 화서명이 과거 내 인연중에 좋은 인연이기에 찾아온 게 아니다. 화서명이야말로 다른 오대의원이 손도 못 대고 있는 제갈사의 상세를 치유하기에 최고의 실력자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의술의 차이라기 보다는 전문분야의 실력차였다.

화서명이 놀란 듯 말했다.

"역시 화씨비전과 능력을 다 알고 있군... 그 정도라면 자네가 직접 치료하면 되지 않나?"

"죄송합니다만 저는 아직 어려서 기초만을 떼었을 뿐입니다. 의술중에서도 최상승 의술분야인 뇌(腦)에 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내 말은 사실이다. 과거 화서명 밑에서 십여 년간 수련의 생활을 해서 정규의원 자격을 얻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자격이었다. 화서명만이 알고 있는 뇌, 신경, 골수, 혈액 등등 인체의 비밀에 대해서는 나는 전혀 몰랐다. 화서명과 내 실력은 굉장한 차이가 있었다.

화서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가 보지."

파앗

내가 화서명을 데리고 장내에 도착하자, 그와 다른 세 명의 시선이 마주쳤다. 강전길은 푸념하듯 말했다.

"역시 화가 놈을 데려왔구나!"

약왕 황보윤이 말했다.

"하긴 뇌라면 저 녀석이 치료할 만 하지."

화서명은 약왕 황보윤을 힐끔 쳐다보았다.

"황보윤. 마폐탕을 제작해야하니 내가 말하는 재료를 가지고 충분히 만들어 주게."

"알았네."

그리고 화서명과 의성 상관혁의 눈이 마주쳤다. 상관혁은 쓴웃음을 지었다.

"광명신의. 내 진단을 저 자에게서 전해들었소?"

"물론이오, 의성."

"말해두지만 나는 사심을 품고 진단을 왜곡치 않았소. 믿어주시오."

"내가 왜 쓸데없이 당신을 의심하겠소?"

화서명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꾸하고는 제갈사의 맥을 진단하며 이목구비와 몸 전체를 촉진하기 시작했다. 한참동안 제갈사를 진단하던 화서명이 말했다.

"... 이거 참 곤란하군."

"왜 그러십니까?"

내 질문에 화서명은 굳은 얼굴로 환자를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내가 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이 자를 고칠 순 있으나, 완벽치 못할 듯 하네. 어떻게 하더라도 뇌에 장애가 남아서 기억력이 둔화되거나 전두엽에 손상이 가거나 예상치못한 후유증이 올 가능성이 높아."

"......!!"

"끄응... 정말 어려운 수술이 될 걸세. 이 자는 어쩌다가 내부장기와 뇌가 곤죽에 가까울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었단 말인가? 이건 원래 죽었어야 정상일세. 살아있는 시체란 말일세..."

탄식하는 화서명은 전혀 거짓말을 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리고 화서명의 이야기를 들은 나머지 세 의원들도 납처럼 무거운 표정이 되었다. 그들 또한 화서명과 비슷한 짐작을 했던 모양이었다.

그러자 듣고 있던 강전길이 불쑥 말했다.

"아직 한 놈이 남아있지 않느냐?"

"......"

그 순간 모두의 머릿속에 한 사람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정말로 싫은 얼굴로 그 자의 명호를 중얼거렸다.

"천상괴의(天上怪醫)...."

동방무결!

백련교주의 부하이자 수신류의 무공을 노리고 있는 그 자는 천하제일의 의원으로서 성격은 괴팍하지만 지닌 바 의술은 단연 오대의원 중에서 으뜸이었다. 강전길은 그런 동방무결의 힘을 빌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