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475화 (475/1,615)

00475  암천향(暗天鄕)  =========================================================================

망량의 어머니가?

나는 놀라서 망량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망량은 자신의 부모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는데, 설마 그의 모친이 천계에게 살해당했다니! 망량 또한 처음 듣는듯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제갈부에게 말했다.

"무슨... 어머니는 병으로 돌아가셨잖소."

"그래. 네가 어릴 때 병으로 돌아가셨다 알려져 있지. 하지만 그건 우리 일가의 막내인 너를 배려하기 위한 거짓말이었을 뿐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제갈부의 말에 망량은 가당찮은 소리라는 듯 말했다.

"믿을 수가 없소."

"내가 이런 지경까지 와서 왜 이런 거짓말을 하겠느냐? 하물며 이제와서 혈육인 너한테 숨길 일은 아니지!"

제갈부가 고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이미 제갈사는 다 알고 있던 사실이라서 내게 이혼대법으로 간단한 사실확인을 했을 뿐이다. 놈에게 물어보면 알 테지. 아! 그 놈이 뭔가 하고 있기 때문에 전해듣지 못한 모양이군?"

"......"

확실히 제갈사한테 물어보기만 하면 이혼대법으로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는 상황인지라 지능이 높은 제갈부가 이런걸로 거짓말할 리는 없었다. 언제든지 놈의 뼈와 살을 분리시킬 수 있는 상황이란 걸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으리라.

망량은 손을 꽉 쥐더니 말했다.

"... 그게 사실이라 칩시다. 내가 어릴적의 일이라 치고, 천계가 직접적으로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게 무슨 말이오?"

"말 그대로다. 천계의 신장(神將)이 강림해서 천기를 어긴 어머니를 참(斬)했다. 이유는 아버님께서 이 세계의 미래를 보고 그걸 바꾸고자 의식을 치렀기 때문이었다."

"......!!"

이건 무슨 소린가?

나는 제갈부의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눈을 꿈벅거렸다.

' 백우선을 쓴 건가? 하지만 그건...'

백우선을 써서 내가 했던 방식으로 수백년 후의 미래를 내다봤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백우선은 써서 미래를 관측하는 순간 미래가 달라지므로 거의 무의미한 것이다. 그리고 백우선으로 미래를 보고 바꾸려는 의식을 제갈유룡이 했다면, 죄인인 제갈유룡 본인이 천계에 죽어야 정상인데 왜 그 배우자가 죽는단 말인가?

하지만 망량은 대번에 문맥을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그는 참혹한 얼굴로 말했다.

"어머니께서는... 아버님의 업(業)을 넘겨받으신 거요?"

"그렇다. 너도 알다시피 어머니 또한 강한 영적 능력의 소유자로서 그 시대에 손꼽히는 무격(巫覡) 중 하나셨지. 그래서 천계에서 아버님을 죽이러 오는 운명을 바꾸어서 자신이 죽기를 자청하셨다."

"......"

설명이 나오자 나도 이해할 수 있었다. 즉 제갈유룡이 범한 죄를 무격인 그의 아내가 넘겨받고 대신 죽은 것이다. 제갈부는 그답지 않게 상당히 감정적인 어조로 말했다.

"아버님은 어머니께서 신장에게 살해당하는 걸 직접 보셔야만 했다."

망량은 침묵한 채 꿇어앉았다. 그리고 말없이 주먹을 부르르 떨다가 말했다.

"믿을 수 없소."

"네가 믿건 아니건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계퇴를 얻어먹었으니 그 대가로 알려주는 것 뿐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천계의 신장이 지상세계에서 날뛰었다면 황궁을 지키던 술사들이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단 말이오."

제갈부가 피식 웃었다.

"신장을 물리친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천계에서는 어떻게든 인과율을 집행하고 반역자를 처치하려 할테니 그 신장보다 더욱 강한 존재, 삼십육천강 칠십이지살급 천장(天將)이 왔겠지. 그것도 물리쳤으면? 대라신선이나 투선(鬪仙)이 왔겠지. 그런 존재를 인간이 이길 수는 없지.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건 너라면 잘 알 텐데."

이렇게 쉽게 공박당할 망량이 아니다. 지금의 망량은 뜻밖의 사실에 경악하고 절망해서 정신이 흐트러져 있는 게 분명했다.

"......"

"나한테 따져봤자 과거는 달라지지 않는다. 아버님은 자기 실수의 대가로 어머님을 잃으신 거다."

망량은 텅 빈 듯한 눈빛으로 바닥을 쳐다보고 있었다. 더는 질문할 기력이 없어보였다. 나는 망량이 이렇게까지 절망한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으므로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망량. 정신차리시오."

그래서 급히 그를 끌어안아서 일으켜세우며 제갈부에게 말했다.

"난 네 가족사가 그렇게 궁금하지 않아. 내가 궁금한 건 그래서 제갈유룡이 어떤 수를 써서 미래를 바꾸려 했는지다."

"흐흐. 제갈사한테 물어보지 그러오? 어차피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놈이 다 알고 있을텐데."

나는 살기를 돋우며 으르렁거렸다.

"닥쳐.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그래서 제갈유룡이 어떤 의식을 치른 거냐?"

제갈사를 일일이 번거롭게 할 수도 없고, 어쩌면 제갈사가 마도서의 의식을 끝내기도 전에 내가 불의의 사고로 돌연사할 수도 있다. 얻을 수 있는 건 어떻게든 다 얻어내야 하는 게 올바른 태도다. 그러자 제갈부가 대답했다.

"그건 나도 모르오."

"장난하냐?"

피잉

나는 대번에 발검해서 놈의 목에 새파란 칼날을 들이댔다. 하지만 제갈부 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사실이오. 아버님은 그 때 어떤 의식을 치르려 했는지 아들인 내게 이야기해주지 않으셨소. 제갈사에게 물어보면 될 거 아닌가? 다만 그 의식이 천하에서 오직 아버님만이 시행할 수 있는 거였다는 건 전해들었소."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놈 애비인 제갈유룡은 돌아버린 거 아니냐? 정말로 의식 한 번으로 세상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그러면서도 나는 내심 그런 의식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의 절망적인 미래를 의식 한 번으로 바꿀 수 있다면 내가 전생을 수십번씩 하면서 이 개고생을 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그와 동시에 허황됨을 느꼈기 때문에 제갈부에게 호통을 치고 만 것이다.

제갈부가 클클 웃었다.

"나야 모르지... 허억!"

푸콱

내가 선혈이 터져나오도록 제갈부의 팔을 강하게 옥죄어 잡았다. 잡은 부분이 시퍼렇게 피멍이 들었다.

철그렁

"아악..."

제갈부의 쇠사슬이 고통때문에 요동치자, 나는 놈의 경락에 내공을 강하게 밀어넣으며 놈의 면상에 얼굴을 바싹 대어 노려보았다.

"잘 들어. 나는 뇌신류 출신으로, 사람을 고통스럽게 고문하는 팔괘봉인과 육합진살이라는 비술을 알고 있지. 이 비술은 내공이 워낙 많이 필요해서 웬만한 뇌신류 고수도 3단계 이상 사용하기 힘들지만, 나는 내공이 썩어넘쳐서 적어도 5단계까지는 올릴 수 있어."

"......"

"그리고 나는 아직까지 팔괘봉인의 3단계를 버틴 놈을 본 적이 없다. 너는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이 말은 사실이다. 나는 이 탁월한 고문수법 덕분에 따로 분근착골술을 익힐 필요도 없었고 웬만하면 고문으로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다. 뇌신류의 고문수법은 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뛰어난 효과를 자랑하는 것이다. 내 눈빛에서 내가 진심이라는 걸 느꼈는지 제갈부가 필사적으로 외쳤다.

"잠깐! 잠깐! 내가 그 의식을 모르는 건 사실이지만 단서라면 알고 있소!"

"말해."

"진천휘! 진천휘 장군은 알고 있었다고 하오."

뭐?

나는 난데없이 나온 이름에 깜짝 놀랐다. 그 이름이 왜 여기서 나온단 말인가? 나는 안색이 바뀌어서 제갈부에게 말했다.

"진천휘라면..."

"전대 장군부의 기린아! 황연에 버금가는 군략의 천재! 동시에 아버님의 친우였기에 그 의식에 대해서 털어놓았다고 말씀하셨소."

또한 그는 진소청의 아버지이기도 했으며 황족이기도 하다. 나는 제갈부의 설명에 내심 몇 마디를 추가시켰다.

"... 하지만 그는 죽었어."

나는 황당해서 대꾸했다.

그렇다. 이게 문제다. 진천휘가 제갈유룡이 과거에 시도했던 의식이 뭔지 알고있다 한들 그 자는 이미 선대황제에 의해 처형당한 몸인 것이다.

내가 놈에게 더 물어보려 하자, 옆에서 비틀거리며 서 있던 망량이 내 어깨를 잡았다.

"됐소. 백웅."

"망량 괜찮소?"

고개를 끄덕인 망량이 제갈부에게 말했다.

"... 형님. 제갈사 숙부가 아직까지 형님을 살려두고 있는 이유가 궁금하시겠죠."

"......"

"형님을 제물로 바치거나 인신공양하거나 잔인하게 고문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눈 앞의 백웅이 형님을 살려두라 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아니었다면 형님은 옛날옛적에 마물의 한끼식사가 되어있거나 검하고혼이 되어있을 겁니다."

맞는 말이다. 제갈사가 놈의 머리통을 차서 죽이려는 걸 억지로 명줄을 붙여놓은 건 나였다. 왠지 놈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천신경의 술법으로 영혼에서 정보를 캘 수 있는데도 살려둔 것이다.

제갈부가 믿기지 않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다... 당신은 대체 뭐지? 누구길래 저 미치광이 제갈사를 맘대로 부리고 어린나이에 엄청난 무공을..."

"형님, 개심(改心)하시오."

망량은 한숨을 쉬었다.

"형님이 하던대로 타고난 재능과 재주로 타인을 깔보고 자기 이득대로만 이용해먹는 행동은 결국 자멸하는 길이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소. 그리고 조금이라도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 협력해야만 하오."

망량의 말은 혈육으로서 하는 충고였다. 전생자인 내게 밉보여서 한도끝도 없이 보복당하는 꼴을 보는 게 괴로울 것이리라. 제갈부가 불쾌한지 으르렁거렸다.

"빌어먹을! 내가 이런 처지라고 해서 감히 설교하는 거냐? 술법재능이 없어서 천문관에서 내쫓겼던 낙오자가!"

이 개새끼가?

나는 당장 놈을 쳐죽이고 싶어서 손을 들었지만 망량이 나를 제지했다.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다음 생에는 깨닫겠지. 나갑시다."

나는 싸늘하게 말했다.

"알았소. 하지만 한 대만..."

퍼억

"크하악."

나는 제갈부의 명치를 가볍게 때려주고 밖으로 나왔다. 물론 내공을 거의 싣지 않고 순수완력으로 때렸기에 내장이 파열되지는 않겠지만, 이래봬도 나는 꽤 힘이 세므로 제갈부는 충분히 아플 것이다. 나는 제갈부보다 망량이 신경쓰여서 말했다.

"망량. 설마 저런 놈도 흑요석을 줘서 동료로 하라는 거요?"

일부러 '다음 생'이라는 언급을 한 것은 내게 넌지시 이야기한 셈이다. 그걸 못 알아들을 리가 없다. 망량은 힐끔 뒤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나중에는 그럴 수도 있을 것이오."

"말도 안 되오. 저딴 놈에게 흑요석을 주느니 그냥 죽여버리겠소."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제갈부는 천성적인 두뇌와 재능은 뛰어났으나 타인에게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자신을 제외한 타인을 모조리 이용해먹기 좋은 말으로만 보는 놈이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악을 행할 수 있는 저런 놈과 동료가 될 수는 없었다. 그러자 망량이 중얼거렸다.

"... 어쩌면 부족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오."

"뭐가 말이오?"

"아무것도..."

나는 망량이 뭔가 숨기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따로 캐묻지 않았다. 망량한테 섣불리 묻기보다는 그가 말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망량과 함께 장령곡에 머물면서 수련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약 사흘이 더 지났을까?

우우우우 -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던 나와 망량은 갑자기 강렬한 어둠의 기운이 흘러나오자 반응해서 뛰쳐나갔다. 그리고 제갈사가 있던 폐실의 문이 열려있고, 거기에 제갈사가 서 있는 걸 발견했다.

제갈사의 모습은 지금까지와 달랐다. 광기에 물들어 있던 눈동자는 한층 차분해졌고 왼쪽 손이 마치 곤륜노처럼 시꺼멓게 변했다. 또한 그의 전신에서는 불길한 보랏빛 영기가 스멀거리며 흘러나와서, 그가 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망량은 제갈사가 왼손에 들고 있던 무명제사서를 보고 말했다.

"숙부. 무명제사서의 술법을 습득했구려."

"아아. 꽤 고생했다고, 현아."

"더 강해진 거요?"

"앞으로 보여주지."

제갈사는 어깨를 으쓱인 후 말했다.

"보아하니 뭔가 일이 터진 것 같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봐라."

나는 제갈사에게 흑요석에 기억을 담아서 넘겨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헤어진 이후로 지금까지의 경과를 지켜보고 있던 제갈사는 약간 인상을 찌푸렸다. 제갈사는 내게 흑요석을 집어 던지며 말했다.

"네 녀석은 현이의 계책을 싸그리 무시해버렸군. 염병할."

"윽."

나는 흑요석을 재빨리 잡아챘다. 제갈사가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기회를 위해서 힘을 숨기랬잖아. 그런데 잘도 대라신선을 초월하는 힘을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구만, 니미럴."

나는 망량이 내 힘을 숨기자고 했던 게 생각나서 입을 다물었다. 화룡진인에게 몸을 넘겨줘서 화신류에게 내 힘을 드러낸 것은 제갈사가 보기에 전혀 좋은 게 아닌 듯 했다. 나는 변명하듯 말했다.

"그 때는 그 방법 뿐이었다고."

"웃기시네. 이걸로 어떤 결과가 된 건지 알긴 하냐? 네놈이 5년 내에 급사할 확률이 5할은 늘어났어. 현이 놈이 착해빠져서 아무 말도 안하니까 네가 잘 한 줄 알아?"

"......"

툴툴거리던 제갈사가 팔짱을 꼈다.

"뭐 그렇게까지 최악은 아니군. 앞으로 시도해볼만 한 것도 늘어났으니."

옆에 있던 망량이 말했다.

"나도 수련이 정체하던 중이었으니 도와드리겠소 숙부."

"딱히 그럴 필요는 없다만... 너는 한시라도 빨리 등용문에 오르는 편이 나을 거 같다. 그래야 천계의 정보를 알아내지."

"조금만 더 수준을 올리면 가능합니다."

제갈사와 망량이 대화하던 중 나는 문득 생각난 게 있어서 끼어들었다.

"제갈사. 물어볼 게 있는데."

"뭔데?"

"제갈유룡이 시도했던 그 술법은 대체 뭐지? 세상의 미래를 바꾼다니..."

"아아, 그거."

제갈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도 몰라!"

"......"

"형이란 작자가 워낙 꽁꽁 숨겨댔으니 나도 모를수밖에 없었지. 그때는 형의 일에 관심이 없기도 했고. 나는 그때 질풍노도의 시기였거든."

옆에서 망량이 핀잔을 줬다.

"그냥 광기에 젖어서 미친짓만 골라하고 다녔다 들었소만. 고관대작 무작위 참살이라든가 식인행위 방조라든가..."

"그런 일도 있었나? 아무튼."

제갈사도 모른다는 말인가?

내가 고민하자 제갈사가 말했다.

"나도 좀 궁금한 일이니까 네가 어떻게든 알아봐라. 방법이야 여러가지가 있으니까."

"알았어."

"아무튼 지금은 그런게 중요한게 아니고, 내가 아주 중대한 선언을 하나 하려고 한다."

"선언?"

제갈사는 히죽 웃더니 의자에 길게 몸을 뉘이며 말했다.

"아주 중요한 거야. 지금 이 일과는 별로 상관이 없겠지만..."

"뜸들이지말고 말해 봐. 뭐든 들을 준비가 되어있으니까."

내 요청에 제갈사는 생각을 정리하며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흐흐... 나는 그 동안 무명제사서의 전편(前篇)을 해독하고 후편에 진입하기 위해 마도서의 정신에 접속해서 의식을 치렀지. 이 의식은 무명제사서의 진짜 비밀에 접하는 것이며 나 자신을 무명제사서의 사용자로 등록하는 과정이었다. 다시 말해서 지금의 나는 무명제사서에 존재하는 모든 마법의 4할을 손에 넣은 상태."

과시하듯 말한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그 덕에 무명제사서를 표면적으로 읽어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신비(神秘)를 열람할 수 있었지."

나는 제갈사에게 물었다.

"신비가 뭐야?"

"선사(先史)...라고 해야할까? 이족들 스스로도 너무 두렵고 끔찍해서 봉인해 두었던 초고대의 진실을 가리켜 신비라고 칭한다. 중화문명의 역사가 대략 오천 년 정도 되지만 적어도 그 일천 배는 과거의 일을 논하기에 신의 비밀일 수밖에 없지. 인간의 역사가 존재하기 전의 일이니까."

"오천 년의 일천 배? 뭐야 그건... 농담따먹기 하냐?"

나는 황당해서 제갈사에게 핀잔을 줬다. 하지만 제갈사는 이번에는 농담이 아닌지 진지한 얼굴이었다.

"농담 아니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이 세상의 역사는 오래됐어. 일천 배가 아니라 일만 배일지도 모르지."

"......."

그렇다면 인간인 나로서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 영겁의 시간. 마도서는 그런 까마득한 역사를 담고 있단 말인가?

"이족이나 [옛 지배자]는 그 까마득한 시대부터 강력한 주술과 문명을 영위하며 살았던 존재. 그렇기에 인간은 그 앞에서 벌레같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망량이 말했다.

"숙부, 서론이 길군요. 그래서 그 초고대의 신비를 알아본 결과 어떤 사실을 알 수 있었다는 겁니까?"

"그건 말이다..."

파직!

"크학!"

그 순간 제갈사의 눈이 시꺼멓게 물들었다. 또한 그의 몸에서 혼돈의 기운이 뭉클거리며 일어났고, 시꺼먼 숨결이 토해지는 게 보였다. 명백히 이상사태라서 내가 당황해서 다가가자 제갈사가 손을 내저으며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크흐... 흐... 역시 언급하려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망가지려 하는군. 저편에서 어둠이 날 부르고 있어... 그가 날 보고 있어... 크크크..."

헛소리처럼 넋두리를 하는 소리에 광기가 스며있었다. 제갈사는 마치 허공에 보이지 않는 뭔가가 있는 듯 넋놓고 쳐다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어둠에 홀린 모습이었다.

망량이 좋지 못한 얼굴로 말했다.

"마도사가 세계의 비밀을 언급하려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파괴된다는 말이 진실이었군. 그렇다면 무명제사서에 접속해서 신비를 열람한 것만으로도 숙부는 이미 수명이 깎여버린 거 아닙니까?"

"맞아."

"백웅은 10년 내에 창힐을 찾아내야 합니다.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십니까? 그 전에 죽어버리면 백웅은..."

망량은 힐난하는 기색이었으나 제갈사의 목숨을 걱정하기에 하는 말이었다. 제갈사는 히쭉 웃더니 말했다.

"현이 니가 있잖아. 너라면 창힐을 찾아낼 계책을 낼 수 있을 거다. 내가 죽어도 대비가 되어있으니 가능한 최대의 효율을 추구하는 것 뿐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망량은 물론이고 나도 제갈사의 막무가내 소리에 기가 막혀했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면 그럴수도 있지만, 그렇다 해서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마도서의 정보를 캐내려는 게 정상적인 행동은 절대 아니었다!

제갈사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목숨을 아끼지 않고 소모하면서 최단기간의 승리를 이끌어내겠다는 다짐은 말뿐이었나? 백웅에게 전생능력이 있는 이상 동료인 우리 목숨은 그저 소모해야 할 자원에 불과해. 우리가 몰살하더라도 백웅이 한걸음을 나아가면 무조건 이득이야."

".......!!"

"무명제사서는 무조건 해독해봐야 했어. 최상의 마도서에는 [옛 지배자]에 관련된 세계의 진실이 여과없이 수록되어 있으니 반드시 알아봐야 했지. 적을 모르고서는 절대 쓰러뜨릴 수가 없으니까."

제갈사는 우리를 노려 보았다.

"너희도 각오를 해라. 이대로 백웅이 전생을 계속해서 수백 회 수천 년에 이르게 되면... 그 때부터는 난이도가 무시무시하게 높아질 테니까. 그 전에 모든 걸 끝내야 해."

"알겠소."

망량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파직 파지직

파직...

한동안 시꺼먼 번개같은 어둠의 영기가 제갈사의 몸을 떠돌았다. 그 영기를 보랏빛으로 물들이며 진정시키던 제갈사는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 지금부터 오백여년 후, 흉신(凶神)이 수저에서 떠오르는 종말의 때, 그건 단순히 인간을 멸망시키기 위해 떠오르는 게 아냐."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갈사는 땀을 뻘뻘 흘리며 쌍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워 보였다.

"무명제사서에는 마도서 [복음]의 내용이 일부 수록되어 있었지. 그건 [옛 지배자]중 한 명인 '시간의 방랑자', '영겁의 태아'가 직접 저술한 내용이며, 그 존재는 시간과 죽음, 소멸이라는 신성(神聖)을 다룬다. [옛 지배자] 중에서도 매우 격이 높은 존재가 직접 쓴 내용이니 이건 틀림없어... 시공을 초월해서 미래를 엿본 존재가 언급하길, 흉신은 인간을 멸망시키기 위해 떠오르는 게 아니야."

"......."

"인간은 처음부터 [옛 지배자]의 안중에도 없었다는 말이다. 여파만으로도 멸망하는 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건 망량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방금 제갈사가 언급한 것은 고급 마도지식이기에 우리가 못 알아듣는 게 정상인 것이다. 제갈사는 쓴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흉신은 성좌의 힘이 수억년 중에 가장 강력해지는 때를 기다려서 한순간에 [옛 지배자]를 깨우는 거지. 그리고 이게 가장 중요한 건데..."

제갈사는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

"흉신은 바로 그 시기에 성좌(星座)가 교차하여 칠요(七曜)를 이루는 행성이 일렬이 되기에, 그 마력을 이용해서 르뤼에를 움직여 부상(浮上)시키는 것이다. 이건 지금까지 그 어떤 인간마도사도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다!"

".......!!"

"또한 [옛 지배자]와 삼황오제가 휴전의 징표로 칠요를 제작한 건 절대 우연이 아니야. 마도서에 따르면 [옛 지배자]들은... 이미 칠요가 만들어질 거라는 사실을 예견하고 있었어. 그러므로 칠요에는 우리가 모르는 더 큰 비밀이 분명히..."

풀썩

"제갈사!!"

나는 급히 그를 부축했다. 제갈사는 완전히 기절해버린 모양이었다. 나는 그의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우며 눈에서 피눈물이 줄줄 흐르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급히 그를 방으로 옮겨서 진맥했는데 그의 뇌가 녹아버릴 지경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이럴땐...!!'

파파팟

나는 급하게 화타의문의 의술을 동원해서 뇌가 녹아버리는 걸 막는 기혈을 침으로 봉했다. 화타일문은 인체 중에서 뇌에도 정통하기에 이럴 때 대처하는 방법도 알고 있는 것이다. 그 덕에 임시방편으로나마 몸에 가득차있던 열기를 빼내자 제갈사의 두뇌가 손상되는 건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제갈사가 언제 일어날지는 알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백웅. 어떻소?"

"좋지 않소. 잘못하면 식물처럼 평생 누워있을지도..."

나는 영약을 섣불리 먹였다가는 증세가 더 심해질지도 모른다는 걸 의술지식으로 알고 있었다. 잘못했다가는 뇌를 이루는 중요한 부위가 타격을 입어서 백치가 될지도 모른다. 뇌는 굉장히 섬세한 부위이므로 그 어떤 고명한 의술로도 섣불리 건드릴 수 없었다.

그러자 망량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비켜보시오."

위이잉

망량이 부적을 들어서 제갈사의 오부(五部)에 붙이고는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제갈사의 숨이 서서히 멎더니 종래에는 얼어버린 것처럼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그를 쳐다보자 망량이 말했다.

"임시방편으로 그의 몸의 시간을 멈췄소. 더 이상 상태가 호전되진 않겠지만 악화되지도 않을 것이오."

"그런 것도 가능하오?"

나는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과거에는 기초술수 하나 쓰기도 벅차서 쩔쩔매던 망량이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고급술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되었단 말인가?

"스승님께서 과거에 내게 가르쳐주신 술법이오."

그렇게 대꾸한 망량이 말했다.

"백웅. 내가 보기에는 더 의술이 고명한 자를 데려와서 제갈사를 치료해야 할 것 같군. 제갈사의 몸에 마력의 기운이 거의 남아있지 않으니 이건 의술의 문제라고 보오."

"알았소."

내 의견도 같다. 그래서 나는 즉시 망량의 말뜻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오대의원을 데려오겠소."

내 의술실력은 화타일문의 정규의원 수준이지만 결코 천하오대의원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들이라면 어렵기 그지없는 뇌질환이나 병증조차 해결할 수 있으리라.

============================ 작품 후기 ============================

날짜조정 실수입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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