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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468화 (468/1,615)

00468  암천향(暗天鄕)  =========================================================================

내가 무영검제가 있는 안휘성에 도착하자, 남궁세가는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가 되어 있었다. 으리으리하던 건물의 규모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고 가원 또한 크게 줄어든 게 눈에 보인 것이다. 무영검제를 만나서 어찌된 일인지 묻자 그는 단순명쾌하게 대답했다.

"사악한 일에 관련되어 있던 자들을 모두 붙잡아서 관아에 넘기고 무능한 놈들을 모두 추방했네. 그러니 자연스럽게 줄어들더군."

"괜찮겠습니까?"

"물론 당장은 사람이 줄어서 곤란하겠지만 남궁세가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 그런 놈들이 없다고 쓰러질 가문이 아닐세."

무영검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하고는 내게 말했다.

"검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네, 그렇습니다."

그는 내게서 전후사정을 듣자 잠시 생각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그 비등이라는 편리한 물건을 쓰면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다는 건 나도 알고 있네. 확실히 검마의 안위를 의심할만 하군."

"저와 함께 낙양으로 가시겠습니까?"

"화신류의 호법사자와 싸울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겠지?"

"최악의 경우에는 그럴 수도 있습니다."

"......"

무영검제는 고뇌했다. 그러더니 힘겹게 말했다.

"만일 거기서 내가 패사(敗死)하면 남궁세가는 완전히 몰락하게 될 것일세. 너무 큰 도박이군."

나는 그 말에 눈매가 약간 매서워졌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검마의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지금 남궁세가의 안위를 챙기시다니."

그는 머뭇거리며 시야를 딴곳으로 향했다.

"명이와 남궁팔검을 벤 것은 정의를 위해 옳은 결단이었으나 그 탓에 현재 가문의 무맥(武脈)을 온전히 전승한 건 오로지 나 뿐일세. 남궁세가를 짊어질 동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최소한 오 년은 걸리지. 이 상황에서 내가 만일 죽거나 실종된다면 남궁세가는 멸문할 걸세..."

"아니 제기랄..."

나는 욕지기가 나왔지만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괴리감을 강하게 느꼈다.

' 무영검제는 내가 전생한다는 사실을 모르니 현실의 안위부터 챙기게 되는구나!'

만일 그가 내 전생능력을 알고 있다면 저런 태도로 나오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검마를 지금 구출하러 가는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고 협조하게 되리라.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인생은 하나뿐이므로 자연히 자신과 가문의 일부터 생각하게 되는 듯 했다. 게다가 무영검제에게 있어서 가문을 버리고서라도 검마나 무영련을 지켜줘야 하는 의리가 있는 건 아닌 듯 하다.

나는 화를 버럭 내고 싶었지만 지금껏 전생을 하는동안 저런 입장에 대해서도 꽤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일단 꾹 눌러참으며 무영검제에게 말했다.

"이해는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영련과 무영문 또한 당신의 사문이 아닙니까? 그 유일한 후계자인 검마가 걱정되지도 않으십니까?"

무영검제가 그답지 않게 쩔쩔매며 말했다.

"... 아직 확실한 건 없지 않은가. 조금만 더 기다려 보세나."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혼자 움직이겠습니다."

"미안하네."

나는 쌀쌀맞게 등을 돌리고 걸어갔다. 그리고 내심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아주 수지맞는 장사군!'

무영검제가 어떤 인간인지 파악했으니 이득이다. 그는 정의감이 강하고 정파무인의 자세가 되어있으나, 결국 자신의 가문과 혈육을 지킨다는 기본명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중요한 국면에 그를 믿어도 될지 어떨지를 파악할 수 있었으니 잘 된 일이었다.

타다닷

나는 안휘에서 낙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꽤 먼 길이었지만 내 경공이라면 오래지 않아 도착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익숙한 낙양의 외성벽이 보이자 나는 신법을 은밀하게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비병들의 시선이 사각으로 쏠리는 틈을 타서 재빨리 성벽을 타서 넘었다. 유려하게 안쪽으로 파고들자 다시 내성까지 향하는 거대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 한씨세가로 바로 가 봐야할까...'

나는 쌍문사가가 존재하는 내성 근처까지 오자 고민에 휩싸였다. 떠나올 때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지금 바로 한씨세가로 쳐들어가는 건 현명한 판단이 아니었다. 화신류의 고수에 한백령이 드글거리고 있을테니 자칫하다가는 죽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만일 들쑤셨는데 정말로 검마가 없는 거라면 이후의 일이 난처하다.

지금 나는 화신류와 싸우러 온 게 아니다. 검마의 행방을 알아내는 게 제일 중요하다.

그렇다면 한씨세가를 염탐하고 그 정보를 알 수 있는 존재에게 접촉하는 게 필요하다. 하지만 한씨세가의 본체가 화신류라는 걸 생각하면 개방조차도 그 실체를 접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한동안 고민하다가 내가 낙양에서 도움을 청할만한 존재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스윽...

나는 조심스럽게 상관가의 의가(醫家)로 진입해서 상층으로 향했다. 의가 내의 사람들은 다들 의료행위에 집중하느라 내 기척을 모르는 듯 했다. 그리고 상층에 도착하자 안쪽 방에서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그 기척의 정체를 알고 있었으므로 복도에서 그에게로 전음을 보냈다.

[ 상관혁. 이야기할 게 있으니 잠시 자리를 마련하시오.]

[ 좋네.]

이윽고 의성 상관혁은 나를 별실으로 이끌었고 나는 그와 독대하게 되었다. 그는 나를 곱지못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지만 어쨌든 내게 차를 따라주었다. 나는 차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말했다.

"독이 든 건 아니겠지?"

"그럼 마시지 말게. 자네만한 고수에게 하독하려 했다면 이렇게 단순한 수를 쓰진 않았을 걸세. 무색무취의 독연을 쓰던가 금지된 독물을 썼겠지."

그의 목소리에는 가시가 돋혀 있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게 성질을 낼 이유가 있소? 결과적으로 나는 당신이 평생에 걸쳐 관리해야 하던 봉인을 닫아줬으니 되려 은인이라 생각하는데."

"그 일은 고맙게 생각하네. 허나 영문모르게 찾아와서 목숨의 위협을 당한 건 아직도 잊혀지지 않네."

"속이 좁으시군."

"......"

상관혁은 대꾸하지 않고 차를 마셨다. 그리고는 말했다.

"나를 찾아온 이유가 있겠지. 말해보게."

"당신은 무영련주인 검마 서문대룡을 알고 있소?"

"물론 알고 있지. 그는 당금 강호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니까."

"그가 얼마 전에 한씨세가를 방문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소. 혹시 그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다면 내게 말해주시오."

"그 질문을 내게 하는 이유가 뭔가? 나는 의원 나부랭이일 뿐인데."

"난 당신이라면 알고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찾아온 것이오."

나는 확신을 담은 눈으로 상관혁을 쳐다보았다. 설령 개방이나 동창이 모르는 일이라 해도 눈 앞의 상관혁은 알고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왜냐하면 그는 마도사인데다가 낙양에 백련교주가 심어놓은 심복이기에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낙양의 정보를 감시하고 있으리라. 또한 교주가 화신류를 감시하는 수단이기도 하기에 모를 수가 없다.

내가 뚫어져라 상관혁을 쳐다보자 그는 이윽고 한숨을 쉬었다.

"하아... 자네에게는 원보다 은(恩)이 강하니 특별히 가르쳐 주겠네. 허나 그 전에 묻고싶은 게 있네."

"무엇이오?"

"화룡신검은 어떻게 되었는가? 나는 자나깨나 그게 제일 궁금해서 잠도 이루지 못하고 있네."

나는 목갑에서 화룡신검만 꺼냈다. 원래 내가 화룡신검을 꺼내려 하면 극강의 화기 때문에 손이 타버리려고 하겠지만, 오랫동안 화요의 화기를 전달하는 매개체로 지내서인지 화룡신검을 화상없이 들 수는 있게 된 것이다. 손바닥이 따끈따끈한 기분은 있었지만 어쨌든 잡을 수는 있었다.

"보다시피 무사하오."

"으음... 화룡신검을 멀쩡히 잡을 수 있다니... 자네는 주인으로 인정받았거나 아주 정순한 내력의 소유자인가 보군."

"그러나 아직 깨어나지는 않았소. 만일 깨어났다면 당신은 이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오."

"알고 있네."

파사현정의 신검인 화룡신검은 마도사나 마에 속한 것을 죽이려는 본능이 있었다. 아마 상관혁도 자신의 죽음을 감수하고 화룡신검을 보고싶었으리라. 한동안 물끄러미 화룡신검을 쳐다보던 상관혁이 말했다.

"검마가 한씨세가에 들어가서 모종의 회담을 진행했다는 건 사실일세. 그리고 그는 들어간 후 나오지 않았네."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걸 느꼈지만 애써 표정에 드러내지 않으며 말했다.

"나오지 않았다?"

"자네는 알고 있겠지만 나는 마도사라서 마도의 비술로 낙양 전역을 감시하고 있네. 그 중에서 한씨세가는 특히 중요한 장소라서 사역마를 이용해서 전후좌우 빈틈없이 보는 중이지. 허나 내 사역마는 검마가 나오는 걸 보지 못했네."

"......"

"검마는 아직까지 한씨세가 안에 있겠지."

역시 뭔가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다.

' 비등을 써서 탈출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무영문으로 곧장 복귀하지 않은 게 설명되지 않아.'

어느 쪽이든간에 나는 한씨세가에서 검마의 행방을 알아봐야만 한다. 내가 고심하고 있을 때 상관혁이 말했다.

"내 생각이지만 자네가 검마를 찾아내고 싶다면 죽을 각오를 하는게 좋을걸세. 한씨세가의 가주가 검마를 죽이거나 감금했다면 결코 외부에 그 사실을 알리려 하지 않을터이니, 한씨세가와 충돌하는 건 피할 수 없겠지."

"......"

"검마와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포기하는 걸 추천하네. 한씨세가와 싸우면 설령 구파일방 장문인이라 해도 죽을 수밖에 없어."

나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니 신경 끄시오."

"자네가 내 업을 지워준 은인이라서 진심으로 충고해 준 건데... 맘대로 하게."

"안 그래도 맘대로 하려 했소."

나는 상관혁에게서 물러나오려 했다. 그러자 상관혁이 골치아프다는 듯 내 소매를 붙잡았다.

"젠장... 잠깐 기다리게."

"왜 그러시오?"

"아무리 그래도 은인이니 죽게 둘 순 없어. 자네를 도와줄 사람을 소개해 주지."

나는 흥미가 생겼다.

"그게 누구요?"

"딱 반 시진만 기다려 보게. 그는 틀림없이 자네에게 도움이 될 터이니."

"알았소."

나는 당장 한씨세가에 들어가서 담판을 지으려 해봤자 한백령과 죽어라 싸울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므로, 일단 상관혁이 말한 '조력자'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반 시진 동안 상관혁과 천하오대의원에 대한 것과 의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생각보다 할 이야기가 많아서인지 시간이 금방 가는 기분이 들었다.

반 시진이 지나자 상관혁의 말대로 상관세가를 누군가가 방문했다. 그 방문자는 성큼성큼 상관세가의 상층으로 걸어올라오더니 별실으로 들어왔고, 상관혁은 곧장 일어서서 그에게 공손하게 포권했다.

"대인(大人),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인'은 자신의 수염을 쓸며 말했다.

"간만이군 의성. 자네가 나를 직접 부를 정도의 일이 생겼는가?"

"그렇습니다. 제 은인을 돕는 일인지라... 대인의 힘이 꼭 필요합니다."

대인이라 불린 자는 탁자로 와서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이 자인가?"

"그렇습니다."

나는 그 '대인'에게서 심상치 않은 중후한 내력을 느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 무슨 이런 내공이...?'

막강하다!

마치 소림사의 신승(神僧) 명호대사를 연상하게끔 할 정도의 엄청난 내공이었다. 만일 눈 앞의 이 자와 신승이 내게 내공으로 합공한다면 내가 밀릴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인간세상에서 천령단을 제외하고 세 손가락에 꼽히는 내공이라 해도 무방하리라. 그러나 그런 막강한 내공과는 반대로 그의 옷차림은 완전히 관리나 유생의 관복이었으므로 이질적인 기분이 들었다.

그것도 고위관리가 틀림없다. 금의위 시절에 가르침받은 내용에 따르면 저 관복은 상당한 고위관리만이 입을 수 있는 옷이다.

나는 혹시나 해서 말했다.

"금의위나 동창 소속이십니까?"

그러자 대인은 묘한 표정을 지었고, 상관혁이 황급히 말했다.

"허튼 소리 말게. 이 분은 그런 자들을 가장 싫어하고 혐오하는 분일세."

"후후. 재밌는 자로군. 반로환동한 것 같은데 어디서 이런 고수가 튀어나온 건지..."

대인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상관혁은 내게 '대인'의 정체를 말해 주었다.

"대인. 이쪽은 무영련 소속의 고수인 백웅이라 합니다. 백웅 자네도 어서 등곽(鄧郭) 어르신께 인사 드리게!"

"......!!"

나는 머릿속에서 전율을 느끼고 주먹을 꽉 쥐었다.

' 드... 등곽이라고?'

그 이름은 익히 들은 적이 있다.

한때 내 스승이었던 청룡 이광의 의형제.

그리고 현 대명제국을 이끌어나가는 관리들 중에서도 청류계의 수장(首長)!

여태껏 이야기만 들었을 뿐 직접 본 적이 없었던 등곽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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