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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467화 (467/1,615)

00467  암천향(暗天鄕)  =========================================================================

화신류에서 회신이 온 것은 그로부터 열흘의 시간이 지나서였다. 검마는 나를 불러서 화신류의 사자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갔는지를 말해 주었다.

"나흘 후 낙양 한씨세가에서 보자고 했네."

"위험합니다. 그곳은 한백령의 본거지입니다."

"그녀는 내 배짱을 시험해보고 싶은가 보군..."

검마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사숙은 데리고 가지 않기로 했네. 나 혼자 갔다오겠네."

"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반문했다.

"만일의 경우 그녀가 습격해온다면 우리 셋이 힘을 합쳐야 할텐데 무영검제를 전력에서 빼다니요. 게다가 제가 따라가지 않으면 만일의 경우..."

한백령이 마음먹고 습격해온다면 검마가 인질로 잡혀서 죽거나 고문당할 가능성이 있다. 내가 말을 흐리자 검마가 물어왔다.

"그것때문에 말인데, 자네의 화룡신검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는가?"

"......"

나는 목갑에서 화룡신검과 화요를 꺼내서 잡았다.

우웅

그리고 화룡신검과 화요 사이에 내 두 팔과 어깨가 붉게 물든 걸 보여 주었다. 환염의 영기가 육안으로 보일 정도인지라 검마가 말했다.

"아직인가 보군. 아직까지 자네의 육체를 매개로 화기를 전달하는 중이었어."

나는 한숨을 쉬었다.

"삼칠일의 두 배 가까운 시간동안 꺼내놓고 있었는데도 이렇습니다. 천우진이 잘못 본 걸까요?"

"그럴 수도 있어. 애초에 화룡신검만한 보패가 봉인결계에 수백년간 쓰인 일 자체가 전대미문이지 않았는가? 화룡신검의 손상은 우리 생각보다 심각했을지도 모르네."

"아무튼 이런 까닭에 지금의 저는 화룡신검이든 화요든 제대로 위력을 끌어낼 수가 없습니다."

"흐음. 그냥 쌍검처럼 쓸 수밖에 없단 말이지."

"네."

"자네 신기의 힘이 깨어났으면 좋았을 것을."

검마가 말했다.

"자네 생각대로 아무리 한백령이 천령단의 고수라고 해도 나, 사숙, 자네 셋이 힘을 합치면 어떻게든 쓰러뜨릴 수도 있어. 하지만 한백령이 함정을 파고 기다렸다면 그녀 혼자 공격할 리 만무할 터. 틀림없이 수십 수백명의 화신류 고수들이 천라지망을 펼쳤겠지. 함정이라고 친다면 애초에 힘으로 뚫는건 어불성설일세."

"... 하지만."

"비등을 빌려주게."

검마는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나 혼자서 비등을 가지고 가는게 제일 낫네."

나는 검마에게 말했다.

"그냥 제가 따라가겠습니다."

"아니. 원래라면 그래도 무방했겠지만, 자네는 혈랑단주에게 이미 모습과 무위를 노출시켰지 않은가? 한백령은 백이면 백 자네를 보는 순간 정체를 의심할 걸세."

"아!"

"지금도 의심은 하고 있겠지만 직접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한백령이 그 이야기를 거론할 확률이 줄어들지. 한백령이 나와 무영련에게만 집중하게 하려면 나 혼자 가는 게 최선일세."

검마의 말은 합리적이었다. 나는 내심 후회했다.

' 그 때 혈랑단주를 막아서지 않았다면...'

내가 자책하는 표정을 짓자 검마가 빙긋 웃으며 등을 두드려 주었다.

"괜찮네. 어차피 그 때 자네가 혈랑단주를 막지 않았다면 그의 도주를 막기 힘들었을 걸세. 그의 무공은 생각보다 더 뛰어났으니 내 계획이 허술했던 거겠지."

"죄송합니다."

"그럼 자네는 내가 없는 동안에 임시로 무영련주직과 무영문의 문주 자리를 맡아주게."

"네?"

"자네 외에는 그럴만한 사람이 없으니."

나는 검마가 나를 믿기에 대행을 맡긴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쓸데없는 겸양을 부리지 않고 포권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로부터 사흘 후, 검마는 내가 건네준 비등을 사용해서 낙양으로 향했다.

"혜아와 무영문을 잘 부탁하네."

"다녀 오십시오."

파앗

' 사흘 정도면 적당하겠지.'

굳이 낙양까지 걸어가거나 말을 타고 갈 필요는 없었다. 괜히 암습걱정을 하거나 야숙할 필요없이 적당히 시간을 때우다가 며칠 후에 비등을 이용해서 한순간에 도착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나는 검마를 송별한 자리에서 나와서 서문혜에게로 향했다.

"문주께서 낙양으로 가셨소."

"아버님께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 분이 안 계신 동안 최선을 다해 무영문을 지키겠소."

"백웅 님이라면 믿을 수 있지요."

서문혜는 뜰을 거닐고 있다가 꽃 한 송이를 꺾으며 대답했다.

"백웅 님.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엇이오?"

그녀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결연한 눈빛으로 말했다.

"제게도... 칠대절학을 전수해 주십시오."

"......!!"

나는 깜짝 놀라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칠대절학의 존재를 알고 있었단 말인가?

내가 그녀를 응시하자 서문혜가 말을 이었다.

"아버님께서 늘 백웅 님과 새로운 신공절학을 수련하시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님께서 극구 비밀로 하셨으나 청력을 강화시켜서 칠대절학에 대해 언급하시는 걸 멀리에서 들었지요. 장삼봉 진인이 말년에 개발한 절세신공이라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

"그리하여 아버님께 그 절학을 전수해 달라 청했으나 아버님께서는 백웅 님의 허락이 없으면 결코 전할 수 없으며, 평생동안 이 비밀을 함구하라 제게 명하셨습니다."

나는 검마가 내 허락 없이 다른 자에게 절학을 유출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자 새삼 검마에 대해 신뢰가 생겼다. 검마가 자신의 하나뿐인 딸인 서문혜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고 있기에 더욱 그랬다.

"그랬구려."

서문혜는 가녀린 섬섬옥수로 내 손을 붙잡았다.

"부탁드립니다. 저도 가문과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고 싶습니다. 지금의 힘만으로는 부족하기에 백웅 님의 가르침이 필요해요."

"으음."

나는 의외의 상황에 난처함을 느꼈다.

' 물론 서문혜에게 칠대절학을 가르쳐주는 건 쉬운 일이지만...'

어렵지 않다. 그냥 거대 흑요석에서 일부를 잘라내어서 칠대절학을 담아서 건네주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경우 과연 인과율이 어떻게 흐를지가 문제였다. 지금 서문혜에게 칠대절학을 전수한 행위가 차후에 어떤 커다란 반향을 일으킬지는 예측이 불가능한 일이었다.

서문혜에게 칠대절학을 전수한다고 해서 이쪽의 전력이 크게 강화되지는 않는다. 앞으로 상대해야 할 거대한 적들의 면면을 생각해 보면 거의 의미없는 일에 가까웠다. 하지만 나는 그런 걸 생각하기에 앞서서 내게 있어서 서문혜가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 ... 빚이 있어.'

적어도 이번 생에서 검마에게 진 마음의 빚이 크나큰 것이다. 전생자인 나와 달리 하나뿐인 삶을 살고 있는 검마가 무인의 자존심을 꺾었다는 건 보통 의미가 아니었다. 뿐만아니라 서문혜는 그간 전생을 해오는 동안에 내게 지속적으로 호감과 존경을 표해 왔기에, 그런 그녀에게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도 강하게 느껴졌다.

한동안 고민하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소. 하지만 그에 앞서서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조금 알아둘 필요가 있소."

"저도 백웅 님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었습니다."

"조금 긴 이야기가 될 것이고, 믿지 못할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 모든 게 사실이라는 걸 믿어야 하오."

나는 잠시 후 그녀와 함께 무영문주의 별실에 들어갔다. 이 곳은 시비조차 함부로 출입하지 못하는 철저한 검마의 개인공간이었다. 심지어 딸인 서문혜조차 허락받지 않으면 얼씬하지 못하는 곳이었으나 현재 문주대행이 되어있는 나는 이 곳을 출입할 수 있었다. 그런만큼 듣는 귀가 없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대략 반 시진이 조금 안 되는 시간동안 내가 지금까지 천암비서를 얻어서 전생을 해왔던 삶, 그리고 그동안에 일어났던 일, 세계의 비밀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고작해야 반 시진만에 다 이야기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다소 간략화되었지만 얼개를 설명하기에는 충분했다.

"......"

서문혜는 약간 입을 벌린 채 멍한 표정이었다.

"흑요석으로 그냥 기억을 건네줘도 되겠지만 보통 사람이 이 기억을 보게 되면 과도한 정보 때문에 혼란이 올 수 있다고 제갈사가 말했소. 그래서 미리 받아들이기 쉽게 설명을 해 준 것이오."

내 동료이자 인과율에 밀접하게 연관된 주된 동료들의 경우는 자기자신의 일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해하기가 쉬웠다. 또한 하나같이 정신력이 강인한 자들이었다. 하지만 서문혜는 그동안 내 일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일이 적었기에 미리 설명해서 정신적인 유연성을 풀어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단숨에 흑요석으로 다 받아들인다면 웬만한 정신력이 아닌 이상 정신에 이상이 올지도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서문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삼황오제나 [옛 지배자]라는 게 실존하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백웅 님께서는 진실로 그런 신적인 존재들과 맞서싸우려 하시는지요?"

"그렇소."

"너무나, 너무나 거대한 이야기군요... 제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무림이 좁아보일 정도로..."

넋이 나간 듯 중얼거리고 있던 서문혜는 한동안 침묵한 채 생각을 정리하는 듯 했다. 그러더니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각오했습니다."

"좋소."

나는 이윽고 목갑에서 거대 흑요석을 꺼내서 그동안의 내 기억과 칠대절학이 담긴 흑요석을 잘라서 건넸다. 서문혜는 흑요석의 기억을 읽고 있다가 한동안 몸을 부르르 떨었고, 이내 크게 가쁜 호흡을 토했다.

"하아, 하아, 핫..."

"괜찮소?"

"네..."

그녀는 내게 말했다.

"백웅 님. 저도 앞으로 백웅 님의 동료가 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수십 번이나 도움을 받은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

"그건 안 되오."

"왜입니까?"

나는 한숨을 쉬었다.

"단순히 좋아한다는 것만으로 동료로 받아들이기에는 앞으로의 여정이 너무 험난하기 때문이오. 당신도 보았듯이 내 적은 백련교주조차 찢어죽일 정도로 강력하고, 그런 자들과 적대하다가 패배하는 게 일상이오. 내 목숨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에 당신까지 지켜줄 여유가 없소."

"......."

"그렇기에 나는 언제부터인가 미호도 멀리하고 있소. 그녀를 좋아하는 만큼 그녀가 내게 말려들어서 죽는 걸 보기 괴롭기 때문이오."

"하지만 아버님이나 망량, 제갈사라는 자들과는 계속 가려 하지 않으십니까?"

"그건 그들이 그만한 각오가 되어있기 때문이오. 나는 그들에게 늘 마음의 빚을 지고 있소."

"백웅 님."

그러자 서문혜가 나를 꼭 끌어안았다. 내가 가만히 서 있자, 그녀가 울음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미호라는 분도 저와 마찬가지 생각일 거예요. 그런 각오가 되어있는 건 남자뿐만이 아니랍니다."

"하지만..."

"당신이 가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알고 있기에 같이 가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시는 건가요?"

"......"

"당신이 우리를 좋아하는 만큼, 우리도 당신을 인간으로써 좋아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 말에 서문혜의 진심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서문혜나 미호가 여자라서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고 자연히 그들을 내 일에 끌어들이는 걸 꺼려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어설픈 치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내 동료가 되고싶어 하는 것이다. 되려 내가 멋대로 기준을 세워서 그녀를 판단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크게 깨닫고는 그녀를 마주 안으며 말했다.

"알겠소. 앞으로 당신과도 함께 가도록 하겠소."

"고맙습니다."

"이제부터 칠대절학을 열심히 수련해 봅시다."

나는 곧 서문혜와 같이 수련장에 들어가서 칠대절학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흑요석으로 생생한 기억과 지식을 전달받았다 하더라도 직접 경험해본 내가 직접 알려줘야 성취가 훨씬 빠를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과는 놀라웠다.

겨우 이틀!

이틀만에 서문혜는 칠대절학의 식(式)을 모두 외우고 팔대가능성을 얼추 겨눠보게 된 것이다. 물론 형식을 익혔다고 해서 바로 터득했다는 의미는 아니었으나, 초식만 해도 수십가지를 훨씬 넘었는데 그걸 완벽하게 외운다는 건 보통 무재(武材)가 아니었다.

' 역시 그녀도 기재구나!'

나는 서문혜에게 탄복해서 말했다.

"과연 현재 무림에서 손꼽히는 기재구려."

"아닙니다. 백웅님이 준 흑요석의 기억이 있으니 아는 걸 복습하는 것에 불과했을 뿐... 이제부터가 시작이지요."

그렇게 대꾸한 서문혜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이틀이 지났는데 아버님께서는 무사하실지..."

"......"

확실히 걱정된다. 이틀이라고 하면 낙양에서 하남으로 돌아오기에는 짧은 기간인 것 같지만, 검마는 비등을 가지고 간 것이다. 화신류와 회담을 하는 게 웬만큼 길어진다고 해도 이틀씩이나 걸린다는 건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일이었다. 검마가 언제든 비등을 쓰면 순식간에 되돌아올 수 있다는 걸 감안하면 이틀은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섣불리 자리를 비우면 언제 검마가 돌아올지 모르니 상황이 꼬일 수도 있다.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서문혜가 말했다.

"백웅 님. 문파를 제가 맡고 있을테니 남궁세가로 가셔서 무영검제님을 만나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무슨 의미요?"

"걱정이 되신다면 그 분과 함께 낙양으로 가서 정황을 보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음..."

"아버님께서 일찍 돌아오신다면 백웅 님의 행방을 알려드릴테니 걱정 마세요."

확실히 이렇게 좌불안석하는 것보다는 무영검제와 합류해서 낙양에 가 있는 검마가 무사한지를 확인하는 게 낫다. 나는 서문혜의 지혜에 고마움을 느끼며 말했다.

"낙양에 갔다오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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