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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466화 (466/1,615)

00466  암천향(暗天鄕)  =========================================================================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약간 놀란 눈으로 검마를 쳐다보았다. 검마에게 이런 일이 될 거라고는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심스레 혈랑대주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장내의 상황을 살피기로 했다.

검마의 말에 혈랑대주가 그대로 쌍검을 검마에게 겨눈 채 말했다.

"촌구석 하남에서 걸물이 나온 건 인정해주지. 하지만 내가 화신류라는 걸 알고도 초대했다니 자기 주제를 모르는군."

"후후... 무영련이라 할지라도 화신류에 비견할 수 없음은 알고 있소."

"......"

혈랑대주의 눈이 한층 예리해졌다. 그러더니 슬며시 칼끝을 내렸다.

"원하는 게 뭐지?"

"당신이 섬기는 주군과 이야기하고 싶소. 자리를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를 전해 주시오."

혈랑대주는 검마의 말에 코웃음쳤다.

"웃기는 소리!"

"왜 웃기는 소리요?"

"격(格)이 다르다. 떨거지들의 수장이 되었다고 아주 천하를 얻은 양 기고만장했구나."

버럭 소리를 지른 혈랑대주가 갑자기 뒷문으로 자신의 신형을 쏘아 날렸다. 아무런 반동이 없는 무탄력 경공이면서 아주 빠른지라 그의 신법경지가 고절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보아하니 그는 의념절기를 사용가능한 초절정의 고수가 분명해 보였다.

' 저 놈은 화신류의 장로급 고수군!'

한백령과 함께 있었던 낙양의 한씨세가에서도 혈랑대주같은 고수는 거의 없었다. 한백령을 호위하듯 기척을 숨기고 은밀히 돌아다니는 한두 명이 그정도 수준이었는데, 달리 말하면 혈랑대주는 구파일방의 장문인과 대등하거나 상회하는 실력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화신류에서도 중요간부인 장로급이 틀림없다.

그와 동시에 검마와 나는 혈랑대주를 쫓아서 신형을 날렸고, 근처에 이미 포진하고 있었던 무영문의 고수들이 천라지망을 펼치듯 그를 막아섰다.

"멈춰랏!"

휘리릭

"어엇."

혈랑대주는 자신의 앞에 무영문의 고수 다섯 명이 덤벼들어서 검기를 내뿜자 몸을 휘돌며 검붉은 검강을 세 줄기 날렸고, 무영문 고수들은 당황해서 전력을 다해서 피했다. 검강과 정면으로 상대하면 죽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무영문의 고수들의 포위진을 돌파한 혈랑대주가 진각을 내리찍으며 충격파를 일으켰고, 그 기세에 추격진이 다시 허물어졌다.

굉장한 실력자!

보통 강호인이 평생에 한 번 볼까말까한 강자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혈랑대주를 멸혼보로 앞서가며 가로막았고, 혈랑대주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이를 베는 건 좋아하지 않는데!"

쐐애액

심적권청의 순간에 흘려낸 말과는 달리 그의 쌍검은 이미 내 사지를 토막내러 날아오고 있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고수이기에 도덕적인 관념과 행동을 완전히 분리시킨 냉혈무정한 강호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의 말에 대꾸해 주었다.

"네 목이나 걱정하지?"

꽈앙

"크학."

일순간 내가 단순하게 직도황룡의 일초로 내려친 것 뿐이었지만 혈랑대주의 쌍검은 크게 튕겨져 나갔고 폭음과 함께 삼 장 뒤로 날아갔다. 피화살을 뿌리며 훨훨 날던 혈랑대주의 신형은 곧 자세를 잡으며 땅에 착지했다. 혈랑대주는 믿기지 않는 기색으로 팔을 덜덜 떨었다.

"무... 무슨 공력이... 네놈은 설마 원로원의..."

반로환동한 고수라고 하면 백련교 원로원이 먼저 생각나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으므로 피식 웃으며 말했다.

"죽이겠다고 한 것도 아니잖나? 검마의 말을 제대로 들어보는 게 어때."

"......"

혈랑대주는 이를 악물었다. 어느 새 검마가 쫓아와서 나와 함께 전후로 그를 포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또한 초절정고수라서 나와 검마의 실력이 자신보다 훨씬 위라는 걸 알고 있었고, 이대로라면 죽는 수밖에 없다는 걸 직감한 듯 했다. 그는 잠시 후 한숨을 쉬며 말했다.

"... 알았다."

우리는 다시 혈랑대주를 데리고 무영문으로 되돌아갔다. 검마는 혈랑대주에게 말했다.

"진지하게 생각해 주시오. 나는 당신이 화신류 소속이며, 호법사자(護法師者) 한백령에게 직접 이야기할 수 있는 위치라는 걸 알고 있으니."

"...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몰라도 많은 걸 알고 있군. 그래서 날더러 호법사자께 네놈과의 회담을 주선하라는 말이냐?"

"그리 손해될 것도 없잖소?"

검마가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

"어차피 한백령이 내 일을 궁금해해서 당신이 여기 온 게 아니오? 이렇게 치사하게 정탐할 게 아니라 까놓고 무영련과 화신류끼리 얘기하자는 말인데."

"흐흐... 그 분은 관계없다. 억측하지 마라."

혈랑대주의 두 눈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잠시동안 검마와 혈랑대주 사이에 기싸움이 벌어지더니 혈랑대주가 망설이며 말했다.

"... 좋다. 말씀은 드려보지."

"말해두지만 우리는 화신류와 반목할 생각이 없소. 그럴 생각이 있었다면 당신을 미끼로 잡아 더 큰 이득을 얻었을테니 그리 이해하시오."

"흥, 강호에서 누가 남의 말을 믿는다 하더냐?"

"후후! 당신이 한백령에게 말할 염치가 별로 없을테니 할 말을 만들어주는 건데."

"으윽...!!"

혈랑대주가 이를 부득부득 갈았지만 검마가 약올리는데도 화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듯 했다. 경륜있는 고수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판단을 잘 하기 때문이었다. 만일에 검마가 혈랑대주를 인질로 잡아서 온갖 책략을 도모하기 시작하면 혈랑대주 그 자신만 크게 손해를 볼 게 분명했다.

잠시 후 검마는 혈랑대주와 이야기를 끝내고 그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부하들을 물리고는 나를 별실으로 불러서 말했다.

"백웅. 난데없이 계획을 꾸며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혈랑대주를 끌어들이다니 예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검마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제가 전생하던 도중 한진성과 석굴에 갔을 때 받았던 명단을 기억에서 보셨군요."

"그렇네. 그걸 보고 오늘의 계획을 꾸민 거지."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한진성의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 전에 제 세력을 지원해드린다 말씀드렸지요. 이 금패는 한씨세가 산하의 그 어떤 전장도 자유자재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돈은 필요한 만큼 마음대로 쓰십시오. 그리고 이 금패가 있으면 혈랑대(血狼隊), 흑성파(黑星派) 등등 한씨세가 산하의 무림세력을 움직이실 수 있을 겁니다.]

[ 저희의 지원을 받는 세력과 문주들은 이 종이에 써 두었으니 참고해두십시오.]

나는 전생하던 중, 17번째의 삶에서 화신류의 주인인 한백령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 당시에 나는 화신류의 소가주인 한진성에게 화신류의 외단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하부세력의 명단을 본 기억이 있었다. 나는 지금껏 별로 생각지 않고 있었는데, 흑요석을 통해서 기억을 받아들인 검마는 그 명단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은 듯 했다.

"명단에는 혈랑대와 흑성파를 비롯해 삼십여 개의 대소세력이 있었지. 또한 그 모든 것은 한씨세가의 소가주 한진성의 직할세력이었고, 혈랑대는 강호에서도 특히 유명한 사파의 용병대. 그정도 세력을 이끄는 화신류의 고수라면 틀림없이 중요간부일 거라 생각했네."

"그래서 혈랑대주를 초빙한 거군요."

"그렇네. 게다가 그가 쌍검을 쓴다는 점도 아주 적절했지."

나는 아까 보았던 혈랑대주를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는 틀림없는 초절정 경지의 고수였습니다. 장로급이겠지요. 그런 자를 외단으로 돌릴만큼 화신류의 세력은 강대합니다. 조금 섣부른 판단 아니었을까요?"

"하하! 다 알고 시도한 걸세. 왜냐하면 어차피 한 번은 거쳐야 할 일이기 때문이지."

"거쳐야 할 일이라뇨?"

"혈랑대주가 어줍잖은 초빙에 응한 이유는 욱일승천하고 있는 우리 무영련에 침투해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네. 왜냐하면 화신류의 하부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오대세가 중에서 남궁세가를 우리가 박살냈으니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겠지."

"음!"

그건 그렇다. 안 그래도 검마가 그 일을 어떻게 해결할지 궁금했었는데 역시 세세한 부분까지 생각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일파의 지존다운 자세였다. 검마의 말이 이어졌다.

"이제 그는 먼저 한진성에게 이 일을 고할 것이고, 한진성은 한백령에게 알리지 않을 수가 없겠지. 나는 그녀를 만날 때를 승부수라고 생각하고 있네."

"위험합니다."

"왜?"

"제가 봤던 바로는 한백령은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폭력을 행사하는데도 익숙합니다. 잘못하면 모든 게 위험해질수도 있습니다."

누구한테나 굽히고 들어가면 이야기하기는 쉬워지지만 얕보이기가 쉽다. 그러나 한백령은 모든 제안이나 교섭에 능숙하게 대처하면서도 여차하면 깽판을 칠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런 그녀의 일면을 아는 나로서는 섣불리 교섭하는게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자 검마가 말했다.

"그녀가 남궁세가의 멸망을 알자마자 우리 무영련을 견제하지 않고 지켜봤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음... 신중하게 행동하려는 거 아니었을까요?"

"아니.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키워먹기를 하려고 했다고 생각하네."

이건 무슨 말인가?

내가 멀뚱히 검마를 쳐다보자 검마가 훗하고 웃었다.

"자네가 나중에 조직을 경영해보면 알겠지만 하부세력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관리하기가 귀찮아지지. 부하가 하나만 있어도 골치아픈 일이 부지기수인데 단체를 다루는 일은 더하지. 하물며 한씨세가처럼 영향력으로 중원 전체에 각종 하부단체와 오대세가씩이나 되는 대세력을 줄줄이 달고다니는 곳은 오죽하겠나?"

"그 말씀은..."

"한백령은 내 세력인 무영련이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어. 무영련이 남궁세가의 자리를 대체하는 김에 다른 오대세가가 오만방자해지는 걸 견제하고 나아가서는 구파일방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게 하는 하부세력으로 만들려는 거지. 더불어 여차하면 무영련 휘하에 오대세가를 통합시켜서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도 있지. 그러면 화신류의 수장인 그녀 입장에서는 아주 편해질 걸세."

"......!!"

거기까진 생각지 못했다. 나는 문득 생각이 들어서 말했다.

"한백령은 무영검제를 알고 있을까요?"

"십중팔구는 알고 있겠지. 내가 최대한 그 분의 정체를 숨기고 있으나 화신류의 정보력이면 다 알아냈을지도."

"그러면 큰일 아닙니까. 아직까지 무영련의 힘으로는 화신류를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천하를 오시하는 초절정고수인 검마와 무영검제가 버티고 있는 게 무영련이라고 해도, 호법사자 한백령의 힘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한백령 뿐만이 아니라 화신류에는 기라성같은 고수들이 드글거리고 있었으며 하부세력만 움직여도 곤란해질게 분명했다. 일례로 기껏해야 사파용병대인 줄 알았던 혈랑대의 대주조차도 정체를 숨긴 화신류의 초절정고수였지 않은가!

검마가 차분하게 말했다.

"나 또한 흑요석으로 자네의 기억을 보면서 한백령이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네. 그 결과 내린 결론은, 그녀는 합당한 인재에게는 합당한 보상을 해 주는 여걸이라는 것이었지."

"합당한 보상요?"

"그렇네. 그녀는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상대의 이야기가 논리적인지 아닌지 한번 더 미루어 생각하는 신중함을 갖추고 있지. 이런저런 정황을 볼 때 그녀가 싫어하는 건 자신의 성질을 긁는 존재가 아니라 무능한 존재일세. 써먹을만 하다고 생각하면 조직의 수장으로서 자신의 감정을 일단 접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이지."

"흠..."

그런 식으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확실히 한백령이 자신의 감정을 못이겨서 폭주하거나 했던 일은 거의 없었던 듯 했다. 검마가 말을 이었다.

"나는 곧 있을 한백령과의 회담에서 화신류의 밑으로 들어갈 걸세. 그리고 자네에게 화신류의 무예를 전해 주지."

"......!!"

나는 눈을 부릅떴다.

"설마, 화신류에 입문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네."

"하, 하지만 그건..."

나는 말을 더듬거릴 수밖에 없었다.

검마가 화신류에 입문한다는 것.

그것은 전생자인 내 입장에서는 힘을 얻기 위한 단순한 행위였으나 전생능력이 없는 검마 입장에서는 달랐다. 무영문이라는 고대무류의 일맥을 잇는 존재로서 자신의 일맥을 등지며 다른 무공을 익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파의 고수들은 종종 다른 문파에 입문하기도 했으나 검마는 단순한 사파인이 아니라 명예를 지닌 무예종주이기에 심히 괴로운 결단인 게 틀림없었다. 게다가 검마는 이미 칠대절학이 있어서 화신류의 무공이 더 필요없었다.

무인의 자존심을 꺾을 정도의 결단!

검마는 씩 웃으며 내 등을 두들겼다.

"하하! 자네를 백련교에 노출시키지 않으며 화신류 쌍검술을 얻을 방법은 이것밖에 없지 않은가? 내가 무영련주로서 화신류의 상승무공을 원한다 하면 그녀는 꿈에서도 의심하지 않을 걸세."

"......"

"알고 있네. 자네가 백련교주에게 연민을 느끼면서도 그의 이상을 제어할 방법이 없어서 접촉하지 않으려는 정도는."

그는 창가로 가서 달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백련교주에 필적하거나 그를 막아설 힘이 생기기 전까지는 굴욕을 참아야겠지. 자네의 궁극적인 승리를 위해서라면 내 자존심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세."

"... 죄송합니다."

"하핫. 술 한 잔 할 텐가?"

"감사히."

나는 그 날 수련을 하지 않고 검마와 술을 마셨다. 전생을 시작하고 이렇게까지 많이 마셔본 건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퍼 마셨다. 내공으로 주정을 몰아내면서도 취하고 싶어서 일부러 독기를 어느정도는 놔 두었다.

나는 숙소로 돌아와서 술기운때문에 어질어질하면서도 주륵 눈물을 흘렸다.

' 전생을 하지 않는 검마에게 피해를 주고 말았구나.'

무인의 자존심이란 건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인데 검마는 나를 위해서 그걸 꺾어 주었다. 나는 같은 무림인으로서 그게 얼마나 큰 결심인지 알고 있었다.

또다시 살면서 마음의 빚을 지고 말았다. 이걸 어떻게 갚아야 할까?

' ... 아니, 답은 하나 뿐이다.'

검마가 말했듯이 궁극적인 승리로 보답하는 것 뿐.

내 뜻과 의지를 계속 살려서 이 미친 세상에 활로를 여는 것!

그걸 위해서라면 모든 걸 참아내고 계속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한동안 눈물만 뚝뚝 흘리다가 이내 뺨을 닦고는 수련장으로 나가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남아있던 주정을 내공으로 기화시키며 이를 악물었다.

한가하게 잠을 잘 시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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