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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465화 (465/1,615)

00465  암천향(暗天鄕)  =========================================================================

검마도 석 달 가까이 나처럼 침식을 잊고 수련했던 모양으로, 얼굴이 다소 정돈되지 않고 턱수염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눈빛에는 정기가 가득해서 그가 기운차게 무공수련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검마는 폐관수련장에서 나오며 내게 말했다.

"백웅. 무슨 일인가?"

"따님을 쓰러뜨린 자의 정체를 짐작했습니다."

"흐음."

"그는 풍신류의 비전검법인 풍마검법의 달인이었고, 그럴만한 인물은..."

검마가 앞서서 대꾸했다.

"용중일이겠지."

"엇..."

나는 약간 당황했다. 검마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대답했기 때문이다. 검마가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딸아이의 이야기는 이미 들었고, 흑요석을 통해서 자네의 기억도 전승받았지. 그래서 진작부터 짐작하고 있었네."

"그, 그렇군요."

"풍마검법을 그정도 경지로 익힐만한 인물은 호법사자 용비천과 그 아들인 용중일 뿐. 그러나 용비천보다는 용중일이 황산파의 장문인으로서 검법을 장기로 하겠지. 그러면 용중일이 내 딸을 쓰러뜨린 흉수라는 것일세."

"맞습니다."

나는 뻘쭘해졌다. 굉장한 사실을 알아낸 것 같았는데 상대가 이미 알고 있으면 민망하기 때문이다. 검마는 껄껄 웃었다.

"하하. 나쁜일은 아닐세. 그 사실 또한 내가 수련에 전념하게 하는데 큰 요인이 되었거든."

"복수할 대상이 풍신류가 되었단 말씀이십니까?"

"바로 그렇네."

검마의 눈이 예리해졌다.

"안다고 해도 지금의 나로서는 풍신류를 쓰러뜨릴만한 힘이 없어. 그래서 자네에게 전승받은 칠대절학의 힘으로 나 자신을 갈고닦아서 그들과 싸울만한 힘을 키워야 하지. 그래서인지 이 석 달 가까이는 불철주야 수련에 매달릴 수가 있었네."

"무리하지 마십시오."

"알고 있네. 백련교의 진짜 힘을 알고 있으니 장기전을 생각하고 있네."

그렇게 말한 검마가 말했다.

"온 김에 자네의 성취를 확인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안 그래도 들어온 정보가 있어서 해줄 얘기가 있었거든."

"네, 알겠습니다."

나는 이윽고 검마와 마주서서 대련장에서 검을 겨누었다. 검마는 화요와 화룡신검을 들고 있는 나를 멀뚱히 쳐다보더니 말했다.

"그러고보니 화룡진인이 깨어나는데 삼칠일이 필요하다고 했었지. 그 기간은 충분히 채웠는가?"

나는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계속 꺼내놓으면서 화룡신검에 힘을 공급하고 있는데 화룡진인이 깨어나질 않습니다. 순수시간으로 삼칠일이 훨씬 넘었는데..."

"흐음, 그건 이상한 일이군."

"일단은 계속 꺼내고 있으려고 합니다."

"그게 좋을 걸세. 자, 간다!"

파앗

이윽고 검마가 이기어검을 발출하며 나를 공격했다. 나는 화요를 해방한 덕인지 전신에서 힘이 충만하며 그 이기어검이 마치 느려터진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기어검을 쉽사리 회피하면서 마주 검마를 반격해 들어갔다.

그 순간 검마가 절학을 사용했다.

구십구합리귀(九十九合理歸)

까앙!

검마와 나의 검이 충돌하는 순간 양인이 동시에 튕겨져서 뒤로 날아갔다. 나는 자세를 바로잡으면서 약간 당황했다.

"아니..."

언뜻 보면 백중세였으나 나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결과였다. 칠요 중 화요가 해방된 진력에 내 가공할 내공이 합쳐졌으니 인간무인으로서는 당적하기 힘든 파괴력이 일검에 잠재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검마는 칠대절학의 8대가능성 중 구십구합리귀를 써서 나와 정면에서 대등하게 맞선 것이다.

검마는 씨익 웃었다.

"백웅. 나는 예전보다 두 배 이상 강해졌네. 힘만으로는 나를 쓰러뜨릴 수 없을걸세!"

"어떻게 하신 겁니까?"

"구십구합리귀는 이청운이 무당절학 유능제강(柔能制剛)과 강능단유(剛能斷柔)의 양면을 모두 고찰해서 만들어낸 절학일세. 태극요지유검과 굴공검, 진무칠절경의 현묘한 점을 따온 것이니 모든 힘을 상쇄시킬 수가 있지. 그만큼 운용하기가 까다롭다는 단점은 있으니 이는 틀림없이 최고의 대응성을 지닌 무공일세."

"......!!"

"자, 계속 해볼까!"

카가강

나는 검마와 더불어 일백 초를 나누고는 휴식했다. 그리고 나는 검마의 말대로 칠요와 패력만으로 그를 누를 수 없다는 걸 인정하며 감탄했다. 석 달 동안 쉴새없이 수행했다고는 하지만 검마는 정말로 두 배 이상 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검마가 땀을 닦으며 대꾸했다.

"무공이 좋기 때문이지. 자네는 내게 절세천재들이 기백년동안 절세무공을 연구한 성과를 고스란히 준 것과 다름없네."

"하하..."

"흠, 이청운은 확실히 천재일세. 설마 칠대절학의 유연성을 이용해서 이토록 많은 절학을 파생시킬 수 있을 줄이야... 진정 종사(宗師)의 이름에 걸맞는 지고한 무인일세."

잠시 감탄하던 검마가 하늘을 쳐다보았다.

"허나 더 대단한 건 장삼봉일세."

"네?"

"이청운이 많은 절학을 파생시켰으나 이 모든 건 칠대절학이 원래 품고 있던 가능성일 뿐이었고, 심지어 파생된 것들도 무(武)의 극의(極意)에서 어긋나지 않네. 만물이 원융회통(圓融會通)하니 이는 실로 신의 설계... 장삼봉이 만들어낸 궁극의 절학인 무쌍패(無雙覇)의 위력이 궁금해지는군."

"......"

검마의 말이 이어졌다.

"백웅. 석 달 가까운 시간동안 나는 쌍검술의 달인을 수소문해 보았는데 총 다섯 명을 찾을 수 있었네. 우선 무영문으로 불러들였고 아마 열흘 내로 본문에 도착할 것일세. 그들에게서 쌍검술의 기초를 좀 배워보겠나?"

할 말이란 게 그거였군. 나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때까지 내가 자네에게 칠대절학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가르쳐 주지."

"감사합니다."

검마는 같은 기간을 수행했으나 나보다 열 배나 되는 성과를 얻은 듯 했다. 그는 이미 8대가능성 중 상당한 절학을 실전에 써먹을 수준으로 연마한 듯 했기에 아직까지 초입요결에 머물고 있는 내게 큰 지도를 해줄 수 있었다.

나는 검마와 더불어 수련을 하던 중 서문혜와 종종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정확히는 검마가 그러기를 원하는 눈치가 강했기에 대화를 자주 하려고 한 것이다. 나는 서문혜에게 물었다.

"서문혜 소저. 소저는 어찌하여 머리카락이 백발이 된 것이오?"

그녀는 달밤, 내 옆에 서서 자신의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무영문의 무공을 익히는 도중에 갑자기 이렇게 되더군요."

"... 내가 당신의 몸을 진맥해 봐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나는 서문혜의 몸을 세세하게 진맥해 보았다. 하지만 화타일문의 의술을 지닌 나로서도 그녀에게 특별한 병증이나 괴질이 있는건 느낄 수가 없었다. 서문혜는 옷을 추스리며 일어서서 말했다.

"모든 의원들이 제게 특수한 절맥이나 체질이 있는건 아니라 했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당장 지내는데 불편함이 없으니 우선 놔두고 있지만..."

그녀는 말꼬리를 흐렸다. 아무래도 머리카락이 흰색인게 크게 신경쓰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강호의 여인이라서 사회의 관념에서 다소 자유롭다고는 해도 남들과 다르다는 건 큰 장애로 느껴질수도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가 불쌍하게 느껴졌으므로 서문혜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걱정 마시오. 내가 반드시 그 원인을 알아내서 말해주겠소. 고칠 수 있다면 고쳐볼 거요."

"감사합니다, 소협..."

서문혜는 약간 눈물을 훔치는 듯 하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소협께선 좋아하는 여인이 있으신지요?"

"있소."

"어떤 분이신지..."

어떤 사람인가.

' ... 아니 어떤 여우냐고 해야하나.'

나는 미호를 생각하자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혀서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도 마음속으로는 계속 미호를 생각하고 그리워하지만 해야할 일이 너무 많고, 미호를 죽음의 운명으로 이끌기 싫어서 접촉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한번의 생에 다 해결할 수 있다 생각해서 계속 동료로 받아들였으나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

언제 미호와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 모든 게 끝났을 때 그녀와 함께 즐겁게 늙고 싶소."

미호라면 내 추한 외모나 아둔한 점을 받아들여 줄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받아들여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는 이미 미호 외에는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나직이 대꾸하자 서문혜는 흠칫 놀라다가 말했다.

"정말로 그 사람을 좋아하시는군요..."

"......"

"밤이 늦었습니다. 안녕히 주무시길..."

나는 서문혜가 무슨 의도로 질문한 건지 잘 알 수 없었기에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휴식하고는 다시 수련했다. 수련할 시간이 있을때 수련해 둬야 죽을 일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 무영문에는 검마가 강호 각지에서 수소문한 쌍검술의 달인들이 모여들었다. 나는 검마 옆에 호법자격으로 서서 그들을 지켜보았는데, 검마가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러 강호의 고인들을 모시게 되어 반갑소. 나는 무영련의 련주이자 무영문의 문주인 검마 서문대룡이라 하오."

그들 중 가장 앞에 있던 부리부리한 인상의 장년인이 앞으로 나와서 포권했다.

"천하에 명성높으신 무영련주를 뵙게 되어 영광이오!"

그를 시작으로 옆에 있던 다른 네 명이 모두 포권했다. 검마가 흡족하게 겸양을 표했다.

"별말씀을... 이 자리에 모이신 분들이 하나같이 쌍검술에 있어서 뛰어난 고수들이란 이야기를 들어서 이 서문 모는 아주 감격했습니다."

"련주께서는 우리를 무영련에 받아들이고자 부르신 것인지?"

"그렇소. 동시에 여기 백 호법에게 쌍검술에 대해서 가르쳐주셨으면 하여 부르게 되었소."

그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나는 현재 반박귀진을 체현하고 있는 중이라서 겉보기에는 기세가 대단치 않았다. 기세로 제압할 수도 있겠지만 일부러 이러고 있는 이유는 그들의 진면목을 살피기 위한 위장이었다.

그러자 호리호리해 보이는 쌍검술사 한 명이 얼굴에 난색을 표했다.

"흐음... 그 말은 무공을 전수하라는 말인데 어찌 그럴 수가 있겠소? 자신의 무공은 최대의 비밀인지라 직전제자를 제외하고는 가르칠 수가 없소."

"이 서문 모는 고인들의 고민을 십분 이해하고 있소. 그렇기에 자신의 비전초식이나 무공이 아니라, [쌍검술] 자체의 기본적인 이해를 백 호법에게 전했으면 하오. 무예십팔반의 술서로 전할 수 있을 정도의 통상적인 정도라 해도 좋소."

웅성

다섯 명은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와서 조심스레 말했다.

"저 그... 그렇다면 높은 가르침을 주는 자에게는 무영련에서 높은 직위를 주시는지?"

"그럴 용의가 충분히 있소."

"후후. 그렇다면 내 최선을 다해 가르쳐 드리지."

그들은 이내 분위기가 풀어져서 희희낙락하게 변했다. 내가 딱 봐도 무영문의 후기지수처럼 보여서 날로 명예를 얻을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촌극을 지켜보던 나는 실망해서 약간 표정이 굳어졌다.

' 글렀어. 이런 멍청이들한테 배워야 한다니...'

한 눈에 그들의 무공수위를 파악할 수 있었다. 기껏해야 일류 수준이었으며 개중 절정에 근접한 자가 딱 한 명 있었다. 물론 쌍검술에 한해서는 전문가일테지만 저런 하수들에게 배워서 과연 충분히 간장과 화룡신검을 써먹을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파앗 -

진한 느낌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건 검마 또한 마찬가지인지 일순간 표정이 예리해졌다. 검마는 제일 왼쪽에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삿갓의 괴인에게 말을 걸었다.

"혈랑대주(血狼隊主). 기분이 언짢아 보이시는구려."

혈랑대주라 불린 삿갓의 고수는 무심하게 대꾸했다.

"별로 그렇진 않습니다, 무영련주."

"정체를 숨기지 마시오. 내 생각에는 아마 당신이야말로 내가 기다리던 자 같구려."

"무슨..."

"당신같은 초고수가 어중이떠중이와 동급 취급받으니 못 견디는거 아니오?"

"......"

검마는 나머지 넷을 향해서 단호하게 말했다.

"생각이 바뀌었소. 혈랑대주를 제외한 당신들은 돌아가 주시오. 무영련에 가입할 자격이 없으니."

"뭐, 뭣!"

"이런..."

그들은 당황했으나 이내 힘없이 쫓겨나가고 말았다.

이제 장내에는 무영문의 고수들과 혈랑대주만이 남겨지게 되었다. 혈랑대주는 당황스러울텐데도 침착하게 검마를 쳐다보고 있었다. 검마는 의자에 자신의 턱을 기대며 천천히 말했다.

"사실 긴가민가했소. 우연을 가장해서 당신을 초빙했으나 의심해서 받아들이지 않을까봐 걱정도 많이했고..."

"아까부터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군."

"당신이 내 초빙에 응한 이유는 알고 있소. 무영련에서 한자리 얻으려는 게 아니라 내 세력을 탐색하기 위해서 한백령이 보낸 게 아니오?"

"......!!"

놀란 혈랑대주가 갑작스럽게 자신의 등에 있던 쌍검을 발검했다.

콰앙

"어억."

"크윽."

그와 동시에 근처에 있던 무영문의 고수들이 튕겨져서 날아갔다. 쌍검에서 흘러나온 시뻘건 기파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었다. 혈랑대주가 매섭게 살기를 발출하자, 그의 무공수위는 급격히 올라갔으며 검에 염기(炎氣)가 강렬하게 감돌았다.

쌍검에 맴도는 저것은 분명한 검강(劍罡)!

검마가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화신류(火神流)의 초절정고수를 만나게 되어 영광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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