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64 암천향(暗天鄕) =========================================================================
나는 먼저 내 삼보절기에 있는 약점을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무영검제와 겨룰 때 나는 언뜻 팽팽하게 겨루는 듯 했지만 결국 삼보절기의 헛점을 찔려서 치명타를 맞고 말았다. 내가 전욱의 사도로서 얻은 권능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것이다.
' 아냐. 그건 삼보절기의 약점이 아니야. 내 약점이야.'
진소청은 물론이고 삼보절기를 완성한 고수들은 하나같이 내게 '정확함'을 요구했다. 삼보절기는 궁극의 무공 중 하나지만 내 숙련도가 미숙하기 때문에 헛점에 노출된 것이고, 그건 호흡이 정확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앞으로도 실전속에서 미친듯이 삼보절기를 시전하며 숙련도를 높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삼보절기의 개선점을 생각해서 약 한 시진동안 연습하다가 다음으로 넘어갔다.
"지주명왕!"
의식해서 외치며 손가락에 힘을 모아서 이청운이 복원해내고 교주가 가르쳐준 지주명왕의 요결대로 내공을 옮겼다. 느릿하게나마 지주명왕이 펼쳐지며 손가락에서 그물같은 경기가 뻗어나갔다. 기의 집중력이 부족해서인지 강기는 밀집되지 않았다.
타당
그렇다 해도 내 가공할 내력이 담겨있어서인지 야외연습장 한켠에 금세 삼 장 크기의 상흔이 생겨났다. 나는 그 파괴력을 보고도 씁쓸해져서 주먹을 말아쥐었다.
"너무 어설퍼..."
성취로 보면 이제 고작 이 성이 될까말까였다.
교주나 독고준, 이청운이 사용하던 지주명왕은 이 정도가 아니었다. 자신이 품고 있는 천령단의 무지막지한 힘을 마지막 한방울까지 남김없이 끌어내어서 광대한 범위에 퍼붓는 섬멸기였다. 하지만 나는 교차형태를 만드는 것에 그칠 뿐 제대로 지주명왕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지주명왕을 제대로 쓸 수 있다면 잡졸들을 상대할 걱정이 없었다. 지주명왕은 상위절학에서는 약간 격이 떨어지지만 내공의 효율성이 매우 높아서 대량학살에 특화된 무공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주명왕의 요결을 다시 한 번 연습하며 다음 차례로 넘어갔다.
다음으로는 역천보륜이었다. 나는 이 무공의 특징을 머릿속에서 되새겼다.
역천보륜은 상대방을 끝까지 추적하는 유도형 공격!
섣불리 역천보륜에 정면으로 맞서려 하다가는 상대방은 끈끈한 기운에 휘말리면서 크게 손해를 보기 일쑤였다. 더욱이 하수가 맞게 되면 반격의 여지가 사라져 버리는, 철두철미하게 승리를 위해 만들어진 무공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주가 이청운에게 역천보륜을 시전했을 때 이청운은 맞상대하지 않고 뇌신지혼으로 회피부터 했던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무조건 선수를 제압할 수 있게 해주는 괜찮은 무공이다. 나는 역천보륜 또한 대성하면 천하에서 손꼽히는 고수가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역천보륜을 막상 펼쳐보려 하자 한숨이 나왔다.
"... 원리와 요결만 알고있을 뿐 너무 어려워서 못 펼치겠다..."
이것도 삼보절기같은 류였다. 뛰어난 오성을 갖고 어려운 깨달음의 단계를 여러 번 넘어야 제대로 쓸 수 있는 무공! 나는 별 수 없이 역천보륜도 기억을 공고히 하는 느낌으로 대충 수련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잔공운요.
구십구합리귀.
오행강기.
칠성폭뢰지.
여의조령.
나는 나머지 무공도 하나같이 절세비학이지만 제대로 수련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깨닫고 좌절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삼보절기보다 어렵다고 단언할 수 있는 건 없었지만 죄다 최상급의 오성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익히기 위해서는 삼보절기를 익힐 때 이상의 개고생이 필요할 게 분명하다.
' 아, 하지만 이건 어쩌면...'
나는 이틀이고 사흘이고 내내 틀어박혀서 팔대가능성을 되짚어보다가 뭔가 감이 오는 걸 느끼고는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칠성폭뢰지(七星爆雷指)!
이것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으나, 뇌신류 종사 이청운이 뇌신류의 자부심을 담아서 유독 뇌신류 무공에 가깝게 만들어놓은 칠대절학의 가능성이었다. 그래서인지 조금 빡세게 파고들다보니 뇌신류 고수 특유의 감이 칠성폭뢰지에 친근감을 느끼게끔 했다. 나머지 무공은 칠대절학의 순수성을 가능한 한 훼손시키지 않았다면 이건 뇌신류 무공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패도적이고 강인했다.
사용법도 비교적 단순했다. 현천오신결과 진무칠절경을 합친 무공인데 거기에 뇌신류의 뇌신권 요결을 섞은 것 뿐이다. 단지 고급운용으로 갈수록 복잡해져서 그렇지 기본적인 파괴력을 내는데는 그리 큰 노력이 필요하진 않았다.
나는 칠성폭뢰지를 운용해서 앞으로 검지손가락을 펼쳤다.
콰광!!
콰광!
"우하하핫!!"
칠채(七彩)가 엉긴 번갯빛 광선이 손 끝에서 발사되는 느낌에 신이 났다. 더욱이 지력에 부딪힌 것은 크게 폭발해서 날아가 버렸다. 다른 건 둘째치고 본격적인 강기류 무공을 사용하는 감각은 언제 느껴도 신이 나는 것이다. 나는 칠성폭뢰지가 나와 맞다는 느낌이 들어서 열심히 칠성폭뢰지를 써댔다.
그리고 무공수련을 대략 열두 시진동안 쉴새없이 하고 나자 지치는 걸 느끼고 잠시 쉬었다. 명상을 하는 동안에는 천우진이 가르쳐준대로 축기의 요령으로 영력을 쌓음과 동시에 이혼대법과 태평요술의 기초능력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했다. 수련을 시작하려고 마음먹으니 할게 태산처럼 많았다.
나는 그렇게 보름 동안은 수련에 미쳐서 지냈다. 그리고 보름을 넘어섰을 때 이제는 칠대절학 되짚기가 끝났다고 생각하며 태평요술에 제대로 입문하기로 마음먹었다.
' 태평요술의 입문을 위한 기초영력은 준비됐어.'
기초가 되어있으면 설령 재능이 좀 부족해도 성취도에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법이다. 나는 긴장하며 머릿속에서 태평요술의 정보를 찾아내서 기초수련법을 넘어선 초급술수 수련법을 찾아내었다.
태평요술이란 궁극으로 가면 천후마저 조종할 수 있는 대라신선의 술법이었다. 단 천신경처럼 처음부터 대라신선 전용으로 나온 술법은 아니고, 일반 술법사도 익힐 수 있는 술종(術宗)이었다. 그래서 세상에는 나 뿐만이 아니라 태평요술을 익히고 있는 술사들이 아마 꽤 있을 것이다. 이 술법은 재능과 숙련도에 따라서 위력이 극명하게 갈리는 종류였다.
태평요술의 근본은 환술(幻術)이었다. 나는 환술의 기본술수 중 하나인 인식을 속이는 술수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오호, 쉬운데?
기초술수는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다 내 기초영력이 받쳐줘서인지 이틀 정도가 지나자 웬만큼 감을 잡을 수가 있었다. 나는 자신감이 생겼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태평요술의 기초에 속하는 18가지 술법을 터득하기 위해 기억을 뒤지고 또 뒤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 기초가 쉽다고 좋아할 게 아니잖아!'
태평요술의 기초에 있는 18가지 술법을 숨쉬듯이 완벽하게 쓸 정도가 되어야 중급술수에 입문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부터는 난이도가 현격하게 올라갔다. 언뜻 훑어봐도 결코 일이년 내에는 익힐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기초의 18술법이 그리 대단한 위력이 있는 것도 아니라 그저 길가의 잡도사가 쓸만한 잡술 수준이라서 결코 날로 먹을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씁 어쩔 수 없지..."
나는 별 수 없이 칠대절학과 이혼대법, 태평요술을 번갈아가며 계속 수련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하나가 내 재능으로 평생을 불태워도 익힐까말까한 것들이었지만 일단은 강하게 영혼에 새긴다는 개념으로 접근한 것이다. 어쩌면 이러다보면 상승효과가 일어나서 한층 익히기 쉬워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게 약 두 달 동안 나는 수련에 전념했다. 하루는 수련에 전념하다가 칠성폭뢰지를 쓰고 잠시 쉬던 중이었다.
"소협께선 정말로 대단하시군요."
서문혜의 목소리가 들려와서 그 쪽을 바라보았다. 서문혜는 내게 땀을 닦을 수건을 건네주며 말했다.
"소협의 지금 무공으로도 천하에 상대할 자가 몇 없을 텐데 침식을 잊고 수련하시는군요."
그녀는 문파에 복귀해서 오랫동안 자신을 가꾸어서인지 화사한 외모를 되찾은 상태였다. 원래도 은발에 가까운 백발의 미녀였는데 지금은 아름다운 옷에 새하얀 피부를 지니고 있어서인지 한 떨기 꽃처럼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이미 미호를 좋아하고 있었으므로 그녀의 절세미모에도 그리 감흥을 받지 않으며 대답했다.
"내 힘은 아주 부족하오. 내 적들은 나 정도는 손가락으로 짓눌러 죽일 정도로 강하지."
그러자 서문혜가 자신의 입을 가리며 진심으로 깜짝 놀랐다.
"세상에...!! 그럴 수 있나요? 저는 태어나서 십이율주와 아버님을 제외하고는 소협만큼 강한 고수를 본 적이 없습니다."
"......?"
나는 십이율주가 언급되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기억을 되살리며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 ... 자령언월도(紫靈焉月刀)를 얻으려 했어요.]
[ 자령언월도에는 천하제일(天下第一)의 무공이 숨겨져 있다는 비밀을 입수했기 때문이에요.]
[ 자령언월도의 현 주인은 전(前) 암경무투회의 우승자이자 새외제일인(塞外第一人)이라고 불리는 자예요. 십이율주(十二律主). 그가 자령언월도를 가지고 있어요.]
그렇다. 과거에 서문혜는 자신이 암경무투회에 출전한 배경을 이야기하면서 그 와중에 자령언월도를 얻으려 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리고 전회의 암경무투회에서 우승해서 자령언월도를 가져간 것이 십이율주라고 이야기했던 것이다.
' 아마 십이율주는 처음부터 자령언월도가 엄청난 마도구라는 걸 알아채고 입수하려고 참가했던 거겠지...'
자령언월도는 천하제일의 무공이 숨어있는 장보도 따위가 아니다. 그것은 백련교주가 직접 사도 달기를 귀환시키는데 사용했을 정도로 강력한 마도구로서 칠요에 비견될만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내가 얻으면 좋겠지만 현 시점에서는 자령언월도가 십이율주의 손에 들어가 있으므로 얻기가 곤란한 물건이었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서문혜 당신은 전 암경무투회의 4강까지 출전했었지. 그러면 십이율주를 직접 보았겠군."
"네, 맞아요. 그가 싸우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는 어떤 인물이었소? 혹시 강아지탈을 쓰고 있었소?"
"......?"
서문혜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강아지탈이라니요? 그는 송옥이나 반안에 비견할만한 절세미남이었어요."
"음..."
"암경무투회를 관전하던 모든 사람이 그의 외모를 칭송했지요."
그 놈은 암경무투회에 나왔을 때 맨날 쓰고다니던 강아지 전신탈을 안 썼단 말인가? 그렇다면 나와 대면할 때만 강아지탈을 썼다는 이야기인가?
' 하긴 고려의 이주희도 그 놈이 잘생겼다는 얘기를 했었지.'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할 때 서문혜의 말이 이어졌다.
"그는 모든 적을 일 초만에 쓰러뜨렸던 걸로 기억해요. 그의 무기는 새하얀 섭선이었고요."
"... 섭선? 구절편 아니었소?"
"구절편은 늘 허리춤에 차고 다녔는데 그걸 쓰는 일은 없었어요."
"......"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암경무투회에 출전하는 자들은 대개 절정고수거나 초절정에 진입한 자들이며, 일개 무림인의 수준에서는 엄청나게 높은 수준의 대회이다. 그러나 이미 절대지경에 올라있는 십이율주 하은천에게는 대회참가자 모두가 애송이나 다름없었을테니 주무기인 은하구절편을 쓰지 않고 섭선만으로 모조리 일 초만에 쓰러뜨렸던 것이리라.
' 십이율주의 무공에 대해 물어봤자겠군.'
절정지경의 고수, 아니 초절정이라 하더라도 절대지경의 고수인 십이율주의 무공특징을 알아낼 순 없으리라.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그동안 그녀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질문하지 않았던 것을 질문했다.
"소저. 이 질문은 무례할 수도 있는데 괜찮겠소?"
"소협께서 제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그런 말씀 하나 못 하시겠습니까? 아무 걱정말고 질문해 주세요."
"4강에서 당신을 쓰러뜨린 자의 무공과 생김새, 인상착의가 어땠소?"
"그... 그건..."
서문혜는 치욕스러운 기억을 떠올리기 부담스러운지 약간 말꼬리를 떨었다. 이래서 내가 그동안 그녀의 무인으로서의 자존심을 건드리기 싫어서 질문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복면을 한 무명의 검사(劍士)였어요."
"검사?"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참여한 자였고 출신을 알 수 없는 검법을 시전하는 자였지요. 그 자 또한 모든 적을 일 초만에 쓰러뜨리며 저와 4강에서 싸웠는데, 저는 삼 초식까지는 버텼으나 결국 검기점혈을 당했습니다..."
"... 엄청난 무공의 소유자군."
나는 그 이야기를 듣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현재 내 수준이 초절정에서도 높은 수준에 이르러 있으나 서문혜를 삼 초만에 검기점혈 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서문혜 또한 절정급 고수인데다가 무영탈혼검법을 높은 경지로 익히고 있기 때문이다. 내공으로 밀어붙여서 삼 초 내에 이기는건 가능할지 몰라도 검법의 조예만으로 삼 초만에 검기점혈을 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나는 의혹이 생겨서 말했다.
"그 정도 검객이면 무림에서도 손꼽히는 최정상의 검호요. 짐작되는 게 없었소?"
"잘 모르겠어요... 그 자의 검은 너무 자유로워서."
서문혜가 생각을 거듭하다가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그 자가 전개했던 삼 초식이 기억나요. 한 번 펼쳐보겠습니다."
"부탁하오."
나는 서문혜를 쓰러뜨린 검객에 대해서 알 필요를 느꼈다. 지금까지는 서문혜가 그저 철없이 굴다가 졌다고 생각했으나 서문혜의 무공실력은 생각보다 높았다. 게다가 그녀를 삼 초식만에 검기점혈 할만한 고수에 대해서는 알아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휘리릭
서문혜는 연무장 중앙에서 자리를 잡고 나를 적으로 가정한 채 초식을 펼쳤다.
일 초식, 이 초식, 삼 초식.
세 번의 공격이 끝났을 때 서문혜가 자신의 검을 거두었다.
"여기까지 끝났을 때 저는 점혈당해 있었어요."
"......"
"소협?"
나는 방금 전 서문혜의 검초를 보자 머릿속에 둔중한 충격을 받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곳에서 뜻밖의 정보를 알아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럴수가..."
틀림없다.
방금 전의 세 초식은 제멋대로 펼치는 듯 했으나, 나는 분명히 저 검술을 알고 있었다.
풍신류(風神流)의 비전검법(秘傳劍法)인 풍마검법(風魔劍法)!
과거 내 전생에서 백련교에서 부교주이자 뇌신류 호법사자로서 풍신류를 노예로 삼으며 지낼 적에, 풍신류 고수들을 상대로 알아냈던 풍신류 무공체계가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풍마검법은 풍신류의 비전검법 중 하나로서 직접 시전하도록 내가 일시적으로 제약을 풀어주며 풍신류 원로들을 종용했던 것이다. 앞으로도 적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 설마...?'
나는 서문혜를 쓰러뜨린 의문의 풍신류 고수가 두 명 떠올랐다. 그리고 둘 중 하나가 유력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나는 이 예측이 맞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검마에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