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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458화 (458/1,615)

00458  암천향(暗天鄕)  =========================================================================

팽조.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산 존재!

본격적인 신격을 제외하면 그보다 장수한 자는 중원대륙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삼황오제 중 오제 전욱의 현손이었으며 요순시대부터 주(周)나라 초기까지 8백여년을 살았다고 한다. 문제는 나는 그가 영락없이 죽었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살아있었다는 점이었다.

어찌나 어이가 없었던지 지금도 기억이 났다. 과거 수기공양의 축복을 받을 때 남화노선이 언짢아서 남화노선을 제외하고 소환해달라고 하자 팽조가 나타나서 말했었다.

[ 나는 팽조(彭祖)다.... 나는 아직 살아있으니 네게 축복을 내릴 수 없다. 차례를 넘기겠다.]

[ 네? 살아있으시다고요? 팽조 님은 요순시대 사람 아니십니까?!]

[ 나 아직 살아있다. 어쩌라는 거냐...]

[ ......]

그렇다. 팽조는 이미 3천 년은 족히 살아온 것이다. 대라신선의 위(位)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생명체로서의 수명을 유지하고 있는 팽조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존재였다. 정신체가 아니라 육체를 그렇게까지 유지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팽조에 관한 기억을 떠올리다가 전국옥새의 정령에게 물었다.

"이거 정말이야? 팽조가 창힐의 행적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 검색결과는 확실합니다.]

"좋아. 그래서 팽조를 어디서 찾으면 되는데?"

[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파앗

이윽고 시야화면이 전환되더니 이국적인 풍경이 나타났다. 나는 그 풍경이 믿기지 않아서 눈을 부릅떴다.

철컹철컹대며 기괴한 소리와 연기를 뿜어대는 강철로 된 짐승이 바퀴를 달고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철두(鐵頭)가 맹진하는 걸 보니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짐승의 여기저기에는 색목인들이 탑승하고 있었는데 검은 덩어리같은 걸 어딘가에 퍼넣고 있었다. 한참 후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게 짐승이 아니라 일종의 기관장치라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하늘에는 커다란 바람을 둥글게 불어넣은 듯한 거대한 구조물이 둥둥 떠 있었고 거기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 시야가 이질적인 도시로 옮겨가면서 내 놀라움은 더욱 극심해졌는데, 커다란 기둥을 타고 뇌력(雷力)이 이동하고 있었으며 사람들이 번개의 힘을 이용하는 듯 했다. 그리고 도시의 치안을 지키는 듯 여기저기에 총기를 들고 있는 색목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는데 그 총기의 모습은 중원에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덜컹덜컹

그리고 도시의 도로에는 바퀴가 네 개 달린 철덩이가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며 이동하고 있었다. 나는 이 이질적인 도시의 풍광을 지켜보며 여기가 어딘지 짐작할 수 있었다.

"여긴... 서역인가?"

[ 그렇습니다. 목표가 위치한 대영제국 총독관저로 이동합니다.]

슈우욱

시야가 빨려들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웬 고귀해보이는 복장을 입은 색목인들이 있는 화려한 건물의 내면으로 계속 침잠해가던 시야가 지하의 어둠에서 한참을 헤매었다. 시야가 다시 드러났을 때는 광활한 유적 사이사이로 두터운 옷을 입은 괴인들이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들은 바깥세계의 복장과는 명백히 다른 제사의식 복장을 하고 있는 듯 했다.

괴인들은 유적 사이에서 뭔가 주문을 외우고 있는 듯 했다. 그러더니 괴인일당 중 한 명이 흠칫하고 놀라더니 손을 내저었다. 그건 명백히 고대의 중원어였다.

"전국옥새를 어떤 놈이 쓰는 거냐? 건방진..."

파앗

시야는 거기서 끝났다. 전국옥새의 정령이 현실로 되돌아온 나에게 말했다.

[ 죄송합니다. 준 관리자급의 정지명령이 내려져서 탐색을 중단합니다.]

"......"

[ 재탐색을 하시려면 권한설정을 다시 해 주십시오.]

나는 즉시 알아챌 수 있었다.

' 방금 그 괴인이 팽조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팽조는 현재 서역으로 건너가서 대영제국 총독관저의 지하에 있는 모양이었다. 지하라고 하기도 뭣한게 그곳은 술법으로 만들어진 이계(異界)로 보였다. 팽조가 왜 거기에 있는지는 둘째치고 위치를 알아낸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정령에게 질문했다.

"권한설정은 어떻게 하지?"

[ 준 관리자보다 권한이 우위에 있음을 인증해주시면...]

그 때였다.

정령이 갑자기 몸을 뒤틀면서 빛을 뿜어내더니 터져 버렸다.

퍼펑

"......!!"

나는 놀라서 뒤로 피했으나 어차피 환영이라서 위해는 없었다. 정령은 잠시 후에 허공에서 재생성되더니 내게 말했다.

[ 준 관리자로부터 전시안능력의 일시폐쇄를 명 받았습니다. 사용자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뭐?!"

나는 혹시나 해서 전시안을 또다시 발동시키려 했다. 하지만 정령은 묵묵부답으로 전시안을 끌어올려주기는 커녕 가만히 떠다닐 뿐이었다.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제갈사가 말했다.

"팽조라는 놈이 전국옥새의 준 관리자였던 모양이군. 놈이 선수를 쳐서 전국옥새의 검색기능을 닫아버린 거야. 더 이상 자신을 찾아낼 수 없도록."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전국옥새는 진시황 시대에 소호금천이 소환되어서 만든 거잖아. 어떻게 팽조가..."

"팽조의 출신성분을 잊어버린 거냐? 그는 삼황오제 전욱의 현손으로서 날 때부터 대라신선에 버금가는 권능을 지니고 태어났다. 신의 직계후예란 말이지. 소호금천에게 잘 얘기해서 전국옥새의 권한을 받아가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었을 거다."

"......"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렇다면 진시황이 전국옥새를 만들 때 그 자리에는 창힐과 팽조가 동석(同席)했다는 의미겠군."

"바로 그거야. 본체인지 화신인지 변장인지는 모르겠지만 놈들은 전국옥새에 크게 관련되어 있었던 거다."

제갈사가 갑자기 낄낄댔다.

"그나저나 일났구만. 전시안을 써먹을 일이 무궁무진한데 하필이면 팽조한테 걸려서 닫혀버렸어."

"으으."

나는 짜증이 났다. 혹시나 했는데 창힐을 찾아내는 임무의 난이도가 미친듯이 뛰어오르는걸 느꼈기 때문이다.

"그럼 서역 대영제국까지 가서 팽조를 찾아내고 놈한테서 창힐의 행적을 알아내야 하는거냐? 진짜로?"

"글쎄다. 내가 팽조라면 이미 행적을 감추고 은둔했겠지. 몇 배는 더 어렵겠는데."

"빌어먹을!!"

나는 직감했다. 이대로라면 십 년 내에 창힐의 행적을 찾아내는 건 무리다! 유일한 단서인 팽조를 찾아냈지만 그 놈이 은둔해버리면 이도저도 아닌 것이다. 내가 크게 당혹감을 느끼자 제갈사가 말했다.

"백웅. 달리기 잘 하냐? 일단 되든 안되든 대영제국에서 단서를 얻어야지."

나는 그 질문에서 앞으로 다가올 개고생의 서막을 느꼈다. 나는 혹시하는 생각에 말했다.

"설마... 서역까지... 뛰어가라고?"

제갈사가 킬킬 웃었다.

"크크. 네 녀석은 뛰어서 남만도 가고, 고려도 가고, 아라사제국도 가고, 몽골초원도 일주했는데 이제와서 서역이 대수냐? 좋은 기회니까 여행이라도 갈 겸 서역까지 한번 가 보는 거다."

"......"

진심이다! 진심으로 내가 뛰어서 서역까지 가기를 원하고 있었다. 나는 오래 뛰는 걸 생활처럼 했기에 그렇게 큰 부담감은 없었지만 앉아서 턱을 괸 채 생각했다. 그리고는 제갈사에게 물었다.

"제갈사. 다 좋은데 대영제국까지 뛰어가려면 거리가 얼마나 되고 그게 어디에 있는 거냐? 혹시 알고 있어?"

"대충은 알고 있지."

제갈사는 안쪽 방으로 들어가더니 웬 낡은 양피지를 꺼내서 펼쳤다.

"이게 바로 마도지식으로 만들어낸 세계 지도다. 귀한 마도구지."

"오오..."

"중원은 여기 있고, 대영제국은 여어기 있다."

나는 제갈사가 짚은 중원과 대영제국의 위치를 비교해보고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너무나 엄청나고 심대한 거리였기 때문이다! 거대대륙을 한번 가로질러서 대륙을 넘어서 섬나라까지 가는 거리였으므로 머리가 핑 도는 걸 느꼈다. 이 정도 거리라면 몽골초원을 달려서 아라사까지 갈때보다 더욱 먼 게 분명했다. 게다가 도중에 사막지형까지 있었으니 머리가 아팠다.

' 제기랄... 너무 멀어...'

내가 할 말을 잃자 제갈사가 피식 웃었다.

"생각보다 오래는 안 걸릴거다. 왜냐하면 네 녀석은 이미 모스크바나 아스타나에 가본 적이 있기 때문이지. 거기에서부터 방향을 잘 잡고 출발한다면 길어도 열흘이면 대영제국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네 녀석은 신법이 무척 빠르니까."

"음... 그렇군..."

"초상기인과 지도, 나침반을 줄 테니 목갑에 넣어서 가져가라. 이혼대법을 써서 네게 독도법과 나침반 쓰는 법을 알려주지."

"고마워."

나는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당장 출발하고싶었다. 십 년이라는 시간이 길어보였으나 창힐같은 존재를 찾기에는 무척이나 빠듯한 시간이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끼고 싶었다. 나는 즉시 출발하려 했으나 문득 생각이 나서 말했다.

"잠깐... 선지자한테 부탁해서 대영제국으로 보내달라고 하거나 근처의 도서관에 보내달라고 하면 되잖아."

제갈사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선지자가 뭐 공짜로 일을 해주는 놈 같냐? 그 부탁 하나하나에 대가가 소모된다. 아낄 수 있는 건 아껴야지."

"음 그렇군..."

"그리고 직접 뛰어서 가다보면 나중에 비등으로 갈 수 있는 선택지도 늘어나니까 그냥 뛰어 가라."

나는 잠시 후 제갈사에게서 물건을 받고는 비등을 써서 곧장 모스크바로 향했다. 모스크바에서부터 대영제국까지 뛰어가는 건 상당한 거리였으나 곧 각오를 다잡고 먼저 나침반부터 보기 시작했다. 나침반을 통해서 서남쪽 방향을 확실히 찾은 후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타다다닷

어차피 내공은 썩어넘치게 있으니 가다가 지치거나 속도가 떨어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눈썹이 휘날리도록 하나의 방향만 보고 계속 달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달린 거리가 이백 리를 쉽게 넘어섰다는 걸 알았다.

' 모스크바에서 대영제국까지는 대략 칠천 리... 미친듯이 뛰어야겠군.'

나는 뛰는 도중에 서역의 각종 도시나 풍광을 볼 수 있었다. 모두가 대영제국같이 크고 번화한 건 아니었고 시골마을이나 농촌도 많이 보였다. 그리고 그런 곳은 중원에 비해서 별로 기술이 발달했다는 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얼마나 뛰었을까? 대략 열 시진을 뛰자 서서히 서역의 발전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사로 보이는 자들이 더러 있기는 했으나 대부분의 병사들이 총을 쓰고 있었으며 여기저기에 강철로 된 이동수단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화약을 인위적으로 사용하는게 꽤 능숙해 보였다.

병사의 숫자는 대명제국에 비해서 그리 많지 않았고 도리어 적은 편이었으나 그들이 들고 있는 총기를 보자 침음성이 나올 정도였다.

' 사정거리 때문에 도저히 창병이나 검병으로는 상대가 안 돼... 기병도 그저 학살당할 뿐이야. 대포를 써야 어떻게든.'

일개 조총처럼 발사 전후의 간격이 길다면 어떻게든 전략전술로 이길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역의 병사들이 쓰는 총은 조총보다 현저히 발달해 있었다. 모르긴 해도 보통 화승총에 비해서 장전시간이 절반도 되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일반 병기를 쓰는 병종이 총병에게 돌격하기 전에 이미 총알에 맞아서 전멸해 있으리라.

물론 저 총병들도 무림의 최절정고수들에게는 큰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총병들이 노릴 수 없을 정도로 현란한 신법으로 휘저으며 총병들을 없애면 되기 때문이다. 특히 백련교 수신류 정도 되는 고수들이라면 대포도 호신강기로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발전속도였다. 이만큼 엄청난 총기를 발달시킨 자들이 앞으로 수십 년 후에는 또 어떤 첨단무기를 내놓을 것인가? 어쩌면 최절정고수조차도 잡을 수 있는 강력한 총기가 출현하는 건 아닌가? 이런저런 걸 생각하니 앞으로 중원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하루 밤낮을 꼬박 달리자 꽤 많이 온 기분이 들어서 인적없는 산에서 야영을 했다. 나는 목갑에서 초상기인을 꺼냈고, 제갈사가 이혼대법으로 강령했다. 제갈사가 말했다.

"좀 많이 온 거 같냐?"

"생각보다 거리가 멀진 않아. 사흘이면 도착할 수 있겠어."

"크흐흐. 내공이 많으니 별의별 짓이 다 가능하군."

"......"

"뭔가 물어볼 게 있는 표정인데."

나는 제갈사에게 물었다.

"제갈사. 서역은 어찌 이리도 발전한 거지? 총기나 강철로 된 마차, 비행선... 이런 건 중원에서는 듣도보도 못한 건데."

"발전이라기 보다는 마도(魔道)에 침식된 거다."

"마도에?"

제갈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소녀 초상기인의 몸으로 불씨를 뒤집으며 대답했다.

"이 서방대륙은 삼황오제의 권능으로 보호받는 권역이 아니야. 당연히 [옛 지배자]의 영향력이 훨씬 더 강력하지. 그렇기에 이족들이 쉽사리 인간에게 간섭할 수 있고, 대마도사의 출현빈도도 높으며, 그들이 받아들이는 이계의 지식이 중원에 비해서 훨씬 농밀한 것이다."

나는 제갈사의 말에 퍼뜩 알아차렸다.

"이 기술이 인간 스스로 발달시킨 게 아니라 [옛 지배자]가 마도사를 통해 전수한 지식이란 말이냐?"

"그런 셈이지. 물론 인간의 지혜로 세워나간 거겠지만 근간은 이족의 지식이다."

제갈사는 싸늘하게 웃었다.

"백웅. 너는 여기 서역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이족을 많이 마주치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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