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57 암천향(暗天鄕) =========================================================================
나는 장령곡에 돌아와서 오른손에 들려있는 화요 간장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 이걸로 칠요 중 세 번째를 얻은건가...'
최초로 얻은 것은 수요 막야였고, 이후에 월요 삼신기의 위치를 알아냈었다. 물론 두 개 모두를 해방한 적은 없었으나 후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나는 언제든 두 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오늘, 칠요 중에서 화요 간장을 내 손에 넣은 것이다.
검집과 함께 봉인되어 있는 적색 보검. 그것이 바로 화요 간장을 처음 보았을 때의 감상이었다. 간장의 검신(劍身)을 살펴보자 보통의 검과 다를 바가 없었는데, 길이로 보면 장검이 분명했다. 조금 긴 단검인 수요 막야와는 대조적이었다.
아쉽게도 화룡신검은 여동빈의 도움으로 목갑에 집어넣는데는 성공했지만, 다시 꺼내려 하니 엄청난 열기가 느껴져서 꺼내지 못했다. 아무래도 화룡신검이 회복되는 상태이기 때문에 더욱 강렬한 화염의 기운이 발출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문득 든 생각에 화요 간장을 한쪽 손에 든 상태로 다시 화룡신검을 꺼내려 해 보았다.
쿠구구구
"됐다!"
나는 탄성을 질렀다. 아니나 다를까, 화요 간장을 쥐고 있자 화룡신검의 가공할 힘이 자연스럽게 중화되는 것이다. 나는 이제야 화룡신검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실험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제갈사가 말했다.
"두 개의 신보를 모두 쓰려면 쌍검술(雙劍術)이라도 익혀야겠군."
"음... 아니 그건..."
제갈사의 말은 일견 일리가 있어보였지만 나는 난색을 표했다. 물론 이대로라면 화요 간장을 들지 않고는 화룡신검을 사용할 수 없다. 두 개의 신보를 모두 사용하는 쪽이 위력이 높은 것도 불문가지다.
그러나 나는 나름대로 무예의 달인이라고 자처하는 바였기에 조심스럽게 소신을 밝혔다.
"... 말이 안 되는 소리야."
"어째서?"
"쌍검술은 일반검술의 연장이 아니야. 그 자체로 독자적인 유파인데다가 뛰어난 재능을 요구하는 무예라서, 뇌신류 검술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제대로 익힐 수가 없다."
이게 문제다.
쌍검술은 단순히 칼을 두 개 휘두르는 무예가 아니었다. 좌수와 우수의 균형을 이루면서 공수전환을 형성하는 과정이 일반적인 검술이나 일도류와는 완전히 달랐다. 쌍검술의 달인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내가 익혔던 검술을 싸그리 잊어버릴 정도로 혹독한 수련이 필요할 게 분명했다. 제갈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꾸했다.
"뭐 그건 내가 알 바 아니고... 지금 화룡신검에게 말을 걸어보는 게 어떻냐?"
"말을 걸어보라니?"
"화룡신검에 검령(劍靈)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전국옥새의 신기를 빌려서 검령에게 접촉해 봐."
"알았어."
확실히 그렇다. 상관가 지하에 봉인용으로 쓰였을 때도 검의 형태는 사라졌을지언정 검령은 계속해서 남아있었다는 언급이 있었다. 그리고 그 검령과 이야기를 해 봐야 화룡신검을 제대로 쓸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우우웅
나는 신기를 끌어올려서 미간에 모으고 화룡신검에 정신을 집중시켰다. 그러자 희미하게 염파가 화룡신검 내부로 새어들어갔고, 거기에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다는 걸 느꼈다. 마치 알처럼 갇혀있는 그 정신체는 내가 계속해서 대화를 걸었지만 듣지 않겠다는 듯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나는 접촉시도를 끝내고 제갈사에게 말했다.
"나를 무시하는건지 잠들어있는건지 모르겠어."
"흠... 화룡신검의 검령이 가사상태에서 회복중이라서 그럴 확률이 높겠군."
"가사상태라고?"
제갈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패 화룡신검은 수백 년간 봉인에 영기를 소모하면서 신검으로서의 수명이 끝나기 일보직전에 이르러 있었지. 그러다가 갑자기 화요 간장의 막대한 화기가 밀려들어와서 화룡신검의 힘을 회복시켜 준 거다. 당연히 조금이라도 더 자기자신을 회복하려고 영체를 가사상태로 만들어서 힘을 흡수하고 있겠지."
"언제쯤 깨어날까?"
"잘 모르겠다만 일단 갖고 있으면 언제가 되었든 간에 화룡신검 쪽에서 먼저 네게 말을 걸어올 거다. 그 때까지는 화룡신검을 사용하는 걸 자제해."
"알았다."
나는 화룡신검에서 시선을 돌려서 화요 간장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금 봉인이 풀린 상태 맞지?"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냐? 당연히 전욱이 자기 입으로 말했는데 봉인이 해방됐겠지."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내 힘이 별로 강해진 것 같지 않아서..."
내가 망설이며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화요가 전욱의 허락으로 해방되어서, 나는 칠요의 주인이 되었다. 하지만 수요든 월요든 간에 해방되는 순간 확실히 힘의 증폭을 느꼈던 반면에 화요가 해방되어서 강해졌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내가 의아해하자 팔짱을 끼며 생각하던 제갈사가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화룡신검의 회복에 힘을 빌려주고 있어서... 라고밖에 추측할 수 없군. 소유주인 네 의지에 따라 자신의 화기를 화룡신검에게 나눠주고 있기 때문에 해방된 힘을 내뿜지 않는게 아닐까?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가..."
"아무튼 이걸로 전국옥새, 화룡신검, 화요의 주인이 되었군."
제갈사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제 해야할 일은 명백하지?"
"그래."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봉선의식으로 수요를 해방한다!"
화요의 주인이 되었으니 이대로 수요까지 해방하게 된다면, 나는 전생 중에 최초로 칠요 두 개의 주인이 될 것이다! 칠요 두 개를 얻어서 얻게되는 힘을 생각만 해도 짜릿했다. 그러자 제갈사가 심유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물론 그게 목표지만 현재 상태라면 위험요소가 있다."
"창힐을 십 년 내에 찾아내는 임무 말이냐?"
"그것도 있고, 삼황오제가 과연 칠요 중에서 두 개씩이나 한 사람의 소유로 하는 걸 허용할지의 문제다."
"......"
"이대로 봉선의식을 치러도 수요의 해방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나는 제갈사의 말에 침음성을 흘렸다.
' 맞아. 여와는 허락해주지 않을 거야.'
내가 알기로 목요 해인은 이미 십이율주의 손에 의해 해방이 풀린 상태이다. 이 상황에서 내가 화요의 봉인을 풀었으니 수요까지 풀리게 되면 세 개의 칠요가 해방된 채 세상에 나타난 셈이 된다. 이 경우 여와가 얼마나 신경질을 내면서 반대를 하는지는 이미 체험해본 바가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오제보다는 삼황의 끗발이 쎈게 틀림없다. 여와가 크게 반대한다면 오제 전욱도 그쪽의 의견을 따르지 일개 필멸자 사도인 내 의견을 듣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나는 난제에 부딪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제갈사가 손깍지를 끼며 말을 이었다.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네가 전욱의 임무를 빠른 시일 내에 성공적으로 수행해서 능력을 인정받고, 그 공적을 이용해서 전욱부터 설득하는 거다. 창힐을 찾아낸 공적이 있으니 칠요를 두 개 가져도 되지 않냐고 우겨보는 거지."
"될까?"
"나도 모르겠다. 나같은 마도사 따위가 어떻게 삼황오제의 의중을 읽을 수 있겠냐? 단지 이 방법이 제일 확률이 높다는 거지."
약간 말을 얼버무린 제갈사가 손가락을 들며 말을 이었다.
"또 하나는 칠요를 해방시켜야만 상대할 수 있는 강대한 적을 우리 손으로 출현시키는 거다."
"......?"
나는 순간 제갈사의 말이 언뜻 이해되지 않아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무슨 말이지? 제갈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쉽게 말하자면 지상에서 깽판을 치는 강력한 필멸자 적수가 등장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삼황오제는 인과율때문에 직접 나서지 못하겠지. 그래서 그 대항마로서 전욱의 사도인 너를 내세우게 되고, 자연스럽게 칠요의 추가해방을 인정받는다는 논리다."
그런 말이구나!
나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이해됐어. 하지만 그렇게 운이 좋을 수가 있을까? 그런 놈들이 갑자기 나타날 리는 없잖아."
"흐흐. 너는 이미 백우선을 통해 그런 놈들이 있다는 걸 직접 보지 않았느냐."
"......"
순간 나는 제갈사의 발상에 소름이 돋았다. 그래서 깜짝 놀라며 외쳤다.
"미쳤어?!"
"이제 알았나?"
"아니아니 이게 아니라... 네 말은 나인교(螺湮敎)가 등장하게 내버려두잔 말이냐?!"
내가 경악해서 반문하자 제갈사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 정도 적은 되어야 삼황오제가 칠요의 해방을 인정하겠지."
"아니 이게 무슨..."
나는 황당했다.
이건 완전히 주객전도다!
지금 내가 전생하며 칠요를 모으러 다니는 것은 내 힘을 상승시켜서 난세를 평정하고, 나아가서는 이 세상을 지배하는 [옛 지배자]마저 물리치기 위해서였다. 흉신의 사도인 나인교가 등장하는 걸 내버려두는 건 결코 내가 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흉신의 사도가 인간세상을 잠식할 경우 수백 수천만명 단위의 인신공양이 일어나는 건 불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제갈사가 한층 차갑게 웃었다.
"내가 봤을 때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결코 삼황오제가 칠요 중 세 개 이상의 소유를 허락해주지 않을 거다. 두 개만 해방시켜서 갖고 있어도 지랄발광을 할 게 뻔하지. 왜냐하면 칠요의 봉인이 모두 풀린다는 건 [옛 지배자]와의 조약이 해체되면서 신들의 전쟁이 다시 불붙는다는 뜻인데 그 자들이 그걸 원할 리가 없지. 네가 아무리 공적을 모으고 전욱의 발바닥을 핥아준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그럼 강경책을 써야지. 사도는 사도로 상대하는 게 정석. [옛 지배자]의 사도가 꼼수를 써서 발호하게 되면 네 녀석이 그놈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나서면 돼. 그렇게 되면 삼황오제도 울며 겨자먹기로 네 녀석이 칠요를 독차지하는 걸 허락해줄 것이다."
제갈사의 말은 논리적으로 옳았다. 확실히 흉신의 사도집단인 나인교가 정당한 인과율에 따라 나타난 것이었기에, 미래에는 삼황오제가 손도 발도 대보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면 삼황오제를 대신해서 놈들을 막아줄 사도인 나에게 권한을 몰아줄 가능성은 꽤 컸다.
"잘 생각해 봐라. 지금 이 시대는 표면적으로나마 3대세력이 균형을 이루며 외적인 평화를 이루고 있다. 삼황오제가 칠요를 해방시켜 줘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어. 그러니까 이유가 없으면 만들어주자는 거다."
"아니아니... 아니 잠깐만."
나는 제갈사의 꼬드김에 순간적으로 혹했지만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말도 안 돼. 흉신의 사도가 얼마나 강한지는 이미 백우선으로 봤어. 내가 칠요를 해방한다고 해도 그런 괴물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그리고 그런 이유 때문에 나인교가 출범하는 걸 내버려둔다는 건 벼룩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짓이야."
내가 단호하게 거절하자 제갈사는 심술궂은 표정을 지었다.
"흐흥. 현이라면 네게 이런 계책을 전해주지 못할 거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자는 건데 왜 이렇게 삐딱해? 정석만으로 칠요를 전부 해방할 방법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고."
"됐어. 그 얘기는 나중에 하자고."
나는 일단 말을 돌렸다. 아무래도 제갈사는 칠요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적의 세력인 나인교를 나타나게끔 하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 제안에 따를 수가 없었다. 대신에 나는 제갈사에게 말을 꺼냈다.
"그럼 일단은 수요 해방에 바로 뛰어들기보다는 창힐을 찾아내는 임무부터 해야한다는 거군."
"그렇겠지. 십 년이 길어보이지만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니 그것부터 먼저 실천해서 공적을 쌓은 다음, 전욱에게 인정을 받아서 수요를 해방하는 게 이상적이다."
나는 상황을 이해한 후 정신력을 집중했다.
"전국옥새여."
우우우웅
이윽고 전국옥새가 내게 감응하며 전국옥새의 정령이 나타나는 게 느껴졌다. 정령은 어둠 속에서 투명한 네모꼴 창을 여러개 소환했다. 나는 전국옥새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시안으로 사황(史皇) 창힐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라!"
[ 네, 알겠습니다.]
파아앗
별빛이 넘실대는 것 같았다. 전국옥새의 내부에서 어둠과 빛이 휘몰아치며 엄청난 속도로 세계의 정보를 읽어내는 게 느껴졌다. 한참동안 정보를 모으고 있던 전국옥새가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 사황 창힐의 검색결과는 0건입니다.]
"뭐라고?"
[ 관리자의 요청에 의해 편집되었습니다. 관련 검색결과를 보시겠습니까?]
이게 무슨 소리지? 나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옆에서 내 감각을 공유하고 있던 제갈사가 이죽거렸다.
"이럴 줄 알았어. 프나코투스나 리그베다만 못하군."
"제갈사 뭔 소리야?"
"그냥 뭐, 전시안이라는 건 삼황오제의 영역에 펼쳐놓은 편리한 검색체계라는 거다. 기반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좀 귀찮은 개념이니 나중에 설명해 주지."
마도사라는 건 별걸 다 알고 있군.
나는 내심 투덜거리며 말했다.
"창힐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어. 놈의 행적을 알고 있는 자는 없나?"
[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잠시 후 전국옥새가 말했다.
[ 유사 검색결과 1건 존재.]
"그게 누구냐?"
파앗
이윽고 염상으로 선명하게 그 모습이 떠올랐다. 그 모습은 내가 익히 본 적이 있는 것이었으므로 나는 황당한 심정으로 중얼거렸다.
"팽조(彭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