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53 암천향(暗天鄕) =========================================================================
금강불괴!
나는 그 단어를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내외공(內外功)을 불문하고 무공에 있어서 절대적인 호신의 경지를 의미했으며, 무림의 전설 그 자체로 알려져 있었다. 혹자는 매우 단단하고 강력해보이는 외가기공을 가리켜 금강불괴라고 찬탄하기도 했으나 그 의미는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진정한 금강불괴란 기본적으로 강기경의 공격을 피륙의 상처로 막아낼 수 있으며, 이기어검과 같은 의념절기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로 대적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이게 가능하다면 수단이 어찌되었든 간에 금강불괴지신이라 칭하도록 무림의 최절정고수들 사이에서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져 있었다.
이런 묘한 합의가 이루어진 이유는 바로 무림에 금강불괴로 추측되는 고수가 아직껏 거의 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공을 익히는 자들에 있어서 하나의 극점을 숭앙하고 경외하는 마음가짐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보는 고수들도 적지 않았다.
즉, 환상의 경지!
나는 어이가 없어서 검마에게 말했다.
"금강불괴라니요? 삼황오제의 사도가 되었다고 바로 그런 힘을..."
"자네가 장기자랑을 하지 않은게 가장 큰 증거지."
내 말에 대꾸한 검마는 슬며시 고개를 까닥하며 무영검제를 쳐다보았다.
"사숙. 어찌 생각하십니까? 저는 백웅이 금강불괴라 생각하는데 사숙께서도 동의하시는지요?"
그 말에 무영검제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 인정한다."
"......!!"
"방금 전의 공격은 내 미숙함 때문에 일격필살의 위력이 담겨 있었다. 인간이라면 그 공격을 받은 순간 탈혼검기에 십자(十字)로 몸뚱이가 갈라진 후 수십조각으로 터져나갔을 것이다. 그런데도 백웅은 그인 상처로 끝났다. 저건 틀림없는 금강불괴지신이다!"
무영검제의 말을 들으니 의심할 수가 없었다. 이 두 사람이 공증한 이상 그 누구도 다른 해석을 내어놓을 수가 없으리라. 그게 가능하다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백련교주나 십이율주, 무사시 정도일 것이다.
잠시 후 나는 떨리는 손으로 내 베인 상처를 다시 손가락으로 훑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예 베인 흔적조차 남지 않고 상처가 아물어 있었다.
"헉."
"무시무시하군. 거기에 재생력까지 갖춘 건가..."
검마는 진정으로 놀라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무영검제의 탈혼검기는 무려 백여 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초절정고수가 연마한 절세검기였다. 전력을 다한 검강을 맞으면 아무리 강대한 내공으로 호신강기를 끌어내어도 부상을 입거나 죽는게 보통이었다. 그런걸 맞고 한 식경도 되지 않아 멀쩡해지다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제갈사가 히죽 웃었다.
"야, 백웅."
"왜?"
스르릉
제갈사가 장검을 꺼냈다. 나는 설마하는 생각이 들어서 놈을 쳐다보았다.
"한번만 배때기를 후벼보자."
"미친 새끼야!"
나는 깜짝 놀라서 욕지기를 내뱉었지만 제갈사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왜? 금강불괴에 재생력이라니 어느정도일지 시험해봐야 한다고. 그래야 내구도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볼 수 있고 사망확률을 낮출 수 있지 않겠냐? 대충 두세 번만..."
"개소리를 그럴듯하게 하는군. 관둬!"
나는 지금껏 제갈사와 호흡을 잘 맞춰왔던 것도 잊을 정도로 황당함을 느꼈다. 보통의 무인이라면 방금 전의 금강불괴를 보고 거대한 감흥을 느끼거나 감동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저 미친 마도사는 내 배를 후벼서 금강불괴의 성능부터 알아보고싶어하는 것이다. 지금껏 내 동료로 활동해서 잘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역시 저 놈은 진짜배기 광인이었다.
검마도 질린 눈으로 제갈사를 잠시 쳐다보다가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백웅. 제갈사의 말도 틀리지는 않네. 다만 칼날으로 배를 후비는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면 돼. 자네 스스로 부상을 내서 알아보는건 나쁘지 않다 생각하네."
"으음..."
"간단하게 시험해 보게."
검마가 나를 설득하자 나는 침착함을 되찾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다가 나 자신의 검을 들어서 팔뚝에 대고 긋기 시작했다.
' 호신강기를 끌어내지 않은 상태로 아무런 기를 싣지 않은 검을 내 육체에 그으면...'
주륵!
첫 번째 실험을 시작하자 역시나 피가 흘렀다. 그러나 꽤 힘을 주어서 검날을 눌렀는데도 칼날이 반 치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마치 몸이 탱탱하면서도 유연한 무언가로 바뀌어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근육도 전혀 베이지 않는 느낌이라서 나는 전율했다.
' 그럼 이번에는 검에 기를 실어서...'
역시나 피는 흐르지만 똑같은 느낌이다. 상당한 내공을 실어서 검기성강을 이룬 채 팔뚝을 베자 좀 더 깊이 베이긴 했다. 하지만 역시나 일정수위 이상은 베이지 않았으며 팔이 불구가 될 정도의 부상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 정도는 내 의술로 응급처치를 하면 얼마든지 전투가 가능한 수준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말없이 실험을 끝낸 후 한숨을 쉬었다.
"후우... 대단한 능력이군요."
"그렇고 말고. 설마 진짜 금강불괴를 살아생전 볼 줄이야..."
경탄하는 눈빛은 검마 뿐만이 아니라 무영검제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것이 내가 금강불괴지신을 얻은 순간 전투력이 급상승했다고 봐도 무방했기 때문이다.
내 전반적인 무공의 깨달음이나 초수의 위력이 늘어나지 않았다 해도, 상대방의 의념절기를 찰과상으로 막아낼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엄청났다. 상대와 비슷한 실력이라면 결코 질 수가 없다는 뜻이며, 뿐만아니라 동귀어진을 하면 무조건 내 쪽이 유리하게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죽을 위험도 크게 감소했으므로 이렇게 좋은 축복은 정말로 보기 힘들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그 때 옆에서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고 있던 천우진이 말했다.
"정말 무림인들이란 자기 편한대로 해석하는군."
좌중의 시선이 천우진에게로 향했다. 천우진은 바위에 걸터앉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한가지 묻겠는데, 이 중에서 진짜 금강불괴의 소유자를 본 사람이 있소?"
적어도 나는 없다.
"큭큭."
제갈사도 그저 실없이 히죽웃으며 고개를 흔들어 아니라는 뜻을 명백히 하고 있었다. 내가 슬며시 검마와 무영검제에게로 시선을 향하자, 그들은 약간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흠... 소림사 신승(神僧)이 그 경지에 이르렀다는 소문은 들은 적 있네."
"강기일식(?氣一息)이나 금종조의 달인까지는 본 적이 있네만... 금강불괴라 할만한 자는..."
천우진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었다.
"그것 보시오. 지금 당신들 눈에 보이는 백웅의 능력이 무림인들이 생각하는 금강불괴와 가장 비슷해 보이기 때문에 거기에 끼워맞춘 것 뿐이잖소? 삼황오제 전욱이 준 능력이 금강불괴일지 어떨지는 현재 천하의 그 누구도 모른다는 게 정답이겠지."
"모른다고? 백웅이 지닌 능력이 금강불괴가 아니란 말인가?"
"그런 말은 하지 않았소. 단지 금강불괴처럼 보이는 다른 능력일 가능성도 높다는 거지."
"흐음."
천우진의 말이 그럴 듯 했다. 전욱 본인이 내게 금강불괴 능력을 줬다고 확실하게 얘기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제갈사가 끼어들어서 말했다.
"자자, 네가 사도로서 얻은 능력이 뭔지는 어차피 곧 알 수 있겠지. 지금은 시간을 아껴서 움직여 볼까."
"그러자."
우리는 곧 해산했다. 검마와 무영검제는 원래 무림인이니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야 했다. 또한 내게는 천우진을 더 붙잡아둘 명분이 없었을 뿐더러, 칠요를 보러 같이 가자는 내 제안에 천우진은 단호하게 말했다.
"싫소."
"칠요에 흥미가 있다 하지 않았소?"
"흥미가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위험하지 않은 선의 이야기요. 당신들은 이제 보나마나 화요의 수호자와 한판 뜨러 갈텐데 그렇게 위험한 싸움을 내가 왜 해야 하오? 공짜로 목숨걸고 싸워달라 이 말인가?"
"......"
"사람 공짜로 부려먹으려고 좀 하지 마시오."
매몰차게 말한 천우진은 이내 축지법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천우진의 말이 영 틀린 것도 아니라서 입맛을 다셨다. 천우진은 현 시점에서 영입할 수 있는 동료중에서 가장 능력이 출중한 편이라서 여기저기에 써먹고 싶었지만 그리 쉽게 다룰 수가 없는 것이다.
제갈사가 말했다.
"빨리 가자. 사전작업을 해두는 편이 좋으니까."
"사전작업?"
"눈과 귀를 심어둬야 하지 않겠냐."
제갈사의 말 뜻이 뭔지는 즉시 알 수 있었다. 이윽고 태산의 요새에 도착한 나와 제갈사는 미후왕의 술법으로 혼절해 있는 지휘관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에게 이혼대법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이혼대법으로 백을 가져왔으니 앞으로 내가 원할 때 그들의 시청각을 훔쳐보거나 행동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 또한 이게 이혼대법의 실전경험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제갈사와 함께 장령곡으로 돌아왔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제갈사에게 물었다.
"제갈사. 지금 당장 화요를 가져와도 문제 없을까?"
화요의 결계가 사라진 이상 화요를 가지고 오는 건 여반장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그냥 비등을 써서 왕복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번에 섣불리 행동하다가 화요의 화기에 몸이 불타버린 일이 있었으므로 책사에게 의견을 묻는 중이었다.
"흐흐. 그 질문을 할 거라고 생각했지."
덜컹!
발판을 밟아서 마수의 가죽을 기계장치로 벗겨내던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일단 기다려 봐라. 좀 더 확실한 기회를 얻으려면 준비를 확실히 하고 가야 하니까."
"무슨 뜻이지?"
"백웅. 기억나지 않냐? 화요의 봉인지에 숨겨져 있는 또 하나의 보물이..."
"아!"
나는 제갈사의 말에 문득 깨달으며 외쳤다.
"용화수!"
용화수!
그것은 과거 내가 얻었던 정보 중의 하나였다.
[ 분명히 교주는 용화수를 찾아달라 했어. 나는 그 날 이후부터 백련교에 자유 출입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고 호법사자들과도 데면데면하게나마 이야기를 틀 수 있었지. 그리고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용화수의 존재를 찾기 위해서 여행을 했네.]
[ 교주가 말한 용화수란, 바로 미륵이 강림할 수 있는 신력(神力)을 머금은 고대 시원(始元)의 품종을 말하는 것일세. 부처라고 불리는 신적인 존재가 강림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네.]
[ 용화수라는 건 화요(火曜)의 비보 곁에서 화기로 자신의 씨앗을 데우며 억겁의 세월을 기다리는 존재라고 하네. 즉 화요의 비보가 숨겨져 있는 장소를 찾아낸다면 용화수 또한 손에 넣을 수 있겠지.]
천하오대의원의 한 명인 천상괴의 동방무결이 털어놓았던 정보! 그것은 화요의 비보 옆에 숨겨져 있는 용화수에 관한 것이었다.
' 흠, 용화수라...'
나는 지금까지 화요의 입수난이도가 너무 높아서 고배를 마시는 중이었으므로 용화수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나는 용화수에 대한 정보를 머릿속으로 정리하다가 제갈사에게 말했다.
"제갈사. 내가 봤던 화요의 도원(桃園)에는 복숭아나무만 보일 뿐 용화수는 보이지 않았어. 그 근처의 땅에 용화수가 묻혀져 있을 거란 말이냐?"
"아마 그렇지 않을까?"
덜컹
다시 한 번 발판을 눌러서 가죽을 잘라내던 제갈사가 말했다.
"그래서 기다려보라는 거다. 화요만 갖고 나오는건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그래서는 용화수까지 얻을 수가 없어. 게다가 전욱이 화요를 갖고나오는 순간 결계를 회복시켜버리면 용화수를 얻을 기회가 까마득하게 멀어지게 되는거지."
"그렇군..."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점 때문에 침음성을 흘렸다. 화요를 얻는 김에 용화수까지 얻어내야 최대이득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제갈사는 가죽 자르는 걸 그만두며 장치에서 일어서서 말했다.
"용화수가 어떤 능력을 지닌 신물(神物)인지는 모르겠지만, 백련교주가 소교주의 괴질을 치료하고자 용화수를 찾아다닌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다. 교주도 칠요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텐데 칠요보다는 용화수를 찾았다는 점에 주목해야하지 않을까?"
나는 제갈사의 말에 퍼뜩 생각나는 게 있어서 말했다.
"용화수도 흑백련처럼 저주를 치료하는 능력이 있을거란 말이냐?"
"십중팔구는. 백련교주는 박식한 마도사이니 어딘가 책에서 전승을 읽고 용화수를 찾으려는 생각을 했을 거다. 그리고 동방무결에게 알아내라고 시킨 건 용화수의 위치일 뿐 그 능력에 대해서는 요구하지 않았잖냐."
제갈사는 당연하다는 듯 팔짱을 꼈다.
"백련교주는 처음부터 용화수가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다 알고있는 상태에서 동방무결을 내보냈다는 소리지. 즉 천하에서 용화수의 능력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백련교주다. 능력을 알고 있다면 채집하기 위해서 뭘 해야할지도 잘 알고 있겠지."
"흠..."
"해야할 일이 눈에 딱 보이지 않냐?"
나는 제갈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교주가 알고 있는 용화수의 정보를 최대한 알아내야겠군."
"먼저 용화수가 뭔지부터 알아내야 그걸 단시간에 찾아내는 방법을 궁리할 수 있겠지. 단순히 토둔(土遁)으로 화요도원의 땅을 갈아엎는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야."
용화수의 정보를 알아내려면 교주와 교섭해야 한다. 나는 뜻밖에 생겨난 전제때문에 생각에 골몰했다.
' 이런 식으로 교주와 엮이게 될 줄은...'
나는 교주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그와 섣불리 동맹하거나 그의 휘하로 들어갈 수는 없다. 교주가 원하는 무생노모의 법문, 그리고 진공가향이란 길이 너무나 험난하고 위험해서 천계나 옛 지배자에게 크게 데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칠요를 얻어서 교주를 제어할 정도의 능력이 없으면 그와 연수해서는 안 된다. 19번째 생과 똑같은 결말이 날 가능성이 컸다.
제갈사가 히죽 웃었다.
"... 그렇지만 당장 교주에게 뭔가 갖다바치는 것만으로 고급정보를 얻기에는 네녀석이 가진 보물이 한정되어 있지. 여기까지 오는데 공양의식에 꽤 많이 갖다바쳤잖냐."
"크윽..."
뼈아픈 지적이었다. 나는 원래 보물이 많아서 주체못할 정도였으나 대라신선, 공양의식, 천우진 등등에게 퍼주느라고 꽤 많이 사라져 있었다. 지금은 꼭 필요한 것을 제외하면 빈말로라도 그리 많다고 할 수 없었다. 게다가 백련교주는 음흉한 너구리같은 작자였으므로 자칫하다가는 갖고있는 걸 다 털릴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나는 한동안 고민하다가 묘책이 생각나지 않아서 제갈사에게 의견을 구했다. 그러자 제갈사가 말했다.
"방금 말은 그렇게 했지만 교주와 접촉하는건 너무 위험한 일이지. 그렇다면 용화수에 대해 알고 있는 다른 놈을 찾아보는 게 낫다. 그럴만한 놈들은 딱 하나 뿐 아니겠냐."
"......?"
제갈사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남만 월국에 있는 축융족(祝融族)과 교섭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