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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452화 (452/1,615)

00452  암천향(暗天鄕)  =========================================================================

사도라니?

온갖 상황을 다 고려해 봤지만 이런 제안을 할 줄은 몰랐다. 나는 신의 사도라고 하자 대번에 달기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곤란함을 숨기며 말했다.

"사도는 인간과 신의 사이에 있는 자. 제겐 힘이 필요하지만 사도의 힘을 가지는 순간 모든 영혼과 육체가 신께 종속되지 않습니까."

전욱은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 그리 되겠지. 강한 힘을 주는 대신에 당연한 대가다.]

"그건 좀... 곤란..."

내가 말을 흐리자 전욱 주변에 있던 만귀전의 소신격인 도올(禱?)과 망량귀(??鬼)가 날아다니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 이런 괘씸한 놈!!]

[ 감히 제왕께 무슨 망발인가?!]

키이이이

[ 저 놈을 찢어죽여라!!]

동시에 만귀전이 커다랗게 들썩이며 가공할 울음소리가 역동적으로 퍼져나왔다. 거기에는 강대한 신기(神氣)가 포함되어 있어서 나는 움찔하고 말았다. 저 존재들이 겉보기에는 흉측한 요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라신선에 못지 않은 소신격인 것이다! 상고시대때부터 그 힘을 유지하고 있는 만귀전이 덮쳐오면 나는 꼼짝 못하고 죽을 게 분명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삼황오제는 천계를 압도하는 존재들인 것이다.

그러자 전욱이 혼돈으로 일그러진 자신의 손을 저었다.

[ 조용히 해라.]

만귀전의 분노가 일시에 사그라들었다. 간단하게 제왕의 위엄을 보인 전욱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

[ 싫으면 말아라. 그러면 되는 것이다.]

"......"

신기한 일이었다. 전욱이 먼저 제안했을 때는 껄끄럽기 그지없었는데, 막상 전욱이 싫으면 말고 식으로 나오자 굉장히 손해보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이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는 건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당장 전욱의 사도가 되는 제안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제갈사가 빠르게 내게 수신호를 했고, 나는 급히 전욱에게 말했다.

"전욱이시여! 너무 큰 제안이라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옆의 동료들과 논의해봐도 되겠습니까?"

[ 그리 하라.]

나는 곧 제갈사, 천우진과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다. 먼저 얘기를 꺼낸 건 천우진이었다.

"생각하고 말것도 없소. 나같으면 무조건 받아들일 거요."

나는 천우진을 힐끔 쳐다보았다.

"당신은 신이 되고싶다 하지 않았소? 사도가 되겠다는 건 당신 생각에 위배되는 것 아닌가."

"젠장... 그거랑 이게 같소? 그건 내 문제고 이건 당신 문제잖소. 그리고 삼황오제의 사도가 된다는 건 그 자체로 불로장생이 보장되고 인간으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신력의 소유자가 되는 거요. 오만하기 그지없어서 삼청조차도 무시하는 삼황오제가 직접 필멸자에게 사도가 되길 권유하는 건 내 들어본 적도 없소."

"......"

"보통 인간이라면 영혼을 팔아서라도 지금 제안을 받아들이겠지."

그러자 제갈사가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과연 그럴까?"

나와 천우진의 시선이 제갈사에게로 향했다. 제갈사는 곰곰히 생각하는 표정을 짓다가 말했다.

"나도 이성적으로는 천우진 저놈이 맞다 생각하는데 말이지... 백웅 네 녀석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할 것 같다. 왜냐하면 이게 함정일 가능성도 높단 말이지."

"함정이라고?"

"뭐 이 대화도 전욱에게 다 들리고 있을테니 차마 뭔 소리를 할 수는 없겠다만, 백웅 너는 내가 뭘 생각하고 이런 말을 하는지 알겠지."

"......"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사가 천우진 때문에 애매하게 말을 돌렸지만, 흑요석을 공유하고 있기에 바로 알아차린 것이다.

천령단!

나는 과거 전생을 거치는 동안 무한의 내공인 천령단을 얻고자 부단히도 노력했지만, 알고보니 그 천령단을 얻는 것 자체가 함정이었던 경우가 있었다. 이번에 전욱이 사도의 제안을 하는 것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함정이 아니라는 법은 없다. 아니, 신에게 예속되는 것이므로 더할지도 모른다.

' 인과율... 인과율...'

나는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했다. 사도가 뭔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단어는 인과율이었다.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적인 존재들이 유일하게 준수해야하는 단 하나의 법칙이 바로 인과율이었고, 사도가 된다는 게 그 인과율에 구속된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우진 말마따나 삼황오제의 사도가 될 기회가 흔한 것도 아니다. 지금의 전욱은 왠지 나를 크게 마음에 들어해서 나를 사도로 삼으려 하는 건데 앞으로의 전생에서 이럴만한 기회가 얼마나 있을지 모른다. 앞으로는 내 쪽에서 제안해도 삼황오제가 난색을 표할 가능성이 극히 높았다.

뭔가 내 직감이 도와주지 않을까?

나는 직감이 번뜩이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잠시 후 헛수고라는 걸 깨달았다. 그런 직감이 내 마음대로 나오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대로 전욱을 천년만년 기다리게 할 수도 없는지라 조급한 마음이 들 때였다.

' ... 아, 그래! 이번 생의 내 목표부터 확실히 해야지!'

지금까지의 기본방침은 최대한 화요부터 생존한 채 획득해놓고, 정 안되면 마지막에 대운중첩을 이용해서 최대이득을 얻고 자살하는 것이었다. 사도가 되는 길을 선택한다면 이 방침보다 얼마나 이득을 얻을 수 있을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사도가 되면 뭐가 좋을까?

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말했다.

"받아들이겠어."

"진심이냐?"

"이 도박을 해서 알아낼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하니까."

천우진은 뭔 개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제갈사는 바로 알아챈 듯 했다. '도박'이라는 글자에서 내 생각을 유추해낸 것이다. 그러더니 히쭉 웃었다.

"흐흐. 도박은 도박이군. 이 시점에 할 이유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어차피 언젠가는 시도해 봐야 하잖아?"

"니 맘대로 해라. 결정은 니가 하는 거다."

"알았어."

나는 이윽고 기다리고 있는 전욱에게 외쳤다.

"전욱이시여! 나는 그대의 사도가 되겠습니다!"

전욱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 좋다. 나 전욱은 백웅 너를 내 사도로 삼겠다.]

전욱이 손을 뻗자 그 손에서 어둠의 기운이 날아와서 내 가슴에 적중했다. 잠시 후 그 기운은 내 심장까지 뻗어오더니 전신에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나는 말도 안 될 정도의 청량감이 전신을 휩쓰는 걸 느꼈다. 혈관에 피 대신에 얼음물이 흐르는 것 같으면서도 고통이 없었고 쾌적한 감각이 말초신경까지 자극했다.

"......!!"

이윽고 어둠의 기운이 내게 갈무리되자 전욱이 말했다.

[ 이제 그대는 내 사도이니 따로 화요를 해방하려고 봉선의식을 치를 필요가 없다. 칠요 하나 정도의 소유권은 내 권한으로 인정해 주마.]

이게 웬 떡이냐?!

나는 바로 엎드려서 전욱에게 절을 했다.

"감사합니다!"

[ 그 대신 조건이 있다.]

"무엇입니까?"

[ 10년의 시간을 줄테니...]

전욱의 얼굴에 잠시 불쾌감이 스쳐지나가는 것 같았다. 전욱의 몸뚱이는 혼돈 그자체로 이루어져서 내가 표정같은 걸 알 수 있을 리가 없는데도, 그와 사도의 관계로 묶인 덕분에 알 수 있는 것 같았다.

[ 창힐 본인이나 화신을 찾아서 내 만귀전에 데리고 와라.]

"창힐이라면... 사황 창힐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 그렇다. 너는 상고시대에 대해 많이 아는 것 같은데다 발이 넓으니 찾아낼 수 있겠지.]

"......"

뜻밖의 임무가 주어졌다.

' 창힐을 찾으라고?'

어차피 언젠가는 찾아야 할 놈이었지만 새삼 삼황오제에게 찾으라는 명령을 들으니 애매한 기분이 들었다.

황제의 직속부하이자 은나라 시대에 강대한 권력을 부렸던 사황 창힐!

한자를 발명한 존재이자 현재의 봉선의식을 고안해낸 존재를 찾아내라는 건 언뜻 듣기만 해도 상당한 난이도가 느껴졌다. 어쩌면 창힐을 찾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각오했던 바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 그럼 이로써 봉선의식을 마친다...]

후우우웅

오제 전욱은 그 말을 남기고 만귀전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옆에 있던 제갈사가 다가왔다.

"일이 재밌게 됐구만."

"사황 창힐을 찾을 수 있을까?"

"글쎄다. 아무래도 전욱은 네 녀석이 봉선의식은 물론 삼황오제의 비밀까지 미주알고주알 다 말해버린 걸 높게 산 모양이군. 쓸데없이 지식을 과시하는 거 아주 좋아."

"......"

이 자식 은근슬쩍 비꼬고 있잖아!

천우진이 천제단에 꽂혀있던 깃발을 하나하나 회수하며 첨언했다.

"확실한 건 이제부터 당신이 하려 하는 일은 역사상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일이란 거요."

"음..."

"사황 창힐을 찾는다라... 푸후후.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게 낫지 않을까."

천우진이 헛웃음을 짓는 걸 보면, 저 놈이 보기엔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어려운 과제라는 뜻이었다. 나는 멍하니 있다가 제갈사에게 물었다.

"만일 못 찾으면 나는 죽는 건가?"

제갈사가 낄낄거렸다.

"흐흐. 죽기만 하면 다행이게? 신과 사도의 관계로 예속되어 있다는 건, 전욱이 네 임무실패를 빌미로 영겁토록 네놈을 고문해도 할 말이 없다는 건데."

"끙... 그렇겠지."

"하지만 그것까지 포함해서 도박이란 거지. 네놈도 다 알고 선택한 거니까 그건 더 이상 생각지 마라."

"알았어."

그렇다.

이게 바로 도박!

도박의 내용이란 바로 '신이 내 영혼을 전생하지 못하게 붙잡을 수 있는가'였다. 밀림의 지배자에게 덤벼들었는데도 전생한 시점에서 이미 심증은 있다. 그러나 확증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도박을 해서 알아봐야만 했다.

만일 이번에 임무를 실패했는데도 전생능력이 발동한다면 그건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 재수없게 만귀전에 예속되어서 영겁토록 고문당한다면 그건 또 문제겠지만, 나름대로 확신이 있어서 시도한 도박인 것이다.

그 때 전욱이 사라진 걸 봤는지 바깥에서 호법을 서고 있던 검마와 무영검제가 이쪽으로 왔다. 검마가 외쳤다.

"백웅. 무사한가?"

"네!"

나는 잠시 후 그들에게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검마는 흑요석으로 전후사정을 알고 있었으므로 쉽게 납득하는 표정이었지만, 무영검제는 시종일관 멍한 기색으로 정신을 못 차리는 기색이었다.

급기야는 무영검제가 황당해하며 외쳤다.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삼황오제가 어딨으며 신의 사도같은게 어딨는가! 당신들 단체로 미쳐버린 건가?"

"......"

나는 무영검제의 반응이 되려 황당했지만, 있을 수 있는 반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원인들 중에서 절대다수는 삼황오제는 커녕 신선조차도 허황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중원인의 기본적인 성향이 극도의 현실주의자이며 이기적이라는 걸 생각하면 저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자 제갈사가 킬킬 웃으며 말했다.

"흐흐흐. 무영검제. 정 안믿기면 신의 사도가 된 백웅의 힘을 한번 시험해보는 게 어떻소?"

"뭐?"

"당신은 이미 백웅의 무위를 어림짐작하고 있었을 테지. 백웅이 그 짐작보다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직접 확인하면 우리 얘기를 믿을 수 있지 않을까?"

"......"

무영검제는 잠시 매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다가 대꾸했다.

"좋다! 그럼 한 번 비무를 해 보자."

잠시 후 나는 무영검제와 삼 장 거리를 두고 마주섰고, 중인들은 멀리 떨어져서 관전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무영검제와 왜 겨뤄야 하는가 약간 아리송했지만, 제갈사가 내 마음을 짐작했는지 전음을 보내자 납득할 수 있었다.

[ 니가 사도가 되어서 얼마나 강해졌는지 측정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상대다. 원래라면 꽤 버거운 상대였지? 무영검제와 겨룬다면 사도가 되어서 얻는 힘이 얼마나 되는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준비 되었소."

나는 최선을 다해서 무영검제를 상대하기로 마음을 고쳐먹고는 검을 기울여서 그에게로 겨누었다. 무영검제는 내 자세를 보더니 눈썹을 꿈틀거렸다.

"뭐지? 혼합된 무류(武流)인가."

"그렇소..."

한 눈에 알아보다니 역시 무영검제는 초고수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현재 내 무공은 뇌신류를 근간으로 쌓아올린 것이지만, 그 와중에 무영문의 무공이나 칠대절학 등을 다수 익히면서 잡탕이 되어 있었다. 그때문에 검류의 혼란마저 일어났었지만 여동빈의 천둔검법으로 틀어막아서 겨우 경지를 올렸던 것이다.

그렇다 해도 자세 하나만 보고도 내 무술의 성향을 파악한다는 건 보통 고수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혼자서 남궁세가 전체를 회칠 수 있는 무영검제는 전대의 초고수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 전력을 다해 싸우다 보면 사도의 권능이 뭔지 알 수 있겠지.'

잠시동안 나는 무영검제와 서로 노려보았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쾌검(快劍)을 발출했다.

카앙!

"크윽!"

검이 부딪히며 청명한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무영검제는 몸을 두 바퀴 반 돌리면서 뒤로 날아갔다. 일 초의 부딪힘에서 내공의 차이를 가늠한 것이었는데, 전대 천하제일검이라 불린 무영검제로서도 내 내공을 감당할 수가 없는 것이다. 되려 검이 부러지지 않은 채 화경과 의념을 섞어서 버텨냈다는 걸로 무영검제의 고명한 무예를 칭찬해야 한다.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무영검제가 침음성을 흘렸다.

"으으... 과연 무시무시한 내공..."

하지만 나는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 정도는 내 원래 무공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고 사도로서의 능력이라고는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거세게 외치며 무영검제를 공격했다.

"겨뤄봅시다!"

"오냐!"

까가강!

까강!

무영검제는 검을 쓰지 않아도 적을 살상할 수 있는 무영검기를 발출하기 시작했고, 나는 공수조화가 완벽한 그의 무영검막(無影劍幕)을 상대로 뇌신검무의 절초를 연속으로 사용했다. 뇌기를 뿜어내는 검강이 수십 개의 검로를 그리며 무영검막을 외곽에서부터 찢어버리는 광경이 연출되었다.

원래라면 은밀하기 짝이 없는 무영검기에 큰 낭패를 봐야 정상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검마에게서 무영탈혼검법을 전수받은 적이 있고 검마와 오랫동안 수련을 함께 했기에 무영문 절학의 허실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나와 더불어 오십 초를 겨루던 무영검제는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표정이 좋지 않게 변했다.

"이 놈... 무영문의 무공을 알고 있구나!"

"알고는 있으나 파해식까진 없소. 그러면 된거 아니오?"

"말만 잘하는군!"

쉬캉

검광이 흩날리면서 나와 무영검제의 몸이 엄청난 속도로 삼 장 범위를 날아다녔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 싸움을 제대로 관전하기도 힘들 것이다. 또다시 오십여 초가 지나면서 비등비등한 형세가 연출되었는데, 이건 무영검제의 검법과 내 검법수준이 대등해서가 아니었다.

삼보절기!

나는 순수한 뇌신검무로 싸우면 어떻게 해도 무영검제의 무영탈혼검기에 밀릴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고류문파의 최강검술에 대적하기에는 제사용검술인 뇌신검무가 딸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뇌신검무의 장점을 승화시킬 정도로 내 경지가 깊지도 않고 검뢰를 쓸 수도 없으니, 내 선택은 최소한의 반격을 하면서 무영검제의 공격을 삼보절기로 흘려내는 것이었다.

그 결과 나도 제대로 일격을 맞추지 못하지만 무영검제 또한 내게 공격을 성공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이런 식으로 싸우면 내 쪽이 수세이기에 더 불리해야 정상이지만, 공력의 차이가 그 불리함을 메워주기에 팽팽한 구도가 연출되었다. 무영검제는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뭔가 수를 쓰려는 듯 차분하게 다방면으로 초식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무영검제가 일순간 눈을 번득였다.

"이것도 받아봐라!"

투덜거리던 무영검제가 갑자기 손에서 검을 놓았다. 나는 그 순간 그의 의념절기가 날아온다는 걸 직감하고 정신을 집중해서 방어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그러자 아슬아슬한 찰나의 틈새에서 한 자루의 이기어검이 날아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카앙!

나는 검강으로 그 어검을 쳐내었지만 그와 동시에 은밀히 숨겨진 탈혼검기(奪魂劍氣)가 내 허리춤을 베어오는 걸 깨달았다. 너무나 은밀하고 강력한 한 수라서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나는 급히 멸혼보를 시전하며 몸을 뒤로 뺐다.

' 윽, 안돼... 늦었어!'

당했다!

촤악

탈혼검기를 완전히 피하는 건 불가능했는지 내 뱃가죽에 크게 횡참이 새겨졌다. 얇은 선이 나타난 후 요란한 선혈이 비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후 내장이 동시에 잘려나가면서 전신이 난자당하는 고통이 찾아올 거라는 걸 직감했다.

필살기를 펼친 무영검제도 당황했는지 놀라서 외쳤다.

"괘... 괜찮나?! 그만 전력을 다해버렸..."

"윽..."

"자네의 회피에 미숙한 균열이 있는 걸 발견해서 지나칠 수가 없었네."

무영검제는 변명하듯 말했다. 나는 그 대답을 듣자마자 내가 어째서 이기어검에 당했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 내 호흡의 빈틈을 파고들었구나...!!'

내가 삼보절기를 실전에서 쓸 수 있다고 해도 완벽하지 못하다. 무영검제는 검술의 명인답게 내 보법절기에 헛점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호흡의 빈틈에 필살기를 때려박은 모양이었다.

' 이러다 죽겠어!'

나는 곧이어 뱃가죽으로 비어져 나올 내장을 막을 생각으로 참상부분에 손을 대며 무릎을 꿇었다. 이 정도의 치명상이면 쉽게 나을 수는 없겠지만 어떻게든 목숨을 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고통을 참으려고 이를 꽉 무는 순간이었다.

"......"

내장이 쏟아지지 않아?

분명히 탈혼검기에 무영검제의 검강과 의념이 실려있었으니 내 호신강기로는 버틸 수가 없다. 정상적이라면 내장이 통째로 터지고 잘려나가야 정상이며, 뱃가죽으로 내장이 꿀렁거리며 쏟아져나올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저 베인 흔적만 남아있을 뿐 그다지 충격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나는 설마하는 생각으로 배를 만지작거리다가 상의를 탈의했다.

그러자 무영검제가 놀랐다.

"헉! 뭐냐?!"

무영검제가 놀란 이유는 간단했다.

내 배를 길게 그은 참상은 실선만 남아있을 뿐 이제 피도 거의 나오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명백히 무영검제의 탈혼검기가 내게 피륙의 상처밖에 주지 못했다는 의미였기에 절세고수인 무영검제 입장에서는 납득이 되지 않는 결과인 것이다.

그러자 뒤에서 관전하고 있던 검마가 비명을 흘렸다.

"세상에 저럴수가... 저건...!!"

나는 일어서서 검마를 향해 외쳤다.

"이게 뭔지 아십니까?"

"......"

이윽고 검마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내가 사도로써 얻은 능력이 뭔지를 알려주었다.

"자네는... 금강불괴(金鋼不壞)가 된 듯 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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