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446화 (446/1,615)

00446  암천향(暗天鄕)  =========================================================================

우우우우

우우우

잠시 후 장면이 뒤바뀌었다.

' 어?'

황궁의 도성 내부로 변모해 있었다.

"하아아아!!"

꽈릉

키에에에엑!!

번개가 수백 줄기나 내려쳤고 뇌령화(雷靈化)된 진소청의 잔영이 환상처럼 흩어졌다. 비명을 등진 채 진소청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진소청의 눈 앞에는 거대한 촉수괴물의 시체가 널부러져 있었다. 주위는 마치 폭풍이라도 맞은 것처럼 흔적도 없이 파괴되어 있었고 반경 백오십 장은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 같은 파괴흔이 펼쳐져 있었다. 또한 곳곳에서 용암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정도였다.

' 격전 직후인가?'

무시무시한 전투가 있었던 후였던 모양이다.

내가 상황을 유추하고 있을 때 진소청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전신이 상처투성이였고 팔뼈가 부러져 있었고 입가에서 선혈이 흘러내리는 중이었다. 아무리 봐도 심각한 부상을 입은 진소청이었다.

"허억... 허억... 주교를... 쓰러뜨렸다..."

그는 눈물을 흘렸다.

"사형... 사형... 미안하오..."

그 말대로였다. 대파괴의 한켠에는 진소청과 함께 왔던 극호의 시신이 참혹하게 널부러져 있었다. 주교와 싸우다가 전사한 것이다.

쿠콰쾅

그리고 낙양의 저 먼 곳에서는 연신 대격돌이 일어나는지 폭풍과 우운(雨雲)이 몰아치며 폭염이 넘실대고 있었다. 또한 백련교주가 변신한 모습이 언뜻 비쳐보였다. 진소청은 비틀거리면서 이를 악물었다.

"백련교주가... 버티고 있을때... 대주교를... 죽여야..."

백련교주가 따로 움직이면서 이목을 끌고있는 도중에 진소청이 적의 수뇌인 대주교를 해치운다는 작전으로 보였다. 진소청은 잠시 힘을 모으더니, 멸혼보조차 뛰어넘는 가공할 속도로 황궁을 향해 짓쳐들어갔다.

끼이이익!

께에엑!!

황궁에 진입하자 무수한 마물과 촉수괴물, 그리고 생전 처음보는 극악한 생김새의 마족들이 진소청을 향해 덤벼들었다. 그러나 진소청은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허공에 의념의 창을 하나 띄우더니 절기를 시전했다.

"이 사악한 놈들!"

뇌신류(雷神流)

결전오의(決戰奧義)

뇌명(雷鳴)

진소청의 뇌명은 내가 생각하던 한계를 초월해 있었다.

공간 전체가 뇌령으로 꽉 차는 듯 하더니, 순식간에 실체와 다를 바 없는 진소청의 분신 여덟 개가 떠올라 있었다. 그 분신이 사라지는 순간 천지사방에 수천 번의 첨격(尖擊)이 날아들었고 수백 마리의 마물들이 일거에 분쇄되었다.

콰과과광

' 뇌명에 몇 개의 오의를 섞은 거지?!'

나는 순간적인 안목으로 진소청의 수법을 파악했다. 뇌명을 써서 자신의 신체능력을 극대화시키면서 최소한 4~5개의 무공오의를 연환시켜 넣은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와 배율이 너무나 극소한 영역이라서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미래의 진소청은 틀림없이 절대지경에 올라 백련교주와 대등 이상의 고수가 된 듯 했다.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

진소청은 내가 칠대절학을 주든말든 절대지경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으며, 내 첫번째 생에서는 대부분의 실력을 숨기고 천하십대고수가 된 것이다.

나는 내심 침음성을 흘렸지만 이쪽이 더 말이 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이광과 청룡무관이 그의 재능을 억눌렀다 한들 그의 재능은 천재들조차도 이해불가한 가공할 수준에 이르러 있었기 때문이다.

진소청이 홀로 수천 마리의 마물을 도륙하며 약 일 리 정도의 거리를 정면으로 뚫었다. 그러자 그에게로 웬 부적이 날아들었다.

파팟

진소청은 가볍게 부적을 피했으나 이윽고 나타난 적수들을 보자 인상을 찌푸렸다.

"역시 전부 나인교에게 당했군..."

기괴하기 그지없다. 그렇게 표현하는 것은 주작 제갈유룡과 제갈부가 나타났는데, 그들 모두가 공허한 얼굴로 전신에서 촉수가 돋아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성이 사라진 상태로 보였으며 강제로 촉수를 이식당해서 인간 이외의 '무언가'로 변이하는 중이었다.

심지어 사방 곳곳에서 금의위 옷을 입은 자들이 뛰쳐나와서는 몸을 터뜨리며 괴물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쿠어어어어!!

괴물들과 격전을 벌이는 진소청은 점차 피폐해져가고 있었다. 그의 전신출혈은 갈수록 심해져가고 있었으며 충격도 격해졌다. 그러나 진소청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초수를 더욱 정교하게 만들며 혈전을 헤쳐나가기 시작했다.

"하아아아!!"

푸콱

마침내 진소청이 견제를 뚫고 이족화된 제갈유룡의 목을 날려버리고 말았다. 목을 날렸는데도 절단면에서 촉수가 엄청난 속도로 뚫고 올라왔지만 이내 수천 번의 창격이 쏟아지자 피안개가 되고 말았다. 제갈부 또한 진소청에게 척살당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아무리 이족화되어 이성이 사라진채 지배당하는 상태라 해도 전투력 자체는 원래와 다를 바가 없었는데!

진소청은 적들을 물리치고 황궁 옥좌의 방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옥좌의 방 한가운데에 팔짱을 끼고 서 있던 백발 머리의 소년이 훗하고 웃으며 진소청에게 말했다.

"훌륭하군. 도저히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전투력이야."

"놈! 당장 인신공양을 그만두고 인간의 땅에서 물러나라!!"

진소청이 가공할 살기를 뿜어내며 사자후로 포효했지만 백발머리 소년은 아랑곳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되려 진소청을 보며 품평하듯 말했다.

"이것이 인간만이 사용할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인 기(氣)와 의념(意念)의 힘이 정점에 도달한 모습... 인가."

나는 백발머리 소년을 보자 익숙한 얼굴이었기에 바로 알아보고서 깜짝 놀랐다.

' 저... 저 놈은 초상기인(超上奇人)!'

진소청은 백발머리 초상기인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거라 예감했는지 이를 악물고 전투태세를 취하며 외쳤다.

"대주교!! 용서치 않겠다!"

저 놈이 나인교의 대주교?

도대체 미래는 어떻게 흐르게 된 건가?

내가 흥미진진하게 지금의 대치상황을 지켜보자 백발머리 소년이 여유롭게 말했다.

"열내지 마라, 진소청. 나는 네게 한 가지 제안을 하지."

진소청은 함부로 백발소년에게 덤벼들지 못했다. 대주교라고 불린 소년의 힘이 진소청이 섣불리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탓인게 분명했다. 대주교 소년은 히쭉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의 주인께서 너를 마음에 들어하신다. 지금이라도 흉신께 몸과 마음을 바칠 것을 맹세하여 나인교에 입교한다면 너는 말법의 시대를 넘어서 영생불사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권능을 약속하지."

"개소리."

진소청의 눈이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네놈들은 괴물에 지나지 않는다! 나 진소청은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

"푸하하하. 아주 좋아. 그것도 재밌겠지."

대주교가 진소청을 비웃으며 빈정댔다.

"헌데 칠요와 신기를 갖고 있던 십이율주도 우리에게 당했는데 아무리 무공이 높아봤자 너 혼자 창 한자루로 뭘 하겠다는 거냐?"

"모든 걸!"

그 순간 -

진소청은 창을 치켜들고 '무언가'를 시전했다. 대주교 또한 그에 마주해서 자신의 능력을 시전하는 걸로 보였다.

' 이건...!!'

나는 이게 어찌된 일인지 알아챘다.

' 그랬던 거구나.'

대주교의 능력으로 시간(時間)이 정지(停止)되었다! 도저히 필멸자라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권능이었다. 나는 이제서야 과거에 초상기인을 상대할 때 보였던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저 백발 대주교 놈은 과거 내가 항우의 가호를 받은 전생에서 항우를 상대할 때 저 능력을 사용했었다. 그리고 교주를 상대할 때 시간정지 능력을 써서 기습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항우나 교주는 흥미로운 능력이라 칭하면서 내심 위협적으로 느꼈으리라.

하지만 이상하게도 진소청이 지닌 절대지경의 초감각은 그 시간정지의 찰나에 함께 진입해버린 모양이었다. 그래서 온 세상의 시간이 멈춘듯한 순간에 대주교가 공격해 오는데도 거기에 반응할 수가 있었다. 진소청은 대주교의 공격이 날아들자 바로 되치기를 했는데 대주교의 팔이 거의 동시에 뎅겅하고 잘려나갔다.

퍼버벅

대주교의 전신이 수만 갈래로 찢기고 터져 나갔다. 진소청은 최후의 필살기를 시전해서 그를 없애는 데 성공한 것이다.

"헉... 헉..."

진소청은 이번에야말로 손끝도 움직일 수 없는지 피투성이가 된채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진소청을 조롱하듯 여기저기에서 찢어진 대주교의 파편이 스멀거리며 핏조각과 함께 모여들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

진소청의 얼굴에 체념의 빛이 스쳐지나갔다.

의미가 없다는 듯, 빠르게 재생된다.

수만 조각이 났던 대주교가 본래 모습을 되찾는데는 반 각도 걸리지 않았다.

대주교는 인간모습을 되찾자 진소청을 조롱했다.

"하하하... 훌륭해. 무서웠다고."

"너는..."

"보시다시피 흉신의 기운으로 성좌에서 직접 힘을 내려받는 불사신이지. 나를 없애고 싶었다면 인간계 최강급 술법사라도 데려왔어야 했을거다. 거기에 최소한 칠요를 갖고와야 얘기가 되겠지?"

대주교가 낄낄거렸다.

"흐흐. 환신 천우진도 우리를 두려워해서 천계에 처박혀 있는 상황에선 어쩔 수 없겠지만."

진소청은 이를 갈았다.

"... 괴물 놈."

"아주 영광이군. 인조생명체 초상기인으로서 더할나위없는 상찬."

"대체 왜 자신을 길러준 주인을 배신한 거지?"

진소청의 질문에 백발소년, 대주교가 껄껄 웃었다.

"하하! 내 몸에 깃든 성좌의 힘은 흉신(凶神)의 것이니 그 분이야말로 나의 어버이이시다. 제갈유룡은 그 사실을 간과했던 거지. 나와 내 동료들이 흉신의 사도가 될 수 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니."

대주교가 차갑게 웃었다.

"인간은 [옛 지배자]에 비하면 한없이 하찮은 존재. 제 분수를 모르는 창조주를 징치했을 뿐이야."

"이제 어쩔... 셈..."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별거 없어. 이대로 나인교로 세상을 지배해서 너희 인간을 사육하고 관리할 생각이다."

"......"

"멸망할 일은 없으니까 걱정 마. 인신공양에 써먹어야 하니 숫자는 충분하게 채워둘 거야. 말만 잘 들으면 배부른 돼지처럼 편하게 지낼 수 있겠지 하하하. 다만 이족보행금지라거나 신생아 공양의무 정도는 해 둘까."

물론 그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대주교의 눈이 초승달처럼 가늘어지며 웃음을 지었다.

"너희 인간이 스스로 빌미를 준 거니 삼황오제도 우리에게 간섭할 수 없지. 위대한 인과율 아닌가? 아주 멋져. 이대로 말법의 시대까지 인간을 사역하며 멋진 미래를 만들어 나갈테니 지켜봐줘, 진소청."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주교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미 죽었나?"

암전된 진소청의 시야 바깥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주교는 금세 지루한 듯한 목소리로 밖으로 걸어갔다.

"백련교주도 이번에야말로 끝장내줘야겠군."

와드득 와드득

이윽고 진소청의 시체가 마물들 한가운데에 던져져서 촉수의 먹이가 되는 소리가 귓가를 어지럽혔다.

파아앗

시야가 되돌아왔다. 나는 옆에 서 있던 제갈사의 목소리를 들었다.

"어이. 뭘 보고 왔냐?"

뭐라 말을 할 수 없다.

나는 잠시 입을 뻐끔거리다가 말했다.

"내가 하는 일이 옳다는 확신을 얻고 왔다."

이토록 절망적인 미래라니.

또한 무공만으로는 절대 안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제갈사가 내 말뜻을 눈치챘는지 키득 웃었다.

"결국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 처망하고 괴물 밥이 됐겠지? 인간이 애써봤자 그렇지 뭐."

"......"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제갈유룡이나 제갈부는 이걸 이용해서 미래시를 보는게 의미없다 했어. 하지만 내가 방금 본 미래시는 충분히 현실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정보를 줬다고. 뭔가 이상한데."

"이상하지 않다. 왜냐하면 네놈이 그걸로 미래를 바꾸려고 마음먹은 지금 이 순간, 또다시 미래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제갈사는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또 네가 정보라고 생각했던 것도 인과율 때문에 왜곡될 가능성이 있지."

"인과율 때문에?"

"잘 생각해봐. 방금 본 건 가상현실이야. 네가 새로운 정보라고 생각했던 장면들은 사실 지금까지 얻었던 정보를 통해서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던 가능성이겠지. 정말로 그 모든게 완전히 새로운 정보였나?"

나는 방금 전에 봤던 미래시를 떠올렸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렇진 않군."

다 잘 생각해보면 내가 이미 얻었던 정보의 범주에 있다. '주교'라는 존재는 약간 의외였지만, 그 또한 나인교에 대해서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었다.

"그래. 백우선의 미래시는 단지 네 기억을 토대로 있을 수 있는 최대확률의 미래를 재구성해서 가상현실로 보여준 것 뿐이다. 그걸 맹신하면 큰코다칠 수밖에 없지. 그래서 제갈유룡과 제갈부는 미래시에 의존하지 않은 거다."

"음..."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마음을 정리하고는 말했다.

"제갈사. 나는 그럼 이제부터 이 방법을 쓰겠어."

미래시는 미래시고 이제부터 해야할 일은 따로 있다.

내가 움직여야만 절망적인 미래가 바뀌는 것이다 - 그걸 알아낸 것만으로도 미래시의 의의는 충분하다!

나는 내가 생각한 전략을 제갈사에게 말했다. 제갈사는 차분하게 듣더니 말했다.

"좋아. 조금 손볼 부분이 있지만 괜찮군."

"괜찮은거냐?"

"내가 도와주지."

제갈사가 씨익 웃었다.

"한번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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