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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445화 (445/1,615)

00445  암천향(暗天鄕)  =========================================================================

잠시 후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걸 알아차렸다.

"오늘이 약속한 날이군."

뭐지? 왜 갑자기 멋대로 말하는 거지?

그 순간 나는 이게 가상현실이라고 했던 제갈부의 설명이 떠올랐다. 그리고 '진소청'의 몸이 제멋대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걸 알아챘다. 아마도 이건 진소청의 의지일 것이다.

' 예상되는 미래를 보여주는 거군.'

그렇다면 나는 딱히 행동하거나 말할 필요가 없다. 이대로 '진소청'이 움직이고 말하는 것을 관찰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아무래도 백우선은 내가 원하는 '미래'를 보여주기에 진소청의 50년 후 모습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나는 왠지 두근거리는 마음이 들었다.

진소청은 원래 내가 알고있던 첫 번째 전생의 미래에서 천하십대고수로 군림하는 절세고수 중 하나였다. 물론 지금까지 직접 알게 된 진소청의 재능은 그걸 훨씬 초월하고 있었지만 어쨌든 천하를 오시하는 진소청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청룡무관에서 걸어나온 진소청은 청룡무관 앞에 기다리고 있던 극호에게 말했다.

"사형. 준비가 되었소."

극호의 외관은 완연한 노인의 모습이었다. 50년 후라면 초로를 넘어서 노년의 나이일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극호의 내공이 심후하기 때문인지 주름살이 별로 없었으며 머리카락이 희끗 새어있을 뿐 검은 머리카락이 대부분이라서 실제로는 오륙십 대의 장년인에 가까운 외모였다.

극호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소청아. 그 나인교(螺湮敎)의 주교(主敎)인지 뭔지하는 놈이 그렇게 센 거냐? 네가 이리도 긴장하다니."

주교?

처음 듣는 말이었지만 '진소청'은 담담한 말투로 대답했다.

"사형도 알다시피 나는 세간에 내 실력의 팔 할 이상을 숨기고 지냈소. 백련교주를 쓰러뜨릴만한 힘이 생기기 전에는 계속해서 절대지경만을 연마할 생각이었지. 하지만 그런 나도 주교 2명을 쓰러뜨릴 때 죽음을 각오해야 했소."

"흠."

"나 이외의 천하십대고수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한두명을 제외하고는 주교의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이오."

50년 후의 진소청은 나인교 주교와 이미 교전했고 생사결전을 벌인 모양이었다.

"......"

"그 자들의 힘은 무공이 아닌 듯 싶소. 그들이 더 힘을 키우기 전에 쓰러뜨려야만 힘없는 민초들이 고통받지 않을 것이오."

"하아, 뭐가 뭔지 모르겠구나."

이윽고 극호가 한숨을 쉬며 하는 말에 나는 꽤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인교가 암중에 정천맹과 사파를 모두 장악하고 백련교까지 반파(半破)시켰다는 말이 사실이냐? 나는 강호생활을 하며 그런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사실이오, 사형. 단지 나인교가 정보를 통제하며 평화로운 강호를 연출하고 있기에 극소수만이 나인교의 실체를 알고 있소."

"크으 돌아버리겠군."

"그럼 갑시다."

이어진 말에 나는 더더욱 놀랐다.

"백련교주를 만나기로 한 장소에."

백련교주?

이게 무슨 말인가?

타다닷

이윽고 진소청과 극호는 엄청난 경공술을 펼쳐서 산과 들을 넘더니 아주 한적한 시골의 산야에 도착했다. 그리고 어두침침한 동굴 속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에는 놀랍게도 백련교주가 가부좌를 튼 채 앉아있었다.

[ 왔는가, 진소청.]

"오랜만이오.]

백련교주가 히쭉 웃었다.

[ 흐흐... 10년 전 네 사부의 원수를 갚는다고 홀로 백련교에 쳐들어와서 호법사자를 다 때려눕히고 나와 백중세를 이뤘을 때 이후로 처음인가...]

"과거의 일이오."

[ 넌 정말 괴물같은 무의 천재다.]

백련교주의 몰골은 처참했다. 그의 무면탈이 3할 정도 파괴되어서 흉측한 이족의 얼굴이 겉으로 드러나 있었고 전신에서 청혈(靑血)이 주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한쪽 팔은 사라져 있어서 누군가에게 처참하게 당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진소청은 침울한 기색으로 대꾸했다.

"호법사자는 모두 주교에게 살해당한 모양이구려."

백련교주가 자조적으로 웃었다.

[ 후후... 흉신(凶神)의 사도 패거리를 상대로 인간이 어찌 해보겠는가. 살아서 도주한게 천운이었다.]

"싸울 수 있겠소?"

[ 물론 싸울 수 있다. 주교단 놈들을 해치우기 위해서라면 뭐든 하겠다.]

나는 처음에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 그... 그러니까 나인교의 주교단이 호법사자를 다 죽이고 교주를 병신으로 만들었다는 말인가?'

나는 상황을 이해하는데 성공했으나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미래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말인가? 교주의 원영신이나 호법사자의 천령단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가 세상에 있다니! 하지만 흉신이라는 단어에서 이 미래의 나인교가 수저에 잠든 [옛 지배자]인 흉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 또한 알 수가 있었다.

극호가 질린 듯한 기색으로 백련교주를 보며 말했다.

"믿기지 않는군. 이 자도 괴물처럼 강할진대 주교가 대체 뭐길래..."

[ 사도 간에도 격차가 있지. 하물며 [옛 지배자]중에서도 최강급 존재인 흉신의 권능을 직접 받는 사도... 그대같은 무림인이 알지 못하는 이면의 세상이 존재하지.]

잠시 침묵하던 교주가 진소청을 바라보았다.

[ 나인교는 이미 황궁도 접수했을 것이다. 황궁의 복마전도 전멸했겠지. 이 상황인데도 황궁을 직접 칠 계획인가?]

"그렇소. 이제 남은 방법은 없소."

진소청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정보에 따르면 남해(南海)에서 대량 인신공양이 있었다 하오. 최소한 십만 명이 이미 희생당했소..."

그 말에 극호가 깜짝 놀랐다.

"무슨 말이야? 그런 미친짓이 일어났으면 천하가 난리가 났어야..."

진소청은 힐끔 그를 바라보았다.

"모르겠소 사형? 무림(武林)은 이미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요. 이 땅에 사는 모두가 현혹되어서 아무것도 모른 채 희생당하고 있고, 진실을 아는 극소수는 이족의 공포때문에 입을 다물거나 미쳐버렸소. 십대고수 중 하나로 천하를 돌아다니던 사형마저 모를 정도니."

가만히 앉아 있던 교주가 중얼거렸다.

[ 허탈하군... 설마 수십 년 동안 이어지던 3자의 균형이 이런 식으로 부숴질 줄이야... 흉신이 개입할 줄은...]

"탄식할 여유가 없는 상황이오. 주교를 해치워야 인간이 멸망당하는 걸 피할 수 있을거요."

[ ......]

교주가 또다시 탄식했다.

[ 진소청 그대에게 칠요가 주어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칠요만 있었으면...]

진소청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칠요? 그게 뭐요?"

[ 상고시대 삼황오제의 힘을 담은 비보(秘寶)... 그 힘만 있다면 인간도 신에게 대항할 가능성이 있다고 알고 있었다. 나 또한 황궁과 맞서며 부단히 그걸 찾아 헤맸지만 결국 하나도 찾지 못했지...]

"흐음..."

[ 칠요 중 두 개만 얻는다 해도 평범한 무사가 호법사자에 필적하는 힘을 손에 넣는다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중얼거리던 교주가 말했다.

[ 진소청. 십이율도 어느 순간부터 아무런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십이율주가 있는 동방무림에도 뭔가 일이 생긴 거겠지.]

"무슨 말이 하고싶소?"

[ 현 무림에서 절대지경에 이른 자는 거의 없다... 아마도 나와 그대, 그리고 독고성(獨孤星), 검마(劍魔) 4명 뿐이겠지... 그 중에서도 그대는 향후 발전가능성이 있어서 전대미문의 경지에 도달할 수도 있으리라.]

"......"

[ 진소청... 황궁과 맞서지 말고 칠요부터 찾아라. 그대가 칠요의 힘을 얻는다면 대주교와 주교단을 쓰러뜨릴 수 있다.]

교주의 진언은 간절해 보였다. 진소청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말했다.

"교주. 죽을 때가 얼마 남지 않았구려. 대주교와 싸울때 치명상을 입었소?"

[ 알아차렸군.]

"그런 몸으로 나와 손을 잡자고 하다니 대체 무슨 생각이오. 자기 살 길이나 찾을 것이지."

진소청은 교주를 힐난하는 듯 했지만 스승의 원수였던 자조차도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이 느껴졌다. 교주는 훗하고 웃더니 말했다.

[ 나는 죽어서 천상에도 지옥에도 가지 못한다... 내게 예약된 것은 영겁의 고통 뿐이지... 나와 함께하던 호법사자들에게는 꿈을 이뤄주지 못해서 미안할 뿐이다. 단지 이렇게 된 이상 마지막 희망은 진소청 너뿐이다.]

"하아!"

[ 지금은 생각이 정리되지 않나보군... 내일 찾아와라.]

교주는 그 말을 하고는 몸을 돌려서 벽을 보고 앉았다. 극호는 못마땅한 얼굴로 교주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지만 진소청은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사형. 갑시다."

진소청은 극호와 함께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근처의 마을에 들러서 음식을 주문하고 하루 묵고갈 곳을 찾았다. 두 사람이 주막에서 소면과 닭고기를 시키자 그리 화려하진 않아도 먹을만한 밥상이 나왔다.

"제길. 교주 저 놈은 다 털려서 알거지가 된 주제에 뭘 믿고 저리 고자세야? 그냥 무시하는 게 어떠냐."

극호는 투덜거렸다.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는 해도 뇌신류 최악의 원수인 백련교의 교주를 곱게 볼 수 없는 듯 했다. 청년 때의 강렬한 원한을 생각하면 바로 공격해서 죽여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지금의 극호가 교주를 언짢게 여길 뿐 큰 적의를 품지 않는데는 이유가 있는 듯 했다.

"......"

"소청아?"

진소청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밥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사형, 먹지 마시오."

"엉?"

"이건 인육이오."

파밧

"이 사악한 놈들!"

진소청이 곧장 주막을 운영하는 노부부에게 달려가 창섬을 꽂아넣었다.

꾸오오!

그러자 인간의 몸뚱이가 터져나가며 촉수덩어리가 기괴한 소리와 함께 흘러나왔고, 기묘한 파장을 내뿜으며 진소청을 공격했다. 그 크기가 무려 삼 장에 이르렀다.

극호가 불쾌한 듯 외쳤다.

"제기랄 먹는데 장난을 쳐?"

번쩍!

극호의 창에서 뇌신류 오의인 뇌공섬이 터져나왔다. 50년 후의 극호는 이광과 대등 이상의 경지에 오르는 듯 했다. 뇌공섬이 노부부로 위장했던 이족괴물들을 휩쓸자 괴물들은 처참하게 터져서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분쇄당했다.

"노부부는 살해당했겠군."

진소청은 씁쓸하게 말했다.

"사형. 이런 일이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소. 이유를 모르겠지만 이 사악한 이족(異族)들이 대놓고 침투해서 여기저기에서 살육과 인신공양을 벌이는 중이오. 그리고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나인교의 힘이 강해지고부터요."

극호는 자신의 머리를 짚었다.

"직접 보니까 믿을 수 있겠군. 네가 뇌신류의 한(恨)을 갚아줘서 이제야 편하게 여생을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또 무슨 난리뻐꾹이냐."

"사형. 다시 교주를 찾아갑시다. 그 자의 도움이 꼭 필요하오."

"쳇!"

극호는 투덜거리면서도 다시 교주를 찾아가는 길에 동행했다. 그리고 교주를 마주한 진소청은 교주에게 말했다.

"당신은 내게 칠요를 찾으라 했으나 그럴 여유가 없소. 당신 말대로 망량(??)을 통해 더 알아보려 했지만 지상이 도탄에 빠졌소. 게다가 수도 낙양은 마력으로 뒤덮여 언제 생지옥으로 변할지 모른단 말이오."

[ ......]

"더 늦기 전에 대주교를 쳐야겠소. 나를 도와주시오."

교주는 침음성을 흘렸다.

[ 음... 혹시 독고성이나 검마를 끌어들일 수 없겠는가?]

"독고성이란 자는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겠고 검마 서문대룡은 때때로 광기에 휩싸여 살겁을 벌인다는 마두(魔頭)가 되어버렸소. 그들과 손을 잡을 여유가 없소."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순간 마음이 아픈것을 느꼈다.

' 검마 서문대룡... 딸을 찾지 못하고 슬픔때문에 미쳐버렸구나!'

전후사정을 모르는 진소청 입장에서는 검마를 무공만 강한 사파지존이라 여기겠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검마는 필사적으로 딸을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거나 시체를 발견한 탓에 슬픔으로 광기에 물든 것이다.

교주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 알았다... 그렇다면 네가 대주교를 치는 길에 동행해 주겠다. 내 마지막 힘을 동원한다면 주교 한둘은 상대할 수 있겠지...]

"감사하오."

그들은 이윽고 산을 내려와서 낙양 쪽으로 향했다. 진소청 일행은 낙양으로 가던 중 낙양 앞에 있던 웬 폐허를 지나쳤는데, 그 폐허에서 진소청은 누군가를 만나려는 듯 외진 산중으로 향했다.

"왔소... 진소청."

나무의 어둠 뒤편에서 천천히 한 사내가 걸어나왔다. 그는 극호나 진소청과는 다르게 완연히 나이를 먹은 백발의 중노년으로 보였으며 그다지 무공이 강해보이지 않았다. 진소청은 그를 발견하자 인사했다.

"망량. 백련교주를 데려왔소."

"그런 것 같군... 쿨룩."

망량이라고?!

나는 기침을 하고 있는 저 노인을 보자 황망한 기분이 들었다. 저게 망량의 미래 모습이란 말인가?! 물론 망량이 내가 살던 시점에 생존했을거라는 예측은 했지만 막상 이렇게 보니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미래의 망량은 폐허쪽을 바라보며 우묵한 표정을 지었다.

"스승님께서는 대결계를 강화하기 위해 어디론가 사라지셨고... 사제는 대책을 세우기 위해 천계로 갔으니... 나라도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당신은 내가 아는 중 최고의 책사요."

"고맙구려."

망량은 칭찬을 대충 넘긴 후 진소청에게 말했다.

"내 정보에 따르면 아마 다가오는 보름날에 낙양에서 놈들이 일을 벌일 생각인가 보오. 놈들을 막지 않으면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될 거요..."

"보름날? 왜 하필 그때지?"

"보름날에는 주술적인 힘과 상징이 갖춰져 있소. 또한 달의 힘이 가장 강해지는 날이며 바다의 세력이 강력해지지. 십중팔구는 그 날 수백만 명 규모의 대 인신공양을 벌여서... 놈들의 주인인 흉신을 이 땅으로 소환함과 동시에... 낙양에 봉인되어있던 절대적인 마(魔)를 부활시킬 생각이겠지."

망량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뭔가 해보려 해도 더 이상은 계책을 짜낼만한 게 없었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당신에게 백련교주의 은거지를 예측해서 알려주는 것 뿐이었소. 미안하오 진소청."

"아니오. 당신은 할만큼 했소."

"......"

망량이 서서히 어둠속으로 걸어갔다.

"진소청. 이 세상의 끝이 다가오는 게 느껴지는구려..."

그리고 망량은 어디론가 가 버렸다. 뒤에 서서 지켜보고 있던 백련교주가 말했다.

[ 이제 어찌할 생각인가?]

"대주교를 척살하는 수밖에 없소."

[ 어쩔 수 없군.]

세 사람의 시선이 거의 동시에 낙양성을 향했다.

콰르릉

암운이 맺힌 천공에서 언뜻 거대한 날개를 지닌 기괴한 괴물의 형상이 번개에 잠깐 비쳤다가 사라졌다. 말없이 천공을 노려보고 있던 진소청이 창을 들었다.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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