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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442화 (442/1,615)

00442  암천향(暗天鄕)  =========================================================================

[ 무슨 소리냐? 감히 인간이 대라신선에게 요구를 하겠다고!]

남화노선은 화를 내려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수기공양에 따른 댓가를 원하는 것 뿐입니다만."

[ 대라신선의 술법을 인간에게 전해주는 건 천기에 어긋나는 일이다. 강력한 술법이 지상의 균형을 어지럽히니 천계의 법도로 금지되어 있다.]

그러자 나는 예상한 게 왔기에 씨익 웃었다.

"그렇다면 저는 공양할 제물을 추가해서 그 부족분을 채우겠습니다."

[ 뭐?]

남화노선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인 듯 눈을 둥그렇게 떴다. 나는 그가 놀라는 틈에 슬며시 보물을 하나하나 들기 시작했다.

"삼황오제 전욱의 동상과 쌍고검을 우선 드릴 생각이고..."

[ 으음...]

"여기 요도 무라마사와 각종 귀금속을 바칠 생각입니다만."

[ ......]

남화노선은 크게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 흠! 흠! 성의가 부족한 게 아니냐...]

"네?"

남화노선이 내 쪽을 보지 않고 하늘을 쳐다보며 뒷짐을 졌다.

[ 성의! 성의가 좀 더 있으면... 생각해보마...]

"......"

와... 너무 노골적이다!

대라신선이라는 게 이렇게 밝혀도 되는 것인가?

' 으으... 역겨워!'

나는 순간 인계 도인들이 그토록 선망하고 존경하는 천선 대라신선이라는 게 굳이 도를 안닦아도, 인격을 함양하지 않아도 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화노선의 행태가 타락한 인간의 그것과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은 실망한 티를 내지 않고 옆에 있던 망량을 힐끔 쳐다보았다. 제갈사는 마도사이기에 이 마을에 들어와서 같이 공양의식을 할 수 없기에, 이 자리에서 나를 도와줄 수 있는 건 망량 뿐이었다. 망량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남화노선에게 엄포를 놓았다.

"남화노선!! 욕심이 과하신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

남화노선이 인상을 찡그렸다.

[ 인도(人道)따위가 어디서 끼어드는 것이냐?]

"저는 인도이기 이전에 제망량의 제자입니다. 지금만 해도 수기공양의 댓가만으로 충분할 터인데 백웅은 성의껏 제물을 추가했습니다. 그런데 남화노선께서는 재물에 눈이 멀어 인간의 성의를 무시해 버리시는군요."

강하게 남화노선을 비판한 망량이 뒤편의 여동빈 사당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를 그리 무시하신다면 생각이 있습니다. 제 스승님께 대가를 바치고 그대를 토벌해달라고 부탁할 겁니다!"

[ 허억!]

남화노선은 깜짝 놀라는 기색이었다.

[ 그... 그런 짓이 가능할 것 같으냐! 제망량이라 해도...]

"충분히 되지요."

이윽고 망량의 이어진 말에 나도 약간 놀랐다.

"스승님께서는 천계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걸 모르십니까? 천계에서 가장 잘 알고계신 게 남화노선이라 생각했습니다만!"

[ ......]

나는 은근슬쩍 끼어들어서 말했다.

"먼저 과한 욕심을 부리셨으니 추가제물은 전부 물리겠습니다. 태평요술 주십시오."

[ 이... 이놈들이...]

"만일 안 주신다면..."

내가 슬며시 여동빈 사당쪽으로 한 걸음을 내딛자 남화노선이 움찔했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남화노선은 과거 제망량에게 한방에 당해서 소멸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작정하고 제망량에게 남화노선 토벌을 부탁한다면 남화노선은 이번에야말로 뼈를 못 추릴 것이다.

그러자 남화노선이 발악하듯 외쳤다.

[ 이 건방진 인간 놈들! 그래, 내가 욕심을 부린 건 인정하지만 천기와 대가가 맞지 않는건 사실이다. 태평요술은 대라신선의 술법이니 최소한 전욱의 동상과 무라마사는 내놔라.]

어휴, 저 놈이...

나는 짜증이 났지만 그 때 망량이 순어구를 통해 내게 생각을 전달했다.

[ 백웅. 이번 남화노선의 말은 맞을거요. 사실 수기만으로 얻어내기엔 태평요술이 좀 큰 술법이긴 하오.]

일리있는 말이었다. 수기가 수천년 치의 엄청난 자연지기라고 하지만 태평요술 또한 수십만 명을 조종하고 부활시킬 수 있는 강력한 술법이었다.

[ 흠... 이쯤에서 타협할까.]

[ 그게 좋겠소. 남화노선을 너무 자극하면 우리에게 저주를 걸고 가버릴 수도 있소.]

[ 알았소.]

나는 망량과 의견을 나눈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 크흠.]

잠시 후 전욱의 동상과 무라마사가 제단 위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대가를 받은 남화노선이 눈을 빛내며 내게로 손을 뻗었다.

[ 그럼 태평요술을 전달할테니 받을지어다...]

우우웅

한참동안 내게 손을 뻗어서 영기와 기억을 전송하던 남화노선이 당혹스러운 듯 말했다.

[ 아니? 이게 뭐지? 이런...]

그리고 엉거주춤 뒤로 물러나길래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 ... 돋는다.]

"네?"

남화노선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소름돋는다고!! 이렇게까지 재능이 없는 놈일 줄은...]

"......"

[ 끄응... 이렇게 재능없는 놈한테 줘야하는가... 뛰어난 지선에게 전하는 것도 아까울진대.]

"주셔야죠. 계약인데."

[ 흥!]

남화노선은 이윽고 전승을 끝냈다. 그리고 나는 머릿속에 새로운 태평요술의 지식과 수련법, 배경지식까지 모두 알 수 있게 되었다. 전해받은 것만으로 영력이 늘지는 않겠지만, 천신경에 이어 대라신선의 술법을 한 개 더 보유하게 된 것이다!

이윽고 공양의식이 끝나자, 천우진이 피로한지 눈을 껌벅이더니 내게 말했다.

"백웅... 태평요술이 어떤 술법인지 알고 받은거요?"

"물론 알고 있소."

"허참... 더 좋은 술법이 있을건데 왜 하필..."

이해 안된다는 듯 중얼거린 천우진이 팔짱을 꼈다.

"말해두겠는데 태평요술을 수련해서 사이비종교를 만들거나 혹세무민하지 마시오. 그럴 때는 내가 찾아가서 당신을 벌할 테니."

나는 약간 불쾌해져서 대꾸했다.

"당신이 뭔데 벌한다 만다요? 태평요술을 익히는것만으로도 죄가 되는건가?"

"그럴수도."

"응?"

"태평요술이란 중원의 술종(術宗)에서 한없이 사법(邪法)에 가까울 술법으로 분류되고 있소. 죽은 자를 조종하는 사령술(死靈術)은 물론이고 환혹술까지 있으니 당연한 일이지. 그러다보니 수련자들 중 상당수가 사악함에 물들어서 타락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술법유파요. 수련하다가 사이비종교를 만들거나 미쳐버리는 자가 상당수 있소."

"......"

그래서 남화노선의 인성이 그모양이었던 건가?

"뭐 그렇게 타락할 가능성이 높은데도 기어코 수련자가 나올 정도로 매력있고 강력한 술수라는 건 인정하지만."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마시오."

"거, 말해줘도 지랄이야."

"지랄은 당신이 지랄이고."

나는 단호하게 말하고는 망량과 함께 마을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마을 바깥에 기다리고 있던 제갈사를 찾아서 태평요술을 알아냈음을 전했다.

제갈사가 물었다.

"그래서 지금 태평요술을 쓸 수 있는 건가?"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뭐가 뭔지 모르겠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봐라."

"음... 그러니까 지선 망량의 200년간의 술법과 경험을 전해받을 때와 비슷해. 거대한 지식이 머리 한켠에 들어차 있는데 이해가 안돼."

"그건 그렇겠지. 술종 하나가 통째로 들어온 셈이니."

나는 의혹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로 이게 효과가 있긴 있는거냐?"

"물론!"

제갈사가 자신있게 말했다.

"내가 알기로 태평요술은 네가 봤던 사령술, 환혹술 말고도 또 하나의 공능을 지니고 있다. 그 공능이 바로 천후(天候)를 조작하는 것이다."

"으음."

"태평요술이 대성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면 개기일식의 때를 앞당길 수 있을지도 모르지. 대라신선의 술법은 그 정도 능력이 있으니."

제갈사가 킬킬거리며 말했다.

"이혼대법과 삼보절기만으로도 버거워하는 네녀석이 그걸 언제 익힐지가 의문이긴 하다만..."

하지만 나는 제갈사의 말에 일일이 동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시간과 상관없이 신에 대항하여 그들의 종말을 보기로 맹세했기 때문이다.

' 화요를 지금당장 획득할 수 없으니 일단은 미뤄두자.'

억지로 대운을 반복해서 화요획득을 시도하는건 나중에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번 생에 책사 망량과 제갈사를 얻은 이상 다른 정보를 좀 더 얻을 필요가 있었다.

나는 망량을 쳐다보며 말했다.

"망량. 내가 이번 생에 뇌신류와 접촉할 필요가 혹시 있겠소?"

"나는 잘 모르겠소. 당신의 기억속에서 뇌신류는 워낙 제멋대로 움직였던지라..."

망량이 짧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다만 정석적인 조언을 하자면, 이번 생에서 반전의 권능은 가능하면 최대한 아껴두시오. 그 권능을 딱 한번만 사용할 수 있다는게 밝혀진 이상 더 신중해져야 하니."

"나랑 의견이 같군."

제갈사가 말꼬리를 이었다.

"또 하나. 나같으면 이제부터 십이율을 파고들 거다."

"생각하고 있던 바야."

나는 제갈사의 말에 대꾸한 후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다만 십이율에 입문해서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할지 바로 율주와 교섭할지가 고민이야."

이 자리의 우리 모두가 이번 전생에 십이율에 도전해서 그들의 비밀을 캐낼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현재 천하를 크게 나누고 있는 3대 세력 중에서 황궁과 백련교의 목적과 수단이 꽤나 명확해졌지만, 십이율과 십이율주는 구체적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십이율에 대해서 알아봐야 앞으로 어떻게 십이율에 대응할지 전략을 잡을 수 있었다.

간단하게 가자면 그냥 반전의 권능으로 십이율주를 암살하면 되지만, 밀림의 지배자가 싫은데다가 웬지 신의 힘을 빌려봤자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십이율에 대해서 알만큼 안 다음에 시도해도 된다.

제갈사가 말했다.

"그건 니 맘대로 해라. 어차피 네 녀석은 지맘대로 진행하다가 말도 안되는 문제가 일어나서 죽든가 살든가 둘중 하나잖아. 그러다가 뜬금없이 중요한 단서를 얻기도 하고."

"......"

"난 그럼 장령곡에 가 있겠다."

파앗

제갈사는 기묘한 마법을 부려서 웬 기괴한 마물을 소환해내서 위에 올라탔다. 저건 비야키라고 불리는 생물으로서 엄청난 속도로 이동할 수 있는 마물이었다. 이윽고 비야키가 사라지자 망량이 말했다.

"백웅. 지금 당신은 시도해볼 수 있는 책략이 무궁무진하게 많소."

"알고 있소."

"나든 제갈사든 당신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나 가능성은 산더미처럼 있소. 하지만 당신에게 섣불리 말하지 못하는 것은, 당신의 모험이 지닌 외연이 너무나 넓어져서 감히 인간의 지혜로 재단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오."

망량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백련교 천령단의 건만 해도 그렇소. 우리는 모두 천령단을 얻어야한다는 전제하에 움직이고 있었으나, 결국 그건 함정이었다는게 밝혀졌지. 이 세상에는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소. 그리고 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당신의 전생자로서의 감."

"음... 내 감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조언을 아끼고 있단 말이오?"

"바로 그렇소."

망량은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당신은 이제 자신의 의지로 길을 선택할 수 있으니 애취급하며 책략을 주입시킬 수 없소. 자기자신을 갈고닦으며 좋아보이는 길을 선택하시오. 그게 뭐든간에 좋은 결과를 보일거라고 생각하오."

그렇게 조언해 준 망량도 떠나갔다.

' 책사들의 배려인가.'

효율적으로 보자면 망량과 제갈사가 당장 내게 붙어서 이것저것 해보자고 복잡하게 전략을 수립하는게 제일 좋으리라. 그러나 두 사람이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 할일을 하러 간 것은 내 '직감'이 옳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마음을 결정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못 만나본 사람들을 만나보러 갈까."

나는 직후 목갑과 비등을 이용해서 지금껏 구출했던 사람들을 모두 풀어주었다. 해적포로들을 풀어준 후 무영문에 방문했고, 검마에게 딸 서문혜를 돌려주며 내 흑요석을 건네주었다.

검마는 내 기억을 읽은 후 크게 놀란 듯 했다.

"으음...!! 그런 일이 있었다니."

"검마 어르신.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뭔가?"

"여기에 남궁세가에 희생된 피해자 여인들을 모두 데려왔습니다. 무영검제 어르신을 설득해서 남궁세가를 징치하는 일에 협조해 주십시오."

"......"

검마는 팔짱을 끼며 침묵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자네 생각을 알 것 같군. 포로 건을 해결하면서 내게 무영검제를 소개시켜주려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좋네. 내게는 나쁠 게 없으니 그렇게 하지. 다만..."

검마가 말꼬리를 흐렸다.

"나는 이제 자네가 걱정되는군..."

내가 검마를 쳐다보자 검마는 말했다.

"신과 싸우겠다는 자네의 의지가 진실이라는 건 알 수 있네. 그러나 그걸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수단으로 사용할 정도로 각오를 하게 되다니... 장래에 자네의 인간성이 마모되어 괴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드네."

나는 한숨을 쉬었다.

"문주님. 신 앞에서 인간성은 소용없습니다..."

그걸 직접 대면하고 20번 넘게 죽으며 깨달았기에,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선택지를 고르게 된 것이다.

"... 그렇군."

씁쓸하게 웃은 검마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가 봅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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