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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441화 (441/1,615)

00441  암천향(暗天鄕)  =========================================================================

나는 제갈사의 말대로 내가 모을 수 있는 보물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천암비서와 비등을 얻었으니 나머지를 모으는 건 시간문제였다. 나는 먼저 제갈사와 함께 곧장 대뢰옥의 지하로 갔고, 이번에도 삼보절기의 수련을 겸해서 달의 짐승과 전투를 벌였다.

쿠우우...

거대한 달의 짐승이 기음을 내며 쓰러졌다. 내가 동굴 안에 들어가서 목갑, 나인성본전, 쌍검까지 챙기고 나오자 나를 따라온 제갈사가 말했다.

"어디 좀 보자고. 그러려고 온 거니까."

제갈사는 달의 짐승의 시체를 한참동안 살폈다. 그리고는 말했다.

"이거 쓸만하겠는데?"

"쓸만하다고? 어떤 점에서?"

"달의 짐승이라는 종족 중에서 이놈 정도로 큰 놈은 없어. 보통 놈들은 기껏해야 팔 척의 크기인데 이 놈은 그것보다 최소한 다섯배는 더 크잖아. 그 말은 이 놈이 품고 있는 마력이 매우 강하다는 말이다."

역시 마도사다 보니 이족에 대해서 박식하다.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달의 짐승을 살폈다.

"그래서 강력한 주살능력을 쓸 수 있었던 건가?"

싸우는 도중에 이 놈이 몇 번인가 주살파장을 발사했었다. 당연히 뒤에서 관전하고 있던 제갈사도 주살파장에 맞았지만 놈은 마도술법에 익숙한지 미리 방어를 해서 아무렇지도 않아했다. 제갈사가 질척거리는 짐승의 외피를 단도로 슥 자르려 하자 미끌거리는 점액 때문에 벨 수가 없었다.

"흐음... 이대로는 써먹기 힘들겠군. 네가 무공을 써서 이놈 가죽을 좀 벗겨줄 수 있겠냐?"

나는 달의 짐승의 거대한 크기를 보자 기가 질렸다.

"으... 이렇게 커다란 놈의 가죽을 통째로 벗기라고!"

"이놈의 가죽을 모아서 마도구를 만들거나 [옛 지배자]에 대한 공양으로 쓸 수 있다. 무기나 방어구를 만드는데도 탁월할테지. 고기는 마(魔)를 품고있으니까 태워버려라."

"알았다."

나는 별 수 없이 일단 시간이 조금 소모되는 걸 각오하고 짐승껍데기를 벗기기 시작했다. 검강을 시전하자 마치 두부처럼 잘려나갔지만 워낙 크기가 커서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무려 두 시진동안 죽어라 가죽을 벗긴 결과 달의 짐승의 껍데기를 얼추 다 벗겨낼 수가 있었다.

그리고 벗겨낸 껍데기를 한켠에 쌓아두자 그것만으로도 웬만한 집 한 채만한 크기였다. 제갈사가 킬킬 웃었다.

"흐흐. 일단 목갑에 넣어둬. 나중에 쓸 수 있으니까."

"좋아, 그럼 이제 바로 황연 일행을 목갑에 넣고..."

"잠깐. 그것도 내가 봐야겠다."

"뭐?"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

나는 일단 제갈사와 함께 황연 일행이 갇혀있는 뇌옥으로 올라가서 하나하나 구해주었다. 제갈사는 그들 중에서 이족화(異族化)되어서 마치 반인반마의 괴물처럼 변해있는 존재들을 살피며 말했다.

"흉신의 축복 맞군."

그러고보니 예전에 대뢰옥 구출작전을 처음으로 성공했을 때 희생자들을 데리고 오자, 망량선사가 이들이 걸려있던 저주를 [흉신의 축복]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제갈사는 그때의 내 기억을 읽었기 때문에 되짚어보기 위해 나를 따라온 것이리라. 예전에 망량선사가 설명했던 게 떠올랐다.

[ 인간에게는 저주지만, 저 주술은 분명히 흉신의 축복이다. 흉신은 다른 [옛 존재]와는 달리 자신의 권속을 함부로 늘리지 않는다. 수가 적은 대신 하나하나가 필멸자 답지 않게 강력하지. 완전히 흉신의 후예로 변이하게 되면 영생불사가 보장되는데다가 뛰어난 술법능력까지 생기니, 이족들은 저 축복을 받지 못해서 안달일 정도다.]

인간에게는 저주지만 이족에게는 축복.

나는 그 말을 되뇌다가 이상한 걸 느끼고 제갈사에게 물었다.

"제갈사. 뭔가 이상하지 않아?"

"뭐가?"

"내 기억으로 완전히 흉신의 축복으로 흉신의 후예로 변신하게 되면 영생불사에 뛰어난 술법능력을 가지게 된다던데, 이건 그냥 저주받아 죽은 꼴이잖아."

실제로 그랬다. 흉신의 축복을 받아서 변이해버린 희생자들은 자력으로는 움직일수도 없고 마치 벌레처럼 꿈틀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몰골이 기괴한데다 끔찍한 소리를 흘리기도 했으니 저 모습에서 강력한 권능같은 걸 상상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제갈사가 흉신의 축복을 받은 자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야, 잘 봐. 이놈들 중에서도 부류가 나뉘니까."

"......?"

"원래 인간처럼 약한 종족은 이렇게 강력한 신의 축복을 버틸 수가 없다. 그래서 열에 아홉은 그냥 죽거나 저급 이족으로 타락하기 마련이지만... 여기 몸 전체가 새까맣게 변한 놈들이 보이지?"

확실히 그렇다. 다른 희생자들과는 달리 몸색깔이 새까매진 놈들이 있었다. 내가 힐끔 살펴보자 제갈사가 그 놈의 촉수를 꽉 쥐고는 히죽 웃었다.

"이런 놈들은 축복을 버텨낸 거야. 원래부터 신체나 정신이 강인하거나 특출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던 자들이겠지. 모르긴 해도 몇 년만 지나면 우화(羽化)해서 흉신의 종족으로 재생(再生)하게 된다."

나는 그 말 뜻을 깨닫자 좋지 않은 표정이 되었다.

"고위 이족이 된다는 소리냐?"

"그래. 이 대뢰옥에 죄수를 가둔 놈은 일종의 실험을 했던 모양이군. 자신들의 명령에 따르는 고위이족을 탄생시키기 위한 부화장으로 여겼던 게 분명해."

".......!!"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꾸했다.

"주작 제갈유룡!"

"뭐 당연히 그렇겠지. 형님도 참 악취미인데."

"음... 하지만 그게 지금 무슨 의미가 있지? 흉신의 종족으로 부화할테니 죽여야 한단 말이냐?"

내가 의문을 표하자 제갈사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지. 이런 마도실험을 기껏 해놨으니 이쪽에서 그 성과만 가져가겠단 소리야."

"흉신의 자손을 부화시키자고?"

"그래. 네놈 명령에 따르는 이족 군단을 하나 만드는 거지..."

"......"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반문했다.

"고위이족이라고 했는데 흉신의 후예라는 게 얼마나 센 거냐?"

"아주 세지. 인간과의 격차가 심대해."

"흐음."

"뭐, 마도지식이 별로 없는 네 녀석한테 설명하려면 좀 쉽게 비유를 해줘야 할까."

제갈사가 훗하고 웃더니 나뭇가지로 세모꼴의 도형을 땅바닥에 그렸다. 그리고는 제일 밑의 큰 변에 금을 그으며 말했다.

"이 세상 전체의 종족분포로 볼 때, 최하층의 먹이사슬에 인간보다 저급한 동식물과 미생물 일체가 속해 있다. 그 다음으로 인간이 있지."

지익

제갈사가 하나의 금을 더 긋고 그 변에 人間이라는 글자를 썼다. 나는 표정이 안 좋게 변했다.

"최하층을 겨우 모면한 수준이라고... 그 정도로 인간의 위치가 낮은거냐!"

제갈사가 고소를 지었다.

"애초에 인간은 [옛 존재]가 식량 겸 애완동물로 창조한 하위종족이야. 게다가 기술의 발전도 미개한 수준이라서 행성을 벗어날 능력도 없지. 육체는 약해빠졌지. 거기에 타고난 영력이나 마력도 바닥을 치지... 인간은 약해빠지고 아둔한 종족이다. 만인의 호구, 타고난 찐따라고 해 둘까."

"......"

"인간보다 강력한 이종족은 수도 없이 많아. 하다못해 나이트건트나 구울도 인간보다는 강하지. 그리고 중상 쯤에 네가 방금 쓰러뜨린 달의 짐승이나 뱀 인간이 있고."

지익

금을 긋던 제갈사가 최상층 바로 아래쪽 변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이쯤부터 고위 이족이라고 부르기 시작하고, 여기에는 [위대한 종족]과 [흉신의 후예]가 포함된다. 수천 수만이 넘는 이종족 중에서도 강력하기로 손꼽히는 존재들이지. 기본적으로 인간을 가볍게 초월하는 과학과 마법을 보유하고 있으며 행성은 물론이고 은하를 누빌수도 있다."

"세모꼴의 최상층에는 누가 있는거냐?"

"몰라서 묻냐? 당연히 [옛 지배자]거나 그 화신이지."

"그렇군."

대충 설명을 끝낸 제갈사가 희생자의 촉수를 놓으며 말했다.

"이 놈들을 잘 이용하면 너만을 위해 움직이는 고위 이족 친위대를 만들수도 있다. 어떠냐?"

"내키지 않는데."

"고위 이족은 인간과 성장한계치 자체가 격을 달리하니까, 우화한 놈들은 조금만 수련해도 엄청난 초능력과 마법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다."

제갈사가 나를 설득하려는 듯 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인간이야. 전투병기로 쓸 수는 없어! 내가 알고싶은 건 그들을 괴물로 탄생시키는 방법이 아니라 인간으로 되돌리는 방법이다."

"크... 기회를 또 이렇게 놓치는군. 뭐 네가 그런 놈인건 알고 있었다만."

탄식하던 제갈사가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 방법이라면 이미 망량선사가 제시해 줬지. 나도 그 이상의 방법은 없다 생각한다."

"역시 그런가."

"정말 좋은 방법이라면, 술수의 근원인 흉신(凶神)을 쓰러뜨려버리면 되는데 크크."

그거야말로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언제고 흉신이라고 해도 쓰러뜨리겠다고 마음먹으며 제갈사에게 물었다.

"제갈사. 흉신이란 존재는 대체 뭐지?"

"[옛 지배자]잖아."

"그런게 아니야. 그 놈은 지배자 중에서도 르뤼에를 부상시켜서 인간을 멸망시킬 존재인데, 그렇다면 [옛 지배자] 중에서도 특별히 강력한 존재라는 건가?"

"호오, 대충 감으로 찍은 거 같지만 뭐 정답이다."

제갈사는 근처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그 존재는... 내가 알기로 하늘을 통해 하나의 세계에서 또 다른 세계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단순히 마도사들이 차원을 넘나드는 정도가 아니라 우주의 거대한 굴곡을 통과해서 절대무량한 시공간을 이동할 수 있었다는 거지."

"......"

"또한 외신 요그 소토스의 손자이자 누그의 자손이니 혼돈의 직계일테고, 현존하는 [옛 지배자] 중에서 가장 외신에 가까운 존재라고 평가받는다. 무시무시하게 강력한 건 틀림없어."

나는 짜증이 나서 말했다.

"도대체 그 놈은 가만히 바다에 처박혀 있으면 될텐데 왜 굳이 일어나서 인간을 멸망시키는 거지?"

"니가 잠을 자고 있는 도중에 근처에 개미들이 개미집을 만들었다면, 그거 부수는데 이유가 있겠냐? 불쾌해서라도 부숴버리지 않을까?"

"크윽..."

"뭐 그런 거다. 신들에게 있어서 인간은 먼지같은 존재니까."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더 할 일이 없으면 움직인다."

"그러든가."

파앗

다음으로는 혈도단이 있는 곳으로 가서 혈도단을 다 쳐죽이기 시작했다. 내가 혈도단을 몰살시키자 제갈사가 말했다.

"다음부터는 몇 놈 남겨두는 게 어떠냐? 인신공양을 할 때 쓰게."

"그냥 죽이는게 나아. 신경쓰는게 더 귀찮다고."

나는 그렇게 대꾸하며 혈도단의 보물을 챙기며 인질들을 구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혈도단의 일이 끝나자마자 남궁세가 근처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조금 망설여진다. 지난번에 보물을 찾으러 돌았을 때와 시간대가 안 맞으므로, 지금 검왕 남궁명이 있을지 없을지를 잘 모르겠다. 지난번의 폭탄이 통한 것은 운좋게 다 모여있는데다 기습이었기에 효과가 좋았던 것이다. 내가 고민하자 제갈사가 말했다.

"뭘 고민해? 그냥 가 버려. 남궁명같은건 네가 상대해야할 적에 비하면 잔챙이에 불과한데 뭣하러 이런 놈한테 시간과 심력을 낭비하는 거지? 꼭 없애야하는 놈도 아니잖아."

"말은 쉽지만 남궁명과 남궁환을 놔두면 계속 희생자가 발생할거다."

"지 일도 아니면서 오지랖은 쩌는군..."

투덜거리던 제갈사가 말했다.

"일단 냅둬 그냥. 더 중요한 일이 지금 남아 있으니까 그걸 처리하고 죽여도 늦지 않아. 정 껄끄러우면 여자들이나 구해내고."

"그러지."

파앗

남궁세가에서 여인들을 구출한 나는 내황각 서고에 가서 무명제사서를 목갑에 넣었다. 그 후 수요의 유적에서 얻을만한 걸 다 얻은 후 백련교의 성련재배지로 가서 성련을 몇 송이 꺾어왔다. 그리고 나서 공동산의 삼황내문을 얻었고 마지막으로 태경촌의 은빛 봉황조각을 얻어냈다.

이걸로 얼추 다 진행한 듯 하다. 나는 일련의 행위를 하며 일부러 수정석비는 가져오지 않았다. 황궁을 괜히 건드리기 싫었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제갈사를 쳐다보았다.

"황궁에서 제갈부를 없애버릴 줄 알았는데 그렇게 하자고 안 하네."

"뭐하러 음양천고를 폭발시키냐? 음양천고가 심어져 있으니 나는 원할 때 언제든 놈의 오감을 공유할 수 있는데. 물론 기억을 읽거나 조종까진 못 하지만."

"뭣!"

그런 기능도 있단 말인가?!

그 말대로라면 음양천고 또한 보패에 못지 않은 고독이 분명했고 이혼대법에 걸린것과 다름이 없어보였다. 조종만 못할 뿐 오감으로 보고듣는 정보가 모조리 전달된다는 건 굉장했다. 그리고 그런 독랄한 고독을 조카에게 박아넣은 제갈사는 정말 미친 놈이었다.

제갈사가 말했다.

"자 그럼 정리하고 수기공양의식을 진행해 보자고. 이번에는 반드시 방법이 생긴다."

나는 우선 수기공양을 준비하기에 앞서 망량에게 삼황내문과 순어구를 줬다. 그리고 천우진을 설득해서 의식을 시작했으며 이윽고 태허천존이 소환되었다.

고오오오

나는 태허천존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차례를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두 번째인 서왕모의 차례를 넘어서 세 번째 대라신선이 도착하자 말했다.

"저는 그대의 축복을 받고자 합니다!"

그 대라신선은 의외라는 듯 말했다.

[ 흠... 그렇다면 나 남화노선(南華老仙), 네게 태평요술서를 주겠다.]

세 번째 차례는 바로 내 19번째 생에서 백련교주와 싸웠던 남화노선!

남화노선이 주섬주섬 태평요술서를 꺼내서 주려고 하자 나는 단호하게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당신께 원하는 축복은 그게 아닙니다."

[ 음...?]

나는 살며시 말했다.

"태평요술서가 아니라, 태평요술(太平妖術) 그 자체를 원합니다. 태평요술의 술법을 수기공양의 댓가로 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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