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40 암천향(暗天鄕) =========================================================================
22번째 삶이 시작되었다.
영체가 파괴되는 지끈거리는 고통을 억지로 딛고 일어섰다. 예전에 예의 화살 9발을 다 맞았을 때와는 달리 고통이 금새 끝나서인지 순간적인 고통은 강했으나 전체적으로는 버틸만 했다.
' 의외군...'
내가 결계를 부수려 하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건 예상하고 있었지만 난데없이 투전승불이라는 존재가 끼어들줄은 몰랐다. 이번 죽음은 내 실책이라기 보다는 예상밖의 복병이 등장한 탓에 실패한 것이다.
투전승불, 싸움만 하면 이기는 부처.
원숭이같은 겉모습.
구름 위에 타고 있고 거대한 막대기를 휘두를 수 있다.
' 요괴선인 출신인가?'
아무튼간에 새로운 적이 출현한건 확실하다. 그리고 천계 신선의 도움을 받아서 칠요의 결계를 파괴하려고 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파괴하려고 하면 다른 투선이나 신령이 뛰쳐와서 방해하는 것이다!
아마 검선 여동빈의 힘을 빌린다고 해도 똑같은 현상이 벌어질 것이다. 여동빈이 이기어검을 발휘해서 자해를 해버리는 상황도 있을 수 있었다.
나는 예가 발사했던 적궁백시의 위력을 머릿속에서 가늠해 보았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교주가 혼돈의 가능성을 끌어내서 원영신의 전력을 다한다면 뚫을 수 있을지도...?"
그러나 확실하지 않다. 적궁백시는 발수가 높아질 때마다 위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졌다. 교주의 장력과 심천무량의 공력도 초인적인 것이지만 진짜배기 투선의 전투력과 비교하면 조금 부족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혼돈의 가능성을 끌어낸 변신형태는 되어야 할 듯 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지금의 교주를 찾아가서 다시 백련교와 함께 할 자신이 없었다. 백련교주가 나름대로의 정의를 가지고 진공가향을 실천하려 하는 건 사실이지만 문제는 천하의 균형이었다.
현재 이 무림세상은 3대 세력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
백련교는 황궁을, 황궁은 백련교를, 그리고 십이율은 그런 둘을 주시하고 있었다.
어느 쪽 하나라도 무너지게 되면 단숨에 판도가 뒤집히게 되어버리며 크나큰 비극이 일어나는 것이다. 특히 백련교와 황궁은 서로 암중에서 견제하고 있는 관계였기에 섣불리 내가 교주에게 손을 뻗는 건 안될 일이었다. 흑백련을 주는 것부터가 교주에게 채워진 족쇄를 풀어버리는 일이기 때문에 결코 시도해선 안 된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백련교를 칠 필요도 없으니, 일단은 내버려두는 게 나았다.
' 이번에는... 조언을 좀 들어야겠지.'
현실적인 벽에 부딪힌 상태에서 충분히 노력했다면 그제서야 책사의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것. 나는 제갈사의 말뜻을 온전히 이해할 수가 있었다. 이대로 어거지로 발버둥치다보면 답이 나올지도 모르지만 그정도 고생까지는 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우선 천암비서와 비등을 얻고 나서 동영에 가서 흑요석을 채굴했다. 그리고나서 곧바로 제갈사에게로 갔다. 조언을 듣는 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파앗!
나는 장령곡 근처의 마을에 도착했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서 장령곡에 진입하려 하자 진(陣)이 펼쳐져 있는 걸 알아챘다.
' 아 맞다!'
장령곡주이자 광서생인 제갈사의 또 다른 무림에서의 별호는 귀곡자(鬼谷子)였다. 그런만큼 진법에도 뛰어난 조예를 지니고 있었으며, 망량과 함께 왔을 때는 이걸 뚫느라 망량이 크게 머리를 썼던 것이다. 나는 과거 망량과 제갈사를 찾아왔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 여기서 한 걸음만 앞으로 옮겨도 진법이 시작되오.]
[ 이건 어떤 진이오?]
[ 천혼일기(天混一氣)의 진(陣)이오. 정말 인성 하고는...]
[ 인성? 그렇게 사악한 진이오?]
[ 사악하다기보다는 못된 진이오. 제대로 걸려도 죽지는 않겠지만 죽을 정도로 고생하다가 눈물콧물 질질 싸고 도망치게끔 되어 있소. 망신살을 주려는 용도로 만든 진이라고 할 수 있소.]
어쨌든간에 그 때의 망량은 보법만으로 제갈사가 펼친 천혼일기의 진을 파해했으며, 뒤따라왔던 내가 망량의 파해법을 외우지 못하자 진법의 핵까지 읽어내어 부순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의 기억을 필사적으로 떠올리기 시작하자, 망량이 말했던 천혼일기의 진의 특징도 기억해낼 수 있었다.
[ 이 천혼일기의 진은 정석 중의 정석으로 만들어진 진법이오. 날고기는 고수가 한달음에 경공으로 뛰어서 통과하려 해도 무조건 걸릴수밖에 없지만, 올바른 순서에 따라서 파해하면 아녀자나 어린아이라도 없앨 수 있게 되어 있소. 그렇다 해도 아주 있는 힘껏 꼬아놔서 왠만한 진법지식으로는 들이댈 수 없겠지만. ]
"......"
즉, 그 말 대로라면 이건 진법지식에 정통한 자가 뛰어난 신기묘산으로만 풀 수 있는 정석적인 진법이란 뜻이다. 나도 진법은 조금 알고 있지만 내가 들이댈 정도가 아닌 건 분명했다. 나는 그냥 힘으로 날려버릴까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 할 수 없군. 조금 의심을 사더라도 비등을 쓰는 수밖에.'
내가 비등을 써서 장령곡주의 건물 내부로 바로 순간이동해 들어가면 진법은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제갈사가 자신이 지내는 생활공간에까지 진법을 펼칠 리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이 있는데도 비등을 바로 안 썼던 이유는 최대한 제갈사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제갈사가 의심을 하기 시작하면 한도끝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혼일기의 진을 정석으로 통과할 수 없는 이상 약간 의심을 사는 수밖에 없다. 망량을 데려와도 되겠지만 그렇게까지 해야하는지는 의문이라서 그냥 밀어붙였다.
곡주의 방에 들어서자, 그곳에는 제갈사가 검으로 누군가의 목을 베고 있었다.
푸슛...
파공음과 함께 은빛 검광이 핏빛과 함께 비산했다. 희생자의 머리통이 바닥에 툭하고 떨어졌다.
"......"
제갈사는 살인현장이 들켰는데도 당황하지 않고 반가운 듯 내게 말했다. 그의 손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장검이 들려 있었다.
"어? 누구냐? 너도 내가 내는 수수께끼를 맞춰볼 테냐?"
목이 떨어진 자는 제갈사의 수수께끼를 맞추고 금괴를 얻으려 했다가 실패한 듯 했다. 나는 그 시체가 가만히 선 채로 목이 깔끔하게 잘려나갔으며, 순간적으로 보았던 제갈사의 검초가 상당한 실력이라는 걸 알아챘다.
' 역시 이 자식, 무공을 익히고 있군.'
술법사나 마도사가 무공을 익히지 말라는 법은 없다. 특히 제갈사는 예전에 발차기 한방으로 제갈부의 머리통을 뽑아 날릴 정도의 각력을 선보인 적이 있으므로 십중팔구는 무공을 익히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시중의 허섭스러운 삼류무공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일류무공이 분명했다.
나는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장령곡주 제갈사 맞소?"
"알고 찾아온 거 아니었냐? 그보다 넌 누구지?"
이 놈은 내게 '어떻게' 들어왔냐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미 나를 의심하고 있다는 소리다. 어느쪽이든간에 의심스러운 놈인 건 마찬가지니까 자기소개부터 듣겠다는 식이었다. 나는 긴장하며 입을 열었다.
"나는 백웅이라고 하오."
"그렇군... 백웅... 근데 그래서 어쩌라고?"
"......"
나는 제갈사 놈이 멀뚱멀뚱 아무 생각없는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걸 보자 소름이 끼쳤다. 언뜻 순진해보이는 모습이었지만 나는 저놈과 오래 지내보았기에, 저런 낌새가 광기가 폭발하기 직전의 상태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제갈사는 이성적인 놈이었지만 이따금 광기를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사악하고 잔혹해질 때가 있었다.
나는 제갈사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장령곡주. 수수께끼란 거 한번 내 보시오. 다만 나는 금괴같은건 필요하지 않소!"
이대로 바로 흑요석을 주고 제갈사의 기억을 전승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제갈사가 내는 수수께끼의 정답을 알 수가 없다. 일단 첫 도전이니까 문제와 답부터 파악해놓는게 내게 이득일 것이다.
"호오. 꼬마가 아주 당차구나. 크크..."
제갈사는 뭐가 즐거운지 킬킬 웃다가 말했다.
"그럼 수수께끼의 대가로 뭘 원하지?"
"당신이 이 흑요석을 받아주기를 원하오."
나는 손바닥 위에 꽉 차는 흑요석을 올려서 그에게 보여주었다. 흑요석을 본 제갈사는 눈에 이채를 띄며 말했다.
"그건 술수로 가공된 보석이군. 네 녀석은 마도사냐? 술법사냐?"
아니라고 해봤자 이 놈한테는 무의미하다. 그래서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런거 아니오. 한가지 말해두자면, 이 흑요석은 기억을 전송하는 능력이 있소."
"마도사 맞구만 뭘. 그것도 마법으로 가공한 거지?"
"상상에 맡기겠소."
나는 오랜 경험으로, 제갈사 앞에서 머리써봤자 원숭이가 인간 앞에서 재주넘는 꼴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면승부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제갈사. 이 도박을 받아들이겠소?"
제갈사는 유쾌하게 웃었다.
"크하하... 물론! 네 녀석도 제정신은 아닌 거 같으니 한번 놀아보자."
"좋소."
"네놈이 지면 네 목숨은 내 거다."
"알았소."
물론 그 웃음을 진정 유쾌하다고 느낄 수는 없다. 놈의 광기가 점점 극에 치달아가는 게 선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어디 문제를 내 보시오."
"흐음... 어디보자... 네 녀석에게 낼 만한 문제는..."
잠시 고민하던 제갈사가 히쭉 웃으며 갑자기 말했다.
"아침에는 네 발, 오후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게 뭐냐?"
"......"
뭐, 뭐지?
나는 제갈사의 수수께끼에 잠시 당황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이상한 문제가 나왔기 때문이다.
' 아, 아냐... 이거... 저번에 망량한테 답을 들은 거 같은데...'
어렴풋이 들은 기억이 난다. 그러나 기억의 양이 많은데다 당황해서인지 잘 기억이 안 났다.
아 뭐였지? 이럴 줄 알았으면 망량한테 들렀다 올걸!
하지만 나는 이내 당황을 숨기고는 말했다.
"제갈사 당신이오!"
"호오. 정답에 가깝긴 한데... 왜지?"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내가 당신과 싸운다면 내일 아침에는 당신이 네 발로 기게 만들 수 있고, 오후에는 죽으면 안 되니까 두 발로 설 수 있을테고, 저녁에는 사지 중 하나가 불구가 될테니 세 발이 될 것이오!"
어떠냐!
"......"
"......"
"너 바보지?"
어이없어하던 제갈사가 김이 샌듯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야, 꺼져라. 애는 원래 안 죽이니까."
"맞춘거요 아닌거요?"
"반반인데 넌 정말 멍청하구나. 그래서 인정 못 해."
그렇게 대꾸한 제갈사는 고개를 홱 돌리고는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나는 제갈사가 무시하려는 걸 뒤쫓아가며 말했다.
"제갈사. 내가 누군지 궁금하지도 않소?"
"조금 궁금하다만 어차피 내 진을 뚫고 온 이상 한가락 하는 놈일 거 아니냐? 어느 무림세력 소속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얌전히 있을 때 돌아가는 게 좋을거다."
제갈사가 나름대로 엄포를 놓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흑요석을 던졌다.
"받으시오!"
"싫~어."
제갈사는 받지 않았고, 흑요석은 땅을 굴렀다.
키리리링...
흑요석이 바닥을 구르자 제갈사는 싸늘한 눈으로 말했다.
"너 정말 바보냐? 백웅 네놈이 마도사인게 뻔한데 네놈이 마법으로 가공한 보석을 내가 왜 받아? 무슨 마법을 걸어놨을줄 알고?"
저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동안 흑요석을 순순히 받아들였던 사람들이 마법에 대한 경계심이 적었던 것 뿐이었으리라. 제갈사는 마도의 힘을 다루고 있으므로 그 위험성과 위력을 당연히 알고 있었고, 내가 흑요석을 주는 걸 절대로 받지 않으려 할 것이다.
나는 결국 최후의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가식은 집어치우고 놈이 멈춰설 수밖에 없는 정보를 외쳤다.
"배교교주 제갈사! 벽지상과의 계약은 얼마나 남았지? 이제 곧 그녀를 찾아가서 배교 교주로서 인정받아 마왕의 만신전을 세우는데 협력해야 할텐데, 이렇게 놀고 있어도 되냐?"
멈칫
그 순간 제갈사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조용히 멈춰섰다. 그리고는 눈에서 섬뜩한 빛을 흘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너, 누구냐?"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광기로 가려져있던 냉철한 이성과 살의가 동시에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훗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백웅! 너와 마찬가지로 배교교주다."
"크크... 크크크...."
제갈사가 광소를 흘렸다. 나는 이제 곧 제갈사가 사법을 써서 공격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전모를 알고 싶다면 그 흑요석을 집어라! 그 다음에 얘기할 수 있을 테니까."
"......"
침묵하던 제갈사가 히죽 악의어린 미소를 지었다.
"한 번 속아줄까."
잠시 후 제갈사는 허리를 숙여서 흑요석을 집어들었다. 잠시 후 흑요석을 통해서 기억의 전송이 시작되자, 제갈사는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기억의 전송이 완료되자, 제갈사는 그답지 않게 멍청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러더니 불신 가득한 표정으로 변하더니, 이내 황당하기 그지없어하는 표정이 되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표정만 시시각각 바뀌던 제갈사는 잠시 후 말했다.
"네 녀석은 병신새끼신가? 처먹여줘도 지랄이네?"
"......"
"... 하, 웃기고 있어."
제갈사는 복잡한 표정을 짓더니 말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가만히 서서 그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한참 후 제갈사는 자신의 방에서 나오며 말했다.
"백웅. 현이나 보러 가야겠다. 나를 현이한테 안내해."
"잠깐!"
제갈사가 성큼성큼 이쪽으로 다가오자 나는 그를 제지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네가 이혼대법을 걸면 나도 가만 안 있을거다! 육 성에 이르러있으니 네녀석이 술수를 걸어도 저항할 수 있어."
"그러시겠죠~ 빨리 비등이나 써, 멍청아!"
"알았어."
제갈사가 퉁명스럽게 말했으나 나는 충분히 경고할 필요가 있었다. 제갈사가 만일에 또다시 이혼대법을 걸려고 하면 아주 일이 귀찮아지기 때문이다. 대성에 달한 이혼대법이 어떤 위력을 지니고 있는지는 지난번에 제갈사에게 당해봐서 아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파앗
나는 이윽고 제갈사와 함께 진랑곡의 망량에게 도착했다. 그리고 망량에게도 흑요석을 전달해서 기억을 전승시켰다.
"......"
기억을 전승받은 망량과 제갈사의 눈이 마주쳤다. 제갈사는 말도 안 된다는 듯 한탄하며 말했다.
"현아. 어쩌다 이런 멍청이한테 코를 꿰었단 말이냐? 우리가..."
"흠... 저도 지금 아주 심경이 복잡합니다만..."
망량도 막 기억을 전승받은 터라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더니 망량이 생각을 정리한 후 말했다.
"그를 따르는 수밖에 없습니다, 숙부."
제갈사는 망량의 말을 듣자 눈에 이채를 띄었다.
"너 웬 일이냐?"
"웬 일이라뇨?"
"죽어도 나를 인정하지 않으려 들더니."
"어차피 같은 세력에서 앞으로 지낼거라면 친하게 지내는 게 낫겠죠."
"크크크..."
망량은 말을 얼버무렸지만 제갈사는 망량이 귀엽다는 듯 웃었다. 아마도 망량은 지난번 전생부터 제갈사의 행적을 읽더니 약간은 그를 인정한 모양이었다.
그 순간 제갈사의 심경이 뭔가 변한 느낌이 들었다. 제갈사는 인심 썼다는 듯 내게 말했다.
"그래그래~ 나는 너같은 놈한테 목숨바쳐 충성한 그 멍청한 제갈사가 아니다만, 백웅 너는 내게 충분히 빚진 기분을 앞으로도 막대하게 느껴라. 너같이 인정에 약한 멍청이는 밑바닥까지 울궈먹는 게 정석이지."
"......"
나는 19번째 전생에서 이 놈에게 도움받고 감동했던 일이 손해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무리 그렇게 생각해도 입밖으로 그렇게 낼 건 뭐란 말인가? 내가 내심 투덜거리자 제갈사가 내게 포권했다.
"그럼 쭉 가보자고, 주군."
"어? 아, 알았어."
나는 멍해졌다. 방금 저 놈이 나한테 주군이라고 한 건가?
하지만 놀랄 틈도 없이 제갈사가 바로 내게 헌책했다.
"그럼 지금부터 움직여서 보물 싹 다 모아와라!"
"모아와서?"
"흐흐. 난 네 지난생의 현이가 답을 알고 있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아까 생각하다가 그게 뭔지 알아냈지."
"뭐?"
제갈사가 킬킬댔다.
"방법이 딱 하나 있다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