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38 암천향(暗天鄕) =========================================================================
21번째 삶이 시작되었다.
"흐아아악..."
입에서 연기가 뿜어져나오는 기분이다. 환통이 목젖을 간질거렸다.
나는 전신이 탄화되었던 찰나의 고통때문에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하지만 통증을 낮추는 호흡으로 간신히 정신력을 되돌리고는 숨을 몰아쉬었다. 어느정도 진정이 되자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아! 화요가 있는 곳까지 갔어!"
지금까지 쓸까말까 하다가 망설이며 쓰지 못했던 궁극의 비기 - 대운중첩!
나는 대운을 중첩시켜서 한번에 고민되던 걸 뚫어버리는 꼼수를 사용하는 게 가능했다. 실제로 나는 말도 안되는 대운을 이용해서 지금까지 막히고 있던 화요의 유적을 한번에 뚫어버리고, 수호자인 공공도 주워먹기식으로 쓰러뜨려서, 화요 간장 바로 앞까지 도달했던 것이다. 비록 간장에 어마어마한 수천 년치의 화기가 스며들어 있다는 건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게 있어서는 큰 이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좋은 방법을 지금까지 쓰지 못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어찌되었든 대운중첩의 유지시간이 매우 짧았으며, 심지어 대운의 반동으로 나는 반드시 극도의 불행에 빠져서 죽게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성과가 좋다 한들 내가 죽으면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때까지 죽음에 거리낌이 있었으며, 지금까지는 다른 보물을 갖고 진행할만한 일이나 무공수련, 술법수련이 산재해 있었기에 굳이 대운중첩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항우의 가호 또한 최고의 가호 중 하나지만 일부러 받지 않았었다.
하지만 나는 19번째 전생에서 마음가짐이 약간 바뀌었다. 지금까지 막연하던 '신'이란 존재의 실체와 가공할 위력, 악의를 깨닫고 나니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무공과 술법의 경지를 올리는 것만으로는 신의 힘에 티끌만큼도 도달할 수 없다는 걸 실감하게 되자 최대한 빨리 칠요를 모아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그래서 죽는 한이 있어도 일단 화요부터 돌파하기로 한 셈이다.
결과는 아주 좋다. 나는 이제 화요가 있는 봉인지에서 화요를 꺼내오는 게 가능하다. 단지 한 가지 문제가 있을 뿐이다.
' 화기...'
나는 화요에서 느껴졌던 그 무시무시한 화기를 느끼고 전율했다. 마치 신화시대의 화염을 응축해 놓은 것처럼, 나는 아무리 내공력을 끌어올려서 저항하려 해도 그저 고통스럽게 죽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직접 집게 되면 파멸할 수밖에 없으니, 화요를 목갑으로 옮길수가 없으며, 심지어 화요를 가지고 싸우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것이다.
' 흠... 그렇다면 직접 손을 안 대면 되잖아!'
나는 금새 간단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대운중첩같은 귀찮고 죽을 수밖에 없는 방법을 쓰기보다는 바로 생각난 것을 확인하는 전략으로 가기로 했다.
먼저 나는 천암비서를 챙긴 후 즉시 산동으로 내달렸다. 산동으로 달리던 중에 주변 풍경을 보자 너무나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살던 지역에서는 수천 리 거리인데도 왜 이렇게 익숙한지 이상해서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아!"
지금까지 하도 산동으로 달리다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최적화된 최단거리를 따라서 익숙한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무의식중에 몸에 배이다보니 가는 길도 대동소이했기에 자연히 기시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두쿵
머릿속에 제갈사의 죽음이 잠시 스쳐지나갔다. 나는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앞으로 이 길이 지겨워지겠지."
나는 산동에 도착해서 비등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는 대룡상회의 창고에서 곧장 비등을 써서 화요가 있는 울루루의 내부제단, 그 중에서도 수호자를 쓰러뜨리면 개방되는 비밀스러운 화요의 공간으로 이동하려 했다.
' 한 번 가 본 적 있으니...'
투웅!
튕겨져나가는 느낌과 함께 몸에 강한 압력이 지끈거리며 덮쳐왔다.
"......?!"
나는 다음 순간, 내 몸뚱이가 창명한 천공 한가운데에 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지상에서 수백 장은 될법한 드높은 허공을 제멋대로 훨훨 날고 있었다. 이윽고 자연의 섭리에 따라 추락을 시작하는 동안에 나는 곤혹스러워서 주변을 살폈다.
하늘은 맑고 푸르다. 그리고 바다도 맑다. 그리고 저 멀리에 육지가 보인다.
내 옆을 갈매기 몇 마리가 스치고 지나갔다.
풍덩!
' 설마?'
나는 내 생각을 확인할 겸 경공을 써서 수면에 안착하지 않고 일부러 물에 빠졌다.
"푸하!"
해수면 위로 머리를 꺼낸 나는 바다의 색깔을 확인했다.
' 엄청나게 맑고 투명해... 여긴 중원의 바다가 아냐.'
산동의 바다든 남해의 바다든 이정도로 맑지는 않다. 촤악 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해수면을 박차고 수상비의 신법으로 먼 곳에 보이는 육지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내공을 꽤 써서 지상의 해안가에 도착하자, 나는 내 예상이 맞다는 걸 알아차렸다.
"남쪽 대륙이군..."
여기는 과거 탐험을 했던 경험에 비춰볼때 남쪽대륙의 해안가였다. 나무의 종류나 근처 식물의 모양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나는 지금 비등을 써서 화요의 봉인지 내부로 바로 진입하려다가 튕겨진 이유를 곰곰히 생각했다.
그리고 결론을 금세 내릴 수 있었다.
"화요의 봉인지에 마도구의 진입을 막는 결계가 있는 거군."
대충 예상은 했지만 역시 그랬다. 비등은 한번 가본 적 있는 곳은 어디든지 순간이동이 가능한 편리한 마도구였지만, 특수한 결계나 주술으로 막혀있는 곳은 결코 갈 수가 없었다. 아마도 화요의 봉인지 유라라 울루루 일대에는 비등같은 마도구의 힘을 막는 결계가 쳐져있으며, 그 결계가 개기일식마다 열리는 걸로 보였다.
아마 울루루 안으로 좌표를 잡고 이동하려 하자 결계가 나를 튕겨냈고, 자연히 좌표를 대륙 바깥까지 튕겨내버린 게 아닐까?
' 이게 가능성이 높군.'
그렇다면 대운중첩같은 꼼수를 쓰지 않는다면 나로서는 개기일식의 때를 정확하게 골라서 정면돌파하는 수밖에 없는 건가?
"......"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그건 또 아니라는 걸 알아챘다.
"사불상!"
영수 사불상에게는 하루에 딱 한 번 그 어떤 결계나 차원도 뚫고 진입할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이 있다! 사불상이라면 화요의 봉인지에 쳐져 있는 결계를 뚫고 화요 앞에 진입하는 게 가능할 게 분명했다.
"좋아, 수기 공양의식을 치르고 화요에 가 볼까!"
이번에는 간접적으로 화요를 움직여서 목갑에 넣기까지 해 보자!
나는 다소 밝은 마음으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뭔가 잊어버린 것 같지만 일단은 하나라도 많은 보물을 쓸어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나는 비등을 써서 곧장 대뢰옥의 지하로 갔고, 이번에도 삼보절기의 수련을 겸해서 달의 짐승과 전투를 벌였다.
쿠궁
달의 짐승을 쓰러뜨리고 목갑, 쌍고검, 나인성본전을 얻고 난 후에는 황연일행을 구출해서 목갑에 넣고 해적 혈도단을 몰살시키러 갔다.
퍼버벅
"우와악."
"살려줘."
나는 아비규환 속에서 검강을 날려 혈도단의 목을 치면서 문득 생각했다.
' 이제는 얼굴을 외우겠군...'
혈도단 놈들을 하도 죽이다보니 어떤 얼굴인지 대충 분간이 갈 정도였다. 얼굴에 땟국이 질질 흐르는 못생긴 놈들의 얼굴을 쉽게 구별할 수 있다니. 나는 순간 혈도단에게 연민이 일어났지만 이 놈들이 매번 양민을 학살하고 약탈하며 부녀자를 윤간하는 악인이라는 걸 생각해내고 묵묵히 썰어버리기 시작했다.
약간 심경의 변화가 일어나서였을까?
"흐음."
나는 수백 명의 해적을 학살한 후 어인(魚人)으로 변해있는 혈도단 단장을 마주했을 때 1초만에 썰어버릴 수 있음에도 약간 심드렁한 눈으로 놈을 관찰했다. 놈은 나와 힘의 격차를 깨달은 건지 혈도를 들고 벌벌 떨고 있었다. 검기를 쓸 수 있으며 신체능력이 인간보다 훨씬 강한데도 내 내공과 무예에는 저항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크으... 넌 누구냐..."
순간 나는 이 상황에서도 다른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혈도단 단장에게 질문했다.
"야. 궁금한게 있는데."
"뭐... 뭐냐!"
"매번 바다의 신에게 공물을 바친다고 했지?"
그러자 혈도단 단장은 물고기같이 생긴 머리통에서 퉁망울만한 눈을 둥그레 떴다.
"어... 어떻게 그걸 알고 있나!"
"너 물고기같이 생겼잖아."
"......."
"아무튼 그 어인들의 도시라는 게 이 근처의 바다 밑에 있는 거 맞지?"
혈도단 단장이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더 물어볼 건 없나? 난 쓸모있다! 제발 살려다오."
"궁금한게 있는데 거기는 바다속이잖아? 그런데 바다속에 인간을 데려가면 호흡을 못 해서 죽잖아. 죽여서 시체를 데리고 가는건가?"
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다! 해신께서는 산제물을 좋아하시니 산 채로 데려간다."
"익사하기 전에 재빨리 데려가는거냐?"
"그게 아니다. 그... 그게..."
놈이 주변에 널려있던 시체를 둘러보다가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해적시체에 다가갔다. 그리고는 자신의 비늘달린 손을 뻗어서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부르르륵
다음 순간, 그 시체의 목 주변에 투명한 수구(水球)가 만들어지며 기포와 함께 크게 팽창했다. 딱 머리통 하나를 담을만큼 커진 수구는 이내 안정되어서 물컹거리는 기색이었다. 또한 해적시체의 머리는 젖지 않는 듯 했다.
"이 능력을 쓰면 물에서도 호흡할 수 있다."
"호오...!!"
나는 약간 놀랐다. 저놈은 이족인 해신족과 동화되어서 저런 특수능력을 사용가능한 걸로 보였다. 상당히 쓸 만한 능력인 게 사실이었기에 나는 좀 더 상세하게 질문했다.
"너 말고도 혈도단에 그 능력을 쓸 수 있는 놈이 있나?"
"없다... 해신의 축복을 받지 않으면 못 쓴다."
"그렇겠군. 그러면 지속시간이 얼마나 되지?"
"약 반 시진 정도다."
"진짜 이족인 해신족 놈들은 그 능력을 더 강력하게 사용할 수 있는건가?"
"물론이다... 그 분들은 큰 수구를 이용해서 자신의 몸을 보호하거나 적을 가둘 수도 있다. 그 능력으로 고래를 잡으실 때도 있다."
"흐음!"
뜻밖의 정보다. 해신을 섬기는 종족인 해신족의 전투방식과 초능력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나중에 이 정보를 써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고민이 되었다.
' 한번 해신에게 인신공양하는 제단으로 찾아가 볼까?'
하지만 나는 그게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는 걸 알아차렸다. 만일에 저 놈이 나를 함정으로 유도하는 거라면 물 속에서의 싸움이 너무 위험하며, 만에 하나 고위이족이나 해신이 출현하면 답이 없었다. 억지로 시도할 수는 있겠지만 이번 생의 목적은 해신을 캐내는 게 아니니 나는 일단 접어두기로 했다.
"잘 알았다."
"살려주는 거냐?"
나는 검강을 조용히 시전했다.
"궁금한 게 있댔지 살려준다고는 안 했다."
"야 이..."
슈칵!
나는 곧장 혈도단 단장의 목을 날려버리고는 해적섬의 보물을 모두 찾아서 쓸어넣고는 인질들을 구출해서 목갑에 넣었다. 혈도단 단장에게 다소 비겁한 짓을 한 셈이었지만 극악무도한 놈이었기에 아무런 죄책감도 들지 않았다.
' 인신공양 학살 약탈 강도 강간을 일삼는 놈이면 죽어야지.'
여러번의 생을 지나왔지만 악한 놈은 죽여도 싸다는 내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가볍게 넘겨버리고는 비등을 써서 보패 순어구가 있는 남궁세가의 비밀방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동영의 코지로를 찾아가지 않았는데, 코지로에게서 딱히 알아낼 게 없었기에 나중에 따로 찾아가서 오륜서를 얻어도 되는 것이다. 순어구를 목갑에 넣던 나는 문득 다른 생각이 났다.
"잠깐... 설마 이거...?"
쉬익
나는 잠시 후 목갑에서 충분히 많은 양의 폭약과 폭탄을 꺼내서 남궁세가의 본전으로 향했다. 남궁세가의 본전에는 마침 검왕 남궁명과 함께 남궁팔검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별다른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 최고위 간부들이 비밀회의를 하는 중이었으리라.
검왕 남궁명이 의아해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소년. 자네는 누구..."
"잘 가 개새끼들아!"
휘익
나는 짧게 한 마디를 하고는 미리 불을 붙여둔 폭탄과 화약을 거세게 전방으로 투척했다. 내 내공을 담아서 던졌기에 엄청나게 빠른 투척속도였다. 그래서인지 남궁팔검 장로 중 두 명은 배때기에 폭약 머리가 관통해 버렸다.
"억..."
그리고 그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기도 전에 곧장 멸혼보를 써서 밖으로 나갔다.
쿠콰콰콰쾅
콰콰콰쾅
해적들이 장비해두고 있던 폭약은 정규 수군과도 싸울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양이었기에 삽시간에 남궁세가 본전은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멸혼보로 화마가 등 뒤까지 와있던 걸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건물의 지붕 위로 안착했다.
' 내가 미리 예상하고 피한 극상의 멸혼보 속도로도 아슬아슬하게 피할 정도라면 남궁팔검 정도의 무공으로는 즉사를 면할 수 없다.'
쿠르릉
' 이 정도면 남궁팔검은 몰살이고 남궁명도 중상을 입었겠지?'
나는 귀찮게 진소청에게 삼보절기를 전달하거나 무영검제를 불러서 남궁세가에서 속풀이를 하지 않아도 대충 원한을 갚는 방식을 발견해낸 듯 했다. 아무리 무림세가라고 하지만 예상치못한 폭약이 날아들어서 터지면 어떻게 버티겠는가?
그 동안 20여회의 전생을 하면서 정말 쓸모없었던 폭탄과 폭약이 이런 식으로 쓰일 수 있다니!
다만 이번은 운이 좋았다. 놈들이 모여있던 장소를 대충 예상했는데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좀 더 정확한 시간을 알아서 정확하게 놈들의 배때기에 폭탄을 꽂아주는 걸 연습하는 게 좋을 것이다. 나는 남궁세가 수뇌부를 반파시킨 후 곧장 여인들이 갇혀있는 곳으로 가서 간수들을 쳐죽이고 구해냈다.
이윽고 나는 내황각 서고에 가서 재빨리 무명제사서를 훔쳐서 목갑에 넣었다. 그리고 선지자에게 거래를 하는 건 조금 뒤로 미뤄둔 채 수요를 찾으러 갔다. 수요의 유적에서 얻을만한 걸 다 얻은 후 백련교의 성련재배지로 가서 성련을 몇 송이 꺾어왔다. 그리고 나서 공동산의 삼황내문을 얻고 황궁지하의 수정석비를 목갑에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태경촌의 은빛 봉황조각을 얻어냈다.
"에고... 바쁘군..."
나는 일련의 과정을 지나치며 약간 탄식했다. 그동안 전생을 하면서 얻은 게 워낙 많은지라 하나하나 수습하고 다니는 것도 일인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간에 현 시점에서 얻을 수 있는 걸 최단시간 내에 수습하는 연습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어쩌면 최단시간에 보물을 다 얻어내야만 시도해볼 수 있는 전략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보물을 충분히 얻어냈다고 생각하자 마지막으로 망량을 찾아갔다.
파앗
망량은 내게서 흑요석을 넘겨받아서 기억이 전승되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한참동안 생각하던 망량이 입을 열었다.
"백웅..."
"왜 그러시오?"
"사불상을 써서 봉인지에 침입한 후, 화요를 간접적인 어기지력(御氣之力)으로 들어서 목갑에 집어넣는다는 전략 맞소?"
"그렇소! 사불상은 결계를 뚫을 수 있소."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런 말 하기 미안하지만... 음..."
"......?"
"차원돌파능력은 하루에 한 번만 쓸 수 있잖소... 그럼 나올 땐."
"......"
그렇구나!
나는 그제서야 내가 세운 전략의 단점을 알아챘다. 화요를 어기지력으로 넣으려는 건 좋은데, 그렇게 되면 사불상을 써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게다가 월요의 예시에서 봤듯이 칠요를 꼼수로 건드리게 되면 곧장 수호자가 의식없이도 깨어나 버린다. 그렇게 되면 나는 화요의 유적에 갇혀서 거신족 공공과 목숨걸고 승산이 희박한 싸움을 하다가 전생해버리는 것이다.
문득 망량이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우하하핫... 하지만 백웅, 당신 계획도 나쁘지 않소. 달리 말하자면 정면으로 뚫어서 일단 그 방에 들어갈 수만 있으면 나올 때 한 번만 사용하면 되는 거잖소? 부담이 크게 줄어든 거지."
"음, 그렇군."
잠시 침묵하던 망량이 나를 쳐다보았다.
"백웅... 당신은 제갈사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오?"
난데없는 질문에 나는 흠칫했다.
"......"
"당신이 이번 20, 21번째 전생에서 성급하게 작전을 세우고 돌아볼 여유도 없이 급격한 속도로 진행을 하는 이유는... 제갈사가 말했던 대로 '책사에게 의존치 않고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라'는 조언 때문이겠지."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 그럴지도."
망량이 나직이 말했다.
"제갈사의 조언은 옳소. 당신은 20번째 전생에서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최선의 전략을 입안하고 두려움없이 실천한 결과 단숨에 화요의 봉인지를 뚫은 거요. 그러나 책략이나 방침이라고 하는 건 그때그때 유연하게 변해야 하는 법. 틀에 박혀서 그것만 고집하다가는 지금처럼 실책이 생기고 마는 거요."
그는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내가 비록 현 시점에서 제갈사만큼의 능력은 되지 못하지만 최선을 다해 도와주겠소. 같이 힘을 합쳐 봅시다."
"......"
나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내가 제갈사의 조언을 그렇게나 의식하고 있었단 말인가?
늘상 머릿속에서 쨍알대면서 사람 속을 미친듯이 긁고 있던 그 미친놈의 말을?
내 뒤통수를 치려고 계속 준비하던 녀석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지배자 앞에 섰던 제갈사의 마지막 미소가 떠오르자 먹먹한 심정이 되었다.
주륵
난데없이 눈물이 한 방울 흘렀다.
"윽."
뭐야? 이건!
나는 이게 왜 흐르는지 몰라서 급히 닦았다. 망량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자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그, 그럼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