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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437화 (437/1,615)

00437  암천향(暗天鄕)  =========================================================================

라캉은 지름길을 잘 알고 있는지 굉장히 빠르게 지형을 주파하고 있었다. 도저히 평범한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산중통로를 몇 군데나 뚫는 모습은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그렇게 뛰던 라캉이 놀라운 듯 외쳤다.

"이럴수가! 날씨가 이렇게까지 도와줄 줄은... 정말 다니기 편합니다."

"날씨?"

"이 근처는 날씨가 변화무쌍해서 빨리 가기 힘듭니다. 그런데 날씨가 이렇게 화창하고 좋을줄은..."

아마 그것도 대운 덕분이리라.

나는 머지않아 라캉과 함께 유라라에 도착했다. 유라라라고 칭해지는 장소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고 희끄무레한 안개가 오리무중으로 끼어 있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적색 거암이라고 할 수 있는 울루루라는 곳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라캉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유라라의 문이 열려서 울루루가 모습을 드러내는 건 개기일식 때 뿐입니다. 지금은 때가 아닙니..."

"......"

하지만 내가 기대하는 건 그런게 아니지. 정석으로 할거면 대운중첩같은 건 시도도 하지 않았어!

나는 팔짱을 낀 채 뭔가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 때였다.

쿠구구궁!!

갑작스럽게 눈 앞의 안개가 굉음과 함께 걷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벌판 한가운데에 적색 거암, 울루루가 모습을 드러내는 게 눈에 보였다. 라캉이 경악해서 하늘을 쳐다보더니 새파랗게 질려서 외쳤다.

"이, 이, 이럴수가! 별이 겹치고 금성(金星)이 모습을 드러내서 별의 기운이 정면으로 내려오다니!! 그래서 개기일식때만 열리는 결계가 우연히 반응해서 열리다니! 세상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우연이!"

이 대륙의 현자라고 할 수 있는 라캉이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극미한 확률인 듯 싶었다.

"하핫!"

하지만 나는 도박에서 한 차례 이긴걸 느끼고 씩 웃었다. 긴가민가했지만, 모든 걸 쓸어넣은 대운중첩의 위력은 개기일식과 천체의 확률마저도 바꿔버리는 것이다!

"겨, 결계가 열렸습니다 신인이시여... 어서 들어가십시오."

라캉은 황당해하면서 말했다. 나는 적색 거암을 향해 곧장 뛰어갔는데, 거암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입구라고 할만한게 눈에 보이지 않았다.

"흐음. 거암 위로 올라가야 하나?"

"위험합니다. 이 곳은 영험한 장소라서 저주받을지도..."

"안 받을 거야 아마!"

지금의 내가 저주를 받는다는 건 대운중첩이 끝난다는 소리다. 나는 내 운을 믿고 멸혼보를 써서 울루루의 위쪽으로 올라갔다. 나는 별 생각 없이 바위산 중에서 한 부분을 골라서 그 위에 손을 올렸다.

위잉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바위 안쪽에 기괴한 차원문이 열렸다. 아무래도 넓이가 십여 리에 이르는 이 넓은 바위에서 인간의 손바닥이 닿일만한 엄청난 확률을 뚫고 입구를 찾아내는 데 성공한 모양이었다.

"아싸!"

나는 통로로 들어가며 익숙한 나선계단이 나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무저갱으로 내려가는 나선계단을 한참동안 걷자, 그 곳에 새빨갛게 빛나고 있는 붉은 제단이 놓여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단 앞에는 비석이 놓여 있었다. 나는 비석을 차분하게 읽기 시작했다.

"거인의 후예... 수해(水海)를 불러왔도다. 염제(炎帝)가 총애한 자... 이 자리에 영겁의 죄과를 치르나니... 그를 쓰러뜨림은 인과율의 흐름이다... 칠요의 시련에 도전하려는 자... 화염의 업에 숨을 죽일지어다..."

역시 이 비석도 읽을 수 있군. 막히는 부분도 없다.

다른 봉인지에 있던 비석과 내용이 달랐다. 나는 일단 거인이 나올거라고 예상한 후, 제단에 피를 흘려서 시련에 도전함을 알렸다.

쿠구구구...

잠시 후 제단 위에 키가 이 장에 이르는 거인이 나타났다. 거인의 몸 주변에는 신령스러운 불꽃이 가득 일렁이고 있었다. 화요의 수호자가 나타난 것이다.

그 거인은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으며 한쪽 손에는 거검(巨劍)을 들고 있었다. 왜 밑에서는 저 거인이 보이지 않았는지 의아할 정도로 거대한 자였다. 내가 그를 정면으로 직시하자, 거인이 입을 열었다.

[ 혼돈의 운명을 휘감고 칠요의 봉인지에 찾아온 자여... 그대에게 화요 간장을 얻을 자격이 있는지를 시험해보아야겠다.]

"당신은 누구요?"

[ 나의 이름은 화요의 수호자 공공(共工)... 어버이 염제의 후예일지어다...]

공공!

나는 그 이름을 산해경에서 본 적이 있었다. 신화시대에 여와와 다투다가 박치기로 부주산을 깨서 세상을 수해에 잠기게 했다는 존재였다.

' 엄청 강할거같다... 하지만.'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과거 이자나기노미코토와 대치했을 때 느꼈던 압도적인 긴장감이 느껴졌다. 힘으로 치면 동급일테니 그럴만도 했다. 하지만 여와와 다투었다는 전승과는 달리, 삼황오제 여와에게서 느껴졌던 가공할 신의 권능까지는 느껴지지 않았다. 삼황오제급 존재라고는 결코 볼 수 없었다.

뭔가 신화가 왜곡된 걸까?

' 음... 그래도 내가 상대하기는 벅찰 거 같다.'

썩어도 준치이며 신족이다. 이대로 정면대결하는 건 어리석은 선택이 틀림없다!

나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공공에게 외쳤다.

"공공이여! 물어볼 게 있습니다!"

막 싸우려던 공공이 멈칫했다. 그의 거검에는 굉장히 강력한 기운이 맺혀 있어서 싸우게 되면 나로서는 악전고투할 게 뻔했다.

"당신들 칠요의 수호자란 존재는 대체 무엇입니까? 당신들은 무엇이길래 말법의 시대까지 칠요를 수호하고 있으며, 누가 그 업을 부여한 거죠?"

[ ......]

나는 한층 강하게 외쳤다.

"월요의 수호자 이자나기노미코토나 당신은 왜 여기 있는 겁니까? 어차피 삼황오제를 통해 허락을 얻지 않으면 못 쓰는데!"

공공은 꽤 놀란 기색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말했다.

[ 그대는... 신화의 비밀... 칠요의 비밀... 해방까지 알고 있는가! 도대체 그대는 무엇이지? 천계의 최고위 신선조차 잘 알지 못할 일을...]

"질문에 대답해 주십시오."

[ 으으음... 정녕 알 수 없는 혼돈스러운 존재로고...]

당황하던 공공이 말했다. 공공은 이윽고 침묵했다.

[ ......]

"......"

[ ......]

어이없을 정도로 긴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왠지 모르지만 엄청난 우연의 확률을 뚫고 화요의 수호자 공공이 변덕을 일으킨 듯 말했다.

[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군... 그대가 지닌 혼돈의 힘이 내 존재의 본질을 흔드는건지... 그게 아니라면 먼 옛적에 패배한 신화시대의 결말을 그대를 통해 바꾸고 싶은 것인지...]

"말해주시는 겁니까?"

[ 확실한 건... 그대가 매우 운이 좋다는 거겠지...]

이것 또한 대운중첩의 효과인 걸까? 공공이 잠시 후 입을 열었다.

[ 칠요의 수호자는... 과거 삼황오제에 의해 제압당한 존재... 신족... 혹은 전설의 마수(魔獸)나 마왕(魔王)이었던 존재들이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 나는 황제와의 전쟁에서 패하는 바람에 신격을 강탈당하고 힘을 잃어 문지기로 배치받았지만... 그대가 말했던 이자나기노미코토라는 존재는 달을 지배하는 [옛 지배자]가 내려보낸 화신체... 그걸 삼황오제가 인간의 존속을 위해 직접 나서서 제압하여 약화시켜 봉인했다... 본디 그건 마왕이라 불리는 존재였다.]

".......!!"

[ 우리가 칠요를 수호함은... 너희 인간종족이 말법의 시대까지 삼황오제의 가호로 번영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한 공공이 말했다.

[ 자... 이제 덤벼라. 나를 쓰러뜨려야 화요의 주인이 될 최소한의 자격을 충족시키는 것이니까!]

"음..."

막상 공공과 싸울 때가 되니 난감해졌다. 공공은 이자나기노미코토와 달리 작았지만 왠지 싸우기 시작하면 막강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는 인간의 무공을 익히지는 않았을 테지만 내 고수의 직감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공공이 싸우기 시작하면 이자나기노미코토에 못지 않은 강적이 될 것이라고.

공공이 으름장을 놓듯 재촉했다.

[ 자아, 어서 덤벼라... 아니면 내가 공격...]

바로 그 때였다.

콰아아아아앙!!

콰과과광!!

천공에서 무수한 유성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유성우는 내가 있는 곳에도 미친듯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엄청난 힘과 속도로 지상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중첩된 대운이 눈 앞의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 확률을 변동시켜서 엄청난 우연을 일으키고 있는 모양이었다.

콰과광

천장이 부숴지고 엄청난 속도로 운석이 떨어져내려왔다. 웬만큼 무공을 익힌 자의 동체시력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이런 무시무시한 속도로 떨어지며, 그 파괴력은 폭탄 수천 관에 못지 않은 게 보통의 운석이기에 나는 예전 황궁에서 덧없이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우오오오오!! 이 무슨...]

연속해서 운석의 폭발이 일어나며 공공이 자신의 거검을 휘둘렀다. 공공도 만만한 존재는 아닌지 엄청난 신력을 뿜어내며 운석을 파괴하며 자신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이 유성우를 보자 위기감을 느꼈다.

' 젠장. 벌써 운이 다 떨어져 가나?'

예전 경험으로 볼 때 유성우가 떨어지는 건 내 대운을 상징함과 동시에 역풍이 불어닥치기 일보직전에 생기는 일이었다. 이대로 가면 나도 같이 유성우에 휘말려 죽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때와는 달랐다. 나는 공공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여기서 꼭 얻어갈 게 있으니 일단 피할 겁니다!"

[ 뭐라고...]

"좀 있다 올거란 말이지!"

파앗

나는 곧장 비등을 사용해서 중원의 외딴 산지로 이동했다. 그리고 대략 한 식경동안 기다리다가 다시 화요의 봉인지로 향했다.

쿠구구구...

유성우가 엄청나게 떨어졌는지 대지가 크게 파괴되어 상흔이 일어났고 지진마저 느껴졌다. 그리고 먼 곳에 있던 화산이 분화할 준비를 하고 있는 걸로 보였다. 대자연재해가 지나간 울루루는 반파되어 있었고 유적 내부에는 공공이 큰 부상을 입은 채 드러누워 있었다. 거인족의 영체가 타격을 입을 정도라면 실제로 입은 물리적인 피해는 수십 수백배나 될 것이다.

[ 커헉... 봉인을... 지켰...]

나는 공공에게 물었다.

"자, 화요는 어디있습니까?"

[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운이...]

공공은 엄청나게 황당해했다. 그는 아직까지 싸울 수 있는 듯 했으나 기력이 빠져서 못 일어나는 상태에 가까웠다. 싸우기도 전에 유성우를 맞아서 중상을 입을 줄은 아무리 화요의 수호자라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긴 건 이긴겁니다."

[ 으음...]

침음성을 흘리던 공공이 떨리는 손으로 유적의 뒤편을 가리켰다.

[ 들어가라...]

쿠쿵

공공이 가리킨 곳에 있던 벽이 뒤집히더니 천천히 비밀공간으로 향하는 문이 열렸다. 나는 그 공간이 수요나 월요와는 달리 상당히 넓은 도원(桃園)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꿀꺽

바로 이 곳에 내가 고대하던 화요 간장이 있는 게 분명하다! 나는 천천히 도원 안쪽으로 걸어갔고, 이내 조그마한 제단에 검집과 함께 봉인되어 있는 적색 보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오...!!"

드디어, 드디어!

칠요 중 화요 간장을 손에 넣었다!

이 영기, 이 강력한 화염의 힘!

이게 칠요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내가 기쁨을 참지 못하고 화요 간장에 손을 뻗어 집는 순간이었다.

[ 대운(大運)이 끝났다.]

머릿속에 태허천존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

나는 설마하는 생각이 들어서 화요 간장을 즉시 놓으려 했다. 그러나 손이 이미 떨어지지 않았다.

늦었어!

그리고 불안한 눈빛으로 화요 간장을 내려다 보자, 다음 순간 엄청난 열기가 손에서부터 타고 올라오는 걸 느꼈다. 손가락뼈가 녹는 기괴한 고통이 대뇌에 전달되었다.

화르르륵

"으아아아아아아악!!"

화아아아악

나는 내공으로 억제하는 것도 무의미할 정도로 엄청난 열염의 힘이 내 몸을 불태우는 것을 느꼈다. 아마 이대로라면 숨 몇 번 쉴 시간에 순식간에 탄화되고 말 것이다! 내 내공이 엄청난 경지에 이르러서 몸에 불이 붙어도 피부에 호신강기를 둘러서 멀쩡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이 열기는 말도 안되는 엄청난 힘을 보유하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머릿속에 빠르게 판단이 스쳐지나갔다.

' 젠장!'

나는 내공으로 어설프게 몸을 보호하는 것을 관두었다. 그리고 아쉬워하며 중얼거렸다.

"화요의 화기를... 어떻게든 해야..."

수요의 수기와 달리 화요의 화기는 직접 검에 응축되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내공보호를 그만두고 나서 숨을 세 번 쉴 동안에 의식이 사라지고 말았다.

고통마저 사라졌을 때 나는 깨달았다.

이것이 나의 20번째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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