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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433화 (433/1,615)

00433  천계(天界)  =========================================================================

어지럽다.

격전이 막상 시작되자 나는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현재 투선의 전투경험에 정신을 동조시켜서, 이 아득할 정도로 빠른 초고수들의 결전을 관전하며 약간이나마 이해하고 있는 상태였지만 - 그렇다 하더라도 이들의 초수교환은 너무나 현란했다.

교주의 일 장(一掌)이 여동빈의 정면으로 짓쳐들어왔다. 교주가 소환해낸 심천무량의 만다라에서 소환된 장력은 호법사자들이 펼쳐낸 장력과 차원이 달랐다. 최소한 십여 배는 더 빠르고 강해 보였으며, 아니나 다를까 여동빈이 월공투안으로 피해내자마자 그 장력은 근처에 있던 산을 통째로 날려 버렸다.

쿠콰쾅

산이 무너지는 소리가 채 들리기도 전에 교주와 여동빈은 약 일 장 거리에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공방을 나누었다. 설령 초절정고수라 해도 관전하거나 살피는 게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의 전투!

검선(劍仙)은 여력을 남길 수가 없는지 초장부터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이 싸움이 최악이 될 것이며, 최강의 적수가 출현할 것을 예견했던 것이다.

여동빈의 육의성천도가 육결(六決)을 모아 재창조하며 교주의 만다라를 부쉈고, 그 때마다 수십만 개의 검로가 쏟아졌다. 교주는 힘싸움은 자신있다는 듯 곧장 여동빈의 검결을 자신의 무예로 받아쳤다.

투둥

기경스러운 궤도로 꺾어진 광선 하나하나에 초절정고수의 필살공격에 못지 않은 잠재력이 깃들어 있었다. 그 예상을 증명하려는지 그들의 일 초 공방속에서 새어나간 절격 하나가 낙양 성내로 떨어졌고, 이내 그 검결이 떨어진 근처 오십여 장이 통째로 광염(光炎)과 폭풍에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 아, 아무리 초극고수들의 대결이 천재지변급이라 하지만...'

사도로 각성한 교주와 여동빈이 싸우기 시작한지는 이제 겨우 십여 초 째를 지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제단은 반파된지 오래였으며 황궁 전체의 건물이 파괴되었으며 낙양 근처의 산이 대여섯 개나 소멸되고 말았다! 나는 이것이 진정한 사도급 존재들의 격돌이라는 걸 알 수 있었으며, 현재의 교주나 여동빈이라면 달기에도 필적할 수 있다는 걸 알아챘다.

쉬캉

여동빈과 교주의 대결이 격화되고 있을 때 어디에선가 뇌령(雷靈)이 날아들어서 순간적으로 교주의 허리춤을 베었다. 교주의 시선이 힐끔 그 쪽을 향하더니 손가락을 튕겨서 허공을 타격했고, 다음 순간 공기가 찢어지며 이청운이 튕겨져서 날아갔다.

"크윽."

이청운은 양손으로 공격을 막은 자세였으나 팔에 약간의 부상을 입은 듯 했다. 교주가 비웃듯 중얼거렸다.

[ 뇌신지혼으로 헛점을 노리겠다... 그게 가능한 건 내가 아직 인간이었을 때였겠지...]

칠대절학(七大絶學)

오의(奧義)

역천보륜(易天寶輪)

교주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지이잉

수십 장이나 되는 공간이 끌어당겨지는 듯 하더니 기이한 만다라가 이청운 주변에 나타났다. 이청운은 그게 무엇인지 알아챘는지 곧바로 자신의 의념절학을 발휘해서 만다라를 떨쳐냈다. 하지만 만다라는 뇌속을 발휘하는 이청운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는 듯 이청운이 있는 곳으로 바로 따라붙었다. 저것 또한 삼보절기에 못지 않은 절학이었다.

이청운은 짜증스럽게 외쳤다.

"내가 개발한 걸 당연하다는 듯 쓰는군. 하긴 무한의 힘이 있으니 대충 써도 최강일테지만!"

쾅!

그리고는 이청운이 마주 뇌광을 머금은 구(球)를 소환해서 만다라에 충돌시켜 없애버렸다. 역천보륜의 절기를 마주 펼쳐내서 만다라를 무마시켜 버린 것이다. 나는 방금의 역천보륜이 이청운이 발견해 낸 칠대절학의 8대 가능성 중 하나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내심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 역시 교주는 천령단 소유자의 무공을 훔쳐배울 수 있어...'

이대로 시간이 흘렀다면 교주가 이청운이 발견해낸 칠대절학까지 완벽하게 습득해서 완전한 최강자가 되었으리라. 하지만 이청운의 말을 들어보니 교주는 대충 형태만 빌릴 수 있을 뿐 진정한 위력은 발휘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만일 교주가 오의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었다면 아무리 검선 여동빈이라 해도 질 게 뻔했다.

[ 결판을 내자!]

그로부터 약 일백 초!

격렬한 전투는 계속되었다. 합장한 상태의 교주는 마지막으로 여동빈과 싸웠을 때 이상으로 빠르고 강해져 있었고, 달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민첩하고 정확한 공격을 날려댔다. 교주가 압도적으로 공세를 취하기 시작하자 공격의 8할은 여동빈이 감당하고 나머지 2할을 이청운이 피해내는 모양세가 되었다. 확실히 밀리고 있었다.

못 이기는 걸까?

뇌광과 검강이 미친듯이 수천 개씩 날아다니는 전투 속에서, 나는 이청운이 생각한 것보다 큰 도움이 되지 않자 답답해졌다. 분명히 역대 뇌신류 최고의 천재이자 최강의 호법사자인데 겨우 여동빈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다. 하지만 내 답답함을 읽은 여동빈이 내게 말했다.

[ 연자여. 이청운이란 자는 초인이다. 이 싸움에서 한 축을 담당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다. 그가 부담을 덜어주지 않았다면 내가 크게 밀렸을 것이다.]

[ 으윽... 알고있긴 합니다만...]

[ 화룡소환도 저런 무예의 명인을 상대로는 무의미하다. 심천무량의 대기시간이 아예 없는지라 화룡을 소환할 여유를 안 주는구나.]

그렇게 중얼거리던 여동빈이 확신을 담아 말했다.

[ 교주가 너무 강하다. 이 자리는 시간을 버는 전략으로 가겠다.]

[ 네?]

나는 깜짝 놀랐다.

현재의 여동빈은 전용보패인 화룡신검에다가 월요의 힘, 전국옥새의 힘까지 아낌없이 사용하고 있는데 이렇게 약한 소리를 하다니! 당연히 쓰러뜨릴 수 있을거라 생각했기에 나는 현재의 전황이 어찌되는 건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여동빈이 침착하게 대꾸했다.

[ 지금처럼만 가면 백중세겠지만 총력전을 할수록 내가 불리하다. 버틸 수밖에.]

[ 무슨 소립니까? 월요와 전국옥새를 다 쓰는 한이 있어도 이겨야...]

[ 연자여. 그대의 내공이란 건 진즉에 고갈되었으며, 이미 그 신보들의 권능을 반 이상 뽑아썼다. 더 이상 말을 시키지 말라.]

그렇게 말한 여동빈은 다시 전투에 집중했다. 나는 그런 여동빈의 모습에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현재 교주의 역량은 투선조차 넘어섰다!

최고의 보패들을 장비한 투선의 전투력으로도 버티는 게 한계였다. 여동빈이 전투를 지속하며 일 초를 쓸 때마다 산이 붕괴될 정도의 거력을 불러오기에 더 이상의 출력은 낼 수 없는 것이다.

아마도 저것이야말로 마도사가 신의 가호를 받아서 반신(半神)이자 마왕(魔王)에 도달한 모습이리라.

' 빌어먹을... 제기랄...!!'

나는 알 수 없는 억울함에 휩싸여서 분노를 느꼈다. 그것은 여동빈이 교주를 쓰러뜨려주지 못한다는 현실에 대한 치기어린 분노가 아니었다. 이 분노는 다름아닌 인간과 신(神)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말도 안 될 정도로 엄청난 천상천하(天上天下)의 격차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었다.

이럴 거라면 무공이 무슨 소용인가.

이럴 거라면 술법이 무슨 소용인가.

궁극의 무공과 술법조차도 옛 지배자의 가호 한 번에 짓눌려버리다니!

하지만 나는 여동빈의 전투경험을 읽으면서 약간의 놀라움 또한 느꼈다. 놀랍게도 여동빈은 지금의 교주와 대등한 격이라 할 수 있는 적수와 싸운 적이 있는 것이다! 이번 생의 여동빈은 달기와 싸운 적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여동빈은 막강하기 짝이 없는 교주의 힘을 마주하고서도 당황하지 않는 듯 했다.

' 거룡(巨龍)?'

여산에서 여동빈과 최후에 싸웠던 사악한 거룡! 그 존재는 천 년 전의 만당에서 세상의 혼란을 초래했던 사상최강의 대요괴를 의미하는 듯 했다. 진흙탕같은 생사결전에서 기적적으로 거룡을 쓰러뜨리고 봉인한 적이 있는 여동빈은 진실로 백전노장이었다.

쿠콰쾅

[ 헉...]

바로 그 때였다. 짧은 순간이지만 교주가 크게 흔들리며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나는 게 느껴졌다. 그것은 여동빈과 이청운의 합공 때문이 아닌, 전투 외적인 이유로 보였다. 혼돈에 물든 눈동자에 당혹감이 짙게 어리는 게 눈에 보였다.

하지만 수세에 몰리고 있던 여동빈이 그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고, 그는 이내 이유 따위는 생각지 않은 채 돌격했다.

[ 받아라!]

천둔검법(天遁劍法)

심의육합(心意六合)

무형검(無形劍)

처음으로 천둔검법 중 육의성천도에 속하지 않은 독자적인 검결이 튀어나온 느낌이었다. 아니, 검선 여동빈이 숙명적인 강적을 앞두고서야 사용하는 비장의 절초라고 해야할까? 이윽고 검강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허공에 나타났고, 시공간을 쭉 갈라버리며 교주에게 전진했다.

파쉿!

교주는 무형검의 전진을 알아챘으나 대응이 반박자 늦어있었다. 그래서 무형검을 회피하거나 방어하지 못하고 그대로 왼팔에 커다란 검상(劍傷)이 새겨졌다. 물론 불사신지체인 교주에게 있어서 그 부상은 크게 의미있는 게 아니었으나 교주는 더욱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 이... 이런...]

[ 헛점투성이군!]

여동빈은 노갈하며 한층 강하게 공격해 들어갔다. 어찌된 일인지 지금까지 완벽 그자체였던 심천무량의 공수배분이 흐릿해져 있었으며, 심지어 어설퍼져 있었다. 물론 일반적인 무인이 볼 때는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의 미미한 헛점이었으나 검선 여동빈은 충분히 그 헛점을 찌를만한 경지에 올라있었다.

순식간에 판도가 일변해서 교주가 물러나는 구도가 되고 말았다. 본래 여동빈 혼자였다면 지금의 헛점을 알아도 찌를 수 없었겠지만, 뇌신지혼으로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고 있는 이청운 덕에 교주의 신경이 분산되어서 한층 여유롭게 된 것이다.

"각오해라, 교주!"

하지만 나는 이청운의 상태를 보자 그리 좋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 지쳐있군.'

아무리 이청운이라 해도 뇌신지혼을 이렇게까지 연속이자 최대로 가용해본 적은 없었으리라. 교주의 사소한 소공격 하나하나에도 산을 무너뜨리는 힘이 잠재되어 있었고 심지어 칠대절학의 묘리에 따라 날아오는지라 이청운은 모든 힘을 회피에 집중해야 했다. 그 결과 무한의 내공인 천령단을 갖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청운의 체력과 정신은 한계에 직면하고 있었다.

내 정신은 여동빈의 무예 하나하나에 집중되었다. 그가 펼쳐내는 검로는 하나하나가 극고의 검학이었기에 내게 계속해서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차라리 아름다운 춤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연속된 검로가 교주의 멱을 따기 위해 전진하고 있었다.

마침내 여동빈의 검날이 교주의 역린을 때린 순간이었다.

쾅!!

[ 크흑...]

[ 허억.]

교주와 여동빈이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튕겨져 날아갔다. 교주는 방어막이 깨지고 큰 부상을 입었는지 목에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으며 가슴에는 커다란 참상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화룡신검의 영력이 회복을 방해하는지 그는 출혈을 전혀 막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동빈 또한 상태가 심각했다. 그는 반토막 난 검날을 보더니 침울하게 말했다.

[ 스승이시여. 역시... 더 버티지 못하셨군요...]

화룡신검은 반으로 부러져 있었다. 절세명검이자 투선의 보패인 화룡신검이 아무리 격전이라지만 부러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자세한 전후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것은 검선이 검을 잃었으니 치명적으로 전력이 약해졌다는 사실이었다.

[ 쿨럭... 쿨럭... 헉... ]

피 섞인 기침을 토해내던 교주가 말했다.

[ 무의미하군... 정말... 무의미해.]

[ ......]

그는 허무한 목소리로 허공을 쳐다보며 읊조렸다.

[ 검선이여. 그대는 최고절초로 내 역린을, 찌르지 못했다... 그리고 검도 부숴졌지...]

[ ... 그렇다.]

[ 본래라면 이 싸움은 내 승리다. 인정하는가...]

여동빈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 인정한다.]

[ 크크크! 쿨럭... 커... 흐흑... 으하하하하하!!]

교주는 광소를 터뜨리다가 비통한 기색으로 말했다.

[ 옛 지배자는 낙양의 인간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내게 소중하다 할 수 있는 본교의 교도들을 바칠 것을 요구했지... 악신이기에... 오로지 필멸자를 괴롭히는 걸 낙으로 삼는 존재이기에 나는 그 희생조차 각오했다....]

[ ......]

[ 난 대죄인이며... 학살마다... 그러나 죄책감조차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백련교주가 백련교도들을 단체로 인신공양한 것은 그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옛 지배자의 요구였던 모양이었다. 백련교주는 음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 듣고 있는가... 백웅이여...]

그 순간 여동빈이 내게 몸을 돌려줬다. 나는 여동빈의 도움으로 허공에 뜨며 대답했다.

"듣고 있습니다."

[ 흐흐흐... 내 꿈은 처음부터 끝까지 허상이었는가...?]

나는 저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가.

뭐라고 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여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교주는 악인이지만, 그 동기는 절대다수의 행복을 위한 선택이었다. 심지어 백련교도를 희생시킨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걸 대화하면서 느낄 수가 있었다.

' 아.'

나는 지금까지 내가 품고 있었던 모순을 깨달았다.

나는 교주를 그리 싫어하지 않았다. 만일에 내가 첫 전생때 백련교와 만났다면, 그리고 백련교주의 영향을 받았다면 - 자연스럽게 그의 사상에 동조했을지도 모른다. 단지 누구를 먼저 만났느냐는 문제일 뿐이었던 것이다.

나는 왜인지 모르지만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말했다.

"허상이 아닙니다."

[ 정말인가...?]

"네."

[ 다행이군...]

교주는 미소를 짓는 듯 했다. 혼돈의 마력에 휩싸여서 인간의 형태를 잃은 얼굴이었으나, 나는 왠지 그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파스스

교주의 몸이 서서히 혼돈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몸의 끝에서부터 새까만 가루로 화해서 흩날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여동빈이 마지막에 가한 일격에 역린에 닿지 못했으니 치명상은 아니었을텐데 이상한 일이었다.

교주는 연민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 넌 나와 닮았어...]

교주가 소멸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그것은 이 전투 외의 무언가가 백련교주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는 의미였다. 교주가 허망하다고 한 것은, 그 누군가에게 의외의 기습을 당해서 자신의 꿈이 사라졌기에 했던 말이었던 것이다.

"......"

[ 백웅... 십이율주를 조심...]

그는 이윽고 혼돈으로 사라졌다.

그것이 백련교주의 최후였다.

나는 허공에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백련교주의 잔해를 한참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 분명히 적이었을텐데.'

적이었음이 분명할텐데도 이토록 찝찝하고 아련한 기분이 남을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싶었던 걸까? 교주에게 당해도 상관없었던 것인가? 나 스스로도 혼란스러워서 멈춰서 있자, 여동빈이 내게 말했다.

[ 연자여... 서둘러 땅에 내려가라. 이미 전국옥새의 영력을 다 썼으며, 월요의 힘도 8할 이상 소모해 버렸기에 더 이상 무공술을 유지할 수 없다. 또한 그대의 내공도 밑바닥까지 다 긁어서 썼으니 내상이 있다.]

"네."

[ 당분간 전투는 무리다. 몸을 사리도록 해라.]

그 말을 끝으로 여동빈도 내 몸에서 떠나갔다. 나는 황급히 허공에서 내려와서 지상에 발을 딛었다. 어느 새 내 옆으로 이청운이 다가와 있었고, 그는 굉장히 지친 듯 졸린 눈으로 내게 말했다.

"교주를 쓰러뜨려서 이 낙양의 어둠이 약간 걷힌 것 같군."

그 말 대로였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짙푸른 안개가 옅어져 있었고, 드문드문 시야가 트이는 게 확연히 보일 정도였다. 제단을 부수고 의식의 주재자인 교주를 없앴기에 옛 지배자의 영향력이 확장되는 속도가 느려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납득이 되지 않아서 이청운에게 말했다.

"교주는 왜 진 걸까요?"

"그건..."

이청운은 입을 열려다가 다물었다. 그러더니 주먹을 꽉 쥐었다.

"저 자들 때문이겠지..."

스윽

약 십여장 밖의 빈 공간에서 두 인영(人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자들 중 동영무사는 묵묵히 이쪽을 보고 있다가 말했다.

"잘 버텼다."

그 자는 동영 최강의 고수이자 십이율의 특위, 미야모토 무사시였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강아지 탈을 쓴 사내가 껄껄 웃고 있었다.

"백웅, 영웅이 된 걸 축하한다!"

십이율주(十二律主).

그 자의 한쪽 손에는 익숙한 머리채가 잡혀 있었다. 머리채를 잡힌 머리통은 죽을 때 거의 고통도 느끼지 않았는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백련교 소교주의 머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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