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28 천계(天界) =========================================================================
나는 이청운과 함께 종남파에 마련된 수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우선 흑요석을 통해서 지금까지 내가 얻었던 무(武)의 깨달음만을 집약시킨 채 이청운에게 전달했다. 이청운은 흑요석으로 잠시동안 기억을 음미하는 것 같다가 고소를 머금었다.
"만만치 않겠군. 계기만이라도 주는 수밖에..."
그렇게 중얼거린 이청운이 갑자기 수련장 주변에 있던 창을 한 자루 내게 던져주었다. 내가 창을 받아들자 이청운은 말했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지. 장삼봉의 무학으로도 뇌신지혼의 완성형을 보기에는 부족했네."
"......?"
단정지었다고?
나는 이청운이 무슨 의도로 '결론'을 말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그를 쳐다보자 이청운이 창을 늘어뜨리며 말을 이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자네덕에 부활한 후 청룡무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장삼봉의 칠대절학을 내 나름대로 해석하며 익히기 시작했네. 자네의 총괄적인 기억속에서 칠대절학을 수련한 기억은 절묘하게 스며들어 있어서, 자세하진 않아도 습득하는데는 문제가 없었어. 그 덕분에 나는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던 것일세."
"음... 그랬군요."
"장삼봉의 무학은 엄청나. 장삼봉은 그야말로 무림에 다시없을 대종사일세."
그렇게 말한 이청운이 눈을 빛냈다.
"허나... 뇌신지혼에서 추구하는 무극(武極)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경험치가 부족하다고 해야할지."
"경험치라구요?"
"그래. 부족하다네."
이청운의 말이 이어졌다.
"무쌍패까지 터득하지 못하고 이런 말을 하는 게 우스울지도 모르지만, 무극의 경지에 이르기엔 부족할거라 생각했네."
나는 황당해서 대꾸했다.
"장삼봉의 칠대절학은 제가 알기로 무림최고의 절학입니다. 그걸로도 안 되면 방법이 없습니다만..."
"아아, 내가 이야기를 잘못했군. 그런 뜻이 아닐세."
이청운이 손을 내저었다.
"그러니까... 칠대절학 덕분에 무극의 경지에 발을 디디기 위한 무시무시한 경험치 중 일부를 채워줄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모자라다는 뜻일세. 비유하자면 천장을 세우기 위해서는 기둥이 필요한데 그 중 하나를 세운 느낌?"
"......"
"무혼(武魂)에 도달하려면 동위(同位)나 그 이상의 절학이 더 필요하다네."
나는 이게 무슨 소린지 이해할 수 있었다. 즉, 원래 뇌신류의 종사들이 연구해 온 한계를 뚫는데 칠대절학이 압도적인 도움을 준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재인 이청운이 보기에는 칠대절학의 묘용만으로는 무극경지에 도달하기엔 부족했으리라. 그렇기 때문에 칠대절학과 동위 이상인 절학을 좀 더 얻어서 연구하기를 원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장삼봉의 칠대절학은 무림의 역대급 종사이자, 어쩌면 역대최강의 무인일지도 모르는 투선 장삼봉의 진신절학이며 말년 최대의 깨달음이다. 칠대절학에 버금간다고 표현할 수 있는 무공은 몇 개 있을지도 모르지만, 대등하다거나 넘어설만한 무공같은건 생각나지 않았다.
굳이 유력한 후보를 따지자면 검선 여동빈의 천둔검법이나 십이율주의 무공 정도다. 그러나 천둔검법은 초식이 없는 신선의 검법이었으며, 십이율주는 어떤 무공을 익히고 있는지조차 확실치 않다. 나는 끙하고 앓는 소리를 내다가 말했다.
"제가 전생을 하더라도 그걸 찾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만..."
"하하... 내가 너무 생뚱맞은 이야기를 했군. 미안하네."
이청운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칠대절학이 못하다는 말이 아닐세. 우리 뇌신류의 무공보다 더 뛰어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네. 칠대절학 중 하나만 제대로 익혀도 천하를 제패할 수 있으니."
"음..."
"그러나... 그렇게 엄청난 절학을 받아서 연구하다보니 더 욕심이 생기는 걸세. 더 위로... 더 위대한 무학의 경지로 발을 디디고싶은 욕망이 샘솟았던 거지."
"그렇군요."
"방금 한 얘기는 그냥 알아두고만 있게. 앞으로 자네의 목표 중 하나를 제시한 것 뿐이니까."
대충 이야기를 넘긴 이청운이 고개를 까닥했다.
"창술을 써서 나를 공격해 보게."
"그럼."
파앗!
나는 대번에 찰(札)의 기법을 써서 이청운을 공격해 들어갔다. 물론 뇌신지혼을 이룬 이청운에게 이런 공격따위는 통하지 않을거라는 건 알고 있으나, 그가 내게 시킨데는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청운은 내 전력을 다한 찰을 가볍게 피해내며 옆으로 두 걸음 이동해 있었다.
이청운이 흐뭇하게 웃었다.
"좋군. 자네는 창술도 꽤 하는군. 훌륭한 찌르기야."
나는 뇌신류의 종사에게 칭찬을 듣자 약간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일단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대꾸했다.
"창술만 죽어라 수련한 적이 있으니까요."
내 무공부족을 느끼고 이광에게서 들들볶이면서까지 창술을 주공으로 삼은 적이 있었다. 그 때 영혼에 새겨질 정도로 란나찰을 익히며 창술의 경지를 올렸으므로 당연히 창도 잘 쓰는 것이다. 지금의 내 주된 무공이 검술이라고는 하지만 익혔던 게 어디로 사라지지는 않았다.
"자, 보게."
이청운이 자신의 창을 들더니 나를 공격해 왔다.
파앗!
이청운은 일부러 내 안력에 보이는 속도로 찰의 기법을 사용했다. 창극이 내 심장 앞에 멈춰 있었다. 내가 물끄러미 그 창극을 쳐다보자 이청운의 말이 들려 왔다.
"이 일격에 호흡이 일체가 되었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삼보절기도 창술의 기본기와 마찬가지일세. 호흡과 박자를 잘 맞추는 게 중요해."
이청운은 창을 거두며 말을 이었다.
"호흡. 자네의 기억을 보니 삼보절기가 헷갈리는 이유가 바로 그거였어."
"음..."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지금까지 삼보절기의 진척이 지지부진했으나 그 이유를 잘 몰라서 헤매고 있었는데 의외의 답변이 나왔기 때문이다.
"칠성둔영의 형(形)은 따라하기 쉽지만 그 묘의를 파고들어서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련시간이 필요하지. 자세히 뜯어보면 칠성둔영의 한 걸음에서 파생되는 변화마다 호흡에 변화가 생기는 걸세. 자네는 고수의 감각으로 대충 그 변화를 따라잡으면서 칠성둔영을 쓰고 있지만, 호흡의 간격을 정확하게 포착하지 못하고 있어서 자꾸 엉키는 거야."
"그런 생각은 못 해봤습니다."
"뭐, 미세한 차이가 쌓여서 오류를 만들어내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네. 칠성둔영은 극도의 정확함을 요구하는 보법이야."
"교주는 그런 언급은 하지 않았습니다만..."
정말이다. 교주도 내게 그냥 열심히 연습하라고 하며 삼보절기의 진행을 되짚어줄 뿐, 호흡에 대해서 언급한 적은 없었다. 그러자 이청운이 말했다.
"교주는 자네가 몸으로 익히다보면 언젠가 그 호흡과 박자를 깨달을거라 생각한 거지. 실제로도 자네는 밤낮없이 삼보절기를 익히면서 점차 그 박자가 정확해졌네. 수만 번이나 연습했으니 당연한 일이지? 이대로라면 아마 삼 년 내에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걸세."
"오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어. 당장이라도 삼보절기를 써먹어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몰라. 그래서 속성으로 자네에게 삼보절기의 박자를 주입시켜 주지."
"주입이라고요?"
이청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부터 나는 쉬지 않고 자네를 공격하겠네. 란나찰(欄拿札)으로."
"......!!"
"물론 오의와 변환도 사용할 걸세. 자네는 그걸 삼보절기를 응용해서 피해내면 돼."
"반격해도 됩니까?"
"맘대로 하게. 할 수 있다면 말이지만."
스으으으...
이청운의 몸 주변에 두 개의 반투명한 창(槍)이 나타났다. 나는 그것이 강기가 아니라 의념으로 만들어진 창날이라는 걸 깨닫자 침을 꿀꺽 삼켰다.
' 이기어창(以氣御槍)!'
이청운이 잡고 있는 목창까지 합치면 총 3개의 창이 나를 공격해오는 셈이다. 보통이라면 이기어창을 만들어내서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파김치가 되겠지만, 나는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내 표정이 굳어지자 이청운은 훗하고 웃었다.
"깨달은 모양이군."
"지옥훈련입니까."
"그렇네.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천령단이 있기에 실질적으로 무한의 체력이지. 그리고 자네도 천령단은 아니지만 엄청난 내공이 있어. 체력이 딸리면 내공을 변환시키면 되니까 지옥훈련을 하기에는 최상의 조건이지."
나는 표정이 일그러졌다.
"으으... 하지만 그렇다면... 먹지도 자지도 쉬지도 못하고..."
"후후. 계속 피해야 하지."
이청운의 웃음이 불길했다.
지옥훈련!
나는 예전에 검강을 얻고자 수련할 때 해봤던 적이 있었기에 그게 얼마나 개지랄같은 짓인지 알고 있었다. 내가 그 때 어떻게 성공했는지도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리고 이청운이라면 명룡자 못지않게 나를 굴릴 수 있으리라. 나는 불안한 눈으로 이청운을 쳐다보았다.
"저기... 차라리 그냥 태허천존에게 바칠 공양물을 찾게 움직이는게 좋지 않겠습니까. 제가 조금 세져봐야 전체 국면에는 별 도움이..."
"아니! 반대지. 우리 모두가 죽더라도 자네가 뭔가를 얻어야만 해."
단호하게 말한 이청운이 내게 창을 겨누었다.
"삼보절기의 박자를 새긴 후에는 우리 뇌신류가 연구해서 알아낸 칠대절학의 조합에 대해 알려주겠네. 자네가 그걸 배워야만 해. 그래야 더 빨리 강해질 수 있을테니."
"조합... 이라고요? 그렇다면."
"당연히 삼보절기 말고도 알아냈지."
이청운이 씩 웃었다.
"지주명왕과 삼보절기는 칠대절학의 가능성 중에서 일부에 불과해.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알기만 해도 자네는 앞으로 크게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어."
"으음...!!"
"자, 잡설할 시간이 없군. 이제 가겠네."
나는 어쩔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곳에서 난데없이 지옥훈련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해야하는 것이다. 나는 각오를 다지고는 대답했다.
"네!"
퓨웅
공기가 찢어지며 이청운의 찰(札)이 날아왔다.
' 피할 만한 속도야.'
나는 그 창격을 삼보절기를 써서 일단 피해낼 수 있었다. 이어서 란나찰의 응용공격이 날아들었지만 그 또한 피할 만 했다. 이청운은 뇌신지혼을 발동시켜서 가속하지 않은 채, 적당한 수준에서 나를 공격하는 모양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뇌명 정도는 쓸 수 있을텐데 그것도 하지 않는 듯 했다.
하지만 내가 여유롭다고 생각한 것은 고작해야 20초가 끝이었다. 20초를 넘기는 순간 갑자기 이청운은 근처에 소환했던 이기어창을 날리며 허초(虛招)를 섞어 쓰기 시작한 것이다. 순식간에 공간 전체가 창영(槍影)으로 물드는 기분이 들었다.
퓨뷰뷰븃
"커학!!"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방금 전 이기어창이 미처 피하지 못하는 각도로 날아와서 팔뚝이 꿰뚫렸기 때문이다. 내가 급히 팔뚝을 살펴보자, 그 곳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아니?"
이청운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건 의념으로 만든 것이라, 자네의 정신력과 신경계에만 고통을 줄 수 있네. 하지만 너무 맞으면 충격 때문에 죽을지도 몰라."
퍼벅
"크헥!!"
나는 또다시 심장에 창을 얻어맞고 비명을 내질렀다. 아무리 그래도 이 고통은 진짜였다. 실제로 긴 바늘에 몸을 꿰뚫리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실제 창칼에 찔리는 수준은 아니었으나 충분히 아팠다.
내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다시 삼보절기를 시전해서 피하기 시작하자, 이청운은 마치 아수라같은 형상으로 연속찌르기를 행해 왔다.
파바바밧
"란! 나! 찰!"
피피핑
엄청난 창격이 홍수처럼 밀려들어왔다.
나는 이청운의 공격이 일백 초를 넘어서 이백 초에 도달하게 되자, 그의 공격을 육 할 확률로 피해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달리 말하자면 나머지 사 할의 공격은 고스란히 맞고 있는 중이었다. 의념때문에 격통이 밀려와서 비틀거리자 이청운이 호통을 쳤다.
"정신차려! 자네는 이미 삼보절기로 이 모든 공격을 피할 정도의 숙련도를 갖췄어!"
"으윽..."
"정확한 박자를 느끼고 거기에 모든 정신을 집중해! 바늘구멍을 뚫는 정확함과 세심함으로 몰아(沒我)를 이루는 것이다!"
"......!!"
"정확함! 그것이 삼보절기의 요체!"
퍼벅 퍽
물론 내가 그 조언만으로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면 이런 고생을 하고있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이후로도 약 일천 초 동안에 고통에 휩싸인 채 불에 덴 것처럼 뛰어다니기만 했다. 이청운은 잠시 휴식시간을 주듯 창을 늘어뜨리며 말했다.
"자, 일어서! 시간이 없으니까."
나는 피를 토하며 말했다.
"컥... 잠시... 아파서 보법에 집중할 수가..."
"뇌신류의 무인이 언제부터 그따위 약한 소리를 했지? 실전에서도 그런 변명을 할 건가?"
이청운은 냉소한 후 갑자기 거리를 압축시켜서 주먹으로 나를 후려갈겼다.
퍼억
"커헉..."
나는 일 장 뒤로 날아가서 휘청거렸다. 간신히 직전에 호신기를 발동시켜서 부상은 입지 않았으나 등줄기에 소름이 흘렀다. 무슨 이런 도깨비같은 인간이 다 있는가?
"또 못 피했군. 삼보절기를 쓰게."
나는 입가의 피를 뱉어냈다.
"윽... 말이 쉽지 어떻게..."
"머리로 의식하고 쓰려고 하니까 그런거야. 정확한 호흡의 시기와 변화는 이미 삼보절기를 수만 번 연습한 자네의 몸에 새겨져 있어. 흐름을 거스르지 말고 마치 물처럼 자기자신을 받아들이게."
이청운의 안광이 마치 호랑이처럼 빛났다.
"쉴 시간 없으니 내공을 체력으로 전환해! 이젠 이런 경고를 안 하겠다."
"알겠습니다!!"
나는 급히 대답하면서 이를 악물었다.
' 이해가 된다.'
이번 전생에서의 이광은 이청운을 보자 별달리 저항도 못 했으며, 기가 많이 죽어버렸다. 최근 종남파에서 모습을 보았을 때도 그저 종사 이청운을 받드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 성질 더러운 이광이 왜 저러는지 다소 의아했었다.
하지만 이젠 알 것 같았다. 뇌신류 종사 이청운! 그는 평소에는 부드럽고 점잖은 모습이지만 수련을 하거나 제자를 다룰 때는 마치 호랑이처럼 매서운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아마 뇌신류의 적을 상대할 때도 거침없이 잔인하고 패도적인 손속을 자랑할 것이 분명했다. 이광은 이런 이청운에게 배웠기에 극도로 엄혹한 태도를 지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 할 수밖에 없어!'
지랄같이 힘들고 괴롭지만 어쩔 수가 없다! 재능이 부족한 나는 이런 지옥훈련을 해서라도 다음 경지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퍼억
퍼버벅
내가 무한 피하기 수련을 마친 건 그로부터 약 칠 일이 지나서였다. 나는 그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자지도 못한 채 계속 이청운의 연속창격을 피하기만 했다. 이청운이 수련의 효율을 위해서 간혹 쉬는 시간을 주긴 했지만 그 시간은 터무니없이 짧았다. 나는 모든 체력과 기력을 소모한 채 숨을 헐떡이며 그 자리에 버티고 섰다.
체력을 너무 써서 눈이 침침하다. 당장이라도 쓰러져서 자고 싶다. 전신이 땀으로 젖어서 고약한 냄새를 낸다. 내가 우묵한 눈으로 땅의 땀 웅덩이를 쳐다보고 있자, 이청운이 별안간 일격을 가했다.
퓨웅!
단순한 찰격이 아니었다. 이기어창과 연계되어서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의 삼연격! 보통의 무림인들이라면 이 변화를 간파하지 못하고 몸통의 급소 중 하나가 꿰뚫려서 절명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 삼보절기를 써서 이청운의 공격을 피해냈다. 이청운은 내가 피하는 모습을 보자 그제서야 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걸로 최소한 일 년은 단축시켰군. 이제 가진 걸 쓸 수는 있을걸세."
"......"
대꾸할 힘도 없다. 분명히 이청운은 내게 큰 수련치를 안겨다줬지만, 칠 일 동안 지옥수련을 하면서 느낀 괴로움은 정말로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천령단을 갖고 있는 이청운만이 해줄 수 있는 수련이기도 했다.
"씻고 오게."
이청운은 자신의 창을 한 구석에 던지며 말했다.
"조금 쉬었다가 자네에게 뇌신류의 연구결과를 알려주겠네. 이 또한 이틀 정도는 걸리겠군."
"... 왜입니까?"
"뭐가?"
나는 체력이 고갈된 상태로 숨을 쌕쌕 몰아쉬다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나는 필요가 있어서 무공을 배우고 있을 뿐입니다. 백련교주나 당신처럼 무의 극한에 이른다거나 하는 목적은 없습니다. 아무리 당신이 천재라 해도, 이 끝나지 않는 미친 고난의 길을 걸어가려 했던 이유가 뭡니까? 당신도, 뇌신류의 역대 종사들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질문하자 이청운은 빙긋 웃었다.
"최고가 뭔지 궁금하잖아."
"......"
"나는 교주가 정말 싫고, 지금도 그를 죽여서 원수를 갚고 싶지만... 그 점에 있어서는 교주와 동감이지. 무극지경이라고 하는 절대무적의 지고한 경지에 도달하면 무엇이 보일지 궁금하기에 뇌신류의 종사들이 누대를 이어 무혼을 얻으려 했던 것일세."
"그 경지가 신의 힘에 발끝만도 미치지 못한다면 어쩌시려고 하는 겁니까?"
"뭐 그럴수도 있겠지만..."
이청운이 태연하게 대꾸했다.
"신을 넘어선다, 자연을 극복한다... 그런 이유로 무극을 추구한다는 건 한낱 말장난일 뿐이지. 교주의 말대로 그건 무념(武念)의 저주, 도달하기 전에는 포기할 수 없는 모순일세. 왜 추구하는지 생각하는 순간 지는 거야."
"포기하면 되잖습니까? 왜 못 합니까."
"후후. 반대로 묻지. 자네는 전생을 포기하고 그냥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왜 이 고생을 하나?"
"......"
"똑같아. 나든 자네든간에... 눈 앞에 보이는것보다 더 나은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평면적인 삶의 틀을 거부했던 거지. 그 이면에 여러가지 이유가 있기도 하고. 그 모든 걸 한두 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네."
이청운은 고개를 빙글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걸 정의할 수 있는 건 오직 자기자신! 그렇기 때문에 자네와 나는 지금 여기에 살아가고 있는 거겠지."
이청운도 잠시 쉬려는 듯 대나무 숲 너머로 가 버렸다. 나는 사라진 이청운의 뒷모습을 한동안 쳐다보다가 주먹을 꾸욱 말아쥐었다. 원래라면 이 정도의 지옥훈련으로 고생하면 한숨을 쉬거나 한꺼풀 벗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밀려오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저 연속된다는 감정이 내 마음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연속된 삶.
그게 나를 버티게 하는 원동력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