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21 천계(天界) =========================================================================
뇌신류가?
나는 당혹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현재의 뇌신류를 움직이는 건 반전의 권능에 의해 되살아난 이청운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뇌신류가 끼어들었다는 건 이광이나 진소청일 확률이 큰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굳이 말하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를 해 주시오."
독고준이 곤란한듯 말했다.
[ 화산파, 형산파, 점창파는 쉽사리 제압했습니다. 특히 형산파는 얼마전에 느닷없이 장문인이 실종되었다고 해서 더욱 기를 꺾기 쉬웠습니다. 하지만 개방방주는 간부들과 함께 잠적해버려서 현재 찾지 못한 상태이고, 문제는 무당파에서 발생했습니다.]
"무당파?"
[ 무당파를 제압하려 저희 무류의 장로인 독고우를 보냈으나 그가 뇌신류의 진소청에게 패배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먼저 보고를 드린 후 다시 전력을 정비해서 무당파에 가려던 참입니다.]
"......"
독고우가 진소청에게 패배했다!
그 사실은 많은 걸 의미하고 있었다. 내가 이번 전생을 시작하고 얼마 시간이 흐르지 않았는데도 진소청이 천령단 소유자를 꺾을 정도로 강해졌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수신류 장로인 독고우는 실질적으로 호법사자급이었으므로 진소청의 무위가 수십 배로 급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천령단 소유자가 아닌데도 천령단을 꺾으려면... 무예의 수준차이가 심하다는 뜻이다.'
무한의 내공을 이끌어내어서 전황을 압도하는게 기본적인 천령단의 전술인데, 초절정을 넘어선 의념무학에서는 무한의 내공을 한순간에 꺾어버릴 수 있는 신기(神技)를 보유할 수 있다. 진소청은 아마 그 정도 절대경에 도달한 게 틀림없었다.
나는 속으로 진소청의 무위를 재 보다가 한백령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 쪽은?"
한백령은 잠시 침묵하다가 대꾸했다. 이젠 나름 지위차이에 적응했는지 존대를 쓰는 기색이었다.
"이광과 극호라는 자들이 끼어들었습니다. 이광은 전대 뇌신류 종사의 제자이고 극호는 뇌신류의 제자입니다."
물론 그런 사실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고, 세상에서 나보다 그 사실을 잘 아는 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광까지는 예상했으나 극호가 언급될 줄은 몰랐으므로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설마 황산파 제압전에서 막힌 거요?"
"아니요. 황산파 장문인 용중일과 사대장로들은 일찌감치 잠적해버렸습니다. 이광과 극호는 종남파에 나타나서 화신류의 장로들을 공격했는데, 그들의 힘이 예상외로 강해서 우선 물러났습니다. 교주께서 비살상 지시를 내린 점도 커서..."
"종남파라..."
익히 짐작할 수 있다. 화신류와 호법사자의 힘이라면 나머지 구파일방의 3개파는 쉽사리 제압했을테지만 황산파는 잠적해버렸고 종남파에서 막힌 것이다.
' 종남파 장문인 연정홍은 이광의 절친한 친구. 아무래도 연정홍을 돕기 위해 이광이 나선 모양이군.'
나는 생각을 정리하다가 어찌된 일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 이청운이 앞서간 거야!'
이청운은 마지막에 내가 건네주었던 기억까지 읽고는 앞으로 백련교가 구파일방을 제압하려고 움직일 것을 눈치챈 것이리라. 그건 오악의 천제단에 관한 정보까지 그가 갖고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아마 백련교가 낙양을 점거한 이후 쭉 구파일방의 동향을 살펴보다가 가장 친분있고 중요한 쪽부터 구원하기로 마음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청운, 그의 생각을 잘 알 수가 없다.
이청운은 뇌신류의 종사로서 진소청, 이광, 극호에게 자신이 갖고있는 무공을 전수해서 강화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줄곧 청룡무관에 틀어박혀 있다가 이제야 백련교에 맞서러 나온 셈인데, 왠지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 호법사자에게 물었다.
"그래서 우리 쪽의 피해는?"
두 사람의 대답이 들려왔다.
[ 독고우가 한쪽 팔을 잃고 장로 두 명이 약간의 부상을 입었습니다.]
"피차 큰 피해가 있으리라 짐작되어 우선 물러났습니다."
"......"
역시 그렇다. 화신류 쪽은 한백령과 이광이 이미 안면이 있는 관계라서 극단적인 충돌을 꺼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신류 쪽은 일면식도 없는 진소청이 막아섰다면, 진소청이 결코 봐줄 리가 없다. 진소청의 성정으로 볼 때 앞으로 강적이 될 가능성이 있는 수신류의 장로를 반드시 죽여버리는게 정상이다. 그러나 진소청은 무위에서 앞서는데도 불구하고 독고우의 팔을 자르는 걸 끝으로 놓아준 것이다.
' 뇌신류는 백련교와 진심으로 적이 되려는 게 아냐. 설마...'
나는 뭔가를 예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호법사자들에게 말했다.
"그 일은 내가 좀 알아보겠소. 구파일방 제압은 잠시 미뤄두시오."
[ 언제까지 말입니까?]
"내가 다시 지시하겠소."
[ 알겠습니다.]
호법사자들이 물러가자, 나는 제갈사에게 말을 걸었다.
[ 제갈사. 내가 생각한 추측이 맞을까?]
[ 흐흐. 날 따라다니다보니 그럭저럭 생각하는 게 늘었나 보더군. 틀린 추측은 아니다.]
웃음을 흘리던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 이청운은 너와 얘기하고 싶은 거다. 놈의 유인에 따라갈지 말지는 네 선택이겠지. 뭐 그 자의 심계도 보통이 아니니까 지금 상황에서는 따라갈 수밖에 없겠지만.]
역시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언제 뇌신류를 다시 방문할지 모르는 상황이므로, 백련교를 방해하고 나섬으로서 내 주의를 끌려고 한 행동이 틀림없다.
[ 이청운이 나를 죽이려는 건가?]
[ 큭큭큭.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가 이청운이라면 결코 그렇게 하지는 않겠지.]
[ 왜?]
[ 아직 이청운이 교주를 죽일 정도의 힘을 쌓지는 못했다고 본다. 중요한 상황에 최후의 한수로 활약해줄 수도 있는 너를 섣불리 죽이려 드는건 무모한 짓이야. 너와 모종의 교섭을 하려고 하겠지.]
[ 어떤 교섭인지 혹시 짐작 가나?]
[ ......]
[ 제갈사?]
내가 제갈사를 부르자, 그가 말했다.
[ 이번 만남은 조심해야 할 거다.]
[ 음...]
[ 이청운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네 녀석이 가진 말도 안되는 우위 때문에 섣불리 행동하지 않았을 뿐이지 속에 능구렁이가 몇백 마리는 들어있지. 죽이지는 않더라도 네녀석을 뜻대로 조종하기 위해서 어떤 식이든 수단을 동원하려 할 게 분명하다.]
제갈사의 말은 아주 일리가 있었다. 지금까지는 교주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서 나를 이중첩자격으로 운영했다고 쳐도, 지금은 천제계획의 발동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직 내가 이청운에게 천제계획에 대해서 말해주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는 자력으로 알아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급변하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 내게 손을 쓰려 할 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굉장히 고민되는 일이다. 내가 일대일로 그를 만나러 갔다가는 뇌신지혼 때문에 손도 발도 못쓰고 일 초만에 제압당할 확률이 컸다. 월요를 써서 잠력을 끌어올린 상태라면 일말의 저항이 가능하겠지만 뇌신지혼을 상대로 도망을 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렇다고 호위역을 데려가려니 교주 이하의 그 누구도 이청운을 상대로 버틸수가 없는 것이다. 과거 독고준이 손도 발도 못 쓰고 넝마가 되었던 이야기를 들었기에 이청운의 무력이 말도 안되는 수준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결국 교주를 직접 데려가서 이청운을 제압하게끔 만드는 게 좋은 방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주라면 이청운을 상대로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경우, 이청운이 갖고있는 다른 가능성이 모조리 봉쇄되어버리고 만다. 또한 이청운이 제압당함으로서 나중에 교주의 폭주를 억제하는 게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이청운도 내가 교주를 데리고 올 가능성을 당연히 생각하고 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전면행동에 나섰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이청운이 모험을 무릅쓰고서라도 나를 만나려 하는 의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
정말로 까다롭기 그지없는 상대였다. 나는 이번 생에 이청운을 부활시킨 게 실수가 아니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 지경이었다. 하긴 이 정도나 되니까 전성기의 교주조차도 조심스럽게 뇌신류를 대했던 게 아니었을까? 내가 고민하자 제갈사가 말했다.
[ 잘 생각해라. 이청운을 만나러 갈 시점은 네가 선택할 수 있어. 하지만 그건 틀림없이 중대한 선택이다. 이청운의 뇌신류는 네게 엄청난 이득을 안겨줄 수도 있고, 엄청난 손해를 줄 수도 있다. 자칫했다가는 49일의 대부분을 날려버릴 가능성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둬라.]
"크으..."
정말 어렵다. 차라리 그냥 목숨내놓고 싸우는 게 낫지 이렇게 어려운 양자택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내 방에서 끙끙대면서 고민하다가 한참 후에 결론을 내렸다.
"젠장! 그러면 죽을지도 모르니까 죽기 전에 최대한 정보를 모아놓고 죽어야겠지? 난 선지자를 만나러 갈 거야!"
[ 어?!]
제갈사가 잠시 당황했다. 나는 가타부타 따지지 않고 바로 사불상을 불러서 선지자가 있는 대사원으로 향했다.
[ 무슨 일이냐... 또 거래를 하겠느냐.]
선지자가 슬며시 나타나자 나는 그에게 말했다.
"선지자! 지금 인간세계에 천제단을 통해서 하늘사다리가 내려지려고 하는 걸 알고 있냐?"
[ 물론... 그래서 나도 내 일족을 대피시키고 있었다...]
"어? 대피?"
선지자는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듯 대꾸했다.
[ 그 일이 시작되면 천계의 계획이 수백 년 앞서서 발동되지... 그러면 축융족(祝融族)이라는 이름으로 지상에 거주하고 있는 내 동족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당연히 나는 왕으로서 그들을 피난시키는 것이다...]
"으 젠장... 나는 지금 그 천제계획을 막으려는 중이야."
[ 막겠다고...? 어떻게?]
나는 자신감있게 말했다.
"그 방법을 물어보러 왔다고. 이건 거래조건으로 어떨까?"
스윽
나는 가지고 온 성유물을 꺼냈다. 성유물 석판을 보자마자 선지자는 꽤 놀라워했다.
[ 호오... 그것은... 십계비의 조각, 타보트인가.]
"타보트?"
성유물의 이름을 알게 된 것 같다. 선지자의 말이 이어졌다.
[ 그건 별의 정신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는 성유물이다. 그 조각이 모여서 온전한 형태를 되찾게 되면 엄청난 힘을 가진 유물이 완성된다. [옛 지배자]를 모시는 종교나 괴수들에게는 천금같은 보물이지... 그거라면 웬만큼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 있다.]
"흐음."
아라사 제국에서 얻게 되는 성유물이 생각보다 뛰어난 가치를 지닌 듯 했다.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성유물 타보트를 내려다보다가 그에게 내밀며 말했다.
"아무튼 이걸 댓가로 천제계획을 막을 방법을 알고 싶어. 안 될까?"
[ ......]
선지자는 곰곰히 생각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다가 말했다.
[ 전후사정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군... 흑요석의 기억을.]
"아."
나는 흑요석을 꺼내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저장해서 선지자에게 건네주었다. 한참동안 기억을 읽던 선지자가 말했다.
[ 말했듯이 한 번 천계 삼청에 의해 올려진 계획은 결코 반려되지 않는다... 삼황오제가 49일간 검토한다 하지만 형식적일 뿐... 현재 삼황오제가 천계에 존재하는지 어떤지도 확실치 않지... 이대로라면 어떤 공적을 세운다 할지라도 계획을 막을 순 없다... 하지만 딱 한가지 방법이 있다면.]
"있다면?"
이어진 선지자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 직접 천계로 올라가서 삼황오제를 대면해서 하늘사다리가 부당한 이유를 설명하고, 그들을 설득해서 그만두게 하는 것이지... 어차피 결정하는 건 삼황오제니까...]
"......"
[ 방법은 이것뿐이다...]
나는 황당해서 대꾸했다.
"말이 돼?! 천계에 지금 내가 올라갔다가는, 아니 지금 올라갈 방법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죽고 말 거야! 난 이미 남화노선을 농락해서 천계에 찍혔다고."
[ 그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
"그리고 천우진 말대로 천계에 상소를 올려서 멈출 수 있을지도 모르는..."
그러자 선지자가 비웃었다.
[ 크흐흐... 천계에 상소라... 정말 상황을 하나도 모르는구나.]
"뭐?"
[ 하늘사다리를 내린다는 계획은... 천계에 있어서도 모험같은 것이다. 천계는 500년 후 종말의 때를 대비해서 계획을 보유하고 있으나... 천제를 내리면 어떤 파장이 일어날지 스스로도 모른다. 그래서 천계에서도 매우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지... 그런데도 이토록 급속하게 천제를 내리는 게 결정되었다는 건... 천계 내부에 흑막이 있다는 뜻...]
"......!!"
[ 바로 네가 내게 알려주지 않았는가... 태허천존과 서왕모가 의심스럽다고... 만일 그 자들이 인세를 멸하기를 원한다면... 그깟 천제단의 상소가 무슨 의미가 있지...? 그 존재들이야말로 삼황오제를 제외한 천계의 최정점에 도달해있는데.]
그건 그렇다.
논리정연한 선지자의 말은 내 머리통을 세게 강타하는 느낌이었다.
' 그러고보니 지선 망량도 천계 내부의 흑막을 크게 경계하는 기색이었어.'
구천현녀의 제자로서 천계에 암약하는 세력을 찾아내려 했으나 끝내 지선 망량은 이루지 못했다. 적의 힘이 워낙 막강했기에 자신의 지식을 내게 넘겨주고 죽었던 것이다. 만일 천제를 내리는 계획이 그 흑막때문에 가속화된 거라면, 천우진이나 신승이 생각하는 상소방안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으리라.
나는 한층 신중하게 생각하다가 말했다.
"천제단에서 봉선의식을 해서 삼황오제를 불러내서 부탁하는 건 어떨까."
이게 훨씬 현실적이라는 생각에서 말했으나 선지자가 웃기다는 듯 대꾸했다.
[ 봉선의식이란 게 심심할 때마다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나? 차례, 권리, 자격, 시운이 필요하다... 네 녀석이 환신 천우진의 도움을 받아서 쉽사리 진행했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데... 달리 말하자면 천우진의 도움이 없으면 결코 시행할 수 없지... 그리고 그 천우진은 지금 천제단의 복구 때문에 극도의 집중상태에 들어가 있다...]
"......"
[ 봉선의식으로 삼황오제에게 건의하려면 최소 한달 후에 시도해봐야 하는 일이겠지...]
순서가 잘못되었다는 걸 직감했다.
' 이럴 줄 알았으면 선지자한테 먼저 들릴 걸 그랬어.'
그랬다면 일단 봉선의식부터 시도해서 시간을 최대한 아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천우진은 모든 출입을 끊고 술력과 집중력을 동원해서 태산의 천제단을 복구하고 있다. 그의 도움을 받을 수 없으니 앞으로 한 달 가까이 손가락만 빨고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자 선지자가 은근히 말했다.
[ 하지만... 그 팔찌와 성유물 모두를 내게 넘긴다면... 내가 대신해서 봉선의식을 도와줄 의향이 있다.]
"정말이냐?!"
[ 그렇다... 나도 삼황오제를 간만에 보고싶기도 하니까...]
뜻밖의 제안!
나는 황급히 제갈사에게 물었다.
[ 제갈사! 어떻게 생각해?]
제갈사는 어이가 없는 듯 말했다.
[ 야. 대체 무슨 근거지?]
[ 어?]
[ 백웅 넌 아무 생각도 없이 안절부절하고만 있었는데 갑자기 선지자를 찾아간다는 생각을 어떻게 한 거냐? 생각이 아무 근거도 없이 비약해서 따라갈 수가 없었다.]
어라? 확실히 제갈사의 말을 듣고보니 그런 느낌이 든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 그냥 그런 감이 들어서...]
[ 좀 더 확실히 말해 봐라.]
[ 기왕 죽을 거면 그 전에 정보나 얻고 죽을까 싶었지 뭐...]
[ ......]
황당한 듯 침묵하던 제갈사가 갑자기 광소를 터뜨렸다.
[ 크하하하하하!! 죽는다는 전제로 생각하면 그렇게 되는건가! 과연 전생자(轉生者).]
[ 그렇게 이상하냐?]
잠시 후 제갈사는 웃음을 멈추고는 말했다.
[ 해 봐라. 나쁠 거 없으니까.]
[ 좋았어.]
나는 이윽고 선지자에게 차고 있던 팔찌를 벗어서 성유물과 함께 넘겨 주었다. 팔찌와 성유물을 받은 선지자는 너무 기분이 좋은지 잠시 촉수를 일렁이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히쭉 웃으며 말했다.
[ 호갱...]
"응?"
선지자가 황급히 말을 거두었다.
[ 너무 고마워서 별 소리를 다 한 것 같군. 그럼 가자.]
"......"
뭔가 안 좋은 소리를 들은 기분이지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