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20 천계(天界) =========================================================================
나는 백련교에서 십이율의 동맹답변을 기다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여동빈의 말마따나 상관가의 봉인을 닫아버림으로서 약간의 공을 세운 건 사실이지만, 아직도 천계는 백련교주를 위험시하고 있었다. 상황을 뒤집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나는 여동빈을 불러서 질문했다.
[ 여동빈! 미호는 대체 어디 간 겁니까?]
여동빈은 여상하게 대답했다.
[ 천계로.]
[ 네?!]
[ 서왕모께서는 미호를 아끼신다. 천제계획이 발동해 지상이 정화될때 함께 휩쓸리기를 원하지 않으시기에 따로 전언을 주셨지. 그래서 그 분의 말씀대로 미호에게 돌아갈 길을 알려준 것 뿐이다.]
[ 돌아갈 길? 천계의 입구를 말하는 겁니까?]
[ 정식 입구는 아니다.]
여동빈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 천계에서 추방될때 내려왔던 출구를 말하는 거지.]
여동빈의 말에 제갈사가 바로 이해했는지 중얼거렸다.
[ 뒷구멍이란 말이구만.]
[ 아...]
나는 제갈사의 정리에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과거 전생에서 미호 망량과 했던 대화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 북쪽에 있던 천지간의 통로……?]
[ 산해경에 있는 삼황오제 전욱의 실수를 의미하오. 아주 먼 옛날에는 천계와 인계가 서로 통해 있어서, 등선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인간이 생명체의 몸을 가지고 천계로 갈 수가 있었다고 하지. 그러나 전욱의 실수 때문에 그 통로가 무너져서 등선이라는 체계가 생겨버렸다는 말이 있소. 천호께서는 천계에 있으셨으니 이 일을 왠지 잘 아실 듯합니다만...]
망량이 삼황오제 전욱의 갑골문을 해석하던 중 알아낸 천지간의 통로에 대해서 묻자 미호가 대답했었다.
[ 잘 모르겠다. 하지만 천계와 인계를 잇는 비밀통로가 존재하며, 그게 세상 어딘가에 있는 건 사실이다. 본녀도 그 통로 중 하나를 통해서 지상으로 추방되었느니라.]
[ 그럼 어찌하여 그 통로를 통해서 천계로 돌아가지 않으시는지……]
[ 내가 나온 곳 외에는 다른 곳이 어디에 있는지 모를 뿐더러, 그것은 뒷문이라고 할 수 있느니라. 거기를 통해 천계로 들어갈 경우 바로 투선(鬪仙)에게 공격당해 소멸당하고 말 것이다.]
그랬다. 미호는 천계와 인계를 잇는 비밀통로 중 하나를 통해 추방되었으며 그 장소가 어디인지도 알고 있으나, 그 장소를 투선급 존재가 지키고 있기 때문에 감히 범접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지금 여동빈의 말에 따르면, 미호가 천계로 돌아올 수 있도록 서왕모가 특별히 천계의 뒷구멍 통로를 열어두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미호는 그 통로를 통해서 돌아갈 수 있는지 확인하러 간 것이리라.
내가 미호의 행적을 알게 되자 여동빈이 말했다.
[ 미호라는 존재는 본디 천계의 태생. 돌아가게 두는게 가장 좋은 일이다.]
"그렇군요."
나는 씁쓸하게 대답했다. 억지로 미호를 되찾아오려 할 수도 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섣불리 천계 근처에 접근했다가 어떤 변을 당할지 모른다. 물론 칠요를 갖고있으니 쉽게 당하지는 않겠지만, 천제계획을 시도하고 있는 천계는 전에 없이 호전적이었다. 잘못하다가는 꼬투리가 잡혀서 더 힘들어질 수도 있었다.
나는 문득 생각나서 여동빈에게 질문했다.
"여동빈. 제가 알기로 그 뒷문을 지키는 투선급 존재가 있다고 했는데 어떤 존재인지 알고 계십니까?"
[ 모른다. 내 임무와 관련없는 일이다.]
"그렇습니까..."
[ 허나 연자의 힘으로 그 존재와 싸워이기려 드는 건 무모한 짓. 그것만큼은 말할 수 있다.]
그런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당장 투선 여동빈이 전용보패를 사용할 경우의 힘이 얼마나 가공할만한지는 얼마 전에 질리도록 느낀 것이다. 백련교주보다 강한 무림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좋을터인데 여동빈은 교주를 상대로도 충분한 승산을 지니고 있었다. 내가 투선급과 싸우려면 적어도 칠요가 둘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럼 여동빈. 교주가 낙양을 포기한다는 이야기를 천계에 보고해 주십시오."
[ 이미 했다. 그러나 삼청께서 그 이야기를 믿으실지는 모르겠다.]
한숨을 쉰 여동빈이 말을 이었다.
[ 연자여. 최선을 다해서 움직여라. 하늘사다리만큼은 막아야 한다.]
여동빈도 그렇고 천우진도 그렇고 천제계획을 만사 제쳐두고 막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만큼이나 천계가 인계에 직접 간섭하는 일이 위험한 듯 했다. 나는 의지가 차올랐으나 막상 뭘 해야할지 몰라서 잠시 망설였다.
그러자 제갈사가 말했다.
[ 천우진한테나 가라.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상담하는게 좋겠지.]
"알았어."
파앗!
내가 사불상을 타고 천우진이 있는 소림사에 가자,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소림사 근방의 영기가 한층 정순해지고 웅대해져서 마치 신전(神殿)을 방불케 하는 고밀도의 영기가 넘쳐나는 것이다. 이전에 비해서 두세배는 강력해진 느낌이라 나는 어리둥절한 기분이 들었다.
이윽고 천제단에서 합장한 채 기를 다듬고 있던 천우진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왔군. 그건 보패요?"
천우진의 시선은 내 허리춤에 매여있는 화룡신검을 향하고 있었다. 화룡신검은 본래 내가 다룰수가 없지만, 원주인인 여동빈이 허락한 덕에 소지가 가능했다. 뽑아서 휘두르는 것까지도 가능했지만 내가 사용하면 그저 강철장검에 불과하다는게 문제였다.
나는 천우진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설명했다.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천우진은 인상을 찡그리더니 말했다.
"결국 상황이 별로 달라진 건 없다는 소리군."
"교주가 물러난다는 의지를 여동빈을 통해 천계에 전달했고, 낙양에 잠재되어 있던 암천향의 위협도 제거했소. 나름대로 소득이 있는 거 아니오?"
"그 정도론 의미없소. 삼청이 직접 나섰으며 옥황상제가 인간학살의 인과율을 감내하겠다고 천명한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소? 그들은 인간의 문명을 근간부터 뒤엎는 한이 있어도 백련교의 위협을 걷어내버리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셈이오."
"......!!"
"더 확실한 게 필요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막막하군."
중얼거리던 천우진이 말했다.
"아, 숭산의 천제단은 내가 완전복구했소. 나머지 네 곳의 천제단도 모두 회복시켜야 하니 나를 그곳까지 데려다 주시오."
"천제단을 지금 복구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오?"
"내가 천제단의 기능을 바로 세우면 지상에 복마(伏魔)의 기운이 몇 배나 강력해지게 되오. 왜냐하면 천제단이 삼황오제의 기운을 불러오기 때문이지. 이 작업만으로도 천계를 설득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요."
그런 공능이 있었단 말인가?
"알았소 타시오."
나는 신기함을 느끼면서도 천우진을 사불상에 태우고는 차례대로 사악의 천제단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가장 많이 훼손되어 있는 태산의 천제단에 도착하자 천우진은 아예 벌레씹은 표정을 짓더니 짜증스럽게 말했다.
"... 여기는 할게 많으니까 제일 나중에 합시다. 아예 다시 만드는 수준이군."
"그러지."
슈욱!
내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항산의 천제단이었다. 항산의 천제단은 그렇게 많이 부숴지지 않은 모양인지, 천우진은 약 반 시진동안 주문을 외우며 힘을 불어넣더니 바로 복구시켰다. 그러자 아까 숭산에서 느꼈던 것 같은 강력한 파사현정의 기운이 산맥 전체로 뻗어나가는 게 느껴졌다.
다음으로 화산의 천제단에 도착해서 기능을 살리고 형산의 천제단에 도달했을 때였다.
"너희는 누구냐?!"
부리부리하고 매서운 인상의 장년인 검객이 고함을 지르며 풀숲에서 뛰쳐나왔다. 나는 그 자의 기도가 강력하고 마치 한 자루 검처럼 벼려진 기세를 느꼈기에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는 걸 알아챘다. 그래서 섣불리 공격하지 않고 포권을 하며 반문했다.
"저희는 오악의 천제단을 순례하는 수행도인입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수행도인? 천제단?"
고개를 갸우뚱하던 장년인 검객이 다시금 호통을 쳤다.
"나는 형산파의 장문인인 조진웅. 함부로 본 파의 영역에 침입한 너희의 성명을 밝혀라."
"으음."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팔비검선(八臂劍仙) 조진웅!
그는 형산파의 장문인이자 천하에 널리 알려진 검술의 달인이었으며, 특히 호남성 일대를 대표하는 초절정고수이기도 했다. 팔비(八臂)란 명호를 가질 정도로 변화무쌍한 환검(幻劍)의 달인이며 검선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다시 말하자면 구파일방의 장문인이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것이다. 제갈사가 내면에서 이죽거렸다.
[ 진작에 수신류 장로를 보내서 엎어버릴 것이지 괜히 알짱거리게 냅둬서 뭐하는 짓이냐.]
나는 제갈사의 비꼼을 무시하고는 조진웅에게 말했다.
"저는 백웅이라 하는 도인이며 이쪽은 천우진이라 합니다. 혹시 장문인께서는 이 장소가 천제단이라는 영지(靈地)라는 걸 알고 계시는지요?"
그러자 조진웅이 차갑게 대꾸했다.
"허튼 소리!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 썩 물러가거라."
"......"
아예 천제단을 모르다니?
내가 약간 당황하자 옆에 있던 천우진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썩 물러가야 할 건 네놈이다."
"뭣..."
열받아서 형산파 장문인 조진웅이 덤벼들려는 순간이었다.
휘잉
어찌된 일인지 조진웅의 몸은 난데없이 허공으로 빨려들듯이 사라져 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감쪽같이 사람 하나가 증발해버리자 황당해서 천우진을 쳐다보았다. 천우진은 관심도 없다는 듯 천제단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백웅. 당신 백련교의 부교주라 했으니 오악의 천제단을 49일동안 지킬 방안을 생각해 보시오. 저런 어중이떠중이들이 몰려들지 않게."
"흠... 노력해 보겠소. 그런데 방금 어떻게 한 거요?"
천제단 비석 앞에 풀썩 앉아서 들여다보던 천우진이 대꾸했다.
"봉인술로 다른 차원에 가둬버렸소. 방금 그 멍청이는 내가 원하기 전에는 세상에 나올 수 없을 거요."
"......"
새삼 천우진의 술력이 가공할 수준이란 걸 알 수 있었다. 하긴 현 인간계에서 최강의 술사라고 할 수 있을테니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 정도가 되면 인간의 무(武)가 통용되지 않는 수준이 아닌가 생각하니 씁쓸하기도 했다.
' 수신류를 동원해서 구파일방을 제압할 수밖에 없겠군.'
사정을 봐주지 않는 수신류 특성상 피가 흐를 것 같아서 꺼려졌던 일이지만 할 수밖에 없다. 잠시 후 천우진이 형산의 천제단도 회복시키고 나자 우리는 태산으로 다시 이동했고, 천우진은 골치아픈 듯 한숨을 쉬었다.
"하아... 여기는 대작업이 될 것 같소. 적어도 한 달은 걸릴테니 당신은 그때까지 이 근처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시오."
"한 달?!"
나는 놀라서 외쳤다.
"49일 중에 한 달을 쓴다면 당신이 움직일 수 있는 건 나중에 고작 스무 날에 지나지 않는데..."
"어쩔 수 있소? 현재의 인간세상에서 태산의 천제단을 복구할 수 있는 건 나 뿐이오. 이건 해야만 하는 일이니 현실에 순응하는 수밖에."
그렇게 말한 천우진이 한탄하듯 말했다.
"전례가 없는 일인데 하필 내가 업을 짊어지다니!"
나는 집중하는 천우진을 방해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백련교로 복귀해서 교주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말했다.
"교주. 오악의 천제단 때문에 구파일방을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제압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호법사자와 천령단 소유자를 내려주십시오."
[ 물론이다. 그 정도는 당연한 일. 방해되는 구파일방 놈들은 모조리 죽여버려라.]
"아... 아니, 희생을 최대한 줄여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왜지?]
"천제단 근처는 영험한 장소이니 살육이나 전투를 벌이면 좋지 않은 영향을 주지 않을지..."
내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교주는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좋다. 그건 내가 말해두겠다.]
"감사합니다."
[ 천제단 복구... 괜찮은 작전이군. 그러나 천우진이라는 자가 한 달이나 발이 묶인 건 치명적인 일이야. 좀 더 생각나는 방안은 없나?]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천우진의 말에 따르자면 이 정도로는 천계의 설득은 불가능하며 씨도 안 먹힐 게 뻔했다. 천계를 달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이 필요한 것이다. 내가 머리를 굴리자 제갈사가 말했다.
[ 세상을 구할 수 있는데 너만 죽게 된다면 할 거냐?]
[ 무슨 소리냐?]
[ 이렇게 하면 된다.]
이어진 제갈사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잊었다.
[ 비등, 목갑, 사불상, 월요, 전국옥새, 마수의 팔찌 전부를 천계에 공양해버려라. 그러면 천계를 멈출 수 있을지도 모르지?]
[ 지, 지금 그걸 말이라고...]
[ 왜? 비등과 목갑은 교주꺼라고 쳐도 나머지는 다 바칠 수 있는 일이잖냐? 왜 못 해?]
[ ......]
[ 크크. 실패할 경우의 부담이 너무 커서 못 하는 거겠지. 성공한다고 한들 네녀석은 한순간에 갖고 있던 모든 걸 잃어버리는 셈이니까 배보다 배꼽이 큰거고 말이다. 그리고 세상을 위해 모든 걸 버린다, 멋있긴 한데 너만 개털되는건 싫겠지?]
나는 제갈사의 말을 무시했다. 놈의 말이 맞을수도 있겠지만 그건 최후의 방법이었다. 나는 교주에게 말했다.
"당장 생각나는 건 없습니다. 우선은 구파일방의 제압에 집중하겠습니다."
[ 좋다. 호법사자 통솔권을 포함한 전권을 부교주 네게 맡긴다.]
"존명."
나는 교주와의 대담이 끝나자 걸어서 바깥쪽으로 나왔다. 전에 있던 교주전은 완전히 파괴되어서 형체를 알 수 없게 되었기에 여기는 임시로 마련된 건물이었다.
도중에 원로원 고수 몇 명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나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고개를 숙이거나 피해버렸다. 평소에 지독하게 콧대높은 자들이라서 그 반응에 어리둥절하자 제갈사가 킬킬거렸다.
[ 천령단도 없는 개허접에게 일초만에 싸그리 털렸으니 할말 없겠지. 접싯물에 코박고 죽고싶은 심정일 거다.]
그렇구만.
나는 왠지 신이 나서 씨익 웃었다. 이런게 힘을 가지는 기쁨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 그게 니 힘은 아니지만 말이지.]
초 칠래?
나는 투덜거리면서 호법사자들을 소환하는 명령을 내렸다. 이윽고 수신류 호법사자 독고준, 화신류 호법사자 한백령, 그리고 수신류의 막강한 원로들이 도착하자 나는 입을 열었다.
"교주의 명을 전달하겠소. 나는 현시간부로 구파일방 제압령과 통솔권을 받았으니 내 명에 따라서 구파일방 제압작전을 개시해 주시오."
팔짱을 끼고 있던 한백령이 말했다.
"저희는 약해서 힘이 없으니 부교주께서 직접 가시는게 어떻습니까?"
싸늘하게 비꼬는 말투. 한백령은 뭐가 맘에 안 드는지 노골적으로 나를 싫어하는 기색이었다.
나도 이번 생의 한백령이 그리 맘에 들지 않았으므로, 일일이 동요하지 않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천령단을 갖고 있으면서 잘도 그딴 말을 하는군. 더 이상 비꼬면 교주의 통솔권으로 치죄할 테니 얌전히 있으시오."
"그래야지요. 부교주님의 말이라면."
나는 한백령을 한번 째려보고는 지시를 시작했다.
"독고준. 수신류를 이끌고 화산파, 형산파, 무당파, 점창파, 개방을 제압해 주시오."
[ 알겠습니다.]
"한백령. 화신류를 이끌고 아미파, 곤륜파, 종남파, 황산파, 청성파를 제압해 주시오."
"그렇게 하지요."
대꾸하던 한백령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부교주께서 혼자서 무림의 태산북두인 소림사를 제압하신다는 말씀이신지?"
"그렇소."
"대단하시군요."
한백령의 말에 나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 소림사는 내 편인데 뭐하러 제압을 해.'
실제로 월요를 동원하며 무력시위를 해도 제압할 수 있긴 하겠지만 우리편이 되겠다는데 쓸데없이 싸울 이유가 없다. 다만 그 사실을 한백령에게 말해줄 이유가 없었으므로 대충 넘어가 버렸다.
또한 구파일방이라 하면 총 십개 파가 되어야 하겠지만 하나 더 많은 11개파가 된 이유는 황산파 때문이었다. 황산파가 난데없이 실종된 공동파 대신에 구파일방의 자리를 비집고 들어올 정도로 욱일승천했기 때문이었다. 속편하게 십파일방으로 부르면 되겠지만 여태까지 구파일방 사이에 묘한 알력이 발생해서 완전한 동맹관계가 유지되지 않았으므로 기존의 칭호를 고수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또 하나. 제압을 하되 최대한 무혈제압을 하라는 교주의 명이 있었소. 상해까지는 용납이 되어도 결코 사람을 죽이지 않도록 조심하도록."
그러자 독고준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 교주께서 정녕 그리 말씀하셨습니까? 왜 구파일방 떨거지의 사정을 봐 주어야 하지요?]
"직접 찾아가서 확인해봐도 좋소. 그러나 교주와 내 권위를 둘 다 의심한 셈이겠지."
[ 음... 사실이라 믿겠습니다.]
"의심 좀 그만하시오. 젠장."
나는 짜증스럽게 말하고는 탁자를 손으로 쾅 쳤다.
"그럼 지금 당장 움직이시오! 염령을 쓰든 뭘 쓰든 하루빨리 제압하라는 게 교주님의 명이니."
[ 존명.]
나는 뿔뿔이 흩어지는 백련교 간부들을 보면서 이번 제압령이 실패할 걱정은 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너무 거대한 전력차가 있기 때문에, 어린애 팔을 비틀듯이 제압해버릴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나는 백련교에서 보고를 기다리면서 이혼대법과 삼보절기 수련을 하고있기로 마음먹었다.
보고는 약 나흘이 지난 후에 올라왔다. 그리고 나는 황당해서 전령에게 대꾸했다.
"뭐? 실패?"
"그렇다 합니다. 이유는..."
나는 전령이 설명하기 전에 심술궂은 생각이 났다. 나를 잔뜩 무시하는 호법사자들을 갈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래서 손을 내저었다.
"호법사자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군."
"그러시다면..."
"오라고 그래."
계급이 깡패였으므로 독고준과 한백령은 어쩔 수 없이 내 집무실로 찾아왔다. 나는 그들을 쏘아보며 말했다.
"왜 실패했소?"
독고준은 묵묵히 서 있다가 충격적인 한 마디를 했다.
[ 뇌신류가 끼어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