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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416화 (416/1,615)

00416  천계(天界)  =========================================================================

우리는 곧장 상관세가에 갔다. 나는 상관세가의 지하실로 곧장 이동한 후, 사불상에서 내리면서 제갈사를 힐끔 보았는데, 놈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그간 이혼대법 수련 좀 했으니 쉽게 혼백이 흩어지지 않는군. 반 시진은 너끈할테니 걱정마라."

"엉뚱한 짓 하지 마."

나는 걱정이 돼서 제갈사를 쳐다보았다. 놈의 말대로 내 이혼대법 성취는 그 동안 용맹정진한 덕분에 꽤 나아져 있어서, 이제 곧 완전히 제갈사를 초상기인에 옮겨줄만한 경지를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제갈사라는 놈이 워낙 어디로 튈지 모르는 광인이었기에 걱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니나 잘하세요."

툭하고 내뱉은 제갈사가 지하실의 전면에서 꿈틀거리는 나선의 봉인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역시 이것 때문이겠군."

"뭔지 아는거냐?"

"네 시선만 공유할때는 잘 알지 못했지만 몸을 갖고 와보니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여기에는 마력(魔力)이 스며들어있고, 그걸 어떻게든 지키고 있는 중이다. 백웅 네가 줬던 성유물이 봉인을 강화했다는 것도 느껴진다..."

그렇게 중얼거리던 제갈사가 갑자기 맞은편의 빈 공간을 쳐다보며 말했다.

"지난번부터 시치미 떼느라 아주 죽을맛이었겠구만, 상관혁?"

슈욱

다음 순간 의성 상관혁이 거기에서 슬며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기척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므로 나와 미호도 거기를 보며 경계하고 있는 중이었다. 상관혁은 침음성을 흘리다가 말했다.

"제갈유룡?"

"후후. 미안하지만 아니올시다."

비웃음을 흘린 제갈사가 내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백웅. 전시안을 써서 이 봉인을 확실하게 관찰해라. 그럼 봉인을 구성하는 보패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 거다."

"으음."

내가 전국옥새를 들고 발동시키려 하자 상관혁이 기겁을 해서 외쳤다.

"저 전시안... 그렇다면 그건 전국옥새! 안돼... 안된다!"

"안되긴 뭐가 안돼? 지금 뭔 일이 벌어졌는지 알기는 하나?"

제갈사가 성큼 한 걸음을 옮기며 으르렁거렸다.

"천제가 내려와서 49일 후에는 다 죽는다. 이 상황에서도 네놈 안위만 챙기다니 정말 대단한 놈이군."

"윽..."

침음성을 흘리던 상관혁이 말했다.

"백웅 부교주! 잠깐 멈추시오. 내가 다 설명하겠..."

내가 그 말을 듣고 전시안의 발동을 잠시 멈출까 했지만 제갈사가 호흡을 끊으며 말했다.

"계속해! 이딴 놈 사정 봐줄 필요 없다."

그렇겠군.

나는 제갈사의 말에 공감하며 전시안을 발동시켰다. 미호와 제갈사가 술력을 동원해서 상관혁을 견제하고 있었기에 나는 기습당할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윽고 주변공간의 모든 것이 한올한올 섬세하게 느껴지기 시작하자, 나는 눈 앞의 봉인에 뭔가가 숨겨져 있으며, 그게 검(劍)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투명한 검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그 검의 본질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나선형으로 휘도는 기계 속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전시안은 본질을 느끼게 해주며 심지어 자유자재로 접촉하게까지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우웅

하지만 나는 그 투명한 검의 손잡이를 잡는데는 성공했으나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

"......!!"

뜨겁다!

마치 살갗이 오그라들고 혈맥이 타버리는 듯한 무시무시한 화기가 느껴졌다. 염룡(炎龍)이 혈관을 타고 들어와서 심장을 부술 것만 같은 압박감이 내 숨을 멈췄다. 뜬금없이 큰 충격과 고통에 넋이 나갈 정도였지만, 나는 그동안 무인으로 지내면서 고통에 대한 내성을 많이 키웠으므로 이윽고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으드득

나는 이를 악물고 억지로 검을 잡은 채로 봉인에서 끌어내었다. 내가 완전히 손을 거두어서 검을 빼냈을 때, 그 검은 실재하는 형상을 지닌 채 내 손에 잡혀 있었다. 아무래도 이 기계봉인 속에 흡수되어 있던 걸 전시안의 힘을 이용해서 억지로 빼낸 듯 했다.

하지만 계속 잡고 있으며 몸이 안쪽에서부터 불타버릴 것 같았기에, 나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검을 놔 버리고 말았다.

땡그랑...!!

"허억! 헉! 허억...!!"

내가 거친 숨을 몰아쉬자 제갈사가 물끄러미 땅에 떨어진 검을 내려다 보았다. 그러더니 미호를 힐끔 보더니 뭔가 생각하다가 말했다.

"귀찮군. 이 자리에서 저걸 회수하는 건 무리겠어."

그러자 견제당하고 있던 상관혁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 알았으면 도로 집어넣으시오. 성유물이 봉인을 유지하고 있으나 그 검이 없으면 오래가지 못할 것이오."

"누구 맘대로? 네놈이 이 검의 주인도 아니잖나?"

"무슨..."

"좋아, 다시 집어넣어 주지."

그렇게 말한 제갈사가 히죽 웃으며 손가락으로 발 밑에 떨어져있는 검을 가리켰다.

"네가 정녕 이 검의 주인이라면 이리 와서 가져가라. 그리고 다시 봉인에 넣으면 된다. 네가 검의 주인이라면 정말로 쉬운 일이겠지?"

"......"

"뭐하나? 얼른 해."

하지만 제갈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상관혁은 우물쭈물하면서 움직이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그건 미호나 제갈사가 자신을 공격할거라 생각해서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제갈사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미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리둥절해했다.

"뭐가 문제냐? 이런 고검(古劍)을 갖고..."

미호가 고개를 숙여서 검을 집으려는 순간 제갈사가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물러나라 구미호! 그 신검(神劍)을 너같은 요괴가 잡았다가는 즉시 소멸당할 거다."

"......!!"

미호는 화들짝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어찌나 놀랐는지 미호의 둔갑술이 약간 풀려 있었고 엉덩이 뒤에 새하얀 꼬리가 세 개 드러나 있었다. 미호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다가 뭔가를 깨달았는지 상관혁과 제갈사를 번갈아서 쳐다보았다.

"그렇군... 내가 안된다면 네놈들은 더 안되겠구나!"

"......?"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가?

내가 이해가 안되어서 멀뚱멀뚱 보고만 있자, 상관혁이 탄식하며 말했다.

"이걸 어찌할 작정이오? 꺼내놓고 뒷감당도 할 수 없다니... 당신들도 마도(魔道)에 물들어있는 주제에 왜 나한테만 잘난척이란 말인가?"

"적어도 우리는 벌어진 일을 뒷처리 할만큼의 의지는 있지. 수십만 명의 인간이 죽건말건 나 몰라라 하는 짓은 하지 않는단 말이야~"

"윽..."

"흐흐. 문제는 이제 이걸 어떻게 운반하냐는 건데."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제갈사에게 질문했다.

"제갈사.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흠... 간단히 말하자면, 이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저 검을 사용할 수 없으며, 만지기도 벅차다는 말이다. 그나마 옮길 가능성이 있는 건 백웅 네녀석밖에 없겠군."

"뭐? 대체 왜?"

"신검(神劍)이기 때문이다. 천상의 지보(至寶)이기에 자신의 의지를 지니고 있으며, 특히 신검을 통솔하는 화령(火靈)이 파사현정(破邪顯正)의 힘을 갖추고 있군. 수백 년 동안 봉인에 쓰여서 약화되었는데도 이 정도라면, 전성기에는 어땠을지..."

제갈사는 감탄한 듯이 검을 쳐다보았다. 나는 그 말을 곧장 이해하고는 반문했다.

"제갈사 네 녀석은 사악한 마도사(魔道師)이고 저기 상관혁 또한 마도사이긴 마찬가지. 그리고 미호는 음(陰)에 속하는 요괴이니 당연히 안 되는 거군."

"그런 거다."

"잠깐... 그럼 나는 왜 이걸 다룰 수 없는 거야?"

그러자 제갈사가 뭘 물어보냐는 듯 대꾸했다.

"네놈도 그동안 [옛 지배자]와 접촉하고 이계의 지식을 다루며 마법을 직간접적으로 접하지 않았느냐? 네놈 자체가 마(魔)는 아닐지라도 천계의 화령이 너를 악(惡)이라고 판정할 근거는 아주 충분하지."

"......"

"뭐 그래도 아예 빠져들지는 않았기에 고통을 느끼면서도 만질 수는 있나보군."

자기 일이 아니라고 대충 말하는 제갈사였다. 하지만 나는 저놈의 깐죽거림에 신경쓸 처지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 상관세가 지하실의 봉인을 유지하고 있던 힘의 원동력이 뭔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힘의 원동력은 바로 이 화령이 잠재된 보검보패.

그리고 그럴만한 보패는 세상천지를 통틀어서 단 하나밖에 없었다.

"화룡신검(火龍神劍)!!"

내가 경악해서 외치자 미호가 말했다.

"백웅. 몸은 괜찮으냐? 화룡의 기운이 몸에 침투했을터인데."

"아... 잠깐."

나는 급히 소주천을 간략하게 돌리며 내 몸의 상태를 점검했다. 확실히 방금전에 느꼈던 타들어가는 기운이 골수까지 뻗치며 이미 몸 안에 염류(炎流)를 만들어낸 듯 했다. 나는 화씨백팔침을 써서 염령의 기운을 잠재우며 숨을 골랐다.

' 잠깐 잡았을 뿐인데 이 정도라니.'

이래서는 화룡신검을 갖고 싸우는 건 엄두도 낼 수 없겠다. 내 엄청난 내공을 갖고도 몸안의 염류를 제압할 수 없는 걸 보면, 일반 무림인이 화룡신검을 잡는 순간 몸이 전소되어 버릴 것이다. 아니, 근처에만 가도 몸이 불타죽지 않을까?

"난 괜찮아."

정말 무시무시한 힘을 지닌 보패다. 내가 내심 화룡신검의 영력에 질려하자 상관혁이 말했다.

"후회할 짓 그만두시오. 화룡신검은 이 봉인을 유지해야만 하오. 그렇지 않으면 낙양 전체에 거대한 재앙이 닥쳐올 것이오."

"글쎄다~ 그건 니 입장이고, 우리 생각은 좀 다른데."

제갈사가 이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애초에 네 것도 아닌 화룡신검을 멋대로 봉인의 뒤처리에 갖다써놓고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군. 원래라면 화룡신검은 여산의 모처에 봉인되어서 연자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고 여동빈도 인계를 수호하는 임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을 거다. 차기 투선이자 수호자가 면면히 시대마다 전승되어 왔어야 정상이었겠지."

"으음..."

"하지만 네놈들 상관세가가 화룡신검을 낙양에 갖다놓는 바람에 투선 여동빈은 이족에게서 인간을 지키는 임무를 거의 수행할 수 없었겠지. 그래서 천 년 동안 손가락만 쪽쪽 빨다가 저 백가 모질이한테 겨우 강신했던 게 아니겠냐?"

"......"

모질이라니 너무 심하다.

하지만 제갈사가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는 현재 낙양에 화룡신검이 있는 이유와 그 비사(秘事), 인과관계를 거의 다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 그래서 여산에 화룡신검이 없었구나.'

화룡신검은 원래 여산의 깊은 동굴에 봉인되어서 거룡의 목젖에 자리잡고 있었을 테지만, 강력한 보패를 원하던 상관세가의 선조가 화룡신검을 찾아서 낙양에 갖고왔으리라. 그리고 봉인을 강화하는 소재로 의식에 사용했을 게 분명하다.

내가 황당한 눈으로 상관혁을 쳐다보자 그가 변명하듯 말했다.

"전부 세상을 위한 일이었소. 그 때 봉인을 유지하지 못했다면 천하가 피에 물들고 요음(妖陰)이 대낮에 활보하여 인간을 마구잡이로 살육했을 거요. 화룡신검 또한 올바른 일에 쓰였으니 우리가 잘못한 건 없소."

"흐흐. 그렇단 말이지."

눈을 가늘게 뜬 제갈사가 내게 말했다.

"어이 백웅. 확실히 할겸 여동빈을 불러내서 강신(降神)해라. 여동빈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테고, 이 일의 진위를 명확히 할 수 있겠지."

"헉...!!"

상관혁이 크게 놀랐는지 눈을 부릅뜨곤 내게 외쳤다.

"다, 당신이 검선 여동빈의 연자였단 말인가?"

"흠... 뭐 그런 셈인데."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대꾸했다.

"제갈사 말대로 하는게 제일 좋겠군."

그리고 내가 의식을 집중해서 여동빈을 불러오기 시작하자 상관혁은 좌절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서 중얼거렸다.

"업보... 업보로다..."

파앗!

잠시 후 여동빈이 내 몸에 강신했다. 여동빈은 내 몸에 불려오자마자 상황을 파악한듯, 물끄러미 바닥에 떨어져 있는 화룡신검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다가가서 화룡신검을 손에 집었다.

화륵

화룡신검은 잠시 불타오르더니 내 손을 뜨겁게 달구는 듯 했다. 그러나 이윽고 불꽃이 잦아들었고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청명한 소리를 내었다. 그 소리는 마치 주인을 반기는 듯 맑고 투명하기 그지없었다.

키잉 -

화룡신검을 잡은 채 한동안 묵묵히 검신을 쳐다보고 있던 여동빈이 입을 열었다.

[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모든 일이 환란에 헤매이며 감당할 수 없는 인과의 실타래를 만들었구나...]

그러자 여동빈에게 제갈사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검선. 이대로 저 봉인을 파괴하는게 어떨까? 당신의 힘이라면 저 봉인에서 마물이 개떼처럼 몰려나와도 감당할 수 있을터인데?"

[ 농짓거리를 하면 베어버리겠다.]

파앗!

그 순간이었다. 제갈사는 마치 실 끊어진 인형처럼 풀썩 그 자리에 무너졌다. 정확히는 넋이 나간 표정이었는데 내게로 혼백이 돌아오지 않는 걸 보면 죽은 게 아니라 기절한 걸로 보였다. 그저 여동빈이 살기를 한번 내쏘았을 뿐인데 제갈사의 심령(心靈)이 완전히 제압당해서 가사상태에 빠져버린 것이다.

' 저럴 수가.'

제갈사는 배교의 교주이며 뛰어난 마도사라서 그 정신력은 보통 인간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 제갈사를 기세 한번으로 가사상태로 만들어 버리다니! 나는 여동빈의 힘이 여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걸 직감할 수밖에 없었다.

여동빈은 뚜벅뚜벅 걸어서 상관혁의 앞으로 가더니 말했다.

[ 이 봉인은 무측천(武側天)의 신위(神位)를 막으려 만들어진 것이겠지, 인간이여.]

상관혁은 감히 여동빈에게 맞설 생각도 못하는지 질겁해서 머리를 조아렸다.

"그... 그 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소."

[ 그 때부터 모든 일이 꼬였건만... 상관완아(上官婉兒)는 꼭 그런 선택을 해야했단 말인가.]

탄식하듯 말한 여동빈은 잠시 후 화룡신검을 어검술의 태세로 들어서 곧장 봉인을 향해 겨누었다. 그리고는 외쳤다.

[ 소(?)!]

화르륵!

그 순간이었다. 화룡신검에게서 마치 섬광같은 불꽃이 뿜어져 나오더니 복잡한 기계장치로 이루어진 봉인을 정중앙으로 관통했고, 이어서 어둠마저 꿰뚫어버리고 말았다. 어둠은 마치 발악하듯 촉수같은 기운을 사방으로 퍼뜨렸으나 여동빈이 이어서 수만 개의 검기를 발출하자 요란한 폭음이 울렸다.

콰과광

잠시 후 어둠은 완전히 사그라져서 없어져 버리고 말았고 봉인 또한 마찬가지가 되었다. 그 신위를 멍하니 지켜보던 상관혁에게 여동빈이 말했다.

[ 다른 유물의 힘 덕택에 완전히 뒷정리를 할 수 있었다. 이제 암천향(暗天鄕)으로 향하는 문이 개봉되는 일은 없으리라.]

그러자 상관혁이 깜짝 놀랐다.

"정말로 완전히 닫았단 말입니까?"

[ 그렇다.]

상관혁은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기뻐했다.

"아아...!! 감사합니다! 대선이시여."

[ ......]

하지만 여동빈은 그리 기쁜 기색이 아닌 듯 했다. 그러더니 옆에서 멀뚱히 이 모든 일을 지켜보고 있던 미호에게 말했다.

[ 상황이 좋지 않다. 그대는 당장이라도 천계로 귀환하라.]

미호는 반감이 생겼는지 샐쭉한 얼굴로 대꾸했다.

"여동빈 네가 뭔데 나한테 명령이지? 그게 서왕모님의 명령이냐?"

[ 그렇다. 그분께서 원하신다.]

"......!!"

미호가 깜짝 놀라자 여동빈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 더이상 수습이 불가능하게 되면 가리지 않고 멸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천계로 가도록 해라.]

"하지만... 내가 천계로 가는 길은 닫혀버렸는데."

[ 뒷길을 열어두었다 하셨다.]

"아...!!"

미호는 뭔가 깨달은 표정을 짓더니 둔갑술을 써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여동빈의 내면에서 미호가 가 버리는 광경을 보자 허탈하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다. 나를 도와준다고 해놓고 저리도 쉽게 가 버린단 말인가?

하지만 미호에게 신경쓸 틈은 없다는 듯 여동빈이 내게 말했다.

[ 연자여... 화룡신검을 발견해내고 암천향의 균열을 봉인한 것은 아주 큰 공이다. 그러나 천계는 백련교주의 힘과 가능성을 크게 경계하여, 이번 기회에 확실히 말살해버리려 하고 있으니, 천계가 49재 후 천제를 내리는 계획을 쉽사리 막을 수 없다.]

뭐?!

[ 낙양의 위협은 다 없앤거잖습니까! 천계에서 그래도 끼여드는 건 너무 치사한 짓 아닙니까?]

내가 마음속으로 크게 반문하자 여동빈의 말이 이어졌다.

[ 이 봉인이라는 건 추가적인 위협이었을 뿐이다. 진정한 위협은 따로 있다... 백련교주가 낙양을 점거하는 건 천계가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일이다.]

[ 진정한 위협이라니요?]

[ 천기이기 때문에 누설할 수 없다.]

그렇게 대꾸한 여동빈이 한탄하듯 말했다.

[ ... 연자여. 지금이라도 마음을 정하라. 백련교주를 없앨 것인지, 다른 방법을 도모할 것인지.]

나는 여동빈의 제안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여동빈은 원래라면 이렇게 순순히 내게 선택지를 주지 않았다. 과거 이족과의 대결에서 폭주했을 때의 경험을 생각해 보면, 틀림없이 극악한 백련교주에게 분노해서 제멋대로 내 몸을 가지고 백련교주와 한판 뜨러 갔으리라. 하지만 왠지 여동빈은 내 선택에 모든 걸 맡기겠다는 듯 유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 여동빈. 무슨 생각이십니까? 당신은 투선이며 대라신선이라서 천계의 적수를 무조건 제거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요.]

[ 그리 보였는가?]

씁쓸하게 대꾸한 여동빈이 말했다.

[ 의미없는 발버둥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천제를 내리는 건 너무나 극단적인 행위이므로, 나는 그 일을 전적으로 찬성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연자에게 선택을 맡기고 싶다. 백련교주란 존재는 과연 모든 악을 떠맡기고 토벌해도 될만한 거악(巨惡)인지, 그 동안 직접 보아온 연자가 판단하기를 바란다.]

[ ......]

나는 여동빈의 제안이 그 나름대로의 자유의지란 걸 알고 놀랐다. 그저 천계의 무력으로서 싸워오던 여동빈이었기에 기계적으로 교주의 말살을 택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천제계획에 회의적인 것이다. 나는 여동빈이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는 걸 깨달았기에 크게 고민했다.

교주의 말살.

확실히 그걸 이뤄낸다면 천계가 천제를 내리려는 계획도 취소시킬 수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천계는 백련교주를 위험시해서 천제를 내리려 하기 때문이다. 아마 십중팔구는 천계의 계획을 취소시키게 되리라.

하지만 그건 정말로 해도 되는 일일까?

교주가 원하는 이상인 진공가향은 분명히 나름대로의 신념을 가지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진행되는 계획이었다. 또한 교주도 극악이라고 구별할만큼의 인간쓰레기가 아니었다. 표리로써 선악을 구분하지 말라는 제갈사의 말을 들었기에 더욱 껄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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