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414화 (414/1,615)

00414  천계(天界)  =========================================================================

천우진과 함께 숭산의 소림사에 가자, 나는 대번에 이 장소가 다른 천제단과는 다르다는 기분이 들었다.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정순하고 장중하게 흐르는 정기!

거대한 용맥(龍脈)을 따라 인간들의 정념이 갈고닦여서 소림사에 영적인 안정성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여태껏 사신(邪神)에게 오염되어 있던 황궁이나 불길한 기운이 응축되어 있던 백련교 내부와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가만히 서서 맑은 공기를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악한 기운이 씻겨나가는 듯한 뛰어난 청정감이 나를 감탄하게 만들었다.

' 예전에는 잘 못 느꼈는데...'

제갈사가 설명해 줬다.

[ 네놈의 영력이 크게 증폭되어서 영기의 순도를 느낄만한 경지가 된 거다. 소림사는 중원에서도 손꼽히는 영지(靈地)니 확연히 느낄 수밖에.]

나와 천우진은 숭산의 천제단 근처에 서서 천제단을 관찰했다. 천우진은 천제단의 구조물을 들여다보다가 비석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잘 관리되었군. 고대의 술식이 하나도 훼손되지 않았소."

"무슨 소리요? 훼손이라고?"

"몰랐나 보군. 태산의 천제단은 여기와 달리 술식이 훼손되어서 왜곡된 상태였소. 아마 주작이 자신의 뜻대로 천제단을 통해 천계를 염탐하기 위해서였겠지."

나는 천우진의 말을 듣고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잠깐. 당신도 제갈유룡과 대등... 아니 놈을 훨씬 뛰어넘는 술사잖소. 그럼 당신도 천제단 비석을 왜곡해서 천계의 정보를 엿들을 수 있잖..."

"내가 제갈유룡보다 강한 건 사실이지만 팔괘(八卦)의 조예는 그를 따라갈 수 없소. 그 자가 천제단을 조작한 방식은 극히 정밀하고 어려운 팔괘도법이니 하루아침에 따라할 수 있는 게 아니오."

그렇게 말한 천우진이 말을 이었다.

"곧 신승이 오겠군. 준비하시오."

나는 기감을 펼쳤지만 근처에 신승이 있는 것 같진 않았다. 그렇다면 천우진은 훨씬 넓은 범위를 감지하고, 그 중에서 신승의 기척을 알아내서 어디에 있는지 짐작한 것이다. 놈의신통력이 대단하단 걸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휘익

이윽고 신승이 명(明)자배 반열의 고승 3명과 함께 숲속으로 뛰쳐왔다. 그는 나와 천우진을 발견하더니 놀란 듯 말했다.

"아미타불... 신인(神人)들이 왔구나."

나는 한발짝 앞으로 나서며 신승 명호대사에게 포권했다.

"명호대사. 저는 백련교의 부교주인 백웅이라 합니다."

"......!!"

신승 옆에 있던 명자배 고승 세 명이 경악하는게 느껴졌다. 특히 예전에 봤던 명정이라는 승려는 수양이 흐트러질 정도로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그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

"이럴수가... 사마외도가 여기까지 침입하다니!"

"당장 해치웁시다."

"제자들을 불러오겠..."

명자배 고승들이 호들갑을 떨자 신승이 크게 일갈했다.

"조용히 해라!"

우르르릉

그 순간 지진이 울리는줄 알았다. 신승의 내공이 워낙 거대해서 천지를 떨게 만드는 위력을 지닌 것이다. 나는 신승의 내공이 나와 비교해도 그렇게 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자 새삼 감탄했다. 내가 얻은 내공의 기연은 수십 번에 이르는데 그에 맞먹다니! 과연 소림사의 정종신공은 강력했다.

그는 자신의 사제들을 진정시키고는 나직이 말했다.

"그대들이 천제단에 와있는 목적이 무엇인가? 그리고 마치 우리를 기다린 듯 보이는군."

"그렇습니다. 이 천제단보다는 신승 당신을 보러 왔습니다."

"백련교인이 빈승에게 무슨 용건인가?"

나는 옆에 서 있던 천우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쪽은 환신 천우진. 망량선사의 직계제자입니다."

"으음!"

"우리는 망량선사의 명으로 왔습니다. 아주 급하고 위중한 사안이니 다른 분들을 이 자리에서 물려 주십시오."

"......"

신승은 한참을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명정(明情), 명우(明雨), 명진(明珍)! 돌아가서 기다리고 있거라."

"하지만 사형..."

"걱정 말아라. 저 자들은 이 자리에 싸우러 온 게 아니다. 싸우려 들었다면 우리는 이 자리에서 이미 죽었을 것이다."

"... 알겠습니다."

이윽고 세 명의 승려들이 장내에서 사라지자, 천우진이 신승에게 말했다.

"그대가 스승님께 현몽을 받을 시간도 없이 찾아와서 미안하오. 하지만 사안이 너무 크기에 영수(靈獸)를 써서 서두를 수밖에 없었소."

"흠... 그대가 선사의 제자라는 건 믿을 수 있을 것 같소. 정말 무시무시한 법력(法力)이구려..."

찬탄하던 신승이 질문했다.

"대체 무슨 일이오?"

천우진은 약간 침통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소. 얼마 전 백련교가 낙양을 점거하여 신(神)의 봉인이 풀릴 위험이 극대화되자, 천계에서는 긴급히 남화노선을 시켜서 백련교 토벌을 명했소. 그러나 백련교주는 대라신선마저 물리쳐 버렸고, 결국 천계 삼청(三淸)이 천제(天梯)의 재설치를 명했소."

천우진이 이윽고 그간 있었던 일을 좀 더 상세하게 설명했다. 백련교의 부교주라고 밝힌 내가 말하는 것보다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

신승은 그 자리에 굳어서 뻣뻣해졌다. 수양이 극도로 뛰어난 불승이 당황할 정도의 소식이었는지 그는 한동안 말을 하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이내 어깨에 힘을 풀며 한탄했다.

"이럴수가... 어찌 이런 일이... 신화시대 이래로 없으리라 생각했던 일이 어찌..."

넋나간 듯 중얼거리던 신승이 내게 시선을 돌렸다.

"그대는 백련교의 부교주라 했는데 같이 온 이유가 무엇이오?"

나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나는 월요(月曜)의 주인이자 천계에게서 백련교주와 십이율주의 견제를 명받았소. 하지만 상황이 극히 흉험하게 흘러가서 더 이상 내 선에서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소. 염치불구하고 신승 당신의 도움을 받아야 하오."

"칠요의 주인!"

"믿기 쉽게 해주지."

우웅

나는 월요의 힘을 끌어올려 소환했다. 내 주위를 맴돌며 명동하는 삼신기를 본 신승이 그제야 알겠다는 듯 중얼거렸다.

"오늘 객인(客人)이 한(恨)을 푼다 하였는데 이런 뜻이었구나."

"......?"

"그대의 소식은 언뜻 전해 들었으나 본인을 보는 건 처음이구려."

"도와주실 수 있겠소?"

"흐음..."

신승은 잠시 감정을 정리하는 듯 했다. 그리고는 천우진을 쳐다보곤 말을 이었다.

"언제 시작된 거요?"

"천계의 회의에서 어제 결정되었다 하오."

"그러면 49일 후에 모든 게 결판나겠구려. 빈승이 뭘 도와줄 수 있겠소?"

엥?

나는 그의 말을 듣자 더 이상은 참지 못하고 신승에게 물었다.

"당신은 하늘사다리(天梯)가 뭔지 알고 있소? 49일이라는 건 또 뭐요?"

"......"

신승은 힐끔 천우진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천우진이 한숨을 쉬며 신승에게 말했다.

"이 자는 천제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소. 하지만 정의감이 강하고 신뢰할만 하기에 스승님께서 대업을 맡기셨지. 그리고 지금 너무 급해서 그에게 제대로 설명해 줄 시간이 없었소."

"그랬구려. 그럼 빈승이 백웅 그대에게 설명해 주겠소."

신승이 천천히 설명했다.

"천제단이란 삼황오제 전욱이 하늘과 땅의 연결을 끊은 장소요."

"그건 알고 있소. 그리고 지금의 천제단은 기능을 잃어서 유명무실하다는 것도."

"정확히는 이 천제단은 유사시에 천계가 인간계에 직접 간섭하기 위해서 남겨둔 장치라고 할 수 있소."

뭐라고?

내가 뜻밖의 소리에 신승을 쳐다보자 신승의 말이 이어졌다.

"전욱이 하늘과 땅의 연결을 끊기 전의 상고시대에는 이 중원땅에 인간, 요이(妖異), 신령(神靈)이 모두 함께 살았소. 삼황오제 또한 인간과 함께 살고 있었지. 그러나 전욱이 하늘과 땅의 연결을 끊으며 삼황오제를 비롯한 대다수의 신령들이 천계로 승천했으며 땅에는 인간과 요족, 이족만이 남게 되었소."

"흠..."

"천제단은 사다리의 디딤돌이 되는 장소. 천계에서 사다리를 내리게 되면, 천계에 올라가 있던 신령들이 지상으로 직접 내려올 수 있게 되오. 끊겼던 연결이 다시 이어지면서 천상과 인간세상의 구분이 사라지게 되는 거지."

나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도 남화노선이나 강력한 신령들은 제 뜻대로 인간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 않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거요?"

그러자 신승이 한숨을 쉬었다.

"인과율(因果律)이오."

"......?"

"남화노선이 비록 강력한 술수를 부려서 인간계에 흉사를 벌였으나, 그건 옥황상제가 그 일의 인과율을 감당하기로 결정했기에 가능했던 일. 아무리 강력한 대라신선이라도 인과율을 무시할 수 없으며, 함부로 힘을 행사하면 역풍을 맞아서 소멸하게 되오. 그렇기 때문에 역사상 강력한 신령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중원의 인간들은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이오."

신승이 하늘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나 천제단이 이어지게 되면 천계에 존재하는 인과율의 제약은 유명무실하게 되오. 모든 신령들은 자유자재로 지상에 강림할 수 있게 되며, 그 술법을 발휘하는데도 제약이 없다시피 하게 되지."

"뭐라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 말대로라면 천계에 있는 강력한 대라신선들이 제멋대로 지상에서 날뛸 수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나는 대라신선들의 힘을 생각하자 정말 큰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비록 교주가 남화노선을 비롯한 대라신선 3인의 합공을 물리쳤으나, 그 또한 비장의 한수를 꺼내야만 할 정도로 궁지에 몰렸었다. 더욱이 그 대라신선들은 전투에 특화되었다는 투선(鬪仙)조차 아니었던 것이다. 만일에 전용보패를 지닌 투선이 2명만 합공해도 백련교주는 맥없이 살해당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인세에서 백련교주를 뛰어넘기는 커녕 비슷한 수준의 강자도 변변히 없는 상황이다. 기껏해야 십이율주나 미야모토 무사시 정도겠지만, 그들이 이쪽의 동맹제안에 응할지도 의문인 상황! 그러나 천계의 강림은 임박해 있으니 위급하기 그지없었다.

"그럼 49일의 기한은 대체 뭐요?"

"칠일칠회(七日七回)에 걸쳐서 심사하는 기간이오. 절대자인 삼황오제는 삼청이 내놓은 천제단의 계획을 검토하게 될 터인데 그 기간이 총 49일인 것이오. 그 심사가 끝나게 되면 즉시 천제단이 이어지게 되겠지."

삼청(三淸)이란 도교 최고신위인 원시천존, 영보천존, 태상노군의 삼존을 일컫는 말이었다. 아무래도 천계에서 삼황오제가 삼청보다 더욱 서열이 높은 존재로 보였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흠... 삼황오제가 천제를 재설치하는 계획을 반려하는 가능성도 있지 않소?"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오. 하지만 역사 이래로 삼황오제가 삼청의 의견을 반려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소."

"......"

그렇다면 49일의 기한은 정말로 최후통첩인 것이다. 나는 천제단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럼 하늘사다리가 이어질 이 천제단을 부숴버리면 그만이겠군!"

그러자 옆에 있던 천우진이 이죽거렸다.

"그걸 부숴주면 천계에서는 더 고맙지. 49일을 기다릴 필요도 없으니까."

"뭐?"

"천제단은 천계의 안전장치임과 동시에 쐐기요. 천제단이 있기 때문에 천계의 신령들은 함부로 천계와 지상을 이으려고 시도하지 않는 것. 달리 말하자면 천제단이 하늘과 땅을 분리시켜주고 있는 셈인데... 그걸 부숴버리면 즉시 천상이 지상과 겹쳐버리고 말 것이오."

"......!!"

나는 그 순간, 내가 17번째 전생에서 맞이했던 죽음의 순간이 떠올랐다. 그 때 나는 복마전의 지배자 때문에 두 다리가 뜯긴 채로 미호와 함께 천제단으로 도주했고, 그런 우리를 주작이 뒤쫓아와서 죽이려 들었다. 나는 이판사판으로 미호와 칠요를 공명시켜서 천제단을 터뜨리려고 했었다.

그 때 주작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던 말이 지금도 기억난다.

[ 그런 짓을 하면 어떻게 될지 알고 있나? 천계의 경계가 사라진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느냐?!]

[ 진정한 삼황오제가 다시 강림한다! 그리고 그들은 유예고 뭐고 이번에야말로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모든 걸 파멸시킬 것이다! 그자들의 본질은 결국 ‘옛 지배자’와 다르지 않으니까!! 그건 복마전이 만들어낼 미래보다 백배는 끔찍한 상황일 텐데 미친 짓 하지 마라!!]

그리고 나는 주작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칠요공명으로 천제단을 파괴했다. 그 결과 휘황찬란한 휘광과 함께 내 몸이 소멸되었고, 그 소멸 사이에서 삼황오제가 혼돈 속에서 제관을 쓴 채 일어나는 걸 봤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그 때 내가 죽은 후에 삼황오제가 일어서면서 천계가 이 세상에 직접 강림하여 세상이 겹쳤다는 뜻이리라. 내가 천우진의 말을 이해한 기색이 되자 천우진의 말이 이어졌다.

"천제단을 부수는 건 최악의 선택이오. 되려 우리는 오악의 천제단을 외부세력에게서 49일동안 사수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소. 왜냐하면 만에 하나 49일동안 천제 재설치를 막지 못한다고 해도, 천제가 멀쩡히 이어지면 천계의 신령들이 최소한의 자제심을 발휘할 테니까..."

"음..."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 이거 천계의 정보를 정탐하는 게 문제가 아닌데?!'

백련교주는 현재상황을 잘 모르고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천제단을 조사하라고 나를 내보낸 것은 정답이 되었다.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었다면 49일 후 백련교에 예정된 파멸이 덮쳐왔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문득 생각나서 말했다.

"잠깐! 그러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단 소리요? 그냥 49일동안 지켜보기만 해야 하오?"

"물론 아니오. 그럴 거라면 내가 뭐하러 백웅 당신을 따라왔겠소?"

퉁명스럽게 대꾸한 천우진이 말을 이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천계에 상소를 올리는 것이오."

"상소?"

"천제를 연결하지 않아도 인간세상의 일을 우리가 스스로 수습할 수 있다, 그러니 천제 설치계획을 물러달라, 그런 식으로 천제단을 통해서 상소해서 천계를 설득하는 것이오. 지금으로서는 그 수밖에 없소."

"으음!"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천제단을 바라보았다.

그렇다. 천제단은 천계와 지상을 잇는 사다리가 될 뿐만 아니라, 역으로 지상에서 하늘에 뜻을 올리는 소통창구 역할도 되는 것이다. 그런 기능도 있기 때문에 주작이 천제단을 조작해서 천상을 염탐할 수 있었으리라.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신승을 보았다.

"신승. 당신은 천계에 상소하는 방법을 알고 있겠군."

"그렇소. 빈승은 대대로 소림사에 전해지는 전승을 통해 그 방법을 터득하고 있소."

신승의 대답을 듣자 한 줄기 희망이 피어나는 걸 느꼈다. 잘만 하면 어떻게든 이번 위기를 넘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시 후 신승이 힘겨워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허나... 망량선사께서도 천계의 회의에서 삼청의 뜻을 꺾지 못한 걸 생각하면 확률은 극히 낮소... 그 분께서는 제망량, 천계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 중 하나이신데도 중론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건..."

"......"

"우리는 지금부터 최대한 천계를 설득할 방법을 찾아나서야만 하오."

신승은 내게 합장을 했다.

"백웅. 잠시 빈승을 따라와 주시오."

"알겠소."

"천우진 그대는 천제단의 정기를 되살려주시오. 부탁드리외다."

천우진은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그러려고 온 거요."

타닷

나와 신승은 천우진을 놔두고 어디론가 향했다. 한참동안 산을 타던 신승은 어딘가 인적이 없는 불당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내게 말했다.

"이 안에, 당신을 애타게 찾던 자가 있소."

"......?"

"이 또한 인연. 그대가 직면한 운명일 것이오."

신승은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걸까?

하지만 천제단 때문에 촌각이 아까운 상황에서 굳이 이 곳으로 나를 데려온데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반신반의하면서 불당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어두운 불당 안에는 촛불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불전에 합장을 하며 기도하고 있는 어떤 백의의 여인이 보였다. 여인은 뒤에서 보았을 때 한 눈에 미녀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굴곡진 몸이었다. 나는 왠지 그 모습이 익숙해서 갸웃하며 한발짝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그녀가 한 번 더 불상에 절을 올리고 합장하며 일어섰다. 그리고 내 쪽을 향해 돌아보며 말했다.

"결국 이렇게 만나게 되는구나, 백웅."

덜컹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나는 심장이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외쳤다.

"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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