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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413화 (413/1,615)

00413  천계(天界)  =========================================================================

나는 제일 먼저 항산의 천제단으로 갔다. 왜냐하면 항산의 천제단에는 다른 천제단과 다른 특징이 있었기에 확인해보고 싶은게 있었다. 나는 우선 근처에 무림인이나 기타 세력이 없는지를 살펴본 후 천제단 위에 올랐다.

' 역시 있군.'

반고(盤古)의 상(像)!

창세신화(創世神話)에 등장하는 창세신인 반고는 천지의 혼연을 머금고 달걀처럼 생긴 우주 속에서 잉태되었다 한다. 그리고 반고가 달걀을 깨어 가볍고 맑은 기운을 하늘로 올려 보냈고, 무겁고 탁한 기운으로 땅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 신화를 기려서 근처의 현공사 주지는 반고를 모시고 있었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항산의 천제단 위에도 반고의 상이 올려져 있었다. 나는 그 때 현공사 주지에게 혹시 올려두었는지 물어보았으나, 현공사 주지는 자신이 올려둔 게 아니라 머나먼 옛적부터 존재했다고 말했다. 누군가가 일부러 천제단에 반고의 상을 올려둔 게 분명한 것이다.

내가 뚫어져라 반고의 상을 쳐다보자 제갈사가 말했다.

[ 전생자의 감이라는 건가? 별다른 인과관계도 없는데 하나하나 짚어내는 건 기가 막히는군.]

"그냥 여기에도 뭔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나는 제갈사의 말에 대꾸한 후 반고의 상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는 제갈사에게 물었다.

"제갈사. 반고라는 존재는 대체 뭐지? 창세신이라는 게 정말로 존재하냐?"

[ 귀찮은 걸 묻는군.]

"삼황오제는 실존하며 그 자들은 [옛 지배자]와 맞설 수 있을 정도로 강대한 대신격(大神格)이잖아. 그러면 이 세계를 창조했다는 반고는 삼황오제를 넘어서는 권능을 가진 초월자가 아니냐?"

이게 제일 궁금했던 것이다.

나는 원래 도교의 신격은 물론 삼황오제 따위를 하나도 믿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신화적인 비밀을 파고들면서 천계라는 게 실존하며, 삼황오제 또한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삼황오제보다 이전에 존재했다는 반고의 정체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 배교 교주인 제갈사라면 뭔가 말해주겠지.'

제갈사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 내가 알기로 현재 세상에 퍼져있는 인류는 삼황(三皇)이 한번 손을 본 작품이다. 여와, 신농, 복희가 힘을 합쳤다고 알려져 있지. 반고가 어쨌든 저쨌든간에 최초로 인류를 창조한 게 이종족인 [옛 존재]이며, 그들이 만들어낸 인간의 원형을 삼황오제가 다듬은 거지. 그래서 반고라는 존재가 실존하는지는 나도 알 수가 없다.]

"모른다고? 있다 없다를 확실히 알 수 없는 거냐?"

[ 쳇... 삼황오제에 대해서 아는 자도 없는 판에 창세신화의 진실을 아는 자가 세상에 몇이나 되겠나? 삼황오제 본인이거나 그와 대등한 신격인 [옛 지배자]들 뿐이겠지. 일개 인간 마도사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퉁명스럽게 대꾸한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 하지만 반고라는 존재가 있다면, 그건 세상이 창조된 폭발을 은유한 상징이거나, 혹은... 어리석고 눈먼 아버지일 수밖에 없지.]

"아버지?"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했다.

"네 아버지가 살아있었나? 설마 넌 창조주 반고의 자식..."

그러자 제갈사가 클클거렸다.

[ 또라이 새끼. '아버지'라는 건 그저 은유일 뿐이다. 그걸 곧이곧대로 듣냐?]

"......"

[ 내 부모는 몇십년 전에 뒈졌어.]

말을 해야 알지!

내가 짜증을 내자 제갈사의 말이 이어졌다.

[ 이 세계에는 만신전(萬神殿)이라는 게 존재한다. 그건 삼황오제는 물론이고 [옛 지배자], 그리고 외신(外神)까지 통합하여 모든 우주의 신격을 일컫는 말이지. 그리고 만신전의 정점(頂點)에 존재하는 지배자는 단 한 명... 그 존재는 너무나 지고하여 필설로 형용이 불가능하다.]

"그게 '아버지'라는 건가?"

[ 그 이름을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불경하여 감히 [옛 지배자]조차 언급하기 힘들어하지. 심지어 [옛 지배자]가 신으로 모시는 격외의 외신(外神)들조차 '아버지'를 경배한다고 알려졌다. 그 존재는 우주의 중심에서 끓어오르는 혼돈 그자체라 할 수 있다.]

"......"

나는 당황했다. 설마 그 정도 존재가 있을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 그러니까 [옛 지배자]가 신으로 모시는게 외신인데... 그 외신조차도 신으로 받드는 거니까... 신중신(神中神)이라는 말이냐?"

[ 정말 유치찬란한 표현이군. 뭐, 그렇게 봐도 상관없을거다.]

퉁명스럽게 대꾸한 제갈사는 말했다.

[ 진정한 의미에서 이 세상의 창조주가 있다면 '아버지'일 수밖에 없지. 내 생각이지만 반고라는 건 '아버지'의 존재를 은유한 거라고 본다.]

"음... 이봐..."

[ 왜?]

나는 팔짱을 낀 채 인상을 찡그렸다.

"아버지 아버지 하니까 기분이 이상하다고. 내 아버지는 내가 어릴때 돌아가셔서 기억도 없어서 찝찝해. 좀 다른 칭호는 없겠냐?"

열두 살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문제는 그 때 내 기억이 너무 희미해서 얼굴도 추억도 잘 기억 안난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 때 이성이 덜 트여있는 무지렁이 어린애라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뭐... 하필 전생시점이 촌장네 집에서 하인생활 할 때라서 문제지만...'

그렇다 해도 나는 그 분들이 키워준 자식이었다. 내가 내심 뿌듯하게 생각할 때 제갈사가 말했다.

[ 아 맞다. 네 녀석 부모없는 새끼였군.]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개새끼가 진짜 말 곱게 안 할래?"

[ 흐음... 그러면 이렇게 부르는 게 낫겠지.]

잠시 생각하던 제갈사가 말했다.

[ 끓어오르는 혼돈(混沌).]

"뭐야 그게? 우주의 중심에서 뭐가 끓고 있단 소리냐? 부글부글?"

[ ... 참 너처럼 생각없는 새끼는 좋겠군. 도저히 무서워하질 않으니... 보통이라면 이 존재를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미쳐버리는 놈이 허다한데.]

한탄하듯 말한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 아무튼 여기는 됐다. 반고같은 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니까 나머지 천제단을 확인하러 움직이자.]

"그래."

나는 사불상을 타고 태산의 천제단으로 갔다. 태산의 천제단은 주작이 사망한 후 방치되었는지 흐트러진 상태로 시체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아무래도 여와강림 때 병사들이 다수 죽거나 미쳤다는 말이 사실인듯, 천제단을 정비할 엄두도 못낸 모양이다. 천제단이 이럴 정도라면 태산을 지키던 요새는 이미 와해됐으리라.

"흠, 여기도 딱히 손볼 건 없군..."

이걸로 두 군데의 천제단을 확인했다. 문제는 나머지 세 곳이었다.

형산, 화산, 숭산.

이 곳에는 구파일방이 있기에 천제단을 확인하려면 부딪히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신승부터 만나야겠어."

형산파나 화산파는 천제단의 기능과 힘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한다. 형산파는 그저 무림방파에 불과했으며, 화산파는 도사집단인 술종(術宗)을 내쫓음으로써 세속문파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제대로 천제단에 대해서 교섭할 수 있는 건 숭산에 있는 소림사 뿐이며 신승 뿐인 것이다.

[ 그게 순서지. 근데 무슨 말을 할지는 생각해 뒀냐?]

"그야..."

나는 제갈사의 말에 대답하려다 멈칫했다.

' 젠장.'

그러고보니 할말이 마땅치가 않았다. 백련교의 위력을 앞세워서 천제단으로 천계의 정보를 도청하게 해달라고 해도, 천하에 명망높은 신승이 받아들일까? 결국 신승을 힘으로 제거해야 될지도 모른다. 되도록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싶지만 신승을 설득하는 건 생각보다 난해한 일이 될 것 같았다.

내가 고민하자 제갈사가 말했다.

[ 순서 하나를 빼먹은 거다. 바로 신승을 찾아가지 말고 먼저 망량선사를 다시 찾아가.]

"아하."

나는 제갈사의 뒷말이 이어지지 않아도 왜 그렇게 해야하는지를 이해했다.

신승은 망량선사의 은혜로 성장한 자!

망량선사에게서 지원을 받게 되면 신승의 도움을 받기는 여반장일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걱정이 되어서 중얼거렸다.

"마지막에 방문했을 때 천우진이 들여보내주지 않았어. 정말로 망량선사의 신변에 이상이 생긴 걸까?"

[ 그걸 확인하는 차원에서라도 다시 방문해야지. 일단 그건 나중에 생각해라.]

"알겠다."

파앗

나는 망량선사의 마을에 방문했다. 천암비서를 묻어둔 채 들어가자, 이번에도 천우진이 환술결계를 펼친 채 나를 가로막았다. 천우진은 나를 보자마자 퉁명스럽게 말했다.

"또 왜 왔소?"

"천우진. 백련교주는 남화노선을 물리쳤소. 그 사실을 알고 있소?"

"알고 있지."

"천계는 또다시 강력한 수를 둬서 백련교를 멸망시키려 할 거요. 나는 그 일을 막기 위해 천계에 공양하여 멈출 것을 부탁하고자 하오. 그러니 망량선사를 보게 해 주시오."

"......"

사실은 천계의 정보를 염탐하려는 거지만 표면적으로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던 천우진이 대꾸했다.

"백련교를 왜 이리 싸고도는 것이오? 백련교는 멸망해야 마땅한 종교이며, 그 교주라는 자도 지금껏 수많은 악덕을 저질렀소. 백해무익한 자일 뿐이오."

나는 천우진의 말에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천계보단 낫지!"

"......!!"

"남화노선이 이번에 평범한 민초들을 태평요술로 홀려서 수십만 명을 희생시켰소. 술법에 조종당한 인간들 중에서 사상자가 얼마나 되는줄 아시오? 그 무고한 사람들을 대의라는 한 마디로 희생시킨 천계가 도대체 이족과 다를게 뭐란 말이오?"

내 뜻을 확인한 천우진이 침음성을 흘리더니 말했다.

"말이야 맞지만 천계를 설득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오. 그들은 필멸자의 제안을 거의 듣지 않소."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망량선사를 뵙게 해 주시오. 그 고양... 아니 그 분의 도움이 필요하오."

천우진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지금 그 일로 천계도 굉장히 들끓고 있소. 스승님은 얼마 전에 겨우 천계의 회의에서 풀려나셨으니, 만나봐도 상관은 없을 거요. 하지만 스승님이 당신이 원하는 답변을 줄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소."

"괜찮소."

이윽고 천우진이 환술결계를 풀고 길을 열어 주었다. 나는 이윽고 여동빈의 사당 앞에 서서 망량선사를 마음속으로 불렀다.

미친 고양이 새끼야! 당장 나와!!

잠시 후 엄청난 수면이 쏟아지며 나는 꿈의 세계로 갔다.

[ 넌 항상 불청객을 데리고 오는군.]

망량선사는 나타나자마자 제갈사의 영혼을 밖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말했다.

[ ... 일이 너무 커져버렸다. 설마 필멸자가 대라신선을 때려눕힐줄은 몰랐다. 이젠 어떻게 될지 나로서도 모르겠다.]

응! 알겠으니까 천제단을 이용하게 도움이나 줘.

시간이 없다고.

내가 강하게 의지를 떠올리자 망량선사가 자신의 꼬리를 한 바퀴 돌리더니 말했다.

[ 내 권속들은 이제부터 네 뜻을 따를 것이다. 신승과 소림사의 도움도 받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앞으로 거대한 시련이 닥쳐올 터이니, 너는 온 힘을 다해서 막아내야만 할 거다.]

거대한 시련?

그게 뭔데?

[ 곧 하늘과 땅을 잇는 하늘사다리(天梯)가 놓이게 될 것이다. 이것은 천계 삼청(三淸)의 결정이니, 나로서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운을 띄운 망량선사가 말을 이었다.

[ 유예는 지금부터 49일이다. 그때까지 최대한 천계를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라.]

아니 오늘은 왜 네놈 할말만 하는 거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그런지 얘기를 해 줘야 이해를 할 거 아니야!

내가 역정을 내자 망량선사가 말했다.

[ 설마 이런 결말이 될줄은 상상도 못했군... 아니, 어차피 마찬가지였을지도...]

그 말을 남기고 망량선사는 총총걸음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망량선사가 어딘지 황당해하는 기색을 느끼자 찝찝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잠에서 깨어난 후 천우진에게 말했다.

"천우진. 하늘사다리가 49일 후에 놓인다고 하는데 망량선사가 뭔 소리 하는 거요?"

그러자 천우진이 아연실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뭐... 라고...? 정말로 스승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소?"

"그랬는데."

"빌어먹을... 백련교 이 개새끼들... 결국 사고쳤어. 그냥 죽은척 한번 당해주면 될걸갖고..."

천우진은 이를 부득 갈았다. 그렇게 잠시동안 제자리에서 발광하듯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던 천우진이 한숨을 쉬었다.

"나도 당신을 돕겠소. 발에 땀나게 뛰어야겠군. 시킬 일이 있으면 뭐든 말만 하시오."

나는 천우진이 이렇게 순순히 자발적으로 협조하는걸 처음 보았기에 약간 놀랄 수밖에 없었다.

' 엥.'

이 성격 더러운 놈이 웬일인가? 제발 도와달라고 무릎꿇고 빌어도 무시할 놈이었는데 이런 태도로 나올 줄이야.

"갑자기 웬 변덕이오?"

"빨리!"

천우진이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중얼거렸다.

"빨리 움직입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늘사다리만은 막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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