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10 천계(天界) =========================================================================
미야모토 무사시!
십이율의 특위!
' 이, 이럴수가.'
나는 눈 앞이 새하얗게 변할 정도로 놀랐다.
그토록 찾아다니던 자가!
동영의 인물일 게 분명한 눈 앞의 사내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본 적이 있었다. 아니, 지금껏 전생하면서 아오키가하라 수해나 동영에 갈 때면 꼭 한 번씩은 단서를 찾게 된다는 쪽이 정확했다. 그건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가 세상에 남긴 영향력이 막강했으며, 또한 그를 상징하는 하나의 단어 때문이었다.
동영 역사상 최강의 절대고수!
[ 하하하……. 물론 동영의 무예가 대륙종가의 무예보다 떨어질 수도 있소. 그러나 이 땅에는 섣불리 얕볼 수가 없는 무류(武流)가 세 개 있음이오.]
[ 먼저 나의 신카게류.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의 이천일류(二天一流). 원월천살법(圓月天殺法).]
[ 그는 타고난 별격의 천재요.]
먼저 동영의 검성 카미이즈미 노부츠나가 그에 대해서 내린 평가가 떠올랐다. 꽤 시간이 지났으나 인상깊게 내 기억에 남아 있었다. 카미이즈미 노부츠나는 동영출신인데도 중원 구파일방 장문인에 못지 않은 초절정고수였는데도 자신이 미야모토 무사시에게 크게 미치지 못한다고 자인하기까지 했다.
[이 오륜서에 쓰여있는 무공은 두 개의 도(刀)를 사용하는 이도(二刀)일세. 그것도 정이도가 아니라 역이도(逆二刀).]
[도법에 대한 재능이 극도로 뛰어나지 않으면 입문조차 허용되지 않는 극상절예(極上絶藝)로서, 천지간에 이걸 익힐 수 있는 자는 두세 명도 되지 않을 것이야.]
[이건 천고의 기재에게만 도전을 허락하는 불친절하기 그지없는 무서(武書)일세. 아마 오륜서를 지은 본인이 천하에 다시없는 천재이기 때문에 발생한 단점이겠지.]
또한 미야모토 무사시가 지은 오륜서를 보았던 검마의 평가도 생각났다. 그는 절세천재만이 습득할 수 있는 극상절예, 역이도 무예의 창조자이기도 했다. 검마는 오륜서의 무공을 터득하게 되면 천하를 오시할만한 고수가 될거라고 이야기했었다.
[ 우선, 나는 미야모토 무사시가 아니다. 나는 간류(岩流)의 사사키 코지로(佐?木 小次?)다.]
[ 간류지마에서 나와 무사시가 일대결전을 벌였다고 알려졌지만, 실상은 그의 일초지적도 되지 못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죽음을 각오했지만…… 무사시가 내 재능이 아깝다면서 이 오륜서를 주더군.]
[ 그래……. 미야모토 무사시는 나름대로 동영의 대검호라 불리던 나와 겨루고는 무예계에 실망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자신만의 무예를 수련하겠다면서 내게 앞으로 미야모토 무사시로 살아갈 것을 명령했다.]
[ 그는 적수를 찾을 겸 대륙으로 간다고 했다. 그 외에는 나도 모른다.]
내가 예전에 미야모토 무사시의 행방을 찾기 위해서 동영으로 갔을 때, 가짜 미야모토 무사시인 사사키 코지로를 만났다. 그리고 사사키 코지로는 무사시에게 패한 후 오륜서를 수련해서 가짜로 살아가기를 명령받았다.
' 설마... 설마...'
그 이후로는 너무 다른 일이 산재해 있어서 신경도 못 썼는데 설마 이런 곳에서 발견하게 될 줄이야! 그것도 십이율에서도 율주 직속이며 삼사와 동급이라고 하는 특위가 바로 미야모토 무사시라는 건 생각조차 못 해봤다!
내가 너무 놀라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동안에 교주가 미야모토 무사시에게 말했다.
[ 십이율의 특위이기 때문에 나를 감시하려 이 근처에 있었군.]
"그렇다."
잠시 침묵하던 교주는 찬탄성을 흘렸다.
[ 으음... 태허에 대한 깨달음이 깊어져서야 그대의 존재를 칠감(七感)으로 깨달았다. 원영신으로 가득하던 무한의 힘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감각이 한없이 예리해졌고, 그 황홀경 사이에서 희미한 균열을 감지했다.]
"......"
[ 그대는 기의 근원과 동조하여 자신의 의념마저 숨겼구나. 그 경지는 실로 놀랍다.]
의념을 숨겼다고?
' 이해가 안 돼.'
나는 교주가 설명해 주는 미야모토 무사시의 은신능력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의념이란 무술고수가 지닌 극고의 의지가 세계에 영향을 뻗는 발(發)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의념을 숨긴다는 게 가능한 것인가? 그것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초월한 또다른 영역이 존재한다고 말하는거나 다름없었고, 통상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인간의 인식영역 바깥의 일이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딱 하나다.
눈 앞의 초인(超人)이 의념지경을 넘어서서 절대경지로 나아갔다는 것!
그리고 그 경지는 현재의 나로서는 이해가 불가능한 기오막측한 경지라는 것 뿐이다.
미야모토 무사시가 교주를 똑바로 쳐다보더니 짧게 말했다.
"싸울까?"
엥?
지금 왜 저런 말이 나온단 말인가? 물론 교주는 십이율을 잠재적으로 쓰러뜨려야 할 대적(大敵)으로 보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표면적으로는 아직 십이율과 불가침조약을 맺은 상태다. 게다가 교주는 미야모토 무사시를 인식함으로서 자신이 한차원 강력해졌다고 충분히 주장한 상태이다. 칠요의 주인인 나까지 옆에 있는 상황인데 지금 싸우자고 하는 건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도발이었다.
하지만 교주의 입장에서는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그는 뚫어져라 미야모토 무사시의 허리춤에 있는 이도(二刀)를 쳐다보더니 대꾸했다.
[ 지금 공멸(共滅)할 필요는 없지.]
".......!!"
나는 경악을 참으려고 순간적으로 입을 손으로 막았다.
설마... 상대방의 선제도발에 교주가 공멸을 논할 줄이야?!
내가 월요의 힘을 끌어모아서 기세를 뻗쳐내며 위협을 할 때도 아랑곳하지 않고 되려 기세로 내리눌렀던 교주였다. 대라멸진을 언급하고서야 제대로 인정을 해줄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교주가 미야모토 무사시와 싸우면 공멸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믿을 수 없다.
아무리 동영 최강의 고수라지만 그런 경지가 가능할 리가...
그 순간이었다.
슈칵
' 아.'
예리한 섬광이 스쳐지나간 후 내 목이 깨끗하게 날아갔다. 핏줄기도 없었다.
그것이 내 19번째 죽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
아, 아니다. 안 죽었다.
나는 더듬거리면서 내 목젖을 만졌다. 방금 전에 목이 떨어져 나간 광경은 그저 내가 느꼈던 환상에 불과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죽다가 살아났다고 여길 정도로, 그 환상은 지나칠 정도의 현실감을 지니고 있었다.
' 이 환상은... 환술이 아니다. 단지 내 직감이...'
또한 나는 무인(武人)으로서 직감했다. 지금 내가 느낀 죽음의 환상은 미야모토 무사시가 내 살기를 감지하고 그 살기를 되돌려준 것이라는 걸! 달리 말하자면 내가 흘려낸 실낱같은 살기와 동요, 근육 한 줄기가 움직이는 미세한 감각 마저도 완벽하게 미야모토 무사시에게 읽히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 감각은 익히 알고 있다. 만일 내가 이대로 미야모토 무사시와 싸운다면 그 어떤 수를 쓴다고 해도 삼 초 이내에 전신이 난도질당한다.
전신에 힘이 빠진다.
쉴 새 없이 무력을 연마해서, 이제 충분히 천하를 오시할 지경이라 여기며 일선에 도달했건만, 세상에는 아직까지도 이런 괴물이 존재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것도 백련교 사대무류를 제외한 곳에서 난데없이 출현한 셈이었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지난 백 년 간 내가 경주해 온 노력은 도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하지만 두 괴물은 나를 신경도 쓰지 않고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중이었다. 저 공간은 이미 살아있는 생명체가 살아남을 수 없는 무시무시한 기세가 충돌하고 있었다. 초절정고수인 나조차도 간파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고 섬뜩한 수천 개의 기류가 꿈틀거리며 숨쉬고 있다.
먼저 기세를 거둔 것은 미야모토 무사시였다. 그는 우묵한 눈빛으로 교주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하고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
대라신선조차 쓰러뜨린 현 중원의 지배자에게 말하기에는 지독하게도 오만한 말투였다. 그러나 미야모토 무사시에게 그럴만한 자격이 있음은 방금 전의 공방으로 입증된 상태였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교주가 현겁의 공간을 펼쳐내면 그걸 통째로 찢어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교주는 훗하고 웃더니 말했다.
[ 십이율주에게 전하라. 동맹을 맺고 싶다고.]
미야모토 무사시는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뭘 위한 동맹이지?"
[ 천계를 물리치기 위한 연맹체를 만들고 싶다.]
"후안무치하군."
그는 싸늘하게 말을 이었다.
"내 일 검을 받아낸다면 그 말을 전해주지."
교주는 오연하게 화답했다.
[ 와라.]
파앗
보이지 않았다. 교주가 찰나지간에 현겁을 펼쳐내면서 뭔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대응을 한 것은 느껴졌으나, 더욱 순간... 사(絲) 홀(忽) 미(微)에 이르는 순간까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보통은 어지간히 빠르다고 해도 여기까지 감각계수가 도달하면 뭔가 한 장면이라도 느껴지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미를 넘어서 섬(纖)에 도달할때가 되었어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내 감각을 완전히 뛰어넘은 그 극미(極微)의 아수라장에서 두 절대자는 일 초(一招)를 나눈 모양이었다.
푸확!!
교주의 왼쪽 어깨죽지에서 핏줄기가 치솟아 올랐다. 핏줄기로 보아서 상처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교주가 미야모토 무사시의 일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일참을 당한 건 사실이었다. 심지어 대라신선과의 전투에서도 어떻게든 방어막을 사용해서 상처를 피했던 교주가!
미야모토 무사시도 몸이 성하지는 못했다. 그는 잠시 비틀거리며 뒤로 두 걸음을 물러내더니 입가에 선혈을 주륵하고 흘렸다.
그는 입가의 피를 손가락으로 쓸어내며 히죽 웃는 모습이었다.
"멋지군. 율주 이래로 처음이야..."
[ 이제 만족했나?]
"그럭저럭."
[ 백련교 본단으로 찾아와라.]
"알았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말이 끝나자마자 사라져버렸다. 그 소실은 여태껏 내가 보아왔던 비등이나 사불상의 순간이동, 술법사의 축지술 어느 쪽과도 달랐다. 감각이 도려내진 순간에 이미 사라져버린 듯한 공허감이 인식세계를 위협하는 느낌이었다. 잔광조차 보이지 않는 절대적인 빠름이 느껴졌다.
나는 급히 교주를 보았다.
"교주! 괜찮습니까?"
[ 물론. 아주 재밌었다.]
교주는 다소 여유롭게 대꾸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약간 힘이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다만 칠대절학과 태허의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면 재밌는 걸로 끝나지는 않았겠지.]
"......"
[ 백웅. 나는 저 자를 만나기 위해서 황궁에 머무른 것이다.]
"알 것 같습니다."
교주의 선택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극고의 무예경지로 모습을 숨기고 있던 십이율 특위, 미야모토 무사시! 본디 아무도 눈치챌 수 없었던 그 자의 존재를 교주가 어렴풋이 눈치챘기에, 대라신선과의 전투에서 얻은 깨달음을 갈무리해서 본격적으로 찾아낸 셈이다. 이런 건 아무리 제갈사의 지혜가 뛰어난들 짐작할 수 없는 일이다.
교주가 말했다.
[ 과연 원월천살법이다. 고문(古文)에서 보았던 강력함이 결코 거짓이 아니었구나...]
나는 교주의 언급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 그러고 보니...'
동영의 검성인 카미이즈미 노부츠나에게 원월천살법의 존재를 알려준 게 바로 교주였고, 그 시기가 무려 백여 년 전이었다.
[ 맹인(盲人)만이 익힐 수 있다는 궁극의 쾌도술(快刀術)이오. 누가 전승자인지는 모르지만 원월천살법의 전인이 나타나면 천하가 피로 물든다는 전설이 있소.]
[ 내가 명나라에 갔을 때 무의 극한을 달성했다는 백련교주를 만나고자 백련교에 찾아간 적이 있었소. 그리고 특별히 그를 만나서 독대하고 무에 관한 대담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백련교주는 내게 이렇게 말했소. ‘동영 출신으로 강해지고 싶다면 원월천살법을 익혀라. 그건 천하에서 가장 위험한 무공이다.’ 물론 나는 그 말을 인정하지 않고 동영에 되돌아와서 무토도리를 연마했소. 나는 검을 뽑지 않고 이기는 것이 검술의 궁극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오. 지금도 그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하여간 원월천살법은 굉장히 흉악한 쾌도술이 틀림없소.]
교주는 분명히 언급했다. 원월천살법이 천하에서 가장 위험한 무공이라고. 그 말은 백여 년 전부터 교주가 원월천살법의 정체와 위력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나는 여태껏 모아왔던 정보를 머릿속에서 조합하다가 의문이 생겨서 교주에게 물었다.
"고문이라니요? 원월천살법이 고대의 무공이란 말입니까?"
[ 그렇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해 주지.]
교주는 고개를 홱하고 돌렸다.
[ 조만간 십이율주와 재견(再見)할 때까지 더욱 힘을 쌓아야 하니까.]
파앗
교주가 그 말을 끝으로 비등을 사용해서 어디론가 가 버렸다. 아마도 백련교로 귀환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무예수련을 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가 거기이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미야모토 무사시가 자신을 찾아올 때까지 칠대절학과 깨달음을 갈무리하며 최선을 다해 수행하리라.
제갈사가 내면에서 킬킬댔다.
[ 정상적이라면 십이율이 동맹제안을 받아들일 리가 없지. 천계가 교주를 공격하는 걸 계속 지켜보기만 하면 누워서 떡 먹기인데 미쳤다고 받아들이겠나?]
[ 그럼 교주가 잘못 행동했다는 소리냐?]
[ 아니! 놈은 십이율주가 어떤 놈인지 읽어낸 거다. 교주가 걸물이긴 하군.]
그렇게 대꾸한 제갈사는 불길하게 중얼거렸다.
[ 슬슬 급박하게 흘러가는군. 이제 나도 준비해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