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409화 (409/1,615)

00409  천계(天界)  =========================================================================

이윽고 교주와 함께 낙양에 도착하자, 교주는 황제를 만나러 갔다.

"잘 오셨소."

황제위에 오른 주재후는 교주를 보자 반색하며 후원으로 달려나왔다. 인적없는 곳에서 나와 교주가 황제를 만나는 상황인데도 황제의 곁에는 호위병이나 수행원이 없었다. 또한 주재후의 얼굴도 상당히 초췌해져 있어서 현재 황궁의 상황이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교주는 피로한 기색으로 황제에게 말했다.

[ 황제. 당분간 황궁 내에 거처할 곳이 필요하다.]

"화... 황궁 내라고?"

[ 해줄 수 있겠지?]

교주의 말은 유순해 보였으나 항거할 수 없는 절대명령이나 다름없었다. 주재후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교주의 말에 대답했다.

"동육궁(東六宮)의 승건궁(承乾宮)이 비어있소. 최고의 편의를 봐 드리겠소."

[ 고맙군.]

"혹시 태평도의 일은..."

[ 그 자들은 더 이상 날뛰지 못할 것이다.]

그러자 주재후는 반색하며 교주에게 크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드리는 바이오."

[ 이럴 시간이 없다. 너와 공치사를 할 여유가 없으니 내가 쉴 곳을 마련해라.]

"알겠소."

주재후가 황제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이후의 일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채 반 시진도 되지 않아서 승건궁은 깔끔하게 정리되고 안에 있던 궁인들도 재편성되었다. 그리고는 마차를 타고 승건궁 안에 들어가서 최고급 별실에 들어가서 쉴 수 있었다.

나는 교주에게 물었다.

"목갑에 있는 자들은 어떻게 할까요?"

[ 지금 꺼내도록...]

잠시 후 목갑에 있던 호법사자와 장로들이 밖으로 나왔다. 그들은 고급침상에 앉아있는 교주를 보자 즉시 부복했다. 교주는 그들을 말없이 내려보다가 말했다.

[ 천계의 대라신선은 모두 물리쳤다.]

[ 오오...!!]

[ 허나 나는 잠시 요양을 할 필요가 있어서 당분간 황궁에 머물도록 하겠다.]

그렇게 말한 교주가 힐끔 독고준을 쳐다보았다.

[ 준아. 내가 없는동안 네가 교의 대소사를 처리하라. 너를 임시교주대행으로 임명한다.]

임시교주대행!

일시적이지만 천하제일세력인 백련교의 지존위를 얻는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독고준은 전혀 기쁜 기색이 아니었고 도리어 당황해하며 대답했다.

[ 교주. 무슨 일이십니까? 혹여 그들과의 싸움에서 부상을 당하셨습니까?]

[ 부상은 아니다. 단지 원영신의 힘을 과하게 사용하여 정양할 필요가 있다.]

[ 으음...!!]

[ 더 묻지 말라. 나는 네 능력을 믿는다.]

독고준이 침묵하다가 포권했다.

[ 존명.]

잠시 후 독고준을 포함한 백련교의 간부들이 모두 방에서 나갔다. 나는 교주의 행동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아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 왜?'

원영신으로 과한 힘을 사용해서 정양한다는 건 납득 가능하다. 내가 보았던 그 혼돈의 형태는 정말 무시무시한 위용이었으며 도저히 필멸자가 가질만한 힘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그 형태가 교주의 원영신에 숨겨진 회심의 한수였던 게 분명하다.

하지만 쉰다고 하면 당연히 본거지인 백련교, 그것도 수십 명의 원로원 고수들에게 보호받는 근거지 내부여야 하지 않는가? 하다못해 수신류 내부에서 쉬는 게 더 적절한 선택이었다. 아무리 황궁이 교주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고 하더라도 이곳은 외지였기에 편하게 휴식할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내 눈치를 느꼈는지 교주가 금침 위에 앉은 상태로 팔짱을 끼고 말했다.

[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궁금하겠지.]

"네. 솔직히 여기는 쉴만한 장소가 아닙니다만..."

[ 그래. 쉴 곳이 아니지. 나는 이곳에서 만날 자가 있어서 온 것이다.]

"......?"

누굴 만난다는 말인가? 나는 전혀 짐작도 되지 않아서 되물었다.

"누구 말입니까? 황궁에 그런 기인(奇人)이 있었습니까?"

그러자 교주가 약간 자신감이 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모른다고요?"

내가 황당해서 반문하자 교주가 대답했다.

[ 지금이 아니라면 그 자와 만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좀 더 깨달음이 정리되면 부를테니 오늘은 나가 있도록.]

"네."

대체 누구와 만난다는 걸까?

나는 교주의 방에서 나가면서 알 수가 없어서 머리를 굴렸다. 지금 이 시기에 교주가 본단으로의 귀환을 거부하고, 억지로 황제의 후궁들이 사용하는 동육궁을 통째로 빌리면서까지 황궁에 눌러앉은 이유!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만나야 할 인물이 황궁에 존재했다는 말인가?

나는 결국 제갈사에게 질문했다.

[ 야. 도저히 모르겠어. 교주는 누구를 만나려는 걸까?]

제갈사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 나도 모르겠구만.]

[ 뭐? 너도 몰라?]

[ 지금 가진 정보로는 추측이 안 된다. 뭘 생각해도 억측에 공상일 뿐이야.]

제갈사도 짐작이 안 간다고 하면, 교주만이 느끼고 있는 뭔가가 있는 게 틀림없다. 나는 방에 앉아서 심사숙고하다가 재차 말했다.

[ 설마 상관혁?]

[ 상관혁같은걸 만나려고 교주가 굳이 여기 머물지는 않겠지. 당장 너나 호법사자를 시켜서 불러오면 되잖아.]

[ 흠... 황궁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인물이라니...]

골치가 아프다. 황제조차도 우습게 알고, 대라신선도 찢어죽이는 현재의 백련교주가 간절히 만나려 하는 인물은 도대체 누구인 걸까. 하지만 제갈사조차도 짐작이 안 간다면 현 시점에서 납득가능한 추론을 끌어내는 건 불가능했다. 제갈사가 말했다.

[ 됐고 오늘은 그냥 편하게 쉬어라. 살면서 황궁에서 지낼만한 일이 얼마나 있겠냐?]

[ 그것도 그렇군.]

보통 인간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체험을 지금 하는 셈이다. 어차피 교주가 입을 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므로, 나는 잠시 걱정을 접어두기로 했다. 그리고 삼보절기와 이혼대법을 수련하다가 비단금침을 느끼며 편하게 한 숨 잤다.

다음 날이 되어서 나는 교주의 방으로 찾아갔다.

고오오오...

교주는 허공에 가부좌를 틀고 부유한 상태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몸에서 열기같은 게 흘러나오는 걸 느끼자 흠칫하며 뒤로 물러섰다. 동시에 교주의 입에서 알 수 없는 섬짓한 음성이 연신 흘러나오는 걸 알 수 있었다.

' 아무래도 나를 신경쓰지 못할 정도로 집중하고 있나 보군.'

무슨 소리지?

교주가 읊는 소리를 한참 들었지만 뭔지 알 수 없었다. 그걸 듣고 있던 제갈사가 말했다.

[ 범어(梵語)다.]

[ 범어? 범어 할 줄 알아?]

[ 당연하지. [옛 지배자]와 관련된 고문서의 상당수가 범어로 번역되어 있으니 필수나 다름없다. 지금 교주가 읊고 있는 것은 범어의 경전으로 보이는군.]

[ 어떤 경전인데?]

[ 그걸 모르겠다. 저 음성이 너무 낮고 기괴해서 인간의 목소리같지 않군.]

제갈사의 말대로였다. 자세히 들어보면 음역이 보통 인간의 목소리와는 달리 수십 갈래로 갈라지는 듯 했다. 또한 이따금 귓가를 스치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라서, 일반적인 인간의 성대에서 발음되는 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한참동안 교주의 명상이 끝나기를 기다렸고, 교주는 약 한 식경이 지난 후에야 집중을 풀며 천천히 땅에 걸음을 딛었다.

[ 기다리게 했군.]

"몸은 좀 나아지셨습니까?"

[ 어제도 오늘도 내 힘에 큰 변동은 없다. 단지 머릿속에 휘몰아치는 돈오(頓悟)를 갈무리할 여유가 필요했을 뿐.]

한참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막상 교주의 안부를 물으러 왔긴 했는데 대체 무슨 말을 해야하는가? 이 상황에서 뭔 소리를 하든간에 어색할 게 분명했다. 왜냐하면 지금 교주는 자기자신의 깨달음에 푹 빠져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흠... 괜찮으시다면 어제의 일을 질문드리고 싶습니다만."

[ 무엇이 궁금한가?]

"교주께서는 괴이한 형태로 변신하셨는데 그건 원영신의 공능입니까?"

[ 그렇다. 단순히 무한의 내공만으로는 천령단과 다를 바가 없지.]

교주의 눈이 번득였다.

[ 천령단과 구별되는 원영신의 특징을 알고 있나?]

"원신은 내면의 소우주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태극은 물론 오행과 사상의 속성마저도 자기 마음대로 구현화할 수 있다고 지난번에 말씀해 주셨지요."

백련교주에게 무공을 가르침받으면서 그는 자신의 원영신에 대해서도 일부 말해주었다. 내가 그 때 들었던 기억을 언급하자 교주가 말을 이었다.

[ 사실 그것만으로는 천령단과 크게 힘의 차이가 없지. 정말로 원영신이 강력한 점은 혼돈을 매개체로 가능성을 극한까지 끌어낸다는 점이다. 혼돈은 태극을 뛰어넘기에 그런 기적을 가능하게 한다.]

".......!!"

[ 잠재된 가능성의 발현. 그것이 바로 원영신의 진짜 능력이다.]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 그런 거였군!'

원영신은 무생노모에게서 힘을 빌려오는 체계였다. 보통 천령단은 티끌만한 힘을 무생노모가 거하는 혼돈의 옥좌에서 긁어오는 거라면, 원영신의 경우는 잠시동안 혼돈 그 자체를 빌려와서 그 자극으로 인간의 자아를 각성시키는 모양이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 능력에 약점은 없습니까?"

백련교주가 껄껄 웃었다.

[ 하하하하... 잘도 약점을 묻는군. 백웅 너라면 알려 주겠나?]

"그냥 한 번 물어봤습니다."

내가 쩝하고 입맛을 다시자 백련교주가 변덕스럽게 말을 이었다.

[ 자주 쓸 수 없는 힘이라는 것만 말해 두지.]

아마 그럴 것이다. 대라신선의 합공을 박살낼 수 있는 힘을 상시 휘두를 수 있다면 백련교주가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뭔가 제약이나 약점이 있기 때문에 필요할 때만 눈치를 보다가 겨우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교주는 예전에 복마전의 지배자에게 맞설 때도 심천무량을 사용해서 대항할지언정 그 변이형태를 사용하지 않았다. 내가 끝까지 지켜보지 않고 도망쳐버려서 알 수는 없지만, 교주는 신을 상대로도 일단 설득하면서 그 힘을 아꼈을 확률이 컸다. 나중에 정말로 위험해졌을 경우 원영신의 변이형태를 사용했을 게 분명하다.

' 왜지? 분명히 그 때의 상황은 죽을 상황이었는데...'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건 그렇고, 교주께서는 어떤 돈오를 얻으신 겁니까? 그것도 원영신의 효과입니까?"

[ 아니. 내가 어제 얻었던 돈오는 원영신과는 관계없었다.]

교주는 단호하게 말했다.

[ 태허(太虛)의 깨달음이었다.]

"태허요?"

그러고보니 교주가 갑자기 보패의 본질을 알아냈다면서 크게 기뻐하면서 남화노선과 대화한 일이 있었다. 남화노선도 교주가 뭘 깨달았는지 알았는지 관념 운운 했던걸로 기억한다. 나는 머리를 굴리며 그 때 했던 말을 되새겼다.

"천지의 기(氣)가 취산공취(聚散攻取)함은 백 가지로 다르지만 태화(太和)는 서로 부딪혀 인온굴신(絪縕屈伸)하므로 한계가 없다... 라고 하셨습니다."

[ 그랬지.]

"그게 무슨 뜻입니까?"

교주의 말이 이어졌다.

[ 태화란 이른바 도(道)를 일컫는 것이다. 그 안에 부침, 승강, 동정이 상호감응하는 성(性)이 내포되어 있지. 허나 그보다 더욱 본질적인 단위가 존재하니, 그걸 태허(太虛)라 하며, 무형(無形)이며, 기(氣)의 본체인 것이다.]

나는 교주의 설명을 듣자 예전의 전생에서 교주가 설명했던 게 떠올랐다. 그래서 그대로 기억을 입에 담았다.

"태허(太虛)란 기(氣)를 일컫는 말. 그렇다면 태허즉기(太虛卽氣), 기가 흩어진 모습이 바로 태허가 아닙니까?"

[ .......!!]

그러자 교주가 깜짝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는 정말로 놀란 듯 한동안 움직이지 않다가 대꾸했다.

[ 어쩌면 네 녀석에게도 내가 모르는 무재(武材)가 있었을지도 모르겠군. 훌륭하다.]

"하핫..."

나는 왠지 기분 좋아져서 히죽 웃을 뻔 했는데 제갈사가 내면에서 딴죽을 걸었다.

[ 등신아. 하나도 이해 못했으면서 이해한 척 하느라 수고 많다. 진짜 꼴불견이야!]

[ 큭... 아는척하는게 뭐가 어때서 그래.]

[ 그게 배움에 있어서 제일 등신같은 짓이라는 걸 모르는거냐? 하여간...]

제갈사가 톡 쏘아붙이는 말 때문에 표정이 일그러지려는 찰나 교주의 말이 이어졌다.

[ 잘 알아둬라, 백웅.]

"네."

교주는 신중한 기색으로 말 하나하나를 고르며 말했다.

[ 태허에서 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것은 마치 물에서 얼음이 얼고 녹는 것과 같다. 그러니... 태허가 바로 기임을 안다면 무는 없다(無無). 이것이 바로 불가에서 설명하는 무무명(無無明)이며 역무무명진(亦無無明盡)이다.]

"......"

[ 이를 깨달으면 인간이 신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는 걸 알 수 있으리라.]

그러니까 태허가 기라는 소리 아닌가? 내가 뭔가 잘못 알아들었나?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문득 알아차렸다.

아...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백련교주도 그 기색을 눈치챘는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 이런 원리를 쉽게 알 수는 없겠지. 왜냐하면 이것은 이 세상의 진실이며, 인간에게만 부여된 특권과도 연관되어 있으니까... 하여간 나는 어제 이 원리를 한층 강하게 깨달았고, 깨달음을 조용히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군요."

[ 그리고 오늘 새벽 갈무리가 되었다.]

그렇게 말한 백련교주가 몸을 크게 일으켰다.

[ 그럼 가자.]

"어디로 갈까요?"

[ 나를 따라와라.]

백련교주는 성큼성큼 걸어서 어디론가 향했다. 나는 영문을 모른 채 그를 따라서 갔다. 백련교주는 천하제일의 경공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굳이 걸어서 가기를 고집하고 있었고, 지금 그의 심경에 뭔가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걸 뜻했다.

이윽고 그가 도착한 곳은 승건궁의 정문이었다. 궁 앞을 지키던 위사들은 난데없이 무면탈을 쓴 괴인이 안에서 걸어나왔는데도 당황하지 않고 교주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교주는 그들을 신경도 쓰지 않고 정문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 그대는 누구지?]

나는 교주가 쳐다보는 장소를 보았다. 하지만 그 곳에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뿐이었다.

' 누가 은신술이라도 썼나?'

혹시나 싶어서 기감을 상향시키며 수십장 밖의 개미새끼가 움직이는 것도 알아낼 정도로 감각을 예리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감을 올려봐도 이 장소에 뭔가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위사들도 나와 마찬가지인지 아무것도 없는 장소에 말을 거는 교주를 희한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 아무것도 없는데?'

진짜 아무것도 없다. 교주가 보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아무도 없었다.

교주는 대체 뭘 보고 있는 걸까?

교주가 이윽고 나직이 말을 이었다.

[ 그대가 나오지 않겠다면 나는 그대와 싸울 수밖에...]

쿠구구궁

교주가 갑자기 전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위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헉!"

"흐악!"

단지 기세를 끌어올린 것 뿐이고 살기도 없었는데도 너무 엄청난 기라서인지 위사들은 대번에 기절해 버렸다. 나는 급히 그들에게 다가갔는데 역시나 심장마비였다. 나는 맥에 기를 불어넣어서 그들의 심장을 되살렸는데 교주는 그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허공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중원에 나온 이래로."

그 자는 어느 새 나타나 있었다.

아무런 전조도 없었지만, 허름한 장포에 한 자루 도(刀)를 찬 채 걸어나와 있다.

문제는 나는 그 자가 언제 모습을 드러냈는지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자의 움직임이 내 감각한계를 가볍게 상회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실을 직감하는 순간 전신에서 식은땀이 비오듯이 내리는 걸 느꼈다.

다르다.

눈 앞의 저 놈은 뭔가 다르다!

"원월천살법(圓月天殺法)을 알아차린 건 당신이 두 번째다."

그 자의 말은 어딘가 서툴렀다. 다른 나라 사람이 억지로 중원 말을 배운 마냥 허섭스러운 기색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서투름에 신경을 쓰지 못할 정도로 가공할만한 압박감이 눈 앞의 도객(刀客)에게서 흘러나왔다.

교주는 안광을 발하며 서서히 말했다.

[ 그대가 바로 나를 감시하고 있었나?]

"그렇다."

[ 통성명 할 수 있겠나?]

그 자는 마치 모든 게 권태로운 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몸 또한 헛점투성이의 자연체였으나, 나는 그 자의 헛점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십이율(十二律) 특위(特位)."

그의 무예경지가 현재의 나로서는 발끝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절대경지에 이르러 있으며, 여태껏 내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초강자라는 사실을 의미했다.

"이천일류(二天一流)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