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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407화 (407/1,615)

00407  천계(天界)  =========================================================================

나는 즉시 독고준과 함께 한백령이 있는 한씨세가로 향했다. 한씨세가는 정신없이 분주한 모습이었는데, 여기저기에 시체가 널려 있었고 전투흔적과 혈흔이 보여서 상당한 혈투가 벌어졌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시체 대부분은 한씨세가 인물들이 아니라 외부인들로 보였다.

피로에 젖은 기색으로 부상자를 돌보고 있던 한씨세가 소가주, 한진성이 우리를 발견하자 포권했다.

"호법사자를 뵙니다."

이미 낙양은 백련교의 손아귀에 들어왔으니 더 이상 호법사자임을 속이거나 위장할 이유가 없었다. 독고준은 가볍게 인사를 받고는 말했다.

[ 한백령 호법사자는 어딨지?]

"뫼시겠습니다."

우리는 한진성을 따라 한백령에게로 갔다. 한백령은 자신의 방에서 어둑어둑하게 물든 천공을 노려보고 있는 중이었다. 독고준이 한백령에게 잠시 후 말을 걸었다.

[ 지금 낙양의 상태는 어떤가?]

"그리 좋지 않다. 광인들이 쉴새없이 출몰하고 있..."

쨍그랑!

바로 그 때였다. 어디선가 창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서 격렬한 전투가 일어났다. 그쪽으로 달려가 보니 웬 미쳐버린 인간 열 명이 뛰어들어와서 한씨세가의 빈객들과 싸우는 중이었는데, 광인들의 복색은 모두 무림인이 아닌 양민이었다.

"크아아악!!"

"마, 막아라!"

그러나 놀랍게도 잠시 후 광인들의 무시무시한 괴력과 속도에 빈객 서너 명이 비명횡사했고, 일류급 고수들이 나서서 겨우 그들을 억제하는 모습이었다. 검기를 실은 칼날이 광인의 팔을 베어내었는데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지 연신 공격해 오는지라 고수들도 아연실색했다.

독고준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손가락을 튕겼다.

퍼펑

광인들은 그 한 수에 모조리 터져죽어 버렸다. 수룡형태의 강기는 아무리 광인의 신체능력이 높아도 막을수가 없었다. 상황을 정리한 독고준은 빈객들의 위기를 구원하고도 그리 달갑지 않은 듯 찝찝한 목소리로 한백령에게 말했다.

[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는 건가?]

"그래. 광인의 힘은 지금 봤으니까 알겠지."

[ 흠... 용인이나 마인 정도는 아니지만 귀찮겠군.]

광인 하나하나가 날랜 맹호(猛虎) 수준의 전투력을 지니고 있다. 생명력, 괴력, 순발력 모두가 일반인을 훨씬 뛰어넘었으니 일류고수도 목숨을 걸어야 상대할 수 있는 놈들이었다. 이런 광인들이 수십만 명씩이나 짓쳐들어오면 끔찍한 사태가 벌어질 게 분명했다.

"이대로라면 낙양은 괴멸될 것이다. 이미 치안은 물론이고 수비군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상태다."

한백령의 말에 독고준은 힐끔 그녀를 쳐다보았다.

[ 지금 중요한 건 그런게 아니다. 우리는 적의 목적을 알아냈으니 네 도움이 필요하다.]

"무슨 소리지?"

"그건 내가 설명하지."

나는 독고준을 대신해서 한발짝 앞으로 나와서 남화노선에게서 알아낸 정보를 한백령에게 설명해 줬다. 설명을 듣고 있던 한백령이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천계에서 교주의 상대가 될만하다고 생각하는 존재가 누군지부터 짐작해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보패라는 건 신선과 밀접한 인연이 있다 들었으니 당연히 그에 어울리는 고사(古事)를 지닌 상위 대라신선일 것이다."

일리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듣자 한숨을 쉴 수 밖에 없었다.

"하아... 당장 내일모레라도 적이 쳐들어올 판국에 어떻게 알아내야 하는가."

"부교주. 미안하지만 나도 짐작가는 게 없으니 상관혁을 찾아가길 바란다."

한백령은 내가 부교주로 임명받은 후에도 그다지 달갑지 않은지 교주가 없는 자리에서는 언제나 평대를 하고 있었다. 물론 한백령의 위치는 단순한 직위로 논할 게 아니었기에 나는 그걸 굳이 따질 생각은 들지 않았다.

"상관혁?"

"그 자가 모르면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나는 한백령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백련교주에게 협력해서 낙양의 극비정보를 알아낼 정도의 마도사인 상관혁이 아니라면 지금시점에서 어느 누가 보패의 위치를 알 수 있겠는가!

"고맙..."

하지만 내가 움직이려는 순간 제갈사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 등신아.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고 있으니 답답해 죽겠구나. 넌 왜 쉬운길을 두고 돌아가려는 거냐?]

[ 뭐 어떻게 하라는 거...]

[ 상관혁보다 더 간단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잖아.]

이윽고 제갈사가 방법을 말하자 나는 속으로 탄식성이 나왔다.

[ 흠, 그렇군.]

태평도의 출현도 어이없었고 남화노선의 의도가 워낙 뜻밖이라서 당황하며 휩쓸리다 보니 당연한 것을 생각지 못한 것이다. 제일 먼저 찾아가야하는 게 그 쪽이었다. 나는 독고준의 눈치를 보며 제갈사에게 말했다.

[ ... 하지만 거기에 독고준을 데려갈 순 없는데.]

[ 적당히 떼버려. 그 정도도 못하면서 남화노선을 어떻게 막으려고?]

[ 으, 알겠어.]

나는 머릿속으로 말을 정리한 후 독고준에게 말했다.

"독고준. 짐작가는 곳이 있어서 사불상으로 잠시 갔다오겠소. 당신은 한백령을 도와서 낙양의 치안을 유지해 주시오."

독고준은 아니나 다를까 황금용가면을 씰룩이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 어딜 가려 하시는지? 저도 같이 가야겠습니다.]

"미안하지만 그럴 순 없소. 나 혼자만 찾아갈 수 있는 곳이오."

[ 어림없는 소리를... 부교주나 되는 분이 이 위기상황에 보고도 없이 단독행동이라니요.]

독고준이 성큼 한걸음을 앞으로 옮기자 나는 재빨리 대꾸했다.

"아웅다웅할 시간 없소. 내가 교주와 어떤 관계인지 가장 잘 아는건 바로 당신일 텐데? 필요할 때 서로 도와야 상생할 수 있는거지, 이런 식으로 발목을 붙잡아서야 교주에게 독이 될 뿐이오."

[ 으음...]

"나만의 방법을 쓸 시간이 필요하오."

독고준은 침음성을 흘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습니다. 부디 허튼 짓 하지 마시길.]

"당신이나 잘 하시오."

나는 짜증이 나서 한마디를 툭 던지고는 사불상을 타고 곧장 낙양 외성 근처의 마을로 향했다. 그리고 천암비서를 근처의 소나무 숲에 묻은 후 결계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환술결계가 느껴지며, 그 안에 있던 천우진이 내 앞에 나타났다.

천우진이 곱지 못한 말투로 말했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오?"

"몰라서 묻소? 남화노선이 대란(大亂)을 일으켰다는 걸 모르는 거요?"

내가 반문하자 천우진이 고개를 까닥하며 말했다.

"당연히 알지. 천계의 실력행사지. 그리고 인간계 간섭하기 좋아하는 남화노선이 선봉장으로 뽑혀서 태평요술을 부리는 중이란 것도 알지. 근데 그게 어쨌다는 말이요?"

역시 이 놈은 현 인간계 최강의 술법사 답게 이 자리에 앉아서도 상황을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그래서 어쩌라는 듯한 말투로 대꾸하는 걸 보니 존경심 대신 짜증이 치솟아 올랐다. 나는 천우진과 입씨름 할 때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으므로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 아무튼 비켜 주시오. 나는 망량선사에게 이번 일에 대해서 물어볼 게 있소."

"웃기는군."

"뭐?"

"스승님은 당신이 보고싶다고 해서 다 응해야하는 분이 아니오. 스승님을 귀찮게 하지 말고 썩 꺼지는 게 좋을 거요."

이 자식 왜이렇게 까칠해?!

얼마 전에 헤어졌을 때는 그래도 나름대로 좋은 느낌으로 헤어졌던 것 같은데 오늘은 이상할 정도로 내게 싸늘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 띠꺼운 놈의 실력이 너무나 높기 때문에 힘으로 돌파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내가 망설이고 있을 때 제갈사가 말했다.

[ 느낌이 이상하다. 물러나는 게 좋겠다.]

[ 뭐? 니가 오자고 해놓고 이제 와서 무슨 소리야.]

나는 황당해서 대꾸했다.

그렇다. 도교의 수호자이자 강대한 힘을 지닌 신이라고 할 수 있는 망량선사에게 직접 제물을 공양하며 질문하면 당연히 이번 사태에 대해 알려줄거라 생각하고 온 것이다. 그게 상관혁을 찾아가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안을 한 제갈사가 갑자기 엉덩이를 빼자고 조언하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제갈사가 신중하게 말했다.

[ 분명 이 방법이 쉽고 정확한데... 천우진 저 놈의 반응이 이상하군.]

[ 왜?]

[ 저 놈은 아무 이유없이 네놈을 배척할 놈이 아니다. 지난번의 반응이 기억나지 않냐?]

[ 으음.]

제멋대로 할 말만 하긴 했지만 천우진과 헤어질 때 마지막의 반응은 분명히 호의적이었다. 내게 조언 비슷한 것도 해줬던 게 기억난다.

[ 아무래도 저 놈이 지키고 있는 망량선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군. 그렇지 않다면 저 행동이 설명이 안 돼.]

그렇게 대꾸한 제갈사가 말했다.

[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으니 더 안좋은 인상을 주기 전에 돌아가자. 천우진은 적으로 돌리면 안 돼.]

[ 제길.]

나는 이를 악물었다. 정말로 망량선사의 신변에 무슨 문제가 생겼다면, 물어봤자 천우진이 대답해 줄 리가 없을 것이다. 이 자리는 아무 말 없이 물러나는 게 옳은 것이다. 나는 한숨을 쉬며 아쉬운 마음에 질문했다.

"천우진. 낙양 내부에는 현재 광인과 낙뢰가 출몰하고 있소. 무고한 인간들이 희생되는 일인데 당신은 이게 옳다고 생각하오?"

천우진의 관점 정도는 듣고 가야겠다. 그러자 천우진은 냉막하게 대답했다.

"난 여기까지 천계를 몰아붙인 백련교와 십이율이 잘못한 거라고 생각하오."

"무슨 소리요?"

"천계는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 무조건 지상을 관리해야만 하오. 그리고 그걸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 천계의 본질을 드러나게 만든 건 바로 당신들의 책임이란 말이오."

그렇게 말한 천우진이 고개를 돌리며 환무 안으로 걸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조언 하나 해주지. 낙양은 그냥 포기하시오. 안 그러면 정말 후회할 거요."

"......"

"낙양으로 끝낸다면 천계의 폭주가 알아서 멈출 확률이 높으니 내 말 새겨들으시오."

나는 천우진이 사라진 환무결계 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낙양을 포기하라고?'

저 놈이 저렇게까지 말하는 거라면 이번 낙양공격은 천계가 단단히 작정하고 오는 게 틀림없었다. 나는 마음이 무거워진 상태로 곧장 사불상을 타고 이번에는 상관혁이 있는 상관세가로 향했다.

파지지직! 파지직!

상관세가 근처에는 검은 뇌전이 튀고 있었다. 그리고 세가에 침입하려던 광인들의 시체가 새까맣게 타서 널부러져 있었다. 마치 부나방처럼 달려들다가 죽는 광인들을 보자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상관혁이 술법으로 방어결계를 만들어놓은 모양이었다.

물론 이 정도는 사불상의 차원무시 능력을 굳이 쓰지 않아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내가 사불상을 타고 상관혁의 서재까지 오자, 상관혁은 바깥풍경을 보고 있다가 내게 말했다.

"물어볼 게 있는 것 같구려."

"낙양을 공격하는 건 남화노선, 우길, 장각이오. 이 자들이 원하는 건 강한 투선을 깨울 보패라고 하는데... 당신도 보패를 간절히 갈구했으니 뭔가 짐작가는 게 없소?"

상관혁은 고개를 흔들었다.

"짐작가는 게 없군."

"정말로 없소?"

"나라고 낙양이 함락되는 게 달갑겠소? 하지만 힘이 없으니 지켜볼 수밖에..."

어물거리는 상관혁은 힘이 없어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머리를 긁적였다.

' 하긴 이 자는 술법사라기 보다는 마도사다. 보패에 대해서는 잘 모를지도...'

나는 상관혁에게 좀 더 물어보았지만 그가 아는 건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정보를 수집해도 의미가 없음을 깨닫고 교주에게로 돌아가서 보고했다.

교주는 내 이야기를 차분하게 듣더니 말했다.

[ 어쩔 수 없군. 정면승부를 하는 수밖에...]

"괜찮으시겠습니까?"

[ 낙양은 차후 백련교의 광명을 설파할 근거지다. 다소 위험은 감수한다.]

휘이이익!!

잠시 후 교주는 나를 포함한 호법사자와 천령단 소유자를 모두 불렀다.

[ 가자.]

그리고는 나를 제외한 나머지를 목갑에 넣은 채 나와 함께 사불상을 타고 이동했다. 사불상이 이윽고 미친듯이 진군하는 태평도의 대군 근처로 이동하자, 교주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사불상에서 내리면서 목갑을 해방시켰다.

교주의 명령이 떨어졌다.

[ 모조리 없애버려라.]

[ 존명!]

[ 존명!]

쿠구구궁

무시무시한 기의 폭풍이 장내에 몰아치기 시작했다. 호법사자를 포함해서 천령단 소유자가 다섯 명이나 장내에 나타나서 무작위로 기를 퍼붓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 모두가 무한의 내공을 사용할 수 있었으므로, 이건 이미 무공이라기 보다는 자연재해처럼 느껴졌다.

콰과과광

쿠콰쾅

삽시간에 반경 오 리에 있던 모든 것이 도륙당해서 사라져 버렸다. 장력이 무진종횡하며 산과 들을 깎아내 버리며 허공에 광선을 새겼다. 땅이 불타면서 수십 장 크기의 수룡과 화룡이 날아다녔다. 나는 그 위용을 보자 허공에서 침을 꿀꺽 삼켰다.

이것이 천령단의 위력!

교주는 아직 나서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이미 최소한 일만 명 단위의 태평도 군세를 학살한 듯 했다. 이래서야 군대같은 게 백련교에게 의미가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더욱이 지치지도 않으니, 무림인이라고 하기조차 생경한 전술적인 병기라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대략 반 식경이 지났을까?

순조롭게 대학살을 거듭하던 백련교였지만 허공에 떠서 전황을 바라보던 백련교주가 뭔가를 느낀 듯 흠칫했다. 그리고는 제일 전방에 있던 수신류 장로, 독고우에게 경고했다.

[ 우! 뒤로 빠져라!]

[ 네?]

[ 모두 내 뒤로 와라!]

맨 앞에서 날뛰고 있던 수신류 장로들은 어리둥절하면서도 급히 무공술을 발휘해서 교주의 뒤편으로 갔다. 그리고 교주는 전신에서 기묘한 형태의 만다라를 소환하며 내면의 영기를 극도로 끌어올렸고, 이윽고 화창한 날의 태양처럼 수천 개의 만다라가 개화(開花)하며 빛을 뿜어내었다.

파아아아 -

나는 교주가 뭘 시전하는지 알아채고는 크게 놀랐다.

' 심천무량(心天無量)?!'

교주가 진정한 강적을 맞이할 때가 아니면 결코 쓰지 않는 최강의 절기! 심지어 이청운 앞에서도 아껴두다가 십이율주나 복마전의 악신 앞에서나 내보였던 궁극의 만다라가 눈 앞에서 구현화되고 있었다. 나는 심천무량의 정확한 위력은 몰랐으나 천하무적의 절대자인 교주조차도 사용하는 장소를 가릴 정도의 절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오오오오

심천무량으로 만들어진 만다라는 연꽃처럼 형태를 얽으며 구 형태로 칭칭 얽히기 시작했다. 입체적인 움직임으로 허공에서 뒤틀리던 만다라는 마치 백련교인들을 보호하는 듯한 형태를 띄기 시작했다.

나는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교주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질문했다.

"교주 갑자기 왜..."

그러자 교주가 신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 함정이다. 우리는 이미 진(陣)에 빠졌다.]

"네?"

[ 대라신선이 직접 펼친 진이니 위력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휘익

교주는 잠시 후 목갑 안에 호법사자와 천령단 소유자들을 집어넣은 후 내게 목갑을 던져줬다. 내가 목갑을 받아들자 교주가 말을 이었다.

[ 백웅 부교주. 모두를 데리고 본단으로 가라. 너희를 보호하면서 싸울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

아무래도 지금까지 수만 명의 태평도를 학살했지만, 그건 모두 진의 발동을 위한 미끼였던 모양이다. 교주의 말대로라면 이 자리는 3명이나 되는 대라신선이 힘을 합쳐서 만들어낸 대절진의 한가운데!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를 도주시키려는 선택은 확실히 이성적이었다. 나는 교주에게 물었다.

"교주. 그냥 천령단의 힘으로 다같이 부수는 건 안되는 겁니까?"

[ 안 될 것이다. 이 절진은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라는 직감이 든다.]

"직감이요?"

[ 원영신에 이르고 더 높은 경지에 오르며 생긴 칠감(七感)이 경고해주고 있다.]

그렇게 대꾸한 교주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 뭘 하나? 어서 가라.]

나는 교주를 마주 쳐다보며 대꾸했다.

"뭘 믿고 내게 이들을 맡기시는 겁니까? 내가 목갑을 가지고 이들을 영원토록 봉인해버리면 어떻게 하려고?"

[ 후후. 네가 그럴 놈이었다면 몇 달 전에 이미 나와 양패구상했겠지. 그렇잖은가?]

"......"

[ 네가 나를 통해서 뭔가 결말을 보고 싶다는 건 짐작하고 있다. 그 마음이 존재하는 한 나를 배신하지는 않겠지.]

그 때였다.

꽈르르릉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며 비와 함께 번개가 내려쳤다. 그리고 천지인 삼재의 방위에 신령스러운 기운이 세 개 떠오르더니 멀리서 백련교주를 포위하는 형상이 되었다. 백련교주의 정면에 나타난 존재는 남화노선이었는데, 그는 차갑게 웃으며 백련교주에게 말했다.

[ 도망친다고? 그게 가능할 것 같은가.]

[ 남화노선인가.]

[ 그렇다. 사악한 자여. 알아서 함정에 걸려줬으니 여기서 끝장내 주마.]

[ 마음대로 될까?]

백련교주가 대꾸하는 순간, 남화노선의 한쪽 손에 스륵하며 기다란 죽장이 떠올랐다.

[ 우길(于吉), 장각(張角).]

[ 네, 스승님!]

두 명의 대라신선이 대답하자 그는 눈을 게슴츠레 뜨며 말했다.

[ 보패(寶佩)를 사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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