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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406화 (406/1,615)

00406  천계(天界)  =========================================================================

태평도가 진군하는 걸 보고만 갈 수는 없다. 정보를 얻는다고 한다면 적어도 그들을 조종하는 게 누구인지, 그리고 태평도가 가진 힘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는 알아서 가야 했다. 나는 언덕 위에서 신중하게 그 파도같은 진군을 보았는데, 역시 지휘관이 누군지는 잘 알 수가 없었다.

' 너무 개떼같아서 지휘체계가 안 보여...'

보통의 군에서는 지휘관과 일반병을 나누는 최소한의 표식을 해두게 마련이었다. 그래야 난전중에서도 명령과 통솔이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 광인집단은 그저 미친개처럼 내달릴 뿐 복색이나 구분이 따로 없었다. 보통 농민이 대다수였으며 개중에 군병이 섞여있었지만 지휘체계랄만한 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관찰했다. 그러던 중 뭔가를 알아차렸다.

' 저거...?'

진군하는 광인들 사이로 커다란 황색 깃발이 나부끼는 게 느껴졌다. 내가 옆에 있던 독고준을 힐끔 보자 그가 대답했다.

[ 내 생각도 같습니다. 저 깃발을 노려야겠군요.]

"그럼..."

콰과광!!

독고준은 말이 끝나자마자 대번에 앞으로 날아가면서 거대한 수룡(水龍)을 전방으로 내쏘았다. 수룡은 마치 대포처럼 날아가더니 한꺼번에 부채꼴 모양의 범위를 휩쓸고 지나갔고, 수룡의 공격이 들어오자 군세의 전진이 일순간 멈추는 듯 했다.

순간적으로 덮쳐오는 그 가공할 침묵!

수십만의 투명한 살기가 이쪽으로 저릴 정도로 날아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독고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재차 수룡을 아홉 마리 만들어내서 전방으로 날려버렸다.

콰과과과광

이번 폭발은 아까보다 더 강했는지 한꺼번에 평원의 일각이 붕괴되는 듯 했다. 독고준이 내게 말했다.

[ 내가 시선을 끌고 있을테니 가 보십시오.]

"괜찮겠소?"

[ 수신류 호법사자를 걱정하다니 언어도단이군요.]

그것도 그렇다.

"안되면 도망치시오!"

나는 한 마디 경고를 날리고는 전방으로 뛰어갔다. 멸혼보를 써서 독고준이 수룡으로 파괴한 참상으로 달려가자, 그곳에는 처참하게 죽어버린 시체들이 나동그라져 있었다. 하지만 그 시체들의 한가운데에는 아직도 황색 깃발이 크게 펄럭거리며 나부끼고 있었다.

깃발을 들고 있는 것은 기묘한 존재였다. 분명히 인형(人形)을 띄고는 있으나 다른 광인들과는 달리 눈에 강한 안광이 감돌고 있었으며 몸이 희끄무레한 연기처럼 변해 있었다. 깃발을 든 연기같은 놈은 수룡의 공격을 견뎌냈는지 멀쩡하게 서 있었다.

연기의 기수(旗手)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나는 섬칫하는 기분이 들었다.

해골!

' 뭐, 뭐야?'

자세히 보니 앙상마른 해골이었다. 살점은 아주 오래전에 썩어있어서 백골밖에 남지 않았으며 백골 위에 은은한 영기가 안개처럼 둘러져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덜그럭거리며 일어선 해골은 자신의 깃발을 휘두르며 외쳤다.

[ 창천이사(蒼天已死) 황천당립(黃天當立)!]

그리고 다음 순간 벌어진 일에 나는 재차 황당함을 느꼈다.

후두둑

후두두둑

"......!!"

수룡에 맞아서 전신이 뒤틀려 찢겨서 죽은 광인들의 시체가 비척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서기 시작했다. 팔다리가 없는 놈들은 눈 앞의 해골처럼 영기를 뿜어내며 어떻게든 일어서는 모습이었다. 죽은 자가 해골이 되어서 되살아나는 귀기어린 현상이 내 앞에서 나타난 것이다.

그 때 제갈사가 말했다.

[ 태평요술(太平妖術)이 틀림없군.]

[ 뭐?!]

나는 제갈사에게 반문했다.

[ 말도 안돼! 망량은 태평요술서가 거짓부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고.]

[ 그건 사실이지. 하지만 태평요술은 분명히 존재하는 술법이다. 단지 요술서라는 편리한 형태로 전승되지 않을 뿐이야.]

제갈사가 킬킬거리며 말했다.

[ 생사역륜(生死易輪)을 이루는 금천(禁天)의 비술. 네가 갖고있는 천신경의 술법과 마찬가지로 대라신선 전용의 술법이 바로 태평요술이다.]

쿠구구구

되살아난 존재들은 눈을 데굴거리더니 자신의 몸에 익숙해지려 하는 기색이었다. 나는 주변에 순식간에 수백의 적이 생겨난 걸 깨닫고 침음성을 흘렸다.

"음..."

이제 어쩌지?

그러자 제갈사가 말했다.

[ 어쩌긴 뭘 어째? 이혼대법은 놔뒀다가 국끓여먹나?]

[ 그걸로 될까?]

[ 등신아. 중원에서 나보다 이혼대법에 달통한 자는 없는데 내 말을 의심하냐?]

나는 잠시 후 이혼대법을 펼쳐서 내 몸 주변에 백(魄)이 끓어오르는 기류를 만들어 냈다. 백을 다루는 능력을 극도로 끌어올린데다가 팔찌와 전국옥새 덕분에 영력이 극도로 증폭되어서 가능한 묘기였다. 내 몸이 거대한 차륜처럼 백을 유동시키는 결계를 형성시키자, 주변에서 되살아났던 시체들이 도로 쓰러져서 죽기 시작했다.

후두둑!

내게서 반경 이십 장 내에 있는 놈들은 예외없이 술법이 풀려버리는 기색이었다. 나는 앞으로 걸어가며 신기함을 느꼈다.

[ 어떻게 이런게 가능하지?]

[ 돌대가리야. 태평요술은 가짜 혼을 백에 붙여서 몸뚱이를 다시 일으키는 술법이지. 그러면 생체(生體)보다 혼백의 연결이 약하니까 이혼대법으로 풀어버리기는 몇 배로 쉬운거다.]

[ 사람한테는 이렇게 못 할까?]

[ 살아있는 존재한테 써서 혼백을 범위째 분리시키려면 몇십배나 되는 영력이 필요하겠지.]

나는 제갈사와 대화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는데, 방금 전에 시체를 일으킨 해골기수가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었다. 이윽고 내 이혼대법의 영향력이 놈에게 닿이자, 해골기수도 퍼석하는 소리를 내며 새하얀 해골덩어리로 흩어져 버렸다. 나는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해골기수가 들고 있던 거대한 황색 깃발을 주워들었다.

그 때였다.

[ 너는 누구냐? 배교의 하수인이냐?]

쉬이익!

칼바람같은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나타났다. 나는 그 자의 형상을 보자 인상을 찌푸렸다.

' 설마...'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 쪽에서 먼저 나를 아는 척했다. 왜냐하면 이미 일면식이 있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 너는 수요의 수기를 공양한 인간이 아닌가? 왜 배교의 술법을 사용해서 천계의 행사를 막는가?]

그랬다.

희끄무레한 영체 상태로 서 있는 존재 - 그것은 내가 수기를 공양할 때 한번 마주친 적이 있었으며, 전생까지 포함하면 십수 번이나 보아왔던 존재인 남화노선(南華老仙)! 신선 특유의 법의(法衣)를 입은 채 카랑카랑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명백한 적의가 감돌고 있었다.

어째서 대라신선이 여기에 와 있는 거지? 나는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감돌았지만 우선 상대방은 어쨌든간에 대라신선이었으며 인간과는 격이 다른 존재였으므로 공손하게 포권을 했다.

"남화노선이여. 저야말로 묻고 싶습니다. 어찌 이렇게 거대한 술법을 사용해서 인간세계의 일에 관여하십니까?"

[ 말했듯이 이는 천계의 행사. 천계의 명으로 악에 물든 인간을 토벌할지니, 백련교의 수하는 단 하나도 남김없이 없앨 것이다!]

남화노선의 말은 단호했다. 그리고 나는 예감이 현실로 다가온 걸 깨닫고는 이를 악물었다.

' 일이 지랄맞게 흘러가는군!'

천계의 목적은 백련교를 치는 것!

그렇다면 십이율과 싸우기에 앞서서 천계라고 하는 강대한 신적 존재와 싸워야 할 것이리라. 게다가 대라신선의 가공할 술법능력을 지금 눈 앞에서 본 나로서는 섣불리 남화노선을 치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자칫했다가는 이 자리에서 남화노선의 손에 으깨질수도 있는 것이다.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백련교는 신강에 있는데 왜 낙양을 치려 하십니까? 방향을 잘못 잡으신 게 아닙니까?"

[ 낙양에는 강대한 보패가 숨겨져 있다. 그걸 손에 넣어야 확실하게 백련교주를 토벌할 수 있다.]

"보패요? 무슨 보패 말입니까?"

[ 그걸 그대에게 말해줄 이유는 없다.]

그렇게 대꾸한 남화노선이 살기가 잔뜩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 이제 그대가 배교의 술법을 사용해 우리를 가로막은 이유를 설명해야 할 터. 무슨 의도인지 확실히 말하라!]

"......"

[ 그대는 새로이 칠요의 주인이 되었다고 들었다. 칠요를 허가한 것은 천계이니, 그대는 우리의 뜻을 따라야 할 것이다.]

남화노선은 내가 칠요의 주인이 되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봉선의식의 결과가 천계에 통보되지 않을 리 없었다. 남화노선이 나타나자마자 나를 치지 않은 것도 내가 적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생각해서 우선 대화를 걸어온 듯 했다.

내가 고민하고 있자 제갈사가 말했다.

[ 뭘 고민하냐? 이럴 때는 허세로 나가는 거야.]

[ 뒷감당이 안될 거 같은데.]

[ 천계에서 수십만 명을 홀리면서 막나가는데 뒷감당은 무슨 뒷감당이냐? 이미 개판이 나버렸으니까 너도 하고싶은대로 해라.]

일리있는 말이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남화노선. 사실 저는 망량선사의 명령으로 백련교에 잠입해 있습니다."

[ 무엇이?]

"오늘도 이 자리에 백련교주의 명으로 정보를 캐러 왔지만 그건 표면적인 것일 뿐, 사실은 그의 정보를 알아내고 있습니다. 오해하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 끄응...]

남화노선은 매우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 네 말이 사실이라는 증거가 어디 있지?]

"망량선사께 직접 물어보시면 되잖습니까?"

[ ......]

나는 어쩔줄 몰라하는 남화노선을 보자 고소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남화노선은 과거 제망량에게 일격에 찢겨서 죽을뻔한 일이 있었기에 섣불리 망량선사에게 뭘 물어볼 처지가 아닐 것이다. 그의 자존심도 크게 작용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이로써 이 자리에서 남화노선은 나를 섣불리 적으로 규정하고 공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나는 은근슬쩍 남화노선에게 말했다.

"그런데 아무리 천계라지만 이렇게 인간세계에 크게 간섭하면 인과율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수십만 명을 광인으로 만들다니 해도 너무하지 않습니까?"

남화노선은 일개 인간인 내게 추궁당한다는게 몹시 짜증나는지 버럭 외쳤다.

[ 그건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이 모든 일은 옥황상제(玉皇上帝)께서 책임지신다.]

"......!!"

옥황상제가?!

이 일의 직접적인 배후를 듣게 되자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 서왕모가 아니었단 말인가?'

명령한 것은 도교신위 최고서열 중 하나인 옥황상제! 나는 이런 강경책을 쓸 존재가 영락없이 서왕모라고 생각했기에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남화노선이 부글부글 끓는 노화를 참지 않고 연속해서 말했다.

[ 네가 만일 칠요의 주인이라면 순순히 우리 일을 도와라! 그렇지 않으면 네놈도 천계의 역도로 취급하여 함께 멸할 것이다.]

"좋습니다. 도와야 마땅하지요. 제가 이 자리에 온 걸 보면 모르겠습니까?"

[ 으음.]

"허나 그 전에 낙양을 점거해서 뭘 하려는지 알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내가 유순하게 대답하자 남화노선은 한결 누그러진 기색이었다. 그리고는 대답했다.

[ 백련교주의 힘은 보통의 신선을 훨씬 뛰어넘었다고 파악되었다. 나로서도 백련교주를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기에 그 자를 상대할 수 있는 강력한 투선(鬪仙)을 소환하여 그 자를 없앨 생각이다.]

"그냥 칠요를 얻을 때처럼 서왕모께서 강림하시면 안되는 겁니까?"

[ 함부로 언급하지 말라. 그 일은 천계의 극비다!]

"이거 참 죄송합니다."

[ 서왕모께서는 함부로 지상의 일에 끼어드실 수 없다. 더 이상 묻지 마라.]

"......"

나는 곰곰히 생각했다.

' 그렇다면, 낙양에서 얻으려 하는 보패가 강력한 투선을 소환하는 매개체라는 말인가?'

겨우 보패 하나로 그 엄청난 백련교주를 쓰러뜨릴 수 있다고?

그거 하나때문에 수십만의 군세를 일으켜서 낙양을 휩쓸어버리려 한단 말인가?

뭔가 이해가 되지 않는 기분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보패의 이름을 알려주신다면 제가 낙양을 조사해서 얻어내겠습니다."

[ 그럴 필요 없다. 낙양을 얻으면 그 봉인은 즉시 풀릴 것이다.]

"흠... 백련교주가 갑자기 공격해오면 어쩌려고 하시는 겁니까?"

[ 내 제자인 우길(于吉)과 장각(張角)이 함께 있으니 그 자도 몸성할 수 없으리라.]

남화노선이 그렇게 대꾸하고는 내게 말했다.

[ 자아. 그럼 백련교의 정보를 내놔라.]

그러자 나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일단 보패가 있는지 없는지 낙양에서 좀 찾아보고 오겠습니다."

남화노선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졌다.

[ 뭐라고?!]

"그럼 다음에 봅시다, 남화노선.]

나는 즉시 사불상을 타고 휙하고 가버리고 말았다. 내가 도착한 곳에는 한창 수룡을 소환해서 때려부수고 있는 독고준이 있었는데, 그는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는 대군을 상대로 하자 염증이 난 듯 했다. 그래서인지 나를 보자 반가운 듯 말했다.

[ 백웅, 왔군요.]

"갑시다."

나는 이윽고 사불상을 타고 백련교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백련교주를 즉시 찾아가서 내가 이번에 알아낸 정보를 말하자 백련교주가 침묵하다가 말했다.

[ 그렇군... 잘 알아냈다, 부교주.]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백련교주는 곤란한 듯 팔짱을 꼈다.

[ 즉... 적은 수십만 명의 불사신 군단... 그리고 대라신선 한 명에, 최소한 신선급 존재가 둘 있다는 거군.]

"......"

좌중이 침묵에 휩싸였다.

생각보다 적의 힘이 더 엄청났기 때문이다. 교주가 고민을 거듭하다가 내게 말했다.

[ 백웅. 아직까지 적이 낙양에 도달할 때까지는 하루이틀의 시간이 남아있다.]

"네."

[ 그 전에 낙양으로 가서 놈들이 노리는 보패가 무엇인지 최대한 알아내라.]

"만일 알아내지 못하면 어쩌려 하십니까?"

교주가 눈에서 섬뜩한 안광을 흘렸다.

[ 내가 남화노선을 직접 없애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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