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04 천계(天界) =========================================================================
원로원 고수들은 내가 발출했던 힘을 봤는지 나를 건드리지 않고 얌전히 뇌신류 건물로 돌려보내줬다. 나는 뇌신류에서 일하고 있는 풍신류 인물들을 보자 이 애물단지들을 어떻게 해야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 무공도 없고 돌봐주긴 돌봐줘야 하고...'
게다가 숫자도 적지 않다. 독고준과 교주가 내게 선심쓰듯 맡겼지만 지금 와서는 괜한 짐덩이를 떠맡은 기분이다. 내가 짜증을 느끼자 제갈사가 말했다.
[ 풍신류 출신 미녀도 꽤 보이는데 불러서 수청을 들게 하는 게 어떻겠냐? 2대1이라던가 3대1이라던가...]
[ 미쳤냐? 그런 짓 안한다고 몇 번을 말해?]
[ 그럼 이혼대법의 실험체로 사용하는게 좋겠군. 그게 아니면 내가 아는 사법(邪法)을 몇 가지 가르쳐 줄 테니 저 풍신류 놈들을 제물로 바치자.]
[ ......]
나는 제갈사가 진심으로 제안한다는 걸 깨닫자 기가 질렸다. 극호의 시시껄렁한 삼류농담같은 게 아니라 제갈사는 진짜로 인간을 죽이고 범하는 비인외도의 길을 내게 제시하고 있었다. 나는 제갈사의 말대로 하는게 가장 풍신류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이란 걸 알았지만 선택할 수 없었다. 대신에 허탈해져서 말했다.
[ 제갈사. 너는 뭐 때문에 그렇게 인간을 쓰레기 취급하는거지?]
[ 엉?]
[ 도저히 이해가 안 가. 내가 살면서 악인이나 살인강도나 인면수심을 꽤 봐왔지만... 너처럼 인간을 고깃덩이로 여기는 놈은 정말 본 적이 없다. 보통 인간은 죽었다 깨어나도 너처럼 생각하지 못한다고. 대체 어떻게 살아왔길래 그런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는거지?]
내 질문이 의외인지 제갈사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킬킬 웃으며 말했다.
[ 크크크... 말 잘했다. 이 세계의 인간은 고깃덩이에 지나지 않지.]
[ 뭐?]
[ 인간의 역사서로는 차마 형용할 수 없는, 아주 오랜 고대... '옛 존재'가 식용 및 애완동물을 겸해서 최초의 인간을 창조했다. 인간은 아주 먼 고대에는 이족이 키우는 소, 돼지와 다를 바가 없었어. 그러다가 '옛 존재'와 흉신의 전쟁이 일어나서 그들이 잠들게 되고... 삼황오제가 발호해서 인간에게 문명을 준 것 뿐이다.]
그렇게 설명한 제갈사가 어깨를 으쓱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뭐 이건 표면상의 이유고, 인간에게서 아무런 가치를 느끼지 못해서 그냥 실망해 버렸다고 말해둘까.]
[ 가치? 살아가는 걸로 그만 아니냐?]
[ 흥... 이혼대법을 그만큼이나 수행하고도 삶과 죽음의 본질을 직시하지 못하다니. 하긴 네 녀석은 전생을 할 수 있으니까 더 인식하기 힘들수도 있겠군.]
왠지 투덜거리던 제갈사는 말을 이었다.
[ 말이 나온 김에 하나 말해두자면, 교주는 나보다 더 미친 놈이야. 끝까지 교주를 따라가다보면 재밌는 일이 벌어질 거다.]
[ 헉...]
나는 진심으로 놀랐다.
이 놈이 자기가 미쳤다는 걸 인식하는 건 그렇다 치고, 설마 백련교주가 자기보다 미쳤다고 인정할 줄이야! 제갈사가 얼마나 광인인지 알고 있는 나로서는 놀랄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본 백련교주는 자기 목표에 열정을 갖고있으며 음흉하다는 점 외에는 '미쳤다'라고 단정지을만한 점이 없었다. 종교 교주로서의 특이한 매력이 있긴 하지만 그건 광기라고 보기에는 미약한 부분이었다.
[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미친 것 같지는 않은데...?]
[ 흐흐. 놈은 멀쩡하게 미친거야. 아주 호되게 절망해 있어. 나는 방금 전에 그의 광기를 느끼고 전율했다.]
[ ......?]
[ 아무튼 앞으로는 교주와의 관계가 달라질 거다. 어리버리하지 말고 잘 따라가.]
관계가 달라진다는 의미는 바로 다음 날에 알 수가 있었다.
백련교주는 다음 날 아침 모든 호법사자와 수신류, 화신류의 장로들을 소집한 후 단호하게 천명한 것이다.
[ 백웅을 본 백련교의 부교주로 임명한다.]
웅성...
교주를 제외한 모든 자가 당혹해하는 모습이었다. 장로들은 뭔가 말하고 싶은 듯한 기색이었지만 그 전에 화신류의 호법사자, 한백령이 앞으로 걸어나와서 말했다.
"교주. 갑자기 무슨 일이십니까?"
[ 들은 그대로다. 뇌신류 호법사자 백웅은 오늘부로 부교주로 직위가 바뀐다.]
"백련교 천 년 역사에서 부교주라는 존재나 직책은 따로 없었습니다. 이는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한백령이 당황한 듯 딴지를 걸자 교주가 대꾸했다.
[ 그대들에게는 설명하지 않았으나 백웅은 나와 대등한 동맹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걸맞는 자리를 마련해 준 것 뿐이다.]
"동맹관계라고요...?"
[ 그렇다. 부교주 백웅의 권한은 일인지하 만인지상. 금일부터 나 이외의 모든 자는 백웅을 존중하고 그를 상관으로 모시며 존대할 지어다.]
".......!!"
웅성거림이 한층 더 심해졌다. 백련교 일천 년의 전통이 한꺼번에 뒤집혀버리는 대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나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으나 제갈사의 한마디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 교주는 어떻게든 네녀석을 회유하려는 속셈이다.]
[ 처우를 낫게 해서?]
[ 아주 효과적이겠지 보통은. 지금 네 녀석이 얻은 지위는 백련교 뿐만이 아니라 전 중원천지에서 황제가 부럽지 않은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위치니까.]
[ .......]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백련교와 함께 중원의 거대한 축을 이루고 있던 황궁세력이 괴멸하고 그 힘을 고스란히 백련교가 흡수해버렸기 때문이다. 백련교의 부교주 자리라는 것은 교주의 말대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나는 저 선언이 무의미하다는 걸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가 내세운 권력이란 건 신화시대의 진실과 막후에 있는 지배자들의 힘에 비하면 티끌만도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왠지 울컥해서 한 걸음을 내딛으려 했으나 제갈사가 제지했다.
[ 관둬.]
아니, 내딛을 거야.
[ 소리지르면서 날뛸 생각이지?]
내가 뭐 때문에 동맹제안을 했는데? 더 이상 교주에게 목줄잡힌 채 끌려다니기 싫어서였는데 또다시...
[ 이건 교주의 선언이며, 어제 네놈의 동맹제안에 대한 대답이다. 이 선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교주는 네놈의 자살돌격을 감수하는 한이 있어도 이 자리에서 네놈을 말살하고 말 거다. 이 자리에서 교주 뿐만이 아니라 호법사자와 장로들을 상대로 한판 뜰 수 있을 것 같으냐? 백련교 그 자체와 싸우는 셈인데? 설령 검선 여동빈이 이 자리에 강림해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 하지만... 이래서는 결국 교주 의도대로 또다시 끌려갈 뿐이야.]
[ 감수해야지, 멍청아. 언제까지 자신의 의기에 휘둘려서 일을 망칠 생각이냐?]
내게 툭 쏘아붙인 제갈사가 말했다.
[ 당장 웃어! 웃으라고. 지금 웃지 못하면 네 녀석은 패배자다.]
웃으라는 건가.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면 백련교주에게 휘둘릴 뿐인데, 그래도 웃으라는 건가.
속에서 뭔가 납득이 안 되는 감정이 마구 치솟아 올랐지만 이윽고 간신히 참아낼 수가 있었다. 원래라면 제갈사의 말을 무시하고 내 맘대로 했겠지만, 놈과 오래 지내다보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제갈사의 개같은 말투속에 숨겨진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나는 억지로 안면근육을 움직이며 머릿속을 통제했다.
곧 나는 활짝 웃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교주."
[ 앞으로도 함께 갈 수 있겠군. 더불어 서로를 이해할 기회도 생길 것이고.]
그렇게 담담하게 정리한 백련교주가 갑자기 한백령을 쳐다보았다.
[ 한백령. 내 결정에 납득할 수 없는가?]
한백령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했다.
"천 년의 관례를 굳이 깨셨으니 놀랐을 뿐입니다."
[ 그거면 됐다.]
이 자리에서 가장 불만스러운 것은 한백령일 게 분명했다. 그녀는 지금 백련교주 마음대로 모든 것이 좌지우지되는 걸 무력하게 보고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낙 감정조절에 익숙한지 그녀에게서 동요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잠시 후 부교주 임명식이 끝난 후 교주가 말했다.
[ 백웅 부교주. 나를 따라와라.]
나는 말없이 교주를 따라갔다. 교주는 어제 그 장소로 나를 데려온 후 말했다.
[ 네게 붙여두었던 감시자가 내게 보고했었다. 갑자기 사불상을 이용해서 사라졌다고 했지. 또한 네가 상관혁이 있는 장소에 출입한다고 하는 보고도 들었다.]
"......"
[ 동맹관계이니 만큼 서로의 신뢰가 필수겠지. 그 동안에 뭘 했는지 말해 다오.]
교주가 천령단을 강제하지 않는 상태라면, 그와의 협력관계는 지금까지와 크게 다를 건 없다. 나는 제갈사와 의견을 교환한 후 입을 열었다. 그리고 주작을 해치운 일과 상관혁에게서 보패를 의뢰받은 일을 그에게 말해주었다.
그러자 교주가 놀란 듯 말했다.
[ 주작을? 그게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지금 증거물을 가져오겠습니다."
잠시 후 내가 뇌신류 건물의 비처에 넣어두었던 제갈유룡의 수급을 가져오자 교주가 그 머리통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제갈유룡의 예비육체의 모습까지 확인하자 이내 탄성을 질렀다.
[ 주작을 없앤 게 사실이라면 너는 정말로 큰일을 해낸 것이다. 이대로 십이율과의 싸움에 전념할 수 있겠군.]
그리고는 흡족한 듯 중얼거렸다.
[ 과연 나에게 동맹을 언급할 자격이 있군.]
"교주. 한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 물어봐라.]
"지금도 황궁에서 섬기던 복마전의 [옛 지배자]는 백련교를 곱지 못한 눈으로 보고 있을 겁니다. 그를 달랠거라고 하셨는데 어떤 방법으로 달래실 생각이십니까?"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신이 만일에 화가 나서 백련교를 없애고자 한다면, 지금의 교주라도 당해낼 방법이 없다. 하지만 황궁을 제압할 당시에는 그 방법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그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자 교주가 말했다.
[ 이미 달래놓았다.]
"네?"
[ 상관혁에게 초상기인을 바치게 해서 일단 급한 불을 껐고, 본단에 복귀해서 제대로 된 의식을 치러서 그 지배자에게 제물을 바치겠다고 약속해둔 상태다. 적어도 10년 정도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제물 예약!
[옛 지배자]가 포악하고 사악한 성질이 있다는 걸 감안하면 쉬이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황궁의 배후에 있던 [옛 지배자]는 상당히 성격이 너그러운지 백련교주의 제안을 쉽게 받아들인 것 같았다. 그 존재의 입장에서는 아랫것들이 달라질 뿐 자기가 받을 공양물만 건재하다면 상관없으리라.
나는 궁금해서 질문했다.
"어떤 제물을 바치겠다고 약속하신 겁니까?"
[ 그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나도 한가지 묻지.]
"네."
[ 내 삶의 목표는 진공가향을 이 세상에 구현하는 것이다. 이걸 위해서 젊을 때부터 쉬지 않고 마도와 무공을 연마하며 달려왔다. 내게는 확고한 목적의식이 있지.]
운을 띄운 백련교주가 이어서 질문했다.
[ 허나 백웅 너는 삶에 그다지 흥미도 없어보이는데 무얼 위해서 나를 따라오고 있었던 거지?]
"......"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꾸했다.
"교주가 만들 세상이 뭔지 궁금해서입니다."
그렇다. 이번 삶은 꼬이고 꼬이다보니 마구 치이면서 흘러온 느낌이 들지만, 지금으로서 가장 강한 동기는 교주를 관찰하며 알아내려는 거였다. 그동안 수박 겉핥기식으로 알아오던 백련교의 진실에 대해서 깊게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내 여정이 크게 단축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 그렇군.]
내 대답에 교주는 크게 만족했는지, 왠지 가면 너머로도 웃는게 느껴졌다. 그는 이윽고 말했다.
[ 내가 신에게 바치기로 약속한 제물은 바로 십이율과 고려이다.]
"......!!"
[ 십이율주를 쓰러뜨리고 나면 그런 동방의 반도(半島)에는 볼 일이 없지. 그들을 통째로 [옛 지배자]의 먹이로 줄 생각이다.]
"그, 그건."
[ 중원의 한 주를 떼서 넘겨줄까 생각했지만 그건 손해가 막심한 일. 중원 바깥의 오랑캐를 넘겨주기로 했다.]
나는 뜻밖의 대답에 멈칫거렸다.
십이율과 고려를 멸망시킨다니!
[옛 지배자]의 손에 들어간 영혼들은 윤회환생도 하지 못하고 영겁토록 장난감이 된다는 걸 생각하면 보통 의미가 아니었다. 수십 수백만의 인간들이 말도 안되는 비극에 휩싸이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신과 적대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백련교주가 태연하게 이런 소리를 할 줄은 몰랐기에 아연한 기분이 들었다.
' 이, 이렇게 사악한 자였던가?'
지금까지는 의뭉스럽긴 해도 나름대로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살아오는 자라고 생각했고, 정도를 넘지 않는다고 여겼다. 그래서 나는 독선적인 태도에 불만을 품을 지언정 백련교주를 진심으로 미워하거나 경멸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교주가 보인 태도는 인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레기처럼 내던지는 것으로서, 차라리 제갈사나 제갈유룡의 모습이 겹쳐보일 지경이었다.
내가 속으로 당혹해하고 있자 제갈사가 말했다.
[ 그럴만 하지. 십이율주를 쓰러뜨리고 칠요를 얻으면 [옛 지배자]와 싸워도 일방적으로 밀리지는 않을 거다. 그 힘을 사용해서 칠요를 찾으려 들면 언젠가는 다 찾겠지. 목표가 눈 앞에 와 있으니 어설프게 위선을 부릴 필요가 없는거지.]
[ 백련교주도 사실 극악한 놈이란 거냐?]
[ 크크크... 선과 악을 대체 무슨 기준으로 구분하는 거지?]
제갈사가 낄낄대며 말했다.
[ 백련교주는 자신을 전혀 악하다고 생각지 않고 있다. 그는 되려 인간을 좋아하고 있으며 진심으로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지. 그걸 위해서 소모되는 희생에 관심이 없을 뿐이야. 실제로도 백련교주의 계획이 성공한다면 절대다수의 인간이 구원받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네가 무슨 자격으로 그를 극악으로 판정할 수 있는 거냐?]
[ 자신의 뜻을 위해서 다른 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고 있잖아.]
제갈사는 깜짝 놀란 듯한 말투로 말했다.
[ 와, 그러냐? 나도 마침 그런 놈을 하나 더 알고 있는데.]
[ 뭐?]
[ 백웅이라고 하는 놈인데, 전생경험을 이용해서 주작을 아주 철저하게 짓밟고 아들놈도 고문하다가 죽여버렸지 뭐냐. 일가가 몰살당했는데도 그 백웅이란 놈은 죄책감 하나도 없대. 심지어 무덤도 안 만들어주고 목을 베어와서 능욕중이라는데.]
[ ......]
이 개새끼가?! 네놈도 거들었잖아!
[ 이봐, 선악을 판정하는 게 나쁘다는 게 아냐. 단지 현이 한테서 주입받은 인간성의 기준으로 섣불리 잣대를 들이대지 말라는 거다. 악신에게 물든 이 세계의 선악을 가리기 위해서는 인간세상의 윤리보다 더 유연하면서도 상대적인 기준이 필요하니까!]
제갈사의 마지막 한 마디에는 광기 대신에 추상같은 호령이 느껴졌다. 그것은 현인으로서의 제갈사가 쌓아왔던 인간세상에 대한 관점이 축약되어 있는 것으로까지 보였다. 나는 제갈사의 의견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확실히 내가 생각하는 방향을 좀 더 넓혀주는 듯 했다.
내가 침묵하고 있자 백련교주가 말했다.
[ 백웅 부교주. 칠대절학 연구회도 앞으로 계속 참여해라.]
"그럴 생각입니다."
[ 십이율주와는 일 년 후에 결판을 낼 생각이다. 넌 아직 많이 부족하니까 그때까지는 계속 수련하도록.]
일 년!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왜 지금 당장 싸우지 않습니까? 십이율주가 아직 칠요를 못 다스리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 내 직감이다. 왠지 십이율주의 진짜 무서움은 칠요가 아니라 다른 데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승산이 생길 때까지는 싸움을 미루려 한다.]
".......?"
[ 자령언월도의 수실이 온전했다면 좋았을 텐데.]
칠요보다 무서운 것이라니?
하지만 헛소리로 치부하기에는 백련교주의 말투가 진지했다. 인간의 무예경지를 뛰어넘은 절대자인 백련교주가 느낀 직감이라면 결코 그냥 넘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낮에는 연구회에 참여해서 칠대절학을 수련하고 밤에는 이혼대법을 연마하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석 달의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수련을 하던 중 바깥에서 원로원의 고수인 일로(一老)가 뛰어들어오며 외쳤다.
"교주님! 큰일났습니다."
[ 무슨 일인가?]
이어진 일로의 말에 나는 큰 일이 벌어졌음을 예감할 수 있었다.
"하북(河北)에서 태평도(太平道)가 대군을 일으켜 9개 성을 점거했다는 보고입니다. 낙양의 황제가 교주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서찰을 보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