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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401화 (401/1,615)

00401  천계(天界)  =========================================================================

백련교주와의 담판.

제갈사의 말은 갑작스럽게 내게 모험을 강요하고 있었지만 나는 이번에는 당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주작을 치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대꾸했다.

[ 기호지세라는 거냐?]

[ 상황을 이해하고는 있군.]

[ 교주라면 내가 월요를 비롯해서 새로운 힘을 얻은 걸 알아챌 거라고 생각해서.]

제갈사는 내 대답에 큭하고 웃더니 말했다.

[ 그 정도까지 이해했다면 됐다. 남은 건 네 각오 뿐이다.]

[ ......]

나는 섣불리 대답할 수가 없었다.

지금 내 상황이 기호지세이며, 당장 교주와 담판을 지어야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천령단의 노예계약!

백련교 최고의 힘이자 병기라고 할 수 있는 그 천령단이 사실 노예계약이란 걸 알게 된 시점에서, 얌전하게 백련교주 밑에서 떡고물만 받아먹는 선택은 할 수 없게 되었다. 만에 하나 천령단을 받아들였는데 해제할 수가 없다면 나 또한 다른 천령단 소유자들과 마찬가지로 사후에 [옛 지배자]의 노리개가 되어 영원히 고통받을 수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백련교주 밑에서 상황만 백날 살피는 것도 한계에 다가온 시점이었다. 월요든 전국옥새든간에 언젠가는 내가 미리 회수해 놔야 하는 힘이었다. 단지 지금은 빠르게 선택했을 뿐이다.

나는 망설이다가 말했다.

[ 제갈사. 월요의 주인이 된 지금, 교주에게 승산이 얼마나 있을까?]

[ 멍청한 놈. 왜 승산을 생각하냐? 그건 애초에 얘깃거리도 되지 못해.]

툭하고 내뱉은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 교주를 정면승부로 이길 수 있는 존재는 현재로서는 십이율주 뿐이다. 월요는 교주와 대화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에 불과해.]

[ 못 이긴다는 말이군.]

[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교주를 상대로라면 2할 정도는 있었을지도... 하지만 네 녀석이 모든 보물을 뺏겨버린데다가 칠대절학을 연구한 현재의 교주를 상대로 승산은 없다.]

[ 씁...]

[ 하지만 너는 전국옥새 또한 손에 넣었지. 그걸 잘 이용하면 교주한테서 원하는 얘기를 끌어낼 수 있을 거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 그래. 지금 교주한테서 도망친다고 해도 의미가 없어!'

교주에게서 상당히 많은 정보를 얻었지만, 아직까지도 겉핥기에 가깝다. 천령단의 진실은 알았지만 아직까지도 교주의 진의(眞意)를 알아내지는 못한 상황이다. 교주의 측근에 여기까지 접근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므로, 나는 이번 생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백련교의 모든 것을 알아내야만 했다. 그렇지 않는다면 무의미한 죽음을 최소한 10번 넘게 반복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한 가지 더 신경쓰이는 게 있었다. 내가 생각을 거듭하자 제갈사가 말했다.

[ 상관혁과의 거래가 있지.]

[ 놈에게 백우선을 갖다주지 않아도 될까?]

[ 놈이 요구한 건 강력한 보패였다. 그런 보물을 언제 얻을지 기약이 없긴 하지. 하지만 말이다...]

제갈사가 킬킬 웃었다.

[ 일의 순서를 조금만 바꾸면 그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 음?]

[ 잔말말고 대답해라. 각오가 됐냐?]

제갈사의 독촉을 들은 나는 또다시 방황했다. 왜냐하면 이건 이번 삶에서 최대의 분수령이라고도 할 수 있었고, 실패할 경우 죽느니만 못한 꼴을 당할 수도 있었다. 결코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나는 망설이다가 말했다.

[ 각오는 됐어. 하지만 그 전에 월요의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군.]

[ 크크... 힘자랑 좀 해보고싶으냐?]

[ 월요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는 이야기가 안 되잖아.]

[ 알았다. 그러면 아라사 제국으로 가자.]

[ 뭐?]

내가 반문하자 제갈사가 말했다.

[ 어차피 내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다. 기왕 힘쓰는거 나중에 할 일을 미리 해둬야지.]

파앗!

나는 제갈사의 말대로 사불상을 타고 예전에 왔던 아라사 제국의 마을에 도착했다. 이 곳은 동방정교회의 수도사인 벨로프를 비롯해서 타락한 황제에 대항하는 세력이 모여있는 장소였다.

그들은 난데없이 동양 소년이 나타나자 깜짝 놀라는 기색이었다. 제갈사가 낄낄 웃으며 말했다.

[ 통역해주마.]

제갈사가 자신의 영혼을 공명해서 내게 동조시켰다. 여기에 응하게 되면 제갈사에게 언어기능을 일부 양도하는 셈이었지만, 일단은 양보하기로 했다. 이윽고 언어기능이 제갈사의 지능과 연결되자 내 입에서 능숙한 아라사어가 나왔다.

"나는 명나라에서 온 백웅이오. 동방정교회(東方正敎會)의 총주교좌(總主敎座)인 수도사 벨로프와 만나기 위해 왔소."

웅성

몰려있던 기사들과 병사들이 웅성대며 나를 쳐다보았다. 매우 능숙한 아라사어라서 그들도 모두 알아들은 것이다. 철갑을 입은 덩치 큰 기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뭐래는 거야? 잡아."

병사들이 철걱거리며 칼을 앞으로 내미는 순간, 뒤에서 큰 고함소리가 들렸다.

"그만두시오!"

그리고 수도사 벨로프가 눈이 쌓인 길을 걸어서 내 앞으로 왔다. 그는 의혹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동방의 기인(奇人)인가? 그대는 왜 나를 찾은 거지?"

"벨로프. 나는 당신들을 도울 수 있소. 왜냐하면 용(龍)의 봉인을 풀 수 있기 때문이오."

"......!!"

벨로프는 깜짝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말했다.

"좀 더 자세한 얘기를 할 필요가 있겠군."

"가타부타 이야기할 필요도 없소. 당신은 내게 약속만 하면 되오."

"무슨 약속?"

"내가 용을 깨워서 미친 황제, 이반 4세를 토벌한다면 당신네 동방정교회가 보유한 성유물(聖遺物)을 내게 주시오."

"으으음..."

벨로프는 크게 탄식하더니 말했다.

"백웅 그대는 우리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것 같군. 허나 용을 깨운다는 게 너무 비현실적이라..."

"먼저 동굴에 가 있겠소."

타닷

나는 멸혼보를 써서 외진 동굴로 가 버렸다. 뒤늦게 벨로프를 포함한 서양인들이 놀라서 허둥대는 기척이 느껴졌지만 알 바 아니었다. 나는 외진 동굴에서 한참 들어가자 새하얀 얼음의 기운이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몸뚱이 크기가 20여 장은 될 법한 거대한 파충류가 얼음벽 속에 갇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서양의 용!

동방정교회는 사도의 손에 의해 신화(神化)하여 강대한 힘을 갖게 된 황제를 상대하기 위해 전설의 환수를 깨우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나는 예전에 미호와 함께 이 곳에 왔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 그것은 동방의 용과 달리 굉장히 사악한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힘이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재앙(災殃)일 게 뻔한데 굳이 깨워야겠느냐?]

[ 아마 누군가 강력한 술법사가 저 용의 사악함을 깨닫고 목숨바쳐 봉인했을 것이다.]

[ 동방의 용과 사촌뻘인 것 같긴 하지만 그 서방의 용은 결코 인간에게 호의적인 놈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벨로프라는 수도사가 그 용을 제어할만한 능력이 있을 것 같지도 않구나. 강력한 존재인 건 사실이니.]

미호는 구미호의 직감과 경험으로, 이 얼음 속에 갇혀있는 용이 대단히 사악하고 강력한 존재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래서 나는 생뚱맞은 아라사 제국의 일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 그냥 이 자리를 떠났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관혁에게 줄 보패를 얻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것이다. 성유물이라는 존재는 보패와 동급이라고 들었기에 그걸 얻을 겸 그때 마무리짓지 못한 일을 처리하려는 셈이었다.

내가 물끄러미 용을 쳐다보고 있자 제갈사가 킬킬 댔다.

[ 알겠군... 드라큘 공(公)인가.]

[ 뭘 알겠다는 거냐?]

[ 이건 본래 인간이었던 존재가 용으로 전생(轉生)한 존재다. 소문은 들어본 적 있었다. 출신지가 루마니아라면 확실하군.]

[ 이게 원래 인간이었다고?]

[ 인간의 군주가 불사영생을 위해서 이족과 거래해서 용의 육체를 얻은 것이다. 당연히 탐욕덩어리에 사악할 수밖에.]

그렇게 설명한 제갈사가 말했다.

[ 자, 먹어치워 버려라. 아주 꿀같은 기회군.]

스윽

나는 팔찌를 앞으로 내밀며 월요의 힘을 상승시키기 시작했다. 그러자 삼신기에서 엄청난 힘이 쏟아져 내려오더니 팔찌와 감응했고, 이윽고 그 열기가 용을 가두고 있는 천년빙을 서서히 녹이는 듯 했다.

그리고 얼음이 녹는 것보다 더욱 빠르게 용에게서 거대한 영혼이 빠져나오는 게 느껴졌다. 용의 영혼은 안간힘을 쓰며 비명을 질렀다.

크오오오오!!

하지만 내가 월요의 힘을 발동하자 술력이 말도 안 될 정도로 상승했고, 팔찌의 흡수력 또한 높아졌다. 수백 년 동안 가둬져 있었던 놈이 버텨낼 수는 없는 것이다. 이윽고 용의 영혼이 팔찌에 고스란히 흡수되는 게 느껴졌다.

파킹!!

그 순간 팔찌의 보석이 완전히 붉은 빛으로 물들며 팔찌에서 힘이 전해지는 게 느껴졌다. 제갈사가 지금의 현상을 설명해 주었다.

[ 팔찌에 영혼이 가득 찼다. 용의 영혼이 일개 인간 수만 명 분의 효력이 있었나보군.]

[ 시키는대로 하긴 했는데 이게 뭐가 좋은거지?]

[ 크흐흐... 보면 알 거다.]

그 때 뒤늦게 벨로프가 병사와 기사들을 대동하고 동굴로 뛰어들어왔다. 그는 나를 보더니 말했다.

"용을 깨운다더니 이게 무슨 짓이오?"

"이 용은 사악한 놈이라 깨우지 않느니만 못하오. 그러니 지금부터 황제를 쓰러뜨리고 오겠소."

"아니 무슨..."

"다시 한 번 묻겠소. 내가 황제를 없앤다면 성유물을 내게 줄 거요?"

"......"

벨로프는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한다면야... 하지만 어떻게..."

파앗!

나는 벨로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사불상을 타고 이번에는 아라사 제국의 수도,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으로 이동했다. 이 궁의 지하에는 선지자의 비밀도서관이 있어서 예전에는 궁의 지하에서 나왔던 기억이 있었다. 내가 거대한 궁의 복도를 천천히 걷고 있자 우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 같다. 그 소리를 들은 제갈사가 말했다.

[ 이 곳은 이미 마역(魔域)이 되었군. 역시 이 곳에 사도급 존재가 있는 게 틀림없다.]

[ 그... 그럼 위험한 거 아니냐?]

[ 걱정 마라. 여긴 중원과 너무 멀리 떨어진 장소라서 호랑이 코털을 뽑아도 후환이 올 수가 없지. 보아하니 사도도 힘을 다 쓰고 나서 잠든 상태인 거 같고 말이야. 원하는대로 월요를 맘껏 쓰면 된다.]

그렇게 말한 제갈사가 충고했다.

[ 궁의 최심부에 사도가 잠들어 있는 것 같으니 여기에 더 있는 건 위험할 거다. 일단 궁 밖으로 나가자.]

내가 궁 밖으로 나가서 한참동안 도시를 떠돌 때였다.

쉬익

허공에 거대한 환영이 떠올랐다. 그것은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있는 왠 청년(靑年)이었다. 색목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 청년의 환영은 무려 수십 장이나 되는 크기로 떠올라 있었다. 청년이 음산하면서도 강력한 기운을 뿜어내며 외쳤다.

[ 으하하하하하....!! 짐의 궁전에 불청객이 찾아왔는데 그냥 가려 하느냐? 당장 이리 오너라 야만인이여!]

미쳐버린 황제가 나타난 것이다. 예전에는 저 놈을 상대하기가 껄끄러워서 그냥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던 기억이 났다. 벨로프가 부여해 준 황금이파리의 기운이 없었다면 상대도 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놈을 상대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왔다.

"월요여, 깨어나라!"

내가 주언을 외치자 삼신기가 크게 떨리며 내 몸 주변에 소환되었다. 동시에 해방된 월요의 힘이 내 전신에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황제 이반 4세가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 아니? 그 힘은 무엇이냐?]

"불청객이 집주인을 패죽이는 힘이다!"

나는 대충 대답하고는 예전에 미호가 했던 것처럼 주변에 월영(月影)을 띄웠다. 월영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면서 수십개나 나타났는데, 나는 의지로 월영을 만든 순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 것 같았다.

' 아, 월요는 수요와 달리 꽤 친절하군.'

나는 예전에 해방된 수요를 다룬 적이 있었지만, 수요는 가공할 힘을 제공할 뿐 딱히 연관된 지식이나 기술을 가르쳐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천빙이라는 기술이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수요로 사용해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월요는 수요와 달리 기술을 사용하려는 순간 어떻게 쓰면 되는지를 직감적으로 알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쉬카카칵!!

월영이 날아가더니 이반 4세의 몸뚱이를 꿰뚫었다. 이반 4세는 반투명한 정령체같은 몸이었는데도 월영에 관통당하자 고통스러운 비명소리를 내질렀다.

[ 끄아아악!! 이 노옴!!]

' 통한다?'

나는 놀라움을 느꼈다. 저 놈의 몸뚱이는 의념을 써도 베일까말까일텐데 월영에 두부처럼 잘려나간 것이다. 아무래도 칠요가 가진 힘이 신화한 존재에게도 충분히 통하는 모양이었다. 이반 4세는 이윽고 거대한 압력을 가진 손바닥을 소환해서 내게 내질러 왔으나 나는 손쉽게 월요의 장벽을 전개해서 그 힘을 튕겨낼 수 있었다.

나는 동시에 내 몸을 떠돌던 월요 중에서 하나를 꺼내서 손에 잡았다. 그것은 바로 삼신기 중의 검(劍)으로서 천검(天劍)이라 불리는 존재였다. 또한 동영에서는 미쿠사노카무다카라 중의 천총운검이라고도 칭해졌다.

"하압!!"

공간이 말 그대로 월영과 함께 쪼개진다!

위이이잉

굴공참을 시전했을 뿐인데 무려 수십 장이나 되는 크기의 참격이 공간을 반쪽으로 갈라버렸다. 그 궤적에 있던 이반 4세는 비틀거리더니 몸이 빛의 티끌처럼 변해가기 시작했다.

[ 크아악... 아악...]

너무 큰 피해를 입어서 신령체가 붕괴되는 모습! 나는 말도 안되는 강적이었던 이반 4세가 이토록 쉽게 무너지자 얼떨떨한 표정으로 놈을 쳐다보았다. 내 원래 실력으로는 목숨을 열 개나 내놔야 할만한 강대한 신령체를 단숨에 쓰러뜨린 것이다.

제갈사가 히죽댔다.

[ 칠요는 삼황오제가 손수 만든 신급 보패라 할 수 있으며 [옛 지배자]의 힘도 스며들어 있다. 일개 사도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신령체 따위가 당해낼 수 있을 리 없지.]

[ 이거 끝장을 내면 안에 있던 사도가 덤벼드는 거 아냐?]

[ 이제 머리가 좀 돌아가는군. 알았으면 이제 힘자랑 그만하고 돌아가자.]

[ ......]

[ 저 정도로 당했으면 소멸하진 않더라도 꽤 약화되겠지.]

나는 그 말에서 이반 4세가 아직 소멸할 정도의 타격은 입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없애려면 여반장이나 다름없으나 거기까지 할 이유는 없었기에, 나는 이반 4세에게 이죽거렸다.

"불청객한테 얻어맞아서 안됐군."

[ 이놈...!!]

"엄마한테 이르지 마시길."

파앗

나는 이반 4세를 놀려준 후 벨로프의 야영지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벨로프를 찾아가서 말했다.

"수도를 감시하는 천리안의 술법으로 다 보고 있었겠지? 이반 4세는 이제 몸 추스리기도 힘들 정도로 약화됐소."

"으음..."

"성유물 내놓으시오."

벨로프는 기가 질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

"좋소..."

그는 딱히 내게 호의를 느끼는 건 아닐테지만 이반 4세를 쓰러뜨릴 정도로 강한 존재와 척을 지는 건 안좋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몰랐다. 그 증거로 벨로프는 꽤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나름대로 담담한 기색이었다.

이윽고 벨로프가 몇 명의 늙은 수도사들과 함께 커다란 궤짝을 가지고 오더니 열쇠로 궤짝의 봉인을 열었다. 사람 키만한 커다란 궤짝 안에 들어 있었던 것은 웬 석판의 조각이었는데, 주먹만한 크기였다.

벨로프는 떨리는 손으로 석판조각을 내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이것은 십계비의 일부요. 우리 동방정교회에서 보관하고 있는 성유물 중에 가장 가치있고 성스러운 것..."

"십계비?"

"그대의 공적에 감사하오."

"알았소."

나는 벨로프에게서 석판을 챙긴 후 중원 낙양으로 되돌아왔다.

' 이 십계비 조각을 상관혁한테 줘야지.'

뭔가 순식간에 휙휙 갔다온 느낌이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 실감할 수 있었다. 칠요의 주인이 된다는 건 차원이 다른 신격의 힘을 빌려쓴다는 의미인 것이다!

나는 자신감이 붙어서 제갈사에게 말했다.

"좋아 가겠어!"

이젠 마음을 굳혔다.

더 이상 지지부진하게 고민하지 않고, 내가 가진 힘을 이용해서 백련교주를 설득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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