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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398화 (398/1,615)

00398  천계(天界)  =========================================================================

제갈유룡을 처치한 후,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를 고민했다.

' 이걸로 황궁은 모두 정리된거 아닌가?'

황궁을 쥐고 흔들던 제사장이자 흑막인 제갈유룡이 천계에 봉인되었으니, 이제 내가 고민하고 있던 황궁의 사악한 행위는 끝난 셈이다. 아직까지 복마전의 [옛 지배자]가 남아있으나 당장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걸 보면 교주의 향후 행동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내가 그동안 숙원으로 생각하고 있던 황궁토벌은 이번 생에서야 완벽히 이룬 셈이었다.

감개가 무량했으나 지금 감상에만 빠져있을 여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백련교주가 이제 곧 십이율과 충돌하려 하고 있었으며, 그가 심상치 않은 속셈을 품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제갈유룡 하나 쓰러뜨렸다고 천하가 평안해지는 건 아닌 것이다.

[ 백웅. 우선순위를 잘 생각해라.]

[ 이제 보패 백우선을 상관혁에게 갖다줘야지.]

[ 그 전에 백우선의 성능부터 알아내라.]

나는 제갈사의 충고에 따라서 백우선을 들어서 천우진에게 보여주었다. 천우진이 힐끔 백우선을 받아들자 나는 물었다.

"천우진. 이 보패 백우선의 공능이 무엇인지 내게 알려줄 수 있겠소?"

천우진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게 어떤 능력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일단 가져가고 보겠다는 건가? 돼ㅈ..."

"나는 천계를 위협하던 적을 목숨걸고 토벌했소. 이 정도 전리품은 가질 자격이 있다고 보는데."

"흥."

짧게 코웃음친 천우진이 천천히 백우선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몇 차례 영기를 불어넣더니 말했다.

"이건 대붕응자조(大鵬鷹子鳥)의 깃털으로 만든 보패요."

"대붕응자조?"

"천계에 사는 영험한 새요."

천우진은 내게 백우선을 돌려주며 말을 이었다.

"이 보패는 지속적으로 술력(術力)을 회복시켜서 반영구적으로 술법을 시전할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이 있소. 또한 신선급 능력을 지닌 자가 백우선을 사용할 경우 미래를 볼 수 있겠군."

"미래를...? 예지능력이 있단 말이오?"

"흠. 그건 좀 설명하기 애매한 부분인데."

천우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백우선으로 볼 수 있는 미래는 가변성이 굉장히 높소. 예언이라기 보다는 시간의 단면이라는 개념이라 할 수 있지."

"잘 이해가 되지 않소."

"그러니까, 졸졸 흐르는 시냇물 한가운데 막대를 꽂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되오. 누구나 물이 일정하게 흐르듯이 시간 속을 살아가고 있으나, 막대를 만나게 되면 그 직전에 물길이 막히게 되겠지?"

"흠, 그렇겠지."

"물길이 막혀서 막대를 휘감는 듯한 물결이 생길 때, 그 물결의 흐름을 읽는 것. 그것이 바로 백우선의 미래시 능력이오."

"......"

어려워서 잘 이해가 안 된다. 내가 아리송한 표정을 짓자 천우진이 답답한 듯 말했다.

"빌어먹을. 더 쉽게 말해주지. 미래를 보는 능력은 두 가지로 나뉘오. 한 가지는 '바꿀 수 있는' 미래이고, 다른 하나는 '바꿀 수 없는' 미래요. 백우선은 전자를 읽어들이지만, 아주 단편적인 장면이나 분기밖에 알 수가 없소. 그래서 알아봤자 해가 된다고 볼 수 있소."

"단편적인 장면이라도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되지 않소? 왜 해가 된다는 거요?"

"백우선의 주인이 이미 미래를 관측했잖소."

천우진이 한숨을 쉬었다.

"관측한 순간 그 미래로 향하는 도정(道程)이 바뀌어버리는 거요. 왜냐하면 관측자 또한 '시간'에 포함되기 때문이오. 그게 바로 미래시의 독특한 성질이지."

"아... "

나는 그제서야 천우진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리 바꿀 수 있는 미래를 읽어들였다고 한들, 거기에 도달하는 과정을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의미가 없다. 더욱이 관측자의 의도까지 섞여들었다면 혼돈 그 자체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천우진은 예지능력이라고 칭하지 않고 미래시 능력이라고 구분지어서 설명한 것이다.

' 그럼 설마...'

주작 제갈유룡은 이 백우선을 통해서 미래의 광경을 관측한 적이 있단 말인가?

내가 곰곰히 생각하자 제갈사가 말했다.

[ 백웅. 보패 백우선을 상관혁에게 주는 건 보류해라.]

[ 미래를 보는 능력을 사용해보라는 소리냐?]

[ 그래.]

제갈사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 어쩌면 굉장한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상관혁에게 보패를 주는 일은 서두르지 않아도 되잖나?]

[ 그렇긴 하지.]

[ 서둘러 봤자 네가 본단에 복귀해서 천령단을 강제로 받게 되는 일밖에 남지 않으니.]

내가 제갈사와 대화를 하고 있는 동안에 천우진이 슬며시 말을 꺼냈다.

"그럼 일은 다 끝났으니 나는 이만 가 보겠소."

"잠깐!"

이대로 가면 안 되지!

나는 급히 천우진을 멈춰세웠다.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는 천우진에게 나는 머릿속에서 생각나는대로 말했다.

"한가지 더 해야할 일이 있소!"

"그게 뭐요? 참고로 나는 여기에 천계의 토벌령을 받고 온 거요. 천계를 움직일 수 없다면 나도 부려먹을 수 없다는 걸 알아 두시오."

자기 할 말만 딱부러지게 하는 천우진의 얼굴에는 일하기 싫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생각보다 제갈유룡을 쓰러뜨리는 일이 귀찮았기 때문인지 당장 집에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천우진처럼 강력한 아군을 얻는 일이 그리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조바심이 생겼다.

' 으, 이 놈을 어떻게든 끝까지 부려먹어야 아깝지가 않은데...'

무슨 말을 한다?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제갈사가 말했다.

[ 시킬 일이 정해져 있는데 뭘 고민하냐?]

이윽고 나는 제갈사의 조언대로 입을 열었다.

"... 지금 황궁이 백련교의 손에 들어갔다는 건 알고 있을 거요."

"뭐, 듣긴 들었소만..."

"그 황궁의 지하에는 전국옥새가 있소. 그걸 백련교주가 손에 넣을 경우 큰일이 벌어질 거요. 나와 함께 먼저 전국옥새를 탈환해 줘야겠소."

전국옥새란 말에 천우진의 안색이 달라졌다.

"전국옥새? 정말이오?"

"그렇소. 이건 천계의 사자로서 해야만 하는 일이니, 당신도 나를 도와줘야만 하겠지? 그리고 하나 더."

나는 심호흡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내가 가진 월요(月曜)를 해방하게끔 봉선의식을 도와줘야겠소."

"......"

천우진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져 있었다. 나는 따지듯이 말했다.

"왜 떫은 표정이오? 내가 월요를 해방해야 백련교주에게 맞설만한 힘을 얻을 수 있잖소. 그래야 천계에서 부여한 임무를 행할 수 있소."

"아니 그건 그런데..."

천우진이 무척이나 싫은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 말대로 하면 당신은 전국옥새와 월요를 전부 얻는 셈이잖소."

"그렇소만."

"왜 혼자만 다 처먹는 거요?"

나는 띵한 표정을 지었다. 이 새끼는 이번에도 이런 소리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술법사에 있어서 최고의 기보를 2개나 얻겠다는 소리를 한 셈이었으므로 이해할 만 했다. 나는 헛기침을 하고는 대꾸했다.

"거 미안하게 됐소. 그 뭐냐... 나중에 좋은 거 생기면..."

"생기면?"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좀 나눠주겠소."

천우진이 코웃음쳤다.

"옘~병. 맘에도 없는 소리 하고 앉아있네 돼지새끼."

"......"

"아니다, 똘추 그지깽깽이."

험한 욕지기를 내뱉던 천우진이 고개를 홱하고 돌렸다.

"안내하시오. 빨리 끝내고 헤어집시다."

"아... 알았소."

난데없이 욕을 먹자 기분이 나빠졌으나 일단 참고 넘어갔다. 천우진 입장에서는 거의 무상으로 봉사하는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욕 좀 먹는 걸로 절세의 기보 2가지를 내 손에 얻을 수 있다면 참아줄 수 있었다.

나는 사불상을 타면서 제갈사에게 물었다.

[ 지금 다 얻어버려도 괜찮을까?]

[ 천령단을 받는 일만큼은 피해야 하지. 하지만 십이율과 전면전을 앞둔 교주한테 어떤 변명을 한다고 해도 통하지 않을거다. 왜냐하면 지금의 네 녀석은 명실공히 호법사자를 제외한 백련교 최고수급이니까. 전력강화에서 빠질 수가 없다.]

그렇게 설명한 제갈사가 씨익 웃었다.

[ 그럴 바에야 얻을 걸 미리 다 얻어놓는 편이 낫지. 그 다음 일은 나중에 설명하마.]

쉬이익!!

나는 먼저 천우진과 함께 태산의 천제단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 태우지 않고 남아있던 제갈유룡의 예비육체를 제물로 삼았고, 천우진이 천지교태의 시(時)를 잡았으며, 이윽고 태산에서 봉선의식을 치르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나는 천우진이 제단 위에 올라서서 영기를 조율하는 동안 밑에 꿇어앉아서 생각했다.

' 어떤 삼황오제가 나올까?'

예전에 화산의 천제단에서 수요를 해방시키는 봉선의식을 치렀을 때는 삼황오제 전욱이 소환되었다. 하지만 그건 우연이 아니었으며, 수요의 유적에 있던 전욱의 동상을 매개체로 삼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전욱이 소환된 것이다.

이번의 봉선의식에는 딱히 매개체라고 할만한 게 없기 때문에 무작위로 삼황오제가 소환될 것이다.

나는 제단 위에 올려진 월요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하늘이 점차 어둑어둑해지는 걸 불안한 눈빛으로 올려다 보았다.

우우우웅

천우진이 미리 꽂아놓은 깃발에 서서히 기운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제갈사가 천우진을 보조했으나, 신열을 극복하고 한층 더 강해진 지금의 천우진은 그럴 필요가 없어보였다. 혼자서도 봉선의식을 시행할 정도로 강력한 술법사가 된 것이다.

이윽고 천제단에 푸른 영기가 흘러나오더니 서서히 어둠의 구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어둠의 구체는 잠시동안 허공에 팔괘(八卦)를 그리기 시작했다.

팔괘가 서서히 천제단에 내려앉으며 하늘의 먹구름이 한층 강해졌다. 마치 천지를 뒤덮는 듯 자욱하게 맺힌 먹구름은 태양의 빛을 한줌도 남김없이 삼켜 버렸다. 완전히 시꺼멓게 천지가 뒤덮였을 때였다.

키기기기긱

허무(虛無)가 찢겨나가는 통곡!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비탄하고 음산한 소리가 태산 전체에 울려퍼졌다. 그 소리는 마치 생(生)을 부정하는 장송곡과 같았고,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무시무시한 음기(陰氣)를 내포한 소리가 영혼마저 떨리게 하는 듯 했다.

달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묵월(墨月)이 구름을 삼키듯이 점점 커졌고, 종래에는 원래의 다섯 배나 되는 크기가 되는 듯 했다. 묵월은 주변에 있던 별빛마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시하며 서서히 하늘을 뒤덮었다.

예전에 삼황오제 전욱이 등장할 때 그의 만신전(萬神殿)이 나타나며 도올을 비롯한 각종 귀신과 신위가 나타났던 일과는 대조적이었다. 그 때는 제왕의 궁궐이 통째로 지상세계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태초의 어둠이 달을 통해서 현실에 모습을 드러내려 하는 기괴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둠의 달 한가운데에서 은빛을 머금은 '무언가'가 서서히 지상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 은형(銀形)은 인간의 형상과 크기가 비슷했으나, 나는 그 존재를 보는 순간 가공할 존재감에 압도되는 기분이 들었다.

위이이이 -

반짝이는 달빛과 함께 창생한 기이한 동물이 주둥이를 쭉 빼면서 날아다녔다. 그 동물의 모습은 도저히 자연적인 생명체가 아닌 듯 했기에 이족인가 싶었지만, 이족이라기엔 동물에게서 흘러나오는 신기(神氣)가 너무나 정순하고 맑았다. 그 기수(奇獸)가 의문의 울음소리를 흘리며 은빛의 존재를 축복하듯 사방을 맴돌았다.

좀 더 거리가 가까워 지자 나는 그 존재의 형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치 인간처럼 생겼으나 - 본질적으로 인간과 다르다. 흐릿한 은빛 사이로 마치 뱀같은 하반신이 보였으나, 그것은 차라리 꼬리에 가까워 보였다. 눈빛에는 별빛이 맺혀흐르는 듯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으며 인간의 팔다리를 지니고 있었다. 성스러운 신의(神衣)를 입은 채 한쪽 손에는 태양처럼 붉게 물든 구체를 띄우고 있는 여신(女神)이 눈 앞에 있었다.

그 순간, 영기를 주재하고 있던 천우진이 자신의 목을 자연스럽게 숙이며 사지를 엎드리는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천우진이 내게 경고했다.

"시조여신(始祖女神)께 경의를 표하시오!"

나는 한 마디 반문도 하지 못한 채 천우진처럼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천우진의 한 마디에서 지금 불려나온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바로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 내면에 있던 제갈사조차도 그 존재를 직면하자 경이로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설마 이 존재와 살아생전에 맞닥뜨릴 날이 올 줄이야.

이윽고 엎드려 있던 나와 천우진을 바라보던 그 은빛 존재가 신어(神語)로 말했다.

[ 나는 여와(女?).]

이어진 말에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칠요의 봉선의식과, 칠요의 창조주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 누가 칠요(七曜)를 잠에서 깨우려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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