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397화 (397/1,615)

00397  천계(天界)  =========================================================================

파지직

제갈부의 영혼은 처음에는 내 명령에 저항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내 풀이 죽는 기색으로 내 질문에 대답하기 시작했다.

[ 예비육체가 있는 본거지는... 오악의 천제단 근처...]

"근처라고? 좀 더 자세히 말해."

[ ... 총 7군데에 있다.]

하나가 아니라고?!

나는 순간 놀랐지만 그럴만 하다고 생각났다. 신중하기 그지없는 주작의 성격상 한군데에 다 몰아넣지는 않았으리라. 그리고 오악 천제단 주변에 놔둔 이유는 여차할 경우 자신이 예비육체로 옮겨가서 천제단을 제압하기 위해서이리라.

제갈부가 원독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 크으... 개자식... 날 죽이고도 모자라서 네맘대로 이용해먹다니... 도대체 내게 무슨 원한이 있어서 이런 짓을...]

"으음."

나는 당연히 원한이 있지 않겠냐고 대답하려다가 멈칫했다.

그러고보니 제갈부 입장에서는 난데없이 내가 죽어라고 기습한 걸로 보일 것이다. 지난 생에서는 내가 그에게 당한 원한이 있지만 지금의 제갈부에게 그런 기억은 없기 때문이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보았을때 나는 철저히 공격자이며 침략자이다. 제갈부가 억울해하는 것도 이해가 갔기에, 나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머리를 긁적이다가 대답했다.

"나는 백련교 뇌신류의 호법사자 백웅이다.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때문에 널 작살내야만 했다고 말해두지. 어차피 네 녀석도 힘을 얻기위해서 무고한 사람들을 인신공양으로 바치지 않았냐?"

단언할 수 있다. 태산 천제단에 벌어진 인신공양의 참상을 본다면, 누구도 내가 제갈가 부자에게 심한 짓을 했다고는 생각지 않으리라. 최소한 백 명 단위의 인간이 처참하게 죽어 있었다.

아마도 태산의 요새에 주둔하고 있던 병사들을 시켜서 근처의 민가에 있던 양민들을 잡아온 것이리라. 지독한 비극이었다.

[ 웃기지 마! 나는 네놈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심한...]

"잘 됐군. 지금부터라도 알아가면 되겠네."

[ 으으...]

제갈부가 발작하려 하자 나는 이어서 대꾸했다.

"어차피 네 녀석은 마(魔)의 육체로 전생해서 자칫하다가는 [옛 지배자]의 수중으로 영혼이 빨려가는 거 아니냐? 천신경의 술법으로 충분히 사역하고 나면 천계와 인과율이 생성되어서 한결 나은 상황이 될 텐데."

[ ......]

"그 잘난 머리로 생각해 보라고. 넌 어차피 죽어서 되살아날 수도 없으니까."

제갈부는 마치 앓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 넌 정말 개자식이다.]

"음..."

나는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최대한 배려해서 말했다고 생각하는데 왜 저런 반응일까? 그러자 내면에서 듣고 있던 제갈부가 킬킬거렸다.

[ 왜, 아주 잘 말했구만.]

제갈부가 칭찬하니 기분이 더 더러워졌다.

곧이어 제갈부가 천제단 근처에 숨겨진 제갈유룡의 본거지 위치를 상세히 설명했고, 나는 제갈부의 설명에 따라서 사불상을 타고 하나하나 찾아가기 시작했다.

콰과광!

콰광

나는 제갈유룡의 본거지에 장력을 날려서 무너뜨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 이걸로 천제단 근처의 5개는 부쉈는데.'

심유한 지하공동에 누워있는 '예비 육체'를 보니 찝찝했다. 하나같이 제갈유룡과 쌍둥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나의 기지에 최소한 20여개 이상의 육체가 있어서, 제갈유룡은 무려 100여개의 여벌목숨을 가지고 있었으리라는 걸 짐작할 수가 있었다.

제갈유룡같은 놈이 100번씩이나 되살아나서 특유의 지력과 무공을 이용해서 집요하게 괴롭혀 온다면 아무리 백련교주라도 성할 수 없으리라. 백련교주가 주작의 존재를 불안해하면서 집착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내 옆에서 함께 본거지를 부수던 천우진이 말했다.

"백웅. 여기에 제갈유룡은 없군."

"나머지 2군데 중 하나에 있을 거요."

나는 그렇게 대꾸하고는 제갈부에게 질문했다.

"제갈부. 나머지 2군데는 어디 있지?"

[ ......]

"뻗대봐야 좋을 거 없을걸. [옛 지배자]의 소유가 된 영혼이 얼마나 고통을 겪는지는 네가 가장 잘 알테니. 내가 원하면 천신경을 해제하고 널 내쳐버릴 수도 있다."

내가 으르렁거리자 제갈부가 마지못해서 말했다.

[ 하나는 서안(西安). 다른 하나는 낙양에 있다.]

"하나같이 큰 도시에 만들어뒀군."

나는 그 말을 듣자 예전에 제갈유룡이 죽자마자 바로 되살아나서 천제단이나 낙양에 신출귀몰하게 나타났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놈은 중요한 거점 주변에 기지를 다 만들어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의 경우 오악에 존재하는 구파일방을 신속하게 제압할 수 있는 것이리라.

슈웅

이윽고 나와 천우진은 서안에 존재하는 제갈유룡의 본거지에 향했다. 나는 지하기지에 들어서자 침음성을 흘렸다.

"크군."

서안에 있는 제갈유룡의 기지는 지금까지 본 것보다 10배 이상 컸다. 언덕 하나를 통째로 파내서 개조한 듯 거대한 공동 내부에 방이 몇십 개나 있었다. 그리고 그 방 하나하나에는 주술적인 제의도구는 물론 제갈유룡의 예비육체가 있었다. 이번에는 무려 40여체를 발견했기에 나는 기가 질렸다.

' 여벌목숨을 많이도 만들어뒀군.'

콰광!!

콰광!!

서안의 기지를 부수고나서 바로 낙양으로 향했다. 낙양에 존재하는 마지막 제갈유룡의 본거지는 남문(南門) 근처에 있었는데 무덤가 주변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묘지기의 사당에 불과했으나 안으로 걸어들어가자 기관장치가 있었고, 기관장치를 해제하자 거대한 공동이 입을 쩍 벌렸다.

나는 공동의 철문이 열리자 천우진에게 말했다.

"여기에 아마 놈이 있을 거요. 여기는 놈에게 있어서 포기할 수 없는 마지막 본거지니까."

"그렇겠지."

여상하게 대답한 천우진이 팔짱을 꼈다.

"뭔가 이해가 되지 않는군."

"뭐가 말이오?"

"이 정도 능력을 지닌 술사라면, 현 시점의 술법사계열에서 중원제일이라 자칭해도 될 것이오. 팔괘(八卦) 하나에 있어서는 나를 넘어설지도 모르는 명인급이오. 그렇다면 이족과 손을 잡을 이유같은 건 없을텐데 왜..."

"이족과 손을 잡을 이유가 없다니?"

"제갈유룡 정도의 능력자라면 얼마든지 지선(地仙)이 되어 등용문을 오르거나 고명한 대라신선을 초혼(招魂)하여 승천자격을 얻을 수 있소. 천계도 강력한 신선이 늘어나는 걸 크게 기꺼워하기 때문에 거부할 이유가 없지. 그런데도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

"......"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천계에 그다지 가고싶지 않은 게 아니었겠소?"

"말도 안 되는 소리. 중원의 모든 술법사와 무격들 중에서 천계에 오를 수 있는 자는 한줌도 되지 않소. 그런 발상은 비현실적이오."

"당신도 능력이 되는데 천계에 가지 않았잖소."

"하아?"

천우진이 한심하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가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몰라서 어리둥절했는데 제갈사가 내면에서 말했다.

[ 등신아. 천우진의 위치가 어떤건지 파악 못했냐?]

[ 뭔 소리야?]

[ 저 놈은 중원도교의 수호자이자 힘의 주재자인 제망량의 제자다. 그 말은 신(神)이 직접 거둔 제자라는 말이지. 그래서 겉보기의 서열과는 달리 대라신선들 조차도 천우진을 함부로 대하지 못해.]

[ 으음.]

[ 신에게서 직접 술법을 전수받는 셈인데 뭐하러 천계에 가겠냐?]

나는 그런 식으로는 생각지 못했기에 침음성을 흘렸다.

신의 제자!

그렇기에 환신이라는 거창한 명호를 달고 있는데도 그 누구도 천우진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다. 하물며 이번에 수기공양 의식때 신열을 극복하면서 그의 술법력이 몇 배로 증폭했다는 사실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나는 괜한 말을 꺼냈음을 깨닫자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뭐, 아무튼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 놈을 잡아서 족쳐 봅시다."

"내가 먼저 결계를 해제할테니 뒤따라 오시오."

천우진은 한 마디를 내뱉고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는 천우진의 기척을 따라서 어두운 공동으로 들어갔는데, 암흑에 시야를 적응시키기도 전에 전방에서 거대한 환염이 피어오르는 걸 볼 수 있었다.

화르륵!

천우진이 불러낸 거대한 염룡(炎龍)이 치솟으며 다섯 줄기로 분화하더니 장내를 환하게 물들였다. 아무래도 결계나 함정을 부수는 김에 시야까지 확보하려는 모양이었다. 천우진이 앞길을 뚫어주자 나는 걱정하지 않고 손쉽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쿠구구궁

공동이 무너질 듯이 흔들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나는 2차 출구로 나왔는데 놀랍게도 이 지하에서도 다시 무저갱이 존재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봐 왔던 주작 제갈유룡의 본거지와는 명백히 다른 모습이었는데, 나는 무저갱으로 내려가는 나선형의 계단을 보자 익숙함을 느낄 수 있었다.

' 이족(異族)의 유적!'

이 건축양식은 인간이 만든 게 아니라 이족이 만든 것이다! 나는 오랜 모험경험으로 대번에 그 사실을 알아챌 수 있었다. 무저갱의 중앙으로 화룡이 마구 날아다니는 걸 보니 천우진은 계단을 내려가기 귀찮아서 바로 허공을 부유하며 날아들어간 모양이었다. 나는 무공술을 쓸 수 없었기에 일단 사불상을 불러서 바닥까지 갔다.

파앗

바닥에 도착하자, 어둠 속에서 천우진과 제갈유룡이 대치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제갈유룡은 전에 없이 피로한 얼굴로 삿갓을 벗은 모습이었다. 청수하고 잘 생긴 장년인의 모습이 불빛 앞에서 파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제갈유룡이 우묵한 말투로 말했다.

"... 결국 여기까지 왔군. 오지 않기를 바랬건만."

천우진이 그의 말에 대꾸했다.

"제갈유룡. 당신이라면 등선하여 신선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이토록 어리석은 짓을 하다니... 인간의 권력이나 정치 따위는 하잘것없다는 걸 몰랐단 말이오?"

그러자 제갈유룡이 피식 웃었다.

"하하... 그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게 나다. 내가 권력을 탐해서 복마전의 제사장이 되었다 생각하는가?"

"그럼 무엇 때문에 이토록 극악한 만행을 저질렀단 말이오?"

천우진은 노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인신공양 뿐만 아니라, 당신은 천제단을 장악하여 천계의 비밀을 염탐했소. 이 죄는 천기누설을 훨씬 뛰어넘는 것으로, 천계에서도 만장일치로 당신의 말살을 명했소. 유사이래 당신처럼 가공할 범죄를 저지른 인도(人道)는 전무했단 말이오."

"후후."

제갈유룡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제갈유룡은 천우진의 비난에 그리 대답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상황을 살피다가 한걸음 앞으로 성큼 나서며 말했다.

"이봐. 대답 좀 해봐. 왜 이런 짓을 저지른 거지?"

"......"

제갈유룡이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차분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네게는 완벽하게 졌다. 하지만 그건 내가 너의 본질을 잘못 파악했기 때문이다."

"무슨 개소리야?"

"나는 이혼대법 너머에 있는 존재가 당연히 배교의 교주 제갈사, 나의 동생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놈의 생각을 한수 앞서서 읽으며 대비했지. 하지만 너는 그 모든 예상을 깨고 바로 태산의 천제단부터 쳤고, 정곡을 찔린 나는 어쩔 수 없이 무너진 것이다."

담담하게 읊조린 제갈유룡이 나를 강하게 노려보았다.

"너는 도대체 누구냐? 누구인데 내 모든 비밀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냐? 그리고 제갈사는 대체 어디로 간 거지?"

"음..."

제갈유룡에게서 처음으로 감정이랄만한 게 느껴졌다. 그는 명백히 당황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철두철미하게 자신을 감추며 숨겨왔던 비밀을 정곡으로 찌르며 내가 공격해 들어온 셈이기 때문이다.

제갈사가 말했다.

[ 야. 저기에 있는 예비육체에 이혼대법 써봐.]

[ 되겠냐?]

[ 네 수준으로 영혼을 고정시킬 순 없겠지만 짧은 시간은 움직일 수 있겠지. 대략 한 식경은 버틸려나.]

[ 알았어.]

나는 제갈사의 말대로 제갈유룡의 예비육체로 다가가서 손을 올렸다. 제갈사가 지금의 대면을 누구보다 고대해왔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백을 움직여서 혼을 이동시킨다!

우우웅

이윽고 내가 이혼대법을 시전해서 제갈사의 혼을 예비육체로 옮기자, 육체는 잠시 떨리더니 서서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제갈유룡의 모습을 한 제갈사는 자신의 뒷목을 주무르더니 빙긋 웃으며 제갈유룡에게 말했다.

"어어. 형님. 반가워."

제갈유룡은 그 말을 듣자 상황을 파악한 듯 탄식했다.

"그런 거였군. 누구한테 죽은 거냐?"

"백련교주."

"어이가 없군."

"나도 그렇게 생각해, 형님."

형제는 거의 동시에 쓴웃음을 지었다. 같은 육체인데도 쓴웃음을 짓는 표정은 서로 달라서, 내면에 들어있는 영혼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제갈사는 킬킬 웃더니 말했다.

"형님. 왜 위선자가 되었는지 알 수 있을까?"

"......"

"거 뭐냐, 형님은 내가 배교의 사승을 전해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때까지 내가 익혔던 모든 술법과 무공을 폐하고 나를 내쫓았지. 그건 도맥을 잇는 제갈무후의 후예가 사악한 이족과 어울리는 건 용납할 수 없다는 이유였잖아."

"그랬지."

"그때 잃은 술법을 복구하는데만 3년동안 죽어라 고생했어. 그런데 정작 형님은 뭐하는 짓이야?"

정상적이라면 제갈유룡이 대답할 말이 없으리라. 하지만 제갈유룡은 잠시 제갈사를 쳐다보더니 대꾸했다.

"네가 세상에 절망한 것과 같은 이유지."

"뭐?"

"단지, 좀 늦게 깨달았을 뿐이다..."

이놈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나는 어리둥절해졌지만 제갈사의 표정은 크게 굳어져 있었다. 제갈사의 표정은 제갈유룡의 대답을 그 누구보다도 강하게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대답이지만 제갈사에게는 납득되는 것이었는지, 제갈사가 이윽고 한숨을 쉬었다.

"하아. 형님은 늘 그랬어. 고집을 죽어라 부리다가 한순간에 변심하곤 했지."

"날 다 아는 것처럼 말하지 마라, 사(邪). 그럴만한 이유도 동기도 있었으니까."

"어쨌든 결과는 이 모양이야."

제갈사가 이죽거렸다.

"형님은 결국 [옛 지배자]에 도달하지 못할 재목이었다는 거지."

제갈유룡이 으르렁거렸다.

"그럼 네가 밀고 있는 그 놈은 그럴만한 재목이라는 거냐?"

"조금 미덥지 못하긴 하지만 형님이 추구하는 방법보다는 훨씬 현실적이야."

그러자 제갈유룡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 정도라고? 대체 뭐하는 놈이지?"

"그건 형님이 알 필요 없지. 여기서 뒈질테니까."

그렇게 대꾸한 제갈사가 히죽거리며 웃었다.

"어차피 그 육체도 마지막이 아니지? 진짜 육체는 제갈부도 모르는 곳에 숨겨놓고 마지막 반격을 기다리고 있지? 다 알고 여기까지 온 거야, 형님."

"알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어차피 너희가 그걸 찾아낼 방법은..."

"찾아낼 필요는 없어~"

"뭐?"

제갈사가 초승달처럼 휘어진 웃음을 지었다.

"백웅. 저 놈 쳐 죽여."

"명령하지 마!"

나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제갈유룡에게 달려들었다. 동시에 옆에 있던 천우진도 술법을 써서 제갈유룡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크윽!"

제갈유룡은 아까처럼 토요 팔괘도의 힘을 불러내어서 천우진의 술수를 봉인했으나, 사방에 팔괘가 떠오른 와중에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휘둘러서 제갈유룡의 목을 베어나갔다.

까강!

깡!

제갈유룡은 나와 일전을 벌인 경험이 있어서인지 지난번보다는 익숙하게 내 공격을 버티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버티는 것에 불과했고, 실제로는 내공차이가 워낙 현격했기 때문에 반격은 꿈도 꾸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그의 무공이 절대지경을 넘어선다면 순간적으로 반격해서 나를 격살할수도 있겠으나 제갈유룡의 무예는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 같은 초절정급 내에서도 차이가 나는 법이지!'

퍼벅

오래지 않아 내가 뻗어낸 검강(劍罡)이 허공에서 휘어지더니 그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뇌신검무의 절초가 패도적인 기색으로 날아가니 인간의 방어력으로 버틸 수가 없었다.

제갈유룡은 내 공격의 흐름을 알고는 있었지만 힘이 부족해서 알고도 당하고 만 것이다. 나는 이백 칠십초만에 결판을 내고는 호흡을 가라앉히며 뒤로 물러섰다.

구경하고 있던 천우진이 말했다.

"검술실력 하나는 대단하군. 과연 월요의 주인이라 할만 해."

"칭찬은 고맙소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군."

나는 검을 거두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제갈사. 이 놈이 숨겨둔 육체를 어떻게 찾는단 말이냐?"

그러자 제갈유룡의 모습을 한 제갈사가 킬킬 웃더니 말했다.

"찾을 필요 없다니까. 찾아서 끝장내 봤자 신의 저주를 받아서 죽게 되니까 그럴 필요가 없어."

"그렇다고 놔두었다가는 후환이..."

제갈사는 내 말을 들은척도 하지 않고 말했다.

"백웅. 네 녀석에게 이혼대법의 진짜 사용법을 가르쳐 주지."

"엉?"

"천우진. 바로 봉인을 부탁한다."

그렇게 말한 제갈사가 난데없이 자신의 천령개를 퍽하고 내리쳤다. 그리고 잠시 후, 천령개가 깨진 채 피투성이가 된 육체가 벌떡하고 일어섰다. 그는 당황한 기색으로 말했다.

"아니?!"

어떻게 된 일인가?

상황을 먼저 알아차린 건 천우진인 듯 했다. 그는 재빨리 달려들더니 제갈유룡의 목을 움켜잡고는 말했다. 강력한 봉인술을 시전하는 듯 했다.

"사악한 영이여, 그대의 영은 천계에서 돌보게 될지어다..."

파지지직!!

"으아아아아악!! 하지 마!!"

제갈유룡이 비명을 질렀다. 그것은 고통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놓인 처지를 믿을 수 없는 절망감 때문인 듯 했다. 그는 팔다리를 버둥거렸지만 그의 전신을 뒤덮은 신령스러운 뇌전은 멈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환신 천우진이 직접 시전하는 봉인술은 대요괴도 일격에 봉인할 정도로 강력한 게 틀림없었다.

내게로 되돌아온 제갈사의 영혼이 고소하다는 듯 말했다.

[ 제갈유룡만을 위해서 만들어진 예비육체라면 혼백의 동조율이 말도 안될 정도로 높지. 그 동조흐름을 읽어내서 이혼대법으로 혼을 다시 끌어들이는 건 일도 아니야.]

[ 새 육체로 갈아탄 제갈유룡의 영혼을 다시 불러왔단 거냐?]

[ 네 녀석이 이혼대법 8성에만 이르러도 할 수 있는 일이다.]

[ ......]

[ 수련 좀 열심히 해.]

대화를 하는 와중에도 천우진의 봉인술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천우진은 제갈유룡을 착잡한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을 죽이면 [옛 지배자]의 저주가 발동된다 하더군. 그 업을 천계에서 짊어지겠다 했으니, 그 저주가 우리에게 올 일은 없을 거요. 또한 당신은 영겁토록 천계의 뇌옥에서 그 죄를 참회하게 될 것이오."

"크흐흐흐... 죄라고... 내가 행한게 그렇게 나쁜 짓이라 생각하는가?"

"인신공양, 천기누설."

"그건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제갈유룡은 더는 판을 뒤집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광소를 흘렸다.

"흐흐흐... 수백 년 후, 100억의 모든 인류가 죽는 미래... 그걸 막기 위해서라면 모든 걸 할 수 있었다. 나는 너희 천계놈들처럼 뒷짐지고 현실도피나 하진 않겠다고 마음먹었을 뿐이다."

"......"

"환신 천우진이여. 르뤼에가 떠오르고 모든 [옛 지배자]가 깨어나서 성좌 아래에서 생명체가 절멸하는 미래를 알고 있는가? 그 때가 되면 죽음조차 구원이 될 수 없다. 나는 그걸 구원하고자 모든 걸 버렸을 뿐이다!!"

처절하게 외치던 제갈유룡이 음울하게 말했다.

"고대의 인간들도 나와 같은 선택을 했지.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의 차이일 뿐이구나..."

천우진은 힐끔 그의 몸 주변의 영기를 살폈다. 그러더니 말했다.

"이 정도로 약해졌으면 산하사직도에 넣어도 탈출할 수 없겠지."

팟 하는 소리와 함께 천우진의 왼쪽 손 위에 보패 산하사직도가 나타났다. 아무래도 산하사직도에 제갈유룡을 넣어서 봉인할 생각인 듯 했다. 단지 제갈유룡의 영력이 강해서 자력으로 탈출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미리 봉인술로 약화시켜서 안전을 도모한 모양이었다.

"잘 가시오."

파스스

이윽고 제갈유룡의 육체가 사그라들더니 그의 영혼이 흰 빛을 띄며 천우진의 손바닥 위에 떠올랐다. 천우진은 그 빛을 보패 산하사직도 안에 넣어버렸다.

산하사직도가 족자를 나풀거리며 잠시 붉은 빛으로 빛났다.일련의 과정은 순식간에 끝나버렸고 어두운 공동 내부는 다시 정적에 물들었다.

"으음."

나는 혹시나 싶어서 내 몸을 살폈다. 지난번에는 신경계가 녹으면서 내 몸도 같이 녹아버렸기 때문에, 신의 저주가 닥쳐오지 않았는지 걱정되었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저주가 닥쳐오는 기색이 없었다.

천우진이 한숨을 쉬며 산하사직도를 둘둘 말아서 품속에 넣었다.

"백웅. 방금 제갈유룡의 이야기는 신경쓰지 마시오. 그는 분수에 맞지 않는 과한 꿈을 꿨을 뿐이니."

"인간을 구한다는 게 수백년 후의 종말을 말하는 거요?"

"아마 그렇겠지."

그는 단호하게 대꾸했다.

"다시 말하지만, 신경쓰지 마시오."

"......"

신경쓰지 않을 수가 없다.

천우진의 '신경쓰지 말라'는 말에는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는 절망이 존재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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